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에도 예민해진다면? 둔감력 기르기 스스로 연습하는 사회정서학습 1
김현수 기획, 최와니 지음, 우지현 그림 / 우리학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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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량은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둔감'에도 '력'자를 붙여야 하다니!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은 '둔감'이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바탕에 있는 거겠지. 보통 "너 참 둔하다" 라는 말은 기분좋은 말이 아니니까.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예민성이 문제로 떠오르면서 둔감은 그저 특징이 아니고 갖춰야될 역량이 되었다.

예민 또한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예민함이 일상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빼앗아가고 심리적 고통을 안겨줄 때 문제가 된다. 이 고통은 본인 한명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한다. 결국 공동체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이런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느낌이 든다. 단지 느낌인건지, 연구 결과나 통계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 이 책은 김현수 교수님을 대표로 함께 공부하는 관심단(관계의 심리학을 연구하는 교사단) 선생님들의 연구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님이 그 교사단의 일원이다.) 단체의 연구 사례 중 예민한 학생들의 문제점과 둔감력의 필요성에 절감했기에 이런 책도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3가지 형식이 반복된다.
(1) 이야기 : 학급에서의 에피소드들이 동화 형식으로 나옴
(2) 사회 정서 역량 기르기 : 앞의 이야기애서 드러난 문제점과 해결 방법들을 설명함
(3) 한번 연습해 봐 : 워크북 형식으로 진단과 연습을 할 수 있음
세 가지 모두 현장 경험이 풍부한 현직 교사가 쓰고 만든 것이라 적절하고 방향이 잘 잡혀있다.

본문 중 민재랑 지윤이는 불안이 높고 긴장이 심하며 감각이 예민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아이들이다. 유찬이는 덜렁거리고 주변을 개의치 않고 속전속결을 추구하며 허용의 범위가 넓은 아이다. 어느쪽이 옳다기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책 속 이야기 안에는 각각의 아이들의 겪는 어려움과, 성향이 다른 아이들이 어울렸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약간의 갈등구도도 보여준다. 하지만 두 성향이 균형을 잡을 때 최상의 결과가 나타나는 흐뭇한 가능성도 보여준다. 각 성향의 아이들이 읽으면서 자신도 이해하고 다른 성향의 아이들도 이해하며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는, 말하자면 '사회정서학습'의 지침서로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바로 '스스로 연습하는 사회정서학습'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시리즈의 다른 책 제목을 보니 '거절하는 법', '화 다루기' 등이 함께 출간되어 있다. 이런 것도 따로 배워야 되는 세상인가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지만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책으로 나와있으니 없는 것보다는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생각도 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 자신을 대입해보게 되는데, 나는 유찬이보다는 민재나 지윤이쪽에 가깝지만 극단적이진 않다는 진단을 하게 됐다. 예민한 건 맞는데 주변에 표는 크게 안내고 그럭저럭 살았구나 하는.... 그러나 특히 감각 과부화 문제(나의 경우에는 청각이 매우 심하고 촉각도 약간)에 무척 공감했다. 이건 낫는 것도 아니고 평생 가져가는 문제이니 어떻게 다스릴지가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가 되겠다.

이책을 부모님들도 좀 읽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민한 아이 뒤에 예민한 부모가 도사린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분들은 자녀의 예민함을 매우 어필한다. 아마 이 책을 보여드리면 "둔감력? 그런걸 키우라고?" 하면서 화내실 것 같다.^^;;;;; 각자의 특성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게 본인을 힘들게 하는데 좀 누그러지면 좋잖아요. 물론 저를 볼 때 그 성향은 평생을 가요. 하지만 발현을 좀 조절할 수는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한 번 읽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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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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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코너에 이 책이 꽂혀 있는데 작가 이름이 클레어 키건? 남이 집을세라 얼른 집어들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맡겨진 소녀>를 읽었으니 이 책이 세번째인가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이 책은 다섯번째, 내가 몰랐던 두 권이 더 있었다. 그런데 출간 순서는 쓴 순서와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다섯번째로 출간된 이 책이 작가가 가장 먼저 쓴 책이라고 한다. 2,30대의 젊은 시절에.

그래서 그런가..... 앞서 읽은 두 권에서는 상황은 열악할지라도 믿을만한, 완벽한 선인은 아니라도 고민하며 따뜻하게 살아가려 애쓰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저 서늘하고 가혹하기만 하다. 젊은 시절 매서운 눈매로 세상을 보던 작가가 나이가 들면서 빛의 따스함을 조금씩 넣기 시작한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 책들도 문체가 부드럽지는 않았다. 매우 절제된 언어로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하지만 독자들은 차갑고 절제된 언어 사이에 따스한 공간들을 제법 만들 수 있었고 비교적 짧은 그의 작품들을 풍요롭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역순으로 본 셈이긴 하지만 한 작가의 작품 세계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너무 무섭긴 했지만.ㅠ

간결함이 특징인 작가는 단편 길이도 여느 책들보다 짧아서 300쪽 남짓 되는 이 책에 실린 단편이 무려 15편이나 된다. 짧아도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어서 읽는데 시간은 제법 걸렸다.

첫번째이자 표제작인 [남극]부터가 입을 틀어막을 섬뜩함을 선사했다. 작가가 '바람피면 골로간다' 이런 정도의 주제로 작품을 쓰진 않았을 텐데 대체 이게 뭐람? 한 여자가 문득 남편 말고 다른 남자랑 자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맹랑하게도 실행에 옮겼다.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온다는 핑계로 도시로 떠났다. 의도한 대로 착착, 남자도 만났고 만족한 시간도 보냈고... 하지만 그녀는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이게 형벌이라면 형벌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바람 피우지 말고 정숙하게 살아라'도 아닌 것 같고 '모험 걸지 말고 살던 대로 살아라'도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뭐지? 하룻밤 함께했던 여자에게 그녀의 입으로 말했던 지옥을 그대로 선사하는 남자는 대체 어떤 인간인가? 세상에는 저런 인간이 어느정도 비율로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게 아닐까? 이 작품은 이처럼 세상과 인간에 대한 공포심과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최후는 나오지 않았고 최후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최후라고 한다면 그건 어떤 최후일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총질 칼질만 무서운게 아니다. 이런게 더 무서운 것 같아. 어휴.ㅠ

[키 큰 풀숲의 사랑]에서 사랑은 말하자면 불륜이다. 아내 있는 의사와의 사랑. 이 작품에선 잔인하거나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랑의 측면에서 본다면 아프다기보다 어정쩡하다. 오히려 그래서 슬프달까... 남자는 아내한테 들켰고 가정을 선택했고 여자한테는 10년 후를 기약했는데... 그리고 그 약속은 10년이란 세월에 빛바래고 바스라져 버렸을 수도 있었는데, 의외로 그들은 거기에 왔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의 어색하고 민망한 구도가 사랑의 모양이 참 별로라고 알려주는 듯.... 풋풋한 청춘사랑이 아닌 담에야 사랑이 로맨틱하긴 어렵다. 오히려 모냥빠지고 비루하다. 어느 순간에는 '깨게' 된다. 이 작품이 말해주는 서늘한 현실은 이것일까? 확실히는 모르겠다.

[진저 로저스 설교]도 내게는 순위권으로 끔찍했다. 화자인 여자아이는 막 사춘기에 들어선 소녀이고, 내가 보기엔 성적 호기심이 강렬한 아이인 것 같다. 그집 농사일을 많이 돕던 아저씨가 폭설로 하루 그집에 묵던 밤 어떤 일이 일어났고 이후 아저씨는 목을 매었다. 근데 어리둥절한 점은 그 가족이 춤추고 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는 거야. 마치 필사적으로 즐거우려고 하는 사람들처럼.... 이 작가는 '필요없는 문장은 하나도 쓰지 않는다' 라는 평이 있던데, 그렇다면 문장을 굉장히 경제적으로 쓴다는 것이고 계산되어 있다는 뜻도 되겠다. 그런 관점에서 난 한 문장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부모님이 미리 이야기를 나눴음을 깨닫는다. 세워둔 계획이 있는 것이다." 라는 문장이다. 이어서 오빠에게 춤을 가르치는 내용이 나와서 그얘긴가 하고 슬쩍 넘어갈 수 있겠지만 왠지 그 문장이 도드라졌다. 오빠의 비난의 눈길과 달리 부모님은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걸 알고 있으며 그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게 아닐까.
세상에 가해자 역할이나 억울한 입장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체로 경향성은 있다. 물리적 우위에 있는 남성과 어른이 주로 가해자 쪽에 있다.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는 걸 간과하고 프레임대로만 판단했다가는 큰일을 치를 수 있다. 그치만 이게 입증이 쉽지 않고, 영원한 비밀로 묻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세상 일이란게 이렇게 어렵다. 애건 어른이건 남자건 여자건 뻔뻔한 쪽이 갑이고 여린 쪽이 을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상이 그래서 잔인한 거 아니겠어. 이렇게 서늘한 이야기가 또 한 편.ㅠ

읽다보니 살짝 희망적인 작품도 발견하긴 했다. [화상]이라는 작품이었다. 아 근데 그건 다 읽고 나서 마지막에 발견한 한줄기 카타르시스이고, 그 과정은 너어무 끔찍해. 소재가 바퀴벌레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리만 발견해도 잠을 못 자는 내게 그 근원지를 터뜨려 쏟아져나오는 바퀴벌레떼에 대한 묘사는 너무 고문이었단 말이지... 와 작가님 젊었을 때는 정말 장난아니셨구나....ㄷㄷㄷ 그래도 새엄마를 아직 어색해하는 재혼가정이 바퀴벌레 소탕에 함께 몰두한 장면을 보니 이제 박멸만 하면 깨끗해지겠다 싶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바퀴벌레를 소재로 넣은 건 너무 악취미다 싶긴 했지만 희망의 극대화다 이렇게 해석해도 되려나? 내맘대로.^^

첫 작품 [남극]과 유사한 섬뜩함을 담은 작품도 있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화자가 누군가한테 말하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 화자가 여자라고 느낀 건 나의 착오일까? 작가의 유도였을까? 심지어 본인이 어부라고 소개했는데도 난 여자 어부네... 라고 생각했다는....;;; 중간쯤에 남자인 걸 깨달았는데, 그는 살인 범죄자에게 말려들어서 그의 배로 단둘이 바다 위에 있었다. 배도 그의 배이고 범죄자는 수영도 못하는 사람이니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았지만 결말은 [남극]의 그녀와 비슷한 신세... 진짜 이 작가는 독자에게 긴장감을 넘어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는데 천재적인듯... 화자는 자신의 선택이 '뱀보다 마귀를 선택한 것' 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심리적 배경이 목사였던 아버지가 어린시절 자신에게 행했던 잔인한 처벌 때문이었음을 알려준다. 어릴때 그는 도둑질을 한번 했고, 아버지는 죄에 대한 경고를 아주 섬뜩한 방법으로 했다. 뱀으로... 죄를 지어도 신이 무조건 용서하실 거라는 식의 도덕적 불감증을 가진 종교교육도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공포와 죄책감으로 강박하는 교육은 더더욱 끔찍하다. 인간에겐 중간보다 양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것일까. 그게 자식을 이와같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라는 심리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게 만든 건 아닐까. [남극]에서는 조심하지 않아서 파멸한 주인공을 그리더니 여기서는 저지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늪에 빠진 주인공을 그리는가.... 이러나 저러나 참 지독한 심리극이다.

너무 길어지니 마지막 [여권스프] 한 편만 더 얘기하고 마칠까 한다. 마지막답게 최악의 고통을 그렸다. 나는 고통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누군가랑 고통에 대해서 잠깐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마음이 힘들대도 신체적 고통을 넘을 순 없는 것 같아." 나도 동의했지만 내가 마음속에 한가지 남겨둔 예외가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이야기다. 자식의 실종, 즉 자식의 생사를 모르는 것이다. 연인의 배신도, 일의 실패도 시간이 지나면 어찌어찌 아물고 살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식의 실종은 하루하루가 데굴데굴 구르는 고통일 것 같다.
더구나 부부는 이 일에 있어 협력하거나 위로하는 관계가 아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당신이 괜히 요정 얘기를 해서" 라고 원망하며 극도의 증오를 드러낸다. 그 원망의 형상화가 바로 '여권스프'이다. 그게 뭔지는 말 안할래... 아 너무 끔찍하다.ㅠ
인간은 이런 고통 가운데서도 본능적으로 고통을 잊는 '행위'를 하게 되어있나 보다. 아내의 가학행위도 일종의 그런 것 아닐까. 남편도 그렇다. 마지막 문장이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이다.

15편 중에 겨우 몇 편 골라 썼지만 그래도 글이 길어졌다. 한줄평으로 줄이라면 '심리적 고통의 총망라'라고 하겠다. 읽는 동안 재밌었다는 말은 못하겠다. 힘들었다. 하지만 알고 싶은 욕심으로 읽었다. 작가의 작품 경향이 20여년 간 이 책에서 <이토록 사소한 것들>로 옮겨간 과정을 볼 때, 다음 책이 나오면 꼭 읽고 싶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책은 이제 그만 읽어도 되겠다. 이 한 권으로 충분히 경험한 느낌이다. 실제로는 아직 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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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어둠
조승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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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뒤늦게 읽고서 조승리 작가의 책을 더 찾아 읽게 되었다. 이번엔 소설이다. 이책이 작가의 첫 소설이고 며칠 전에 <용궁장의 고백>이란 소설이 새로 나온 것을 보았다. 대충 소개를 훑어보았는데 심상치가 않아보였다. 과연 대단한 필력을 품은 작가였구나!

이 책은 단편소설 네 편과 에세이 한 편이 들어있는 책이다. 각 단편들의 주인공들이 모두 시각장애인이라는 얘기는 미리 들었다. 읽어보니 그 모든 주인공이 작가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자전적 소설이라 하겠다. 어느정도 픽션은 추가했겠지만 그게 극히 일부일 것 같았다. 더구나 주인공의 생각이나 감정은 정확히 작가의 것 그대로라고 느껴졌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책의 다른 버전처럼 느끼면서 읽었다.

첫편 [네가 없는 시작]부터 가슴에 콱 들어와 박혔다. 어린 중고등 시절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이자 지극히 현실적인 이별 이야기이기도 했다. 남자아이도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빠마저 돌아가셔서 가엾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그래도 불안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자신의 불행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밝히는 순간 이 사랑이 끝이라 생각해서 언젠가 다가올 그 끝을 최대한 미루며 안타까운 사랑을 누린다. 혹시나 붙잡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대부분은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떠나간다. 나도 그럴 것 같기 때문에 누구를 비난은 못하겠다. 그렇게 여자아이는 '네가 없는 시작'에 발을 내디뎠다.

두번째 제목은 [내 안의 검은 새]이다. 내 안의 검은 새는 불안과 공포라고 나는 해석한다. 앞이 보이는 내 안에도 검은 새가 있다. 시력을 잃어가는 그에게는 오죽할까.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푸른 하늘을 훨훨 나는 새를 바라본다. 엄마의 품에 안겨서였다.

이 작품 안의 엄마와 아빠는 대조된다. 아빠란 인간의 행태가 너무 화나는데, 사실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 주말부부인 이집에서 농사일은 거의 엄마 차지인데, 엄마가 농사규모를 늘린 다음부터 (아무래도 딸의 앞날 때문이지 않을까) 아빠도 손을 보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엄마는 지치도록 농사일을 하고 들어와서도 식구들 끼니를 챙기고 딸의 마음까지도 챙긴다. 하지만 아빠는 안하던 일 좀 했다고 온갖 생색을 내며 딸에게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이 대비를 보며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무래도 아버지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서.

자식이 안타까울 때, 그 마음을 화를 내고 구박하며, 한숨쉬고 한탄하면서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일종의 애정표현이라고들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히 이기적인 애정표현이라는 걸 (말하자면 애정이라 하기도 어렵다는 걸) 이 아버지를 보면서 깨달았다. 딸은 더욱 움츠러들고 작아지고 자신을 무가치하고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마음 속의 검은 새가 더욱 커지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엄마의 사랑은 의지로 가득했고 단호했다. 이 사랑이 자식을 살린다. 부모라고 모두다 이런 사랑은 가진 것은 아니다.

[브라자는 왜 해야 해?]에서 주인공은 그리 불쌍하게 표현되지 않았는데 나는 이 작품이 특히 슬펐다. 성인 장애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 단면을 조금 본 것 같아서 그렇다. 자신을 지킬 지능을 갖지 못한 성인 장애인들이 얼마나 함부로 취급되어 왔는지, 동시에 주변에 얼마나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는지 알 것 같아서다. 그 손길이 충당되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그렇지 못하다면 당사자도 주변인들도 다 괴로운 게 현실이다.

주인공이 특수학교(맹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야무지고 머리가 좋기 때문에 역할이 많이 주어져 여기서 '부장님'으로 통한다. 맹학교지만 성인 중복장애 학생들을 받았다. 주인공의 기숙사에도 두 명의 언니가 있다. '브라자는 왜 해야 하냐'고 하루종일 묻는 부희 언니가 그 중 한명이다. 가끔 다녀가는 부모들을 보며 주인공이 품는 씁쓸함이 곧 독자의 씁쓸함이다. 이 작품이 가장 실화 같았다. 작가님의 특수학교 시절 경험이 반영된 것 같다. 주인공의 성정도 실제와 가장 비슷한 듯하다. 야무지고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부장님'.

마지막 [나의 어린 어둠]도 작가의 수기 같았다. 바쁜 농사꾼인 엄마의 딸로 지낸 어린시절부터 눈의 질병을 알게되고 받아들이는 시기까지의 이야기다. 엄마의 사랑을 대표하는 '호박부침개'가 오감을 자극한다. 따도따도 끝이 없는 고추밭의 암담함에서 농부의 고단함을 실감하고, 자전거를 사랑했던 아이에게서 작가의 성정을 본다.

소설 뒤에는 에세이 한 편이 추가되어 있다. 쓰는 열망이 살아났다 식었다 하다가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그 열망이 좋은 열매를 맺어서 정말 다행이다. 좋은 선생님이자 공감하는 독자인 스승을 만난 것도 다행이다. 무엇보다 본인의 노력과 끊이지 않는 이야기의 씨앗이 계속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첫문단에서 언급한 신간소설도 그렇게 해서 나왔으리라.

"나는 캄캄한 눈으로 세상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내놓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 문장이다. 든든한 느낌으로 진심을 다한 응원을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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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백년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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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는 좀 아는 편인데 소설가들은 잘 몰라서 도서관 갔을 때 서가 앞에 서면 좀 막연하다. 그래서 제미나이한테 한번 물어봤더니 이 작가를 추천해 주었다.ㅎㅎ 내가 어떻게 물어봤냐면,
"일본 소설 별로 안읽어봤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은 대부분 재밌게 읽었어. 그리고 스미노 요루 작품도 몇권 좋았던 게 있어. 고려해서 다른 작가들 추천 부탁해."

읽어보니 왜 이 작가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무해함? 제미나이는 내 취향을 그렇게 판단했나보다. 뭐 틀린 판단은 아니다.^^

엄청 흥미로운 스토리까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책장이 안 넘어가지도 않았다. 100년식당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4대에 걸친 식당의 이야기인데, 술술 읽히면서 주 화자들의 일상 감정에도 공감이 많이 갔다. 의외로 음식 자체에 집중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장마다 여러 화자들이 교차되어 나오는데, 식당의 4대손이라 할 수 있는 오모리 요이치가 가장 많이 나온다. 다음으로는 그의 여친인 쓰쓰이 나나미. 그러니까 어떻게보면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현실연애랄까? 우연히 만나고, 호감을 갖고, 연락하고, 만나고, 친해지고 커플이 되고, 알콩달콩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고, 거기에 오해가 겹치고, 싸우고, 화해하고.... 뭐 그런 이야기들. 나로선 아주 멀어진 시절이지만 자식들 생각도 나고 그들의 현실적 고민이 나이를 떠나 공감도 됐다.

쓰가루 식당은 히로사키라는 시골에 있고 요이치는 독립하여 혼자 도쿄에 산다. 나나미와의 우연한 만남이 운명이 된 것은 둘이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이다. 요이치 부모님은 메밀국수 식당을 하시고 나나미 부모님은 사과 과수원을 하시고. 둘은 대도시에 혼자 와서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고 있는 상황.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나미가 훨씬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존경하는 사진작가의 제자가 되어 조수 역할을 하며 사사를 받고 있으니. 요이치는 광고회사를 다니는 걸로 집에선 알고 있지만 거긴 나온지 오래고 지금은 이벤트 같은 걸 하고 있다. 삐에로와 풍선아트. 난 풍선 공작에 대해서 좀 안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어서 이부분이 살짝 실망되긴 했는데.... 어쨌든 요이치는 뭐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심성도 이쁜 괜찮은 청년이다.

이 둘 외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화자로는 아버지인 오모리 겐지 씨가 있고, 1대 할아버지인(말하자면 창업자인) 오모리 데쓰오와 그 부인 오모리 도요 씨도 나온다. (두분도 로맨스가 있음) 고향 친구도 한번 나온다.

젊은 커플의 연애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둘의 진로 때문이다. 나나미가 스승의 인정을 받으며 실력이 늘어갈 때 못난 마음이 되던 요이치가 이해된다. 요이치는 어찌든 도쿄에서 버텨낼 것인가? 나나미가 있는 도쿄를 떠나 백년식당을 이어받아 지킬 것인가?

일본에서는 이렇게 '가업'을 잇는 일에 대한 가치를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훌륭한 맛의 식당이 전통을 이어가는 건 좋지만 꼭 그게 자식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어서.... 혈연관계에 대한 가치는 크게 보지 않지만, 작은 가게의 맛을 소중하게 지켜온 역대 주인장들의 장인정신에는 경의를 표한다.

중간에 굉장히 인상적인 대화가 있어서 적어놓았다. 어떻게보면 눈에 띄게 교훈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너무 진리라고 생각되었다. 이걸 옮겨적고 마치겠다.
"이건 내가 어릴 때, 이 식당을 처음 만든 할아버지한테 몇번이나 들은 이야긴데."
"모든 일의 끝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배웠단다."
"그 말을 생각하면 식당 주인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손님에게 감사합니다, 인사하잖니?"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은 뭐랄까, 좀.... 신비한 힘을 가진 것 같더구나."
나도 이런 마음으로 살려고 애를 써야겠다. 이게 이 책을 읽은 수확이라 하겠다. 이젠 영 헤어졌지만 우리반 어린이들한테 늘 하고 싶은 말도 바로 이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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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 버거 초승달문고 59
동지아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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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분식>의 후속편인 것을 척 보면 알 수 있다. 등장인물들도 거의 같다. 2학년 강정인과 주변인들.(가족, 이웃, 친구들)

사실 전편을 읽고 리뷰까지 썼으나 내용을 다 까먹은 참에, 읽다보니 하나씩 생각이 났다. 정인이 엄마는 분식집을 하시지. 거기 신메뉴가 닭강정이었지. 어떤 화제작 드라마에서처럼 여기서도 정인이가 닭강정으로 변신을 했었지. 이번 책도 비슷한 패턴을 유지한다. 변신 판타지도 그대로 반복된다. 말도 안되는 변신이니까 판타지는 맞는데 그것만 빼면 너무 현실동화라서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제목이 해든을 그대로 두고 '분식'을 '버거'로만 바꾸었으니, 닭강정 다음으로 엄마가 내놓은 메뉴가 햄버거인가? 아니면 해든분식 옆에 누가 해든버거를 차렸나? 라는 짐작을 하게 됐는데, 둘다 아니었다. 한가지 짐작은 맞았다. 정인이가 이번엔 닭강정이 아닌 햄버거로 변신한다는 것! 그 변신 스토리 안에 따뜻하고 유쾌한 전편의 느낌이 그대로 이어져 흐른다.

정인이는 엄마가 분식집 일로 바쁘고, 구구단도 잘 못해서 6학년인 언니가 봐주는 신세다. 구박과 설움을 상당히 받을 것 같은 설정이지만 읽다보면 점점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지막엔 우와 정인아, 너는 진짜로 사랑받는 아이로구나. 너무 충만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수시로 포옹하고, 눈에서 하트 뿅뿅이 뿜어져 나와서는 아니다. 다들 일상을 고단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써주고 챙겨주는 것이다. 좋아하는 걸 기억해주고, 맛있는 걸 남겨놓고. 이런 사소한 것들이 엄청 중요한 거다.

정인이가 이걸 결정적으로 깨닫는 건 바로 변신되어 있을 때이다. 햄버거로 변해서 식탁위에, 그리고 음식쓰레기통 안에 있으면서. 삼총사 중 두 명이 원플러스원 햄버거를 나눠먹었다는 사실에 살짝 서운함을 느끼던 정인이는 그걸 꼭 사먹고 싶었지만 용돈이 모자랐다. 근데 그걸 언니가 먹었다는 증거를 보게되어 씩씩댄다. 햄버거가 되어서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네. 언니는 감튀만 먹고 버거는 동생이랑 먹으려고 가방에 넣어놨던 거야! (구구단 봐줄 때는 퉁명스럽고 놀리기도 잘하지만 그렇지도 않다면 현실자매가 아니겠지^^) 삼총사 친구들은 정인이를 기다리며 선물을 나눠가질 궁리를 하고, 엄마 친구 아들 준찬이는 정인이 몫의 음식을 챙기며 정인이가 어디갔나 내심 기다린다. 이런 사랑둥이 정인이!

음쓰통에 처박힌 햄버거, 아니 정인이는 그럼 언제 사람으로 돌아오냐고? 사실 아슬아슬한데 또 별로 그렇지가 않아요. 예고된 해피엔딩이나 마찬가지라서 적당한 때 딱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깐. 언니랑 마주앉아 햄버거를 먹는 그림으로 <해든버거> 이야기는 마무리.

막 엄청난 감동 휴먼 스토리가 아닌 것이 은근히 맘에 들었다. (엥? 무슨 심보일까ㅎㅎ) 닭강정, 햄버거 모두 정크푸드이긴 하지만 어쨌든 맛있는 음식에 버무린 이야기인 점도 좋았다. (이야기에서 맛있다는 느낌이 들면 누구나 좋아한다.) 소소하지만 서로 챙겨주는 마음이 우리를 살게한다는 느낌이 들게 해줘서 좋았다. 나도 나를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 챙김을 약간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챙김 받았구나에 대한 감수성인 것 같다. 이게 없는 애들이 정말 많거든.

두번째 권을 읽다보니 정인이 이야기도 유은실 작가님의 정이 시리즈나 김리리 작가님의 떡집 시리즈처럼 시리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제3, 제4의 변신물을 궁리하셔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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