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삭제판 이다 플레이
이다 글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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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이다2da 의 유치하고 발칙한 일기장을 훔쳐보다
 
3초마다 쏟아진다는 생각. 넉넉잡아 8시간의 잠자는 시간을 뺀다고 해도 57,600가지의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계산. 절반 잡아 아무 생각없이 지내는 시간을 뺀다 쳐도 28,800가지요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한다 쳐서 또 반을 나눠도 14,400가지다. 하루 종일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생각을 정리해 일기를 쓴다는 것은 애시당초 말안되는 소린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연히 '일기日記'라는 단어가 있고, 호랑이가 아니어서 가죽도 남기지 못하기에 일기를 쓴다. 그것도 아주 가끔.
 
하루를 더듬고, 다듬어 책상앞에 앉으면 커피 한 잔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고, 글 잘 써지는 펜을 찾아내어 앉았다. 잔잔하게 음악도 깔리면 좋겠다. 분위기 잡고 나니 담배 생각. 이런 저런 시간을 보내니 또 30분이 흐른다. 태양같이 많은 생각을 손이라는 돋보기로 줌인을 해서 펜에다가 초점을 맞춰 글을 태우려니 그게 영 쉽질 않다. 생각이 너무 많아 정리하고 싶어 앉은 자리가 오히려 더 소란스러워진다. 오랜만에 잡은 펜끝은 알콜중독을 의심하리만치 떨리고, 맞춤법도 의심스럽다. 궁싯거리기를 수십 분 단 세 줄로 일억 개 단어의 하루일을 정리한다. 일기를 쓴다는게 시詩를 써버렸다. 그것도 글자수만 시를 닮았다. 할 말 진짜 많았는데...
 

 
여기 부러운 여성이 한 명있다. 이다2da.
일상에서 겪은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토해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말 부러운 여성이다. 괴발개발, 삐뚤빼뚤, 엉망진창의 글씨에 종이도 뚫을 것 같은 굵은 머리카락 그리고 정리 안된 헤어스타일, 무엇보다 제대로 탄 피부색의 벗은 여자애의 그림이 한 장의 종이 위에서 종횡무진 난리를 친다.
어느 날은 드라마를 욕하고 하늘에 태클걸다가, 자신에게 울며 화내고, 달래며 웃는다. 구도도 없고, 수정도 없다. 처음 책을 접하면 드는 생각, 개판오분전開板五分前. 그 상태가 내 뇌와 닮았다.
 


 
 
다소 까칠한 듯, 소심한 듯 싸웠다는 소리보다 싸우고 싶었다고 말하고, 이겼다고 말하기 보다 이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오만가지 표정을 짓고, 황당무게한 짓을 서슴없이 치루며, 울다가 웃기를 반복한다.
낙서라고 보기에는 구상적이고, 그림이라고 보기엔 황망하다.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들이 여과없이 쏟아지는 말그대로 '무삭제' 그 자체다. 자신의 유치한 모습과 소심한 생활, 궁핍한 생각을 마구 마구 퍼붓는다.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을 의식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 그녀의 표현력이 대담하고 발칙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뭘 바랄까... 터럭지까지 보이도록 모두 벗은 그녀가 아니던가.
 

 
하지만 유치하다 말 못하고, 야하다 폄하하지 못하는 건 마치 내 머리속을 들킨 듯 며칠 전 아니면 그 이전에 나도 했던 생각들이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위안을 얻고, 공감하며 응원하게 된다. 그 증거가 7년째 운영하는 그녀의 홈피(http://www.2daplay.net)에 보내는 네티즌의 폭발적 반응이 아닐까.
 
그녀의 풍부한 표현력과 끝이 없어보이는 상상력이 부럽기만 하다. 프리다의 작품을 닮은 그녀의 그림과 소산물들이 아직 할 말이 한참 남았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이다가 살아온 5년의 성장이 이 책에 담겼다면, 그녀의 말대로 37살, 47살, 57살의 이다도 여전히 유치하고 허접할 지 보고 싶다. 그 때 만날 땐 웃음이 많아지는 모습이 날들이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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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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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에 살게 된 어른공룡 '둘리'의 슬픈 이야기
 
아마도 830422-1185600 이라는 주민번호가 나오면서부터 인가보다.
까까머리에 중학생인 내가 매주 만나기를 기다릴 만큼 좋아했듯이, 소년소녀들의 영원한 친구인 줄 알았던 '아기공룡 둘리'가 구설수에 오른 건 2003년 4월 19일 오후 2시 30분 부천시민이 보는 가운데 아기공룡 ‘둘리’에게 부천시 명예시민증 전달식 및 명예시민증이 전달 된 후부터인가보다. 상상속의 동물이 의인화되어 '둘리'라는 이름을 갖더니 급기야는 어른취급을 해버렸다.  
 
 



 
자유롭게 살던 인간들이 저들이 만들어낸 시간에 얽매여 그 속에 구속을 받더니 그마저도 성이 차질 않는지 영원히 '아기공룡'으로 상상속에 그림속에 있어야 할 '친구'를 세상밖으로 꺼내어 놓아서는 달랑 '주민등록증'을 줘버린 것이다. "넌 이제부터 어른이야. 이제부터 알아서 살 길 찾아라." 말하듯.
 


 
어디 그뿐인가? 주민등록증의 프린트도 채 마르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성인용싸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외쳤다. "이 주민등록증 위조다!! 감히 둘리에게 가짜 주민등록증을 주다니..." 정작 주인은 아무 말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 후 4년 후에는 '도봉구민 둘리' 호적 등본 떼 주세요!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으니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내 기억속에서는 바이올린 타고 우주별까지 여행해야 할 '둘리'를 주민등록증을 주면서 세상이라는 중력에 끌려 이 땅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인간들의 짓(?)이 여간 마득치 않았다. '둘리'에게 있어 창조주와도 같은 만화가 '김수정'씨도 부천시장과 함께 둘리에게 주민등록증 줄 때까지는 상상하지 못한 일은 단 열흘 후에 벌어졌다.
 





한창 젊고 실력있는 신인들을 '인디존'이라는 코너를 통해 발굴하던 격주간 만화잡지 '영점프'의 2003년 5월 1일자 단편만화에서 '둘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른의 하루는 아이들의 수천일에 맞먹는가보다. 나이를 훌쩍 먹어서는 우리의 중년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그려진 둘리의 모습을 보고 원작자 김수정은 "숨이 턱 막혀왔고, 현기증이 일어났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둘리를 이렇게 만들어 놨어?"
 '아기공룡 둘리'가 아닌 '공룡 둘리'를 다시 생각하고는 자신의 둘리를 망쳐놓은 신인 만화가 최규석에 대해 '이제 막 만화를 시작하는 최규석씨는 그 상상력과 그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만화가라는 호칭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다음에 또 누군가가 둘리를 그리겠다고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추측컨대 만화의 소재를 찾던 어느 신인 만화가가 '둘리의 주민등록증'을 보고 아이디어를 찾았고, 둘리의 하느님 '김수정'에게 '공룡둘리'를 소재로 단편만화를 그려도 되는가를 물었고, 하느님은 심드렁히 허락을 했을 것이다. 자신도 이지경(?)이 될 지는 상상하지 못했을 터, 그래서 그의 상상력과 용기를 칭찬했으리라. 김수정은 생활에 찌들어 폭싹 늙고, 변해버린 둘리와 주변인물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누군가가 또 둘리를 그리겠다고 하면 단호히 거절할 것'이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인간말종'은 아마도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시다 잠깐 조는 사이에 만들어진 변종이다]는 우스개소리처럼 매주마다 자신의 손에 의해 세상과 만났던 둘리를 깊은 생각없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잠시 맡긴 순간 이젠 더 이상 '아기공룡 둘리'는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처음에 말한대로 그의 실수는 둘리에게 주민등록증을 줘버림으로써 '아기'의 이름을 떼어버린 순간부터인지 모른다. 그 여파은 너무나도 막강해서 '아기공룡 둘리'를 생각할라치면 첫 그림은 빌딩숲 속에 작업화와 모자, 그리고 소주병을 들고 구부정한 허리로 세상을 원망하는 듯 쳐다보는 둘리의 모습이 떠오르고 '호이 호잇~'하며 천방지축 뒤흔들며 매주 나를 웃게 했던 아기공룡의 모습은 그 뒤를 따르는 더 먼 기억이 되어버렸다. 김수정의 한마디 승락은 둘리를 지켜보며 함께 자라온 어른들에게서 '아기공룡 둘리'를 빼앗아 버렸다. 한낱 독자가 이럴진대, 원작자는 얼마나 원통하고 후회를 했을까. 안봐도 PMP다.
 
 



 
[공룡 둘리]가 다른 단편들과 함께 모여 책으로 만들어졌다. 제목 한 번 멋들어지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가 그것이다. 쌈마니 희동이, 사고를 친 희동이 때문에 도우너를 외계인으로 팔아버리는 철수, 동물원 타조우리에 갇혀서 몸을 파는 또치와 어린 시절 그 복장 그대로 밤무대를 뛰는 것 같은 마이콜, 늙은 고길동의 집을 사기친 도우너, 그리고 순간 어른이 되어버려 마땅한 직업이 없었던지 '일용직 잡부'로 변한 공룡 둘리의 모습은 우리 현실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닮아 있다. 만화속에서 '호이~호잇~' 주문과 함께 능력을 부리던 둘리의 손가락은 산업재해로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아직 마음은 그대로라 해부의 위기에 빠진 도우너를 구출하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지만, 따끔한 또치의 충고만 듣고 등을 돌리고 만다.
 

 
 
"거긴 살만 한가요? 여긴...만만치가 않네요.
 
아저씨, 저 조금만 누웠다 갈께요. 아저씨, 눈이 오네요.
 
다시 빙하기가 오려나 봐요."
 
아무런 손쓸 방법이 없자, 고길동의 묘에 찾아서 소주를 마시고 빙하기를 맞는 공룡 둘리의 말과 모습에서 많이 겪어봤던 나의 모습이 들어 있는 듯 했다. 냉정하리만치 날카로운 현실감각과 놀라운 필체로 그려낸 단편 [공룡둘리]을 그린 만화가 최규석에 대해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을 정도지만, 대단한 작가의 발견에 대한 기쁨보다는 상상속의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때문에 입을 다물게 된다. 한 날에 대단한 작가는 태어났지만, 절친한 친구는 죽어버린 듯한 기분... 씁쓸했다. 나에게 둘리는 죽었다.
 
 

 
 
최규석의 날카로운 시선은 다른 단편들 곳곳에서 나타난다.
"삶은 죽여서 먹음으로써 남을 죽이고, 자신을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써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처럼, 살기 위해 살아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밥이라면, 삶은 하루하루 죽음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지루할 수 없고, 빚지지 않은 것이 없고, 치열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세월이 젊음에게]에서 말한 구본형씨의 말처럼 끔찍한 삶의 먹이사슬과 지긋지긋한 밥벌이의 고통을 '배달시킨 치킨 한마리'로 잘 표현했다[사랑의 단백질].
특히 '배가 너무 곱파서 생명을 잇기가 힘이 드러 구걸을 함미다' 맞춤법도 틀리는 입간판을 내걸고 구걸하는 붉은 돼지저금통의 해학은 기발한 작가의 상상력과 관찰력을 충분히 입증시킨다. 이 또한 전국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하는 대구의 [금산삼계탕]사장이 삼계탕으로 변신해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간 닭들을 추모하기 위해 위령제를 지냈다는 몇 년 전의 기사를 생각나게 했다.
 




이 밖에도 사회적 약자 위에서 군림하는 전형적인 강자들의 처세를 꼬집는 단편 [콜라맨], 끝이 없는 권력, 지배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그 허실을 이야기한 [리바이어던], 현실에 있어 무엇이 옳고 그린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그린 [선택]등 에서도 현실속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를 잘 찾아 그려내고 있다. 사회고발적 스토리텔링을 겸비한 멋들어진 화력畵力은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하게 만든다.
 
책표지의 [공룡둘리]는 지명수배가 내려져 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님 누명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줬던 모습이라면 아무도 찾지 못할 어딘가에 꼭꼭 숨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작자 김수정이 '절대 불허'한다고 이야기한 만큼 더이상 볼 수 없으리라. 저자 최규석도 더이상 공룡둘리를 그리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단백질]에서 치킨이 된 닭돌이을 보고 괴로워했던 '붉은 티셔츠의 청년'의 마음일테니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세상에 내려온 그가 안쓰러운지 모른다. 그래서 더 마음이 씁쓸한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음직한 상상이 현실에 대비될 때 그 아득함이 이렇게 깊은 줄은 몰랐다. 때론 상상속에 그대로 남겨둬야 할 것들도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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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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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정래의 펜으로 되살아난 '독일군복 입은 조선인' 이야기.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암리츠아전후 양 웬리 중장은 중위에게 이런 말을 한다.
"중위, 나는 역사를 공부한 적이 있어. 그래서 조금은 알고 있는데 말야...인간 사회의 사상에는 크게 두가지 조류가 있다네. 생명이상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학설과 생명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없다는 학설, 그 두가지지. 그런데 사람이 전쟁을 시작할 땐 전자를 택하고, 싸움을 그만둘 땐 후자를 이유로 내세우더군. 그것을 지금까진 수백 년, 수천 년 반복해 왔다 그 말이야."
 
전쟁을 겪은 세대들에게 '전쟁이야기'를 청하는 것은 '끝없는 연옥에 빠져 허우적대는 악몽'을 대낮에 꾸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빗발치는 포화속에서 살아났지만, 그들이 시름하는 이유는 죽은 자들의 망령을 항상 어깨에 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늙은이들이 전쟁을 선포하지만, 싸워야하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라고 미국의 H.후버가 한 말처럼 TV를 켜면 오늘 이시가에도 지구촌 어디에서 젊은이들은 총부리를 맞대고 싸우며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총을 들고 태어난 전사들이 아니라, 우리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느 부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시선은 늘 인간을 향하고 있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원작가로 유명한 스티븐 앰브로스가 쓴 책 [D-Day]에서 언급한 '노르망디 조선인(한국인)'에 대해 TV의 한방송국이 다큐멘터리로 내놓자, 이를 바탕으로 한 편의 경장편을 써내렸다. [오 하느님]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주인공 신길만과 그와 생과사를 함께 했던 조선인들에게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소련군의 괴물같은 탱크 앞에서도 총을 들고 뛰어 들라면 뛰어 들었고, 배가 고파도 식량보급을 하지 않으면 굶어야 했다. 처음부터 지원군 '지명'에 의해 일본군이 되었고, 살기 위해 그들은 소련군이 되었으며, 독일군으로 변신해야 했다. 군복을 갈아입을 때마다 바뀐 색깔만큼 고향땅에서 멀어졌음을 그들도 알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면...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다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2차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 속에서 이름없이 죽어간 우리 젊은이들의 7년여의 여정이 담겨있다. 하루 하루를 전투로 살아가는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육덕지고 구수한 우리네 농짓거리를 작가는 마치 함께 녹아서 경험한 듯 표현했는데, 그들의 빈웃음이 독자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한다.
일본군포로에서 소련군이 되기 전까지의 고초는 마야자키 도오코의 소설 [불모지대不毛地帶]를 연상케하고 조선인들의 입담은 이광수의 단편소설 [무명無明]을 떠오르게 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과 의지로는 돌릴 수 없는 비극을 온몸으로 겪고 사라져간 이름없는 조선인들의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소설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이 책은 재확인 해준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 죽을 둥, 살 둥 헤엄쳐 나왔다면 좋으련만... 먹먹해진 가슴 달래느라 혼났다. 비극적 결말이 야속해 얼른 책을 덮었지만, "우리는 소련인이 아니다. 우리는 조선인이다. 우리의 국적을 고쳐 달라. 우리를 조선인이 많은 수용소로 보내 달라." 고 피를 모아 만들어낸 그들의 혈서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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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달시 웨이크필드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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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는 감동적인 이야기!
 
  의욕을 잃은 사람들에게 '남대문의 새벽시장을 가라. 가서 그들에게서 활력을 얻으라'고 말하고, 세월을 낭비하는 이들에게는 '네가 무의미하게 보낸 하루는 사형수가 간절히 원했던 자유로운 하루였다'고 말한다. 많은 좋은 말을 듣고, 또 했다. 그 소리를 기억하는 횟수만큼이나 생에 대한 활력을 잃었었고, 무의미한 나날을 보냈다. 오늘 또 한 권의 책을 통해 '온전히 살아있음을 정말 감사함'을 배웠다. 소개하는 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가 그것이다.
 
 


달리기와 하이킹, 자전거 타기, 호수에서의 수영 등 야외 활동을 즐기고, 대학 강단에서 영문학과 작문을 가르치던 생기넘치던 한 여성이 꿈에 그리던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자마자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던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온 몸이 굳어서 끝내 사망하는 불치병, '루게릭병'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남지 않은 생을 재촉하듯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임신하게 된다. 하루 하루 당연한 듯 자연스럽던 활동들이 불가능해지면서도 사랑과 출산, 그리고 남은 삶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달시 웨이크필드(Darcy Wakefield)가 직접 썼으며, 원제는
I Remember Running: The Year I Got Everything I Ever Wanted—and ALS 이다.

 
 
미혼이던 Darcy는 아이를 너무도 갖고 싶은데 지금(32살)이 아니면 점점 더 어려워질까봐 인공수정을 준비하던 중 신청했던 데이트 주선업체를 통해 재치와 정이 넘치는 이메일을 한 통받게 되고, 메일의 주인공 Steve은 그녀가 꿈에 그리던 남자였고, 그와 사귀게 된다. 어느 날 다리가 불편해 검사를 하다가 오히려 왼쪽 다리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운동뉴런증후군' 이른바 '루게릭병'이었다.
 

 
"루게릭 병이란 원래 정확한 이름이 근위축성 측색 (측삭) 경화증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 ALS)이라고 불리우는 병.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란 병은 1930년대 미국의 유명 야구선수 이름을 따루 게릭이 이 병에 걸렸던 것에서 유래되어 흔히 루 게릭 병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요즘은 유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 또한 이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우리나라에도 1200명 정도의 환자가 침상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속절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 ALS란 병은 40세부터 60세 사이의 연령에 호발하며, 남자에서 여자보다 흔히 발병한다. 사지의 힘이 빠지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 사지의 끝부분에서 시작해서 점점 진행하여  점점 팔다리 전체와 몸통, 안면의 근육까지도 진행하게 된다.병의 초기에 환자들은 흔히 사지 말단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며, 이 병이 양측 비대칭적으로 진행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병의 진행에 따라 삼키는 근육이 약화되어 음식을 잘 삼킬 수 없으며, 목쉰 소리가 나는 등의 증세를 보이게 되며, 이로 인한 흡인성 폐렴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병의 마지막까지 눈동자를 움직이는 근육과 대소변의 괄약근은 기능이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ALS을 최종통보를 받은 후 그녀는 스스로 장례식 준비와 부고와 부고장을 준비하고그녀의 사후 법률적인 일들까지 모두 처리한다. '살아가는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ALS와 관련된 의학서적과 웹사이트를 뒤져 자신의 병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 모두 읽은 그녀는 ALS를 '루게릭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죽은 야구선수의 이름을 병명으로 한다는 것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격려나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의 병명을 DWAD(Darcy Wakefield Anti Disease)라고 재명명할 만큼 자신의 병과 대항하기를 마음먹는다.
 
"언젠가는 다 이상 삼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저항하지 않는 한 의사들은 내 몸을 절개해 음식섭취용 관을 집어넣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두려움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 삼키는 것 하나하나, 내 몸의 근육 하나하나까지 감사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몸을 사랑하려고 한다. 몸에 대한 나쁜 말은 일절 하지 않겠다. 과식하는 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욕심도 부리지 않겠다."
 
그녀는 서서히 진행되는 자신의 병에 대해 예전처럼 활동하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 절망에 빠져있기 보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는 현재를 만끽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절뚝거리지만 걸을 수 있을 때, 달릴 수 있을 때 늘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그 순간의 감각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또한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좀 더 일찍 포기한다는 뜻이라는 의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ALS아니 DWAD가 새생명에게는 전이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난 후 Steve와의 사랑으로 잉태된 생명에 감사하며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꿈에 그리던 연인을 만나고, 낳고 싶었던 아기를 가짐과 동시에 불치병에 걸린 그녀는 '대체 어떤 신이 네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했을까' 라고 스스로 수없이 질문도 던지고, 괴로워 하지만 '병을 낫는 기적'대신 '건강하고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하고 있는 기적'에 감사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된다.
 
"에베레스트는 도처에 있다. 요즘은 커피주전자를 들 수도 없을 정도로 오른팔이 약해졌다. 걸핏하면 뭘 떨어뜨리는 통에 유리 제품은 될 수 있으면 멀리한다. 외투를 옷장에 걸기도 힘들다. 외투가 언제 이렇게 무거워졌을까?"
"더 힘든 에베레스트는 타이핑 같은 것이다. 오른손이 굼뜨다 보니 자판을 누루는 것도 갈수록 힘들어져 아주 고민스럽다. ... 긴 메일은 받으면 바로 삭제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답장을 한단 말인가?"
 
후반부로 책장이 넘겨지면서 자신에게서 빠져나가는 기력에 대해, 자신의 부자연스로운 행동에 대해, 그리고 그 성치않은 몸에 대한 괴로움에 대한 독백이 늘어갔다. 그녀의 독백이 늘어날 때마다 온전하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세로 편하게 책을 읽어가는 나를 바라보며 다행이라는 한숨과 부끄러움이 교차해 나역시 별 수 없이 간사한 인간이라는 마음에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가뜩이나 불편한 몸에 임신까지 해서 정글 무늬의 프레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마지막으로 간절한 소원이었던 호수에서의 수영을 시도하지만 줄어든 폐활량과 늦은 오후의 물의 냉기에 수영은 포기하고 물속을 걷다가 넘어지고는 
주저 앉아 마음대로 수영하고 걸어다니던 176센치의 작년 모습을 기억하며 엉엉 우는 모습에서는 가슴이 함께 무너지는 듯 시리고 아팠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내 몸에 적응하기 힘들다. 요즘은 목소리도 거의 사라져 버렸고, 손도 움직일 수 없다. 먹의 근육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내가 말하고 걷는 법을 잊어버리는 사이 샘(Darcy의 아기이름)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법과 미소 짓는 법 다리를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무사히 아기를 낳았지만 급속히 악화되어 가는 자신을 보지만, 그 반대로 샘의 탄생은 자신에게 너무 완벽한 선물이어서 녀석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정도라며 글을 맺는 Darcy는 더이상 환자가 아니라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그녀는 Steve와 아들 Sam의 곁을 떠난다.   
원하던 행복을 누리기엔 너무 짧은 일년이어서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지만, 그녀의 친구가 말한 것처럼 그녀는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고 모든 행복을 모두 누렸는지 모른다. 그녀는 순간 순간의 일상을 에베레스트 등반에 비유할 정도로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상이었고,  마지막까지 순간 순간을 기억하고 만끽하며 누리려 노력했다.
내 인생이 영원한 듯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고, 당연한 나날이 복이 겨워 태양이 뜨겁다고 투덜댔고, 내리는 비에 출근길을 걱정했었다. 조그마한 괴로움에도 잠자리에 누워 아침에 눈뜨지 않고 영원히 잠들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그녀를 만난 후로 그랬던 나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평범한 나날에 감사하고, 순간 순간을 만끽하기에 노력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그녀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정말 부러워요. 달리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당신이 부러워요. 당신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힘껏 잡을 수 있어서 말이에요.
책을 읽고 글씨를 쓰니 얼마나 좋으세요?
노래를 부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 나는 당신이 정말 부러워요.
 
짧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진정한 생명을 만끽하고 돌아간 그녀가, 오늘 우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닐까?
 
"당신의 건강한 몸에 어울리는 그런 가치 있는 일을 하세요."
 
- 꽃그림 작가 백은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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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오늘의 도시여성을 알고 싶은 남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
 
군제대후 대학복학을 할 때 즈음 우리나라에 전문적인 남성잡지인 E가 창간되었고, 그 후로 쏟아져서는 지금은 예닐 곱 개에 이른다. 지금은 트렌드라고 말하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는 [유행]이란 단어를 썼고, 창간호에는 최소형의 삐삐가 한창 유행이었고, 미국 M사의 Tag시리즈의 휴대폰이 백만원 대의 가격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지금은 E, G, A, M으로 시작하는 남성잡지를 매달 구독하고 있는데, 3 부의 신문에는 없는 다뤄지지 않는 내용의 기사들, 이를테면 패션, 미용, 트렌드, 헬스, 심지어는 섹스까지 신문보다는 심도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잡지사 기자들 즉, 에디터들이 펼치는 현란한 언어마술을 경험하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늘 궁금했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유독 독설이 가득한 기사로 현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 어느 에디터의 팬이기도 한데 그들의 세계를 알려준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도시여성들의 트렌드를 한눈에 꿰고 있는 여성 잡지사 피쳐에디터의 일과 생활 그리고 사랑을 다룬 소설로 전직 여성 패션지 에디터이기도 했던 작가가 그녀의 풍부한 경험과 안목으로 도시여성의 판타지와 현실에 대해 여성만이 쓸 수 있는 섬세하고 맛깔난 글로 제 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에 실린 저자 백영옥씨의 모습은 이 책의 주인공인 이서정의 묘사와 흡사해서 실물인 그녀를 주인공으로 놓고 읽어서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 책을 내기 전에 도시여성들의 문화, 패션, 트렌드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했던 산문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을 내기도 했던 실력파이기도 하다.
 
 



갤러리아 백화점앞, 압구정동, 고야드 백,마크 제이콥스 핸드백, 마놀로 블라닉 구두, 패션잡지, 커피, 담배, 수십 통의 전화, 그리고 다이어트 등... 패션지의 에디터로 활약하고 있는 주인공 이서정이 매일 만나는 업무속에 함께 하는 아이템들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 색스처럼 남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데 '웰빙 기사 쓰면서 컵라면 먹는 이중생활'이란 말로 그녀의 아이러닉한 일상을 대신한다.
 


 
 
주인공 이서정은 50킬로 중반대의 그녀는 몸을 옷에 맞춰야만 입는 남성복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의 '스키니진 체험기'를  써야 하고, 까다롭기 소문난 영화배우 정시연과의 1년 동안 공들인 인터뷰를 따내야 하며, 촌철살인의 뉴욕식 레스토랑 평가로 유명한 보이지 않는 거물 레스토랑 평론가 '닥터 레스토랑'을 찾아 인터뷰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좋아하는 패션에디터 김민준을 훔쳐보랴, 우연히 만난 7년 전의 '아픈 기억' 박우진과의 악연을 처리하랴, 그의 단짝 한재석과 티격태격 싸움하랴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이다.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최은영은 혼란한 그녀를 돕는 유일한 동지다. 그 밖에도 천하의 악녀 박기자(이름이 기자란다, 타고난 이름이다) 선배, 여성편집장, 앤드류 동(똥)등 그녀 주위의 조역들도 주연을 쩜쪄먹을 만큼 만만치않은 캐릭터들이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일상의 편안함은 뒤로 한 채 뉴스와 소문이 혼재된 상황속에서 일과 사랑 그리고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그녀를 따라가며 읽자니 내조차도 숨이 가쁘다. 그녀가 담배를 피우면 함게 담배를 피웠고, 커피를 마시면 함께 커피를 마셨다. 심지어 라면까지. 이유인 즉 말많은 사내녀석에게 우리는 딱 세가지로 묻는다. "너, 돈 필요하냐?" ,"집에 무슨 일 생겼냐?", "너, 연애하냐?"가 그것이다. 그리고는 그 이야기를 들으려 가까운 고기집을 찾는다. 그런 사내들은 상상할 수 없는 화제꺼리로, 그것도 맨입으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며 책을 매꿔 나간다. 그녀들만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지적 능력과 체력을 가진 여성들이고 모든 여성이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여성에 대한 정의는 고쳐져야 했다. 사내녀석이 여성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을 읽는 것이 '일종의 관음증'으로 치부된다면, 앞으로는 책표지를 싸서 감추어가면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륨을 높여달라는 이서정의 말에 길을 잘못 들어서 화났냐고 묻는 택시기사의 질문에 그녀는 '이 세상엔 지구 둘레만큼의 오해와 한줌도 안되는이해만 존재하는 걸까?'라고 혼자 묻고, 차를 빼기 위해 30미터 움직이다가 음주단속에 걸린 그녀의 운전면허정지에 대해 '불행이란 아귀를 딱딱 맞추듯 지독한 우연들이 몰려와 자석같이 들러붙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그 우연의 조각들을 다시 꺼내어 맞추면 이런 문장이 완성된다. 재수 없게 왜 나냐고.'라고 하소연한다.

제니칼의 부작용으로 망쳐버린 김민준과의 키스, 예매한 영화관에서의 에피소드, 이탈리안 레스토랑 '어바웃'에서의 요리실습등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능가하기도 하지만, 성수대교를 둘러싼 그녀의 트라우마 그리고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의 치밀함을 더해준다. 데이트 준비를 위해 전날부터 준비하고 10센티나 되는 힐을 신고 곡예하듯 몇 시간을 버티는 그녀들을 위해 식사값을 내는 것은 당연한 듯 아니냐는 이서정의 항변에 고개를 숙였고, 세상에 흔치 않은 잘 생기고 매력있는 남자는 왜 하나같이 유부남 아니면 게이냐는 그녀의 외침에 잡지두께의 뱃살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이서정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그녀를 차지하게 되는 그 녀석에게 눈을 흘겼다.
 
저자가 말하는 제목 스타일StyleSexy Tiny Young Lady is Everything 을 줄인 말이 아닐까?
 
영화로 만들어지면 또 한 번 반갑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문학상이 이번에도 훌륭한 낙점을 했다. 지금 이서정은 '안나 윈투어'가 되어 있을까? 아님 박기자 선배처럼 되어 또 다른 이서정을 괴롭히고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정말 재미있게 본 책이다. 저자의 입담을 쫓아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를 읽어야겠다. 물론 표지는 보이지 않게 포장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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