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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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은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에게 던지는 질문 중> - P23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두번은 없다 중> - P34

어떻게 그처럼 과감하게
모든 걸 떨쳐낼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에 대한 집착과
낮과 밤의 질서와
내년에 내릴 눈과
사과의 붉은 빛깔과
아무리 곱씹어도 늘 부족하기만 한
사랑에 대한 끈끈한 미련을

<루드비카 바브쥔스카 부인을 애도하는 일 분간의 묵념 중> - P44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거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뿐인 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혹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왜 하필 옆 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대는 성난 강아지처럼

<경이로움 중> - P198

행복한 사랑.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상식과 판단력이 행복한 사랑에 대해 무조건 침묵을 강요한다.
마치 완벽한 인생에 느닷없이 끼어든 망측한 추문이라도 되는 양
행복한 사랑의 도움 없이도
완벽하게 훌륭한 아이들은 이 세상에 태어난다.
행복한 사랑이란 좀처럼 없기에
그것만으로 결코 지구를 채울 수 없다.

행복한 사랑을 모르른 이들이여.
행복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고 큰 소리로 외쳐라

그런 확신만 있으면 살아가는 일도, 죽는 일도
한결 견디기 쉬울 테니까

<행복한 사랑 중> - P213

왜냐하면 내가 갈 길을 나 스스로 가로막고 서 있기에.
언어여, 제발 내 의도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다오,
한껏 심각하고 난해한 단어들을 빌려와서는
가볍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열심히 짜 맞추고 있는 나를.

<작은 별 아래서 중> - P217

Non omnis moriar‘시기상조에 불과한 근심 걱정.
정녕 내가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으로 충분한지.
단 한순간도 충분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지금은 더욱더 그러한데.
뾰족한 수가 없기에 끊임없이 버리면서 선택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버렸으니
그만큼 복잡하고, 그만큼 성가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상실한 대가는고작 시 한 구절과 한숨뿐,

<거대한 숫자 중> - P221

"우리는 결코 공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신(神)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길을 밝혀주소서....

<쓰지 않는 시에 대한 검열 중> - P247

양파 

양파는 뭔가 다르다.
양파에겐 ‘속‘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양파다움에 가장 충실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완전한 양파 그 자체이다.
껍질에서부터 뿌리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순수하게 양파스럽다.
그러므로 양파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용감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피부 속 어딘가에
감히 끄집어낼 수 없는 야생 구역을 감추고 있다.
우리의 내부 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옥.
저주받은 해부의 공간을
하지만 양파 안에는 오직 양파만 있을 뿐
비비꼬인 내장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양파는 언제나 한결같다.
안으로 들어가도 늘 그대로다.

겉과 속이 항상 일치하는 존재.
성공적인 피조물이다.

<양파 중> - P252

인생이란.………… 기다림.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
사이즈 없는 몸.
사고(思考)가 거세된 머리.

내가 연기하고 있는 이 배역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역할은 나만을 위한 것이며,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

무엇에 관한 연극인지는
막이 오르고, 무대위에 올라가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인생의 절정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늘 엉망진창이다.
주어진 극의 템포를 나는 힘겹게 쫓아가는 중.
즉흥 연기를 혐오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에 맞는 즉석 연기를 해야 한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사물의 낯설음과 부딪쳐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내 삶의 방식은 언제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려 있다.
내 본능은 어설픈 풋내기의 솜씨.

<인생이란...... 기다림 중> - P257

증오는 새로운 임무에 항시라도 적응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필요하다면 언제나 끈질기게 기다린다.
사람들은 눈이 멀었다고 수군대지만,
증오가 장님이라구? 천만의 말씀.
저격수의 날카로운 눈으로
용감하게 미래를 응시하는 건
오로지 증오뿐이다.

<증오 중> - P330

난 봄을 탓하고 싶지 않다.
또다시 나를 찾아온 데 대해서.
난 봄을 책망하지 않는다.
해마다 주어진 의무를충실히 이행하는 데 대해서.

난 잘 알고 있다.
내 슬픔이 신록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걸.
풀잎이 흔들린다면
그건 바람 때문이란 걸.

<풍경과의 이별 중> - P340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금방 되돌아와야 하고,
또 반드시 돌아와야 할
짧은 여행을 제안받았다.

영원성이 철저히 제거된
유한한 세월 속으로의 여행.
단조롭고 한결같은,
동시에 시간의 순환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의 여행.
어쩌면 기회는 더 이상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건들에 관한 해석 제1안 중> - P363

웅덩이 Katuza

어린 시절 두려움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언제나 웅덩이를 피해 가곤 했다.
소나기가 내리고 난 뒤 새로 생긴 것일수록 더욱 조심했다.
겉보기에는 서로 비슷비슷하지만
개중에는 한없이 깊은 것도 있으니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몸 전체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도약하는 순간, 바닥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좀더 깊숙이 밑바닥으로
수면에 비추어진 구름 저편까지
아니 그보다 더 멀리.

시간이 지나면 웅덩이는 마르고,
내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나는 어딘가에서 영원히 덫에 걸려버렸다.
공간 속으로 끄집어내지 못한 비명소리와 더불어.

먼 훗날에야 깨달았다.
세상의 법칙 속에는
항상 운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슬아슬 불운이 덮쳐올 듯해도
꼭 실제로 일어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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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자연치유 요가 바이블 - 몸과 마음을 제대로 알아야 통증을 잡을 수 있다
이경희 지음 / 글로세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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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 주는 심리적 영향력은 매우 크다. 심리학자 칼 융은 명상은 잘못 형성되어 있는 의식을 해체시켜 무의식의 심층으로 다가가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명상은 잡념의 형태로 떠오르는 자신의 에고(ego)들을 차례차례로 정화시켜 나가면서 결국 텅 빈 자기 초월의 바탕(우주의식 · 순수의식)이 표년으로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명상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지켜봄으로써 몸과 마음의 세 가지 특성 즉 무상(常), 고(苦), 무아(無我)를 정확히 체득하여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러한 특성을 깨닫는 것이 위파사나(Vipassana) 이고 삶을통찰하는 지혜이다. - P17

통제할 수 없는 마음에서 쓰나미가 지나가길 기다리듯이 분노로 가득한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지켜보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쉽게 분노의 힘은 기운을잃고 만다. 나와 내 감정을 분리시키는 연습,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연습, 이것이 바쁘게 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되어야 한다. - P18

마음의 동요는 기억이나 감각인식이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에서 유발된다. 파탄잘리 마하라시가 정리한 요가수트라는 마음의 파도를 조절하거나 멈추게 하여 고요한 상태의 자각에 이르게 하는 것을 요가 수련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파탄잘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이면에 이를 지켜보는 의식이라는 주시자가 있다고 하였으며, 우리의 생각,감정, 행동이 우리 자신의 전부라고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고, 이를 지켜보는 의식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켜보는 의식‘과
‘보는 주체는 자신의 진정한 본질이며 순수한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은 좋고 나쁨의 판단이 배제된 자각이다. 순수의식의 자각을 위해서는 주체와 객체를 동일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집중을 통하다 보면 지켜보는 주체도 지켜봐야 할 객체도 없는 온전한 신성의 단계를 체험하게된다.
- P20

차크라_chakra차크라(Chakra)‘는 산스크리트어로 ‘바퀴(Wheel)‘, ‘소용돌이(Vortex)‘란 뜻으로, 소우주인 몸 안의 에너지가 대우주의 에너지와 함께 바퀴가 돌아가듯이 에너지를 내뿜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차크라는 물질이 아니다. 오라(aura)가 의식의형태이듯이 차크라도 오라의 형태이다. 차크라는 오라보다는 조밀하지만, 물리적인 몸같이 조밀하지는 않다. 각 차크라는 무지개 색깔을 가지며, 서로 다른 패턴으로 척추를 따라서 머리 위에서부터 골반 밑 부분까지 배열되어 있고, 인체 내분비계통과 인접해있다. 삶의 에너지는 이 미묘한 몸을 통해 흐르는데 이것을 ‘쿤달리니(Kundalini)‘라고 한다. 쿤달리니는상징적으로 뱀으로 표현되며, ‘하나로 감겨있다‘는 어원을 갖고 있다. 쿤달리니는 척추 가장 아래쪽에 감긴 상태로 수면을취하고 있다. 차크라 센터는 척추 맨 아래, 복부 밑, 복부 위의 척추 부위(태양신경총), 가슴, 목구멍, 이마, 정수리에 있다.
명상을 통해 쿤달리니를 일깨워 삶의 에너지를 흐르게 할 수 있다. - P28

아스탕가의 여덟 번째 단계인 사마디(samadhi)는 정(精)의 상태 다음에 이어지는 의식의 상태이다. 삼매는 요가의 과정이 아니라, 요가의 최종단계로 드러나는것이다. 인간의 노력은 집중과 정려까지의 과정에서 수반되지만 삼매는 시간과 공간, 자아의 인식과정에서 벗어난 자아실현의 상태를 말한다. 이는 최후의 목표도달하여 소우주인 내(眞我)가 대우주와 하나로 통일되는, 즉 신아일치경我一致境)의 순간이다. - P32

생각이나 마음 너머를 식별하게 될 때 찾아온다.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서는이러한 상태를 마음의 사고 패턴을 고요하게 하는 것(citta vrtti nirodha)이라고 하였다. - P36

명상은 특별한 기법이라기보다는 자아를 지켜보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생각,감정, 행동의 주체가 보통 자신이라고 생각하는데, 명상단계가 깊어지면 이런 것들과 자신을 분리시키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부모가 아이를 관찰하듯 자신을 관찰하여 습관적인 행동이나 반복적인 감정을 제어하고 조절할 수 있게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을 천천히 하고, 순간순간 깨어 있어 자신을 관찰하고 바라봐야 한다. 이런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정신과 내면의 힘, 지적 능력이향상되고 민첩성, 예리함, 집중력과 강인함이 생겨 스트레스를 조절하여 내적 평온함이 극대화되고 나아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 P41

명상은 집중명상과 통찰명상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호흡은 처음에 집중명상에서 시작되다가 곧 통찰명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호흡명상을 하게 되면심신이 이완되면서 내면세계로 의식이 집중된다. 억압된 무의식의 충동, 감정, 왜곡된 지각 등을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지켜보는 힘이 커지면 고통을 일으키는 비현실적인 집착과 부적절한 분노와 같은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된다. 호흡명상은 호흡에 의식을 두고 자각함으로써 내적 평온감이 극대화되면서 심리적 안정과 함께 불편한 감정을 밖으로 폭발시키지 않고 안으로 억누르거나 우울, 불안과 같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내적 정신력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호흡명상은 분노, 우울, 불안 등의 심리적인 치유에 관여한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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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7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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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의 바이블이란 말답게 읽어내기 어려웠다.

최선의 방법은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을 적어두는 것이다. 뚜렷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일기를 적을 것.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일이라도, 그 뉘앙스며 사소한 사실들을 놓치지 말 것. 특히 그것들을 분류할 것. 내가 이 테이블, 저 거리, 저 사람들, 나의 담뱃갑을 어떻게 보는가를 써야만 한다. 왜냐하면 변한 것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범위와 성질을 정확하게 결정지을 필요가 있다.  - P11

사람이 자기의 얼굴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닐까? 아니면 내가 나의 얼굴을알 수 없는 것은 내가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남과 교제하고있는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사람들 눈에 띄는 자기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을 배운다. 나는 친구가 없다. 나의 살이 그렇게도 적나라한 것은 그 때문일까? 마치 -그렇다. 마치 인간에게서 떠난 자연이라고나 할까.
- P40

나는 미래를 ‘본다‘ - 미래는 거기에, 길 위에 놓여 있어, 현재보다약간 희미할락 말락 할 뿐이다. 미래가 실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실현되어보았자 무엇이 더 보태질 것인가? 노파는 약간 절름거리면서, 또박또박 걸으면서 멀어진다. 그 노파는 선다. 목도리에서삐쭉 솟은 흰 머리칼을 잡아당긴다. 노파는 걷는다. 그 노파는 저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에 있다・・・・・・ 나는 내가 현재에 있는지 미래에 있는지 알 수 없어졌다. 나는 그 노파의 동작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 노파의 동작을 ‘예견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나는 미래와 현재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계속된다.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노파는 쓸쓸한 거리를 전진한다. 커다란 남자 신발을 옮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간이란 것이다. 순수한 시간이다. 그것은서서히 인간 존재에게로 다가온다. 그것은 기다려지고, 그리고 그것이 닥쳐오면 사람들은 답답해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래 전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P64

내 생각은 이렇다. 가장 평범한 사건이 모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남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속고 있는 점이다. 한 인간, 늘 이야기를 하는 자이며, 자기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본다. 또 그는 마치 남에게 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살려고 애쓴다. - P79

그 모험의 감정은 확실히 사건으로부터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것은 증명됐다. 모험이란 차라리 순간순간이 서로 얽히는 그 방법에서생긴다. 아마도 그렇다고 생각된다. 즉 갑자기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것, 즉 한순간이 다른 순간에 인도되며, 그 순간이 또 다른 순간에 그런 식으로 인도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매 순간이 사라지고, 그것을 붙잡아두는 게 어리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사건에서 이 특징의 원인을 찾는다. 다시 말하면, 형식에 관련된 것을 내용에 연관시켜버리는 것이다. 요컨대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하지만그것을 보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어떤 여자를 보고 그 여자가 늙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여자가 늙는 것을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어떤 순간에 그 여자가 늙는 것을 보는 것 같고, 또 그 여자와 더불어자기도 늙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이것이 모험의 감정이다. - P110

나의 생각. 그것은 ‘나‘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생각하는 고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기를 단념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내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고있는 저 무(無)로부터나 자신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나, ‘나‘다.
존재하는 데 대한 증오, 싫증,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방법이며, 존재 속에 나를 밀어넣는 방법인 것이다. 생각은 현기증처럼 내뒤에서 생겨나고, 나는 그것이 내 머리 뒤에서 생기는 것을 느낀다.
만약 내가 양보하면 그것은 앞으로 내 두 눈 사이로 오려고 한다-다만 나는 언제나 양보한다. 생각이 커지고 커진다. 그리하여 거기나를 충만케 하고 나의 존재를 새롭게 하는 무한한 것이 있다.
- P187

"우리는 여기에 있고 우리라는 귀중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먹거나 마시고 있지만, 존재하는 데는 어떠한 이유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 P209

이것이, 이 눈부시게 자명한 일이, 그래 바로 그 ‘구토‘란 말이냐?
나는 얼마나 머리를 썩였던가. 나는 그것에 관해서 그렇게도 많이 썼다. 나는 지금 알고 있다. 나는 존재한다- 세계는 존재한다 그리하여 나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뿐이다. 그래도 나에게는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매한가지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무서운일이다. 그것은 내가 물수제비를 뜨려고 했던 바로 그날부터이다. 나는 조약돌을 던지려고 했다. 나는 그 돌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이다. 나는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에 다른 "구토"가 생겼다. 때때로 물건들이 손안에 존재하기 시작한다. - P230

‘부조리‘라는 말이 지금 나의 펜 아래에서 태어난다. 조금 전에..
공원에 있었을 때 나는 그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말을찾지도 않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나는 말없이 사물을 가지고 사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부조리, 그것은 나의 머릿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관념도 아니고, 어렴풋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발밑에서 죽은 기다란 뱀, 저 나무의 뱀이었다. 뱀이랄까, 손톱이랄까, 또는 매의 발톱이랄까, 아무 상관은 없다. 그리고 전혀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나는 ‘존재‘의 열쇠를, 저 ‘구토‘의 열쇠를 그리고나 자신의 생활의 열쇠를 발견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내가 이어서 파악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이 근본적인 부조리로 귀착한다.
- P241

본질적인것, 그것은 우연이다. 원래 존재는 필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란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뿐이다. 존재하는 것이 나타나서 만나도록 자신을 내맡긴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연역‘ 할 수는 없다. 내가보기에 그것을 이해한 사람들이 있다. 다만 그들은 필연적이며 자기원인이 됨직한 것을 발명함으로써, 이 우연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 필연적 존재도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우연성은 가장이나 지워버릴 수 있는 외관이 아니라 절대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무상인 것이다. 모든것이 무상이다.  - P245

나의 온 생활은 내 뒤에 있다. 나의 생활의 전체를 본다.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그 형태와 그 느린 동작을 본다. 거기에 대해서는 할말이 거의 없다. 그들은 내 돈을 전부 빼앗아 간 한 판의 노름이었다.
그뿐이다. 내가 엄숙하게 부빌에 들어온 지 3년이 된다. 나는 첫 판에서 졌다. 두 번째 다시 걸었으나 역시 졌다. 나는 노름에서 진 것이다. 동시에 나는 사람이 늘 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긴다고 생각하는 놈은 개자식들뿐이다. 이제, 나는 안니처럼 하겠다. 나는 연명하련다.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나무들처럼, 물탕처럼, 전차의 붉은 의자처럼, 천천히 고요하게 존재하련다. - P292

‘이제 나는 그들에게 아무 빚도 없다. 나는 여기에 있는 누구에게도 빛이 없다. 곧 역부 회관의 여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 나는 자유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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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 메이트북스 클래식 2
에픽테토스 지음, 강현규 엮음, 키와 블란츠 옮김 / 메이트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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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겉이 번지르르한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뿐완전한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다음에는 자신이 신봉하는 원칙에 따라 따져봐야 한다. 제일먼저 따져봐야 할 중요한 원칙은 ‘이것이 과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이다. 만약 내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 이성으로 하여금 이것은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며 무시하도록 하라. - P21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 내 결핍을 채워주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 이런 것들을 대할 때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것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늘 기억하라. - P25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에 대한 사사로운생각들이다. 예를 들어 죽음이라는 행위 그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만약 죽음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라면 소크라테스Socrates 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두려운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그것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 P29

질병은 육신에 장애를 줄지언정 내 의지에는 장애가 되지 못한다. 절뚝거림은 다리에 장애가 될지언정 내 의지까지 절뚝거리게 하지는 못한다.

내게 닥치는 모든 시련을 이러한 태도로 받아들여라. 그렇게하면 그 어떤 시련도 어떤 면에서는 장애가 되지만, 나 자신의본질적인 면에는 장애가 되지 못한다. - P33

진정으로 선하고 좋은 것을 가질 수 있는 권한이 내게 있다면 누구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도 없다. 큰 권력이나 높은 지위를 가진 자가 되고 싶어하기보다는 자유로운 자가 되기를 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P51

‘나는 사람들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그냥 하찮은 존재로 살다 갈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우울해하지 말라.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을 잘못된 삶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행위로 인해 내가 부끄러운 인간이 될 수 없듯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못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 P58

어떤 행동을 하든지 우선 그 행동에 따른 전후 과정과 결과를 잘 생각해본 뒤에 행동을 취하도록 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자신만만하게 일을 저질렀다가 후에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포기하게 된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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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군대의 장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1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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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시 죽은 군인들의 유해를 찾는 장군을 통해 알바니아와 전쟁중 벌어지는 부조리한일들을 목격하게 되는 장군의 고통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전우들의 유해가 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일각에서 생각하듯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소원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감상벽의 표출은 우리 노병들의 눈엔 아주 유치하게 보여요. 군인이라면, 죽든 살든 오직 전우들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법이죠. 그러니 그들이 함께있도록 놔두세요. 갈라놓지 마세요. 하나가 된 그들의 묘가 우리 마음속에깃든 전사의 옛 기상을 생생히 보존하도록 해주세요. 피한방울만 보아도비명을 질러대는 저 겁쟁이들의 말을 듣지 마세요. 우리가 하는 말을 믿어요. 우리 옛 전사들의 말을.... - P156

"오랫동안 이 문제에 골몰해왔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하층계급사람들이 범죄의 욕구를 느낀다고 했죠. 예술이 주는 강렬한 느낌을그들은 범죄에서 맛본다는 겁니다. 이 원칙은 알바니아인들에게도 썩잘 적용됩니다. 물론 ‘범죄‘라는 말을 ‘전쟁‘이나 ‘보복‘이라는 말로대치해야 하겠죠. 객관적으로 볼 때 알바니아인들 중엔 일반법을 위반하는 범죄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거든요. 그들이 저지르는 살인은 언제나 오랜 관습이 규정하는 원칙들을 따르지요. 저들 사이에서 오랜 세대에 걸쳐 이어져온 집단이나 집안 간의 복수는예술의 모든 법칙이 적용된 한 편의 연극과 흡사합니다. 우선 프롤로그가 있고, 극의 긴장이 점점 고조되다가 마침내 불가피한 죽음을 내포한 에필로그가 닥치죠. 이 복수는 이 산 저 산을 뛰어다니며 지나간자리의 모든 걸 파괴해버리는 고삐 풀린 성난 황소에 비견할 수 있을겁니다. 그래도 그들은 황소의 목에 수많은 장신구를 걸어놓아 미에대한 자신들의 개념을 드러냅니다. 이 짐승이 마음대로 나다니며 사방에 죽음의 씨앗을 뿌리는 동안 저들 역시 다양한 미적 만족감을 맛보게 되는 거죠." - P164

"신부님은 오로지 심리적 요인들을 바탕으로 관습의 문제를 설명하십니다만, 전 그래도 역사적 혹은 군사적 차원의 객관적 동기들을배제할 순 없다고 봅니다. 이나라 사람들을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지아십니까? 위험에 맞닥뜨려 도약을 앞두고 잔뜩 긴장해 근육이 팽팽해지고 모든 감각이 곤두선 채 꼼짝도 하지 않는 한 마리 야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나라는 수많은 위기에 맞서야 했던 만큼 이런 방어 자세가 제2의 천성이 되어버렸는지 모르죠." - P166

"사방이 비와 죽음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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