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배 스무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시래기>- 도종환.

 

 

 

 

B에게.

 

 

 

 저녁으로, 무화과브래드에 딸기크림치즈를 잔뜩 발라 먹고..또..카스테라가루가 어찌나 탐스럽게 뿌려졌는지, 풍만한 자태을 뽐내고 있던 케익도넛을 또 하나 먹어 주고..그리고 자기만 빼놓으면 괜히 서운해 할까봐 '예의상', 하나 남은 생크림이 바삭한 파이에 잘 숨겨져 있는 '초코쇼콜라'까지 마저 먹고 헤즐럿커피를 머그컵 가득 뜨겁게 담아 마시고 있는..거의 '식신(食神)'의 경지에 올라..이 겨울 이후 부쩍 심하게 몸이 난 스스로에 대한 민망함을 ...(흐흑)

 

 세발가락나무늘보에 대해서는,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를 읽다가 '생존의 기술'이란 챕터에서 알게 됐는데 쫌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옮겨 봅니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에 보면 세발가락나무늘보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늘 잠만 자고 게으르고 동작이 굼뜨기로 유명한 이 동물은 몇 번을 건드려야 겨우 졸린 눈으로 물끄러미 사람을 쳐다본다고 한다. 귀도 어두워서 총소리쯤 돼야 겨우 반응을 보이고 그나마 낫다는 후각도 나뭇가지가 썩었는지 안 썩었는지 판별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물학자 블록에 의하면 적지 않은 나무늘보들이 썩은 나뭇가지에 매달렸다가 땅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바로 그 어찌할 수 없는 수면벽과 천성적인 게으름이 나무늘보 생존의 비밀이다. 너무 느리다 보니 위험한 길은 아예 가지를 않고, 늘 가만히 잠만 자고 있으니 제규어나 표범, 독수리 같은 포식동물의 주의도 끌지 않는다는 것이다. 털도 무성하여 멀리서 보면 꼭 흰개미집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은 나무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채식주의자'이며 자연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살아간다.

항상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그 세발가락나무늘보. 가끔 어떤 사람은 너무 바쁘게 살아서 문제다. 그가 바쁘면 바쁠수록 세상은 어지럽고 어수선해진다.-

 

 

 오늘 같은 날은 문득, 독일 슈투트가르트쳄버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Bach의 -골드베르그변주곡 Bwv 788-이 듣고 싶어지고, 문득 음악을 잊은지 오래됐다는 기억이 되살아나고...고요하고 서늘한 실내에 앉아..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手話로 나누며 ,적요하고 다정한 時間을 삶의 쉼표처럼 나눌 수 있게 해주던,,글렌골드가 치는 피아노연주도, 여름날의 비내리는 저녁처럼 그립고요.

 같은 곡의 音樂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다 다르고, 그것은 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내면이나 삶의 지향, 테크닉에 따라 다 달라서 이겠지요.  -양들의 침묵-, OST에 나오는 안소니 망길라의 골드베르그변주곡은 제게 왠지 밋밋한 느낌이 들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은 연주자들이 연주한 곡으로는, 역시 Bach의 무반주첼로조곡이겠고..1악장의 -프롤류드-가 갑자기 듣고 싶네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파블로카잘스의 장중하고 심오한 연주, 엄격하고 적요한 피에르 푸르니에의 연주, 화려하고 세련된 미사 마이스키의 연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요요마의 연주等等..音樂을 食糧처럼 들었던..수많은 時間들이, 지금 이 時間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악수를 請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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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아침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에서

 

   흙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난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수한 언어의 숨결을 쏟아 붓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자리

 

   언제나 비어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곽재구, <참 맑은 물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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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영신(送舊迎新)


               내 가슴에
               손가락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못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비를 뿌리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평생 그들을 미워하며 사는 일이 괴로웠으나
               이제는 내 가슴에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 정호승의《내 가슴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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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궁금한 이야기Y'라는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보았는데 거기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베르너증후군(조로증)을 앓고 있는 57세의 장인철이라는 분의 이야기다. 베르너증후군은 남들의 하루가 그에게는 3일만큼 노화돼 가고 있는 병인데 23kg의 체중과 시력도 청력도 거의 다 되어가고 있다. 치아도 하나도 없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장인철씨가 정육점에 가서 한우 3만원어치를 산다. 처음 사보는 고기라고 웃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어느 할머님댁엘 가서 고기를 구워 잡수시라고 전해드리고 냉골인 방바닥을 보고 또 기름차를 불러 23만 5천원어치의 기름을 넣어 드린다. 이제 그에게 남은 전 재산은 79만원이다. 그 남은 돈을 가지고 첫번째로 한 일은 낡고 시끄러워 윗집에도 아래집에도 소음 피해를 주었던 세탁기를 새로 바꾸고, 십여 년간 신세만 진 이웃 친구들에게 밥을 사며 8만원을 쓰고 자신을 위해서 생전 처음으로 양복을 사 입는데 20만원을 10만원으로 깎아줘서 10만원을 썼다. 그리고 여직껏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 어머니를 40년만에 뵈러 요양원으로 갔다.그리웠던 어머니를 뵙고 나머지 돈을 어머니께 다 드리고 돌아왔다. 며칠후 다시 찾아간 장인철씨에겐 다시 200여만의 돈이 통장에 들어있다. 장인철씨의 버킷리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후원자들이 보내 온 성금이라 한다. 그는 또 그 돈을 들고 다시 나선다. 부모 없이 두 형제만 살고 있는 소년들의 집으로 가서 " 자 나가자"하며 쇼핑몰에 데려가 옷과 게임기를 사주며 그들의 산타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디선가 살고 있는 그들의 어머니를 많이 생각하라고 다독여 주었다. 원망보다는 그리움으로 절망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일이 나에게 힘이 됨을 가르쳐 주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손가정을 찾아가 4살짜리 손녀에게 새옷을 입혀주고 나머지 돈은 할머니께 드리고 나오는데 그집 할머님이 없는 찬이라도 밥 먹고 가라고 그를 불러 앉혔다. 40년 동안 늘 혼자 밥상을 앞에 두고 밥을 먹었던 인철씨에겐 누구와 함께 밥상을 한 일은 처음이라 했다. 이제 돈을 다 써서 어떡할 거냐는 질문에 "나는 밥만 먹고 이렇게 살면 되니까 괜찮다"고 환히 웃었다. 그의 살 날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저 나눔의 미담일지도 모르지만 평생을 홀로 고통과 소외속에서 살았던 그 분의 이런 마지막 나눔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 모든 것을 다 나누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것도 물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우한 삶에서. 그래서 삶은 어쩌면 둥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둥글게 둥글게~둥글게 둥글게~우리 함께 손을 잡고 모두 모여서. 그래서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구나. 작은 이야기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던 프로그램이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올 한해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잘 만큼 잤었고 먹을 만큼 먹었고 읽고싶을 만큼 읽었고 꼭 해야할 만큼 했으며 꼭 만나고 싶을 만큼 만났었다. 한 마디로 본능대로 살았던 것이다. 아쉽지만 사실이다.

 오늘 장인철씨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나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일까 생각이 든다.

 2008년에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만이 나왔던 영화 '버킷리스트'나 올 여름 김선아가 나왔던'여인의 향기'라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버킷리스트가 많았던 것 같은데 내겐 그리 많진 않은 것 같다.

 천성이 나무늘보여서 그리 새롭고 먼 길을 가보고 싶지도 않고 꼭 해보고 싶은 일도 그리 많지 않고 그렇다고 새롭게 되고 싶은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참 이렇게 쓰다 보니 정말 비생산적인 인간이자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임에는 분명한데 어쩔 수 없다. 그냥 생긴대로 살아가야지.

 그래도 굳이 생각을 해보니 몇 가지가 있긴 하다. 첫 번째는, 글을 깨우치고 부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쭈욱 이대로 책이랑 즐겁게 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쩌다 있는 강의를 마치고 색연필로 밑줄 친 원고를 교환하는 떨리는 기쁨을 나누는 F.S와 Y ,H와 여행을 다녀 오는 일이다. 오랜 시간을 영혼으로 만났지만 함께 여행을 가 본 적은 없네. 사람이 풍경이 되지 않는 어느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흰 포말과 시시각각 변해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밤새 소주를 마시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쓸쓸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지막 친구가 되는 일이다. 정말 희망사항이지만 마지막 소망은 꼭 이루어 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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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변화


자기 삶의 궤적이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바람직한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 위지안의《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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