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돌을 찾아 줘 - 제2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수상작 초승달문고 58
최지안 지음, 차야다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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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신선한 작품이다. 이 책이 작가님의 첫 책이라고 하니 더욱 눈이 번쩍! 나는 이제 이전만큼 동화를 읽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동화는 즐겁게 읽어볼 것 같다.

리뷰를 쓰면서 심사평을 인용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 책은 심사평에 너무 공감해서 좀 인용해 보겠다.
"20여년 전에도 우리 어린이문학판에서는 잘놀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문제의식은 정확했지만 어린이 독자들과 진짜 잘 어울려 노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당위를 설파하는 데 그치는 작품들이 많았다."
맞아맞아!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제 그때의 아쉬움이 이해되었다. 당위도 중요하지만 접근은 거칠면 안 된다. 꼭 동화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 놀이 자체에 대한 접근도 그러했다. 쉽게 경도되었다가 금방 후회했던 나의 과거가 그걸 말해준다. 계속 인용해 보겠다.

"이 작품은 이런 한계를 훌쩍 벗어나 있다. 우선 이 작품은 재미있다. 저학년 어린이의 말투와 행동에 바짝 다가선 문장은 날렵하고 경쾌하다. 여기에 들려주는 말투와 간결하면서도 생생한 장면 묘사는 날개를 달아준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어린이들에게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질문이나 주제가 날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이 작품이 추리물의 미학적 특질을 저학년 동화의 성격에 맞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랜만에 신선한 작품을 만났다고 느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심사평이 내 느낌을 정확히 표현해 주셔서 매우 반가웠다.

화자인 한석구와 친구 오동오가 주인공이다. 2학년인 얘네들은 아직도 놀이터를 접수하고 괴물놀이를 하는, 한마디로 '잘 노는' 아이들이다. 햇살 쨍쨍한 더운 날 땀범벅이 되면서도 놀이터에서 발견한 돌을 끝까지 파내는 집념을 발휘하는 애들이다. 그 돌은 빨갛고 길쭉하고 뾰족했다.

지금부터가 사건의 시작이다. 털뭉치 괴물 셋이서 석구네 집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서로 그 빨간 돌이 자기 거라며. 뿔달린 괴물은 자기 뿔 하나가 떨어져나갔다고 하고, 이빨 괴물은 그게 자기 한쪽 송곳니라고 하고, 발톱 괴물은 자기 발톱 중 하나라고 한다. 석구는 난감하다. 하지만 주인이 정확히 밝혀지면 돌려주겠다고 한 뒤 동오와 함께 해결을 위한 지혜를 모은다.

그들이 지혜를 얻기 위해 처음 간 곳이 도서관이라는 점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서서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솔로몬왕의 지혜>라는 책까지 찾아본 아이들. 돌을 쪼개서 나눠줄까도 생각해봤지만.... 거짓말을 정확히 가리기 위해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의 특징도 조사해 본다. 그리고 괴물들의 재방문. 전혀 그런 특징들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서로의 주장이 다르다고 꼭 누군가 거짓말하는 것은 아니지. 각자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니까. 이럴 때는 거짓을 다그치기보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해야지.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빨간돌의 주인을 찾아주었다. 오~ 현대판 솔로몬이라 해도 되겠는걸. 하지만 이작품은 추리적 요소가 들어있으면서도 구태여 그것에 집착하지는 않는 느낌이다. 주인괴물은 그걸 찾아서 너무 다행이고, 나머지 괴물들은 아~ 내것이 아니구나~ 하면서 순순히 인정하고, 친구가 찾은걸 기뻐해 주는 모습들이 예쁘다.

심사평을 한군데 더 인용해야겠다. 동화에서의 '괴물'에 대한 설명이다.
"사람들은 미지의 대상인 외부 세계나 타민족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을 괴물로 이미지화하거나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근원적인 폭력성과 악마성을 괴물로 상징화하기도 했다.
... 어린이들은 좀 다르다.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나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에서처럼 어린이들은 넘쳐나는 생명력과 자연에 대한 친화성을 바탕으로 괴물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모든 어린이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나 지신과 세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어린이만이 괴물을 친구로 삼을 수 있다."

이 책의 털뭉치 괴물 셋과 아이 둘의 관계가 그렇다. 더구나 이 괴물들은 예의도 바르고 상식적이며 결과에 승복할 줄 알고 마음씨도 따뜻하다. 그림작가님께서 괴물이라기엔 너무 귀엽게 그려 주시기도 했다. 마침내 그 괴물들이 석구의 잊혀진 어린시절 속에서 만들어졌던 캐릭터들인것이 밝혀졌을 때 뭔가 아련한 마음이 아릿하게 느껴졌다. 어린시절은 잊혀진다. 그것이 그 사람의 구성 성분이 된 지도 모른채.... 엄마는 서툴고 형편없는 석구의 그림도 상자 안에 잘 보관해 두셨구나. 그렇게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놀아도 내버려두던 엄마가 아이의 흔적들은 잘 갈무리해뒀다는 점에서 진짜 부모의 역할이 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잘 못했고 어리석었지만 우리반 엄마들한테는 이렇게 부탁했었다.
"자녀의 작품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아무리 서툴러 보여도 바로 버리지 말고 감탄하며 천천히 봐주세요. 제가 다른 건 못해도 여러분 자녀들 작품의 최초 감상자가 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부모님들도 그렇게 해주세요."

다 증발되고 남지 않을 것들에 집착하고 안달복달하는 것. 아주 흔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은 석구와 동오가 한심하게 땅을 파던, 소위 '삽질하던' 시간 속에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그걸 봐줄 수 있고 조바심 내지 않는 인내심이 곧 지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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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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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것도 외국작가의 소설은 거의 안읽어보고 살다가 이제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나서 읽기 시작했다. 일단 먼저 가독성이 높은 작가루다가....

스티븐 킹의 가독성은 말해뭐해여서 재미있게 쭉 읽었다. 스티븐 킹도 이제 80세쯤 되신 것 같고 이 책은 비교적 최근작이다. 담엔 초기작을 읽어봐야겠다. 내가 재밌게 본 영화 best5 안에 꼽는 <쇼생크 탈출>의 원작이라든지.... 30년도 더 된 그 영화, 비디오가게가 성행하던 때 빌려봤던 그 영화.... 진짜 충격적이게 재밌었다.

이 책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재밌긴 했다. 초현실적인 설정(주인공에게 유령이 보이고 대화를 나눈다는)이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부분 좀 점수가 깎였다 해도 책장은 잘 넘어갔다.

AI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던 내가 요즘 제미나이한테 요것저것 말을 걸어보고 있다. 책에 대해서 말을 건 것은 이 책이 처음인데, 오잉? 재밌네? 사람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AI와 독서토론을 하면 되겠구나. 그의 문장을 사용하긴 싫다는 거부감이 내 안에 버티고 있긴 한데, 생각을 나눠보는 건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 제이미는 삼촌의 유령의 답을 듣고 더이상의 질문이나 대화를 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뭘까요?
내가 이렇게 물었다. 그랬더니 제미나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듯한 답변을 좔좔잘 내놓더니 나한테 이렇게 물었다.

- 제이미가 이 비밀을 알게 된 후,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오히려 어머니를 더 이해하게 되었을까요? 이 결말에 대한 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와 질문도 잘하네. 나는 제미나이에 비해 엄청 빈약한 답변을 내놓았다.

- 이해는 잘 모르겠지만 연민은 더 갖게 되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더 가까워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의 인생에 연민은 갖되, 부모자식간이라 해도 인생은 각자의 것이므로, 감정을 절제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님의 의견은 어때요?
난 이렇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자 제미나이는 공감과 함께 의견을 주었다.

- 님의 통찰에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연민은 갖되 거리를 두는 것이 낫다’는 지점은 이 소설이 가진 비극적인 함의를 가장 성숙하게 해석하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의견을 덧붙이자면, 님께서 말씀하신 '정서적 거리두기'야말로 제이미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질문이 이어졌다.

- 결국 이 소설의 결말이 주는 씁쓸함은 '진실을 알았기에 예전처럼 사랑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는 비극적인 성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님께서는 제이미가 이 진실을 알고 난 후,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비밀로 품고 살아가는 것이 제이미 본인에게 더 이로울 거라고 보시나요? 아니면 언젠가는 어머니와 이 문제에 대해 대면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나의 빈약한 답변이 또 이어졌다.

- 저라면 끝까지 내색하지 않겠습니다. 내색하는 건 일종의 둑을 터뜨리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봐요.
그러자 AI는 유려한 칭찬을 보내주었다.ㅎㅎㅎ 그리고 주제에 대한 결론까지 내려버렸다.
- 님의 '둑을 터뜨리는 행위'라는 표현이 정말 절묘합니다. 그 둑이 무너지는 순간, 단순히 진실이 오가는 수준을 넘어 두 사람의 남은 인생 전체가 흙탕물에 휩쓸려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신 거군요.
제이미 역시 소설 속에서 "나중에(Later)"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그 둑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님의 시각처럼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파괴적인 진실로부터 자신과 어머니를 보호하는 가장 자애로우면서도 처절한 '성인식'이었을 것입니다.
스티븐 킹이 그려낸 이 어두운 성장담은 결국 '모든 것을 드러내는 용기'보다 '끝까지 침묵하며 견디는 인내'가 더 고귀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대화를 끝냈다. 처음이라 토론이라 하기는 뭣한 얕은 대화였지만 숙달되면 깊이있는 토론도 가능하려나? 하여간 세상은 심심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구나.ㅎㅎ

화자인 제이미가 어린시절부터 청년이 된 지금까지의 일을 서술한 이 소설은 제이미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토록 심리적으로 참혹한 성장서사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제이미는 구부러지되 꺾이지 않는 식물과 같다고 할까, 여러가지 심리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그다지 강한 성격 같지도 않은데.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사람들마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제이미의 방어기제는 'Later'인 셈이다.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 하지만 지금 그걸 붙들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남편의 자취가 전혀 없는 엄마, 엄마의 파산 위기, 엄마의 동성 연인 리즈, 마약 때문에 파탄난 관계, 유령을 보는 능력 때문에 보게된 여러가지 참혹한 사건들, 자기들 살겠다고 어른들이 끌어들인 판에서 봐야하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현실들, 마지막의 가장 큰 충격. 이 모든 것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제이미는 용케도 두 발을 잘 딛고 서 있다. 독자들은 그를 응원하며 다른 책을 고르러 가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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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도배사 이야기 -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 에디션L 3
배윤슬 지음 / 궁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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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 서가를 훑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읽어봤다. 누구나 부러워할 대학을 나와 도배사가 되었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유튜브로 보았던가?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매우 인상적이어서인지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듣던대로 저자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나와서 전공 관련 일을 하다가 퇴사하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내 딸이었다면 아까워서 말렸을 것 같지만 그의 퇴사 이유도 공감한다. 물론 나라면 그래도 꾸역꾸역 하면서 참았겠지만... 그건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 자신이 없어서다. 그는 새로운 직업을 탐색했다.

새로운 직업을 찾는 그의 조건을 보니 나랑 성격이 비슷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조직 생활이나 힘들게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것, 누군가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일, 순발력 있게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일. 읽다보니 웃음이 났다. 내가 평생 몸담았던 일이 바로 저 조건과 딱 반대였구나. 그래서 힘들게 조심조심 걷느라 스트레스가 많았었다. 저자나 나나 책임감은 있어서 맡으면 해내긴 하지만 굳이 책임이 막중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은 성격인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조건이 나와는 달랐다. 바로 ‘기술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기술이 최고’라고 주장하곤 했다. 우리 시아버님은 목수셨는데, 집안의 온갖 보수를 책임져 주셨다. 나는 그걸 ‘서바이벌 능력’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능력만 남기고 하나씩 지운다면 끝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대부분 기술직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기술이 천대받는 사회였다. 이제 바뀌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들이 일괄적으로 대학 문만 바라보고 공부하는 사회는 낭비가 심한 사회다. 고등학문을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 있고, 그보다는 빨리 기술을 익히는 것이 나은 직업도 있다. 다양한 길을 모색하지 않고 그저 무조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인생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다보니 과한 경쟁에 어린 시절부터 자녀들을 몰아넣는 것이다. 여기서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클까.

저자 또한 소위 일류대학을 나왔지만 나중에라도 기술직을 선택한 것은 이런 면에서 선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2021년에 나왔는데 약 2년간의 도배사 생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초보 도배사라고 소개했는데, 5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아주 숙련된 기술자가 되셨으려나.

읽어보니 저자에게 도배사라는 새 직업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고 아주 딱 맞는 옷 같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기술은 는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하루하루 단기 목표를 잡고 해오다보니 어느새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인이 된 것이다. 그간의 어려운 점들을 읽어보니 와, 나는 못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초반에 그만두는 도전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다. 인내심 없이 성공할 수 있는 도전이 있을까.

첫 직장이었던 조직생활과 출근생활에 비해서 기술직은 근무가 유연하고 시간이 좀더 많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주 6일 일했고 근무시간도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라 더 길었다. 휴가도 그리 자유롭지는 않았다. 어른들 말씀대로 남의 돈 쉽게 먹는 직장은 없구나.... 다만 조금이라도 더 편한 마음으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에 기술직이 큰 비중으로 들어있으면 좋겠다.

“기술직이란 말 그대로 몸으로 터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직업이기에 기술만 완전하게 연마했다면 여타 직업보다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 긴 시간 익혀왔기 때문에 하루이틀의 인수인계만으로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 나는 그래서 이 일을 택했다. 필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보다 일터에서의 내 존재감이 더 중요했다.”
“나는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머리를 쓰는 일을 할 필요는 없을뿐더러 몸을 쓰는 사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어떤 것이 더 잘 맞고 잘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47쪽)

나는 신체지능이 매우 취약한 사람이라 몸을 잘 쓰지 못한다. 겨우겨우 하는 일도 두서가 없고 서툴다. 그래서 난 몸을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우리 사회가 머리를 쓰든 몸을 쓰든 이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했으면 한다. 그리고 모두가 자랑스럽게 책임감 있게 월급값하며 양심적으로 일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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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흔한 인사말 책이 좋아 3단계
송미경 지음, 양양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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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의 <어떤 아이가> 책이 절판되고 그 안에 담긴 다섯 편 중 두 편은 이 책에, 세 편은 다른 책에 들어가 반개정판(?) 책 두 권이 되었다. 이 책에 담긴 두 편은 [귀여웠던 로라는]과 [아버지 가방에서 나오신다]이다. 거기에 표제작인 [아주 흔한 인사말]이 추가되어 세 편이 담긴 단편집이 되었다.

세 작품 모두 등장인물이나 사건 등에서 각각 다르지만 뭔가 공통점이 느껴지는데, 내가 보기엔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인 것 같다. 그 방식은 한마디로, 폭력적이다.

맨 앞에 실린 표제작 [아주 흔한 인사말]에서 막 태어난 설이는 어른들에게 끔찍한 재앙과 같았다. ‘태어나자마자 인사말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기가 태어나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하고 옹알이를 하던 시절은 아주아주 옛날이고, 지금은 태어나자마자 필요한 말을 딱딱 할 수 있게 유전자조작을 한 세상이다. 그런데 설이는 왜 이렇게 태어난 걸까? 알 수 없었다.

절망하던 엄마 아빠는 어른들을 실망시켰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어린 시절을 고백한다. 아빠는 쓸데없이 시를 읊어대서 부모님을 낙심시켰다고 한다. 엄마는 우스갯소리를 잘해서 부모님을 수치스럽게 했다고 한다. 그런 시절을 거쳐 엄마 아빠는 사회에 적응해서 겨우겨우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말 못하는 설이를 낳게 된 것이다. 설이를 지켜보던 박사는 수소문 끝에 백 살 넘은 할머니를 찾아갔다가 지금 설이가 내고 있는 뜻모를 소리가 과거의 ‘옹알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박사는 설이를 옹호하다가 연구실에서 쫓겨난다.

2년이 지난 후 박사의 칠순 잔치에 설이 가족이 초대받았다. 그때 박사는 너무 기쁜 소리를 들었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그렇다. 이 작품의 제목, ‘아주 흔한 인사말’이다. 때가 되어 나오면 모두를 기쁘게 해주는 말. 그 말을 굳이 2년 먼저 들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고, 그걸 못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울 이유는 무엇이냐. 읽을수록 소름이 돋았다. 지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행하는 폭력을 이토록 간단명료하게 보여주는 동화가 또 있을까.

두 번째 작품 [귀여웠던 로라는]에서의 로라 엄마는 로라가 크는 것을 싫어한다. 나도 애들이 한창 귀여울 때 너무 귀여워~ 천천히 컸으면 좋겠어~ 한 적이 있지만 이 엄마는 그런 정도의 느낌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더 크면 모델 못해.”
세상에. 로라는 엄마가 운영하는 아동복 쇼핑몰의 모델이었다. 이가 흔들려 빼야 하는데도 엄마는 겨울 신상 찍고 빼자며 미룬다. ‘귀여웠던 로라는’ 계속 귀여워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자기 행동을 자기도 모른 채 이러고 있는 어른들이 많다. 어떤 어른은 심어놓은 모를 빨리 자라라고 뽑아올리고, 어떤 어른은 빨리 자라면 안된다며 짓누른다. 둘다 어떻게 되겠냐고....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말은 구호에 불과한 것인가. 첫 작품의 어른과 두 번째 작품의 어른은 서로 반대 방향의 같은 어른이다. 난 요즘 부모들을 보면서 ‘중간이 없다’ 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이 두 작품이 딱 그렇다.

세 번째 작품은 제목이 가장 인상적이다. [아버지 가방에서 나오신다] 이 작품은 작가님의 첫 단편이며 아주 아끼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첫 작품으로부터 지금까지, 송미경 작가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같다고 느낀다. 사실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가장 불쌍한 존재는 아버지들이겠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한테서 연민을 느낀다. 엄마들은 아버지들을 가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먹을 것만 겨우 줄 뿐이다. 그러다 엄마들이 단체로 여행을 떠나면 아이들은 아버지 가방을 지켜야 한다. 그러다 아이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이상이와 이상이 아빠랑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우리의 아버지 가방들에도 목말을 태워줄 아버지가 들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아이들은 기어이.... 엄마들이 돌아오기 전 아버지 가방을 열어버렸다. 하지만 그 안의 아버지들은......

정말 기괴한 상상이면서 묘하게 마음이 아픈 이야기다. 어디서 이런 느낌을 만나면 송미경 작품의 느낌이라고, 익숙한 냄새를 알아차리듯 알아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안에는 어린이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신뢰의 시선이 들어있다. 이 책의 작품들에는 그것들에 더해 그들을 슬프게 하는 여러 형태의 잔인함에 대한 항변도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그것을 꼭 집어내진 못하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위로를 받게 되진 않을까? 그리고 어른들은 좀 집어내야 한다. 그리고 방향이든 속도든 뭐든 바꿔야 할 건 하루빨리 바꿀수록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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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먹는 법 보름달문고 104
송미경 지음, 히히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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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느낌이다 했는데 익숙을 넘어 이미 읽어본 작품들이 들어있었다. 송미경 작가님의 초기 작품인 <어떤 아이가>가 절판되고 그중 3편은 이 책에, 2편은 또다른 한권에 실려 새로운 모양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그 두 책은 작가님의 초기작과 최근작의 결합이라고 하겠다.

읽어본 작품이지만 리뷰를 써놓지 않아서인지 10여년의 세월이 기억을 거의 지워버려서 어렴풋하게만 기억이 났다. 그중 가장 선명한 기억은 제일 앞에 실린 [어떤 아이가]이다. 그때도 좀 놀라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에 대한 관심 없이 그저 '동거'만 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서늘하게 보여준다고 느꼈는데, 그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이렇게 새롭고 특이하다고? 지금 봐도 특이하다. 하지만 이런 가족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그런 집들을 찾아 살고 있는 '어떤 아이'를 상상해본다. '어떤 아이'는 착하고, 집에 몰래 사는 대신 가족을 위해 필요한 소소한 일들을 나름 하려고 노력한다. 그동안 그 가족이 갈등 없이 살았다면 이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 문재랑 형 정재처럼 뒤늦게라도 깨닫고 서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른동생]은 웃음이 나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들은 외피와는 다른 고유의 나이를 갖고 있다는 설정이 웃기면서도 일면 공감이 가고 한편 섬뜩하기도 하다. 평생 철이 안 드는 것 같은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도 되고 애늙은이 그애가 생각나기도 하고. 나는 어떨까 싶기도 하고.

[없는 나]는 그 '없는 나'가 화자인 이야기다. 상황을 보면 그 아이는 축복받지 못한 생명이었고 외할머니는 딸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지우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고 출산을 했다. 하지만 '없는 나'가 태어난 것이다. 상상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구체적 묘사나 설명은 없다. 엄마는 아기용품을 샀고 아기 이름을 붙여 불렀고, 젖을 물리고 자장가를 불렀다. 정신병원에 데려가려는 가족을 피해 낯선 동네에 자리를 잡고 엄마와 '없는 나'는 꽤 긴 시간을 함께 살았다.

아이의 영혼이 엄마를 떠나 가야할 곳으로 가기까지 둘은 그저 사랑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 사랑의 표현이 얼마나 조용하고 따뜻하며 지극한지 눈물이 날 정도다. 떠나는 장면도 그렇다. 이런 사랑도 있을까.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겠기도, 조금 상상이 가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이것은 왜 동화일까 생각했다. 이럴 때 언제나 내 결론은 동화는 어린이들만 읽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 그들은 또 그들의 방식으로 감상하니, 각자 알아서 감상하면 된다는 것....

나머지 세 작품은 최근작인 것 같다. 표제작인 [오렌지 먹는 법]에서는 예서의 고모가 온다. 미국에 간지 오래돼서 처음 보는 고모다. 고모라면 할머니의 딸인데, 할머니는 놀라기만 할 뿐 반기지 않는다. 사실 두 사람은 큰 화해가 필요했던 거였다.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고모, 오랜 세월이 지나 아기를 안고 화해를 하러 온 고모. 화해는 잘 되었을까? 고모는 과일바구니를 사왔고, 예서네가 오렌지를 까먹는 과정을 작가님은 필요이상(?)으로 상세하게 묘사했다. 바로 그거였구나. 화해랑 닮은 것이. 오렌지 먹는 법은 그러니까 '화해를 하는 법'인 거구나. 껍질과 과육이 밀착되어 쭉쭉 까지지 않는다. 손에 묻기도 하고 얼굴에 튀기도 한다. 하지만 버릴 순 없잖아. 까고 나면 맛있잖아. 오렌지가 주는 메시지는 오렌지 만큼이나 상큼하네.

[나는 진짜 마술사가 아니니까]의 노고는 아빠, 형과 함께 유랑 마술단의 일원으로 낯선 마을을 떠돌며 마술쇼를 한다. 그의 앞에 '동생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해달라'는 남매가 나타난다. 이들의 운명의 공통점. 그리고 연대. 뭔가 환상적이면서 애틋한 송미경 특유의 느낌이 여기에도 있었다. 인상적이면서 내게 해석은 가장 어려운 작품이었다.

마지막 수록 작품 [사람 만들기]의 공간은 교실이다. 화자인 지수가 결석 후 이른 등교를 했을 때 교실 안엔 전날 했던 미술수업의 결과물인 찰흙작품들이 놓여있었다. 그 점토들이 생명력을 얻듯 살아나 지수와 또 한 아이와 함께 빗속을 달리는데 그 장면의 생동감이 대단하다. 그 사이에 아이들의 행동이나 작품의 소재들에서 작가의 메시지와 상징들이 짐작되기도 한다. (물론 해석은 독자의 자유다) 감쪽같이 돌아온 현실에서 지수는 은숨이한테 할말을 했고, 관계회복이 된 장면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난다. 찰흙은 내가 선생을 하며 수없이 사용해 본 재료인데, 그걸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역시 작가는 다르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초기작과 최근작이 나란히 놓인 이 책에서 송미경 작품의 변화라든가 이런걸 논할 눈은 내게 없는 것 같다. 여전한 느낌을 말할 수는 있으려나. 작가님은 어렸을 때 매우 느린 아이였다고 작가의말에서 본인이 말하고 있다. 보통의 아이들에게 작동하는 기능이 약간 늦게 작동하는 동안, 대신 대단한 무엇이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건 이야기의 씨앗과 그 느낌을 품은 일이다. 그 작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울거나 웃거나 혹 외로웠을까. 이런 책들을 읽으며 어른들이 아이의 마음을 조심스레 들여다봤으면 한다. 남아있다면 말이다. 남아있겠지?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재미와 공감의 지점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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