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센트럴파크에서 관찰한 암석층에대해 뉴욕 지역의 유명한 지질학자들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한지질학자는 그가 어린 소년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오펜하이머를 뉴욕 광물학 클럽 회원으로 추천했다. 그리고 얼마 후 오펜하이머는 클럽 회원들에게 강연을 해 달라고 초청하는 편지를 받게 되었다. 어른들 앞에서 강연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겁한 그는 아버지에게 사실을 밝혀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율리우스는 오히려 이를 재미있다고 생각해 아들에게 이 영예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정해진 날 저녁에 오펜하이머는 그의 부모와 함께 클럽에 나타났고 오펜하이머 부부는 자랑스럽게 그들의 아들을 "J. 로버트 오펜하이머"라고 소개했다. 지질학자와 아마추어 암석 수집가가 대부분이었던 청중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오펜하이머가 연단에 오르자 웃음보를 터뜨릴수밖에 없었다. 키가 너무 작아 연단 위로 그의 뻣뻣한 검은 머리카락끝밖에 보이지 않아서 어디선가 구해 온 나무 상자 위에 올라서서야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수줍고 어색해하면서 준비해온 원고를 읽었고 강연을 마친 후에는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이렇듯 율리우스는 그의 아들이 어린 나이에 어른스러운 일을 하는 것을 오히려 장려했다.  -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이크사이드에서 처음으로 키보드 앞에 앉았던 날 빌 게이츠가 느낀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비틀스 또한 매일 밤 여덟 시간씩 일주일내내 연주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엉덩이를 빼지 않았다. 그들은 기회를 향해 뛰어들었다. 일에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을 때, 힘든 일은 감옥 같은 일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가치가 있으면 그 일을 찾아낸 사람은 오히려 아내의 허리를 붙잡고 지그를 추게 된다. - P180

소멸 이후에도 살아남는 문화적 유산의 힘
참으로 놀라운 연구결과가 아닌가? 우선 선조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선조들과 비슷하게 행동한다는결론이 놀랍다. 그러나 이 실험에 참가한 남부 출신 학생들은 그들의 선조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영국계 선조의 자손인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남부에서 자랐을 뿐이다. 그들 중 목동은전혀 없었고 그들의 부모가 목동인 사람도 없었다.
그들이 19세기 후반이 아닌 20세기 후반의 사람들이라는 것. 미국에서도 한참이나 북쪽에 있는 미시건 대학의 학생이라는 것, 남부에서북부로 유학을 올 만큼 개방적이라는 것은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19세기 켄터키주 할란에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코헨은 연구의 뒷얘기도 들려주었다.
"이 연구에 참가한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매년 수십만 달러 이상을버는, 그것도 1990년대 물가 수준에서 그렇게 버는 집안 출신입니다. 그들은 애팔래치아산맥의 언덕배기에서 살다가 온 학생들이 아니에요. 그들은 애틀랜타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의 중간 관리자급 이상 되는 집안의 아들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의문이 생기죠. 그들에게 어떻게 그런 성향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100년도 더 지났는데 왜 명예 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일까? 왜 애틀랜타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도 개척자들과 같은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문화적 유산의 힘은 강력하며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오래도록 지속된다. 또한 문화적 유산은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탄생시킨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소멸된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나아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 - P205

 실제 생활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는 영화에서처럼 자주일어나지 않는다. 엔진의 일부가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일은 없다. 이륙하던 중 그 힘을 버티지 못해 방향타가 뚝 하고 부러지지도 않는다. 기장이 의자 뒤쪽으로 몸을 한껏 젖히며 "오, 신이여"라고 숨죽여 외치는 일도 없다. 첨단기술은 일반적인 상업 민항기를 토스터기처럼 믿을 만한것으로 바꿔놓았다. 따라서 비행기 추락 사고는 사소한 고장과 장애가 축적되어야만 발생하게 된다.‘
••••••
ㅇ 이것은 비행기 사고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산업재해도 마찬가지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산업재해로 1979년에 발생한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섬(Three Mile Island)의 핵발전소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이 사건은 미국의 대중을 충격에 빠뜨렸고 미국의 핵 산업에 치명타를 가했으며 아직도 그 여파가 극복되지 않고있다. 원자로에서 벌어진 이 일은 드라마틱한 사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CharlesPerrow)가 자신이 저술한 (정상 사고Normal Accident)에서 말한 것처럼 ‘닦개‘라고 불리는 거대한 물 필터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닦개는 자주 동작을 멈추었고, 일단 동작이 멈추면  발전소의 환기시스템에 습기가찼다. 그리고 그 습기는 두 개의 밸브를 타고 들어가 발전소의 증기 발전기에 들어가는 차가운 물의 흐름을막았다. 모든 원자로와 마찬가지로 스리마일에도 이런 때를 대비한 예비 냉각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예비 냉각시스템의 밸브가 열려 있지 않았다. 더욱이 예비 냉각시스템의 개폐를 알려주는 계기판이 하필 그 위의 스위치에 걸려 있던 ‘수리요함‘이라는 꼬리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물론 또 다른 예비시스템도 있었다. 원자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특별한 종류의 임시 밸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운이 나봤는지 그날은 그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야 할 조종실의 방사능 감지기까지도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스리마일섬의 기술자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있을 때는, 이미 원자로가 붕괴하기 직전까지 치달은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하나의 거대한 잘못이 스리마일을 위험에 몰아넣은 것은 아니다. 서로 완전히 무관한 다섯 개의 사건, 즉 개별적으로 보면  발전소의 일상적인 잔고장에 불과한 것들이 모여 큰 사고를 불러온 것이다. - P211

우리는 완곡어법의 관점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발견되는 특이점 하나를 이해할 수 있다. 민간 항공사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동등하게 비행에 관한 책임을 진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기장이 조종석에 앉아있을 때 훨씬 더 많은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얘기냐고?
플로리다 항공사의 비행기 추락 사건을 생각해보자. 부기장이 기장노릇을 하고 있었다면 과연 네 번씩이나 힌트만 주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분명 명령을 내렸을 것이고 그랬다면 비행기는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시간이 더 짧은 조종사가 조종간을 잡을 때 비행기가 더욱 안전한 이유는 경험이 더 많은 조종사가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곡어법과의 싸움은 최근 15년간 민간 항공사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대부분의 대형 항공사는 ‘승무원 자원관리(Crew Resource Manage-ment)‘라는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이는 연차가 낮은 승무원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주는 훈련이다.
또한 많은 항공사가 상황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 부조종사가 조종사의 권한을 양도받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장님, 걱정스러운데요"라는 말에 이어 기장님. 이래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해도 기장이 반응하지 않으면, "기장님, 안전한 상황이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만약 이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경우, 부기장은 비행기 운항에 대한 전권을 넘겨받게 된다. 많은 항공 전문가가 최근에 항공 사고가 놀라울 정도로 감소한 이유는 이러한 완곡어법과의 싸움이 승리로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 P227

‘우리는 각각 고유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우리가 성장해온 공동체의 문화적 환경을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이 있으며, 그 차이는 놀라울 만큼 두드러진다.‘
벨기에와 덴마크는 비행기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덴마크인은 벨기에인과 비슷해보이기 때문에 코펜하겐(Copenhagen) 거리에 뚝 떨어지면 그곳이 브뤼셀(Brussels) 거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불확실성 회피라는 잣대를 놓고 보면, 두 나라는 그보다 더 멀 수 없을 만큼 먼 사이다. 불확실성의 잣대앞에서 덴마크인은 유럽 국가 사람이 아닌 자메이카인과 훨씬 더 유사하다.
덴마크와 벨기에는 넓은 의미에서 유럽식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전통에 속하는 나라지만 역사, 정치구조, 종교 전통, 언어, 음식, 건축, 문학 등이 모두 다르다. 이 모든 차이를 종합해보면 위험과 불확실성을 무릅써야 하는 특정한 상황에서 덴마크인은 벨기에인과 전혀 다른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모든 홉스테드 지수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아마도 ‘권력 간격지수(Power Distance Index, PDI)‘일 것이다. 권력 간격 지수란 특정문화가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나타낸다. 이를 측정하기 위해 홉스테드는 "직원들이 관리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또한 조직이나 집단 내에서 권력이 약한 구성원이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음을 인정하거나 혹은 그렇다고 짐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존중받고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그리고 "권력층이 특권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추가적으로 제시했다.
홉스테드는 자신의 저서 《문화의 결과(Culture‘s Consequence)》에서 권력 간격 지수가 낮은 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권력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 부끄러워하고 은밀하게 행사해야 할 그무엇이다. 나는 스웨덴(PDI가 낮은 나라)의 한 대학교 교직원이 권력을 행사하려면 권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도자가 격식을 차리는 모습보다 그 반대의 모습을 더 노출시키고자 한다. 오스트리아(PDI가 낮은 나라)의 수상 브루노 크레이스키 (Bruno Kreisky)는 종종 전차를 타고 출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는 1974년에 네덜란드(PDI가 낮은 나라) 수상 욥 덴 윌(Joop den Uyl)이 포르투갈에서 캠핑카를 타고 캠핑장에서 쉬고 있는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권력자들의 이런 모습은 PDI가 높은 벨기에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어렵다. - P236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은 출신지의 성격과 강하게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PDI가 높은 문화에서 좋은 조종사가 나오기란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PDI가 가장 높은 나라는 컬럼비아가 아니다. 헬름라이히와 그의 동료인 애슐레이 메리트(Ashleigh Merritt)는 전세계 조종사들의 PDI를 측정한 적이 있다. 그 결과가 궁금한가? 1위는 브라질이었고 2위는 한국이었다. - P2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순간 루이스는 도매상에서 직접 물건을 공급받는 것, 즉 중간과정을 없애는 것이 큰 회사와의 가격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는 곧바로 로렌스 앤 컴퍼니(Lawrence & Company)의 빙햄(Bingham)을 찾아갔다. 그는 키가 크고 비쩍 말랐으며 하얀 턱수염을 기른 푸른 눈빛의 양키였다. 오만한 눈빛의 양키에게 더듬거리는 수준의 영어로 말하는 폴란드 출신 이민자의 얘기가 쉽게 먹혀들 리 만무했다. 루이스는 캐시미어 40상자를 구매하고 싶다고 말했다. 빙햄은 그 전까지 단 한 번도 셰리프 거리에서의 전통적인 방식을 어겨가며 개인회사에 직접 물건을 판매해본 적이 없었다. 빙햄은 우레 같은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요구를 하는 겁니까!"
하지만 빙햄은 하루 열여덟 시간씩 일하며 현대 경제를 배우고 시장조사, 대량생산, 그리고 오만한 양키와 협상하는 법을 배운 루이스를이길 재간이 없었다. 심지어 루이스는 새로운 패션 경향을 이해하기위해 스스로를 대중문화 속에 던져 넣는 법까지 익혔다. 결국 빙햄의 대답은 ‘예스‘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뉴욕에 도착한 아일랜드와 이탈리아계 이민자에게는이러한 장점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도시 경제에 적합한 기술이 없었던것이다. 결국 그들은 건설 인부, 가정부, 일당벌이 등의 일을 하러 갔다. 하지만 그 일을 30년간 할지라도 시장조사나 대량생산, 대중문화의 맥락을 짚어내는 법, 세상을 움직이는 양키들과 협상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 - P1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양원에서 그 연락을 받은 건 내가 하던 일을 막 때려치우고돌아나와 집 앞 편의점에서 투 플러스 원 맥주를 계산대에 올려놓았을 때였다.
기세 좋게 던지고 나왔다는 건 내 기준이고, 실은 스프리트검내지 아크릴 파우더와 리퀴드 라텍스에 이르기까지 온갖 재료가담긴 통들이 내게로 날아온 게 먼저였다. 나 맞으라고 던지는 게아니며 방향만 내 쪽일 뿐 벽이나 바닥을 겨냥하는 줄은 알겠고 평소에도 종종 날아오던 건데 왜 그날따라 머리꼭지라도 따인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장이 던진 알루미늄포일 통이 결정타인지 도화선인지 아무튼 뭔가가 되어버렸다.  - P9

극 초반에 어느 허방에 빠지거나 벼랑에서 떨어지거나 여러 방식 가운데 한 가지로 퇴장당하고 말, 조연 이하의 존재. 웬만하면 메스를 잡아서는 안 되지 싶은 늙은 의사가 홀로 진료하던 지역 유일의 산부인과에서 꼭 지금내 나이 때 나를 낳지 않고 혼자서 자유롭게 날아올랐다가 사라졌어야 마땅할, 나의 엄마. 이 생명을 부여했다는…… 이런 세상에 토해냈다는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그리 고맙지 않은, 나의 엄마.
그런 엄마가 쉽지도 않은 발음을 여러 번 해가면서 찾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만약 장소나 사물 아닌 사람 이름이라고 한다면, 은인을 찾는 건지 원수를 갚겠다는 건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 경우 보통은 은인 쪽에 베팅하는 본능 또한 젊은 자식의 선입견에서 비롯한 것일까. 사람이 아무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세상을 붙든 손아귀의 악력도 빠져나가고 웬만한 건 초탈하게 되겠지. 마디마다 바람구멍이 나서 몸의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는 뼈와 축 늘어진 근육 그 어디에, 원한이라는 강렬하고도 에너지 소모가 심한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남아 있겠나 싶은 단견 말이다. 나만해도 실장에게 글루건 말고 딱히 던진 게 없을 만큼, 증오보다는 연민과 허무에 가깝지 않나 싶은 마음으로 돌아나왔는데. - P17

수없이 흥행에 실패한 SF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들, 그 어느 장르보다 고난도의 특수 분장이 필요하지만 이제는 무수히 복제 가능한 대체재가 넘쳐나는 영화들 사이사이에 니니코라치우푼타의 파편이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유년에 실제로 만난 외부의 방문객 혹은 젊은 날 쌓아올린 수많은 지성과 교양의 성채에 금이 가서허물어진 뒤, 베수비오 화산의 유적지와도 같은 인지 공간에 남아 있는 스키마를 동원하여 말년에 조악한 상상으로밖에 빚어낼수 없었던, 세상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존재. 누구도 그 이름의 의미를 알지 못하며 어떤 국가의 글자로도 쓸 수 없으나 태초의 우주 어디에선가 내려와 지금 이 자리에 실존하는 말. 세상 어느 민족에게서도 발견되지 않은 기원전 신화의 끝자락에서 왔을지도모르는 이름. 낱낱의 발음을 입속으로 찬찬히 굴리는 동안 그것은일자一子-이자 진리이자 세계정신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되었다. - P60

민주는 딸의 상태를 보고, 무엇을 보았는지 혹은 겪었는지 모르지만 충격을 받아서 그럴 뿐 얼마쯤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무의식의 바다에 쓰레기를 투척한 자를 잡는 건 나중 일. 그 바다 안에서는 무의미와 유의미의 원생생물이 흘러가고 그중 극히 일부의 사고만이 육지로 올라와 사람의 말로 진화한다. 마, 마아, 무, 엄, 암, 엄마. 보통의 존재가 태어나 처음 배우는 말. 그 말이 다정의 입 밖으로 태어나기 위해 형태를 막 갖추려는 순간, 아직 누구도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심해어의 송곳니가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말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신음만 조금 나오다 말아버린다. 제 목을 스스로 졸라도•보고, 답답한지 가슴도 쳐보는데 기침과 외마디 음절 이상은 끝내 들을 수 없다.  - P66

차라리 태블릿에 입력을 시도했을 때가 그나마 음소라도 나열되어 언어와 비슷했을까. 이번에는 더욱 알아볼 수 없는 선과 점, 도형도 글자도 되지 못한 파편들이 종이 위에 그어진다. 손에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뇌에서 떠오른 말들이 손까지 도착하기 전에 누군가가 회로를 차단한 것 같다. 말을 떠올리고 사용해야 할 뇌의 공간을 공포와 경악이라는 즉물적 감각에 통째로 양보한 것처럽. 양보가 아니다. 약취, 침탈, 점령당한 사고의 맥분이 말의 빵으로 빚어지지 못한다. 말이 혀뿌리에 걸려 부서지고, 말을 형상으로 방출할 글자가 뇌리에서 증발하는 증상을 부르는 이름이 있을까? 이것을 실서증의 일종이라고 보아도 될까?  - P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의 일생, 그의 경력, 그의 명성, 심지어 자존심까지 갑자기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된 것은 1953년 크리스마스 나흘 전의 일이었다. 그는 워싱턴 D.C.의 조지타운 지역에 위치한 자신의 변호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그는 운명적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정부 자문 위원회로부터 사직해야만 할까? 아니면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 의장 루이스 스트라우스(Lewis Strauss)가 그날 오후 느닷없이 전해 준 편지에 담긴 혐의들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편이 좋을까? 스트라우스의편지는 오펜하이머의 배경과 그동안의 정책 제안들을 검토해 본 결과,
그가 보안 위험 인물로 지정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편지는 또한 34건의 협의 사항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말도 안 되는 소문에 근거한 것으로부터("당신이 1940년에 중국 인민 우호회(Friends of the ChinesePeople)의 후원자 명단에 올라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정치적인 공격에 이르기까지 ("1949년 가을부터 당신은 수소 폭탄의 개발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다양한 혐의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 P11

깜짝 놀란 상원 의원이 "도시 어딘가에 숨겨진 원자 폭탄을 탐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구를 사용하지요?"라고 묻자, 오펜하이머는 "드라이버."(모든 상자와 서류 가방을 열어 보기 위한 도구)라고 짧게 대답했다. 핵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어책은 핵무기 자체를 없애는 것이었다.
오펜하이머의 경고는 무시되었고, 궁극적으로 그는 침묵할 수밖에없었다. 반항적인 그리스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주었듯이, 오펜하이머는 우리에게 핵이라는 불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통제하려고 했을 때, 그가 그것의 끔찍한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려고 했을 때, 권력자들은 제우스처럼 분노에 차서 그에게 벌을 내렸다.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의 청문회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워드 에번스(Ward Evans)가 썼듯이, 오펜하이머에게서 비밀 취급 인가를 빼앗은 것은 "이 나라의 오명"이 아닐 수 없었다.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