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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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 아름다운 성장소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어스름 저녁 무렵 눈을 떴을 때,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안녕을 고하느라 핏빛 하늘로 물들이고 방안엔 나 혼자 뿐이다. 푸근하고 아늑하기만 했던 방이었건만 어제의 느낌이 아니다. 가장 소중한 이름을 부르며 온 방문을 헤매고 찾아도 있었던 자리의 온기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이제 남은 곳은 한군데. 반지하로 만들어진 부엌의 낮은 문을 열며 온 힘을 다해 부른다. "엄마! 엄마?" 그리고 곧 알게 된다. 이 집에 나 이외에 아.무.도.없.다. 걸음으로 열 발자국 남짓되는 사방의 공간이 운동장처럼 커져 보이고, 하늘이라도 뚫을 듯 천정도 높아지고 있다. 두려움과 설램은 순간 무너지고 그렇듯 무너지며 주저 앉아 울었다. 울어대는 제 목소리에 힘을 얻어 더 크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 엄마있는 곳까지 들리도록...
 
  대여섯 살때부터 느낀 '부재에 대한 상실감'이 유독 짙은 이유는 '맞벌이 부모'를 가진 아이여서 일 것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정체성마저 무너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까. 아직도 어릴 적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느낌은 그대로지만, 지금은 목놓아 우는 대신 덜 패워진 재떨이를 끌어당겨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작은 떨림이었다. 추호秋虎처럼 무서운 아버지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일었고, 욕은 한 바가지를 얻어 먹지만 벌리는 손의 절반 만큼(딱 절반만큼. 그래서 항상 두 배로 불렀지만) 용돈을 주는 줄 지 않는 화수분지갑이 이젠 없어졌다는 허망함도 일었지만, 무엇보다 세상 그 어디에 있어도 당신의 존재 자체로 조금은 더 튼튼했던 집이 금이 간 듯, 불안한 듯 했다. 따뜻한 온도 마저 떨어진 듯 했다. 이젠 더이상 볼.수.없.다.
 
  열 일곱의 '주니은'도 그랬다. 늘 함께 있을 것 같던 부모를 함께 탔던 차에서 모두 잃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아니 혼자 이 넗은 세상에 남겨져 버렸다. 부모를 잃어버렸다는 절망감과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날 것 같은 막연한 희망감에 잠시도 머물지 못하는 마음상태를 빌어 그녀는 '너풀거리는 치마를 입고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가 늘 거리를 떠도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고 말한다. 마음이 시큰해져 그녀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게 한다.
 
  "니은아. 니가 시원하게 못 울어서 마음이 아픈 거다. 슬픔이 몸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몸을 두드리는 거지...사는 게 다 빚 갚는 일이라 하더라. 나는 빚이 많아 세상에 오래 남아 있는 거지. 그러니 니은이 니도 때맞춰 밥 먹으러 오너라. 이 늙은이 도와주는 셈치고." 상실의 슬픔에 혼자된 분노와 두려움에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어린 니은이에게 네 곱절 나이 많은 할머니는 '내 니 맘 자알 안대이' 하듯 위로한다. 이승이 지옥이라 죄값을 치룬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마는 니은이는 지옥불을 뒤집어 쓰더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있다면...했으리라.   
 
  그녀에게 제일 친한 나무南无 또한 혼자다. 하지만 그녀는 제 스스로 혼자이기를 결정한 것, 독립인 것이다. '넌 그래도 부모가 있구나' 니은이는 그녀를 통해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자신과 자발적인 독립의 엄청난 차이를 알게 되고 분노한다. 망자亡者 앞에서 곡哭을 하는 이들의 눈물은 먼저간 자에 대한 애석한 미망未忘의 눈물이라기 보다는 남겨진 자의 살 날을 우려하는 미망자未亡者의 눈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겨진 것이 아니라 버려졌을 때, 그 눈물은 분노를 머금는다.
 
  그리고 곧 니은이는 '어떤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일까?' 고민한다. 막연히 여행을 떠나는 나무의 사촌 언니는 '징징거리지 않기, 변명하지 않기, 핑계대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라며 '금지'가 늘어가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 말하고, 장수포 할아버지는 '열살 때 생각하면 열살이 되고, 마흔살 때 생각을 하면 마흔 살이 되듯 여든살이 돼도 맘속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다' 선문답하시며 어른과 아이는 차이가 없음을 이야기하신다. 칠순이 넘은 왕고래집 할머니는 뒤늦은 한글공부를 하시며 그 공부를 어디다 쓰냐는 질문에 '온 바다를 돌아다니며 보소, 이보소, 바다가 어디 있는지 아오? 하며 평생을 보낸 것 같다'고 더 이상 바다를 찾아다니는 파도가 되지 않고 싶다며 앎을 쫓는 아이도 되돌아감을 준비한다. 장수포 할아버지도 흰수염고래와 거북이가 있는 저 멀리 바다로 이십대가 되어 되돌아 갔다.   '어떤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일까?' 누가 내게 묻는다면 '고아'가 될 때라고 말하고 싶다. 육순의 아들이 색동옷을 입고 어머니의 팔순잔치에서 깨춤을 출 수 있다면 아직 아이인 것이고, 사춘기를 모르고 생계를 꾸려야 하는 십대가장이라면 이미 어른이 짊어야 할 짐을 어깨에 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눈물을 점점 잃어가는 것이라고...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그냥 글자만 쓰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음을 깊이 뒤집어 밭을가는 것도 같고, 맘속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도 같고."  (137 쪽)
 
  간신히 한글을 배워 알게 된 수십 단어로 작문을 하며 왕고래집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한 편의 소설이 큰 바다를 담고 있었다. 이 소설을 '성장소설'이라고 한다면, 난 아직 아이인 것이고, 십대의 마음으로 읽은 것이다. 슬퍼서 먹먹해야 할 이야기들이 잔잔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푸른 바다에 흰수염고래가 있고, 거북이가 있고, 보랏빛 물체가 떠다닌다. 그 가까이엔 장수포 할아버지, 왕고래집 할머니가 있고, 니은이가 있고, 나도 있었다. 어른인 듯, 아이인 듯 그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많다. 세상이라는 바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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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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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속에 담긴 치명적 유혹. 더 이상 상상하지 말라, 계속되면 다친다!


  
  인간의 느낌(감각)을 말로 전하는 것은 어렵다. 개인적인 느낌을 상대가 100% 느꼈는지를 확인할 길 도 없거니와 그 느낌의 표현이 정확하게 묘사되었는가 하는 것도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느낌을 묘사한 것 자체는 '밥상을 차린 것'일 뿐 그 묘사된 것을 어떻게 느끼는 가의 몫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내가 소설을 즐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소설 속에서 표현된 작가의 느낌들은 눈으로 보이는 듯, 내 살갗에 닿는 듯 실제적이어서 그들의 표현력에 소름마저 돋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기억했거나 배운 그 표현을 나중에 어느 때인가 누구에게 내가 할 때 즈음이면 그 느낌은 두 배가 된다.
 
  감성의 시대가 온 때문인가? 인간의 감각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 부쩍 눈에 보인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예민한 감각인 후각을 자극하며 몇 해 전 화제를 일으켰던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향수]를 비롯해 최근에 들어서는 미각 즉, 맛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작가 조경란님의 책 [혀]는 지난 해 우리의 뇌를 맛으로 충분히 자극했고, 해외로도 판권이 팔릴 만큼 놀라운 인기를 구가 했다. 이 즈음에 어쩌면 나와야 할 책이 나온지도 모른다. 2008년 제6회 일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한 본격 미식(美食) 미스터리 소설.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 원제는 禁断のパンダ 이다.
 
 
  이 소설은 요리와 미스터리적 요소가 더해져 크로스오버된 형식으로 새로이 시도된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래서 두 요소를 별개로 놓고 본다면 본격 요리소설도 아니고, 본격 미스터리 소설도 아니어서 약간 부족한 맛이 없잖다고 여길 수 있겠다. 하지만 서로 물과 기름일 것 같은 요리와 미스터리가 합해져 새로운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작가의 놀라운 표현력은 눈에 띄는 장점을 지녔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전직 요리사이기도 했던 저자의 요리에 대한 표현력은 [향수]의 그것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놀라웠다. 다만 전체적인 스토리의 흐름에서 팬더에 대한 지나친 설명은 복선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장황한 표현이었고, 또한 그렇게 돈이 많고 장사잘 되는 레스토랑에서 그 관계자들이 살인되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리고 한 명이 아닌 다수는 그 개연성으로 미루어 보거나, 용의자의 도주 우려성(도망치면 오히려 더 의심을 받고, 직업자체도 외부로의 탈출이 불가능하지 않던가?) 그리고 획일화된 알리바이 등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살인사건의 이유가 '반인륜적인 이유'였다는 점에서 자못 실망스러웠다(이것은 살인방식과 표현에서 향수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유럽과 중국 일본, 우리나라등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현대물에서 요리 소설과 함께 등장하기에는 소재로서 탐탁치가 못하다. 캐릭터를 잘 못 판단한 나에 대한 자괴감도 그렇지만, 캐릭터들의 유창하고 매력적인 말을 믿고 그들을 신뢰하며 요리와 스토리의 즐거움을 계속 누리려했던 나의 '실망감'은 '배신감'으로 다가왔고, 급기야 분노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소설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책, 읽어봤어?"라며 나의 독서경험을 이야기하게 만드는 묘한 전파력 또한 지니고 있다. 일본 원작 소설의 표지보다 훌륭한 복선을 지닌 노란색 표지와 가장 강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 일흔둘의 나카지마 히로미치. 한때를 풍미한 저명한 요리평론가이자 요리 칼럼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음식을 예술과 학문에 비유하는가 하면 세상에서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 바로 황홀하리만치 혀의 감각을 사로잡는 미식(美食)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가진 매력적인 인물이다. 책 속의 그의 말은 그 자체가 요리책이었고, 멋들어지게 꾸며진 정찬이었다. 팬더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시각 또한 이 책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마지막은 일본의 고베를 거점으로한 간사이 사투리의 원서를 완전 100% 경상도 사투리로 표현한 역자의 발상이 돋보였다. 이 전부를 조합해 봤을 때 매력이 듬뿍 담긴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당신이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이 책의 결말을 읽을 때엔 너무 깊이 상상하지 말라. 그것만 지킨다면 어쩌면 책 속에서 요리향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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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박주영 옮김, 김복영 감수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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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의 진수를 보여주는 풋풋하지만 무게감 있는 책!
 
  주위에 그런 사람, 꼭 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특출나고, 월등해서 무엇이든 경합이 있는 장소에는 그 사람이 빠지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능력뿐 아니라 성격도 좋아서 만인의 호감을 부리고, 그와 함께 있으면 손오공이 제 머리털로 복제를 해대는 환공술처럼 그의 그림자 속에는 또 다른 그가 족히 100명은 숨어 있는 듯 너무나 당당하고 도도해 보이는 사람. 감히 그와 견줄려고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그와 함께만 있어도 좋겠다고 여기게끔 만드는 그는 요즘 말로 풍겨져 나오는 카리스마와 아우라를 지닌 멋진 사람이 주위에 꼭 있다. 지금이야 주위를 둘러 볼 시간조차 없을 만큼 제 깜량을 채우느라 바빠서 모르지만, 깃털같이 많은 시간이 할애된 어린 시절에는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 시절 나는 그들을 일러 '인물人物'이라 불렀다.
 
  본교수업과 보충수업 그리고 야간자율학습으로 빡빡한 하루일정을 채워나가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펜을 들고 잠을 자야 마음이 편할 만큼 오로지 '공부'만 허락된 생활이었다. 꼴찌로 들어간 학교가 공교롭게도 제 동네에서 공부꽤나 한다는 일명 '수재'들이 몰려든 학교라 예상치 않은 학교생활은 '지옥같은 현실' 그 자체였다. 나는 M- T- M이란 책이 영문법에 관한 책이란 걸 입학하고 처음 알았는데, [정석 수학]과 함께 입학고사을 치뤘다 하니 두말 하면 입아프다(입학고사가 있는 것 조차 모르고 놀다가 입학한 터라 680명 정원에 648등을 했으니, 내 뒤에 누가 있다는 것조차 신기할 따름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 단어외우랴 숙어외우랴, 수학공식외우랴 머리에 스팀이 날 정도로 책에 박혀 있던 내게 "야~ 난 너처럼 공부하면 당장이라도 서울대 들어가겠다." 며 멋진 미소로 말을 걸어온 녀석은 '인물'이었다. 중학교 때 학생회장을 했고, 고등학교 입학식때 입학선서를 한 녀석. 공부가 되는 때는 사흘을 밤을 새우고, 안될 때는 하루종일도 잠을 자는, 수학공식을 머리로 풀이하느라 집에서 학교까지의 40분 거리를 걸어다녔던 녀석. 그는 항상 1등이었고, 전교에서도 세 손가락안에 항상 드는 녀석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새로운 영화를 보기 위해 세 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가서 영화를 보는가 하면, 주말이면 공룡능선을 타고 설악산을 올라 산장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괴짜기도 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그의 행동과 발언은 마치 외교관의 치외법권을 지니고 있는 양 아무도 그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몰래 숨어들어 화학실험을 한답시고, 과학실에 불을 낼 때에도 에디슨과 아이슈타인도 그랬을 거라며 교장선생님이 오히려 칭찬을 했다는 후문과 청소시간에 유리창을 깨끗이 닦으려다 2층에서 떨어진 내게는 오히려 일주일의 유기정학을 먹인 사실을 비교하면 그와 나와의 거리는 상당함을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그가 저지르는 사건 사고의 배후에는 내가 숨어있었고, 그의 그림자 속에 숨겨진 나는 '체벌'을 피할 수 있었다.  
 
  하루 세 끼 같은 밥을 먹고, 비슷한 시간만큼 잠을 자고, 뇌의 용량도 그리 차이나지 않은 듯(내용물에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한 때는 그와 똑같이 행동을 같이 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그와 비슷해지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인간실험이었는데, 참 어리석은 발상이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는 다른 별의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판단할 즈음 우리는 반이 갈리고 대학입학을 위해 가열찬 투쟁(?)을 해야 했던 터라 입시일이 가까울수록 기억속에 있는 그의 모습은 옅어져 갔다. 3학년이 한창일 즈음이었나 보다. '참교육'을 외치는 '전교조'가 생기고, 이를 저지하려는 정부와 그에 맞서는 선생님, 학생들 이야기로 학교는 오일장마냥 시끄러웠다. 나의 '인물'이라는 친구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수업을 거부하는가 하면 학교기물을 파손하여 유기정학을 먹더니 스스로 '자체방학'을 만들어서는 설악산에 한 달여를 숨어버렸다. 그와 함께 해야 했지만,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당장의 현실로 닥쳐온 '대학입학고사'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고, 무엇보다 도봉산을 보고 100일 기도를 하신다는 어머니의 소식이 내 몸뚱이 마저 잡아버렸다.
 
  기특하게도 가까스로 대학에 합격하고 새내기 대동제를 준비할 즈음, '인물'은 서울대에 낙방하고, 후기대학을 들어가서는 '운동권', 그것도 '국가대표급 운동권 선수'가 되어 경찰과 형사들을 뒤로 하고 전국을 도망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는데, '철렁거리는 가슴'과 '야릇하게 미소짓는 내 모습'을 감지하게 디었다. 이전의 것이 제일 친했던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나의 반응이었다면, 그 뒤의 것은 그에 대한 내 기억에서 '인물'이라는 뱃지를 떼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한 편의 기쁨일까? 순간 나에 대해 온 몸에 소름끼치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나의 음흉함. 그것이 내가 접한 나의 이중성에 모멸감을 느낀 때는 아마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신껏 옳은 일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는 그를 두고, 단지 도망자라는 이유로 '시대가 낳은 사생아'가 되어버린 그를 두고 안도해 했던 나를 두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고, 그 때 느꼈던 나의 이중성이 '야수성'은 아닐지 의문을 던지게 한 책이 [분리된 평화] 원제, A Separate peace 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미국의 어느 도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는 듯 활기찬 학교, 데번 스쿨에서 '인물'은 피니어스였고, 책 속의 화자인 '나'와 '내'는 큰 차이가 없다. 인물과 나 그리고 한 떼의 무리들이 만들어나가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우정과 비밀, 경쟁과 공감, 그리고 배신과 속죄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옛날 지구 반대편의 서양아이들의 이야기가 이나라에 사는 그 옛날의 내 이야기 같아 마음을 졸인다. 차마 기억하지 못했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내가 감정이 이 책의 '나'가 아니었을까, 내가 느꼈던 이중의 감정은 정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야수성'이었을까 고민하게 했다. 살아온 날과 살 날의 중간에 있는 내가 '성장소설'에 눈과 마음을 던진 것은 어쩌면 더욱 더 기억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나의 옛날을 더듬고 싶어서였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나를 살펴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인물'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가 궁금해졌다. 올해 가을에는 동문회라는 곳을 찾아가 봐야겠다. 그래서 그 시절의 '인물'이 보이걸랑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 그는 왜 그런지 영문도 몰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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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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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命'의 도망자가 되어버린 세 사람의 이야기 !
 
 
  "그는 코메디 작가다." 라고 그의 책을 좋아하거나, 익히 읽었던 이들에게 꽤 많이 들어왔던터라 사실 그의 소설에 시큰퉁했었다. 연일 쏟아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고,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는 한 주만 지나면 장바구니의 무게를 좌지우지(실제로는 가볍게만 한다. 안그런가?)하는 현실이기에 가끔 우연히 보게 되는 TV 에서 30대를 가득 채웠지만 여전히 20대 중반으로 아는 늙수구래들의 실없는 농담에 냉소冷笑 나 가끔 던지는 것이면 되었지,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코메디 작가의 글을 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터라 책선물로 읽은 [스무살, 도쿄]는 의외였고, 재확인을 위해 읽은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는 '오쿠다 히데오가 코메디를 쓰기는 쓴거야?' 하는 의심을 품게 했다. 앞선 것이 사회 정체성에 흔들리는, 하지만 그리 괴롭지 않은 20대를 공감할 수 있게 써 냈다면, 뒤따르는 것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이정도는 해야 되는거야!'라고 말하는 듯 자신의 우상인 [존 레넌]의 숨겨진 몇 년간의 시간을 재구성해 멋들어지게 소설로 꾸며냈던 터였다. 나이 40의 늦깍이 데뷔 작가답게 삶을 한 계단 위에서 조망하는 듯한 기술과 표현은 내 입에 착착 감기는 듯 그의 글이 마음에 들었다.
 
  며칠 전 그의 신간 소식에 회가 동해 열 일 제치고 손 안에 넣었다. 600 페이지를 상회하는 두터운 두께. 재미없으면 베개로도 쓸 수 있겠더라. 국내에 소개된 오쿠다 히데오奥田 英朗 의 신작 [최악], 원제는 [最悪 さいあく] 다. 재팬 아마존으로 확인한 바 이 책은 1999년 2월에 출간된 책이다. 다시 말해 2005년 1월 국내에 소개된 오쿠다 히데오의 첫 작품 [공중그네]는 2004년 4월에 일본에 소개된 작품인데, 이 작품이 국내에서 힛트를 치자 그의 최근작과 과거작품들이 서로 판매유효기간을 두고 엇갈려 쏟아지고 있어서 독자마다 서로 평을 달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최근 그의 작품이 '희극'의 성격을 띠는 것이지 모든 작품이 그렇다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부수를 두고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지만 그를 이러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를 잇는 작가'라고 평가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라이트한 코메디만 쓰는 작가'로 폄하되기는 무리가 있지 싶다. 이 책 [최악]을 읽고 난 후는 더욱 그랬다. 각설하고 책이야기로 간다.
 
   

  이 책은 47세의 영세 철공소 사장 가와타니 신지로, 23세의 평범한 은행창구 여직원 후지사키 미도리, 20세의 떠돌이 양아치 노무라 가즈야 이렇게 세 명의 소시민이 우연한 사건으로 '절체절명命'의 상황으로 몰리게 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제목 그대로 갈 때까지 가는 '최악最悪'을 이야기한 책이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를 경험하고 한숨을 돌리는 시점의 일본과 일본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인물소개와 사건의 발단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과 세 주인공이 한 사건으로 연류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전형적인 소설의 '기승전결'을 보여주는데, 스토리의 치밀함과 재미 그리고 스피디한 전개와 박진감은 여느 영화의 그것보다 훌륭하다.
 
 
  
 
     
 
 
  위엄있는 가장으로서 신용있는 조그만 철공소의 사장으로 평범한 남자가 되고 싶은 가와타니 신지로.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속썩이는 종업원,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는 원청업체, 게다가 소음으로 시비를 거는 이웃집 '오타씨 부부'의 태클 속에서도 업무량을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에 폭발하고 마는 그의 모습에서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그 태양을 받아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지열, LA시내로 들어가는 프리웨이 위에서 햐얀 와이셔츠 차림에 한 손에는 007 가방을 그리고 한 손에는 장총을 매고 서 있는 디펜스(마이클 더글러스 분)를 연상하게 한다. 1997년의 영화 폴링 다운 (Falling Down, 1997) 속의 그 역시 헤어진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 딸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서히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그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무기력, 그저 반복될 뿐인 일상의 단조로움, 우울하기만 한  한 가장의 모습을 보게 된다.
 
  월요일과 월말, 그리고 비 오는 날을 끔찍히 싫어하는 은행원 아가씨 후지사키 미도리. 그녀에게 남자는 무기력과 냉소의 대상이었지만, 어느 날 그녀에게 닥친 한 사건으로 인해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그래서 정작 자신을 우려하고 아꼈던 이의 시선마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련의 여인이 되고 만다. 그녀가 사건에 휘말려 남자에게서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는 영화 노스 컨츄리 (North Country, 2006) 에서 조시 에이미스(샤를리즈 테론 분)가 금녀의 구역 탄광에서 남성들에게 부대끼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이성에 대한 분노가 어디까지인지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영화속의 조시처럼 적들을 무릎꿇리고 당당하게 돌아서는 모습을 기대하는건 미국에서 뿐일까? 내가 사는 이땅에도 후지사키와 같은 피해자는 이시간에도 생기고 있을 거란 생각에 수치감마저 들게 한다.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의 아이 노무라 가즈야에게 내일은 없다. 떠돌이 양아치에게는 오늘이라는 단어만 있을 뿐 내일은 없다. 빠칭코에서 하루를 보내며 근근히 하루벌이를 하거나 톨루엔을 훔쳐 목돈을 마련하는 외톨이에게는 누군가 말만 걸어줘도 그 날은 행운인 것이다. 그에게 소중했던 것은 한 조각의 빵이 아니라 푸근한 사람의 숨결이었고, 살가움이었는지 모른다. 스무살의 잘생긴 양아치의 생활을 쫓아보노라면 우리 영화 태양은 없다 (City Of The Rising Sun) 가 떠오른다. 게다가 그에게는 악연인 친구 다카오가 있지 않은가? 도철(정우성 분)과 홍기(이정재 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누구일지는 독자가 판단할 문제다. 정체성의 확립의 유무를 떠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그 밖에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 끝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라며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이웃집 남자 오타 라는 인물에게서 이 세상에 숨어 사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을 보게 되고, 스무 살의 철공소의 종업원 마츠무라와 은행원 이와이의 이상한 행동들은 무기력한 남자들의 끝을 보는 듯했다.
 
'사람은 어디서 인생이 갈라지는 걸까?'
무심히 내뱉는 미도리의 한 마디가 이 소설의 화두는 아닐지...
 
 





  늦은 밤 잠을 청하려 책을 들었다가 새벽 6시까지 해가 뜰 때까지 가슴졸여 가며, 잔뜩 흥분해 가며 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극한까지는 치닫지 않았지만, 한 번쯤은 경험해 봤던 나의 좌절, 배신, 오해가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지나고 난 후엔 쓴웃음도 지을 수 있는 과거라는 물고기의 비늘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딱 죽고 싶은 최악의 상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키는 오쿠다 히데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읽은 이 책으로 그는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한 명의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했다.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할 영화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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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컨스피러시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한 대 테러 전쟁
에이드리언 다게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8월 8일 오후 8시 이전까지 읽어봐야 할 정치첩보스릴러물 !
 
  우선 이 책은 더위를 잊을 만큼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올림픽이 곧 열릴 베이징에 생화학무기를 투하한다는 테러집단의 계획에 맞서 미 중앙정보부 베테랑 요원 커티스 오코너와 질병통제센터의 케이트 브레이스웨이트 박사가 고군분투 끝에 이를 저지한다는 내용의 영화같은 소설이다. 실제로 첩보부대에서 근무했고, 호주 시드니 올림픽에서 경찰과 공조 하에 생화학 및 핵 공격에 대비안 보안을 담당했던 이력에 걸맞게 저자 에이드리언 다게는 박식한 생화학적 지식과 실전 첩보전의 내용을 스토리에 접목해 내용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계는 지금 전쟁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원유가와 곡물가, 달러화의 약세와 유로화의 강세, 산발적으로 계속되는 국지전등은 신문을 한 권의 지구촌 전쟁일지로 둔갑시켜 토해내고 있다. 속 모르는 국민들이야 가격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만 뉴스 속에 숨어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암투로 뒤범벅되어 있으리라. 지구촌 어느 곳도 안전하다 할 수 없는 요즘의 정세에 어울리게 이 소설은 테러집단과 이에 대항해 세계보안관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과의 대립에 큰 틀을 잡았다.
 
  현 정치인들의 실명이 거론되는가 하면, 세계적인 미항이 폭파되고, 미국 대통령이 암살된다. 그 뿐만 아니다. RNA 바이러스인 에볼라와 전염성이 무척 강한 천연두와 결합된 신종 생화학무기가 등장하고, 세계 각지에 퍼트리는 지구촌을 겨냥한 엄청난 테러음모를 저자는 이 책에서 만들어낸다. 허무맹랑하다 치부할 수 있지만, 9.11을 비롯한 일련의 테러와 그에 대응한 테러와의 전쟁 양상을 미뤄볼 때 확인할 수 없을 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지녔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인지 450여 페이지의 두께를 지닌 한 권의 책은 내 손을 떠날 줄 몰랐다(스토리의 전개상 중간에 결코 덮을 수 없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도 그렇지만, 거론되는 수많은 이름을 되찾아 읽기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지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 정말 독특한 힘이에요. 종교 말입니다. 논리보다 믿음에 바탕을 둔다는 것, 그게 바로 종교의 문제죠. 알라를 대신하여 버스 정류장을 날려버려야 한다고 믿는 무슬림 테러리스트도 그렇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믿는 대통령이나 수상도 마찬가지죠. 어느 쪽이든 제대로 논쟁을 벌일 대상은 아니죠."(p285)
 
  "마지막으로, 그들의 종교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원리주의자드에게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대체 어떤 신이 10억의 기독교인들과 10억의 이슬람교도들, 40억이 넘는 다른 종교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창조해놓고 그중 한 그룹에게만 지도를 준단 말입니까. 대체 어떤 신이 자신의 피조물 중에서 극히 일부만 구하고 나머지는 유황 지옥 속에서 불타게 한단 말입니까. 대체 어떤 신이 자신의 위대함을 무고한 여성들과 아이들을 무수히 죽이는 것으로 보여준단 말입니까. 그런 신이라면 저는 숭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신이 잔혹한 폭력을 승인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원전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입니다.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는 원전을요. (p436)
 
  저자는 [종교가 미국의 중동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를 받은 바 있는 만큼, 이 책에서 그는 대립관계를 단순히 테러분자와 대테러요원으로 놓지 않고, 종교적 차원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테러분자로 치부되는 그들의 항변과 그에 뒤질세라 쏟아내는 미국의 생각을 그는 제 삼자적 측면에서 날카롭게 서로를 지적한다. 곳곳에 저자가 바라보는 서로간의 입장에 대해 피력해 놓은 부분은 현재의 테러양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영상으로 읽는 소설의 흐름을 끊는 경향도 없지 않다. 소설의 진행이 다각적이고 광범위해서  쉬지 않고 완독을 해야 제대로 그 맛을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진 점에서 많은 시간을 낼 수 없는 현대인들이 틈을 내서 읽기에는 여간 쉽지가 않은 소설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테러전에 대한 세계정세를 이해하고, 앞으로 있을 지 모르는 또 다른 테러의 양상을 짐작하는데는 이처럼 잘 해석해 놓은 책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에 강한 흡인력을 지닌 정치첩보스릴러인 만큼 비슷한 장르의 소설을 즐기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매력덩어리일 것 이다. 무엇보다 남의 일로만 여기고 있는 테러 단체와 미국의 전쟁을 보다 생생하게 그리고 새로운 인식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1998년 8월 8일 오후 8시, 베이징 올림픽은 시작된다.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 어느때보다 성대하고 안전하게 치루어져야 할 테지만, 작금의 세계정세와 중국을 미루어 볼 때는 가장 불안학 위태한 올림픽이 될 것 같다. 바라건대 무사히 끝나기를, 이 소설 속의 테러집단들이 바랐던 바 처럼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않길 기원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곧 닥쳐올 올림픽에 있을 테러전 이야기인 만큼 그 재미를 만끽하기위한 유효기간은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 달여 남은 올림픽 이전, 주말에 하루를 잡거나 휴가철을 맞아 기나긴 여정에 읽는다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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