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제국 3부작 2
안토니오 네그리 외 지음, 조정환 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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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집단 [제국]을 맞설 힘은 [다중 Multitude]뿐이다!
 
냉전시대엔 우리편, 너네편으로 피아彼我구분이 확실하더니 이젠 누가 우리편인지 오늘은 '어느 적과 동침을 하는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는 내전이 끊이질 않고, 자고 일어나면 주변 나라 아니 지구촌 반대의 기침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복잡다난한 세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세상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이젠 웬만한 폭탄테러는 성에도 차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되어버린 것인가?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문외한인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세계적 양상이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으로 대변되고 이것은 '우리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어 불안감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 다중Multitude 도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부제 속 [제국]의 개념을 먼저 알아야했다.
안토니오 네그리가 2000년에 낸 책 [제국]의 속편이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제국]의 의미는 19세기의 제국주의와 구별된다. 이 개념은 초강대국의 개념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연결된 정치,경제,군사의 지배 네트워크를 말하는데, 선진제국의 정치,군사,산업복합체들 예를 들어 IMF,세계은행등과 EU,WTO등이다. 이들은 오늘날 그 어떤 개별국보다 강력해서 지구촌 가족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네트워크 권력은 '제국적'이지만, '제국주의적'이지 않고, 그 네트워크의 구성원에게 부여된 권력 또한 평등하지 못하다. 이는 최강대국인 미국조차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며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전지구적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대해  이 책이 말하는 [다중]은 인종, 민족, 지역, 성별을 포괄하는 자유주의적 계급 개념으로 다수라는 점에서 하나인 민중과 구별되고, 모든 임금노동자인 노동계급과는 개장적이고 포함적인 개념이라는데서 다중과 구별된다.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다중은 전지구적인 네트워크와 분산된 개방성을 지닌 현대의 거대한 계급이라고 말하고 최근의 인터넷과 같은 분산된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웹의 연결 그리고 새로운 관계의 추가가 가능하다는데 다중의 최초의 이미지나 최초의 모델로 훌륭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상황과 전지구적 갈등상태들 속에서 이들이 우리의 정치, 그리고 주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구성을 전쟁, 다중, 민주주의로 나누었다. 
 
전쟁에서는 냉전을 종식시키고 지구촌 보안관을 자칭하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자행하는 극단적 비대칭상황을 세계는 인정하거나 그것을 통해 불안요소의 제거에 대한 희망마저 품게 되는 것에 문제를 삼았다. 제국에 항거하는 국가가 아닌 보이지 않는 조직(테러집단, 조직등)에 의해 자행되는 갈등은 국가간의 전쟁상황이 아니라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게릴라전으로 자행되고 있으며, 빈도수에 있어서 그리고 목표에 있어서 불특정다수와 장소를 겨냥하고 있어, 마치 월남전상황에서의 밀림속 베트콩에 당하는 미국과 연합군처럼 긴장을 놓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전쟁상황이 세계가 자국과 자국민도 피해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함으로 한편으로는 비난을, 다른 한편으로는 조기종식의 희망을 갖게 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다중에서는 제국이 바라보는 시각처럼 민중처럼 동일성을 띠지도, 대중처럼 획일성을 갖지도 않다고 말하며 저자는 삶정치라는 인터넷을 기반으로한 복합적 네트워크로 정치,경제,문화,사회적 힘을 연계시켜 통합해 가고 있으며, 제국이 통제가 강화될수록 그 힘은 더욱 커져 결국은 제국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자가 이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구의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를 제안하는 민주주의에서 네그리는 다중이 지닌 다수성과 차이성을 인정하는 '다중의 절대적 민주주의'가 제국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다중의 민주주의 형태가 잘 진행되고 있는 예로 한국을 들고 있다. 저자는 전 인류가 말이 아닌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 다중속에 깃들어 있는 차이를 사랑으로 극복하고, 그것을 서로 인정할 때 새로운 다중의 민주주의로 거듭날 수 있음을 말한다.
 
저자가 던지는 시선을 통해 국내정세가 아니라 지구촌 정세임을, 그리고 국외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상황은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참여하는 당연한 지구촌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전지구적 통합을 향한 시각이 트였다고 해야 할까? 명저가 그 자체를 힘을 지니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던지게 한다는 데에 있다. 전작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시대적 요구에 의해 [다중]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바뀌어야 함을 강조하는 저자에게서 무거운 힘을 느끼게 된다. 다중의 민주주의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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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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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눈과 귀를 막고 글쓰고 있을 수많은 고스트The ghost 에게 바치고 싶은 소설!
 
이 책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다름아닌 제목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 에 있었다. 유명인의 자서전을 대신 써주는 대필代筆작가의 이야기. 이점에 흥미를 느꼈다. 출판서가 회고록을 의뢰할 만큼 성공했던, 훌륭했던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무슨 때만 되면 자신이 직접 돈을 내어 자화자찬하는 짓을 서슴치 않은 우리나라의 몇몇 정치꾼들은 이 범위에는 없다)을 만나 그를 인터뷰하고, 오랫동한 함께 만나면서 세상에 알려졌던 그와는 다른 '진면목'의 모습을 보는 작가가 느끼는 고뇌는 한번쯤 상상했던 바이고, 충분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꺼리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2천년 전 폼페이 최후를 완벽하게 재현한 [폼페이]의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또 하나 주목한 점은 히스토리 팩션으로 유명한 그가 '현재'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는 점인데, 소재의 고갈인지, 아니면 뉴스와 정치면의 칼럼니스트의 전직을 살려 현대 정치비화쪽으로 전환을 시도해 군사지식 마니아인 톰 클렌시나 환타지 호러의 스티븐 킹처럼 정치전문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하려는 것인지도 점치고 싶었다. 그리고 흥미 이상의 소득을 얻었다. 
 
어느 록가수의 자서전을 대필한 것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 세계에서는 알려진 대필소설가 '나'는 이미 은퇴했지만 아직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국의 전총리의 회고록의 대필을 제의 받는다. 회고록의 출간을 두고 화려한 재기를 꿈꾸는 노정치인과 유명인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세상에 알려 대박을 거머쥐려는 출판사측의 동의는 거액의 대필금액으로 급하게 조달한 대필작가 '나'를 찾게 되고 "자네는 누구인가?" "저는 각하의 유령입니다."라는 첫인사로 그들을 만나게 한다.  영국을 떠나 미국의 어느 외딴 섬에서 겪는 정치거물의 본모습과 신기한 주변인물들, 그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 무엇보다 그를 궁금하게 했던 선임대필작가의 의문스러운 죽음은 '거액제의'만 아니었으면 하지 말았어야 했음을 계속 후회하게 만든다. 그러던 중 자살처리된 선임대필가 마이클 맥아라가 대필을 하던 방에서 기거하게 된 '나'는 우연히 그가 남긴 가방에서 '단서'들을 찾게 되고, 그가 알고자 했던 '알아서는 안될'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하게 된다.
 
이런 일은 유령 세계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해결책도 뻔하다. 고객의 의도대로 불일치를 그려주고 판단 또한 그들에게 맡겨라. 유령 작가의 책임은 절대 진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미용사가 고객의 얼굴을 보고 두꺼비 껍질 같다고 하지 않듯이, 유령 역시 고객의 소중한 기억 태반이 사기라고 들이댈 수는 없다. 우리는 집필하지 않는다. 다만 집필을 도와줄 뿐이다.
 
석연치 않은 전총리 애덤 랭의 이야기에 '숨겨진 진실에 대한 갈증'에 대해 '나'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려 하지만 '호기심'에 대한 인간의 욕망으로 '유령'으로서의 나를 망각하게 되고, 급기야는 알고 난 이후의 자신을 '후회'하게 되면서 사건은 점점 막바지에 이르게 된다. 전총리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과 속속들이 밝혀지는 그의 과거, 그리고 서서히 풀리는 미국과 영국간에 숨어있는 정치적 비밀들은 정치 컬럼니스트 출신의 작가인 그만이 엮어낼 수 있는 멋들어진 정치스릴러임을 느끼게 한다.
 
나는 내가 아니다.
그대 역시 그도 그녀도 아니며
그들은 그들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 역시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그 옛날 놀이문화가 없던 원시시대부터 남자들이 먹잇감을 가져와 사냥스토리와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영웅담'으로 엮어 동굴속 가족들에게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를 해주면서 였으리라. 그렇게 본다면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을 언어의 힘(Homo loquens)으로 즐겁게(Homo Ludens) 해주는 슬기로운 인간(Homo sapiens sapiens)이 바로 언어의 마법사인 소설가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해야 할 일을 잊고, 시간을 잊게 만들며 내눈을 사로잡은 소설이었다. 책과 작가 그리고 출판계에 관심이 많거나,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은 소설애호가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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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의 스캔들 1
필리파 그레고리 지음, 허윤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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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 있다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소설!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내용의 책을 만나면 꼭 읽는 편이다. 그 이유는 영화의 요소가 되는 스토리, 영상미, 그리고 흥행을 만족시킬 만큼 훌륭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시드니 셀던' , '스티븐 킹' , '마이클 클라이튼' , '존 그리샴'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들이 베스트셀러이면서 거의 '영화화'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보겠다. 물론 반대로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감동을 이어가기 위해 원작인 '소설'을 찾아 읽는 경우도 많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즈 One Source-Multi Use 라고 하는데, 그만큼 이야기로 대변되는 '컨텐츠'의 힘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하겠다. 이 책 <천일의 스캔들>을 읽게 된 이유도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가 개봉을 하고 있고,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영국의 왕비이야기가 소설로 화제를 안고 있어 읽게 되었다.
 
뉴욕타임즈가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지난 1,000 년 동안 최대의 스캔들로 선정하기도 했던 이 소설이 흔한 <러브스토리>와 차별을 두는 것은 주인공들의 파란만장한 이력 때문이다. 형 아서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왕권과 함께 형수인 연상의 캐서린을 왕비로 맞이하면서 헨리 8세는 경제력때문에 형수를 아내로 맞은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자책감으로 사로잡히는데, 왕비인 캐서린은 헨리8세와의 사이에서 유산을 하거나, 태어난 지 얼마 안되 죽게 되자, 그의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 한편 경제적인 빈곤으로 고민하고 있던 불린 가家는 왕의 처지를 알려준 외숙부의 지휘아래 '왕과의 결혼'을 위해 세 남매를 희생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메리가 결혼한 몸으로 왕의 정부가 되거나,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결혼이 어긋나는 앤,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문을 위한 희생물이 되어 정략결혼을 하게 되는 오빠 조지 세 사람은 그들이 갖게 되는 첫사랑에 대한 믿음에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가문을 위한 도구로 전락되어 서로가 시녀가 되거나, 연적이 되는데 튜더Tudor 왕조때의 실태가 여과없이 밝혀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버림받은 왕비 캐서린의 시녀로 있으면서 그녀를 존경하면서 사랑하게 되고, 성으로 돌아와서는 시골에 남겨둔 아이들을 보는 낙으로 일 년을 버티는 사랑이 충만한 메리는 왕의 정부가 되어 이혼하지 못한 남편을 지척에 두고 함께 살아가면서, 변하지 않으리라는 자신의 사랑이 왕에게로 옮겨지게 되지만, 출산까지 왕을 보필하지 못하는 사이 왕을 즐겁게 해 줄 대타로 언니 앤을 내세우는 집안과 본색을 드러내는 언니를 지켜보면서 왕궁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낀다. 한편 프랑스왕비의 시녀로 있으면서 부귀영화에 대한 욕망이 커질대로 커진 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왕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의 허망한 성공의 결말 또한 연민을 느끼게 했다.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인 왕. 그 자리가 높고, 위대했던 만큼 그와 함께 영예를 누리려고 인간들이 암투를 벌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왕조를 지키기 위해 도덕은 물론이고 종교까지도 눈감아버리는 그들의 집착을 지켜보면서 '권력의 힘'이 얼마나 인간의 눈을 멀게 하는지 짐작하게 했다. 왕에게 내쳐지는 캐서린 왕비가 영국의 다이애나 비와 자꾸만 오버랩이 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과거의 것만이 아니라 요즘 남녀가 만나서 그 사람의 진정성보다는 재력이나 학력등의 배경을 보거나, 사랑없는 결혼을 하는 우리들 현대인의 '물질선호주의식 사랑법'과도 그 모양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고 느껴져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두 권을 합해 900여 페이지를 자랑할 만큼 사건도 많고, 그 속에 숨은 인간의 자화상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일단 손에 들면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만드는 탄탄한 스토리와 영상이 눈에 보이는 듯 세밀한 묘사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어제 영화도 보게 되었다. 내가 느낀 감흥을 영화에서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기대만큼 훌륭한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려거든 먼저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려면 왜 이들의 사랑이야기를 1,000 년중 최대의 스캔들이라고 이야기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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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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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용서 그리고 새로운 출발' 자연이 현대인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왜 산을 오르냐는 세인의 말에 "산이 거기에 있어 간다"는 어느 산악인의 말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대답에 대한 '선문답禪問答'이다. 인간이 끊임없는 전인미답의 야생을 찾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마도 '사는 것이 이게 아닌데...'라고 느끼면서도 관계의 얽힘에 이끌려 하루 하루를 보내는 현대인들이 한치 앞을 알 수 없어 두렵도록 거대한 야생을 헤치면서 자신속에 숨어 있는 '살아야하는 답'을 구하기 위해 찾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살아오면서 풀지 못한 '미망未忘'을 준엄한 자연에 고백하고 털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많은 최고봉을 올랐던 어느 산악인은 인터뷰에서 '자연을 정복한 최고의 인간'이라는 소개에 당치 않는 소리라고 말하며 '준엄한 자연을 어떻게 정복할 수 있는가? 내가 오르도록 자리를 허許해준 자연에 감사히 생각하며 오를 뿐'이라며 '올랐던 산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오르기 싫은 무서운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의 가족에게는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이 생生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떠난다. 그런 것처럼 '상민'은 고단한 삶을 등지고 산에 올랐고, '영교'는 이미 '채권자를 찌름'으로써 사회와 안녕을 하고 형을 따랐다. 그들은 문명으로 대변되는 장비와 식량을 최소화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자연을 마주 대했다. 끝이 없는 크레바스와 쏟아지는 눈사태, 그리고 살을 에는 눈보라 속에서 고통받으며 '왜'라고 외치며 자연에게 답을 구했다. 알 수 없기에 미쳤다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은 단지 애태우며 둘을 지켜본 '캠프지기'는 저자이고, 또 독자인 나였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가슴 뜨거운 무엇을 느끼게 되었다.
 
최고봉을 오르거나 극지를 탐험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지구상에 인간의 발자국이 안닿은 곳없다는 정복자의 자부심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구도求道'의 판타지에 덤벼드는 그들의 용기가 부러울만큼 존경스러운 때문은 아닐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노력하고 최소의 섭생과 수면으로 버텨가며 고군분투하다가 도중에 목숨을 잃거나 자연속에 하나가 되기도 하지만, 목적을 이룬후 다시 원래에 있던 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는 손발이 얼어 동상에 걸려 손가락과 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그 무모한 짓을 지켜보면서 과연 그들이 버리고 온 것은 무엇이고, 얻어온 것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이 그들에게 길을 내주었듯이 인간에게 '용서하고 화해하라'는 말을 하진 않았을까?
 
90년대까지 신문연재소설의 최고를 자랑하던 저자 박범신이 절필을 선언하고, 미래의 신문이라 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에 연재를 하게 된 작품이 이 책 <촐라체>인 것은, 촐라체 북벽을 마주했던 저자가 떨쳐내고 구하고자 했던 '나아가야 할 바'를 대신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세상에 대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을 하라는 이야기를 이 책이, 그리고 촐라체가 내게 말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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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박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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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표준'여성들이 평가하는 가지각색의 맛, 그 이름은 '연애'
 
남자들은 그렇다. 누가 먼저 묻기 전에는 자신의 연애담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 물론 물어봐주기를 바라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가벼운 녀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 자신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다고 단정짓는 경향이 있어서 선뜻 말을 꺼내기를 꺼린다. 하지만 친구는 묻지 않고, 말을 하고 싶으면 '술을 마시자'고 권하고 술의 힘을 빌린 것처럼, 아니면 '술김'에 나온 듯 그녀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도 함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녀가 좋아서 죽겠다'고 하면 '얼른 결혼하라'고 극단적인 한마디를 던져주거나, '그녀때문에 괴로워 죽겠다'고 하면 또 다른 극단적인 표현으로 '헤어지라'말한다.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질라 치면 "너 술취했냐?"고 물으니그것도 적당히 말해야 한다. 남자들의 대화는 연애담 뿐만 아니다. 고단한 직장생활과 생활을 토로할라치면 어김없이 날라오는 질문은 늘 한결같다. "너, 돈 필요하냐?"
 
대학시절 같은 한창때는 그나마 낫다.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는 알게 모르게 '책잡힐 일'이라하여 그것마저도 자주 할 수 없다. 그래서 적당한 나이의 남자들은 산을 찾는지도 모른다. 단내나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이렇게 조용히 외치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나영, 수진, 유리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 로멘틱코미디가 영화장르로는 최고고, 꽃미남 댄스그룹의 콘서트가 좋고, 웬만한 연주회는 졸리는 대한민국 '표준 여성'들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연애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소설은 지금껏 읽은 소설과는 다르다. 아니 처음인지도 모른다. 친구와의 통화나 만나서 대화하는 내용들이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고, 그들의 대화주제의 전환은 어찌나 변화무쌍하고 급반전하는지 눈이 쫓아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도 떠올리는 그녀들의 생각도 거침없이 들어있는데, '어휴, 제발 조용히좀 있어줄래?'라고 그녀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참견하지 못하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내리쓸듯 긴수염가진 남자더라, 나도.
 
여자들은 확실히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남자들과는 다르게 보고, 똑같은 일을 놓고도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극세사처럼 섬세한 저자의 심리묘사는 바로 옆에서 나영을 쳐다보는 듯 아니 나영의 머리속에서 책을 읽는 듯 했다. 세 친구와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는 남성들에게도 있는 10초짜리 가십일진대 자기일처럼 생각하고, 고민하고 대화하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의리'가 그녀들의 단어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남성인 내가 부럽기 그지 없는 것들이다.

 
아무리 요리를 못해도 사람도 한 가지쯤은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준비할 수 잇는 최상의 재료를 준비하자.
처음부터 너무 욕심내지 말자.
돌이켜보고 반성하자.
느낌, 감각, 습관,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믿자.
 
나영의 요리노트에 적은 요리에 대한 조언은 어쩌면 '연애노트'에도 꼭 적어야 할 조언이 아닐까. 요리도 잘하지만, 무엇보다 생각이 깊은 나영에게 반해버렸다. 지훈과 성우는 운이 좋은 남자고, 그들의 판단은 같은 남자가 생각해도 옳은 판단이었다. 나영이 평생 화장품을 사다 줄 남자는 누구를 선택할까?궁금하다. 그리고 그녀같은 사람이 내가 사는 이곳에도 있을지 그것이 더욱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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