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르트는 리스베트의 병실 앞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돌렸다. 문고리는 무언가에 걸려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 그는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엉거주춤 문앞에 서 있었다. 방안에 안니카 잔니니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만일 그녀의 서류가방에 군나르의 보고서 사본이 들어 있다면 •••••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걸 부술 힘이 그에겐 없었다.
어차피 그의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안니카는 프레드리크가 맡아서 처리할 것이다. 자신은 실라첸코만 끝내면 그만이었다.
에베르트는 복도를 둘러보았다. 스무 명쯤 되는 간호사에 환자와면회객들이 문을 빼꼼히 연 틈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권총을 치켜들어 복도 끝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 대고 한 방 쏘았다. 마치 요술 지팡이라도 휘두른 듯 구경꾼들이 일시에 자취를 감췄다.
그는 꽉 닫혀 있는 문에 다시 한번 눈길을 던진 뒤 결연한 걸음으로 살라첸코의 병실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면회객용 의자에 앉아 오랜 세월 그의 삶에서 내밀한 부분이었던 소련 망명자의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꼼짝 않고 앉아 있은 지 십 분이나 되었을까, 복도에서 들려오는 웅성대는 소리로 그는 경찰이 도착했음을 알았다. 그 순간, 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권총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어진 일들은 살그렌스카 병원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신중치 못한 선택이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에베르트는 급히 외상 전문 응급실로 옮겨졌고, 안데르스 요나손은 곧바로 필수적인 생체 기능을 유지시키기 위한 응급조치를 취했다. - P206

프레드리크가 말을 끊었다.
"그는 암에 걸렸어. 위와 대장, 그리고 방광에 벌써 여러 달 전에사망선고를 받았고, 살날은 두 달밖에 안 남아 있었지."
"암?"
"그는 여섯 달 전부터 그 권총을 가지고 다녔네. 더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자신이 중환자실에 누운 고깃덩어리가 되면 사용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하지만 섹션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해야 했지. 참으로 위대한 마지막 출정이었어."
비리에르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당신은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가 살라첸코를 죽일 생각이었다는 걸?"
"물론이지. 살라첸코가 입을 열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는 것, 이게바로 그의 임무였어. 자네도 잘 알잖나. 우린 그자를 위협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었다는 걸."
"이 일로 어떤 스캔들이 일어나게 될지 몰라요? 당신도 에베르트만큼이나 돈 거예요?"
프레드리크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비리에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팩스로 받은 종이 한 뭉치를 건넸다.
"그건 작전상 내린 결정이었어. 난 지금 내 친구를 애도하고 있고, 얼마 후엔 나도 그의 뒤를 따르게 될 거야. 그리고 스캔들은...... 어느 전직 세무 변호사가 편집광 증세가 명백히 드러나는 편지들을 써서 신문사, 경찰, 그리고 법무부 장관에게 보냈네. 그중 하나를 봐. 여기서 에베르트는 살라첸코에게 갖가지 혐의를 씌우고 있어. 팔메 수상을 암살하고, 스웨덴 국민을 염소로 전부 독살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이 편지들을 살펴보면 정신질환자의 작품이라는 걸 명백히 알 수있지. 제대로 읽히지도 않는 데가 한두 곳이 아니고, 툭 하면 나타나는 대문자와 밑줄과 느낌표, 그리고 이렇게 여백에다 깨알같이 적어높은 방식이 특히 마음에 들어."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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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는 세 문단으로 이루어진 짧은 추도사를 준비했다. 그는 "우리는 거대한 악과 공포의 시대를 살고 있고, 이러한 시대에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전통적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지도자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오펜하이머는 그답게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인간은 믿음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한 인간이 믿는 바가 바로 그자신이다." 루스벨트는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된 이 전쟁이끝나면 "인간이 살기에 보다 좋은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 주었다. 오펜하이머는 다음과 같이 그의 추도사를 마무리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가시작한 일이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도록."
오펜하이머는 여전히 루스벨트가 보어와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만들고 있는 신무기의 특성과 관련된 정보를 일부만 공개할 수밖에 없다는사실을 이해했기를 바랐다. 나중에 그는 호킨스에게 "글쎄, 루스벨트는위대한 건축가였고, 트루먼은 어쩌면 좋은 목수가 될 수 있겠지"라고말했다. - P445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1884~1972년)이 대통령직을 승계할 무렵, 유럽에서의 전쟁은 거의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태평양에서의 전쟁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1945년 3월 9일과 10일 저녁, 334대의 B-29기가 수톤의 젤리 가솔린(네이팜)과 고성능 폭약을 도쿄에 투하했다. 이 대공습으로 10만 여 명이 사망했고 625제곱킬로미터가 전소했다. 이를 시작으로 공습은 계속되었고 1945년 7월 무렵에는 일본의5대 도시가 공격을 받았고 민간인 사상자만 수십만 명에 달했다. 이는적국의 군사 시설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를 파괴하는 전면전이었다.
소이탄 폭격은 비밀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신문에서 공습 에 대한소식을 읽을 수 있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대도시에 대한 전략적 폭격이 깊은 윤리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이해했다. 오펜하이머는 나중에 "나는 스팀슨(전쟁부 장관)이 대일본 공습에 항의하는 미국인들의 시위가 없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도쿄의 경•우에는 대단히 많은 수의 사상자가 있었지요. 그는 공습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이 나라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했고, 그로부터 8일 후 독일은 항복했다. 세그레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첫마디는 "우리가 너무 늦었군"이었다. ‘로스앨러모스의 연구원들은 모두 "장치"를 완성시키는 작업의 유일한 정당성은 히틀러를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것이다. 세그레는 그의 회고록에 "이제 폭탄이 나치스에 사용될 수 없게 되자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라고 썼다. "이와 같은 의구심은 공식보고서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많이 토론되었다" - P446

시카고 대학교 야금 연구소에서 레오 질라르드는 마음이 급해지고있었다. 이 떠돌이 물리학자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원자 폭탄은 곧 완성될 것이고, 그는 그것이 일본의 도시에 사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무기를 만들기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건의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핵무기의 사용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모에서 "우리의 원자 폭탄 ‘시범‘ 발사"는 소련과의 무기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질라르드가 만날 기회를잡기 전에 루스벨트가 죽자, 그는 신임 대통령 해리 트루먼과 5월 25일만나기로 간신히 약속을 잡았다. 그는 트루먼을 만나기 전에 오펜하이머에게 편지를 써서 "원자 폭탄 제조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이 나라의미래는 그리 밝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 질라르드는 이와 같은 무기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명쾌한 방법이 없는 한 "일본에게 원자 폭탄을 사용함으로써 우리 패를 전부 보여 주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모르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폭탄 사용에 찬성하는 쪽의 의견을 들었지만, 그들의 주장은 "나의 의구심을 불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오펜하이머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 P447

5월 31일 전쟁부 장관 스팀슨이 의제를 통제한 이 회의에서는 일본에 폭탄을 투하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토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결정된 것이 나 다름없었다. 스팀슨은 그 사실을 강조라도 하듯 대통령에게 군사 관련 자문을 하는 자신의 책임에 대해 개괄적인 소개를 하는 것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폭탄의 군사적 이용에 관한 사안은 지난 2년간 폭탄을 만들어 온 과학자들의 의견과 관계없이 백악관이 단독으로 결정하게 될것임을 회의 참가자들 모두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스팀슨은 핵무기가가진 의미에 대한 토론에 귀를 기울여 온 현명한 사람이었다. 오펜하이머와 다른 과학자들은 스팀슨이 자신과 다른 임시 위원회 위원들이 폭탄을 "단지 새로운 무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서 혁명적인 변화"로 여긴다고 말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자 폭탄은 "우리를 잡아먹을 프랑켄슈타인"이 될 수도, 세계 평화를 지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의 중요성은 "이번 전쟁에서의 필요성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 P449

하지만 번즈는 이미 폭탄을 미국의 외교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설의 주장을 무시하고 로런스 편을 들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핵무기 생산과 연구에서 우리가 한발 앞설 수 있도록 하고 그와 동시에 러시아화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사록에는 번즈의 의견에 "참석자 모두가 대체로 동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여러 참석자들은 미국이 핵무기에서 "한발 앞서" 있으려면 필연적으로 소련과의 군비 경쟁이 촉발될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중대한 모순은 콤프턴이 "자유로운 연구"를 통해 미국의 지도적 위치를 유지하는 동시에 러시아와 "협조적 이해"에 도달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적당히 봉합되었다. 이와 같은 애매한 결론에 도달한 채로 회의는 오후 1시 15분에 휴회하고 말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누군가 일본에 폭탄을 사용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이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회의가 속개되었을 때 토론의 초점은 계속해서 임박한 폭격의 효력에 맞추어져 있었다. 어떤 결정이든 정치적 함의가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스팀슨은 의제를 바꿔 토론을 계속할 수 있게했다. 누군가 원자 폭탄 1개의 효력은 지난 봄 일본 도시에 행해진 대규모 공습 이상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오펜하이머도 여기에 동의하는듯했으나 "원자 폭탄의 시각적 효과는 대단할 것입니다. 그것은 3,000에서 6,000미터 높이의 엄청난 빛의 기둥을 동반할 것입니다. 폭발로 인한 중성자 효과는 최소한 반지름 1킬로미터 안에 위치한 모든 생명체에 위협을 가할 정도일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스팀슨 장관이 모두가 대체로 동의한 것으로 보이는 결론을요약했다. "우리는 일본에게 어떤 경고도 줄 수 없다. 민간인 지역에 집중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사람에게 깊은 심리적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스팀슨은 "가장 바람직한 목표물은 많은 노동자가 일하고 있고, 노동자 거주 지역으로 둘러싸인 중요한 군수공장"이라는 제임스 코넌트의 제안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즉 하버드 대학교의 총장은 이와 같은 근사한 완곡어법으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의 목표물로 민간인들을 선택했던 것이다. - P453

예를 들어 5월 28일, 전쟁부 차관 존 매클로이는 스팀슨에게 "무조건항복"이라는 단어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요구 사항에서 제외되도록 건의하라고 역설했다. 20 그들이 도청한 일본 기밀 전보(코드명 ‘매직‘)를 해독한 매클로이와 다른 고위 장교들은 도쿄 정부의 핵심 관료들이 워싱턴의 요구대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음을 알았다. 같은날 임시 국무부 장관 조지프 그루(Joseph C. Grew)는 트루먼 대통령과의긴 면담에서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일본 정부관료들은 단 하나의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스위스 주재 전략 정보국 요원이었던 앨런 덜러스(Allen Dulles)가 매클로이에게보고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천황과 헌법을 지키고 싶어 했다. 군사적 항•복이 사회 질서와 규율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216월 18일, 트루먼의 참모총장인 윌리엄 대니얼 레이히 (William DanielLeahy, 1875~1959년) 제독은 일기에 "내 의견에는 현재 일본이 받아들일수 있을 만한 조건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라고 썼다.  같은 날 매클로이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일본 군대의 상황은 "일본의 항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자문해야 할 정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루먼에게 일본 본토를 침공하기 위한, 또는 원자 폭탄을 사용하기 위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정치적인 방법으로 일본의 완전한 항복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천황과 그들이 원하는 정부 형태를 그대로 두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게다가 그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우리가 엄청나게 파괴적인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매클로이에 따르면 트루먼은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7월17일 무렵이면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매클로이가 일기에 다음과 같이쓸 수 있을 정도로 확고했다. "지금 경고를 보낸다면 그들이 가장 취약한 순간에 그것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목적을 이루어줄지도 모른다. 전쟁의 성공적인 종료를" - P459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에 따르면, 그는 7월에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폭탄의 존재에 대해 처음 듣고서는 스팀슨에게 "일본인들은 이미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런 끔찍한 무기로 그들을 타격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루먼 대통령 역시 일본이 항복하기 일보직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통령은 1945년 7월 18일 개인 일기장에 친필로 최근 일본으로부터 도청한 "일본 천황이 평화를 요청하는 전보"에 대해 쓰고 있다. 천황은 모스크바 특사에게 보내는 이 전보에서 "무조건 항복이 평화의 유일한 걸림돌이다."라고 말했다. 트루먼은 스탈린에게서 소련이 8월 15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 둔 터였다. 트루먼은 "그는(스탈린은) 8월 15일에 일본과의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라고 일기에 썼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끝장일 것" - P460

이곳에 육군은 가로 29킬로미터, 세로 39킬로미터의 지역을 점령하고 몇 명의 목장주들을 징발권을 발동해 퇴거시킨 후 야전 실험실과 원자폭탄의 첫 폭발을 관측하기 위한 벙커를 짓기 시작했다. 40 오펜하이머는 시험 부지를 "트리니티(Trinity)"라고 이름 붙였으나, 나중에 왜 그이름을 골랐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막연하게 "나의 심장을 쳐라,
삼위일체의 신이여."라고 시작하는 존 돈의 시를 떠올렸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이는 그가 다시 한번 바가바드기타로부터 영감을 얻었음을보여 준다. 힌두교 교리의 삼위(트리니티)는 창조자 브라마(Brahma), 보존자 비슈누 (Vishnu), 그리고 파괴자 시바(Shiva)였던 것이다. - P465

오전 2시 30분, 시험 부지에는 시간당 49킬로미터의 바람과 심한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리쳤다. 허바드와 그의 일기 예보 팀은 여전히 폭풍이 동트기 전에 잦아 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펜하이머와 그로브스는 벙커 밖에서 초조한 듯이 걸어 다니면서 몇 분에 한번씩 하늘을 보며 날씨의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오전 3시경, 그들은 벙커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시험이 연기되는 것을 참을수 없었다. 오펜하이머는 "계획을 연기한다면 부하들이 다시 제 속도를찾게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로브스는 시험이 예정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더욱 완강하게 고집했다. 마침내 그들은 결정을내렸다. 오전 5시 30분으로 시간을 조정하고 행운을 바라겠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 후,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오전5시 10분, 시카고의 물리학자 샘 앨리슨(Sam Allison)의 목소리가 통제센터 바깥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제 시작 20분 전입니다."

파인만이 색안경을 건네받았을 때 그는 트리니티 부지에서 32킬로미 - P469

더 떨어진 곳에서 있었다. 그는 색안경을 쓰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대신 앨라보고도 쪽을 향하던 트럭 운전석에 올라탔다. 트럭의 창은 해로운 자외선을 차단해 줄 것이었고, 그는 섬광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엄청난 섬광이 지평선 위로 떠오르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흰색의 빛이 노란색으로 그리고 오렌지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중심이 매우 밝은 오렌지색의 거대한 공이 떠올랐고, 약간 소용돌이치더니 가장자리가 조금 검게 변했다. 연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안쪽에서 섬광이 보였고, 불꽃과 열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폭발 후 1분30초가 지나고 나서야 파인만은 거대한 폭발음과 인공 천둥의 떨림을느낄 수 있었다.
 코넌트는 빛이 비교적 빨리 나타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색 광선이 하늘을 메웠을 때 그는 잠시 "뭔가 잘못됐다."라고, "온 세상이 불길에 휩싸였다."라고 생각했다. 서버 역시 3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용접용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팔이 아파서 안경을 잠시 내렸을 때 폭탄이 터졌다. 나는 섬광 때문에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라고 썼다. 30초쯤 후 그의 시력이 돌아왔을 때, 그는 6,000~9,000미터 높이로피어오르는 밝은 자주색 기둥을 보았다. "32킬로미터 거리에서도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폭발로 인한 방사능 낙진을 측정하는 임무를 맡은 화학자 허시펠더는 나중에 이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갑자기 밤은 낮이 되었고, 그것은 엄청나게 밝았다. 그 열기는 추위를 몰아냈다. 불덩어리는 점점•커지면서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다시 붉은색으로 색깔을 바꿨고 하늘로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약 5초 후 어둠이 다시 깔리기 시작했지만 하늘은 여전히 북극광과 같은 자주색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폭풍에 날린 흙덩이가 우리를 지나쳐 날아다녔지만, 우리는 경외감에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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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충성을 하고 가족이나 옛 귀족은 경쟁자로 나서지 않았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칭기스 칸의 샤먼 뎁 텡그리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그는 이제까지 여러 차례 ‘영원한 푸른하늘‘이 칭기스 칸을 사랑하며, 그를 세계의 지도자로 만들 것이라고 예언해왔다. 꿈이나 다른 징조도 칭기스 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여 그의 성공을 돕고 지위를 높였다. 칭기스 칸은 팁 텡그리의 초자연적인 가치를 활용했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가치도 놓치지 않았다. 후엘룬과 테무게 옷치긴의 영지(領地)를 감독하는 일을 맡긴 것이 그런 예다.
그러나 팁 탱그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했고 그와 여섯형제는 막강한 연합체를 형성했다. 이들은 팁 텡그리의 초자연적인 권력을 바탕으로 새로 창조된 몽골 민족 내부에서 칭기스칸 다음 가는 규모의 추종자를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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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텡그리는 칭기스칸이 초원 부족들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만난 마지막 경쟁자였다. 칭기스 칸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파괴했다. 그는 자신의 친척들의 권력을 박탈했으며, 귀족 가문과 모든 경쟁하는 칸을 말살했고, 예전의 부족들을 없앴으며, 사람들을 재배치했고, 마지막으로 초원에서 가장 강력한 샤먼을 죽이는 것을 허락했다.
칭기스 칸은 텝 텡그리의 자리에 새로운 샤먼을 임명했다. 새 샤먼은 나이는 많고 야심은 작았으며 성격은 유순했다. 칭기스 칸의 부하들도 교훈을 얻었다. 그들은 칭기스 칸이 군사적인 힘만이 아니라 영적인힘에서도 가장 높은 샤먼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칭기스칸 자신이 강력한 샤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실제로 이것은 많은 몽골인이 오늘날까지 간직하는 믿음이기도 하다. - P132

칭기스 칸은 시베리아 부족과 위구르인에게까지 친족 관계를 확대했다. 이것은 단순한 통치자 집안 사이의 동맹이 아니었다. 칭기스 칸은전체 부족이나 민족을 통째로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제국에 받아들였다. 부족들의 정치적 언어로 볼 때, 이민족 칸에게 친족 관계를 허락한다는 것은 그 민족 전체와 가족적 유대를 맺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친족이라는 용어는 일종의 시민권을 가리키는 말로 확장되었다. 칭기스 칸이 그 뒤로도 이 용어를 계속 이용하고확대하면서, 실제로 이것은 일종의 보편적 시민권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나 무슬림에 속한 민족의 경우처럼 공동의 종교에 바탕을둔 것도 아니었고, 전통적인 부족 문화의 경우처럼 생물학적 관계에 바탕을 둔 것도 아니었다. 몽골의 시민권은 단순히 신종(臣從)의 의무, 승인, 의리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몽골 제국 내의 모든비몽골 왕국들은 ‘카리‘라고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검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를 뜻하는 말이었다. 위구르와 고려같은 특별한 민족이나 투르크족 가운데 특별한 무리는 몽골족과 인척이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몽골인이 검은 친족 이외의 사람들과 혼인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1209년경 위구르 칸은 결혼을 하러 몽골 왕궁으로 오면서 금은만이아니라 다양한 크기, 모양, 색깔의 진주 등 화려한 선물을 실은 낙타 캐러밴을 이끌고 왔다. 몽골족은 직물을 짜는 기술을 몰랐기 때문에 가죽, 모피, 압착한 양모로 만든 모전밖에 알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가장중요한 선물은 비단, 수단, 다마스크, 공단 등 사람이 만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직물이었다. 위구르인의 방문으로 농업문명의 부와 초원지대부족의 궁핍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며 드러났다. 칭기스 칸은 대군을 호령했지만 그가 다스리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했다. 반면 남쪽 고비 사막 너머에는 비단길을 따라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물자가 흐르고있었다. 칭기스 칸은 이런 물자 흐름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자신의 군대를 다른 군대와 맞붙여 시험해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P136

칭기스칸은 주르첸 사절을 만난 뒤에 케룰렌 강 근거지로 돌아가 1211년 양의 해 봄에 쿠릴타이를 소집했다. 결정할 안건이 무엇인지 모두 알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참석을 거부하여 반대 의사를 표명할 수 있었다. 만일 쿠릴타이 불참자가 너무 많으면 칭기스 칸으로서는 전쟁을 추진할 수가 없었다. 칭기스 칸은 오랫동안 공개적인 토론을 하게 했으며 결국 공동체 모두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전장에서는 병사들이 아무런 질문 없이 명령에 복종해야 했지만. 회의에서는 아무리 지위가 낮은 병사라도 하급 동반자로 대접을 받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과제 설명을 듣고 또 자신의 의견도 제시할 수 있었다. 지위가 높은구성원들은 대규모의 공개적인 회의를 열어 문제들을 토론하고, 그런다음 각자 자기 부대로 돌아가 하급전사들과 토론을 계속했다. 모든 전사의 완전한 헌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가장 높은 계급에서부터 가장낮은 계급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논의에 참여하여 전체적인 계획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긴요했다. - P143

칭기스 칸은 동맹을 맺은 위구르와 탕구트의 대표자들도 참석시켜그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그가 공격을 할 경우 취약해지는 나라의 배와 등을 보호했다. 국내에서는 백성에게 용기를 불어넣고전쟁의 필요성을 이해시켜야 했다. 칭기스 칸은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백성에게 주르첸의 과거의 행패에 복수를 하여 명예를 되찾자고 호소하는 동시에 전쟁에 이기면 주르첸의 부유한 도시들로부터 물자가 제한 없이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몽골 비사』에 따르면칭기스칸은 자신의 백성과 동맹국들이 자신을 확실히 지지할 것이라는자신감이 생기자, 쿠릴타이에서 빠져나와 근처 산으로 가서 혼자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는 모자를 벗고 허리띠를 푼 다음 ‘영원한 푸른하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초자연적인 안내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그의 민족이 몇 세대에 걸쳐 주르첸에게 품고 있는 원한을이야기하고 그의 조상들이 고문과 살해를 당한 과정을 자세히 알렸다.
이어 자신이 먼저 황금 칸과 전쟁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며, 먼저 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칭기스칸이 없는 사이에 몽골 민족은 남자, 여자, 아이 등 세 집단으로 나뉘어 금식을 하고 기도를 했다. 몽골 민족은 모자를 벗고 굶으며 ‘영원한 푸른 하늘‘의 결정과 칭기스 칸의 명령을 사흘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들은 밤낮없이 ‘영원한 푸른 하늘을 향해 고래로부터 전해오는 몽골의 기도 후렴구 "후레, 후레, 후레"를 중얼거렸다.
나흘째 되는 날 새벽에 칭기스 칸은 결정을 내리고 산을 내려왔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 우리에게 승리와 복수를 약속하셨다."
몽골군은 남쪽 화려한 도시들을 향해 출발했고, 자만심에 찬 주르첸군은 그들을 기다리며 조롱했다. "우리의 제국은 바다와 같다. 너희 나라는 한줌의 모래에 불과하다. 중국의 어떤 학자는 주르첸의 칸이 칭기스칸을 가리켜 그렇게 말했다고 기록했다. 이어 주르첸의 칸은 이렇게 물었다. " 어떻게 우리가 너희를 두려워하겠는가?"
그는 곧 몽골의 답을 얻게 된다. - P144

몽골군의 이동과 대형은 두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이 점에서이들은 다른 모든 전통적인 문명의 군대와 분명하게 달랐다. 첫째, 몽골군은 모두 기병으로만 이루어졌다. 이 행군하는 보병 없이 무장한 기병만 있다는 뜻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나라의 군대는 대개 다수의전사가 보병이었다. 주르첸 원정에 나선 약 6만 5000명의 몽골 기병은거의 같은 숫자의 주르첸 기병과 더불어 추가로 8만 5000명의 보병과맞서야 했다. 따라서 주르첸군은 숫자에서는 2대 1 정도로 우세를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몽골군과 같은 기동성이 없었다.
몽골군의 두 번째 독특한 특징은 병사들과 함께 다니는 예비의 많은말들 외에는 따로 병참부나 거추장스러운 보급 대열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동하면서 가축의 젖을 짜고, 가축을 도살하여 식량을 만들고, 사냥과 약탈을 통해 배를 채웠다. 마르코 폴로는 몽골 전사들이 불을 피우거나 음식을 조리하느라 멈추는 일 없이 열흘 동안 여행을 할 수있으며, 말의 피를 마시고, 각 사람이 5킬로그램의 마른 젖 덩어리를 가지고 다니다가 매일 그 가운데 500그램 정도를 물이 담긴 가죽 용기에풀어 식사를 해결한다고 전했다. 전사는 가늘게 자른 육포와 마른 응유를 가지고 다니다 말을 탄 채로 먹었다. 새로 고기가 생겼는데 조리할시간이 없으면 날고기를 안장 밑에 넣었다. 그러면 곧 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졌다.
중국인은 몽골 전사가 적은 식량과 물만으로도 오래 버틸 수 있다는사실에 놀라움과 혐오감을 표시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군대 전체가야영한 곳에서 연기 한 오라기 피어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조리할 불이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주르첸 병사들과 비교할 때 몽골군은 훨씬 더 건강하고 튼튼했다. 몽골족은 고기며 우유며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으로이루어진 식사를 꾸준히 했으며, 적들은 여러 가지 곡물로 이루어진 죽을 먹었다. 농민 전사들은 곡물 식사를 하기 때문에 뼈의 발육이 좋지않았고, 이도 썩었고, 몸에 힘이 없었고, 병에 잘 걸렸다. 반대로 몽골병사는 아무리 가난해도 주로 단백질을 먹었으며, 따라서 이와 뼈가 튼튼했다. 탄수화물이 많은 식사를 하는 주르첸 병사들과는 달리 몽골 병사들은 식사를 하지 않아도 하루 이틀은 너끈히 버텼다. - P148

트자마자 사방을병사들이 이렇게 넓은 지역에 흩어졌기 때문에 통신은 더 중요했고또 더 어려웠다. 예) 재래식 군대는 대규모로 열을 이루어 움직이고 진을•쳤다. 지휘관들은 문자로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몽골족은 부대가 흩어져 있었으며, 장교들도 글을 몰랐다. 각 수준의 통신은모두 문자가 아니라 말로 이루어져야 했다. 명령도 말을 통해 전달되었다. 그러나 구두 통신체계는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가 어려웠다. 그내용을 매번 각 사람에게 정확하게 되풀이하고, 또 상대방은 들은 대로기억해야 했다. 장교들은 병사들이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운을 맞추어 명령 내용을 꾸몄는데, 여기에는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는 표준화된 틀이 있었다. 몽골 전사들은 일군의 고정된 선율과 시의 양식을 알고있었으며, 여기에 명령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말을 즉흥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따라서 병사가 명령을 듣는 것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노래의 새로운 가사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병사들은 오늘날 초원지대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무리처럼 작은 무리를 이루어 말을 타고 다니면서 노래를 자주 불렀다. 몽골 병사들은 고향, 여자, 전투 등 병사들이 흔히 소재로 삼는 노래를 불렀을 뿐만 아니라 법이나 행동 규칙도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이런 내용들 역시 모두가암기할 수 있도록 곡조를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병사들은 늘 법을 암기하고 전달 내용이 담긴 노래 형식을 연습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새로운 명령이 담긴 노래를 쉽게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새로운 명령은 늘 연습하던 노래의 새로운 가사 형태로 전달되었다. 따라서 병사들이 명령을 이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P150

어디서나 전사들은 지도자를 위해 죽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칭기스칸은 부하들에게 자신을 위해 죽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을 할 때 무엇보다도 몽골군의 생명을 보전하는 것을 중요한 전략적목적으로 삼았다. 수십만 명의 병사들에게 쉽게 죽으라는 명령을 내렸던 역사 속의 다른 장군이나 황제들과는 달리 단 한 명의 목숨이라도 함부로 희생하려 하지 않았다. 칭기스칸이 군대를 위해 만든 가장 중요한규칙들은 인명 손실과 관련된 것이었다. 몽골 전사는 전장의 안팎에서죽음, 부상, 패배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생각만 해도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죽은 동지나 다른 전사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중대한 금기였다. 모든 몽골 병사는 자신은 불멸하며, 누구도 자신을 이기거나 해칠 수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죽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전사로서 살아갔다. 모든 것이 실패하고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몽골 전시는 위를 바라보고 ‘영원한 푸른 하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운명을 따라가야 했다. 그것이 그가 지상에서 마지막 하는 말이었다.
유목민은 초원지대에서 싸울 때 죽은 병사의 주검과 소유물을 들판에놓아두어 짐승이 처리하거나 자연스럽게 썩게 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농경지에 오자 몽골군은 주검이 자연스럽게 부패하지 못하고 지역 사람들로부터 모독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몽골군은 주르첸 원정을 하면서 전사들의 주검을 고향으로 보내 초원지대에 매장하게 했다. 이것이 초원지대 전투의 정상적인 패턴과 달라진 점이었다. 주검은 전쟁포로들이 운송했다. 아마 가죽 부대에 넣어 낙타에 싣거나 소가 끄는 수레에 실어 운반했을 것이다. 운송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주검을 근처 풀이 있는 지역으로 가져가 소지품과 함께 몰래 묻었다. 그런 뒤에 말을 타고 무덤 위를 달려 묻은 자국을 희미하게만들었다. 지역 농민이 무덤을 발견하고 도굴하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 P153

몽골군은 당시 군대의 전형적인 방식과는 달리 피난민 무리를 뒤에달고 다닌 것이 아니라 앞세우고 다녔다. 또 몽골군은 방패나 성문을 공격할 때 집을 떠난 농민을 살아 있는 공성 망치로 사용하기도 했다. 몽골군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적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포로들의 몸은 해자를 채우거나 적이 만든 방어용 구덩이나 구조물을 덮어 길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주르첸족과 백성은 도시 안에 갇힌 채 굶주렸다. 결국 여러 도시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생길 수밖에 없었다. 원성이 높아지면서 난민을 보호하지도, 먹이지도, 관리하지도 못하는 주르첸의 관헌에 대항하여 도시 폭동이나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최악의 폭동 사태가 일어났을 때 주르첸군은 자국 농민을3만 명가량 죽이기도 했다. - P156

현대의 아프가니스탄의 산맥으로부터 흑해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은 투르크족 술탄 무함마드 2세가 통치하고 있었으며, 그의 제국은 호라즘이라고 불렀다. 칭기스칸은 이곳에서 나는 이국적인 상품들을 원했으며, 그 목적을 이루기위해 이 머나먼 땅의 술탄과 교역 상대로서 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랐다.
프랑스 역사가 프티는 당시 칭기스 칸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 •••••이 황제는 이제 동, 서, 아시아 북부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었기때문에 호라즘의 왕과 진지한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1217년에 그에게 선물과 함께 세 명의 사절을 보내 •••••  양쪽 사람들이서로 안전하게 교역을 하고, 완벽한 화합을 이루어 모든 왕국이 바라는 최고의 축복인 평안과 풍요를 함께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칭기스 칸은 교역 조건을 협상하고 상업적 관계를 공식화하기 위해 호라즘의 술탄에게 사절을 보냈다. "나는 그대와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크나큰 바람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대를 내 아들로 여기겠다. 그대는내가 중국 북부를 정복하고 북쪽의 모든 부족을 복속시켰다는 사실을알고 있다. 그대는 내 나라가 전사들의 개밋둑이며, 은의 광산이기 때문에 내가 다른 영토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 백성들 사이에 교역을 장려하는 데 똑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술탄은 의심을 털어내지 못해 주저하면서 조약에 합의했다. 몽골인은 상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칭기스칸은 그가 새로 얻은 위구르 영토에서 이미 활동을 하고 있던 무슬림과 힌두 상인들에게 의지했다. 칭기스칸은 그곳에서 450명의 상인과 종자를 모아 하얀 낙타 모피 옷감, 중국비단, 은괴, 가공하지 않은 비취 등의 사치품을 실은 캐러밴과 함께 몽골에서 호라즘으로 보냈다. 그는 인도인을 대표단 우두머리로 보내면서다시 술탄에게 우호 관계를 요청하고 교역을 권유하는 전갈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우리 사이의 관계가 개선되어 악한 생각이라는 종기가 사라질 것이고, 난동과 폭동이라는 고름이 제거될 것이다."76)그러나 캐러밴이 호라즘의 북서쪽 오트라르-현재의 카자흐스탄남부에 있다 에 들어가자 오만하고 욕심 많은 총독이 물자를 몰수하고 상인과 짐승 몰이꾼들을 죽였다. 그때만 해도 그는 얼마나 살벌한 보복을 당하게 될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페르시아의 연대기 기록자 주베이니가 설명하듯이, 총독의 폭력은 캐러밴을 쓸어버렸을 뿐 아니라 결국 "전 세계를 초토화시켰다.")
칭기스칸은 이 이야기를 듣자 술탄에게 사절을 보내 폭력을 휘두른 지방관리를 처벌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술탄은 자신이 아는 가장 극적이고 도발적인 방법으로 칸을 자극했다. 사절들 몇 명을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얼굴을 망가뜨려 주인에게 돌려보낸 것이다. 이 소식이 초원을 가로질러 몽골 왕궁에 들어가는 데는 불과 몇 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주베이니의 말을 빌리면, 몽골 왕궁에서는 "분노의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인내와 자비의 눈에 흙이 들어갔고, 진노의 불이 사납게 타오르면서 그 눈에서 물이 말랐으니 그 불을 끌 수 있는 것은 피밖에 없었다. 칭기스칸은 분노, 수치, 좌절을 느끼며 다시 부르칸 칼둔 꼭대기로 올라가 "모자를 벗고, 얼굴을 땅으로 향하여 사흘 낮밤을 기도하면서 ‘내가 먼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말했다. 그런 뒤에 산에서 내려와 작전을 숙고하며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 P171

몽골군은 귀족을 죽임으로써 적의 사회 체제를 무너뜨렸고, 나아가서 미래의 저항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일부 도시는 귀족이 전장에서 죽고 그 가족이 몰살을 당한 뒤에 사회를 재건할 힘을 다시는 회복하지못했다. 칭기스 칸은 몽골인에게 충성을 하는 관리, 또 몽골인 덕분에 권력을 얻고 높은 자리에 앉게 된 관리만을 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신이 수여한 직책 외에 다른 직책은 인정하지 않았다. 동맹한 제후나 왕이 예전 직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으면 몽골 당국으로부터 다시 그직책을 부여받는 형식을 거쳐야 했다. 교황의 사절 조반니 디 플라노카르피니는 1245~1247년의 몽골 출장 보고서에서 몽골인이 귀족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몽골인은 지위가 낮은 사람들도 그들을방문한 왕이나 왕비 앞을 걸어다니고 무례하게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호라즘 제국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여자였던 술탄의 어머니의 운명은 몽골인이 귀족 여자를 어떻게 대했는지 잘 보여준다. 몽골군은 그녀를 포로로 잡았고, 그녀의 궁정 구성원 대부분과 가족 20명 정도를 죽였다. 그런 다음 몽골로 보내 노예로 삼아 수치스러운 여생을 살게 했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몽골군은 그런 여자의 경우 출생이 고귀하다 해서 존경해주거나 배려해주지 않았다. 다른 남자 포로와 마찬가지로 기술, 일, 봉사를 기준으로 분류해 처리해버렸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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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4월 8일 금요일

새벽 1시 반이 조금 못된 시각, 간호사 한나 니칸데르가 안데르스 요나손을 흔들어 깨웠다.
"무슨 일이에요?" 그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헬리콥터가 들어왔어요. 응급환자 두 명을 싣고요. 나이든 남자하나와 젊은 여자 하나. 여자는 총상을 입었고요."
"알았어요. 가봅시다......" 대꾸하는 안데르스의 얼굴에는 피로가잔뜩 묻어 있었다. - P11

안데르스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비관적인 생각이 엄습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작업을 골키퍼와 비교하고는 했다. 매일 그의 작업장에는 숱한 사람들이 실려온다. 상태는 가지각색이지만 목적은 단 하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노르스탄 상가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74세 노부인, 드라이버에 왼쪽폐가 뚫린 14세 소년, 엑스터시를 먹고 열여덟 시간을 쉬지 않고 춤추다가 얼굴이 새파래져 뻗어버린 16세 소녀, 온갖 안전사고와 폭력의 희생자들, 바사 광장에서 투견들에게 공격당한 아이들, 약간의 손재주를 믿고 전기톱으로 널판 몇 장 자르려다 결국 손목 뼈까지 잘라버린 남자들.
안데르스는 이런 환자들과 장의사 사이에 서 있는 골키퍼인 셈이었다. - P23

"그럼 당신이 차에 치였다고 가정해봐요. 그럼 여긴 곧바로 편집장없는 회사가 되지 않나요?"
에리카가 시선을 치켜들었다.
"나는 차에 치인 게 아니잖아요. 몇 주간 이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겨왔다고요."
"지금 이곳 상황이 어렵다는 건 나도 이해해요. 하지만 미카엘과크리스테르, 그리고 다른 직원들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이 사실을 빨리는 알려야 할 것 같네요."
"그래요. 하지만 당신의 그 빌어먹을 오라버니는 오늘 예테보리에있어요. 쿨쿨 자고 있는지 전화도 안받네요."
"그러게요. 전화를 안 받기로는 미카엘만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없죠. 하지만 에리카, 이건 단지 당신과 미카엘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두 사람이 이십 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이 일을 함께 해왔다는건 나도 알지만, 크리스테르와 다른 직원들 생각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끝까지 감추고 있었다는 걸 미카엘이 알면......"
"그래요. 물론 놀라서 펄쩍 뛰겠죠. 그런데 이십 년간 당신이 단 한번 저지른 실수를 그가 받아주지 못한다면요? 미카엘이 그런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십 년간 헛수고한 거예요.."
에리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 힘을 내요! 크리스테르와 다른 사람들을 불러요. 지금 당장!"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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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데르 살라첸코" 문이 닫히자마자 홀게르가 말했다.
미카엘의 두 눈이 둥그레졌다.
"그 이름을 아십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스베트가 내게 그 이름을 말해줬다오. 사실 나는 이 이야기를누군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소. 내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수도 있으니까. 이제 못 일어날 일도 아니지."
리스베트가요? 그녀가 어떻게 그를 알죠?"
"살라첸코가 리스베트의 아버지요."
맨 처음 미카엘은 그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몇 초가흐른 후에야 각 단어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갔다.
"지금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살라첸코는 1970년대에 스웨덴에 온 사람이오. 일종의 정치망명자였던 것 같소. 사실 나도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오. 알다시피 리스베트가 원래 과묵한데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말이 없었소"
그녀의 출생증명서 ••••• 부친 미상•••••
"살라첸코가 리스베트의 아버지였다니•••••." 미카엘이 되뇌듯 말했다. - P676

"왜 리스베트가 정신과 의사들이나 당국자들과 대화하기를 단호하게 거부해왔는지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들과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그때마다 일은 더 악화됐었죠. 우유팩 사건이 일어난 후에 그녀는 십여 명 되는 어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어요. 생각해보세요. 어린 소녀 혼자서 어머니의 생명을 구하려고 그 흉악한 사이코패스와 맞서 싸웠던 겁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고요. 그런데 어른들은 ‘잘했다‘ ‘넌 착한 아이구나‘라고 칭찬해주는 대신 그녀를 정신병자 수용소에 처넣어버린 겁니다." - P690

살라첸코는 헛간에 갇혀 있고 로날드는 솔레브룬 방면 갓길에 묶여 있다. 미카엘은 잰걸음으로 뜰을 가로질러 농가로 향했다. 제3의위험인물이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지만 일단 집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미카엘은 총구를 땅으로 향하게 하고 살며시 출입문을 열었다. 현관은 컴컴했지만 문이 열려 있는 주방은 불을 밝힌상태였다. 들리는 것은 똑딱거리는 벽시계 소리뿐이었다. 주방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벤치에 누워 있는 리스베트를 보았다.
한순간 그는 석상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이내 엉망이된 그녀의 몸을 바라보았다. 권총을 든 그녀의 손이 소파 아래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그녀 옆에 무릎을 꿇었다. 다그와 미아를 발견하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이제 리스베트도 죽었다는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의 흉곽이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희미하게나마 숨소리가 들렸다.
미카엘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에 들린 권총을 조심스럽게 빼내기시작했다. 그러자 총을 잡은 그녀의 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그녀가 가느다랗게 두 눈을 떴다. 기나긴 순간 같은 몇 초 동안 그를 응시했다. 시선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알아듣기 힘들만큼 낮은 목소리로.
빌어먹을 칼레 블롬크비스트•••••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권총을 놓아주었다. 미카엘은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렀다.

밀레니엄 2권 끝. - P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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