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수영 대회 야옹이 수영 교실 3
신현경 지음, 노예지 그림 / 북스그라운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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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수영 교실 1권의 리뷰를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2권도 넘어갔고... 3권의 리뷰를 써보려고 한다. 이 시리즈 참 괜찮다. 만화 아니면 고개를 젓는 아이들에게 건네주면 좋겠다. 그림도 내용도 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유치하지도 않고 수준이 있다. 이 책이 줄글책으로 가는 다리가 되어주어도 좋을 것 같다. 가정이나 학급문고에 꽂혀있기에 적절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판매지수가 높구나.

그림작가 노예지 님은 고양이를 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하는데, <고양이 난로>라는 책에서 같은 그림체를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참 좋았는데, 이 책을 그리기에 최적의 작가님을 잘 찾은 것 같다.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귀여운 그림체가 누구에게나 호감일 것 같고, 고양이 마을 이야기인 만큼 고양이 캐릭터가 많이 필요한데 다양하게 잘 살려내셨다. 수영 뿐 아니라 스케이트 등 다양한 운동 동작이 잘 표현되었고 특히 이번 3권은 내용이 거의 스포츠 만화 수준인데 그것 또한 긴박감 있게 잘 표현되었다.

1권에선 야호 마을에서 호야 코치의 지도 하에 수영교실을 열게되기까지의 과정이,
2권에선 아빠를 잃은 상처가 있는 나루가 호야 코치를 의심했다가 오해가 풀리는 과정을 담았고 수영 면으로는 생존수영법이 들어가 있다.
3권에선 고양이들의 수영 실력이 많이 성장했고 그중 재능있는 아이들도 드러난다. 호야 코치와 프릴 아주머니는 불꽃마을에서 열리는 '불꽃 수영 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정한다. 그 대회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

3권의 주인공은 '밍크' 라는 흰 고양이다. 얘는 스케이트나 발레 등을 하다 포기한 경험이 있고 '나는 재능이 없어' '내가 재능이 있나?'에 좀 민감한 아이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수영은 끝까지 해보려고 굳은 결심을 한다. 대회도 출전하기로 하고 연습에 열심히 참여한다. 소심하고 심하게 긴장하는 성격이 나랑 같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게 되는데...

친구들 중에는 만능스포츠맨 나루가 막강한 경쟁상대고, 다른 두 마을의 참가자 중에도 다크호스들이 있다. 밍크는 잘 안되는 부분을 해결하려고 새벽연습까지 다닌다. 연습을 마치고 먼동이 트는 모습을 새벽연습 친구인 카이와 함께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가슴 속에 해가 뜨는 기분이야."
"나도. 왠지 힘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려."
사람이라면 무릇 이런 기분을 체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불 속에서는 절대 못 느끼는 이 느낌. 죽도록 싫어도 일단 떨쳐 나와야 느낄 수 있는 이 느낌. 솔직히 나는 이걸 많이 느껴본 사람은 아니다. 나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들은 타고난 재능과 함께 이 느낌을 나보다 많이 체험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한 번도 못 느껴 봤다면? 당장 뭐라도 찾아보기! 성공 여부는 그 다음이다. 건강한 자존감과 생활태도가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요즘 이불 밖은 위험해 태세로 살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하려니 몹시 찔리네^^;;;)

드디어 대회. 마을별 5인에 뽑힌 선수들은 대회 참가를 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응원을 한다. 예선과 결선을 치르는 대회 과정을 실감나게 잘 담았다. 결과는? 기적 같은 건 없었지만 나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결과가 따르지 않았어도 충분히 감사할 만한 과정이었지만 결과도 따라왔으니 더욱 감사한 일!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프릴 아주머니와 나눈 대화도 아이들과 꼭꼭 짚어 읽어보고 싶은 대목이다.
"밍크야, 나무가 잘 자라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니?"
"물이랑 햇빛이요?"
"하나 더, 바람이 필요해.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더 튼튼하게 자란대. 이번 수영 대회가 너한테는 바람이었던 것 같아.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잘 버텨 냈어."
때로는 아이들을 이 '바람'의 장으로 인도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두 리더처럼. 하지만 갈수록 꺼려진다. 저항과 불평이 두렵기 때문이다. 타격도 크고. 하지만 지혜롭게 살살 해나가야겠지. (이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지만^^;;;) 결국 아이들의 성장은 거기서 일어나니까.

마지막장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인물을 보니 이 시리즈의 다음권도 나올 것 같다. 수영교실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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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포포프 - 잊힌 아이들을 돕는 비밀스러운 밤의 시간 다산어린이문학
안야 포르틴 지음, 밀라 웨스틴 그림, 정보람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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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핀란드아동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세계 여러나라에 번역된 책이라고 한다. 이력에 걸맞게 흥미롭고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가장 매력적인 소재는 '라디오'였다. 요즘의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통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 어린시절은 라디오의 시대였다. 나는 라디오를 사랑했다. 정말,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라디오가 TV, 컴퓨터, 스마트폰에 차례로 자리를 내주는 급변의 시기를 내가 살아왔구나. 어릴 때 TV가 없었던 우리 삼남매는 5시면 라디오의 어린이방송을 들었다. 우리가 '연속극'이라고 부르던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소리로만 감상하는 것이니 일종의 낭독극이라 할까. 기억나는 제목은 '어린왕자'와 '운디네' 등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 수준높은 명작들을 들려주었네. "아저씨, 나 양 한마리만 그려줘." 하던 성우분(여자성우였음)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운디네의 마지막은 어찌나 슬프던지 눈물바람이었던 기억이 나고... 가끔 그시간에 아빠가 고교야구 듣는다고 하나밖에 없는 라디오를 차지하면 언니랑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곤 했다.

라디오 면에선 조숙했던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방송을 즐겨들었는데, '별이 빛나는 밤에'라든지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방송들. (찾아보니 아직도 하고 있다! 놀랍다.) 송승환, 김창완, 이수만 등등 시조새 같은 분들의 진행을 들었고 커서는 이문세로 정착했다. (이문세 이후로는 잘 모른다.^^;;;)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가 됐었을까 의심스럽지만 고3때도 들으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정신적 안정감을 준다고 할까. 친구 같다고 할까. 내게 라디오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라디오 소재의 이 책에 눈길이 갔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매우 현실적인 설정과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섞여있다. 먼저 현실적인 설정은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양상으로 학대 상황에 처해진 아이들이 많다' 는 것이다. 난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다. 심하고 약하고의 차이가 있고, 본인들이 그걸 알거나 아니면 아예 인식도 못하거나의 차이가 있을 뿐, 생각보다 꽤 흔한 일이라고 본다. 국내 작품이 아닌 먼 유럽의 작품이라도 비슷하구나....

비현실적인 설정은 작품 속 어른들 중 일부(대표적으로 아만다)가 잊혀진 아이들의 한숨에 반응하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다. 아만다와 알프레드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만다는 아빠가 팽개쳐두고 남겨진 알프레드의 한숨을 들었고, 신문을 배달하는 길에 신문과 함께 사과, 양말 등을 투입구에 넣어주었다. 그러다 두 사람은 맞닥뜨리게 되고, 알프레드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집을 떠나 아만다의 집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알프레드는 알게 된다. 아만다가 찾아가는 아이들이 자기 말고도 있다는 것을. 어떤 아이는 온 집안이 부모가 마신 술병이고, 어떤 아이는 자기도 어린데 동생을 전적으로 돌봐야 한다. 그보다 더 끔찍한 상황도 있다. 여기서 바로 그 흥미로운 소재가 나온다. 라디오! 아만다의 집은 할머니께 물려받은 것인데, 할머니의 친척 아주머니의 친구가 러시아 물리학자 포포프라고. 그가 남겨둔 설계도와 통신기기를 두 사람이 찾아낸 것이다. 100년도 넘은 것들을. 안테나를 세우고 주파수를 찾아내고 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주파수 맞추기 위해 다이얼 돌리면 지지직 소리가 나던 어릴 적 기억도 났고.... 아만다는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잊혀진 아이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을 하자는 것. 방송 시작을 알리는 안내문을 먹을것을 갖다준 것과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전달해 준 후, 어느 토요일 새벽 드디어 방송을 개시했다. 이름하여 '라디오 포포프' 이 책의 제목이다.

진행자는 알프레드다. 매주 다른 이야기로 방송을 잘 진행한다. 알프레드의 방송 원고를 읽으면서 라디오 방송 원고를 쓰는 일도 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방송에서 인상적인 멘트는 이것이었다.
"가끔은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걸 기억하세요. 세상엔 언제나 여러분의 소리를 듣는 누군가가 있답니다. 여러분이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 때 여러분을 생각하는 누군가가요." (100쪽)

그 '잊혀진 아이들'은 주파수를 맞추고 라디오 포포프를 듣는데 성공했을까? 아만다의 민감한 귀는 그걸 구별해냈다.
"약간의 기다림과 흥분. 그리고 희망도 있었지. 내 귀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105쪽)
자신들과 다를 것 없는 아이가 진행하는 서툰 방송을 듣기 위해 1주일을 기다리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일지. 알 것 같았다. 왕년의 라디오 애청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테지.

한편, 아만다의 배달 일을 돕던 알프레드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장면을 목격하고, 겨우 아빠 눈을 피해 아만다의 집으로 돌아온다. 아빠는 아들을 찾겠다고 학교도 한번 찾아오는데.... 아빠가 아들 찾는게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다가가는 걸 보는 양 왜 이렇게 조마조마한겨.... 이 부분 이야기가 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한 부모의 존재가 안타까웠다. 그래도 이 책에 나온 '잊혀진 아이들'은 다행이다. 아만다와 같은 어른들이 소수지만 있었고, 라디오 포포프가 이어준 공감과 연대가 있었으니까.

가정에서의 아동학대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다. 오죽하면 이 작가가 '밝은 귀'라는 설정을 했을까. 그런 귀가 없다면 알아채기 어렵다는 게 아니겠나. 그 안에서 비틀려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다. 우리나라도 아동학대법을 만들었지만 그 아이들을 구제하는데 쓰이지 못하고 엉뚱한 데만 찔러 피를 보고 있다. 참 어려운 문제다. 작가는 그 해법을 '이웃'으로 본 것은 아닐까. '밝은 귀'는 이웃들의 눈과 감각인 것이겠지. 하지만 요즘처럼 오지랖이 혐오받는 세상에 이건 가능할까.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알프레드에게 많은 행복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끝난다. 이 책의 결말처럼 부모 복이 평생을 좌우하는 프레임이 아니길, 그리고 부모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길, 이웃의 사랑과 연대가 가능하길 바란다. 이웃의 역할에 대해선 나도 가장 자신없는 영역이긴 한데...ㅠ

이 책은 일단 재밌으니 어린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어른들도 많은 생각을 하고 나눌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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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퍼즐
김규아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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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아 작가님의 만화를 쭉 따라 읽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 책은 2024년작. 나온지 몇달 되지 않았다. 김규아 작가님 책의 일관된 느낌은, 만화지만 비슷한 쪽수의 동화나 소설보다도 더 알차고 풍부하게 서사와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중에 개인적으로 더 좋고 덜 좋은 순위는 있지만 어쩌면 한결같이 다 좋은지. 이야기와 그림이 모두 다.

이 책에도 여러가지가 잘 짜여져 들어가 있다.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고학년 정도 아이들의 친구관계와 갈등이다. 특히 부정적 에너지를 뿜어내며 이간질하고 관계를 망치는 빌런이 있을 때. 두번째는 자존감이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솟아오를 수 있는 건강한 자존감. 이게 있고 없고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세번째는 다양성이다. 앞의 자존감과도 관련이 된다. 남과 다른 나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보기, 나와 다른 남의 특성을 존중하기.

시간적 배경은 가까운 미래다. 2038년이라고 하니 작가님 집필 시점 15년 후가 아닐까 짐작된다. 그래서 현재에 없는 것들이 등장하되, 시대를 뛰어넘은 엄청난 상상력을 동원한 것들은 아니다. 예를들면 교실에는 AI의 역할이 좀더 커졌고(티봇이 여러가지를 체크하고 지원한다. 등교 시 학생들 컨디션 체크도 하고 안전관리와 청소도 하고 등등) 주인공 은오는 한쪽 팔이 로봇팔이다. 은오와 단짝친구 수아는 학교 끝나고 함께 잼잼마켓에 가서 간식을 사먹는 시간을 무척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과자를 디자인하고 무인기기가 제조해주는, 재미와 맛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가게다.

이런 배경들 중 서사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은오의 로봇팔이다. 은오는 여섯 살때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잃었고, 이후로 로봇팔을 달고 살게 되었다. 감각은 없지만 움직임은 가능한 보조기구다. 이런 기술은 이 책의 설정처럼 빨리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안경이 없다면 나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보조기구 차원에서 보면 나 또한 은오와 같은 선상의 장애인인 것이다. 이런 신체 보조장치들은 빨리 발전하고 보급되면 좋을 것 같다.

은오는 사고때의 기억이 없지만 굳이 그 과거를 억누르려 하지 않고, 로봇팔에도 적응했으며 남에게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친구들도 다 알고 인정하며 함께 야구도 하는 등 잘 어울려 지낸다. (은오는 홈런 타자!) 문제는 지빈이가 전학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지빈이는 첫눈에도 매우 특이했다.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청 까칠했고, 자기소개를 이렇게 했다.
"내 얼굴에 화상자국이 심해서 보기 불편할 거야. 나도 보여주기 싫고. 봉투는 건드리지 말아 줘."
반 친구들은 은오와 그랬듯이 지빈이의 다른 점도 존중하며 잘 받아들여 지낸다. 그런데 지빈이는 뭔가 심상치가 않다. 잘해주려는 아이들이 순진해 보일 만큼.

왜 그랬을까. 봉투 속 보이지 않는 지빈이의 표정은 무엇일까. 얘는 왜 은오를 타겟으로 잡았을까. 지빈이는 교묘한 이간질과 약자 코스프레+선심쓰기로 결국 은오를 고립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니... 쉽지 않다. 빌런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선 순진한 선의보다 때론 냉정한 판단력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은오의 단짝친구 수아, 한결같이 호의적이던 재우와도 멀어지게 된다. 은오 곁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주 공교로운 일들이 겹치고 꼬였지만 누구도 그것을 차분히 풀어 진실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은오가 망가질 위기다. 누구도 그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은오는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엄청난 의지력을 가진 특별한 아이도 아닌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견뎌냈고 실마리는 풀려갔다. 친구와 단절되었을 때, 그래도 은오 옆에는 누가 있었다. 밝고 현명한 가족이. 그중에서도 할머니. 할머니가 계셨기에 가능했다. 엄마 아빠도 좋은 분들이었지만 할머니라는 다리가 없었다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할머니는 사고 이후부터 은오네와 함께 살며 은오를 돌보았다. 따뜻하고 섬세한 분이면서도 동시에 쿨하고 독립적인 분이다. 은오의 심리적 위기에 같이 동요하지 않고 감정을 처리하고 힘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잔소리와 설교 없이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알려주신 할머니. 퍼즐을 좋아하시는 할머니. 퍼즐의 진리를 알려주신 할머니.
"오, 우리 아가. 남들이 너를 보고 어떤 얘기를 하든 그 무엇도 정답이 아니야."
"퍼즐 조각은 말이야, 이 모양 그대로 이 자리에 딱 알맞아. 그래야 전체 그림이 완성되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이 완성되지."
이 책의 제목인 <너와 나의 퍼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굳게 선 어른의 존재는 얼마나 귀한가. 나는 이런 어른이 못 되어보았다. 할머니가 된다 해도 안될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15년 후면 이분과 비슷한 나이가 될테니 이분은 내 또래라 할 수도 있겠구나. 어쩐지 김광석을 즐겨 들으시더라니.^^ 어른도 흔들리고 아이들은 더 흔들리는 시대. 상처의 파장이 더욱 커지는 시대인 것 같아 염려스럽다. 우리 은오는 잘 이겨냈지만.

마지막으로 지빈이. 지빈이의 결말까지 말하면 너무 남김없이 말하는 것 같아 여기까지만. 은오에게 주어졌던 힘이 지빈이에게도 주어지길.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이 책은 환한 작품이다. 모든 아이들은 여기에 나왔던 누군가일 수 있다. 이 책이 아이들에게 다가가 할머니가 주셨던 그 힘과 생각의 깊이를 줄 수 있길. 자신을 성찰하고 단단해질 수 있길. 그래서 무척 권하고픈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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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니? Dear 그림책
소복이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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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함축적이다. 밖에서 보면 좁지만 들어가보면 무한정 넓은 방과 같다. 나는 소복이 님의 만화를 '시 같은 만화' 라고 표현해보고 싶다. <소년의 마음>이라는 만화에서도 그 안의 출렁이는 서사와 인물들의 마음을 느꼈는데, 이 책은 더하다. 등장인물이 매우 많아서인 이유도 있다. (두 장마다 다른 인물이 나온다) 이 책은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있다. 만화책과 그림책의 중간, 만화책 같은 그림책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시 같다고 느낀 건 반복되는 말이 주는 운율 때문이기도 하다. "왜 울어?" (또는 왜 울어요?)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 각장이 이루어져 있다. 등장인물은 남녀노소 매우 다양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울 일이 있으니까. 이 책을 읽고 수업이나 독서모임에서 시를 쓰고 나누는 것도 좋은 활동이 될 것 같다. 특히 수업에서 아이들의 전형적인 표현을 탈피하고, 자신의 내면을 깊이있게 들여다보게 한 후 글을 쓰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

각 장을 넘겨 인물과 상황을 파악해가면서 나는 감탄했다. 작가님은 이 그림책을 완성하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을까. 한조각도 놓치거나 흘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첫 번째 우는 아이는 "엄마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서 울어." 라고 한다. 자다 깼는데 엄마가 없는 서러움. 나도 어릴 때 엄마를 무척 밝혔다. 보통 둘째가 씩씩한데 나는 언니나 동생보다 유독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맴돌았다. 첫장부터 공감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바로 다음 장이 웃음코드인 것이 신의 한수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있어서 울어." 아빠와 작당한 아주 작은 일탈의 현장을 들킨.ㅎㅎㅎ 아이들이 '재밌겠다'고 책을 넘기게 되는 아주 영리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만 나오는 게 아니다. 삼촌은 실연을 당했고, 형은 직면한 인생에 답이 없어 고민한다. 아빠는 이리저리 떠밀리는 인생에 자신감을 상실했고, 아저씨는 마음에 없는 말을 쏟아놓고 후회한다. 제일 슬펐던 장면 두 개를 꼽는다면 이렇다.
"딱 한 번만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고 싶어서 울어."
작은 무덤 앞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여자아이. '딱 한 번만' 이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아픈 말이라니.
화자인 아이의 할머니도 엄마가 계셨다.
"우리 엄마가 점점 작아져서 사라져 버릴까봐 울어."
써놓고나니 둘다 죽음의 슬픔이구나. 헤어짐의 슬픔이라고도 하겠다. 이걸 누가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포인트 두번째는, 사람들이 슬퍼서 우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외로워서 울기도 하고, 안심이 돼서 울기도 하고, 심지어 기뻐서 울기도 하지. 서운해서 울기도 하고, 고마워서 울기도, 위로받아 울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아기는 우는게 사실은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운다'는 행위 안에도 매우 다양한 종류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게 되면 감정에 대한 아이들의 이해의 폭이 커질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끝이 아니다. 마지막이 압권이다. 사람들은 위로를 받으며 한손으로는 옆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눈물닦기 릴레이, 위로의 연대라고 표현할 장면이다.

사람들은 그렇다. 중이 제 머리만 못깎는 것이 아니다. 다 알면서도 셀프 위로는 어렵다. 때론 눈물을 쏟아낼 상대도, 눈물을 닦아줄 상대도, 위로의 말을 건네줄 상대도 필요하다. 서로서로 그걸 해줘야 한다. '사회'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여기에 대한 답변이 쉽지 않지만, 그걸 다시 알려준 이 책이 참 고맙다. 재밌고 귀여우면서도 아름다운 책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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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개, 올빼미 머리 그리고 나 큰곰자리 고학년 2
M. T. 앤더슨 지음, 준이 우 그림, 송섬별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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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동화이면서 동시에 현실을 보여주는 동화다. 판타지는 기시감이 거의 없는 닟설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진입하는데 시간이 조금은 걸리겠다. 하지만 일단 그 세계에 주인공들과 함께 들어서고 나면, 주인공들의 모험에 동행하며 그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겠다. 시간이 걸리겠다...고 말한 건 사실은 내 사정이고, 아이들은 바로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어른 독자(나)는 갈수록 무뎌지고 있고,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테니까.^^;;;

제목에 세 주인공이 나온다. 마지막의 '나'는 클레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남학생 인간이다. '요정 개'는 '산아래 왕국'의 어린 사냥개고 이름은 엘피노어다. '올빼미 머리'는 사람과 같은 모습에 머리는 올빼미인 나라의 아이다 이름은 에이모스. 이렇게 다른 세 세계의 존재들이 만나 관계를 맺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다.

모험도 모험이지만 내 마음을 요동시킨 건 그 관계였다. 우리 세계도 아닌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들과의 우정. 자신이 받을 고초나, 어쩌면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를 지키려는 그 마음. 어쩌면 참으로 쓸모없고 어리석은 그 마음.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아주 약간 다른 그것을 가지고 거리 두고 흘겨보며 경계하는 게 우리들의 모습인데.

우주는(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이 책의 설정처럼 겹겹이 겹쳐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오래 전에 나온 '시간의 주름'이라는 판타지 동화가 있는데 이 작가도 그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 세계 사람과 너희 세계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의 주름 속에서 살고 있어." (97쪽)
그 세계간의 커튼이 살짝 열린 것은 지구의 전염병 때문에 아이들이 꽁꽁 갇혀 지내던 시간. 학교는 원격수업으로 우리가 익히 겪어봤던 코로나 때와 같은 상황이다. 친구들과의 대면은 사라지고 24시간 붙어있어야 하는 형제간은 서로를 지겨워한다. 클레이가 답답함을 참지못해 나왔던 집 근처의 숲에서 개를 만나며 세계간의 만남이 시작된다. 이 세상이 꽁꽁 닫혀있던 그 시간에 클레이는 살짝 열렸던 틈 사이로 다른 세계의 아이들과 만났던 것이다.

"죽음이 진짜인 것처럼, 내가 괜찮다는 것도 진짜야. 너희 둘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도 진짜고." (141쪽)
"클레이 형제, 정말 그 개한테 이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어?"
"너도 엘피노어를 봤잖아.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 (224쪽)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놀이를 잊는 때가 오는 법이란다. 이제 가려무나." (250 쪽)

우리는 모두 어린시절 환상 속에서 겪었던 모험을 잊어버리며 어른이 되는 것일까. 클레이가 기억을 되새기며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잊지는 않을 것 같다. 에이모스와는 헤어졌지만 엘피노어가 곁에 남아있기 때문에. 새로움으로 잘 짜여진 판타지였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을 말한다면 작가가 창조한 '다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련함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게 꼭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왠지 그런 걸 바라고 있나보다.

인물들의 캐릭터를 잘 살려 표현하고 친근하고 매력적인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인기있을 작품 같다. 혹시 내년 쯤엔 나온다는 소식을 듣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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