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 - 2025 뉴베리 대상 수상작 큰곰자리 고학년 5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고정아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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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소재의 SF를 보면서 뭔가 거슬리지 않은 적은 처음인거 같다. 왠지 그런게 나오면 나는 몰입이 안되더란 말이야.... 내가 뭐 아는게 많아서 논리를 따져서 그런게 아니고 그냥 왠지 그렇더라.... 근데 왜 이 책에선 아무것도 거슬리지 않았을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어서 였을까.

마이클을 비롯한 이 책의 인물들은 1999년을 살아가고 있다. 미래에서 온 리지는 2199년에서 왔다. 200년을 뛰어넘은 시간여행이 이뤄졌으며 독자들은 그 사이(앞시간 쪽에 훨씬 가까운)에서 살아가고 있다.

1999년을 배경으로 선택한 작가의 의도가 탁월한 것 같다. 근데 그 시기 한참 젊은 날을 살았던 내게는 부끄럽게도 그때의 기억이 별로 없다. 육아와 직장생활, 잦은 이사 등으로 그저 눈앞의 것에만 급급해서 살아서였나. 이제 와서 y2k 같은 것을 찾아보니 아 맞다, 그랬었지 하고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게 다행이었던 게 아닐까. 작가가 이 시기를 선택한 것은 마이클의 불안한 내면과 관련이 있다. 12살(미국 학제로는 중학생)인 마이클은 이제 몇 달 남은 밀레니엄을 불안해하며 마트에서 통조림을 슬쩍하여 방에 쌓아두는 습관이 생겼다. 양심의 가책은 불안감을 한층 증폭시키지만 행위를 멈추지는 못한다.

마이클 주변의 인물들 + 미래에서 온 여행자 1명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다.
마이클의 엄마 : 닥치는 대로 일하며 혼자서 마이클을 키우지만 벌이가 신통치 못하다. 얼마 전 마이클이 아팠을 때 결근한 일로 해고된 뒤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 앞에서는 늘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려 애쓴다.
기비 : 이웃의 고등학생. 시간제로 마이클의 돌보미 일을 한다. 얘네 아빠가 바로 엄마를 해고한 사람인데 비록 푼돈이긴 해도 엄마한테 고용되었다는 설정이 우습지만, 받은 돈 이상으로 마이클에게 정성을 다한다. 이웃이자 친구이자 마이클이 남몰래 좋아하는 첫사랑?이기도 하다.
모슬리 : 아파트 관리인 아저씨. 단순한 주변인인 줄 알았는데 중요한 인물이었다. 느닷없이 감정의 파도와 감동을 몰고 오는 인물.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지만 사실상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은, 내 가까운 사람이거나 혹은 나일 수도 있는 캐릭터를 그려낸 게 아닌가 싶다.
리지 : 200년 뒤 세상에서 온 소년. 기비와 같은 나이고 엄마가 과학자. 형제들과 함께 엄마 연구실의 학생이다. (미래의 학교, 가정의 모습을 슬쩍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정도 단면으로는 전체적인 파악은 어렵게... 슬쩍만 보여주는 느낌) 엄마 세이비오 박사가 바로 시간여행 기기(공간 텔레포트) 연구자. 4명의 아들들은 모두 연구소의 천재적 학생들. 하지만 형제들끼리 힐난하고 투닥거리는 건 지금 시대와 똑같음. 그러던 중 리지가 충동적으로 기계조작을 하고 마이클의 시대로 건너옴.

이렇게 된 이야기다. 1999와 2199년이 교차 구성되며 2199 부분은 약간 회색 종이로 구분되어 있는데, 서술이 완전 달라 작가의 센스가 느껴지고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영화로 잘 만들면 무척 재미있겠다.

그러잖아도 y2k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마이클에게 리지의 등장은 큰 기회이다. 더구나 그가 가져온 ‘요약서’라는 책. 그건 말하자면 2199년 시점에서의 역사책이다. 그걸 볼 수만 있다면.... 하지만 리지는 절대 보여주지도 말해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범위에서 최소한의 행동만 하고 돌아간.... 그랬기에 패러독스가 덜 느껴졌던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초점이 ‘지금 여기’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건 제목에서부터 느껴진다. 그 제목이 본문 여러 군데에 나온다.

‘The first state of being’
이 제목을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로 번역했다. 고심한 제목이라고 느껴지지만 굳이 의역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문에서는 ‘존재의 첫 번째 순간’이라고 번역했다. 이런 식이다.
『“있잖아.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해.”
“존재의 첫 번째 순간. 우리 엄마가 ‘현재’를 가리키는 말이야. 차를 타고 달리는 지금 이 순간.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 여기는? 이건 첫 번째 순간이야. 가장 중요한 순간, 모든 게 의미있는 순간. 그래서 나는 내가 미래에 벌여 놓은 혼란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미래, 그건 제3의 순간이야. 미래는 돌아간 다음에 걱정할 거야. 당장은 그냥 지금 여기에 있고 싶어. 너희랑 형편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156~157쪽)
『“그런 건 제3의 순간에 대한 생각이야.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는 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지금을 살아야 해. 그게 첫 번째 순간이야.”
“첫 번째 순간.”
마이클이 웅얼거리자 리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 이곳이 우리 인생 최고의 장소야.”』 (193쪽)

‘존재의 첫 번째 순간’이라는 멋진 말을 해주었다고 해서 리지가 미래에서 온 선지자 같은 존재는 전혀 아니다. 사고를 쳐 스스로도 당황하며 복귀를 시도하는 청소년일 뿐이다. 그건 이쪽과 저쪽 모두의 노력이 필요했는데 그 순조롭지 않은 과정이 독자들의 긴장감을 높인다. 더구나 이시대의 면역을 갖지 못한 리지가 감기에 걸려 아프게 되었을 때는 특히.

사소한 부분도 놓치면 아까울 정도로 잘 짜여진 이 책에서 가장 편하게 웃음지었던 대목은 리지가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쇼핑몰’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이것저것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 하지만 그 장면들에 특히 작가는 많은 메시지를 넣어 놓았다. 이 책은 두 번 정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독서에서 100% 캐치하기는 어려우니까. 내가 바로 그러한데, 다시 처음부터 읽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정도는 되어야 뉴베리 대상을 받는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받은 작가라니! ‘안녕 우주’를 안 읽은 것을 후회하며 다음 도서관 방문 때 찾아봐야겠다.

번역이 꽤 까다로운 책이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리지가 200년 전 유행어랍시고 배워 온 어설픈 은어나 줄임말들도 다 우리말식으로 바꿔야 했고, 그렇게 눈에 띄는 작업보다도 더 어려운 세밀한 부분들이 많았을 것 같아서. 느낌의 차이를 살려야 할 부분도 많았을 것 같고.

스포가 되겠지만 누구나 생각하는 결말이라 얘기하자면 리지는 결국 무사히 돌아갔고, 현재에는 현재의 사람들만 남았다. 그 ‘요약서’의 행방이 아주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것만은 스포 금지.^^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래를 안다는 것과 미래를 준비(대비)한다는 것은 다르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미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미래는 현재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뿐이다. 번역 제목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구석구석 아주 다양한 메시지가 결국 큰 메시지로 통합되는 책. 그래서 지금 당장 작은 한 발이라도 떼게 되는 책. 그런 책에 큰 점수를 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길게 썼는데도 아직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네.... 그래도 이제 그만 쓰고 명절연휴를 즐기러(테레비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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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구 바람어린이책 34
양자현 지음, 불키드 그림 / 천개의바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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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스포츠클럽. 그것도 진짜 어쩌다보니 생겨버린 배구팀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보니 학교 스포츠클럽은 바로 이런 이유로 필요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가 있다면 스포츠클럽 활동은 꼭 시켜보세요 라고 목소리 높이고 싶은 마음이다. 실제로는 많은 제약이 있고 쉽지 않지만 말이다.

첫째는 지도자의 문제다. 이 책 속의 도민호 선생님은 체육 전담 선생님이다. 이런 분이 학교에 있고, 팀 지도에 열정을 쏟는 상황은 쉽게 오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는 킨볼 팀이 있는데, 이걸 가능케 하는 건 오직 한 사람의 역할이다. 6학년 담임인 그 선생님은 해마다 맡은 반 아이들을 데리고 팀을 만든다. 운동실력이 좋아도 그반이 아니면 참여할 수 없으니 그반에 배정되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실력자를 뽑아 꾸린 팀이 아닌 단순 학급팀인데도 이들은 해마다 예선을 통과하여 잠실체육관에서 본선경기를 치르고 최소 동메달이라도 따 온다. 이걸 보면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 선생님의 전보 시기가 다가오자 학교에서 붙잡아서 1년 전보유예를 하셨다. 이제 가시게 되고 같은 급의 선생님이 오시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은 전설이 될 수 있다.

두번째는 선수들의 문제다. 선수들의 실력을 키우는 건 위에서 봤듯이 지도자의 역량이 크게 좌우하니 실력이 큰 문제는 아니겠다. 간혹 도저히 경기에 끼울 수 없는 깍두기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바로 나 같은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연습과정에 같이 하다가 시합이 다가오면 스탶으로 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인드다. 힘든 연습을 이겨내고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는 마인드. 우리 학교 팀이 왜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두나 혼자 생각해 봤는데, 이런 것이 가능한 동네여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자가 요구하는 시간투자를 할 수 있는 아이들. 이건 사실 아이들의 문제라기보단 부모들의 문제이다. 운동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팀웍은 더더욱 그렇다. 그걸 봐주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교사인데, 올해는 체육관을 통과해서 교실로 가는 길이 지름길이다. 들어서면 벌써 책임감있는 아이들 두세명이 나보다도 먼저 와서 킨볼에 바람을 넣으며 아침 연습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있으니 그런 결과가 가능한 것이다.

배구 동화는 처음 본다. 사실 나는 배구 팬도 아니고 이게 재미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우와, 청소년기에 읽었던 스포츠 만화의 박진감과, 완전하지 못한 실력에서 오는 긴장감과, 그걸 넘어서는 팀웍의 감격이 느껴졌다. 아주 잘 쓰신 스포츠 동화라고 생각한다.

모든 설정이 흥미롭게 잘 구성되었다. 일단 배구팀을 만들게 된 배경부터. 여기에서 배구를 원래 잘 아는 팬은 장지민 한 명 뿐이었다. 요즘 체육 시간에 배우는 종목이 배구였고, 도민호 체육 선생님이 모둠별로 배구에 대해서 소개하는 영상제작을 수행평가로 내주셨을 뿐이었다. 그런데 배구 팬인 지민이가 영상을 너무 끝내주게 만들었다. 팀원들의 부족한 실력을 커버하고 멋진 장면만을 연출해서. 그런데 이 영상이 어느날 유명해졌다. 바로 지민이의 우상인 강인해 선수가 sns에서 공유를 한 것이다! (강인해 선수는 현실로 치자면 현역 시절의 김연경 선수쯤 되는 것 같다.)

멋진 영상이었지만 당연히 악플도 달렸다. 특히 인근 선사초 배구부원들의 도발은 이 모둠 멤버들을 격분시켰는데, 그바람에 앞뒤 구분 못하고 도발에 넘어갔다. 토스도 겨우 하는 아이들이 걔네들과 한판 붙기로 한 것이다. 결국 수행평가 모둠은 졸지에 ‘은강초 배부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 설정, 연습과정이 실제 경기 장면보다 훨씬 길다. 딱 3분의 1씩이라고 하면 되겠다. 이 책의 차례는 1세트, 2세트, 3세트인데 3세트가 선사초와의 경기 장면이다. 1,2 세트도 재미있고 특히 3세트는 배구 경기 장면을 이렇게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구나 싶으면서 그 옛날 스포츠 만화를 읽던 추억을 소환한다. 외인구단 류의 만화들 말이다.

외인구단? 그렇다, 주류가 아닌 걸로 치면 아무 경험도 없는 얘네들도 바로 그렇지 뭐. 그렇다고 진짜 외인구단처럼 기적을 일으키는 건 이제 너무 식상하다. 작가님은 경기 결과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것만은 스포하지 말아야겠다.ㅎㅎ

6명의 배구 멤버들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는 구성도 각 인물의 특성과 마음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며 흥미를 더해준다. 체격조건이나 운동능력, 특기가 각각 다른 아이들이 각자에게 맞는 포지션을 부여받아 거기에 맞게 성장해 가는 모습들 또한 흥미롭다. 심리적 위기들과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도 감동적이고 경기로 승화시키는 모습은 감격을 선사한다.

선수의 길은 특별한 능력자들이 가는 것이지만 선수가 아니라도 이런 경험 한번쯤은 있는 것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 같은 최저 기능자는 다른 역할을 찾아봐야겠지만... 부디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빈다. 현실은 반대로만 가고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이 널리 읽히며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분다면 참 좋은 일이겠다. 물론 현실의 아름다움은 작가가 만들어내기보다 훨씬 어렵다. 그 점은 감안하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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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과 사마 - 제1회 이지북 고학년 장르문학상 본심작 책 읽는 샤미 56
정승진 지음, 김완진 그림 / 이지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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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소재로 다루었다고 하면 아주 민감한 문제를 다루었다고 여겨진다. 복잡할 수 있는 문제를 한쪽 면에서만 다루기 쉽다는 걱정을 들을 수도 있다. 말이 쉽지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기만 하겠냐는 타박을 들을 수도 있겠다. 난민을 다루었다는 이 책도 그런 부담을 안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읽고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한 올바름을 넣으려는 의지보다도 그저 인간의 어떤 상황과 그 절박함, 그 안에서 지키려는 존재의 소중함 그런 것들로 꽉 차 있었다. 게다가 꽤 긴박하기까지 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마는 난민 소녀이고 아말은 그의 고양이다. 둘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항구에 당도했으나 검역소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둘은 헤어질 수 없는 사이였기에 다시 만나지 않고는 각기 다른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그들이 다시 만나기까지 사마는 사마대로, 아말은 아말대로 각각의 모험이 교차해서 펼쳐지기 때문에 독자는 이중의 흥미진진함으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둘은 각각 새롭게 처한 환경에서 새로운 존재들을 만난다. 세상이 그렇듯이 당연히 선역도 있고 악역도 있다. 동물의 세계는 어떤지 우리가 잘 알 수 없지만 작가는 아말이 만나는 동물들도 마치 인간 세상의 군상들처럼 그려놓았다. 악이 지배적이어서 선이 힘도 못쓰고 움츠러들면 이야기는 슬프고 참혹하다. 세상은 때로, 아니 자주 이러하다. 따라서 이를 반영한 참혹한 작품도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주 조금, 정말 아슬아슬하게 선이 악을 살짝 넘어서도록 이야기를 짜 놓았다. 어린이 독자들이 환호하고 안도하기에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마에게는 난민 캠프에서 탈출하려는 무모한 계획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항구로 가는 길에서 먹여주고 씻겨준 할머니도 있었다. 하지만 사마의 상황을 이용해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야비한 기자가 있었다. 이 인간 때문에 하마터면 모든 일을 그르치고 절망에 처할 뻔했으나! 센스있는 조력자가 마지막 퍼즐처럼 존재했다.

아말이 사마를 기다리며 떠나지 못하는 그 항구의 마을에서 만난 동물 친구들도 그렇다. 셰퍼드 빅과 하얀 고양이 화이트는 생사를 같이하는 친구가 되었지만, 정육점 불독(불독들아 미안) 한스는 악역 중의 악역이고, 해피라는 리트리버는 그의 졸개다. 한스의 주인이자 정육점 주인 피터는 오히려 좋은 사람인데, 자기 개의 성미를 알지만 그렇게까지 악역인지는 잘 모른다.

이렇게 이중의 구조를 가진 이 작품은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이 동물들을 통해 더 많은 말을 한다. 말하자면 동물 주인공들은 각기 나타내는 캐릭터들이 있다. 아말과 빅, 화이트 등이 ‘바다 건너온 동물 내지는 그들의 2세’라면 빅은 ‘굴러들어온 존재를 못 참고 혐오하는’ 캐릭터에 해당된다. 빅은 사사건건 그들을 못참고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괴롭혀 쫓아내려고 한다. 그들의 협력과 기지에도 불구하고 한스의 악랄함 때문에 결국 큰 위기에 처하고 상처를 입게 되는데.......

분명한 것은 결국 만나야 할 존재들은 만났다는 사실이다. 기다리고 찾아도 못 만나는 존재들도 세상에는 많지만.... 이 이야기 속 존재들은 다행스럽게도 만났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고도 긴박하게 짜여져 있어서 독자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독자들은 갈수록 이 사회에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어가는 혐오와 배척에 대해서 고민해보아도 좋겠다.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혐오하는 측과 그 대상들의 캐릭터가 선명히 대비되는 것은 꼭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아말과 친구들은 품위 있었고 의리와 사랑을 지켰으며 함부로 남을 해치지 않았다. 이것이 없다면 혐오는 돌고 돌며 끝을 모르고 반복될 것이다. 우리가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주목해야 할 점이다. 이것을 말해준 것으로 이 작품은 이야기 한 편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그것 또한 전부가 아니고 독자 시선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생각, 다른 느낌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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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으로 작은 곰자리 86
브라이언 플로카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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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보자면 위험천만한 내용이다. 이 책을 어린이들에게 읽어주고 어린이들이 “저렇게 해도 돼요?” 하고 물으면 “아니 그래서는 절대 안 돼.” 하고 안전교육을 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ㅎㅎ 현실에서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위험의 요소가 있는 일은 사전에 방지하라고 가르치니까. 사실 그게 맞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하는 책이다.^^

섬에 사는 어떤 남매가 있다.
“자, 내 손을 잡아.
폭풍우가 치기 전에
바다를 보러 갈 거야.”
이미 화면은 어두운데, 신을 신고 있는 동생에게 오빠가 손을 내민다. 무겁게 내려앉은 날씨의 느낌을 불투명한 채색의 그림이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남매는 점점 거세어지는 바람에 맞서며 걸어가, 바닷가 바위 위에 선다. 그 장면은 장관이면서 동시에 두렵다. 자연의 속성은 그렇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너는 내 손을 꼭 잡고, 나는 네 손을 꼭 잡고, 우리는 계속 가 보기로 해.”
아이들은 섬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만나는 모든 풍경이 어둡게 내려앉아 있고, 습기와 바람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폭풍 전야’의 위기감이 감돈다.

등대가 위험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계속 걸어간다.
“온 마을이 텅 비어서 으스스해. 공연이 없는 날의 무대 같아.”
이런 표현들이 매우 실감난다.

화면이 더욱 어두워졌다. 급기야!!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폭풍우가 시작되었다. 남매는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난 지름길을 달려간다.
“우리는 낮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컴컴한 어둠 속을 달려가. 어둠과 바람과 빗속에서는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져.”
이런 식의 문장들이 참 좋다.

가까스로 (다행히도) 불 켜진 집을 향한 아이들의 뒷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손전등을 든 엄마와 끌어안는 장면. 집 안에서 바라보면 창밖의 풍경은 방금 그들이 지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납고 무섭다. 폭풍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밤이 지나가듯 폭풍도 지나가.”
“천둥도 잦아들다 저 멀리로 사라지고, 밤은 새벽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반가운 산들바람이 마지막 남은 구름 한 조각까지 멀리멀리 밀어 보내.”
남매의 위험천만한 모험은 독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작가의 설정이었겠다. 남매의 모험은 선택이었으나 우리는 선택하지 않아도 폭풍우 아래 있게될 때가 있다. 그러나 찾아올 집이 있고(집안은 따뜻하고 비바람 속에서도 안전하게 잠들 수 있고), 내 손을 잡고 함께 걷거나 뛰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폭풍우는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너와 나는 계속 가 보기로 해.”
여러번 반복되었던 이 문장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인생은 없다. 하지만 나아가려는 인생은 안주하지 않는다. 폭풍우가 예상될지라도 ‘계속 가 보기로’ 한다.

비오는 날 아침이 휴일이면 “비오는데 안 나가도 된다” 면서 기뻐하는 나. 실내에서 보는 비만 좋아하는 나. (비멍은 뷰 좋은 까페에서)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나, 이런 큰일날 일을!”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는 이제 인생에서 도전을 졸업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어둠을 뚫고 나가는 용기를 갖길, 그러다 눈앞에 따스한 집의 불빛을 발견하는 환희도 경험하길 응원한다.

이 책은 저명한 두 작가의 협업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글작가 브라이언 플로카는 늘 그림작업을 함께 해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다른 작가에게 그림을 맡겼다고 한다. 그림작가 시드니 스미스는 읽은 그림책이 그리 많지 않은 나도 알아볼 만큼 인상적인 책을 많이 남긴 작가다. 두 분의 협업은 매우 성공적인 것 같다. 문장도 그림도 다 느낌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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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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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주말에 집에 들어앉아 이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구입신청해서 대출한 책이다. 다른 읽을 책들도 쌓여있지만 이 책이 가장 먼저 손에 잡혔다.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의 디아스포라 3부작'을 완료한 작품이다. 첫번째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10년 가까이 지나다보니 내용이 희미하고, 두번째 작품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읽지 못했다. 이번 작품을 읽고보니 두번째도 읽어서 완성하고픈 생각이 든다. 내용이 가물가물한 첫번째 작품도 다시 읽어볼까 하는 마음도.

나라가 고난을 겪을 때 백성들의 삶은 고달프다 못해 처참하다. 제목도 잊어버린 과거의 독서에서 어쩌면 이토록 최악의 길로만 가는 인생이 있나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난다. 이 책도 그럴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제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은 결이 좀 달랐다. 물론 고난은 심했지만 불쌍한 마음보다는 장하다라는 마음이 컸고, 단단한 기둥들이 서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표지그림 때문인가. 눈밭에 곧게 뻗은 자작나무들이 단단하게 서 있다. 그 가운데 서있는 여성이 주인공 단옥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노역 등으로 끌려간 곳은 한군데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강제이주 당한 중앙아시아가 있고, 하와이도 있고, 이 책에서 다룬 사할린도 있다. 사할린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다가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님이 여러번의 답사, 면담, 문헌 연구로 완성한 책이다. 덕분에 내가 생각 못하고 살았던 장소와 시대,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경험을 했다. 이것이 문학의 힘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를 새삼 느낀다. 우리는 지금도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래도 가족의 생사도 모른채 수십년을 마음에 한이 되도록 그리워하다 죽지는 않고, 만날 기약도 없이 생이별을 하지도 않고, 살 길인줄 알고 갔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었던 것도 아니니까.

사할린 또한 그런 곳이었다. 단옥의 아버지가 먼저 탄광노동자로 가서 일하고 있었고 그후 단옥이가 어머니, 오빠, 남동생과 함께 찾아가 합류했다. 조부모와 여동생 한명은 추후 오려고 고향에 남았지만 결국 오지 못했고, 여정 중에 일본 본토로 가겠다고 이탈한 오빠도 평생 만나지 못했다. 그뿐인가, 잠시의 화목한 생활도 불안한 평화일 뿐이었다. 일본이 패전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고국에 돌아갈 길이 그렇게 열리지 않을 줄 누가 알았을까. 사할린의 탄광이 문을 닫고 일본 탄광으로 옮길 때도 아버지만 가게 됐다. 나머지 가족들은 속절없이 아무 연관도 없는 사할린에 남아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 사이 아버지 계실 때 여동생, 떠나신 후 남동생 이렇게 식구는 늘어났다.

삶이 이어진다는 건 또다른 관계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간 아버지와 장남의 생사를 몰라도, 고국에 있는 딸의 생사를 몰라도 사할린의 가족은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또 자식을 낳으며 삶을 이어갔다. 무국적자로 살기에는 삶의 손해가 너무 막심했기에 울며겨자먹기로 소련이나 북한 국적을 신청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렇게 사할린에는 한인, 일본인, 소련인, 고려인, 북한인, 또 이 여러 조합의 2세들까지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얽혀 살게 되었다.

전작들이 모두 이 디아스포라 과정에서 여성의 연대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의 단옥과 유키에도 마찬가지다. 유키에는 탄광에서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정남 아저씨의 의붓딸이다. (복잡하지) 아저씨는 고국에서 가족들이 오지 않자 사할린에서 일본 과부와 재혼을 했다. 두 가족은 평생을 혈연보다도 더 끈끈한 관계로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일본 때문에 낯선 땅에서 억지로 살아야 했고, 그와중에 일본 가족과 형제같은 사이가 되었다니 참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거악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개인이 그 틈바구니에서 당한 고난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시간의 선을 넘기면 그곳이 또 제2의 고향이 되는 법이다. 위에 썼듯이 그렇게 2,3세들이 태어나면... 그들에게 한국은 돌아가고픈 조국일수 없으니까... 한시대의 아픔은 그 세대의 가슴에 커다란 한이 되어 그렇게 묻힌다. 그렇다고 후대가 그걸 함께 묻어버리면 안될 것이다. 아픈 역사이니까.... 그들에 대한 존중과 위로의 마음, 그들의 그리움에 비해 너무 소홀했던 고국의 대응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역할도 하고 있다.

제목을 지은 과정이 작가의 말에 나와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인상적이었는데 아주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의 틈새'를 채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절망 속에서 이들을 살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만 해도 한참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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