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어둠
조승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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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뒤늦게 읽고서 조승리 작가의 책을 더 찾아 읽게 되었다. 이번엔 소설이다. 이책이 작가의 첫 소설이고 며칠 전에 <용궁장의 고백>이란 소설이 새로 나온 것을 보았다. 대충 소개를 훑어보았는데 심상치가 않아보였다. 과연 대단한 필력을 품은 작가였구나!

이 책은 단편소설 네 편과 에세이 한 편이 들어있는 책이다. 각 단편들의 주인공들이 모두 시각장애인이라는 얘기는 미리 들었다. 읽어보니 그 모든 주인공이 작가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자전적 소설이라 하겠다. 어느정도 픽션은 추가했겠지만 그게 극히 일부일 것 같았다. 더구나 주인공의 생각이나 감정은 정확히 작가의 것 그대로라고 느껴졌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책의 다른 버전처럼 느끼면서 읽었다.

첫편 [네가 없는 시작]부터 가슴에 콱 들어와 박혔다. 어린 중고등 시절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이자 지극히 현실적인 이별 이야기이기도 했다. 남자아이도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빠마저 돌아가셔서 가엾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그래도 불안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자신의 불행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밝히는 순간 이 사랑이 끝이라 생각해서 언젠가 다가올 그 끝을 최대한 미루며 안타까운 사랑을 누린다. 혹시나 붙잡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대부분은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떠나간다. 나도 그럴 것 같기 때문에 누구를 비난은 못하겠다. 그렇게 여자아이는 '네가 없는 시작'에 발을 내디뎠다.

두번째 제목은 [내 안의 검은 새]이다. 내 안의 검은 새는 불안과 공포라고 나는 해석한다. 앞이 보이는 내 안에도 검은 새가 있다. 시력을 잃어가는 그에게는 오죽할까.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푸른 하늘을 훨훨 나는 새를 바라본다. 엄마의 품에 안겨서였다.

이 작품 안의 엄마와 아빠는 대조된다. 아빠란 인간의 행태가 너무 화나는데, 사실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 주말부부인 이집에서 농사일은 거의 엄마 차지인데, 엄마가 농사규모를 늘린 다음부터 (아무래도 딸의 앞날 때문이지 않을까) 아빠도 손을 보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엄마는 지치도록 농사일을 하고 들어와서도 식구들 끼니를 챙기고 딸의 마음까지도 챙긴다. 하지만 아빠는 안하던 일 좀 했다고 온갖 생색을 내며 딸에게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이 대비를 보며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무래도 아버지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서.

자식이 안타까울 때, 그 마음을 화를 내고 구박하며, 한숨쉬고 한탄하면서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일종의 애정표현이라고들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히 이기적인 애정표현이라는 걸 (말하자면 애정이라 하기도 어렵다는 걸) 이 아버지를 보면서 깨달았다. 딸은 더욱 움츠러들고 작아지고 자신을 무가치하고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마음 속의 검은 새가 더욱 커지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엄마의 사랑은 의지로 가득했고 단호했다. 이 사랑이 자식을 살린다. 부모라고 모두다 이런 사랑은 가진 것은 아니다.

[브라자는 왜 해야 해?]에서 주인공은 그리 불쌍하게 표현되지 않았는데 나는 이 작품이 특히 슬펐다. 성인 장애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 단면을 조금 본 것 같아서 그렇다. 자신을 지킬 지능을 갖지 못한 성인 장애인들이 얼마나 함부로 취급되어 왔는지, 동시에 주변에 얼마나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는지 알 것 같아서다. 그 손길이 충당되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그렇지 못하다면 당사자도 주변인들도 다 괴로운 게 현실이다.

주인공이 특수학교(맹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야무지고 머리가 좋기 때문에 역할이 많이 주어져 여기서 '부장님'으로 통한다. 맹학교지만 성인 중복장애 학생들을 받았다. 주인공의 기숙사에도 두 명의 언니가 있다. '브라자는 왜 해야 하냐'고 하루종일 묻는 부희 언니가 그 중 한명이다. 가끔 다녀가는 부모들을 보며 주인공이 품는 씁쓸함이 곧 독자의 씁쓸함이다. 이 작품이 가장 실화 같았다. 작가님의 특수학교 시절 경험이 반영된 것 같다. 주인공의 성정도 실제와 가장 비슷한 듯하다. 야무지고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부장님'.

마지막 [나의 어린 어둠]도 작가의 수기 같았다. 바쁜 농사꾼인 엄마의 딸로 지낸 어린시절부터 눈의 질병을 알게되고 받아들이는 시기까지의 이야기다. 엄마의 사랑을 대표하는 '호박부침개'가 오감을 자극한다. 따도따도 끝이 없는 고추밭의 암담함에서 농부의 고단함을 실감하고, 자전거를 사랑했던 아이에게서 작가의 성정을 본다.

소설 뒤에는 에세이 한 편이 추가되어 있다. 쓰는 열망이 살아났다 식었다 하다가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그 열망이 좋은 열매를 맺어서 정말 다행이다. 좋은 선생님이자 공감하는 독자인 스승을 만난 것도 다행이다. 무엇보다 본인의 노력과 끊이지 않는 이야기의 씨앗이 계속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첫문단에서 언급한 신간소설도 그렇게 해서 나왔으리라.

"나는 캄캄한 눈으로 세상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내놓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 문장이다. 든든한 느낌으로 진심을 다한 응원을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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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백년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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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는 좀 아는 편인데 소설가들은 잘 몰라서 도서관 갔을 때 서가 앞에 서면 좀 막연하다. 그래서 제미나이한테 한번 물어봤더니 이 작가를 추천해 주었다.ㅎㅎ 내가 어떻게 물어봤냐면,
"일본 소설 별로 안읽어봤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은 대부분 재밌게 읽었어. 그리고 스미노 요루 작품도 몇권 좋았던 게 있어. 고려해서 다른 작가들 추천 부탁해."

읽어보니 왜 이 작가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무해함? 제미나이는 내 취향을 그렇게 판단했나보다. 뭐 틀린 판단은 아니다.^^

엄청 흥미로운 스토리까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책장이 안 넘어가지도 않았다. 100년식당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4대에 걸친 식당의 이야기인데, 술술 읽히면서 주 화자들의 일상 감정에도 공감이 많이 갔다. 의외로 음식 자체에 집중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장마다 여러 화자들이 교차되어 나오는데, 식당의 4대손이라 할 수 있는 오모리 요이치가 가장 많이 나온다. 다음으로는 그의 여친인 쓰쓰이 나나미. 그러니까 어떻게보면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현실연애랄까? 우연히 만나고, 호감을 갖고, 연락하고, 만나고, 친해지고 커플이 되고, 알콩달콩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고, 거기에 오해가 겹치고, 싸우고, 화해하고.... 뭐 그런 이야기들. 나로선 아주 멀어진 시절이지만 자식들 생각도 나고 그들의 현실적 고민이 나이를 떠나 공감도 됐다.

쓰가루 식당은 히로사키라는 시골에 있고 요이치는 독립하여 혼자 도쿄에 산다. 나나미와의 우연한 만남이 운명이 된 것은 둘이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이다. 요이치 부모님은 메밀국수 식당을 하시고 나나미 부모님은 사과 과수원을 하시고. 둘은 대도시에 혼자 와서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고 있는 상황.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나미가 훨씬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존경하는 사진작가의 제자가 되어 조수 역할을 하며 사사를 받고 있으니. 요이치는 광고회사를 다니는 걸로 집에선 알고 있지만 거긴 나온지 오래고 지금은 이벤트 같은 걸 하고 있다. 삐에로와 풍선아트. 난 풍선 공작에 대해서 좀 안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어서 이부분이 살짝 실망되긴 했는데.... 어쨌든 요이치는 뭐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심성도 이쁜 괜찮은 청년이다.

이 둘 외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화자로는 아버지인 오모리 겐지 씨가 있고, 1대 할아버지인(말하자면 창업자인) 오모리 데쓰오와 그 부인 오모리 도요 씨도 나온다. (두분도 로맨스가 있음) 고향 친구도 한번 나온다.

젊은 커플의 연애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둘의 진로 때문이다. 나나미가 스승의 인정을 받으며 실력이 늘어갈 때 못난 마음이 되던 요이치가 이해된다. 요이치는 어찌든 도쿄에서 버텨낼 것인가? 나나미가 있는 도쿄를 떠나 백년식당을 이어받아 지킬 것인가?

일본에서는 이렇게 '가업'을 잇는 일에 대한 가치를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훌륭한 맛의 식당이 전통을 이어가는 건 좋지만 꼭 그게 자식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어서.... 혈연관계에 대한 가치는 크게 보지 않지만, 작은 가게의 맛을 소중하게 지켜온 역대 주인장들의 장인정신에는 경의를 표한다.

중간에 굉장히 인상적인 대화가 있어서 적어놓았다. 어떻게보면 눈에 띄게 교훈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너무 진리라고 생각되었다. 이걸 옮겨적고 마치겠다.
"이건 내가 어릴 때, 이 식당을 처음 만든 할아버지한테 몇번이나 들은 이야긴데."
"모든 일의 끝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배웠단다."
"그 말을 생각하면 식당 주인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손님에게 감사합니다, 인사하잖니?"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은 뭐랄까, 좀.... 신비한 힘을 가진 것 같더구나."
나도 이런 마음으로 살려고 애를 써야겠다. 이게 이 책을 읽은 수확이라 하겠다. 이젠 영 헤어졌지만 우리반 어린이들한테 늘 하고 싶은 말도 바로 이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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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 버거 초승달문고 59
동지아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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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분식>의 후속편인 것을 척 보면 알 수 있다. 등장인물들도 거의 같다. 2학년 강정인과 주변인들.(가족, 이웃, 친구들)

사실 전편을 읽고 리뷰까지 썼으나 내용을 다 까먹은 참에, 읽다보니 하나씩 생각이 났다. 정인이 엄마는 분식집을 하시지. 거기 신메뉴가 닭강정이었지. 어떤 화제작 드라마에서처럼 여기서도 정인이가 닭강정으로 변신을 했었지. 이번 책도 비슷한 패턴을 유지한다. 변신 판타지도 그대로 반복된다. 말도 안되는 변신이니까 판타지는 맞는데 그것만 빼면 너무 현실동화라서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제목이 해든을 그대로 두고 '분식'을 '버거'로만 바꾸었으니, 닭강정 다음으로 엄마가 내놓은 메뉴가 햄버거인가? 아니면 해든분식 옆에 누가 해든버거를 차렸나? 라는 짐작을 하게 됐는데, 둘다 아니었다. 한가지 짐작은 맞았다. 정인이가 이번엔 닭강정이 아닌 햄버거로 변신한다는 것! 그 변신 스토리 안에 따뜻하고 유쾌한 전편의 느낌이 그대로 이어져 흐른다.

정인이는 엄마가 분식집 일로 바쁘고, 구구단도 잘 못해서 6학년인 언니가 봐주는 신세다. 구박과 설움을 상당히 받을 것 같은 설정이지만 읽다보면 점점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지막엔 우와 정인아, 너는 진짜로 사랑받는 아이로구나. 너무 충만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수시로 포옹하고, 눈에서 하트 뿅뿅이 뿜어져 나와서는 아니다. 다들 일상을 고단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써주고 챙겨주는 것이다. 좋아하는 걸 기억해주고, 맛있는 걸 남겨놓고. 이런 사소한 것들이 엄청 중요한 거다.

정인이가 이걸 결정적으로 깨닫는 건 바로 변신되어 있을 때이다. 햄버거로 변해서 식탁위에, 그리고 음식쓰레기통 안에 있으면서. 삼총사 중 두 명이 원플러스원 햄버거를 나눠먹었다는 사실에 살짝 서운함을 느끼던 정인이는 그걸 꼭 사먹고 싶었지만 용돈이 모자랐다. 근데 그걸 언니가 먹었다는 증거를 보게되어 씩씩댄다. 햄버거가 되어서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네. 언니는 감튀만 먹고 버거는 동생이랑 먹으려고 가방에 넣어놨던 거야! (구구단 봐줄 때는 퉁명스럽고 놀리기도 잘하지만 그렇지도 않다면 현실자매가 아니겠지^^) 삼총사 친구들은 정인이를 기다리며 선물을 나눠가질 궁리를 하고, 엄마 친구 아들 준찬이는 정인이 몫의 음식을 챙기며 정인이가 어디갔나 내심 기다린다. 이런 사랑둥이 정인이!

음쓰통에 처박힌 햄버거, 아니 정인이는 그럼 언제 사람으로 돌아오냐고? 사실 아슬아슬한데 또 별로 그렇지가 않아요. 예고된 해피엔딩이나 마찬가지라서 적당한 때 딱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깐. 언니랑 마주앉아 햄버거를 먹는 그림으로 <해든버거> 이야기는 마무리.

막 엄청난 감동 휴먼 스토리가 아닌 것이 은근히 맘에 들었다. (엥? 무슨 심보일까ㅎㅎ) 닭강정, 햄버거 모두 정크푸드이긴 하지만 어쨌든 맛있는 음식에 버무린 이야기인 점도 좋았다. (이야기에서 맛있다는 느낌이 들면 누구나 좋아한다.) 소소하지만 서로 챙겨주는 마음이 우리를 살게한다는 느낌이 들게 해줘서 좋았다. 나도 나를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 챙김을 약간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챙김 받았구나에 대한 감수성인 것 같다. 이게 없는 애들이 정말 많거든.

두번째 권을 읽다보니 정인이 이야기도 유은실 작가님의 정이 시리즈나 김리리 작가님의 떡집 시리즈처럼 시리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제3, 제4의 변신물을 궁리하셔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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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대신 라면 - 밥상 앞에선 오늘의 슬픔을 잊을 수 있지
원도 지음 / 빅피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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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지면 난 그동안 시간의 부담으로 엄두를 못냈던 벽돌책들을 읽을거라 생각했다. 근데 한달이 가까워오도록 벽돌책은 커녕 독서량 자체가 줄었다. 도서관은 전보다 자주 가는데, 대출했던 책을 읽지도 않고 반납하기도....^^;;; 그리고 일단 편하게 읽을 얇고 작은 책을 집어들게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표지는 새빨갛지, 신간코너에 떡하니 놓여있으니 집어드는 건 백퍼.^^

이 책을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음식에세이 주간○○위' 라고 나온다. 이것도 순위를 매길만큼 많은가? 생각하며 눌러보니 줄줄줄... 우와 많구나. 이 많은 중에 내가 접해본 작가는 권여선 작가 정도.

음식에 곁들인 이야기는 친근하고 손이 쉽게 간다. 당연하게도 안 먹고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누구나 음식에 대한 추억과 사연이 있다. 공감할 지점들도 많다. 학급 어린이들과 매주 쓰던 주제글쓰기에서 인기주제 중 하나가 기억난다. '맛있는 이야기'라는 제목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든, 만들 수 있는 음식이든, 가족이 즐겨먹는 음식이든 음식에 대한 아무 이야기나 쓰라고 하면 아주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신이 났었다. 읽을만한 글도 꽤 많이 나왔었고. 나 또한 몇 가지 음식 이야기는 낱말만 던져주면 몇천자쯤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만 읽을 글일지언정.^^

이왕이면 재밌고, 오감이 자극되며 그 안에 작가의 인생과 통찰까지 들어있다면 더 좋겠지. 이 책은 그런 방향으로 쓰여진 책 같았다. 다만 독자(나)의 나이가 훨씬 많다보니 귀엽다거나, 기특하다거나, 응원한다 등의 마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나름 좋은 감상이다. 동년배나 인생 선배의 이야기만 들으란 법은 없으니까. 경찰공무원이었다가 전업작가로 전향한 그의 이력도 흥미롭고 아직도 불투명한 진로 앞에서 흔들리는 그를 보며 내 자식과 그 친구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언젠가 장난 반으로 가족 톡에 "나중에 엄마가 죽거나 없다면 어떤 음식이 가장 생각날까요?" 라고 올렸더니 톡을 바로바로 보는 딸은 "난 비빔국수!" 라고 바로 올렸고 아들은 한참 후에 "난 곰탕!"이라고 대답했다.ㅎㅎ

이 작가의 소울푸드는 절친과 만나기만 하면 먹는 조개전골이고, 경상도에서 홀로 상경한 딸을 위해 엄마는 좁은 냉장고가 감당할 수 없게 김치를 보내주고, 작가는 미역국에 소고기 들어간 걸 어색하게 여긴다. 작가네 고향에선 간짜장에 당연하게 계란후라이를 올려 주었다.... 등등 글을 통해 작가에 대한 tmi도 알게 된다. 엄마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나도 음식으로 엄마를 얘기하려면 할 말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팥시루떡을 무려 집에서 쪘던 엄마, 평생 그만한 걸 먹어본 적 없는 동지 팥죽, 나(딸)보다 아들(외손자)이 더 좋아하는 식혜, 나이 들어서야 참맛을 깨달은 엄마표 약과, 한천이 뭐야? 그런 걸 써서 만들었던 팥양갱 등등.

[라면] 꼭지에서 저자의 성찰에 공감했다. 인스턴트 음식의 대표주자인 라면을 보고 한계가 없는 요리라고 하는 말에 굳이 태클을 걸고 싶지 않다.
"그러니 라면 한 개를 먹더라도 작은 변주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기쁨에도, 글에도, 삶에도 아직 남은 여백이 많으니까."
남은 여백이 많은 젊음이 부럽지만, 20대도 아니고 30대인 그들에게 젊음은 여유도 아니고 더한 절박함인 경우도 많다. 나도 굳이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보통사람도 그런데 창작자들은 더하겠지.

작가는 자신의 전직인 경찰 이력을 굳이 숨기지도 강조하지도 않았지만 그 시기의 경험이 그의 많은 것을 이루었음을 글 속에서 간간이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태원사고 수습의 경험은 자극적으로 쓰지 않았는데도 파문을 남긴다. 그는 본격 경찰 이야기도 썼는데 독립출판이었던 그 책이 뜨면서 작가로 데뷔했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꽤 많은 책들이 나왔고 모두 경찰 경험이 그 바탕이 된 것 같다. 이 책에 가장 적게 들어간 셈이다.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해장국 같은 오래된 음식들도 있지만 젊은이답게 불닭볶음면, 마라탕 등도 들어있다. 특히 불닭볶음면이 그렇게나 팔린 줄은 처음 알았네. 난 딱 한번 먹어본 음식이라서.ㅎㅎ 이런 종류의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새삼스레 입맛이 돌면서 낼 귀가길에 마트에 들러 장바구니에 담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음식 속에 표현한 그의 경험과 철학을 본다. 나이가 더 들면 색이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색깔 그대로도 멋지다. 고민 속에서 어찌든 나아가고 있는 젊은이들, 특히 창작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사람들에게 소울푸드를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많은 '식당 서사' 문학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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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좋은 토끼 하나
신은경 지음, 소보루 그림 / 북스그라운드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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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토끼 이름을 '하나' 라고 지은 이유를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다. '혼자가 좋은' 이라니. 읽기 전부터 '얘는 내 캐릭터겠는데?' 느낌이 왔다.

하나가 이사하는 날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나는 일부러 숲속 가장 깊은 외딴집으로 이사를 왔다.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기적이라고 하기엔 이전의 사연들에 공감이 간다. 그동안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힘들었다.

이전의 가치관이라면 "아무리 그래도 친구를 피하면 쓰나!!" 이겠지만 요즘은 워낙 혼자 하는게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라.... 식당을 가도 혼밥자가 반이 넘는다. 까페는 완전 대세고.... 나도 혼자 뭘 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게 누구랑 싸워서도 싫어해서도 아니고 그냥 그게 편해서이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진정한 고립자냐면 절대 아니다. 나는 은근 의존성이 높은 사람이라 내 옆에 지혜롭고 든든한 사람이 꼭 있어주길 원한다.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들면 무척 당황하고 불안할 것이다. 나의 감정이 일반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조용히 혼자있는 시간도 배려해 주되, 필요시 긴밀히 연대도 하는 것이 요즘의 가치관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옆집 숟가락 갯수까지 안다는 옛날 이웃들의 관계가 요즘의 나에겐 너무 끔찍한 방식이다. 예상치 못한 시공간에 불쑥불쑥 들어오는 게 너무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을 높이 세우고 그 성 안에 갇히는 건 그보다 더 끔찍하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관계는 딱 요즘의 스타일에 맞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말하자면 "이런 책도 나올 때가 되었어!" 라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지 않겠어!" 라는 하나의 결심은 예기치 않은 일들로 자꾸만 어긋난다. 할머니의 선물인 당근쿠키가 통째로 사라지면서 용의자가 생기고 이어서 친구도 생긴다. 세상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토끼 하나는 까마귀, 돼지, 사슴, 두더지와 새 집의 식탁에 둘러앉아 작은 티파티를 한다. 어둑해지자 시간 끌지 않고 미련없이 인사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딸 아들이 다 독립해서 가끔 온다. 온다고 하면 맛있는 거 하나라도 준비하는 손길이 즐겁다. 가고 나면 한편 홀가분하다. 그래서 내가 이랬다.
"오면 와서 좋고, 가면 가서 좋으니 얼마나 행복하냐~!!"ㅎㅎ
이 책은 요즘 시대의 적정한 관계 설정을 저학년 수준의 동화로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펼쳐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거부감없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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