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화살을 마음의 문을 향해 쏘아날리고, 쏘아날리고, 다시쏘아날려 마침내 마음의 문을 명중시켜 더 이상 쏘아날릴 생각조차떨어져 경허의 마음에는 빈 전통(箭筒)만이 남아버렸다. 그리하여마침내 전통마저 소용없음이 되어 경허는 자신이 부른 깨달음의 노래처럼 큰 법왕이 되었음이다.
- P58

문수보살의 이 질문에 유마 거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나의 병은 생겨났습니다. 일체중생(切衆生) 누구나가 그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모든 중생이 병에 걸리지 않고 있을 수 있으면 그때 나의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생사가 있는윤회의 세계에 들었고, 생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병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중생이 병을 떠날 수 있으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장자에게 외아들이 있어 그 아들이 병들면 부모도 병들고, 만약 그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도 낫는것과 같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내 자식과 같이 사랑하고 중생이 병을 앓을 때는 보살도 병을 함께 앓으며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도 함께 낫습니다. 또 이 병이 무엇으로 인하여 일어났는가 하면 광대한 자비(大悲)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 P92

"추울 땐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 곳이다(時寒熱時熱殺問黎)."
우리는 추우면 더운 곳으로 피하려 한다. 더운 곳으로 피하면 추위를 가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이나 근심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그 고통을 잊으려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이를 피하고 잊으려 한다. 그러나 이를 피하고 잊는다고 해서 그 고통이 소멸된 것은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를 잊으려 할 것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과 그고통의 실체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고통이나 불안을 잊으려 하거나 피하려 한다면 우리는 고통의 노예가 되어 마침내 술과 도박에 중독이 되어버리는 보다 큰 고통을초래하게 될 것이다. - P113

나는 그대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참 아름답고, 참 아름다운 어둠의 대지 속에서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부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 사람들은 하잘것없는 일들을 다투어 구하고 있다. 악과 괴로움으로 뒤끓고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때문에 겨우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가난한 자나 부자나, 남녀노소를 가릴 것없이 모두 돈과 물질에 눈이 어두워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근심 걱정은 떠날 날이 없다. 불안 끝에 방황하고번민으로 괴로워하며 무엇에 쫓기느라 조금도 마음이 편할 틈이 없는 것이다.
논밭이 있으면 논밭 때문에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 때문에 근심하며 가축과 하인과 돈과 재산, 의복, 음식, 세간살이에 이르기까지 이것 저것 걱정거리가 아닌 것이 없다. - P156

있으면 있다고 해서, 없으면 없다고 해서 걱정하고 한숨짓는다.
때로는 뜻밖의 수해나 화재, 혹은 도둑을 만나 재산을 잃어버리고원통해 하고 슬퍼한다. 이런 생각이 맺히면 마음은 멍들어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재산을 잃거나 벌을 받게 돼서 신변이 위태롭게 되면 그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버리지 않을 수 없다. 누구 하나그를 따라 함께 가는 이도 없다. 아무리 신분이 높고 부자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렇듯 괴로움과 근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처의 낮은 목소리는 내 귓가를 울리고 달빛으로 충만한 온누리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또 때로는 이와 같은 고통 끝에 죽는 일이 있다. 그들은 일찍이선한 일을 행하지 않고 도를 닦거나 덕을 쌓지 않았으므로 죽은 뒤에는 혼자 외롭게 어두운 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가 가는 세상은 선업이나 악업으로의 결과에 따라 받는 과보(果報)이다. 그럼에도 이선악에 대한 인과의 도리마저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가족이나 친척들은 서로 공경하고 사랑할 것이며 미워하거나 시기해서는 안된다.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은 서로 보살피고 도와 홀로 탐하거나 인색하게 아껴서는 안된다.
항상 부드러운 말과 화평한 얼굴로 대하여야 한다. 만약 마음속에남을 미워하는 성격을 지니면 금생에서는 비록 조그마한 말다툼이라 할지라도 다른 세상에서는 그것이 큰 원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장에는 충돌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속으로는 깊은 원한을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사를 되풀이하면서 서로 앙갚음하는것이다.
인간은 애욕 속에서 혼자 태어났다가 혼자 죽어간다. 즉 자신이지은 선악의 행위에 따라 즐거움과 괴로움의 세계에 이른다.  - P157

자신이지은 행위의 과보는 그 누구도 대신해서 받아줄 수가 없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좋은 곳에, 악한 짓을 저지른 사람은 나쁜 곳에 태어난다. 태어나는 곳은 달라도 과보는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으므로 그는 혼자 과보의 늪으로 가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로 따로따로 가버리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 만날 길이 없다. 한번 해어지면 그 가는 길이 서로 다르므로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어째서 사람들은 세상의 지저분한 일을 버리지 못하며몸이 건강할 때 부지런히 착한 업을 닦아 생사가 없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고 하지 않는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찾지 않는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고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떠한 즐거움을 꿈꾸고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면 선한 과보가 오고, 도를닦으면 깨달아 생사가 없는 경지에 이른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다음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은혜를 베풀면 복이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선악에 대한 인과의 도리를 믿지않고 그런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믿으려 하지도 않고 있다
- P158

"...이처럼 비뚤어진 소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자기는 바른 생각을 가졌다고 내세운다.
세상이 어지럽고 인심이 거칠어지고 사람들이 애욕을 탐하게 되면 진리를 등지는 사람은 늘고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줄어들게 된다.
세상은 항상 어수선하여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게 될것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거나 낮은 사람이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부자이거나 세상일에 얽매여 허덕이고 저마다 가슴에 독을 품고 있다. 그러한 독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 함부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깊이 헤아리고 생각하여 온갖 나쁜 일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착한 일을 찾아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애욕과 영화는 오래갈 수 없다. 언젠가는 내게서 떠나가고 말 것들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 세상에서 즐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다행히 바른 법을 만났으니 부지런히 닦아라.
마음속으로부터 정토(淨土)에 왕생하려는 원을 세운 사람은 반드시 밝은 지혜를 얻고 뛰어난 공덕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그대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로병사의 고통을 멀리하고 우선 스스로 결단하여 몸과 행동을 바르게 갖고 착한 일을 많이 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몸을 청정하게 갖고,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며, 말과 행동을 떳떳이 하여 겉과 속이 다르지 않게 하라. 그래서 미혹에서 벗어나 중생을 구제하고 원을 굳게 세워 선업을 쌓아라... - P159

-그렇다면 무엇이 진리인가.
무엇이 참다우며 무엇이 올바른 인간에의 길인가. 우리 인간은 무엇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나 길위에 떨어져 있다. 길 위에서 태어나고 길 위에서 자라며 마침내 길위에서 죽어간다. 누구나 자기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 길위에 서 있는 사람을 우리는 인간(人間)이라고 부르며, 그가 걸어가는 길을 우리는 인생(人生)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 길을 가면서무엇을 꿈꾸는가. 보다 많이 갖고, 보다 많이 유명해지고, 보다 많이 즐기는 욕망인가. 그것은 짐승의 길이다. 그것은 본능의 길이며, 본능은 인간을 짐승으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길 위에 서 있다.
우리는 그러므로 누구나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우리가가야할 길을 대신 가줄 수 없다. 함께 갈 벗이나 길동무가 있을 수있겠지만 그 길은 혼자서만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 그 길 끝에 도착할 수 없으면 우리는 몇번이고 다시 길 위에 나서 먼 여행을 되풀이해 떠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인간에의 길인가. - P146

-소치는 다니야와 부처는 두 명의 다른 사람인가. 아니다. 두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나아가는 길(道)이 달랐을 뿐 두 사람은 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소치는 목동 다니야는 자신이 가진소를 버릴 때 비로소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 치는목동인 나는 부처와 다름이 없으며, 이곳에 앉아 있는 나는 경허와다름이 없다. 그렇다. 나는 경허와 다르지 않다. 나 자신이 바로 경허이며 경허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 P153

과거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사람들은 마땅히 집착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과거는 죽은 것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미래의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사람들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미래는 환상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현재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사람들은 분별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현재라고 불리는 바로 이순간도 현재 그 자체는 아닌 것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 P300

나라는 존재는 절대 자유로운 것이며,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자재(自在)할 수 있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자유가 없고, 무엇 하나 임의로 되지 않는 것은 망아(忘我)가 주인이 되고 진아(眞我)가 종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뛰어난 학식과 인격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나를 찾지 못하면 그 사람은 정신을 잃어버린 미친사람에 불과할 따름이다.‘
‘각자가 다 부처가 될 성품을 지녔지만 내가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를 대상으로 하여 구경(사리의 마지막)에 이르면 내가곧 부처인 것이 발견되나니 결국 내가 내 안에서 나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보고 듣고 얻는 지식으로써는 나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나라는 생각만 해도 그것은 벌써 내가 아닌 것이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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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2 - 불타는 집 길 없는 길 (여백) 2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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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해지는 황혼녘의 들판을 떠도는 잠자리떼처럼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소리와, 빛깔과, 향기와, 형상들이 떼지어 날아다니고 있다. 우리들의 의식은 끊임없이 그 잠자리 떼를 쫒아다니면서 채집하고 있다.
귀는 소리를 먹이로 하여 채집하고 있으며, 입은 맛을 먹이로 하여 잡아들이고 있다. 코는 향기를 채집하고 있으며, 눈은 빛깔을 먹이로 하여 형상을 채집하고 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마음은 나무위를 오르내리는 원숭이 (猿猴) 떼처럼 분주하여 쉴 새 없이 생각의티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은 시비를 낳고, 생각은 분별을 낳으며, 생각은 나와 너를 구분하며, 생각은 관념을 낳는다. 생각은 욕망을 낳고, 생각은 망상을초래하며, 생각은 편견을 낳고, 생각은 선입견을 초래한다. 생각은아집을 낳고, 생각은 분노와 공포를 낳는다. 그리하여 생각이 때로는 천국이 되며, 때로는 지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음의 거울 위에는 때가 끼고 먼지가묻지 않을 것이다. 무수히 날아다니는 생각의 잠자리 떼를 물리치기위해 손으로 뿌리쳐 끊으려 하고, 칼을 들어 일일이 베려 한다면 그는 보다 큰 생각의 잠자리 떼와 맞부딪쳐 마침내 비참하게 쓰러지게될 것이다.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칼을 들어 어둠을 상대로 베고 찌르면서 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다. 그저 가만히 불을 켜들면 그만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 잠자리 떼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외계를 향한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문을 가만히 닫아버리는일일 것이다.
그리하면 소리는 울리나 이를 듣는 마음이 없으므로 빈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향기는 있으나 이를 맡으려 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잠자리의 빈 날갯짓에 불과할 것이다. 형상은 있으나 이를 보는눈이 끊어졌으므로 사물은 다만 색(色)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정에도 들지 않고, 잠에도 들지 않으면서 바로눈앞을 지나가는 수레를 보지 못한 이구수 나무 아래의 부처처럼 초월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 P23

아난다는 마침내 그 뜻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다. 절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라는 대답은 다만 충격을 주기 위한 사구(死句)에지나지 않는다. 왜 그런 말을 하였을까. 찰간이란 무엇을 의미함일까. 왜 그것을 넘어뜨리라고 하였음일까라는 식의 분별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비로소 깨달은 아난다는 부처가 금란가사 이외에 물려준 것이 바로 가섭이 난데없이 ‘아이여‘라고 불렀을 때 무심코 ‘네‘
하고 대답하였던 그 행위가 심법(法)임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아난이란 결국 자신의 가명(假名)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름은 다만 생활의 편의상 지은 이름이지 진짜의 이름은 아닌 것이다. 부처가 가섭을 본 것은 본성을 본 것이지 가섭이라는 대명사의 존재를본 것은 아니었다. 가섭도 부처의 본성을 본 것이지 부처라는 대명사의 존재를 본 것은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아난다는 부처를 부처로 보지 아니하고 금란가사를부처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행한 8만의 설법을 부처로 보고있었으며, 부처가 죽은 후 그의 법신에서 나온 금강사리를 부처로보고 있었으며, 금란가사와 더불어 가섭에게 물려준 바리때를 부처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 P39

"진정으로 법을 구하는 사람은 구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있지 않으며 부처를 떠나 따로 있는 마음도 없다(外無別佛 佛外無別心). 선(善)을 취하려 하지 말라. 악(惡)을 버리려하지도 말라. 깨끗함과 더러움, 그 어느 것도 믿어 의지하지 말라.
죄의 본질은 텅 비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으면 쉬지 않고 오가는번뇌의 고리도 끊어져버린다. 번뇌라는 것도 고정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일체의 세계는 오로지 마음뿐이며 모든 현상은 결국 일법(法)이라는 도장으로 모양지어 찍어낸 도장 자국(所印)인 셈이다." - P99

내 상념은 그곳에서 멎어 섰다. 밤하늘에는 나옹 선사가 읊었던그 ‘둥근 밝은 달‘이 떠올라 있었고, 그의 제자 무학이 보고 깨우쳤던 바로 그 달이 떠올라 있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무학이육백여 년 전 보고 깨우쳤던 그 달은 여전히 밤하늘에 머물러 있음이다. ‘달의 얼굴(面)‘은 예전 그대로이다. 다른 것은 보는 사람의마음뿐이다. 달이 뜨고 지고 기울고 차는 것은 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달은 그저 달일 뿐이다. 그것이 초승달이 되고, 그것이 보름달이 되며, 그것이 바다 위에 뜨고, 그것이 바닷속으로 지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일 뿐이다. 달이 뜨고 지는 것은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뜨고 지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달(月)을 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저 달을 달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진면(眞面)의 달을 보고 달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실로 저 달을 달로 보려 한다면 무학이 보고 사무치게 깨우쳤던 그 달을 봐야 한다.
무학이 깨우쳐 본(見性) 달이 특수한 달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보는, 마음속에서 저 스스로가 만들어낸 가짜의 달을 본 것이 아니라 달을 달로서 비로소 본 것뿐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마음속에서지어낸 달을 평생 달인 줄만 알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은떴으나 실은 장님인 것이다.
- P207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 P213

"그대의 병이 중하다고 들었소. 그것이 무슨 병인가. 그것이 몸의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만일 몸의 병이라면 몸은 흙(地), 물(水),불(火), 바람(風)의 네 가지 요소가 거짓으로 잠시 모여 이루어진것. 그 네 가지는 저마다 주인이 있는데 그러하면 어느 것이 그 병자인가. 만약 마음의 병이라면 마음은 꼭두각시(幻化)와 같으니, 비록거짓 이름은 있으나 그 실체는 공(空)한 것이니 병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만일 그 일어난 곳을 추궁하여 본다면 난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하면 지금의 그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 P219

"또 그 고통을 아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피되 살펴보고 또살펴보면 갑자기 크게 깨칠 것이니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바요, 부디 부탁하고 또 부탁드리오. 이것이 내 병문안이오."
뒤숲의 대나무가 바람에 스치어 창과 칼이 서로 맞부딪치는 금속성 소리를 내고 있었고, 대나무의 날카로운 칼에 바람의 살을 에어내는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참으로 좋은 편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대가 병이 났다면 그 병든곳이 어디인가. 마음인가, 몸인가. 몸이라면 흙인가, 물인가, 바람인가, 불인가. 마음이라면 실제로는 없는 것이니 병이 일어난 곳은없는 것이다. 그 병이 난 곳이 어디인가, 그 고통이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따지기보다 그 ‘고통을 아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라. ‘고통을 느끼는 주인공‘이 바로 누구인가를 살펴보라. 나옹 스님은 이렇게 간곡하게 당부하였지요. 이렇게 살피되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 갑자기 크게 깨닫게 될 것이니 이것이 내 부탁이요. 부탁입니다. 이것이 내 병문안의 글(便紙)입니다.  - P220

"이 세상천지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만물 중에 병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물질과, 탐욕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물질과 욕망의대리인생을 사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남의 일생을 대신 살아주고 있는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석달 전에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너희는 네 마음의 주인이 돼라.‘
단 하루만이라도 성성히 깨어 있어 온전히 자기 마음의 주인공으로 삶을 사는 사람은 노예가 되어 백 세를 사는 사람보다 참 자유를얻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지요."
- P221

마음으로 이 몸을 관찰하되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쉴 때는 그 길다는 것을 알고, 짧게 들이쉬고 내쉴 때는 그 짧다는 것을 알아라
이 몸이 어디 갈 때에는 가는 줄 알고 머물 때는 머무는 줄 알며, 앉을 때는 앉았음을 알고 누웠을 때는 누웠다는 상태를 바로 보아 생각이 그 몸의 행동 밖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라.‘
아주 간단한 설법이지만 그 말은 무한한 진리를 담고 있지요. 부처님은 우리가 머물 때는 머무르는 줄 알며, 앉아 있을 때는 앉았음을 알고, 누웠을 때는 누웠다는 사실 이외의 것은 생각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즉 순간 순간의 그 현재에 머물러 있어 생각이 마음 밖으로 흩어지지 말라고 하셨지요. 그리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즐거움을 누릴 때는 즐거운 줄 알고 괴로움을 느낄 때는 괴로운줄 알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을 때는 또한 그런 줄을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스님은 두 손으로 다시 빈 잔에 차를 따르며 말하였다.
"내가 지금 빈 잔에 차를 따르고 있는 이 순간에는 내 온몸과 마음이 차를 따르는 행위에 집중되어 있어야 합니다. 온 우주가 이 빈 찻잔에 담겨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하는 행위는 차를 따르고 있음이 아니라 온 우주를 기울여 그것을 찻잔 속에 따르고 있는절대의 행위이지요."
- P222

"옛날 야보라는 선사는 <금강경송(金剛經頌)>이라는 노래속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대(竹)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月)이 물 밑을 뚫어도
물위에 흔적조차 없다."
참으로 좋은 시가 아닙니까. 달빛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가 바람에흔들리면 뜨락을 쓸어도 먼지가 일어나지 않고, 달이 물위에 떠 있어 물 속을 꿰뚫어도 물위에 생채기 하나 남기지 않는다는 아름다운선시입니다.  - P229

"보아라. 모든 세상 모든 것은 지금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그대의 눈이 타오르고 있다. 눈에 비치는 형상이 타오르고 있다. 그형상을 인식하는 생각도 타오르고 있다. 눈으로 보아서 생기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타고 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으로 인하여 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 노여움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인하여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대여, 이것을 바로 보는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리라. 애착이 없어지면 그대의 마음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이 꺼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렇다.
타오르고 있는 것은 부처의 말대로 저 하늘과 저 바다가 아니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타오르고 있음이다. 내 눈이 타오르고 있으므로 온 세상이 타오르는 것이다. 타오르고 있는 것은 저 생사의 바다가 아니다.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타오르고 있으므로 온세상이 그대로 화택(宅)이다.
온 세상이 그대로 불타는 집(室)이며, 온 세상이 그대로 불타는묘지였다. - P236

임제는 선가 사상 가장 유명한 법문을 하나 남기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께 도를 닦는 여러 벗이여.
그대들이 참다운 견해를 얻고자 하려면 오직 한 가지 세상의 속임수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은 바로 죽여버려라向外 逢使).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어떠한 경계(境界)에서도 얽매이지 않고 인혹(人)과 물혹(物)을 꿰뚫어 자유인이 될 것이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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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1 - 거문고의 비밀 길 없는 길 (여백)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불교문학으로 최인호님의 소설인데 책정리하다 다시 읽어보니 예전과 다른 가슴에 남는 글들이 많다.

이십여 년 간 내가 모든 학문에 두루 정통하였다면. 그리하여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어 오는 납자들에게 학문을 강의하는 당대제일의 대강백이 되었다면 그만큼 나는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속박당하고 있음이다. 나는 뗏목을 지고 가는 어리석은 배꾼에 지나지않으며, 고기를 잡고서도 통발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어리석은 어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토끼를 잡고서도 덫을 여전히 간직하고있는 어리석은 사냥꾼에 지나지 않는다.
버려라.
내가 배워온 모든 학문을.
버려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모든 알음알이를 내가 아는학문은 한갓 얕은 꾀에 지나지 않는다.
베어라. 그리고 끊어라. 그래야만 너는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를얻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너는 부처가 말한 평화로운 바다에이르지 못할 것이며, 그렇지 않고서는 너는 고기를 잡지 못하고 토끼를 잡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그 모든 교법마저도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P174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 몽중이로다
천만고의 영웅 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 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라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바람 속의 등불이라....‘
- P202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울고 통곡하고 그리고는 떠나갔다.
들어올 때는 죽은 사람 크기만큼의 관을 갖고 오고 떠나갈 때는 너나할것없이 과자상자만큼이나 작은 함 속에 한줌의 뼛가루를 배급받아 들고서. 살아 있을 때는 자기 나름대로의 이름과, 자기 나름대로의 사연과 자기 나름대로의 직업과,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온 그 숱한 사람들이 죽어서는 모두들 단 하나의 공통된 이름, 죽은 사람(死者)으로 불리고, 자신의 이름 앞에 ‘고(故)‘의 접두어를 붙이고서.
나는 마치 죽음을 거래하는 시장(市場)바닥에 나와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죽음은 우리의 인생과 너무 밀접하게 가까이 놓여 있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죽음에 붙여진 존재‘라고 규정하였듯 죽음은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누리는 쾌락, 우리가 보내는 시간 속 그 어디에도 조금씩 독(毒)처럼 녹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이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일인 것처럼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다.
살아 있는 생의 뒷면이 바로 죽음 그 자체임을 애써 부정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이 죽음을 외면하고 잊으려고 술을 마시고, 쾌락으로 도망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피살되어버릴 뿐인 것이다. - P254

떠나겠나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형제여내 온 형제들에게 절하며 작별하나이다.
여기 내 문(門)의 열쇠를 돌려드리나이다.
또 내 집에 대한 온갖 권리도 포기하나이다.
오직 그대들로부터마지막 다정한 말씀을 간청할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오랫동안 이웃이었나이다.
하지만 주기보다는받는 것이 더 많았나이다.
이제 날이 밝아어두운 내 집의 구석을 밝히던 초롱불도 꺼졌나이다.
부르심이 왔나이다.
나는 이제 여행의 준비를 하고 있나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탄잘리> - P255

죽음이란 타고르의 시처럼 ‘여행의 준비‘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란살아 있는 동안 간직하였던 문의 열쇠를 돌려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을 때 내 이웃이었던 어머니는 부르심을 받아 이 지상의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깊게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를 부른 그 사람은 누구일까.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작별의인사를 하고, 인생의 열쇠를 돌려주고 떠난 그곳은 어디일까.
내 머리속에는 타고르의 다른 시 구절이 기억되어 떠올랐다.

님의 종인 죽음이 이 몸의 문 앞에 있나이다.
그는 미지의 바다를 건너 님의 부르심을저의 집에 전하러 왔나이다.
밤은 어둡고 이 내 가슴은 무겁나이다.
하지만 이 몸은 초롱불을 밝혀 들고 문을 열어
그를 환영하겠나이다.
저의 문 앞에 서 있는 죽음은 님의 전갈이니까요. - P256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러자 사문이 대답하였다.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실망하여 말하였다.
"너는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하였다.
"너도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또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마침내 말하였다.
"그렇다. 생과 사는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 너야말로 도를 이루었다."

부처의 말은 비유가 아니다. 그의 말은 진리이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며칠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밥 먹는 사이에 있음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숨을 들이마실 때 있고 우리의 죽음은 숨을 내쉴 때있다. 우리는 숨을 들이마실 때 살고 숨을 내쉴 때 죽는다. 우리는끊임없이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우리가 쉴 새 없이 눈을 끔벅이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을 때 우리는장님이 된다. 그러나 뜰 때 우리는 빛을 본다. 그 장님과 봄(親)의찰나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도 우리는 그냥 "보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심으로써 삶과 죽음의 문턱을 하루에도 수만 번씩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 P256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또한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그 두 끝을 보지 않고 그저 부질없이 슬피 울고만 있을것인가. 미망에 붙들려 울고불고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자들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다.
더욱더 괴로움이 생기고 ,몸만 여월 따름이다.‘
- P307

‘소치는 사람이 채찍으로 소를 몰아 목장으로 돌아가듯
늙음과 죽음도 또 그러하네.
사람의 목숨을 끊임없이 몰고 가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끊임없이 타고 있는데
그대들은 어둠 속에 덮여 있구나.
그런데도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보라, 이 부서지기 쉬운 병투성이
이 몸을 의지해 편하다고 하는가.
욕망도 많고 병들기도 쉬워
거기에는 변치 않는 일체가 없네.
목숨이 다해 정신이 떠나면
가을철에 버려지는 표주박처럼
살은 썩고 앙상한 백골만 뒹굴 것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즐길 것인가.‘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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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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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끊임없는 오가는 망상과 현실들이 읽는데 넘 힘들게 했다.

"그렇죠? 이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투성이죠. 예컨대 내주머니에 권총이 하나 있는데..…………, 왜 당신을 쏘아 죽이지 않았는지 나도 설명을 못 하겠다니까요."
엘사가 고개를 들어 테이블 끝에 서 있는 그를 노려봤다. 대위가 물었다.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래, 바로 이것때문인가 봐요. 사람 마음속엔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이 나 있는것 같아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신비한 본능 같은 거라고나 할까. 지금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도 내 운명의 길을따라가다 보면 겪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전에 어디선가 본같고...... 어디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P79

하긴 나도 정상이라고 할 순 없지. 난 원래 이런 인간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내 존재 의식을 되찾고, 또 내 존재를 긍정하려면 당장 뭐라도 해야 해. 그래 바로 그거야.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서. 지금 나는 산송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사실 내가 엘사나 대위, 더구나 바르트를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 마음만 먹으면 저들은 나를 감옥에 처넣을 수도 있고,
바르트는 다시 내 뺨을 갈길 수도 있어. 내가 멀쩡히 보는 앞에서 엘사는 또 다른 놈들과 떠날 수도 있고, 대위가 그날 다시빼앗아 갈지도 모를 일이지. 저들의 눈에 나 따윈 보이지도 않을 거야. 나는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일 뿐이니까. 인간은 행동과는 다르다. 고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유령같이 살면서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그렇기도하고, 아니기도 할 거야. 저기 저 사람들. 저들에겐 분명 처자식과 가정이 있을 테지. 게다가 저들도 나처럼 가난뱅이일 거야.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저들의 집에 침입해서 몇 푼 안 되는돈을 훔치거나 아내를 건드리려고 하면 저들은 당연히 사나운맹수처럼 덤벼들겠지. 그런데 나는 왜 나는 그렇게 못 하는 걸까? 누가 그 이유에 대해 속 시원하게 설명해 줄 수 없을까? 하긴 나 자신도 모르는 걸 남이 어떻게 알겠어. 내가 아는 거라곤늘 그렇게 살았다는 것, 허깨비 같은 존재였다는 것뿐이니. 이런 생각을 해도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리고나면 살인에 대한 호기심이 고요하고 텅 빈 마음속으로 연기처럼 피어오르지. 그래, 맞아. 난 절대로 미치지 않았어. 이처럼생각도 하고 논리적으로 추론도 할 수 있는데 내가 미치긴 왜미쳐 살인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속으로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어. 저 호기심은 분명 나를 불행하고 슬프게 만들 거야. 불행의씨앗을 품은 호기심, 혹은 악마와도 같은 호기심. 그래! 범죄를통해서 내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 P119

그러나 오직 악을 통해서만 지상의 인간들이 자신의 현존을 긍정하듯, 오로지 범죄를 통해서만 나는 나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의 나는 에르도사인 바로 그 자신, 법에 의해서 그리 만들어졌지만 법에게는 끔찍한 악몽과도같을 에르도사인이라는 괴물이 되리라. 그리고 앞으로 나는 또다른 에르도사인, 진짜 에르도사인이 돼서 이 세상을 악으로물들이게 될 수천수만의 이름 없는 에르도사인들 위로 나타날것이다. 이 모든 게 너무 낯설고 이상해. 그렇긴 하지만 여전히어둠이 존재하고 있고, 인간의 영혼은 깊은 슬픔에 젖어 있잖아. 끝을 알 수 없는 슬픔, 아니, 삶이 이런 식이어서는 안 돼!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내 안에 있는 누군가가 절규한다.
만일 삶이 왜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내가 밝혀낸다면, 내 몸에 구멍을 내서라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거짓과위선을 죄다 빼버리고 말 거야. 그러면 지금의 나로부터 새로운 인간이, 우주를 창조한 신들처럼 강인한 인간이 나타나게될 거라고.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럴 때 딴 생각이 드는 거지? - P121

당시 상황에 관해 에르도사인은 뒷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오렌지색 구름 위에서 노니는 달빛과 장미꽃 위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이슬방울을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기 위해서 태어난 줄만 알았어요. 그러니까 살면서 언제나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만 생길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까 제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거예요. 하늘과 땅차이였죠. 아름답기는커녕 사는 게 너무 따분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 없다는투였어요. 늘 비가 내리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같았어요. 그치지 않고 내리는비 때문에 사람들의 눈동자엔 웅덩이가 고이고, 그래서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인간의 운명이란 게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와 다를 바가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인간들도 어항 속 물고기처럼 발버둥 치면서 살다가 언젠가 죽고 말겠죠. 저 푸르스름한 유리 벽 반대편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어요. 거기는 모든 게 다 아름답고 고상할 뿐 아니라 흥에 겨워 노래가 절로 나오는 그런 곳이죠. 여기와는 전혀 달라요. 모든 게 다양하고활기가 가득해요. 거기선 새로운 존재들, 우리 인간보다 훨씬 더 완벽한 존재들이 아름다운 육체를 뽐내며 부드러운 대기 속으로 솟아오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다 쓸데없는 짓이에요.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요." - P146

중남미 현대문학의 선구자인 로베르토 아를트는 1900년대 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그려낸다. 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리고 여기에는 항상 <돈>이라는 현실 논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렇게 아를트는 지극히 현실적인 요소와 형이상학적인 요소를 병치하여 그틈으로부터 나오는 실존의 의미와 존재의 조건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작품해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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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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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있어서 수수께끼란 없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똑같다. 오래전부터 그들을 괴롭혀온 상처와거절된 소원, 자존심을 짓밟힌 마음의 상처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경멸로 인해, 더 심각하게는 무관심으로 인해 꺼져버린 사랑의재가 되어 불행한 이들에게 달라붙어 있다. 아니, 그들이 이런 것들에달라붙어 있다. 그리하여 불행한 이들은 수익처럼 자신들을 감싸는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행복한 이는 뒤돌아보지않는다. 앞을 바라보지도 않고, 다만 현재를 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한 점이 있다. 현재가 결코 가져다주지 않는 게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의미다. 행복해지는 방법과 의미를얻는 방법은 다르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순간을 살아야 한다. 단지순간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의미를, 꿈과 비밀과 인생에대한 의미를 얻고 싶다면, 아무리 어둡더라도 과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며, 아무리 불확실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연은 행복과 의미를 우리 앞에 대롱대롱 흔들어대며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다그친다. - P10

인간은 가장현실적이지 못한 것을 가장 좋아하게 마련이다. 의학은 내게 현실을상징했다. 의대에 가기 전에 내가 했던 일들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고, 모든게 놀이였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죽어야 죽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아들들에게 현실의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서.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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