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인터뷰하다
이동준 글.사진 / 웅진윙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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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선수選手가 '진짜 연애'를 원하는 여자들에게 던지는 솔직한 메시지 !  
 
이 책은 진정한 선수選手 가 쓴 책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자 바꿔치기'를 밥 먹듯, 플레이 스테이션 한판하듯 스포츠로 여기는 족속들, 자칭 픽업 아티스트Pick-up Aetist 로 미화시키며 대단한 듯 여기는 '속빈 꽃마차',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업의 달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연애경험이 풍부한 사람의 선수選手 를 말하는 것이다. 연애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매 번 뜨겁게 사랑했다면 그런 경험이 많다면 그(녀)는 연애경험이 풍부한 것이고, 그(녀)는 선수選手라 불릴 것이다. '가려서 손대는 사람'이라고 한자로 풀어본다면, 연애박사를 부르는 이름으로는 참 제격이다 싶다.
 
다시 말하자. 이 책의 저자는 남자이고 진정한 선수選手다.
많은 연애경험과 특이한 이력으로 홍대앞 사람이 된 때문에 많은 여성들의 연애상담을 듣게 되었고, 그 기억들이 쌓이게 되어 이 책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에게 자신의 연애에 대해 고백한 여성들은 저자를 '아줌마 보듯' 했다는 대목을 들어보면, 그리고 저마다 다른 성격의 다른 케이스의 연애담에 대해 명쾌하게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읽다 보면 보통 남자들이 갖지 못하는 그의 선수選手적 아우라를 느끼게 된다. '열린 귀를 가지고 끝까지 잘 듣기, 그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명쾌하게 대답 잘하기'.그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연애잘하기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실연에 빠졌거나, 연애를 하지 못해 고민하거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여성들의 고백을 내용으로 본다면 이 책은 필경 '슬프디 슬픈' 책이어야 겠지만, 저자는 아줌마 답게 각 사연마다 그녀가 진정한 연애를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조연해 주고 있다. 그는 여자들이 심심하다고, 연애하고 싶다고 입에 달고 살지만 정말 외롭고 쓸쓸한 게 뭔지는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고, 에고Ego 가 너무 강해서 온전하게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 자신도 모르는 마음의 장막을 쳐놓고 누군가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경우도 수없이 보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너무 '잘난 여자'여서 남자가 없다고 말하는 여자에게는 '남자들은 잘난 여자가 아니라 잘나기만 한 여자를 싫어한다'고 말하며 겸손함을 갖추라고 충고하고, 남자친구없어도 아쉬운게 없다는 여자에게는 '외롭지 않다는 생각은 착각이며 연애를 해봐야 정말 외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나를 사랑하긴 하나요?'라고 조급증에 걸린 여자에게는 '다그치지 마라. 사랑안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 사랑도 속도조절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또한 소심해서 사랑을 먼저 고백하지 못하는 여자에게는 '"당신을 사랑했어요"라고 과거형으로 고백한다면 남자가 그녀를 눈여겨보기 시작할 것'이라고 남자만이 대답할 수 있는 속시원한 대답들을 거침없이 토해 낸다.
 
남성인 내가 '여성의 슬픈 연애담'을 귀기울인 것은 진짜 선수選手인 남자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답해준 내용을 적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는 카운셀링과 동시에 그녀들의 연애상대인 남자인 입장에서 그녀에게 답한 것이다. 남자나 여자 모두가 '알다가 모를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을 모르기보다는 서로의 '상대'를 모르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사랑에 아프고, 목말라 있는 나 자신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는 여성들을 통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여성성女性性'을 알게 되었고, 나 자신도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인가?'하는 고민도 하게 되었다.
 
사랑에 고민하는 여성이라면, 혹은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터뷰한 여성들 속에 자신이 들어있을테니까. 그리고 여자의 속마음을 몰라 고민하는 남성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와 다른 성性의 사람들의 속마음들이 진솔하게 들어있으니까. 책을 덮으면서 한가지 생각한 것은 이 책과 정반대의 상황, 다시 말해서 연애경험이 풍부한 여자 선수選手가 남자들의 아픈 사랑이야기를 카운셀링한 책이 나온다면 반갑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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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응원가 - 어머니 머릿속에 지우개가 생겼습니다
나관호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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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갚지 못할 빚진 자가 부르는 아름다운 응원가 !
 
영국문화협회는 창설 70주년을 기념해 흥미로운 조사를 했다. 102개의 비영어권 국가를 대상으로 4만여 명에게 70개의 단어를 제시하고는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골라 보라고 한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어떤 영어 단어를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했을지가 궁금했던 모양인데, 조사결과 4위인 사랑Love, 3위인 미소Smile, 2위 열정Passion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뽑힌 영어단어는 바로 어머니Mother였다고 한다.
 
이 책은 어머니에 관한 책이다. 그냥 평범한 어머니가 아닌 이제 막 머리속에 지우개를 키우게 되신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못된 '머리속 지우개'를 위해 싸워서 이기기 위해 응원가를 부르는 착한 자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머리속 지우개'. 어느 영화의 이름처럼 위로 자식 넷을 잃고 다섯째로 아들을 낳아 유독 '내 배로 낳은 아들'을 강조하셨던 팔순의 어머니에게 찾아온 '치매'를 아들은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글 곳곳에서 '나도 건망증이 있는데...'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증세에 대해 '차라리 오진했기를 바라는 마음'이 발견된다. 그리고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억은 병 중에서도 늘 한결같이 기억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의 가슴속에 심겨 있는 깊은 사랑과 감동은 무너진 뇌세포도, 병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자인 아들은 '빚진 자가 드리는 손길'이라는 제목의 응원가를 부르기로 마음먹는다.
 
어머니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일어나는 '지우개' 상황에 대해 소설식으로 풀어나가는데, 이해와 사랑 그리고 감동으로 어머니를 지켜보는 저자의 눈길이 참으로 아름답다. 제일 사랑했던 나의 어머니의 변화를 지켜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거의 하루를 함께 지낸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렵고 두려운 일일텐데, 아마도 지켜보는 나의 괴로움이 커서는 아닐까 싶다. 하지만 자신의 발을 씻겨주는 아들을 보며 '어릴 땐 내가 우리 아들 발을 씻어주었는데, 이제 돌려받네?'라고 말씀하신 어머니의 말씀처럼 핏덩이 때부터 철모르고 자라, 세상물정 모르는 자식을 평생 지켜본 것처럼 점점 어려져만 가는 것 같은 어머니를 지켜보며 함께 함은 그 어떤 이유도 댈 수 없는 당연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간병인으로써 자신의 개인적 괴로움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임에도 가족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지켜보면서 '무공해 상표를 달고 배달되는 감동 샘물'이라 말하고, 그에 맞는 섬김을 보여준다. 그래서 가족간의 갈등보다는 서로 위로하고 화합하여 '지우개'가 어머니 머릿속을 더 지우지 못하다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의 막간에 '지우개'증세에 효과가 있는 방법, 환자의 불안증을 없애는 방법, 유머를 만드는 방법등을 숨겨두어 독자중에 있을 지 모르는 40만 명의 환자와 140만명의 환자가족들을 배려하여 자신의 응원가가 그들에게도 힘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는 나에게 환자를 보는 시각을 바꿔주었다. 바쁘고 소중한 나 속에 있는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쳐 내 속을 채워준 '환자'를 봐야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아픈 어머니를 지켜보는 것은 천형天刑같은 고통이 아니라 조금 더 수고로워진 또 다른 삶의 과정임을 알려주었다. 이제 막 예순을 넘기신 어머니의 앞날을 생각하게 해주었고, 항상 곁에 있고, 변함없어 공기처럼 당연시했던 어머니를 다시 보게 해주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아니한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라는 성현의 말씀이 지금도 내 머리속을 맴돌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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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길을 잃어라 -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빛을 향한 모험과 도전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 열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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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을까 두려워 서 있지 말고, 잃었거든 새로운 세상을 즐겨라 !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에 떠오른 곡이 하나 있더랬다. 그 곡은 'Isn't she lovely'로 1976년 발표 앨범 [Songs In The Key Of Life]에 수록된 스티비 원더의 노래인데, 그의 딸 아이샤(Aisha)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이 곡이 생각났던 이유는 사랑하는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나는 딸을 보기 위해 그동안 망설였던 개안수술을 시도하는데, 15분 정도 밖에 볼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감행하게 된다. 하지만 시신경이 너무 많이 손상되어 결국 볼 수 없게 되는데, 그는 손끝의 촉각으로, 그리고 심장의 뜨거움으로 누구보다 뛰어난 청력으로 그의 딸을 보듯 느끼면서 노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실화소설의 주인공, 마이크 메이 역시 기꺼이 길을 잃어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세상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눈을 뜨게 되는 감동적인 드라마다.
 
3살난 아이 마이크 메이는 하얀가루가 들어있는 유리단지를 물에 넣었다가 불이 붙고, 폭발하여 어린아이의 몸에 500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하게 되는데, 그때 눈을 잃게 된다. 문제의 하얀가루는 탄화칼슘이고, 이것은 물에 닿는 순간 폭발성이 강한 아세틸렌가스를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이었던 사실을 어린 꼬마는 몰랐던 것이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메이는 모험심이 강한 어머니 오리 진의 보살핌으로 자라나 세상을 탐험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인 삶을 살면서 활동이 제한적일수 밖에 없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대학까지 다니게 된다.
 
훌륭한 아내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GPS를 만드는 회사의 대표로 활동하던 중 안과의사 굿맨을 만나게 되고 줄기세포 이식 방법으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될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처음에 그는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일과 가정을 포함한 지금의 삶에 전혀 문제가 없이 행복하게 살던 그는 '세상을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수술후 복용해야 하는 약물로 인해 간 기능 저하, 신장 기능 저하, 혈압 상승, 콜레스테롤 증가, 떨림, 구토, 탈모, 식욕감퇴, 감염 퇴치 능력 저하 등의 부작용과 마지막으로 암 발생률이 증가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한층 더 수술에 대한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그리고 앞을 못 보던 사람이 이제껏 없었던 감각이 생겼을 때의 혼란함과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작은 행복감마저 잃게 될까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으로 알고 있는 세상이 진짜 모습은 어떨지에 대한 호기심,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내 아내와 아이들은...' 등 그를 더욱 자극하는 것은 호기심이었다. 앞을 보게 된다는 것 한가지 이유가 하지 말아야 할 그 많은 이유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느껴진 그는 '모험하라','호기심에 답하라','기꺼이 넘어지고 길을 잃어라','길은 항상 있다'는 10대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열렸던 캠프의 지도교사였을 때 아이들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수술을 감행하게 된다. 수술 이후에 맞이하게된 또 다른 낯선 세상속의 메이, 그리고 그 속에서 엄청난 시련들과 부딪히면서도 절대로 포기하기 않고 절망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세상이 놀라는 '기적'을 이루게 된다.  
 
이 책이 주는 가르침은 실로 무궁무진했다. 우리가 평범하게 맞이하는 이 세상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얼마나 두렵고 위험한 세상이 될 수 있는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들이 만지고 느끼는 사물의 세계는 실제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들이 꾸는 꿈조차도 형이상학적 개념의 이름뿐인 현상이라는 안타까움이 장애인중에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실감하게 되었다. 멀쩡한 나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세상이고, 그들도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부족한대로 행복한 가정과 삶을 꾸려나가던 메이에게 찾아온 '개안수술의 희망', 그리고 수술감행까지의 고민하는 그를 지켜보면서 이는 마치 사업, 사랑, 이직등 이른 바 '새로운 변화'를 앞에 두고 안주와 모험의 선택에 대하여  갈등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는 앞을 보게 된다면 어떨지 알게 된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이 아니겠냐고 아이들을 설득하며 수술을 결정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눈뜨게 하고 '기적'을 일으켰던 것이다. 변화의 결과보다는 변화하려는 용기와 또 다른 세상을 내것으로 만드는 인내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처음에는 다칠 줄 알기에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서 '타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 하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차라리 부딪히고 다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알고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보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공간감각능력조차 없어 사람도 구별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보지는 못하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것처럼.
 
지금도 그는 자신이 보이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내가 보지 못했기에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을 모르기에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숲 속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것이다. 두렵고 불안하지만 '조금씩 알아가는 그 길'은 그의 평생을 두고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는 길일 것이다. 그의 모험에 가득찬 용기와 꿈을 향한 인내를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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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의 흡연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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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단면을 고소하고 위트있게 꾸며낸 맛깔난 이야기 책!
 
대학시절 내가 무척 따랐던 선배가 있었다. 
사 년이나 위인 그 선배는 까마득한 저하늘의 태양같이 높아서 눈도 함부로 맞출 수 없던 존재이지만(80년대 말 대학은, 특히 남자들로 득시글한 우리과는 그렇게 살벌했다. 무시무시한 군부정권 만큼이나..) 함께 운동을 했던터라 터울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학번은 세 학번 차이지만 실제나이는 일곱 살이나 많은 '노老학생'이었던 그는 이제 막 청년이 된 내게는 캠퍼스티를 입은 중늙은이로 비춰져 은근히 함께하기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알 순 없지만 대단한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그 선배는 항상 주머니가 넉넉해서 함께 하면 늘 밥과 술을 자신이 도맡아 내는 덕에 그를 쫓아다니는 후배들이 예닐곱 명은 족히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남들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질투일 뿐 그에게는 넉넉한 주머니 사정보다 훨씬 더 넉넉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등진 채 학력고사 점수높이기에 급급했던 무지랭이 새내기에게는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같은 이야기에 낮밤을 잊고 듣고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미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대학도 세번 째로 옮긴 그의 이력만큼이나 세상을 보는 눈은 트여 있었고, 사회경험에 목말라하는 중생들에게는 모세와 같은 존재였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로 사회와 정부를 꼬집는 소재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빠질 수 없는 음담패설도 한 몫을 했다. 학기중에 '자체방학'이라는 명목아래 덜컹대는 중고차를 타고 7박 8일로 여행을 떠나거나, 물때가 좋을 땐 언제나 밤낚시여행을 떠나곤 했다. 웃음 뒤에 남겨진 질문과 고민은 내게 숙제로 남겨졌고,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 답을 찾곤 했다. 그 선배에게서 나는 사회를 알았고, 남자를 알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여자도 알게 되었다.
 
소설 <유이화>를 통해 알게된 작가 조두진의 책 <마라토너의 흡연>을 읽으면서 그 선배를 떠올리게 된 건 일곱 편의 단편소설 모두 술 한잔 놓고 밤새워 낄낄대며 장단맞춰 듣던 선배의 맛깔나는 이야기들을 닮았기 때문이다. 정년을 앞둔 형사의 난감한 상황을 그린 [7번 국도]도 그렇고,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강조하다가 결국 어처구니 없는 상황극이 연출되는 [족제비 재판]이 그렇고, 제아무리 선비라도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힘쎈 남자' 신드롬에 낚여버린 사나이의 이야기 [정력가]가 그렇다. "술먹으면 모두가 '개'가 된다"고 했던가? 술집에 모인 정형외과와 성형외과, 그리고 피부과 친구의 손톱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에서 병원 밖을 나온 '별 수 없는 인간'의 군상이야기까지 ... 사회에서 저마다 '제 자리'를 박고 있는 사람들의 애환을 재미있게 꾸며놓았다.
 
가장 재미있게 본 소설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마라토너의 흡연]인데, 카오스 자체인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을 가진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반해 버렸다. 자신의 삶에 대해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나름의 교훈을 얻었는데, 그 반전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세월은 훌쩍 지나 나는 그때 그선배의 나이보다 열살은 너 먹었다. 꾸준히 만나던 선배와도 연락이 끊긴 지 벌써 여섯 해를 지나는가보다. 얼마전에 읽은 <완득이>가 청소년을 위한 우리 작가의 성장소설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고단한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을 위해 해학과 독설를 갖춘 어른을 위한 소설이라고 보겠다. 소설가는 세상의 거울이다. 아니 빽미러다. 목표를 향해 무표정하게 앞만 보며 달리는 우리에게 소설가들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살필 수 있는 그림을 던져준다. 우리에게 웃음을 더져주고, 안심을 시켜준다. 그리고 큰 기침을 하고 다시 앞을 볼 수 있는 여유를 던져준다. 이 소설은 내게 잠시 휴식을 주었고, 웃음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배움을 던져주었다. 이십 년 전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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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인간학 - 다스리지 않고 다스리다
렁청진 지음, 김태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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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慈愛와 인내忍耐로 더 큰 세상을 휘어잡아라!
 
" 세상사에 밝으면 그것이 곧 학문이고, 인정에 정통하면 훌륭한 글이다,"라는 중국의 속담처럼 중국은 서양의 도덕이성이 근거로 삼는 현실성 없는 인식과 가치의 경향은 배제하고 실용이성의 가치 관념으로 가치관을 정했다. 그러한 가치관이 지략형 문화를 낳았고 그 지략형 문화의 사유방식이 경험성과 민첩성, 그리고 실용성이 있다는 점으로 중국 민족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 민족의 성격적 특징을 결정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지략 문화는 중화 민족의 실사구시적 성격과 심리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공허함과 존재하지 않는 귀신을 숭상하지 않으며 극단으로 나가지 않고 두 발로 사는 기질을 갖게 했다.
 
치인治人을 목적으로 한 지략형 사유방식이 긍정적이지많은 않은 것은 결국 중국인들이 천성적으로 모두 정치인이 되는 결과를 낳았고, 모략가가 전통문화의 정수가 되어버렸다. 더욱 심각한 것은 모략과 계산이 기나긴 역사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처세의 태도와 인생관이 술術이 아니라 도道, 즉 처세 철학이자 문화정신이 된 것이다.
 
오늘날의 중국을 살펴보면 등소평의 선부론先富論을 계기로 받아들여진 자본주의의 수입이 짧은 역사동안에 실용적인 측면만이 확대되어 빈부간 격차심화,물질만능주의 팽배등 부작용이 극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들의 사상에 대한 흡수의 태도가 그 이전부터 실사구시만을 추구해 왔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유가 인간학'에 이어 '도가 인간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그들에게는 뿌리깊은 고민일 수 있는 중국인들의 '사상에 대한 실사구시적 수용태도'를 배우고자 함에 있다. 중국이 그것에 너무 깊이 빠져 있다면, 대한민국의 나는 명분과 체면에 너무 얽매여 '나다운 처세'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모르기 때문에 배우고 싶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른다.
 
도가道家의 핵심은 황노 도술마음과 지혜로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인데, 천지만물은 드러나지 않는 도道에의 해 지배되므로 천지만물과 길흉화복의 변화를 똑바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득도得道에 있다는 것이다. 도가의 정책은 '우민 정책'인데, 부드러움으로 강인함을 이기고, 지혜로움을 우둔함으로 여김으로써 다스리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인은 자신을 위에 두지만 남보다 앞에 있게 되고, 자신의 몸을 밖에 두려 하지만 오히려 안에 있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저절로 이익이 생기는 것이며 사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하늘이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고, 무엇인가를 차지하려 애쓰지 않기 때문에 저절로 큰 천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것은 깊이 생각해 보면 결코 욕망이 없거나,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더 큰 사익을 얻기 위함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도가에서는 자慈와 인忍을 강조했는데, 세상의 변화와 법칙을 통찰한 자의 인내를 바탕으로한 자애를 강조한 것이다. 이 자애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자애로움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이해관계나 원칙이 없는 사랑의 형태인데, '고객을 대할 때 한 살배기 어린 아기를 보듯 하거나, 백 살을 사신 노인을 보듯 하라. 그러면 그들에게 칭송을 받을 것이고,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라는 어느 세일즈왕의 말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었다.
 
'이미 안 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자'에게 대하는 자애로움과 사랑이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마케터들'이 한번 쯤 고려해볼 만한 마케팅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가의 정신을 바탕으로한 수많은 실존 사례들이 가득히 담겨져 있어 case by case로 나의 비즈니스 생활과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중국의 '지략 문화'가 나에게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귄위나 명성, 재산의 존속여부를 떠나 목숨을 건 처세들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수하에 있는 문무백관과 신하들을 생각할 때는 과거 중국 CEO들의 지혜와 처세의 경합들이 이야기로 풀어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가치있는 책으로 만드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말처럼 고전이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저다마 다른 이유에서 그 답을 무궁무진하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의미를 두고 본다면 쉽게 다가올 책. 고전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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