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스와 팀블 1 : 처음 만난 날 - 생쥐와 올빼미의 우정 이야기 오리스와 팀블 1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카르멘 목 그림, 박인혜 옮김 / 루덴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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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디카밀로의 신간이 나왔길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서관에 신청했다. 월 2권까지만 신청할 수 있어서 신중해야 하지만 워낙 좋아하는 작가라서.... 처리에 시간이 꽤 걸리긴 하지만 나오자마자 신청한 탓에 한달도 안된 신간을 새책으로 열어보았네. 기분이 좋았다.^^

이 책은 저학년용 짧은 동화이고 장마다 그림이 가득 들어가 있는 그림동화이다. 이 책에 '(1)처음 만난 날' 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다음 책들이 이어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이 책이 발단에 해당되겠다. 그래서 아직 아주 극적인 느낌이나 클라이막스는 없고,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디카밀로 특유의 섬세하고 어루만지는 듯한 문체, 그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주제나 키워드 같은 것들이 여전히 느껴져 애독자들을 붙잡는다.

나에게는 그것이 두 가지로 느껴진다. 첫째는 '이야기'라는 키워드이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비어트리스의 예언, 노렌디 이야기를 거쳐 이 작품까지. 이야기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친절하게 강조한다. 만들어져 있는 이야기 뿐 아니라 내가,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대한 소중함을 전하려 애쓴다. 우리 삶이 이야기라는 인식은 내가 바로 창작자이며 아름답게 완성하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면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다.

두번째는 '선하고 순수한' 주제이다. 고전적이고 권선징악을 담은 주제 말이다. 착한 마음을 가져라, 어렵더라도 남을 도와라, 지금 당장 고난에 처할지라도 결국에는 가치있다.... 이런 생각들이다. 케이트 다카밀로의 작품에는 비꼼이나 코웃음, 의심, 냉소, 이런 것들이 없다. 물론 그런 것들이 들어있는 작품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이것들을 지켜내는 디카밀로의 작품이 내게는 따뜻하면서도 든든하다.

<오리스와 팀블>에서 오리스는 생쥐다. 팀블은 올빼미고. 천적관계인 두 존재의 우정 이야기. 동화에서 아주 흔하다. 거기서 먹히는 존재인 생쥐가 올빼미를 구해준다? 이거 역시 흔하디흔한 소재다. 요즘 말로 '클리셰 범벅'인 이야기라 하겠다.ㅎㅎ 하지만 이어지는 2,3권에서 디카밀로가 이 작품을 어떻게 개성있게 이끌어갈지 흥미롭게 지켜보도록 하자.^^

오리스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에 대한 묘사들이 정겹다. 헛간 벽 구멍 안의 작은 공간. 그곳을 오리스는 버려진 헌책들로 꾸몄다. 빨간 털 슬리퍼에 작가의 섬세함이 들어있는 느낌이다. (오리스가 푹 파묻혀 잠들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통조림 캔. 이게 중요하다. 물고기 왕이 그려져 있는 이 캔에는 "올바르고 값진 선택을 하세요!" 라고 쓰여있다. 이 문구는 장차 오리스의 모든 행동에 좌우명이 된다. 1권의 모든 사건들이 끝나고 오리스가 이 캔을 향해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귀여움과 함께 경건함이 느껴졌달까.

어린이들에게는 상징과 은유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직설적으로 말해야 될 때가 있다. 그러니 동화도 양쪽이 적절히 섞여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에선 통조림 캔이 말해주고 있으니 훨 낫다.ㅎㅎ 아이들과 선택의 기로에서 이 문구를 떠올리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아예 급훈처럼 삼아도 좋겠는데?
"올바르고 값진 선택을 하자!"
영어를 배우는 학년이라면 원어와 병행해서 가르쳐도 좋을 것 같다. 번역은 아무래도 원어의 맛을 다 살리진 못하니까.

그 '선택'으로 인해서 천적관계인 둘은 드디어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건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럼, 팀블. 우린 이제 친구야!"
"하지만 그게 이야기의 끝은 아니잖아."
"그래. 이건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야."

둘이 친구가 되어 시작된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지 다음 권들을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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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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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의 책을 도서실에서 빌리려니 어렵네. 항상 대출중이야.... 이번엔 아예 예약을 걸어놨다가 차례가 돼서 빌려왔다. 재작년에 나온 책이고 장편이다. 이 작가의 장편은 <두근두근 내인생> 이후 두번째 읽었다. 이 책이 더 좋았다. 청소년들의 이야기인데도 세상살이가 더 복잡하고 인생의 무게도 더 무겁다고 느껴졌다. 나는 동화나 청소년소설을 보면서도 내가 참 편하게 살아왔다고 느낀다. 삶의 무게는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 청소년들도 그렇다.

안지우, 오채운, 김소리 세 명의 관점에서 돌아가며 서술하고 있어서 초반에 잠깐 혼동되었지만 금방 이해되었고 책장이 빨리빨리 넘어갔다.

지우. 엄마를 사고로 잃고 지금은 엄마의 남친이던 아저씨와 함께 지내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다. 엄마의 사고는 자살인지 실족사인지 애매하다. 이 아이의 도피처는 웹툰이다. 가끔 자신이 그린 것을 만화까페에 올리는데 반응해 주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다. 유일하게 마음을 주는 상대는 용식이라는 반려 파충류.

채운. 가장 참혹한 일을 겪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지우의 인생도 보통이 아니지만 채운은 정말 '이보다 더할 수 없다'고 할 만하다. 제멋대로이고 고압적이며 대책없고 폭력적인 아빠. 이런 사람 한 명이 가정을 불행으로 몰아넣는 모습을 보면 너무 화가 난다. 가정이란 가장 행복한 안식처일 수도 있지만 끊어내기 징글징글하게 어려운 저주의 고리일 수도 있다. 어른도 그런데 그 틈바구니 속의 아이들은 어떠하랴.
'그날의 일' 이후로 엄마는 감옥에 갔고 아빠는 요양원에 누워있고 채운이는 이모 집에 얹혀 지낸다. 지우의 용식이처럼 채운이한테도 뭉치가 있다. 근데 리트리버라서 데리고 얹혀 살기에는 참 눈치보이는 존재다. 그 틈바구에서 태연한 척 살아가려 애쓰는 채운.

소리. 소리도 엄마가 아파서 돌아가셨지만 위의 두 아이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낫다. 그래도 그 가정은 한때 단란했고 지금 상실로 인한 슬픔 외에 다른 참혹함은 없으니까. 소리는 이 작품에서 연결의 역할을 주로 한다. 지우가 겨울방학 동안 독립자금을 벌기 위해 건설현장으로 떠났을 때 용식을 맡아주었다. 이로써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둘은 간단한 안부 속에서 서로를 기다리는 사이가 되었다.

채운과의 연결은 좀 특별한 설정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뜻밖의 초현실적 장치가 나온다. 소리가 죽음을 앞둔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는.... 나는 처음에 이 설정이 김애란 소설의 결과 질감이 달라 겉도는 느낌에 좀 불편했다. 비슷한 설정의 스티븐 킹 소설을 읽고 난 후여서인지 너무 흔한 클리셰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읽어가며 익숙해질 무렵, 작가가 고민했을 이 장치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이런 초현실적 능력, 다시말해 기적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도약하기 힘든 그들의 처지를.

이 책에서 또 중요한 장치는 제목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이다. 담임선생님이 자기소개 시킬 때 쓰시는 그 게임. 나도 개학식날 방학이야기 나누기 할 때 몇번 써봤지만 왠지 맘에 들지 않아 조금 하다 말았다.... 그 게임은 '하얀 거짓말' 게임이라는 별칭도 있다. 이 책의 거짓말이 바로 그걸 말한 것일까. 이 세상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처럼 잔인하지만 아이들은 서로에게 그렇지 않다. 그 잔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마음의 고통을 안은 채 거짓말을 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조금 덜 가혹한 처지의 소리가 두 친구의 아픔에 본의아니게 관여하게 되었을 때. 아마도 셋의 연대를 독자들이 상상하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 모습을 본 탓이 아닐까. 그뿐 아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을 '거짓말'의 범주에 넣는다면 지금 이들이 괜찮은 듯 버티고 있는 모습 자체가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

지우 엄마의 애인이던 아저씨. 그 아저씨가 자신의 생계인 트럭에 지우를 태우고 그 게임을 하며 끝남으로 이 책은 제목의 소재로 수미상관이 되었다. 하지만 첫 게임과 마지막 게임은 많이 다르다. 아저씨는 규칙을 어겼다. 거짓을 넣지 않았다. 지우가 거짓으로 골랐던 "너와 살게 돼 기쁘다."는 진심이었다.

지우-소리, 채운-소리 간 사건들은 많았지만 지우-채운은 서로를 의식하긴 하나 직접적인 소통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될 것 같은 암시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아이들이 연대함으로 혈연 가족 안에서 느꼈던 슬픔과 외로움, 심지어는 참혹함까지도 씻어낼 수 있을까. 너무나 차갑게 비어있던 그 자리에 서로 앉아주며 온기를 나눌 수 있을까.
˝꿈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돌아왔다.˝
국어 선생님이 읽어준 시의 한구절이라는 이 문장이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 꿈은 깨어야만 하는 악몽인 거겠지. 좋은 꿈도, 무서운 꿈도 결국은 깨어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깨달음은 우리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을까. 아예 꿈을 안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부질없겠지. 뒷표지의 대화처럼 그건 시작되지도 않은 이야기니까.

어딘가에 있을 그 아이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다. 그들이 남은 이야기를 써나갈 힘을 채우길 빈다. 작가의 말을 덧붙이고 마치겠다.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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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돌을 찾아 줘 - 제2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수상작 초승달문고 58
최지안 지음, 차야다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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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신선한 작품이다. 이 책이 작가님의 첫 책이라고 하니 더욱 눈이 번쩍! 나는 이제 이전만큼 동화를 읽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동화는 즐겁게 읽어볼 것 같다.

리뷰를 쓰면서 심사평을 인용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 책은 심사평에 너무 공감해서 좀 인용해 보겠다.
"20여년 전에도 우리 어린이문학판에서는 잘놀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문제의식은 정확했지만 어린이 독자들과 진짜 잘 어울려 노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당위를 설파하는 데 그치는 작품들이 많았다."
맞아맞아!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제 그때의 아쉬움이 이해되었다. 당위도 중요하지만 접근은 거칠면 안 된다. 꼭 동화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 놀이 자체에 대한 접근도 그러했다. 쉽게 경도되었다가 금방 후회했던 나의 과거가 그걸 말해준다. 계속 인용해 보겠다.

"이 작품은 이런 한계를 훌쩍 벗어나 있다. 우선 이 작품은 재미있다. 저학년 어린이의 말투와 행동에 바짝 다가선 문장은 날렵하고 경쾌하다. 여기에 들려주는 말투와 간결하면서도 생생한 장면 묘사는 날개를 달아준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어린이들에게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질문이나 주제가 날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이 작품이 추리물의 미학적 특질을 저학년 동화의 성격에 맞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랜만에 신선한 작품을 만났다고 느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심사평이 내 느낌을 정확히 표현해 주셔서 매우 반가웠다.

화자인 한석구와 친구 오동오가 주인공이다. 2학년인 얘네들은 아직도 놀이터를 접수하고 괴물놀이를 하는, 한마디로 '잘 노는' 아이들이다. 햇살 쨍쨍한 더운 날 땀범벅이 되면서도 놀이터에서 발견한 돌을 끝까지 파내는 집념을 발휘하는 애들이다. 그 돌은 빨갛고 길쭉하고 뾰족했다.

지금부터가 사건의 시작이다. 털뭉치 괴물 셋이서 석구네 집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서로 그 빨간 돌이 자기 거라며. 뿔달린 괴물은 자기 뿔 하나가 떨어져나갔다고 하고, 이빨 괴물은 그게 자기 한쪽 송곳니라고 하고, 발톱 괴물은 자기 발톱 중 하나라고 한다. 석구는 난감하다. 하지만 주인이 정확히 밝혀지면 돌려주겠다고 한 뒤 동오와 함께 해결을 위한 지혜를 모은다.

그들이 지혜를 얻기 위해 처음 간 곳이 도서관이라는 점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서서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솔로몬왕의 지혜>라는 책까지 찾아본 아이들. 돌을 쪼개서 나눠줄까도 생각해봤지만.... 거짓말을 정확히 가리기 위해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의 특징도 조사해 본다. 그리고 괴물들의 재방문. 전혀 그런 특징들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서로의 주장이 다르다고 꼭 누군가 거짓말하는 것은 아니지. 각자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니까. 이럴 때는 거짓을 다그치기보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해야지.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빨간돌의 주인을 찾아주었다. 오~ 현대판 솔로몬이라 해도 되겠는걸. 하지만 이작품은 추리적 요소가 들어있으면서도 구태여 그것에 집착하지는 않는 느낌이다. 주인괴물은 그걸 찾아서 너무 다행이고, 나머지 괴물들은 아~ 내것이 아니구나~ 하면서 순순히 인정하고, 친구가 찾은걸 기뻐해 주는 모습들이 예쁘다.

심사평을 한군데 더 인용해야겠다. 동화에서의 '괴물'에 대한 설명이다.
"사람들은 미지의 대상인 외부 세계나 타민족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을 괴물로 이미지화하거나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근원적인 폭력성과 악마성을 괴물로 상징화하기도 했다.
... 어린이들은 좀 다르다.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나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에서처럼 어린이들은 넘쳐나는 생명력과 자연에 대한 친화성을 바탕으로 괴물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모든 어린이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나 지신과 세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어린이만이 괴물을 친구로 삼을 수 있다."

이 책의 털뭉치 괴물 셋과 아이 둘의 관계가 그렇다. 더구나 이 괴물들은 예의도 바르고 상식적이며 결과에 승복할 줄 알고 마음씨도 따뜻하다. 그림작가님께서 괴물이라기엔 너무 귀엽게 그려 주시기도 했다. 마침내 그 괴물들이 석구의 잊혀진 어린시절 속에서 만들어졌던 캐릭터들인것이 밝혀졌을 때 뭔가 아련한 마음이 아릿하게 느껴졌다. 어린시절은 잊혀진다. 그것이 그 사람의 구성 성분이 된 지도 모른채.... 엄마는 서툴고 형편없는 석구의 그림도 상자 안에 잘 보관해 두셨구나. 그렇게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놀아도 내버려두던 엄마가 아이의 흔적들은 잘 갈무리해뒀다는 점에서 진짜 부모의 역할이 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잘 못했고 어리석었지만 우리반 엄마들한테는 이렇게 부탁했었다.
"자녀의 작품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아무리 서툴러 보여도 바로 버리지 말고 감탄하며 천천히 봐주세요. 제가 다른 건 못해도 여러분 자녀들 작품의 최초 감상자가 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부모님들도 그렇게 해주세요."

다 증발되고 남지 않을 것들에 집착하고 안달복달하는 것. 아주 흔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은 석구와 동오가 한심하게 땅을 파던, 소위 '삽질하던' 시간 속에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그걸 봐줄 수 있고 조바심 내지 않는 인내심이 곧 지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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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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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것도 외국작가의 소설은 거의 안읽어보고 살다가 이제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나서 읽기 시작했다. 일단 먼저 가독성이 높은 작가루다가....

스티븐 킹의 가독성은 말해뭐해여서 재미있게 쭉 읽었다. 스티븐 킹도 이제 80세쯤 되신 것 같고 이 책은 비교적 최근작이다. 담엔 초기작을 읽어봐야겠다. 내가 재밌게 본 영화 best5 안에 꼽는 <쇼생크 탈출>의 원작이라든지.... 30년도 더 된 그 영화, 비디오가게가 성행하던 때 빌려봤던 그 영화.... 진짜 충격적이게 재밌었다.

이 책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재밌긴 했다. 초현실적인 설정(주인공에게 유령이 보이고 대화를 나눈다는)이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부분 좀 점수가 깎였다 해도 책장은 잘 넘어갔다.

AI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던 내가 요즘 제미나이한테 요것저것 말을 걸어보고 있다. 책에 대해서 말을 건 것은 이 책이 처음인데, 오잉? 재밌네? 사람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AI와 독서토론을 하면 되겠구나. 그의 문장을 사용하긴 싫다는 거부감이 내 안에 버티고 있긴 한데, 생각을 나눠보는 건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 제이미는 삼촌의 유령의 답을 듣고 더이상의 질문이나 대화를 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뭘까요?
내가 이렇게 물었다. 그랬더니 제미나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듯한 답변을 좔좔잘 내놓더니 나한테 이렇게 물었다.

- 제이미가 이 비밀을 알게 된 후,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오히려 어머니를 더 이해하게 되었을까요? 이 결말에 대한 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와 질문도 잘하네. 나는 제미나이에 비해 엄청 빈약한 답변을 내놓았다.

- 이해는 잘 모르겠지만 연민은 더 갖게 되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더 가까워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의 인생에 연민은 갖되, 부모자식간이라 해도 인생은 각자의 것이므로, 감정을 절제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님의 의견은 어때요?
난 이렇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자 제미나이는 공감과 함께 의견을 주었다.

- 님의 통찰에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연민은 갖되 거리를 두는 것이 낫다’는 지점은 이 소설이 가진 비극적인 함의를 가장 성숙하게 해석하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의견을 덧붙이자면, 님께서 말씀하신 '정서적 거리두기'야말로 제이미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질문이 이어졌다.

- 결국 이 소설의 결말이 주는 씁쓸함은 '진실을 알았기에 예전처럼 사랑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는 비극적인 성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님께서는 제이미가 이 진실을 알고 난 후,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비밀로 품고 살아가는 것이 제이미 본인에게 더 이로울 거라고 보시나요? 아니면 언젠가는 어머니와 이 문제에 대해 대면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나의 빈약한 답변이 또 이어졌다.

- 저라면 끝까지 내색하지 않겠습니다. 내색하는 건 일종의 둑을 터뜨리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봐요.
그러자 AI는 유려한 칭찬을 보내주었다.ㅎㅎㅎ 그리고 주제에 대한 결론까지 내려버렸다.
- 님의 '둑을 터뜨리는 행위'라는 표현이 정말 절묘합니다. 그 둑이 무너지는 순간, 단순히 진실이 오가는 수준을 넘어 두 사람의 남은 인생 전체가 흙탕물에 휩쓸려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신 거군요.
제이미 역시 소설 속에서 "나중에(Later)"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그 둑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님의 시각처럼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파괴적인 진실로부터 자신과 어머니를 보호하는 가장 자애로우면서도 처절한 '성인식'이었을 것입니다.
스티븐 킹이 그려낸 이 어두운 성장담은 결국 '모든 것을 드러내는 용기'보다 '끝까지 침묵하며 견디는 인내'가 더 고귀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대화를 끝냈다. 처음이라 토론이라 하기는 뭣한 얕은 대화였지만 숙달되면 깊이있는 토론도 가능하려나? 하여간 세상은 심심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구나.ㅎㅎ

화자인 제이미가 어린시절부터 청년이 된 지금까지의 일을 서술한 이 소설은 제이미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토록 심리적으로 참혹한 성장서사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제이미는 구부러지되 꺾이지 않는 식물과 같다고 할까, 여러가지 심리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그다지 강한 성격 같지도 않은데.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사람들마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제이미의 방어기제는 'Later'인 셈이다.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 하지만 지금 그걸 붙들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남편의 자취가 전혀 없는 엄마, 엄마의 파산 위기, 엄마의 동성 연인 리즈, 마약 때문에 파탄난 관계, 유령을 보는 능력 때문에 보게된 여러가지 참혹한 사건들, 자기들 살겠다고 어른들이 끌어들인 판에서 봐야하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현실들, 마지막의 가장 큰 충격. 이 모든 것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제이미는 용케도 두 발을 잘 딛고 서 있다. 독자들은 그를 응원하며 다른 책을 고르러 가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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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도배사 이야기 -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 에디션L 3
배윤슬 지음 / 궁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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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 서가를 훑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읽어봤다. 누구나 부러워할 대학을 나와 도배사가 되었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유튜브로 보았던가?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매우 인상적이어서인지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듣던대로 저자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나와서 전공 관련 일을 하다가 퇴사하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내 딸이었다면 아까워서 말렸을 것 같지만 그의 퇴사 이유도 공감한다. 물론 나라면 그래도 꾸역꾸역 하면서 참았겠지만... 그건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 자신이 없어서다. 그는 새로운 직업을 탐색했다.

새로운 직업을 찾는 그의 조건을 보니 나랑 성격이 비슷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조직 생활이나 힘들게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것, 누군가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일, 순발력 있게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일. 읽다보니 웃음이 났다. 내가 평생 몸담았던 일이 바로 저 조건과 딱 반대였구나. 그래서 힘들게 조심조심 걷느라 스트레스가 많았었다. 저자나 나나 책임감은 있어서 맡으면 해내긴 하지만 굳이 책임이 막중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은 성격인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조건이 나와는 달랐다. 바로 ‘기술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기술이 최고’라고 주장하곤 했다. 우리 시아버님은 목수셨는데, 집안의 온갖 보수를 책임져 주셨다. 나는 그걸 ‘서바이벌 능력’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능력만 남기고 하나씩 지운다면 끝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대부분 기술직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기술이 천대받는 사회였다. 이제 바뀌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들이 일괄적으로 대학 문만 바라보고 공부하는 사회는 낭비가 심한 사회다. 고등학문을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 있고, 그보다는 빨리 기술을 익히는 것이 나은 직업도 있다. 다양한 길을 모색하지 않고 그저 무조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인생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다보니 과한 경쟁에 어린 시절부터 자녀들을 몰아넣는 것이다. 여기서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클까.

저자 또한 소위 일류대학을 나왔지만 나중에라도 기술직을 선택한 것은 이런 면에서 선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2021년에 나왔는데 약 2년간의 도배사 생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초보 도배사라고 소개했는데, 5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아주 숙련된 기술자가 되셨으려나.

읽어보니 저자에게 도배사라는 새 직업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고 아주 딱 맞는 옷 같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기술은 는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하루하루 단기 목표를 잡고 해오다보니 어느새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인이 된 것이다. 그간의 어려운 점들을 읽어보니 와, 나는 못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초반에 그만두는 도전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다. 인내심 없이 성공할 수 있는 도전이 있을까.

첫 직장이었던 조직생활과 출근생활에 비해서 기술직은 근무가 유연하고 시간이 좀더 많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주 6일 일했고 근무시간도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라 더 길었다. 휴가도 그리 자유롭지는 않았다. 어른들 말씀대로 남의 돈 쉽게 먹는 직장은 없구나.... 다만 조금이라도 더 편한 마음으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에 기술직이 큰 비중으로 들어있으면 좋겠다.

“기술직이란 말 그대로 몸으로 터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직업이기에 기술만 완전하게 연마했다면 여타 직업보다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 긴 시간 익혀왔기 때문에 하루이틀의 인수인계만으로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 나는 그래서 이 일을 택했다. 필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보다 일터에서의 내 존재감이 더 중요했다.”
“나는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머리를 쓰는 일을 할 필요는 없을뿐더러 몸을 쓰는 사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어떤 것이 더 잘 맞고 잘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47쪽)

나는 신체지능이 매우 취약한 사람이라 몸을 잘 쓰지 못한다. 겨우겨우 하는 일도 두서가 없고 서툴다. 그래서 난 몸을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우리 사회가 머리를 쓰든 몸을 쓰든 이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했으면 한다. 그리고 모두가 자랑스럽게 책임감 있게 월급값하며 양심적으로 일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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