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름 소설의 첫 만남 22
권여선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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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권여선 작가님 책을 한권 빌렸는데 옆에 아주 얇은 이 책이 꽂혀 있었다. 오 금방 읽겠다 싶어서 같이 빌려왔고, 편한걸 선호하는 나는 원래 빌리려던 책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생각보다 더 짧은 책이었다. 중편 정도도 안되고 단편인 듯했다. 단편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작품 분량에 비해서 여운은 깊고 길었다. 그러니 충분히 곱씹어 감상하라고 따로 출간한 것일까...? 어쨌든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책이다.

등장인물은 딱 둘이다. 50대로 짐작되는 엄마와 20대의 딸. 나와 비슷한 상황이다.

다른 점도 있다. 나는 평생 하던 일을 올해 그만두고 퇴직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엄마는 아직 생활 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완벽히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다는 점. 독립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연을 끊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었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 만 가닥이든 끊어 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둘 사이가 끊어진다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 여야 했다." (21~22쪽)

딸 고2때 이혼하고 집을 나온 엄마는 이런 생각으로 누구와도 왕래 없이 혼자서 살아간다.
"당분간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73쪽)

여기에 딸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점이 놀랍다. 세상에 딸 아닌 어떤 존재가 이렇게 할까. 아들도 아주 드물게는 할 수 있겠지. 딸이라고 다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들 엄마들이 딸 엄마들을 부러워하는 건 대부분 이렇게 최후의 친구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딸이라서가 아닐까.

아빠의 재혼을 앞두고, 딸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1박2일의 여행을 제안했다. 못이기듯 따라나선 그 이틀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들은 여행동안 서로 이름을 부르기로 약속한다. "반희 씨" "채운 씨" 이런 식으로.

방송 관련 현장 일을 하는 듯 보이는 딸은 큼직한 SUV 차량을 렌트해와서 산속 펜션으로 엄마를 이끈다. 차 안에서, 숙소에서 그들은 각잡고 대화를 한 건 아니지만 할 말들은 다 했다. 돌아오는 길 엄마와 딸은, 특히 엄마에게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나는 처음에 저렇게 벽을 치는 엄마를 이해했다. 이혼, 요즘 세상에 그게 뭐라고 인생에 오점이라도 남긴 듯이 주변을 끊어내나 하겠지만, 평생 인생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은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린 엄마의 상한 자존심을 알 것 같았다. 단편이라 그간의 과정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그냥 그렇게 짐작을 했다.

아예 안나오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의 기억 소환에서 딸 열 살때의 일이 나온다. 그날 참을 수 없었던 엄마는 가출을 했고 남편과 아들의 문자가 빗발쳤다. 결국 엄마는 밤을 넘기지 못하고 귀가했는데, 바로 '채운이가 울고 있다'는 연락 때문이었다. 그때 채운이는 엄마에게 안기지도 않고 눈을 흘기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엄마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서 엄마는 이후 몇년을 더 참은 것 같다. 열살에서 고2때까지. 남편과 무슨 갈등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인내의 과정에 엄마 자신은 없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큰 차로 산길을 운전하며 여행을 주도하던 씩씩한 딸이 공황 비슷한 증세를 보인 것은 또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장면을 보며 '모자무싸' 드라마의 변은아가 생각났다. 버려진다는 공포감은 그런 것인가보다. 그들이 최악까지 가지 않은 건 다행히 변은아에게는 따뜻한 등을 내어준 새할머니가 있었고, 채운의 엄마는 이별을 몇년이나마 보류하고 더 보살펴주다 떠났다. 그래도 변은아는 어떤 장면에서 코피를 흘리고, 채운에게는 호흡곤란이 찾아온다.

채운이 '미래완료'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때 나는 이 책이 비록 단편이지만 안 보인 사건들을 구체화하고 상세화해서 드라마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16화는 너무 늘어지고, 8화 정도로? 생활 밀착형 드라마이면서 매 화마다 가슴에 꽂히는 단어들을 던져주는 드라마. 그 낱말 중 하나는 '미래완료'다.

"엄마, 나는 미래 완료라는 말이 그렇게 슬퍼. 언제부터인가 난 알았던 것 같아. 엄마가 집을 나갈 거라는 걸. 엄마가 나간 다음에 나 혼자 엄마 없이 살 거라는 걸. 나 고2때 진짜 엄마가 이혼하고 나갔잖아? 내가 상상한 그대로 미래 완료가 된 거야. 그렇게 될 줄 다 알면서 모른 척 살아온 거 같았어. 그리고 얼마 안 가 더 나쁜 미래완료가 생겨난 것 같았어.... (중략) .... 그러면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숨을 못 쉬겠어." (81쪽)

속소에서의 밤, 맥주 기운을 빌려서인지 채운이 이런 고백을 하고 잠이 든다. 딸은 나와 달랐으면 하던, 그래서 천가닥 만가닥의 실이라도 끊어내려 하던, 추호라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결벽스러운 어미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중간이라는 건 참 어렵다. 얼마전 읽었던 [용궁장의 고백]이라는 책에서는 부모가 천륜이라는 실을 물귀신처럼 틀어쥐고 자식의 피를 빨더니, 이 책의 엄마는 조금이라도 더럽게 얽힐까 봐 그렇게나 조심을 하네.... 하지만 20대의 딸이 정말 어른이네. 아직도 엄마 생각하며 사는 어린애 면도 있지만 그걸 이렇게 풀어가니 어찌 어른이 아닐소냐. 결국 모녀는 다소 구질구질하게 엉키더라도 인연의 실은 끊지 않고 살아갈 듯하다. 누추한 엄마 집에 놀러가고, 밥도 얻어먹고 그러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엄마의 결벽스러운 면과 독립적인 태도가 딸에게 신뢰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징징대는 어른보다 얼마나 낫냐고. 공공체육센터 청소일을 하고 감염병으로 (코로나 때겠지) 문을 닫자 음식솜씨를 발휘해 반찬가게에 납품을 하는 성실함과 생활력. 사실 이런 면이 있으니까 딸도 손내밀 수 있는거고 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홀로서기가 먼저고 다음이 관계다.

나 포함 수많은 엄마들의 모녀간, 모자간 아름다운 관계를 빌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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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스, 이건 사랑 이야기야 I LOVE 스토리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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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케이트 디카밀로 책이 자주 나오는 편이네? 지난번 얇은 동화(오리스와 팀블)에 이어 이번엔 좀 두꺼운 동화책이 나와서 읽어보았다. 이번 작품은 뭐랄까, 내가 좋아하던, 무척 익숙해져버린 케이트 디카밀로의 느낌과는 뭔가 살짝 다르다고 할까. 다 읽고 나서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마도 고요한 중에 마음을 건드리는, 그런 느낌이 나의 취향이다가 이 책은 좀 소란스러운 느낌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소란스러운 이유는, 소동이 많고, 그럴 만한 인물들이 있기 때문에....^^;;;

페리스라는 열 살 여자아이가 주인공이고, 주된 공간은 집이다. 그러니까 주로 가족 이야기라는 뜻이 되겠다. 내가 이집 엄마라면 도망가고 싶겠다. 이 집의 일상은 내가 선호하는 '고요한 시간'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집은 지하실이 딸린 큰 집이다. 그 지하실에 직장도 때려치고 집나온 시동생이 들어앉아 있다. 무슨 세계의 역사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사명을 받았다나? 연로하신 할머니도 계신데, 페리스 시점에선 좋은 할머니지만 엄마가 '낭만주의자' 라고 평하는 걸 보면 나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번거롭고 도움 안되는 사람일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진 소동을 일으키는 인물은 페리스의 동생 핑키다. 얘는 악당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하며, 지명수배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기이하다는 면에선 말괄량이 삐삐랑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파괴적이어서 도무지 정이 안 가는 캐릭터인데다가 너무 톤이 튀는 인물이어서 거슬렸다. 앞에서 말한 좀 아쉬운 느낌이 이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가족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페리스의 절친 빌리는 아빠랑 둘이 사는 아이라 수시로 페리스네 집에 드나들 뿐 아니라 그집의 피아노를 친다. 물론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라 아주 잘 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군식구인데다가 시끄럽잖아. 하여간에 늘 이렇게 북적이고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페리스네 집이다.

할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유령이 보인다고 하신다. 그리고 병에 걸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할머니는 이 집에 처음 살던 유령이 샹들리에를 밝히기 원한다고 한다. 그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샹들리에를 밝히고 그 김에 파티를 하는 장면의 이 책의 클라이맥스다. 그 파티에는 이집 가족 외에 지하실 삼촌의 아내인 셜리 숙모도 오고, 평생 할머니를 흠모하던 부이 할아버지도 오고, 빌리의 아빠, 얼마전 남편을 여읜 밀크 선생님도 왔다. 빼곡히 초를 밝힌 샹들리에 아래, 정말 아름다운 파티였다. 내가 유난스럽다고 느낄 만큼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들이 받고 싶은 사랑, 주고자 하는 사랑은 하나로 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류가 그 많은 다툼 가운데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완벽하게 아름답다기엔 소동도 있었다. 어느새 자리를 이탈한 핑키는 다락방 상자 속에 들어가 있었고, 부엌에는 너구리가 출몰한다. 너구리 출몰의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핑키 사건은 지금까지 핑키의 모든 기행이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몸짓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물론 그런 방식을 매우 반대한다. 하지만 당위로만 풀어갈 수 없는 일들이 아이들과의 사이에선 많이 일어나니까... 그때 이렇게 말하는 페리스는 나보다 어른인가!
"넌 내 동생이야."
"그게 뭐."
"사랑해."

파티는 아름다웠지만 결국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삼촌은 드디어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세계의 역사를 하나의 캔버스에 그린다는게 애초에 말이 안되지 않나? 하지만 그림은 완성되었고 그 장면은 연회장이었다. 샹들리에 아래 그날의 그들이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귀퉁이에 날고 있는 작은 참새.

이번 책이 전작들보다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이 비유만큼은 매우 강력해서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베데 작가가 이런 글을 남겼어. 우리 모두는 어떤 성의 거대한 연회장에 날아 들어왔다 나가는 참새와 같다고."
"연회장으로 들어오기 전과 나간 뒤의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거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단지 우리가 그 안에 잠시 들어와 머물다가 밖으로 나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날아간다는 것 뿐이야." (216쪽)

작은 참새로 잠시 들어왔다 나가는 세상에서 굳이 이를 갈고 싸울 필요는 없지 않겠나? 그래서 작가는 작품마다 '사랑'과 '이야기'를 말하는가보다. 이번 작품에는 특히 사랑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가슴 절절한 로맨스만이 사랑은 아니니까. 일상의 소동이 보여주는 사랑도, 가족과 이웃, 친구 간에 생각해주는 마음도 다 사랑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좋은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야."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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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장의 고백
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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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리 작가의 에세이와 소설 한 권씩을 인상깊게 읽었다. 이번 소설은 자전적 내용을 넘어선 내용이어서 작가로서 더 한걸음 나아간 것 같아 관심이 생겨 읽어보았다. 특히 책 소개나 '작가의 말'을 보면 천륜에 묶여 학대받고 고통 당하는 이들에 대한 응원인 것 같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이런 내용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인륜은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다. 천륜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채 각자의 지옥을 버텨내고 있을 이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7쪽, 작가의 말)

근데 읽어보니 그렇게 단순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였다. 그것들을 구성해 엮어낸 서사력에 놀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저게 주제라면 서사의 무게에 짓눌려 주제는 빛이 바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지는 독서였다. 가독성이 엄청나서 앉은자리에서 다 읽긴 했으나 쉬운 독서는 아니었다. 힘들었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가 나이 들어도 애틋해하고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인간 종류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어서, 전혀 다른 사람들도 있다. 자녀에게 빨대 꽂고 평생을 갈취하며 자녀가 주도적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비정한 부모들이 있다. 미혼인 경우 결혼을 방해한다는 얘기도 들어봤다. 착한자식 콤플렉스건, 가스라이팅의 결과이건 그 자녀들은 끝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간다.

내가 그 자식이라면 이 책을 읽고 그 강제된 천륜을 끊을 용기를 얻지 못할 것 같다. 용기를 내기는 커녕 더 겁먹고 실행에 못 옮길 것 같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머지 서사가 너무 무겁고 참혹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어야 용기를 내지, 이렇게 인간의 밑바닥 본성까지 보게되는 참혹함이어서야 어떻게 용기를 내겠는가 말이다. 만약 그것이 독서의 목적이라면 전체 5부 중 70대의 시각장애인이면서 90대의 패악한 노모를 떠맡은 주인공이 나오는 1부만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도 울지 않는, 슬픔보다 안도와 평온이 자리한 장례식에서 작가는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런 장례식은 실제로 꽤 많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평생 주변을 지옥으로 만들며 살아온 망자의 인생도, 그사람 때문에 행복 한조각 갖는 것도 사치였던 가족의 삶도 참 딱하다.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는 상황을 상상해본다. 의외로 많이 있을 것 같다. 그 인간의 파괴력이 크면 클수록. 그럴때 그가 죽기를 바라는 심정은 죄악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있는 그 응원을 나도 함께 보내고 싶다.

문제는 나머지 서사의 고통스러움이다. 이것까지 그려낸 작가의 역량은 소설가로서 한층 더 나아갔다고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아쉬움은 밀도 높은 서사가 주제를 짓눌러버린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건 나만 느낀 것일 수도 있고, 작가가 그려내고 싶었던 진짜 주제는 다른 곳에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총 5부로 다섯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그동네 대형교회의 장로이자 동네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오사장'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종교의 외피를 뒤집어쓴 악의 실세로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으로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단순하지 않다. 나는 평소에 "나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내가 아플 때 누워있으라고 하고 설거지를 해준다거나, 돈없고 허기졌을 때 국밥 한그릇 사준다거나 하는 사람이 말로만 사랑한다 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오장로는 이런 면에서 부지런한 사람이고 해결력도 뛰어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섬뜩한 악의 진면목을 외면할 수도 없다.

중심 장소인 용궁장은 그 신도시에서 매우 불행한 이력을 가진 참혹한 장소이다. 지금은 누구도 보살피기 어려운 사람들 몇명의 수용소처럼 되어버렸고, 그런 와중에 화재사고가 나서 입주자들이 다 사망해버렸다. 그 장례식이 바로 눈물 없는, 안도의 한숨이 조용히 번지는 장례식이었던 것이다.

5부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그걸 확인하는 독자는 몹시 괴롭다. 오장로 뿐 아니라 다른 화자들까지 오장로의 굳건한 종교적 껍데기 속으로 편입하려 애쓴다. 그 안에 엄청난 것들을 다 묻은 채. 심지어 방화 살인까지도. 물론 그 방화는 누구에게는 나머지 삶의 행복을 보장해 주었지만.ㅠㅠ

세상이란 이다지도 단순하지 않으며, 뒤섞여 뭉쳐버린 컬러점토처럼 악을 분리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런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 나이에도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만 든다. 작가님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참 많은 것을 보셨구나 하는 생각도. 좋았던 책으로 꼽기는 어렵겠지만 작가님의 다음 창작도 응원한다. 그때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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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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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책이 도서관에서 자주 눈에 띄었는데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루다가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세상을 떠난지도 100년이 넘은 작가다. 그런데 요즘 작품이라고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물론 생활상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인간의 내면 측면에서 말이다. 제목 또한 <마음>이다. '심리' '자아' '고뇌' '정신' 등등을 포괄하여 가장 적당한 제목이라 생각된다.

화자는 한 대학생인데 중심인물은 그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한 중년의 남자다. 우연히 만나 호감을 갖게된 선생님을 화자는 유난히 따른다. 선생님은 타인과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따르는 화자를 굳이 내치지는 않는다. 아니, 마지막에는 자신의 '마음'을 상세히 서술한 편지를 화자에게 남긴다.

그게 '유서'라는 게 슬픈 점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심리묘사는 관찰자나 전지적시점이 아닌 자기고백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이 책은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선생님과 나 2.부모님과 나 3.선생님의 유서) 이중 1,2는 학생이 화자이고 3은 선생님의 서신이다. 화자가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선생님은 왜 조용하실까, 왜 어두우실까, 사회생활을 안하실까 등 이해하지 못했던 의문에 대한 대답이 그 서신에 들어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죽음이 들어있다. 그게 모든 것이라 슬프다. 그리고 그 평생의 고뇌에 대한 마지막 결론이 자살이라는 점도 슬프다.

선생님에게는 예쁘고 상냥한 사모님이 있었는데 그녀는 대학생시절 하숙집의 딸이었고, 선생님이 끌어들인 친구 K가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하숙집 주인(그녀의 어머니)을 통해 청혼했는데, 그게 참 졸렬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젊은시절 누구나 부족한 처신을 하지 않나.... 그러나 만회할 수 없었다. K가 자살해 버렸으니.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와 결혼은 했지만 심리적 고통과 평생 싸우며 산다. 그 과정을 기록한 '유서'는 그래서 길다. 언제나 당위가 앞서는 나는 이 책이 참 힘들었다. 결국 그게 결론인가 라는 생각과 제일 불쌍한 사람은 사모님이네 라는 생각이 앞서서 이 책에 가득한 심리묘사를 깊이 들여다보진 못했다.

마음, 그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만 든다. 이제 고양이...를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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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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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나온 이 책이 쭉 그랬는지 역주행하는 건지 순위권에 있길래 나도 읽어봤다. 그시절 책이 아직도 읽힌다는 건 왠지 기분이 좋은 일이라서 말이다. 그때의 나는 아가들이 딸린 젊은 엄마이자 초짜 직장인이었고, 소설을 읽을 여유는 없던 시절이었기에 못읽고 넘어갔었을 거다. 그 전에 나온 <원미동 사람들>은 학생때라 읽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랜 과거라선지 기억이 거의 안난다. 결국 수십년이 지나서야 양귀자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으로 정독한 셈이다.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생각할만큼 감탄할 필력을 갖추셨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마음에 꼭 들었던 건 아니다. 작품성으로 보면 별 다섯개를 누르지만 동의로 치면 네 개, 아니면 세 개...? 하지만 내가 동의되어야만 좋은 책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맞는 작품이 나와야할 만큼 내 생각이 인류보편적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동의든 비동의든 생각과 말이 흘러나오는 작품은 의미가 있는 거니까.^^

워낙 포인트가 많아서 그중에 몇가지만 써볼까 한다.
1. 양감 (볼륨)
초반에 인생의 볼륨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30년이나 전에 쓰신 이 표현이 지금의 나를 사로잡았다. 화자인 안진진은 첫 장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15쪽)
인생의 양감. 그건 어떻게 주어지는 것인가. 이것만 가지고도 긴 토론이 가능할 것 같다. 작가가 안진진의 어머니를 통해 보여주는 답은 '불행'인 것 같다. 다르게 말하면 고생(고난)이겠지. 고난이 인간을 성숙시킨다는 점에 동의한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다는 말도. 그런 면에서 어린시절부터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큰 풍파 없이 살아온 나의 인생 볼륨은 아주 빈약하다. 납작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풍족하게 자란 건 아님ㅎ) 이 책에서 어머니 자매는 쌍둥이로 나오는데, 이 쌍둥이의 갈라진 인생을 통해 작가는 대비를 극대화한다. 남편복도 자식복도 없는 고생투성이 엄마의 인생. 모든 것 다 가진 듯한 이모의 인생. 그런데 작가님은 엄마의 인생을 양감 가득한 인생으로, 이모의 인생을 납작 붙은, 혹은 텅 빈 인생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대체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동의되지는 않았다. 내가 납작한 쪽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너무나 선명한 대비라서 동의되지 않았달까. 인생은 그렇게나 선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처럼 모순되기 때문에. 모순의 모순. 모순의 모순의 모순.... 이 뒤섞인 것이 세상이라서. 그래서 난 이 극명한 대비가 좀 불편했던 것 같다.

2. 옳지 않음
이모 인생에 양감이 없다 설정했으니 그 자식들 또한 당연히 그렇게 그려냈을 것이다. 부잣집에서 양친부모의 극진한 관심과 지원 속에서 자라 유학중인 사촌들. 그중에 진진과 동갑인 주리를 단둘이 만났을 때, 주리는 진진 동생 진모를 '옳지 않다'고 표현했다. (진모로 말하자면 스스로 같잖은 조폭 놀이를 하다가 살인미수를 저지르고 그나마 엄마의 헌신으로 간신히 합의되어 지금 짧은 옥고를 치르는 중)
"진모 일은 너무 안됐어. 하지만 진모가 한 일은 정말 옳지 못한 거야.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잖아. 나는 정말로 모르겠더라. 진모가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어." (173쪽)
이 말에 안진진은 주리와 바로 벽을 쳤다. 내가 주리라면 딱 첫문장만 말하고 다음은 생략할 거 같긴 하다. 해봤자 소용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옳음, 옳지 않음으로 접근해서는 상대방과 절대 소통할 수 없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난 주리 말에 동의한다. 납작한 인생을, 즉 평탄한 인생을 살아서 세상을 모른다고 판단할 자격도 없나?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단순하지 않다는 건 맞지만, 그래도 하지 말아야 될 선택은 있는 거다. 그걸 지적했다고 비난받는 게 내가 비난받는 것처럼 약간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오히려 진진의 비난이 나는 더 수용하기 어려웠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173쪽)
악도 악 나름이지 진모처럼 가당찮은 겉멋에 빠져 인생 낭비하다 저지른 죄악에 무슨 저런 의미씩이나? 나는 이 부분을 진진의 몸부림이라고 해석했다. 이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봤다면 책을 덮었을 것이다. 주제 자체가 치기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으니. 설마 그건 아닐 거라고 본다. 진진의 아버지에 대한 합리화 또한 몸부림이라고 난 해석했다. 왜냐면 동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이 한평생 살고도 못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어. 그것으로 이미 우리 아버지는 자식에게 해줘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봐." (177쪽)
알콜중독자에 엄청난 가정폭력을 자행하고 부양의 의무도 저버린 아버지를 변호하고 싶은 몸부림을 주리가 알고 "그래" 하고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재반박하는 주리. 그점은 딱하긴 한데, 말인즉 틀린 말이 아니라 이거야. 그런 인간한테까지 의미있는 서사를 애써서 줄 건 없다는 거야 내 말은..... (어휴, 내가 이렇게 납작하네^^;;;;)

3. 존재감
이 낱말은 직접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앞의 '양감'이란 말과 더불어 나에게 많이 떠오른 말이기에 적어본다. 진진의 엄마는 사고가 터질수록 삶의 활기를 찾고 힘이 넘친다. 아들이 저지른 사고, 죽었나 싶게 몇년간 안돌아오다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남편 등... 여기서 활력을 낸다는게 불만은 아니다. 다행이고 고마운 거지. 문제는 이모... 착한 이모는 안진진네한테 도움을 많이 주었고 안진진을 예뻐하며 마음도 잘 나눈다. 이모부는 재미없지만 풍요로운 가정을 만들어주는 사람이고 아이들도 엘리트코스를 이탈없이 잘 가는 애들이다. 하지만 이모는 마지막에 '불행했다'고 자신의 삶을 규정했고 마침내 극단적인 선택을...ㅠ 이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존재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없으면 안된다, 내가 꼭 필요하다는 확신. 그게 객관적 행불행을 확 뒤집는 절대적 요인으로 이 작품에서 그려진 것 같다. 대체로는 인정하나 이렇게 극단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 이거야말로 납작한 설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존재감이란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단순하게 다루어졌다고 생각한다.

4. 선택과 나아감
스물다섯이라는, 지금시대론 어리지만 98년에는 그럴만한 나이에 진진은 결혼을 생각하며 두 남자를 만난다. (의도적인 양다리는 아니었기에 비난할 생각은 없다.) 누굴 선택할지 독자들이 끝까지 궁금해하도록 이 선택은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이 선택 또한 '모순'이란 제목의 정점을 찍는 선택이다. 마치 내내 A를 지향해놓고 "음 그런데 나는 B를 선택하겠어." 하는 느낌이다. 딱히 반감은 들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이런 느낌이랄까.ㅎ 이 책이 보여주는 삶의 '모순'에 너무 젖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동의 못하는 지점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품을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이런 모순을 인정하고, 실수를 예견하면서도 삶의 발걸음을 내디딘다는 것.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네 가지 말했는데 글이 길어졌네.... 여기까지만 쓰고 다음으로 '희망'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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