부엉이

 

                                박목월

 

   부엉이가 안경가게를 찾아왔습니다.

  -아저씨, 낮에도 보이는 안경 하나 맞춰주세요.

  부수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글쎄, 그런 안경이 있을지 모른다.

  어디,이걸 한번 써봐.

  안경집 아저씨가 새카만 선글라스를 부엉이에게 주었습니다.

  -어라, 참 잘보이네요. 아저씨 고마워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부엉이는 뒷짐을 진 채 배를 쑥 내밀며

  어슬렁어슬렁 돌아갔습니다.

                        

                                                              -함민복, <절하고 싶다>에서-

  

 

 

 

   함민복의 <절하고 싶다>를 읽다가, -부엉이-라는 박목월詩人의 이 詩를 읽으며  미소가 지어지며 마치 한편의 그림이 곁들여진 童話를  읽고 있는둣한  마음이다. 부엉이는 왜 안경가게를 찾아가 낮에도 보이는 안경 하나를 맞추러 갔을까. 밤에는 잘 보이는데 낮에는 잘 안보이는 것이 답답해서였을까. 이그 그냥 생긴대로 살지. 그렇다고 내가 뭐라할 건 없다, 부엉이 마음이니까. 부엉이에게 밤처럼 새까만 선글라스를 권해 주신 아저씨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고, 나에게는 무슨 안경을 권해 주실런지도 궁금하다. 어쨌든 그는 잘보이네요, 하며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돌아갔으니 해피엔딩이다. 함민복詩人을 떠올릴때면 시인의 순수하고 정갈하고 때묻지 않은 가난한 마음이 우선하고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를 비롯해 '미안한 마음'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비롯해 그의 좋은 詩들이 생각난다. 이런 함민복詩人이 시인의 마음으로 시를 읽고 엮은 <절하고 싶다>에는 77편의 주옥같은 좋은 시들이 시인이 느낀 마음과 함께 들어 있다. 한 번에 쭈욱 읽을 책이 아니고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듯 그렇게 천천히 가만가만 읽어야 겠다. 밤에만 보는 것이 아쉬워 낮에도 잘 보이는 안경을 맞춘 부엉이. 뭐 낮의 일까지 궁금할까만 역시 그것도 부엉이 마음이고, 나는 이 추운 겨울을 잘 견디기 위해 마음에도 실키하고 따스한 내복이나 하나 구해 입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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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동이는 오늘 짜증이 지대로다.

 어제 200큐브수조에서 두마리의 자홍달팽이 팽이와 팽군 부부와 아비아누스나나수초와 스킨다비스, 개운죽들 사이에서 너무 비좁은 것 같아 장미공방에서 수작업해온 조금 넓은 수조로 집을 옮겨주고 나니, 왠지 휑하니 심심해보여 다른 방의 수조에 있던 두달남짓 자란 저먼옐로우 치어 몇마리를 넣어주었다. 심심하지 말라고. 그런데 저먼베이비들이 들어오니까 쫓아다니며 해찰을 하려하다 오히려 제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다. Why?  너무나 작은 치어들의 동작들이 잽싸게 움직여 귀동이의 둔한 몸으론 매번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 보는 낭패를 겪으며 더욱 신경질이 나 입맛도 없고 밥맛도 다 떨어져 본의아니게 일시적인 다이어트모드인데..천방지축인 저먼베이비들이 귀동이의 푸드팬서를 접수하며 사료들을 폭풍흡입을 하니 참 미치고 환장하게 심란한 것이다.  베타라는 어종은 원래 혼자 사는 종류이지만 동종끼리만 피하면 다른 어종과의 합사는 괜찮은데 왠지 우리 귀동이는 하프문 특유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듯한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무척 까칠하구나. 우리만 보면 강아지처럼 쪼르르 어여쁜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면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저먼베이비들. 평소에도 커다란 두마리의 수중달팽이들이 자기의 식탁을 눈깜박할사이에 접수해버려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았는데..이제 좀 널널하게 살아보려 했는데 이번엔 어디서 눈꼽만한 것들이 나타나 분잡하게 만드니 아참..정말 울적하구나, 울적해. 확연히 침체된 모습으로 진종일 우거진 수초 구석에서 우울모드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우리 어여쁜 영순위 귀동이를 바라보니 나도 쪼금 심란해. 흠흠..과유불급일까, 다정도 병일까. 어쨌든 생각해서 해준 일이 그를 몹시 고요의 물속에서 평상심을 깨게했으니 미안 미안해. 내일 아침에 다시 치어들을 제집으로 보내야겠다. 잘자라. 귀동아 안녕. 내일은 다시 평화로운 날들이 시작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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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성탄절.

 어둠속으로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을 지나 새벽으로 가는 길에 책을 읽다가 자판을 두드리다 화장실에 갔다가 문득, 작은 창밖으로 그제도 눈이 내리더라. 일몰 후 불켜진 세상에 내리는 눈들은 눈의 요정들의 군무같이 아득하고 황홀했는데 새벽에 내리는 눈은 알싸하더군. 알싸해. 연식이 오래되어서일까 아니면 작은 창이 보여주는 특별한 정서일지. 마을도서관 화장실에 앉아서 보는 손바닥만한 창밖의 경로당 지붕의 기와와 나무들이 마치 한폭의 작은 액자같은 . 그렇다. 넓은 창은 시원하고 널찍한 건너편의 모습들을 여과없이 다 보여준다. 그러나 작은 창이 보여주는 지극히 사적이고 순간적인 풍경들은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잠시나마 카메라 렌즈안의 순간처럼 찰나의 시간들을 포착하고 각인시켜 주는 차이같다. 그리고 거의 그 순간의 포착이 나를 나의 현재의 순간들을 아름다운 한 폭의 작은 액자로 만들어 주다. 어젯밤에 '도가니'를 보았다. 그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 읽었는데 그때의 느낌은 뭐 이런 일이 이런 나쁜 사람들이 다 있어, 하며 무진이란 지명이 주는 그대로 어둡고 뿌옇고 앞을 알 수 없고 뭔가 끈적이고 불쾌한 그런 느낌으로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든다. 그리고 지난 밤에 다시 보게 된 '도가니'는 보다 선명하고 간결해졌고 눈이 확인해 주는 사실성과 가끔은 갑갑해지기도 했던 그래서 더 나았던 영화였다.  에필로그같은 영화의 마지막 메일의 글이 가슴에 남는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느낌을 피해자였던 아이들에게 서선생이 물었더니 "이제는 우리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라는 말.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모호하면서도  생각해보면 참 중요한 말이다. 그리고 서로 마주잡은 손의 온기처럼 온기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안에서 발아되어 가고 있던 씨앗들이 꽃을 피우고 향기를 전하고 꽃이 지고 꽃진 그 자리에 열매 맺는 삶이라는 실천.

 창밖을 보니 여전히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이렇게 눈 내리는 밤이면 배고픈 고양이들의 발자국이 더 선명하게 눈위에 남으리라.

 나의 보드랍고 따뜻한 극세사 양말을 너희들에게 끼워주고 싶은, 춥고 눈 내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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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달에 산 책들을 정리해 본다.  한대수님의 -뚜껑 열린 한대수- #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아티스트의 담담하고 통찰력 있는 아주 좋은 사진담론집. _윤미네 집- # 딸의 탄생에서부터 결혼식까지의 한 사람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의 기록이다. 

 

 

 오늘 주문한 책. '베를린 천사의 시'와 '부에나비스타쇼설클럽'을 만든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한번은- #누구에게나 나에게나 늘 사는 모든순간이 '한번은'이리라. 

김기찬님의 -골목안 풍경 전집-  #사진들 속에 우리들의 가난했지만, 정다운 아련한 삶의 모습이 뭉클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정호승의 '선암사'를 전화기너머로 낭송해 준 내 고운 벗의 짝꿍에게 선물하기 위해 주문했다.또 얼마나 기뻐할 지 벌써 눈에 선하다~^^ 그렇지 좋은 것을 보면 그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고 또 함께 나눌 수 있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이번 달에는 연말이고 성탄이 있어서 인지 그림책도 샀구나.  바바라 쿠니의 -에밀리- # 에밀리 디킨스와 한 소녀의 시 같은 이야기인데 그림도 내용도 너무 신비하고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그리고 -엠마- # 엠마할머니의 처음에는 외로운 할머니였지만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드디어 찾아 시작하고 그래서 드디어 행복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엠마를 보며 읽으며, 짧고 간단한 글.그림임에도 누구나 누구보다 나 자신도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그런 즐거운 소망을 건네다.   참, 바바라 쿠니의 -최고로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도 있구나. 어린 시절 우리는 교회를 다녔던 아니던 성탄절이 오면 산타할아버지와 선물을 주는 아기예수님 생일날 덕분에 얼마나 들뜨고 즐거웠는지. 흐흐~이 책도 역시 올해도 성탄전야미사에서 성가를 부르는 울 고운 벗에게 선물하리라.  나이가 점점 먹어가고 나날이 사는 일에 대해 환상이 부족해지지만 그래도 이렇게 유년의ㅡ 꿈과 추억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이번 연말의 살짝꿍.  

그리고 마지막인가, 김사인님의 -가만히 좋아하는-과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올 마지막 달을 마무리 한다. 시인의 '노숙'이란 詩가 마음의 빗장을 찌르고 있다. 

그리고 음음..물만두님의 유고집. -별 다섯 인생-. # 물만두님의 이 책을 읽으며 비록 몸은 아프셨지만 진정 사랑하는 가족들과 책과 서평과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들을 신나고 꿋꿋하고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아름다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사랑하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마음 속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래요 물만두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삶 덕분에 우리들도 힘나고 희망을 지니며 매 순간순간의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이제 그 곳에서 더욱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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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의 기도



남진우





1

일찍이 한 철학자는

한 바구니의 책을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굶주림을 주시옵고

일용할 굶주림?

굶주림이라면 그것은 내게 너무도 충분하다

아무리 먹어치워도 질리지 않는 탐욕의 눈빛과

어둡게 입 벌리고 있는 머릿속의 허방

허겁지겁 굶주린 눈으로 먹어치우면

글자들은 텅 빈 머릿속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

잠시 북새통을 이루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2

책들이 달려든다

화려한 표지를 치켜세우고

현란한 광고 문구와 장엄한 저자 약력을 앞세우고

날 선 종이들이 사방에서 달려와

일제히 내 몸을 베고 찌른다

나를 읽어야 해 나를 읽어달라니까

책들이 아우성치며 내 몸을 타고 오른다

빽빽히 종이로 들어찬 몸이

책상 위에 머리를 처박고

다시 꾸역꾸역 종이를 삼킨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책을 멀리할 수 있는 자만심을 주시옵고



3

매일 한 바구니의 빵 대신

한 가마의 책이 하늘 어디선가 떨어진다

떨어져

오늘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저 거대한 책더미

이를 갈며 아무리 먹어치워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저 글자들의 산

죽은 나무의 무덤

길이 또 다른 길로 이어지듯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그 끝없는 말의 거미줄을 헤치고 나아가다 보면

나는 어느덧 살진 거미 앞에 서 있다



4

지금 막 도착한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아,

책 대신 누군가 띄워보낸 갓난애가

빙그레 웃고 있다

반가워 들어올리면

우수수 떨어져내리는 종이 뭉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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