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사계절 1318 문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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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독서의 추억과 함께 어린이문학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오르던 20여년 전, 거기에 기름을 부은 책 중 하나가 이 작가님의 <클로디아의 비밀>이었다. 이후 이 작가님의 책을 읽은 적 없다가 얼마전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대출해왔다. 이 책도 나온지 꽤 오래 됐는데 그동안 몰랐었다.

어린이들이 읽긴 어렵고, 청소년소설로 나와있다. 굳이 청소년 아니라 그냥 소설로 소개되어도 괜찮겠다. 난 예술가의 일생과 시대 배경이 담긴 이런 책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아주 흥미로웠다.

유명 화가들에 대해서는 대표작품 제목만 몇개 알 뿐이다. 모든 의미는 서사에 담기는 법, 이런 책을 읽고 보면 평면이 입체가 되듯 작품이 다시 보인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작가의 상상인가인데, 이쪽에 무지해서 그 경계를 전혀 모르고 읽었다. 읽고 나서 몇가지 검색해보니 일단 등장인물들은 거의 실존했던 인물들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제자(조수) 살라이. 루도비코 공작과 애첩들, 부인 베아트리체와 그의 언니, 어머니 등... 그리고 그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의 주인공.

그 인물들의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은 것은 작가의 상상력일 터이다. 그 상상력이 적중했는지는 지나간 과거라 지금 확인할 수 없는 일. 감안하면서 읽으면 흥미로운 독서가 되고 작품 감상에도 도움이 된다. 다빈치와 작품에 얽힌 서사는 상상의 여지가 많아서인지 여러 작가들이 다루었나보다. 검색하다가 꽤 긴 다른 소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일단 작가는 조수인 살라이를 제목에서부터 '거짓말쟁이'로 칭했다. 어릴 때부터 입만 산 좀도둑 캐릭터다. 이런 아이를 다빈치는 왜 평생 옆에 두었을까? 그가 갖고있지 않은 어떤 면을 가치롭게 본 걸까? 둘 사이에 대한 얘기도 상상력이 뻗쳐서 아주 다양한 것 같던데, 이 책에선 이렇게 뭔가 서로 합이 맞는 존재로 표현했다. 너무 달라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공작부인 베아트리체가 살라이와 아주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공작이 원래 부인 삼고 싶어했던 언니 이사벨라나, 연인 체칠리아의 미모에 비하면 훨씬 보잘것없는 외모를 가졌지만 총명한 머리와 솔직한 매력, 훌륭한 통찰력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매력을 다빈치와 살라이는 단번에 간파했고 마음도 잘 통했다. 하지만 의외로(?) 공작의 총애를 받는 부인이 되면서부터의 행보는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시대의 한계라고도 생각한다. 현대사회도 많은 모순과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귀족을 위해 예술가가 복무하는 것 같던 시대의 작품활동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지 않았을까.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겠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작품들이 많이 탄생했지만 말이다. 베아트리체가 살라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은 작가의 관점이 많이 담긴 장면인 것 같다.

"살라이, 나는 레오나르도 선생이 작품 속에 격렬한 것, 무책임한 것들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네가 도와 주었으면 좋겠어."

제목에 모나리자가 들어있지만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살짝 나오며 끝난다. 작품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작가의 상상력이다. 이 외의 작품, 예를 들면 공작의 연인 체칠리아의 초상화(흰 담비를 안은 여인) 등도 흥미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된다. 이 여인은 수백년 후 먼 나라의 사람인 내가 자기 얼굴을 뜯어보리라는 걸 짐작이나 했을까. 위대한 화가의 모델이 되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구나. 모나리자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이 모나리자의 탄생 배경, 그 안에 들어있는 예술가와 조수의 (사실은 작가의) 가치관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들어있는 책이다. 나로서는 평소에 잘 접하지 않던 내용의 독서였고, 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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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사계절 1318 문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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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독서의 추억과 함께 어린이문학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오르던 20여년 전, 거기에 기름을 부은 책 중 하나가 이 작가님의 <클로디아의 비밀>이었다. 이후 이 작가님의 책을 읽은 적 없다가 얼마전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대출해왔다. 이 책도 나온지 꽤 오래 됐는데 그동안 몰랐었다.

어린이들이 읽긴 어렵고, 청소년소설로 나와있다. 굳이 청소년 아니라 그냥 소설로 소개되어도 괜찮겠다. 난 예술가의 일생과 시대 배경이 담긴 이런 책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아주 흥미로웠다.

유명 화가들에 대해서는 대표작품 제목만 몇개 알 뿐이다. 모든 의미는 서사에 담기는 법, 이런 책을 읽고 보면 평면이 입체가 되듯 작품이 다시 보인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작가의 상상인가인데, 이쪽에 무지해서 그 경계를 전혀 모르고 읽었다. 읽고 나서 몇가지 검색해보니 일단 등장인물들은 거의 실존했던 인물들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제자(조수) 살라이. 루도비코 공작과 애첩들, 부인 베아트리체와 그의 언니, 어머니 등... 그리고 그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의 주인공.

그 인물들의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은 것은 작가의 상상력일 터이다. 그 상상력이 적중했는지는 지나간 과거라 지금 확인할 수 없는 일. 감안하면서 읽으면 흥미로운 독서가 되고 작품 감상에도 도움이 된다. 다빈치와 작품에 얽힌 서사는 상상의 여지가 많아서인지 여러 작가들이 다루었나보다. 검색하다가 꽤 긴 다른 소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일단 작가는 조수인 살라이를 제목에서부터 '거짓말쟁이'로 칭했다. 어릴 때부터 입만 산 좀도둑 캐릭터다. 이런 아이를 다빈치는 왜 평생 옆에 두었을까? 그가 갖고있지 않은 어떤 면을 가치롭게 본 걸까? 둘 사이에 대한 얘기도 상상력이 뻗쳐서 아주 다양한 것 같던데, 이 책에선 이렇게 뭔가 서로 합이 맞는 존재로 표현했다. 너무 달라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공작부인 베아트리체가 살라이와 아주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공작이 원래 부인 삼고 싶어했던 언니 이사벨라나, 연인 체칠리아의 미모에 비하면 훨씬 보잘것없는 외모를 가졌지만 총명한 머리와 솔직한 매력, 훌륭한 통찰력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매력을 다빈치와 살라이는 단번에 간파했고 마음도 잘 통했다. 하지만 의외로(?) 공작의 총애를 받는 부인이 되면서부터의 행보는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시대의 한계라고도 생각한다. 현대사회도 많은 모순과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귀족을 위해 예술가가 복무하는 것 같던 시대의 작품활동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지 않았을까.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겠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작품들이 많이 탄생했지만 말이다. 베아트리체가 살라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은 작가의 관점이 많이 담긴 장면인 것 같다.

"살라이, 나는 레오나르도 선생이 작품 속에 격렬한 것, 무책임한 것들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네가 도와 주었으면 좋겠어."

제목에 모나리자가 들어있지만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살짝 나오며 끝난다. 작품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작가의 상상력이다. 이 외의 작품, 예를 들면 공작의 연인 체칠리아의 초상화(흰 담비를 안은 여인) 등도 흥미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된다. 이 여인은 수백년 후 먼 나라의 사람인 내가 자기 얼굴을 뜯어보리라는 걸 짐작이나 했을까. 위대한 화가의 모델이 되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구나. 모나리자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이 모나리자의 탄생 배경, 그 안에 들어있는 예술가와 조수의 (사실은 작가의) 가치관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들어있는 책이다. 나로서는 평소에 잘 접하지 않던 내용의 독서였고, 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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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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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2024 알라딘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고 한다. 투표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만약 했다면 나도 그 책에 표를 주었을 것 같다. 사실 다른 책들 중 읽은게 별로 없어서 공정한 한 표라 장담할 순 없지만, 어쨌든 많은 독자들이 추천한 데는 이유가 있겠지. 나는 그 이유를 '보편적 주제'라고 생각해본다. 하나 더 말한다면 절제된 표현?

그보다 먼저 나온 이 책을 나는 이제야 읽게 되었는데, 마찬가지로 절제된 표현이 전혀 다른 내용의 두 책을 뭔가 비슷한 느낌으로 연결해 준다. 이 책은 심지어 98쪽. 채 100쪽도 되지 않는 분량이다. 굉장히 슬프고 힘든 사건이 나오는 줄 알고 읽었다가 중간에 엥? 하고 좀 갸웃. 마지막엔 역시,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이 뭔가 처참한 상황과 감정을 담았으리라 짐작했던 건 영화 이미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맡겨진 소녀는 원래 불행했고 더 큰 불행을 겪으리라는 막연한 짐작을 했었다. 영화보다 책을 먼저 보려고 아직 보지 않았는데 읽었으니 이제 봐야겠다. 영화는 제목이 살짝 다르다. <말없는 소녀> 그 제목의 이유도 알겠다. 원제도 그렇고, 번역 제목도 두 개 모두 괜찮은 것 같다.

짧은 분량처럼 이 책에서 다룬 시간도 길지 않다. 화자인 소녀가 동생의 출산을 앞두고 먼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출산 후 다시 집에 돌아가기까지 짧은 여름날의 일들을 담았다. 사건들이라기엔 평범한 일상이다. 친척집에 맡겨진다는 설정도 이야기에선 흔한 일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을 담은 길지도 않은 이야기가 왜 이렇게 많은 독자를 모으고, 영화로까지 제작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말없음'의 아름다움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 소녀의 성격이기도 하고 맡아준 부부가 소녀를 칭찬한 점이기도 하고 영화의 제목이 된 낱말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작품의 성격이기도 하다. 서사의 특징이 말없음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왠지... 된다. '꼭 할 말만 하는' 이라고 바꿔 표현해도 되겠다. 버릴 문장이 없다는 것, 함축되어 있다는 것, 여운이 길다는 것, 그래서 짧지만 짧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 하겠다.

소녀는 바쁘고 가난한 부모와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라다가 맡겨진 집에서 비로소 가정과 양육자의 따스함을 느낀다. 그것을 격정적이지 않게, 누가 알아챌까 조심하듯이 조용조용 표현하고 있다. 거기서 느껴지는 간절함, 혹은 체념, 고마움과 애정 등의 감정이 간결한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 속에 들어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사실 친부모는 무심하고 거칠어서 그렇지 막장은 아니고, 맡아준 부부 또한 세상 없는 선행을 베푼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크지 않다 할 수 있는 차이가 아이의 몸과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파장은 매우 컸다.

이 책은 말없음을 미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나는 그 미덕을 매우 지지하지만 모든 경우에서 그렇진 않다는 걸 인정한다. 예를 들면 빨간머리 앤은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주변에 빛과 온기를 주었지. 또 말이 많은 작품이 꼭 가치가 없으리란 법도 없지. 그래도 어쨌건 이 간결한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의 무게에 나는 감탄한다.

"어느 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 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여져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가지 일들이 마음 속을 스친다......."

아저씨는 그를 향해 돌진하는 소녀를 안아올렸고 아줌마는 옆에서 울음을 삼킨다. 아저씨의 시선 반대 방향, 그러니까 소녀의 시선 방향에 아빠가 걸어오고 있다. 그때 "아빠" 라는 따옴표가 두 번 나온다. 설명하지 않는 그 중의적 의미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양육이 고단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점은 공통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가짐에 따라서 괴로움도 될 수 있고 행복도 될 수 있다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교사로서 학생들의 양육자를 바라보며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많이 가진다. 갈수록 더. 나도 겨우 지나온 그 길이니 남 말할 주제가 못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주로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 자기 자식이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도 싫을까?
- 자식한테 왜 저런 걸 먹일까? 따뜻한 밥 좀 해주면 안되나?
- 자기 직성 풀기 위해 자식을 키우나? 자식의 가치가 거기에 달렸나?

물론 아줌마 아저씨는 풍족한 편이었고 자녀도 없었고(여기엔 아픈 사연이...)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반면 소녀의 친부모는 가난하고 바빴다. 하지만 이 차이가 모든걸 결정하진 않는다. 자녀가 많다고 꼭 찬밥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라고 관심을 충분히 받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느끼는 따뜻함과 충족감은 아주 섬세한 것들이었다. 보려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내가 안타까워하는 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우리 사회 기준 이 친부모가 특별히 나쁜 사람들도 아니다. 더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최초의 따뜻함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것을 어디에서 채울까.

<조립식 가족>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중간에 재미없어져서 관두긴 했는데, 거기서 세 아이를 품어 친남매처럼 기른 아빠(최원영 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모든 공간에 스며들어 그곳을 채웠다. 그는 허름한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일지 몰라도,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양육의 외주화가 두드러지는 이 시대에 말이다. 집에 돌아오기 며칠 전 우물에 젖어 감기 걸렸던 아이가 절대 그 이야기를 부모에게 하지 않고 입다물려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의 화살을 남에게 돌리려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연상되는 게 많았다. 내 눈에만 그게 두드러진 것이려나.

이제 며칠 내로 영화를 봐야겠다. 세상이 참 힘들고 아픈 때다. 말없음의 미덕을 말하면서 말이 너무 길었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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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의 기적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20
이병승 지음, 최산호 그림 / 서유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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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난 미래를 다룬 '차일드폴'을 쓰신 이병승 작가님이 같은 배경의 다른 이야기를 쓰셨다. 기후위기가 가져온 미래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하게 표현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희망을 그린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 책에서 나의 눈길을 끈 점은 '인간의 본성'이었다. 비겁하고 악하고. 이기적이고. 나 또한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본성'이라 표현해 보았다. 선의를 베풀 가치도 없어보이는 존재. 그러니 이대로 망하는 게 당연한 귀결 아닐까. 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걸 표현해 놓고도 다시 꽃을 피우려는 시도를 한다. 그게 위로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아직 늦지 않았기만을 간절히 바라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모든 영역에 이르지만 이 책에서 부각된 것은 식량위기다. 망가진 자연은 작물을 제대로 재배하지 못하고, 바다의 산물도 더이상 먹을 수 없다. 식량 난민이 몰려들고, 자신들 먹을 것도 부족한 이들은 난민들을 혐오하고 증오한다. 사회 시스템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으로 겨우 지탱하고 있다.

화자인 민달이네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견디지 못한 엄마는 외할아버지네로 가기로 결심한다. 갈곳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은게, 부녀 사이는 최악이고 할아버지는 몹시 괴팍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비 자체를 혐오한다는 할아버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민달이와 엄마는 간단하게 가방을 꾸려 할아버지가 계신 마을로 떠난다.

듣던대로 할아버지는 딸을 반기지 않았고 개 사료를 한푸대 던져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중요한 주인공이었다. 재난을 미리 대비한 연구의 성과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제목의 '비밀 정원'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것을 나누려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선의로 했던 연구와 작업이었는데 늘 오해와 무시, 비웃음을 당했다. 딸(민달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원망하던 가족은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할아버지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정원의 문도 마찬가지.

그 문이 열리기까지 민달이와 할아버지, 그리고 주변의 일들이 이 책의 내용이라 하겠다. 상황과 사건들의 현실성과 개연성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정말 리얼했던 건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간들의 본성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본성, 파이를 나누기보다 배제할 시람들을 찾아 내쫓는 본성,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본성, 언제 그랬냐는 듯 말바꾸는 본성,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본성, 같잖은 권력이라도 쥐고 뭐나 된 듯 행세하려는 본성, 믿었다간 뒤통수 때리는 본성.....

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서도 이 작품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원래 세상엔 착한 사람보다 못된 사람이 훨씬 더 많아. 그리고 우리는 그런 거 안 가리고 자기의 재능을 쓴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거야."
저 위에 쓴 본성이 나의 것이면서도 마치 아닌듯이 나는 일부 사람들을 욕하고 혐오한다. 나눠줄 걸 갖고 있지 않지만 만약 갖고 있다면 할아버지처럼 하고 있을 것 같다. "누구 좋으라고?" 화를 내면서.

올겨울, 세상이 너무 어둡고 춥다. 결국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다 사람일 터. 착한 사람들 쪽에 조금이라도 기울고 싶지만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부디 우리가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하면서 살 수 있길. 결국 이기적 결론이지만 그게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이 겨울의 어둠 끝에도 빛이 보이길 소망하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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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만지면 엄정순의 예술 수업
엄정순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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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을 마음에 품고, 기획하고, 추진하는 이들을 존경한다. 이런 이들이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단조로울 것인가. 그러니까 나처럼 일 벌이기 싫어하고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들만 산다면 말이다. 다행히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아서 이 세계는 넓어지고, 풍성해지고, 느낄 것들이 충만해진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시각장애인 미술교육을 진행해 왔고, 이 '코끼리 만지기'도 10년이나 해온 프로젝트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질문에 답해주고, 작업을 조력하는 오랜 시간을 들여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게다가 코끼리를 만져보기 위해 태국에 다녀오는 여정까지. 가성비가 엉망인,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이런 일들을 통해 이 그림책이 탄생했다. 그런데, 정말 가성비가 없을까?

이것도 생각 나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 '쓸데없다'는 생각은 좁은 시야에 갇힌 단견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없다'기보다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인 경우들.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시야를 한 걸음 넓혀주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추천사 중의 한 문장을 빌려 쓰면 이렇다.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미술작품과 이야기들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감각을 일깨우고, 그렇게 독자의 세상을 넓혀주는 경험을 선사한다."

나는 감각의 한계에 대해서 매우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시각이 차단된 상태, 청각이 차단된 상태를 그저 암흑으로만, 답답함이 지배하는 세상으로만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짐작하는 감각을 초월하여 느끼고 표현할 공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작품은 거칠기도 하지만 놀랍도록 정확한 부분도 있으며 재미있는 상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사진처럼 대상과 똑같은 시각이미지는 아니지만 누구나 보았을 때 "아, 코끼리?" 라고 알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모든 작품들을 재미있게 공감하며 보았다.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거기에다 나는 뒷장에 추가된 '작가의 말'에서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가성비를 운운하는 단순한 나에게 다가오는 깊이있는 문장들이었다.

"오랜 시간 아이들과 미술 작업을 하면서 저는 결핍을 대면하는 눈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장애로 인해 어떤 기능이 결여되었더라도, 그 결여는 새로운 신체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스스로 차이를 창조하는 주체적 과정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낯선 존재에 공감하는 힘과 생각하는 힘, 즉 상상력의 결과물입니다. 창조의 세계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결핍도 무거워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결핍, 장애, 그리고 타인에게 보이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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