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든 버거 초승달문고 59
동지아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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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분식>의 후속편인 것을 척 보면 알 수 있다. 등장인물들도 거의 같다. 2학년 강정인과 주변인들.(가족, 이웃, 친구들)

사실 전편을 읽고 리뷰까지 썼으나 내용을 다 까먹은 참에, 읽다보니 하나씩 생각이 났다. 정인이 엄마는 분식집을 하시지. 거기 신메뉴가 닭강정이었지. 어떤 화제작 드라마에서처럼 여기서도 정인이가 닭강정으로 변신을 했었지. 이번 책도 비슷한 패턴을 유지한다. 변신 판타지도 그대로 반복된다. 말도 안되는 변신이니까 판타지는 맞는데 그것만 빼면 너무 현실동화라서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제목이 해든을 그대로 두고 '분식'을 '버거'로만 바꾸었으니, 닭강정 다음으로 엄마가 내놓은 메뉴가 햄버거인가? 아니면 해든분식 옆에 누가 해든버거를 차렸나? 라는 짐작을 하게 됐는데, 둘다 아니었다. 한가지 짐작은 맞았다. 정인이가 이번엔 닭강정이 아닌 햄버거로 변신한다는 것! 그 변신 스토리 안에 따뜻하고 유쾌한 전편의 느낌이 그대로 이어져 흐른다.

정인이는 엄마가 분식집 일로 바쁘고, 구구단도 잘 못해서 6학년인 언니가 봐주는 신세다. 구박과 설움을 상당히 받을 것 같은 설정이지만 읽다보면 점점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지막엔 우와 정인아, 너는 진짜로 사랑받는 아이로구나. 너무 충만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수시로 포옹하고, 눈에서 하트 뿅뿅이 뿜어져 나와서는 아니다. 다들 일상을 고단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써주고 챙겨주는 것이다. 좋아하는 걸 기억해주고, 맛있는 걸 남겨놓고. 이런 사소한 것들이 엄청 중요한 거다.

정인이가 이걸 결정적으로 깨닫는 건 바로 변신되어 있을 때이다. 햄버거로 변해서 식탁위에, 그리고 음식쓰레기통 안에 있으면서. 삼총사 중 두 명이 원플러스원 햄버거를 나눠먹었다는 사실에 살짝 서운함을 느끼던 정인이는 그걸 꼭 사먹고 싶었지만 용돈이 모자랐다. 근데 그걸 언니가 먹었다는 증거를 보게되어 씩씩댄다. 햄버거가 되어서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네. 언니는 감튀만 먹고 버거는 동생이랑 먹으려고 가방에 넣어놨던 거야! (구구단 봐줄 때는 퉁명스럽고 놀리기도 잘하지만 그렇지도 않다면 현실자매가 아니겠지^^) 삼총사 친구들은 정인이를 기다리며 선물을 나눠가질 궁리를 하고, 엄마 친구 아들 준찬이는 정인이 몫의 음식을 챙기며 정인이가 어디갔나 내심 기다린다. 이런 사랑둥이 정인이!

음쓰통에 처박힌 햄버거, 아니 정인이는 그럼 언제 사람으로 돌아오냐고? 사실 아슬아슬한데 또 별로 그렇지가 않아요. 예고된 해피엔딩이나 마찬가지라서 적당한 때 딱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깐. 언니랑 마주앉아 햄버거를 먹는 그림으로 <해든버거> 이야기는 마무리.

막 엄청난 감동 휴먼 스토리가 아닌 것이 은근히 맘에 들었다. (엥? 무슨 심보일까ㅎㅎ) 닭강정, 햄버거 모두 정크푸드이긴 하지만 어쨌든 맛있는 음식에 버무린 이야기인 점도 좋았다. (이야기에서 맛있다는 느낌이 들면 누구나 좋아한다.) 소소하지만 서로 챙겨주는 마음이 우리를 살게한다는 느낌이 들게 해줘서 좋았다. 나도 나를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 챙김을 약간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챙김 받았구나에 대한 감수성인 것 같다. 이게 없는 애들이 정말 많거든.

두번째 권을 읽다보니 정인이 이야기도 유은실 작가님의 정이 시리즈나 김리리 작가님의 떡집 시리즈처럼 시리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제3, 제4의 변신물을 궁리하셔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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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대신 라면 - 밥상 앞에선 오늘의 슬픔을 잊을 수 있지
원도 지음 / 빅피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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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지면 난 그동안 시간의 부담으로 엄두를 못냈던 벽돌책들을 읽을거라 생각했다. 근데 한달이 가까워오도록 벽돌책은 커녕 독서량 자체가 줄었다. 도서관은 전보다 자주 가는데, 대출했던 책을 읽지도 않고 반납하기도....^^;;; 그리고 일단 편하게 읽을 얇고 작은 책을 집어들게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표지는 새빨갛지, 신간코너에 떡하니 놓여있으니 집어드는 건 백퍼.^^

이 책을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음식에세이 주간○○위' 라고 나온다. 이것도 순위를 매길만큼 많은가? 생각하며 눌러보니 줄줄줄... 우와 많구나. 이 많은 중에 내가 접해본 작가는 권여선 작가 정도.

음식에 곁들인 이야기는 친근하고 손이 쉽게 간다. 당연하게도 안 먹고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누구나 음식에 대한 추억과 사연이 있다. 공감할 지점들도 많다. 학급 어린이들과 매주 쓰던 주제글쓰기에서 인기주제 중 하나가 기억난다. '맛있는 이야기'라는 제목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든, 만들 수 있는 음식이든, 가족이 즐겨먹는 음식이든 음식에 대한 아무 이야기나 쓰라고 하면 아주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신이 났었다. 읽을만한 글도 꽤 많이 나왔었고. 나 또한 몇 가지 음식 이야기는 낱말만 던져주면 몇천자쯤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만 읽을 글일지언정.^^

이왕이면 재밌고, 오감이 자극되며 그 안에 작가의 인생과 통찰까지 들어있다면 더 좋겠지. 이 책은 그런 방향으로 쓰여진 책 같았다. 다만 독자(나)의 나이가 훨씬 많다보니 귀엽다거나, 기특하다거나, 응원한다 등의 마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나름 좋은 감상이다. 동년배나 인생 선배의 이야기만 들으란 법은 없으니까. 경찰공무원이었다가 전업작가로 전향한 그의 이력도 흥미롭고 아직도 불투명한 진로 앞에서 흔들리는 그를 보며 내 자식과 그 친구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언젠가 장난 반으로 가족 톡에 "나중에 엄마가 죽거나 없다면 어떤 음식이 가장 생각날까요?" 라고 올렸더니 톡을 바로바로 보는 딸은 "난 비빔국수!" 라고 바로 올렸고 아들은 한참 후에 "난 곰탕!"이라고 대답했다.ㅎㅎ

이 작가의 소울푸드는 절친과 만나기만 하면 먹는 조개전골이고, 경상도에서 홀로 상경한 딸을 위해 엄마는 좁은 냉장고가 감당할 수 없게 김치를 보내주고, 작가는 미역국에 소고기 들어간 걸 어색하게 여긴다. 작가네 고향에선 간짜장에 당연하게 계란후라이를 올려 주었다.... 등등 글을 통해 작가에 대한 tmi도 알게 된다. 엄마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나도 음식으로 엄마를 얘기하려면 할 말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팥시루떡을 무려 집에서 쪘던 엄마, 평생 그만한 걸 먹어본 적 없는 동지 팥죽, 나(딸)보다 아들(외손자)이 더 좋아하는 식혜, 나이 들어서야 참맛을 깨달은 엄마표 약과, 한천이 뭐야? 그런 걸 써서 만들었던 팥양갱 등등.

[라면] 꼭지에서 저자의 성찰에 공감했다. 인스턴트 음식의 대표주자인 라면을 보고 한계가 없는 요리라고 하는 말에 굳이 태클을 걸고 싶지 않다.
"그러니 라면 한 개를 먹더라도 작은 변주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기쁨에도, 글에도, 삶에도 아직 남은 여백이 많으니까."
남은 여백이 많은 젊음이 부럽지만, 20대도 아니고 30대인 그들에게 젊음은 여유도 아니고 더한 절박함인 경우도 많다. 나도 굳이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보통사람도 그런데 창작자들은 더하겠지.

작가는 자신의 전직인 경찰 이력을 굳이 숨기지도 강조하지도 않았지만 그 시기의 경험이 그의 많은 것을 이루었음을 글 속에서 간간이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태원사고 수습의 경험은 자극적으로 쓰지 않았는데도 파문을 남긴다. 그는 본격 경찰 이야기도 썼는데 독립출판이었던 그 책이 뜨면서 작가로 데뷔했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꽤 많은 책들이 나왔고 모두 경찰 경험이 그 바탕이 된 것 같다. 이 책에 가장 적게 들어간 셈이다.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해장국 같은 오래된 음식들도 있지만 젊은이답게 불닭볶음면, 마라탕 등도 들어있다. 특히 불닭볶음면이 그렇게나 팔린 줄은 처음 알았네. 난 딱 한번 먹어본 음식이라서.ㅎㅎ 이런 종류의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새삼스레 입맛이 돌면서 낼 귀가길에 마트에 들러 장바구니에 담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음식 속에 표현한 그의 경험과 철학을 본다. 나이가 더 들면 색이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색깔 그대로도 멋지다. 고민 속에서 어찌든 나아가고 있는 젊은이들, 특히 창작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사람들에게 소울푸드를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많은 '식당 서사' 문학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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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좋은 토끼 하나
신은경 지음, 소보루 그림 / 북스그라운드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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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토끼 이름을 '하나' 라고 지은 이유를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다. '혼자가 좋은' 이라니. 읽기 전부터 '얘는 내 캐릭터겠는데?' 느낌이 왔다.

하나가 이사하는 날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나는 일부러 숲속 가장 깊은 외딴집으로 이사를 왔다.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기적이라고 하기엔 이전의 사연들에 공감이 간다. 그동안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힘들었다.

이전의 가치관이라면 "아무리 그래도 친구를 피하면 쓰나!!" 이겠지만 요즘은 워낙 혼자 하는게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라.... 식당을 가도 혼밥자가 반이 넘는다. 까페는 완전 대세고.... 나도 혼자 뭘 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게 누구랑 싸워서도 싫어해서도 아니고 그냥 그게 편해서이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진정한 고립자냐면 절대 아니다. 나는 은근 의존성이 높은 사람이라 내 옆에 지혜롭고 든든한 사람이 꼭 있어주길 원한다.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들면 무척 당황하고 불안할 것이다. 나의 감정이 일반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조용히 혼자있는 시간도 배려해 주되, 필요시 긴밀히 연대도 하는 것이 요즘의 가치관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옆집 숟가락 갯수까지 안다는 옛날 이웃들의 관계가 요즘의 나에겐 너무 끔찍한 방식이다. 예상치 못한 시공간에 불쑥불쑥 들어오는 게 너무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을 높이 세우고 그 성 안에 갇히는 건 그보다 더 끔찍하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관계는 딱 요즘의 스타일에 맞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말하자면 "이런 책도 나올 때가 되었어!" 라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지 않겠어!" 라는 하나의 결심은 예기치 않은 일들로 자꾸만 어긋난다. 할머니의 선물인 당근쿠키가 통째로 사라지면서 용의자가 생기고 이어서 친구도 생긴다. 세상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토끼 하나는 까마귀, 돼지, 사슴, 두더지와 새 집의 식탁에 둘러앉아 작은 티파티를 한다. 어둑해지자 시간 끌지 않고 미련없이 인사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딸 아들이 다 독립해서 가끔 온다. 온다고 하면 맛있는 거 하나라도 준비하는 손길이 즐겁다. 가고 나면 한편 홀가분하다. 그래서 내가 이랬다.
"오면 와서 좋고, 가면 가서 좋으니 얼마나 행복하냐~!!"ㅎㅎ
이 책은 요즘 시대의 적정한 관계 설정을 저학년 수준의 동화로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펼쳐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거부감없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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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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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낯익은 걸 보니 무척 유명한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누가 방금 반납한 듯 북트럭 위에 있길래 집어들었다. 내용은 내 예상을 넘어섰다. 얼마전에 시각장애인 김한솔씨의 책 두 권을 읽었는데 이 작가님도 시각장애인이었다. 여성이란 점이 다를 뿐, 10대 때부터 발병하여 후천적 장애인 것도 같았다.

제목부터 작가님의 성깔(?)이 느껴진다.ㅎㅎ 어릴 적부터 한성격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까다롭고 못된 성격이란 뜻이 아니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하고, 아닌건 아니라고 꼭 말하기 때문이다. 깊은 시골 집성촌에서 살던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아주 옛날얘기 같았다. 작가님이 나보다 훨씬 젊으신데도 말이다. 장애가 없던 시절도 녹록치 않던 생활이었다. 엄마의 삶도 무척 고단했다.

서울 변두리에서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고만고만하게 어린시절을 보낸 나는 드문드문 생각나는 장면들은 있지만 그리 강렬하지 않다. 이 작가님의 인생 이야기는 굵고 거칠고 진하다. 장애 이전의 어린시절부터 이미. 거기에다 십대에 실명에 이르는 질병이 덮쳤으니 엄마는 얼마나 기가 막혔으며 본인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지만 숱한 상처들에 딱지가 앉아가며 지금까지 왔다. 내가 살면서 본 바, 인생이 완전히 공평하지는 않다. 하지만 쓴맛 사이에 단맛이 슬며시 들어있기는 한 것 같다. 그의 인생에도 슬픔 사이에 위로도 기쁨도 보람도 있어서 이토록 다채로운 책이 된 걸 보면 말이다.

가장 큰 수확은 그가 공모전에 입상하고 이 책을 출간함으로 작가로서 성공했다는 점이다. 나는 2년이나 지나 읽어봤지만 여전히 판매지수도 엄청나다. 내용의 화제성을 떠나 필력 자체가 무척 탄탄해서인 것 같다. 검색해보니 이후 한 권의 에세이가 더 있고, 세번째 책은 소설이다! 그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다.

어떤 서사든 인물이 등장하므로, 이 책은 그의 경험과 더불어 그가 만나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될 듯하다. 그의 직업이 마사지사인 만큼, 고객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문밖으로도 못나오며 오그라들어 살았던 할머니는 그에게 "담이 커지는 안마를 해주세요." 라고 부탁한다. 나도 은근 의존성이 큰 사람이라 이 할머니의 사정과 심리가 이해되었다. 담이 커지는 안마라니, 나도 작가님께 마사지를 한번 받아보고 싶네. 평생 한번도 받아본 적 없었는데....^^;;; 마사지사는 시각장애인 학교의 주력 직업교육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길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작가님처럼 그길로 간 경우도 무척 좋아보였다. 유명 작가가 된 지금도 계속 하고 계시겠지? 그에게서 마사지 자체의 효과와 함께 꿀같은 쪽잠, 용기, 위안, 때로는 각성을 얻고 간 모든 고객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외에 장애인학교에서 만났던 엄마뻘의 언니가 아직도 챙겨주는 하염없는 사랑에도 눈물이 났고, 은사님과의 사연도 눈물겹다. 고향에서 살던 이들의 인생의 무게는 왜들 그렇게 무거운지... 인생의 고단함과 치열함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기억도 못할 무심결의 말이라 할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불편하거나 상처가 되는 말인지도 실감했다. 남의 불행에서 행복을 느끼라고 말하는 몰지각한 목사, 빨리 결혼해서 자식 낳아 시중들게 하라고 강권하는 눈치없는 할머니들 등등. 활동자원사님은 매우 선하고 좋으신 분인데도 그의 해맑은 발언이나 권유에 마음이 상하고, 그걸 느끼는 그분이 또 상처를 받아 잠시라도 불편해지기도 한다. 악의가 없더라도 그러하니, 사회 전체의 감수성이 더 높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멋진 걸 얘기하고 마치겠다. "앞도 못 보면서 여길 뭐하러 왔누!" 라며 혀를 끌끌 차는 시선을 무시하고 멋진 여행을 다녀온 점. 또 탱고를 배워 춤의 맛을 만끽하고 있는 점. 그리하여 두번째 책이 여행 이야기인 것 같다. 그 책도, 그 다음 소설도 궁금하다. 책은 읽을수록 가지를 친다더니 진짜 그렇네!

인생은 많은 비율 지랄맞은 일들도 채워져 있지 않나. 내가 본 바로는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그걸 축제로 끌고 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축제로 가는 길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남의 길을 조금 컨닝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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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스와 팀블 1 : 처음 만난 날 - 생쥐와 올빼미의 우정 이야기 오리스와 팀블 1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카르멘 목 그림, 박인혜 옮김 / 루덴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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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디카밀로의 신간이 나왔길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서관에 신청했다. 월 2권까지만 신청할 수 있어서 신중해야 하지만 워낙 좋아하는 작가라서.... 처리에 시간이 꽤 걸리긴 하지만 나오자마자 신청한 탓에 한달도 안된 신간을 새책으로 열어보았네. 기분이 좋았다.^^

이 책은 저학년용 짧은 동화이고 장마다 그림이 가득 들어가 있는 그림동화이다. 이 책에 '(1)처음 만난 날' 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다음 책들이 이어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이 책이 발단에 해당되겠다. 그래서 아직 아주 극적인 느낌이나 클라이막스는 없고,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디카밀로 특유의 섬세하고 어루만지는 듯한 문체, 그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주제나 키워드 같은 것들이 여전히 느껴져 애독자들을 붙잡는다.

나에게는 그것이 두 가지로 느껴진다. 첫째는 '이야기'라는 키워드이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비어트리스의 예언, 노렌디 이야기를 거쳐 이 작품까지. 이야기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친절하게 강조한다. 만들어져 있는 이야기 뿐 아니라 내가,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대한 소중함을 전하려 애쓴다. 우리 삶이 이야기라는 인식은 내가 바로 창작자이며 아름답게 완성하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면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다.

두번째는 '선하고 순수한' 주제이다. 고전적이고 권선징악을 담은 주제 말이다. 착한 마음을 가져라, 어렵더라도 남을 도와라, 지금 당장 고난에 처할지라도 결국에는 가치있다.... 이런 생각들이다. 케이트 다카밀로의 작품에는 비꼼이나 코웃음, 의심, 냉소, 이런 것들이 없다. 물론 그런 것들이 들어있는 작품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이것들을 지켜내는 디카밀로의 작품이 내게는 따뜻하면서도 든든하다.

<오리스와 팀블>에서 오리스는 생쥐다. 팀블은 올빼미고. 천적관계인 두 존재의 우정 이야기. 동화에서 아주 흔하다. 거기서 먹히는 존재인 생쥐가 올빼미를 구해준다? 이거 역시 흔하디흔한 소재다. 요즘 말로 '클리셰 범벅'인 이야기라 하겠다.ㅎㅎ 하지만 이어지는 2,3권에서 디카밀로가 이 작품을 어떻게 개성있게 이끌어갈지 흥미롭게 지켜보도록 하자.^^

오리스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에 대한 묘사들이 정겹다. 헛간 벽 구멍 안의 작은 공간. 그곳을 오리스는 버려진 헌책들로 꾸몄다. 빨간 털 슬리퍼에 작가의 섬세함이 들어있는 느낌이다. (오리스가 푹 파묻혀 잠들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통조림 캔. 이게 중요하다. 물고기 왕이 그려져 있는 이 캔에는 "올바르고 값진 선택을 하세요!" 라고 쓰여있다. 이 문구는 장차 오리스의 모든 행동에 좌우명이 된다. 1권의 모든 사건들이 끝나고 오리스가 이 캔을 향해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귀여움과 함께 경건함이 느껴졌달까.

어린이들에게는 상징과 은유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직설적으로 말해야 될 때가 있다. 그러니 동화도 양쪽이 적절히 섞여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에선 통조림 캔이 말해주고 있으니 훨 낫다.ㅎㅎ 아이들과 선택의 기로에서 이 문구를 떠올리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아예 급훈처럼 삼아도 좋겠는데?
"올바르고 값진 선택을 하자!"
영어를 배우는 학년이라면 원어와 병행해서 가르쳐도 좋을 것 같다. 번역은 아무래도 원어의 맛을 다 살리진 못하니까.

그 '선택'으로 인해서 천적관계인 둘은 드디어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건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럼, 팀블. 우린 이제 친구야!"
"하지만 그게 이야기의 끝은 아니잖아."
"그래. 이건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야."

둘이 친구가 되어 시작된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지 다음 권들을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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