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십 대의 어느날을 추억하게 하는 경쾌한 소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단 하나, 나의 [스무 살, 서울]이 생각나서였다.
그리 순탄ㅎ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낸터라 가족들을 남겨두고 고등학교는 강원도 강릉에서 보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절은 그 반대였다. 가족과 친한 친구들을 남겨두고, 난생 처음 강릉땅에 떨어져 홀로 고교생활을 했던 터라 외톨박이 3년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강원도에서 제일가는 수재들이 입학시험을 치루고 들어가는 학교에 꼴찌로 들어갔는데, 서울로 대학을 갈 수 있다면 '유아교육학과'라도 가겠다고 생각한 나에겐 당연히 낭만적인 학창시절은 머나먼 꿈에 불과했다. 다행히 서울의 '유아교육학과'가 아닌 삼류대학을 들어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일상생활에 치어 그동안 잊었던 나의 스무 살 시절을 이 책을 만나면서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에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 제 2의 일본소설 붐을 일으킨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스무살, 도쿄]를 읽었다.
 
  1959년생 작가의 이력과 맞물려 반쯤은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의 재수생활을 시작으로 서른을 일주일 남긴 스물 아홉의 인생까지 이십대의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가 보낸 이십대중 시대의 이슈와 맞물린 여섯 개의 이야기로 꾸며졌는데, 독특한 구성이 주목된다. 재수를 하기 위해 태어나고 자란 나고야를 떠나 도쿄에 도착한 날, 대학시절 연극과 동아리 동급생 고야먀 에리와의 첫 키스날, 스물 두 살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던 존 레넌이 죽던 어느 날, 고향나고야가 유치경쟁국 한국의 서울에 올림픽을 빼았겼던 어느 날 등의 하루가 재미있게 소개된다. 작가가 써내려간 글에 맞춰 눈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 시절마다의 다무라 히사오의 모습이 보이고, 그의 주변이 배경으로 떠오른다. 그에게 말을 걸고, 그가 답하는 대목을 읽다 보면 목소리까지 들리는 듯 했다.
 
억지로 꾸미지 않은 하루 하루의 에피소드는 마치 내가 겪은 어느 하루 같은데, 인간사이에서 만들어진 실수와 우연들이 웃음짓게 만들었다. 너무 쉽게 읽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은 저자만의 자연스럽고 친근한 표현력때문이리라. 이것은 다소 허무주의적이고 자조적인 하루키의 그것과는 다른 점이고, 소설을 통해 배움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게 하는 그의 라이트한 표현력이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그것이 아닐까?
 
"젊다는 건 특권이야. 자네들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가졌어. 근데 평론가라는 건 본인은 실패를 안하는 일이잖아? 그러니 안된다는 게야...실패가 없는 일에는 성공도 없어. 성공과 실패가 있다는 건 참 으로 멋진 일이야. 그거야말로 살아 있다는 실감이란 말씀이야."  알지 못하는 술주정뱅이 아저씨가 주인공 히사오에게 한 충고는 마치 작가가 이 글을 읽는 젊은 독자들에게 충고하는 듯 하고, "스물다섯 살이라.  벌써, 인가? 아니면 아직, 인가?" 하고 고민하는 대목에서는 기호지배적인 개념에 이끌려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청춘을 생각하게 된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는 [마지막 스물 아홉을 일주일 남긴 어느 날]이었는데,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오구라의 결혼에 앞서 배첼러 파티를 하기로 한 날 주인공 오구라는 나타나지 않고, 사업상 큰 고객인 고다씨는 별 일도 아닌데 보자고 하고, 형식적인 연인으로 여기는 리에코는 내일도 아닌 오늘 꼭 봐야 한다고 한다. 경중을 따지자면 순위를 매길 수 있지만, 인정과 관계를 따지자면 모두 봐야하는 순간은 언제든 언제고 찾아온다. 큰 부자가 된 고다씨의 자기고백을 들으면서 돈에 쫒겨 살다보니 고독하게 허세만 부리고 살게 되는 삼십 대를 알게 되고, 처가식구들의 권유로 결혼을 앞두고 내 것이었던 기타는 고향으로 보내고, 긴 머리를 자르게 된 오구라의 텅민 마음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고독한 자유를 버리고, 아름다운 구속을 선택함으로 청춘과 맞바꾼 젊은이의 마음을 알게 된다. 잊었던 마음속 기억을 되찾는 느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모습이 중첩되어 그 속도가 더뎌졌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그 시절 젊은이들의 마음은 모두 같은가보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있었고, 있을게다. 독립한 날, 키스한 날, 첫 직장에 출근한 날, 맞선 보던 날, 친구의 결혼식 전날 등 내게도 있었지만, 잊었던 기억을 묵혔던 앨범속에 찾아내듯 책속에서 추억했다. 확실히 필력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추적해서 읽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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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쟈핑와 지음, 김윤진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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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의 대표작가, [아무리 불러도 질리지 않는 이름,친구]를 말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설레임이다. [님이 오는 소식을 알리는 눈]이라고 풀이한 어느 빙과의 이름 설래임雪來恁 이 아닌 심하면 [두근 두근] 심장뛰는 소리가 들리는 상태의 기분, 설레임. 업무적으로 만난다면 내 의지대로 결과를 보고 싶은 기대에 설레일테고, 이성을 만난다면 마구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설레일테다. 싫지 않은 기분의 설레임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싱거운 마음의 상태에 변화를 주기 위해 갖은 치장과 말할 꺼리를 만들어 사람을 만나려 하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 목적이 사람이냐, 설레이는 기분이냐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인데 가끔 그것을 놓치는 것 같다. 구분하기도 어렵지만, 구분하기가 귀찮은지도 모른다.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우리가 외롭기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심경의 변화를 부르지만, 앞에서 말한 그것과는 다른 것도 있다. 하루일과를 모두 마치고 샤워후 개운한 기분으로 창가에 앉아 빙점에 가까운 맥주캔을 들고 맥주캔을 딸 때, 어느 비오는 봄날 추적대는 비를 피해 따끈한 국물에 파전을 시키고 소주 한 잔으로 속을 덥히고 싶을 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슴속 응어리를 오늘은 어떻게든 풀고 싶을 때 생각나는 사람. 설레지도, 두렵지도 않다.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미소가 번지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인디언 속담에 '내가 지닌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는 이름을 가진 사람, 친구가 그것이다.
 
  이 책 [친구]는 중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쟈핑와가 자신의 인생을 함께 하고, 경험하고, 목격해주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문학가답게 문학과 예술에 몸을 담고 있는 그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그래서 다소 싱겁고 지루하게도 느껴질 법한데 눈에 보는 듯, 옆에서 듣는 듯 작가의 친구를 소개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두께가 제법되는 중수필집이다. 유명한 탓일까, 꽌시(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의 습성 탓일까 한 두명이 아닌 무려 오십여 명의 친구들이 소개되는데, 모습도 성격도 제각각이다. 
 
단순히 자신의 친구를 소개하고 그들의 에피소드들을 거론하는 정도가 아니라, 친구의 장단점과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인생의 진리를 찾고, 예술의 길을 찾는 그의 눈에 놀라게 된다. 소개되는 친구들에 대한 소개와 묘사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지금의 쟈핑와는 이토록 많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너만 잘냤냐? 나도 친구는 몇은 있다'는 오만함에 책을 들었다가 친구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에 놀라게 되고, 그와 있었던 기억들을 그토록 속속들이 추억해 낼만큼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나에게 몇인가 하는 생각에 배우게 된다. 주목된 것은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 중에 아버지와 어머도 들어 있었는데, 제목이 친구인지라 논외의 인물이 아닌가 싶었지만,그만큼 그를 알아주고 함께 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그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모를 친구로 여긴 그는 친구도 함께 부모처럼 생각한 것이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고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스로 고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고독하지 않다. 고독감은 냉대를 받거나 유기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알아주는 지기知己 가 없을 때 혹은 이해받지 못할 때 생긴다. 정말 고독한 사람은 고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끔씩 비명을 지를 뿐이다. 마치 우리가 야수를 보았을 때처럼." (p 300)
 
바쁘신 하느님의 일손을 돕고자 어머니가 있는 것처럼, 인생이라는 끝없이 외로운 길을 걷는 인간이 측은해 친구가 있는 것같다.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가 "속으로는 생각해도 입밖에 내지 말며, 서로 사귐에는 친해도 분수를 넘지 말라. 그러나 일단 마음에든 친구는 쇠사슬로 묶어서라도 놓치지 말라." 고 말한 것도 그 이유에서 일테다. 진정한 나를 알아주는 지기知己 가 있는 한 아무리 멀고 외로운 인생길이라도 절대고독은 없겠다.
 
저자는 '나는 친구와의 사귐에 있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낫고, 직접 만나는 것보다 그리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고 친구 펑슝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말했다. 칭송받는 작가에 A형의 괴팍함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알 것만 같았다. 누군가 그립다는 말은 누군가를 가슴에 품었다는 말이고, 이는 항상 옆에 있어 공기처럼 느껴져 그 존재의 위대함을 자칫 잊어버릴 수 있기를 경계함이라는 것을. 되씹고, 되씹어도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소중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그도 나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면 공평하여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겠지만, 혼자서만 그리워한다고 탓하거나 부족하다 또한 말 못하겠다. 이미 그리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몸부림칠 바에야 그리움에 사무쳐 죽으련다'고 항상 생각해 왔지 않는가?
 
' 바다 건너간 A는 버터먹으면서 잘 살까?' ' 귀농한 까치아빠는 애가 몇 살이더라?'로 시작한 친구들 생각이 몇 해전 사고로 서둘러 세상등진 녀석까지 더듬게 했다. 이 책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덕분에 구구절절히 친구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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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 - 최인호 선답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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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순 넘긴 청년의 자연과 성현을 통해 느낀 삶, 그리고 인생!
 
 
"에이, 이 꼴 저꼴 보지 말고 머리깎고 산에나 들어갈까봐."
세상사에 실망하고 화류항花柳港의 도시에 지친 이들의 푸념에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중 하나다. 제 못난 탓은 안하고 애꿎은 산을 찾고 삭발운운하는가 하고 산을 즐기는 이들이나, 불가佛家에 적을 둔 이들은 나무날지 모르지만 제모습이 그런 탓에 어쩔 수 없다. 시름시름 앓는 이가 제모습 되찾으려 맑은 공기와 풍광을 쫓아 산을 오르듯 사람은 괴로우면 산을 찾는다. 자연으로 대변되는 산은 인간의 고향이요, 어머니 품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고도화될수록 산을 찾는 이들이 늘어가는 모습은 자못 아이러니컬 하지만, 차마 그곳마저 없어진다면 매마른 인간성은 어디서 찾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산을 찾는 건 아닌지. 주변에 산이 많아 한국사람은 정이 많은 지도 모른다는 어느 외국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사람이 마음속 응어리와 바라는 염원을 안고 산을 찾고 게서 휴식을 한다. 꼬일대로 꼬인 번민이 하루사이 풀어질까. 그 나날이 많은 이들을 위해 절이 생겼고, 그곳에 스님이 계신다. 현대인의 마지막 도피처가 산이고, 절에 있는 스님이 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어머니 품속같은 자연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워서 일게다. 그럴거다. 
 

 
 
한국문단에 큰 획을 긋고 있는 작가 최인호의 새로운 글을 만났다. 자연 속에서 60 평생을 되돌려 크게 일상, 욕망, 해탈 이렇게 세가지에 대하여 말한다. [산중일기], 그의 선답에세이다.
 
 

 

 
 
최고가는 소설가답게 범인凡人도 읽기 쉽게 소설쓰듯 독백하듯 말하고 있어 읽기에 거북하지 않다. 수려한 글에 걸맞게 자연을 담은 화면들이 그득 그득 글들과 어우러졌다. 가족을 말하고, 청춘을 고백하고, 역사를 논하고, 미래를 밝히던 열정적인 그가 이젠 조용히 시선을 자신에게 옮겼다. 그 배경도 다름아닌 산속으로 잡았다.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는 그의 시선을 훔쳐보건데, 모습에 비해 유난히 허옇던 머리카락이 그저 유전의 탓은 아닌가보다. 글을 통해 예순 해를 넘긴 세월의 흔적을 가진 그를 만나게 된다.
 
 

 
 
'낯익은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할 때 낯익혔다고 해도 아는 것은 아니므로 실제로 시험을 보면 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부는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라며 큰 아들의 입을 빌어 공부방법과 기억의 기술을 이야기하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 가까워진다. 참사랑이라면 눈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야 하고, 참우정이라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야 한다' 고 말하며 진실한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한다.
 
 

 

 
 
그는 또 '서로 모르는 타인끼리 만나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과 더불어 온전한 인격 속에서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서로서로의 약속을 신성하게 받아들이고, 손과 발이 닳을 때까지 노동으로 밥을 빌어먹으면서 서로를 사랑하고고 아끼면서 살다가, 마치 하나의 낡은 의복이 불에 타 사라지듯이 감사하는 생활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성인聖人이고, 그렇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이야말로 하나의 엄격한 수도원인 셈' 이라며 가족과 가정의 의미을 되새겨준다. 가장 완벽한 인간이며 인격체는 어린이들인데, 완벽한 이들이 자라면서 탐욕으로 인해 추악한 어른으로, 괴물같은 마음으로 변한다며 인간의 불행은 완전한 아이에서 불완전한 어른으로 뒷걸음치는데 있다고 꼬집기도 한다.
 
 

 

 
 
자비에 대해서는 '남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받은 사람으로부터 되갚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복덕福德을 지은 것이다. 남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셈이므로 남에게 베푼 자비는 베푼 순간 잊어버려야 한다. 심지어 부모들도 자기 아이를 키운 은혜를 잊어야 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집착은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남에게 베푼 보시에 집착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남에게 입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라 가르쳐준다.  
 
 

 

 
 
저자 최인호는 심청이가 아침저녁 수발을 들고 어가는데도, 고양미 300석을 따로 구하고 있는 심봉사처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얼굴을 진정 보지 못하고 눈 뜬 장님처럼 살아가는 건 아닐까하고 소중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생에 대해서는 차를 한 잔 마시는 일에 불과한 것 같이, 하늘의 아이가 지상의 골목에 잠시 놀러 내려와 동무 만나 놀고, 예쁜 각시 만나서 살림 차리고 애를 낳다가 어떤 놈은 질경이풀 좀더 먹고 부자라 거들먹거리고, 어떤 녀석은 힘좀 세다고 코피 터뜨리다가 먼저 집으로 들어가고, 나중들어가고 밤이면 모두 들어간다고 한다. 하느님이 부르시니까. "얘들아, 그만 놀고 들어오너라. 내일 또 만나서 놀던지" 하시니까...
 
 

 

 
 
부처를 찾는 당나라 때 사람 양보에게 어느 노인은 "지금 곧바로 집으로 가면 이불을 두르고 신발도 거꾸로 신은 채 뛰어나와서 맞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부처님이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을 들은 양보가 집으로 돌아가니 노인의 말처럼 옷도 입지 못하고 그대로 이불을 두른 채 신발도 신지 못한 맨발로 달려나오는 부처를 만나게 되는데, 그 부처가 바로 어머니더란다. 이에 크게 깨달은 양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집 안에 있다[佛在家中]."
늘 그렇듯이, 최인호를 놓고는 [어머니]를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그는 일찍이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책을 펴, 얼마전 영화로도 우리에게 소개했듯 그에게 어머니, 아니 엄마는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이름, 그는 천성 마마보이다. 어머니를 이야기할 때는 항상 아이같은 그가 그래서 더욱 좋다.
 
 



그는 그렇게 산속에서 우리의 삶에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고 이야기 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무엇이 소중한지 그 소중한 것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말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부처님의 말씀을, 그리고 성현들의 가르침과 자연의 가르침을 빌어 자신의 두 입으로, 글로 말한다.
 
 

 
 
편한 듯 쉬운 말 속에 담긴 가르침 하나 하나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한 컷 한 컷 작품같은 그림속 풍경에 감동은 곱이 된다. 글을 읽고, 그림을 보노라면 뇌까지 시원한 산바람이 일고, 세상사를 잊게끔 나뭇잎 소리가 쳐대고, 풀내음이 나고, 향내가 진동한다. 공교롭게 석가탄신일 신새벽에 산사에서 읽게 되어 그 감흥은 더 한 듯, 그분이 직접 내 귀에 말하시는 듯 예서 마냥 머물고 싶었다. 고즈넉한 산마루 어디메서 읽으면 정말 좋을 책이 계절에 맞게 나왔다.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한 너무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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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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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혼자보다는 괴로운 둘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녀를 처음 만났다. 네 번째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하는데 봤음직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하진 못했다. 무관심. 소설에 관심을 두지 않은 터라 굳이 미안할 마음을 둘 것도 없지만, 후회가 되는 것은 솔직한 마음이다. 일찍 만날 수 있었으리라.
 
그녀는 우울하다. 팀 버튼 영화의 푸르죽죽한 어두운 배경을 연상케 하고, 축축하거나 먼지마저 부서질 듯 건조한 공기 숨쉬는 것들은 뭔가 아는 듯한 조소어린 미소만 엿보인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차마 눈을 감고 싶은 기분. 그랬다. 그녀는 없음이다. 있음을 말하기 보다는 있기를 원하기 보다는 밀가루 가득 담은 듯 텁텁한 입으로 없다고 말한다. 보일듯 보이지 않는 냉담한 미소는 여전하다. 기분나쁘지만 변화를 기대하고 페이지를 들추게 된다. 그러길 바라지만, 어림없다. 그녀는 장롱이다. 그녀에게 아직은 갈 수 없는 무덤이고, 엄마품같이 쉴 집이고, 막연한 두려움이고, 유일한 자신의 공간이다. 항상 그녀 곁에 두기에, 아니 항상 그것을 의식하기에 오늘을 보낼 수 있는 듯 하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래서 그는 그 몸을 더욱더 적대시하고 부정하고 음해하려 애를 썼다. 결국 그에게 남은 감정은 깊은 죄의식이었다. 파괴하고 싶은. 그러나 보존되어야 할 순수한 육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길하고 위태로운 이 낯선 육체. 그는 미간을 좁히며 머리를 감싸쥔다.  패배한 이 늙은 영혼아.  ( 소년J의 말끔한 허벅지, p 16)
 
그는 빈 스튜디오에 혼자 남는다. 그는 버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허전하고 불안하다. 무엇이 그를 허전하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모든 소음이 한꺼번에 사라진 듯한 느낌. 폭풍 전야의 이 무서운 정적 (p 17)
 
사연을 차지로 두고 내가 택해 함께 사는 아내에 대한 애증은 굴복과 방치로 표현되고, 차마 먼저 버리지 못하고 처분을 바라는 방관자적인 사진사의 시선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는 단지 혼자이기가 싫은 것이다. 사진사와 아내와의 관계는 소설가 이상의 [날개]속 둘과 닮았다. 나와 아내는 원래 가장 가까운 사회적 관계에 있다. 그 아내와 합치될 수 없는 나의 위상은 곧바로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격한 몸싸움으로 스킨십을 대신하게 된 소년(사회)과의 새로운 만남은 아내의 간섭으로 불안하게 한다. "아저씨 꼭 거머리 같았어요. 아니 낙지요. 머리는 빡빡 밀어갖고 그냥 들이미는데, 떼어낼 수가 있어야죠." 실은 그에게 있어 아내는 거머리였고, 낙지가 아니었을까. 양분을 모두 빨려 푸석한 몸뚱이가 되어버린 채 버려지려 할 때 그는 소년을 만났고, 그는 안도와 편안한 휴식을 느끼게 되었다. 아내와 소년의 밀애를 의심함에 그가 흥분한 것은 아내의 불륜에 대한 분노보다는 소년에게 들러붙으려하는 거머리에 대한 증오가 아니었을까? 아니다. 이젠 자신이 소년에게 들러붙고 싶은 혼자이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푸석푸석한 거머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또 외로운 혼자보다는 괴로운 둘을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머지의 단편속에서도 그녀는 '욕망에 얼룩진 관계속의 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들여다보기를 남이 보듯 깊이 그리고 꼼꼼히 관찰했다. 그녀에게 사랑의 이름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세 시간 전만해도 난 생각이 많았다. 어제 했던 일들의 자잘못을 고민하고, 곧 있을 시간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에 닥칠 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으로 정신이 복잡했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지금은. 멍~하고, 우울하고 침울하다. 한 권의 소설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어서...그 속에 내모습이 보였고, 내가 그것을 봐서 였다. 화가 난다. 스스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더 잘 아는 듯한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 화난다. 내팽겨치고 싶지만, 손과 눈은 자꾸만 그녀를 쫓는다. '끊을 수 없는 기분나쁜 중독의 느낌'. 오늘 그런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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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생각의 탄생 - 위대한 천재들과 떠나는 신나는 생각 여행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원작, 서영경 그림, 김재헌 글 / 에코의서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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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올해의 책'을 뽑는다면, 난 이 책을 추천하겠다!
 
 
어느 초등학교 새내기의 교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숫자를 더하는 덧셈을 처음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 학생 여러분, 2 더하기 3 은 5에요. 그리고 쓰기는 2+3=5 이렇게 쓰는 거에요."
그러자 학생이 다소 당황한 듯 긴장된 목소리로
"아니에요, 선생님. 선생님이 왜 거짓말을 하세요?
우리 보습학원 선생님은 1 더하기 4가 5라고 그랬단 말이에요." 하더란다.
 
허허~ 웃어버리기엔 뒤에 여운이 남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보호와 교육이라는 다소 애매한 정의에 의해 누군가에게 키워지고, 배움을 받는다.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래서 더 나은 교육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부모는 스스로 가르침에 대한 두려움과 도퇴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라리 위탁을 선택하고 그 사례를 위해 일을 한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2005년 10월에 만 7세의 나이로 인하대학교 자연과학계열에 합격해 ‘천재소년’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송유근의 어린시절은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때문에 할머니의 손에 자라게 되었는데, 할머니는 송군을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때로는 멍하니 하늘을 몇 시간을 바라보거나, 땅바닥에 쭈그려 앉아 개미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하루종일 지켜보곤 했다고 한다. 어린 송군은 그 시절, 누구의 도움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눈과 머리로 관찰하고, 나름의 생각을 하며 스스로 공부했다고 한다. 부모는 아이의 생각과 표현을 이해하고 응원하면서 항상 지켜봤다고 한다. 송군의 자유방임적 교육이 천재가 되는 길인가 하는 점에는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는가하는 질문에는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카들만 하더라도 만 세살이 넘어 유아원을 들어갔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알았고, 시키는대로 했다. 함께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똑같은 노래를 불렀으며, 함께 같은 음식을 먹었고, 함께 같은 시간에 낮잠을 잤다. 아이들을 돌보는 누군가의 통제를 잘 따르는 아이는 '말 잘 듣는 우수한 학생'이라 칭찬하고, 지시에 토를 달거나, 질문이 많거나, 돌출행동을 하는 아이는 '문제학생'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서너 살 때에는 오늘 유아원에서 뭐했어 하면 아무말도 안하고 두손 번쩍들고 벌서는 흉내만 내던 조카는 다섯 살을 넘어서는 말 잘 듣는 우등학생 소리를 듣는다.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는지 난 모르겠다. 얼마전 가수 신해철이 자신의 자녀의 진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이에게 0교시 수업을 듣고 졸게 하면서, 졸았다고 또 혼내는 현재 교육제도는 미친 짓"이라며 "내 아이를 이런 가축 축사같은 학교에 보낼 수 없다. 아이는 자유인으로 살길 바란다"고 밝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다름아닌 본인 스스로가 우등생으로 고등교육을 마쳤고, 일류대학교를 졸업한 소위 말하는 '수재'라는 점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많다.
 

 
  
  
 
아이들이 A라는 과목으로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나도 다녀야 하고, Z라는 예체능 학원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또 그것을 듣는다.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이면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해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어느 한 생각에 몰두하거나, 멍하니 있는 아이에게 공부 안하고 멍청하게 뭘 하고 있냐고 닥달한 적은 없는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공부와 생각, 그리고 배움과 깨달음을 생각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게다가 이 책은 10대 청소년을 위한 책 속에서 말이다.
 
 


 
 
이 책은 로버트 르트번스타인과 아내인 미셸 루트번스타인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 [생각의 탄생]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주요 언론사들로 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수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게 되자, 청소년을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생각이 태어나는 과정을 순서대로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찾기, 패턴 만들기, 유추 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이들에게 수업을 가르치듯 다정다감한 어투로 천재들의 생각을 컬러풀한 그림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샌각의 탄생에 대해 인간의 생물학적 탄생은 모두 같지만, 생각이 태어나는 순간은 서로 달라서 뜻을 가지고 얼마나 노력했느냐에 따라 그 생각이 거듭 태어날 수도,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면서 창의성이라는 이름의 생각은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잘 생각해야 하는데, 바로 [잘 생각하는 법]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가르치는 것을 가감없이 집어넣는 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생긴 의문이나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깨달음이 모여야 진짜 생각이 되고, 그것이 남과는 다른 독특한 창의력이 될 수 있음을 천재들의 사례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생각의 개념에 대한 지식적 충격이 너무 커서 이 책이 과연 '청소년을 위한 책'이 맞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했다. 그리고 우리 작가에 의해 재구성된 책이 이토록 놀랍다면 원작 [생각의 탄생]은 어떤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주위에서도 적극 권장해 지난 3월 구입했지만 그 부피와 두께의 압박에 눌려 아직 펴보지도 못했던 터라 바로 읽어야 할 책 0순위에 올려 놓았다. 최근들어 조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구실로 그들의 책을 펴보는데, 절대로 수준을 논할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아이들의 지적수준이 어디까지인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학원수업과 학교수업, 그리고 과외활동등으로 과연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을 시간이나 뺄 수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조카에게 선물했을 때 성적에 도움도 안되는 책 때문에 오히려 짐이 하나 늘었다고 괜한 푸념말이다. 더불어 무엇이 진정 올바른 교육인지 도통 헛갈린다. 이제야 생각하는 법을 조금 알게 된 나를 보면 지금껏 배운 나의 고등교육은 그다지 제대롭진 않은 것 같은데...
아무튼 이 책은 10대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먼저 읽고 자녀에게 권해줘야 할 좋은 책이다. 청소년을 위한 올해의 책을 뽑는다면 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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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2008-05-13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이민생활의 바뿜속에서 욕심만 많아 이 원작을 사놓고도 읽지 못했는데 정말 저도 당장 읽어봐야겠군요... 글구 저희 애들을 위해서도 쥬니어용도 하나 따로 사야겠군요..
사실 애들이 미국에서 태어났고 교육 받고 있으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요...
그래도 한글을 어려서 부터 꾸준히 조금씩 가르쳐왔으니 우선은 그림부터라도 친근감있게 다가갈 수 있게 한뒤 조금씩 읽히며 같이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군요..
정말 좋은 책 리뷰 넘 오밀 조밀 잘해주셔서 흐뭇하게 잘보고 갑니다...
늘 감사합니다.... 많이 얻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