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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만지면 ㅣ 엄정순의 예술 수업
엄정순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12월
평점 :
이런 일들을 마음에 품고, 기획하고, 추진하는 이들을 존경한다. 이런 이들이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단조로울 것인가. 그러니까 나처럼 일 벌이기 싫어하고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들만 산다면 말이다. 다행히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아서 이 세계는 넓어지고, 풍성해지고, 느낄 것들이 충만해진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시각장애인 미술교육을 진행해 왔고, 이 '코끼리 만지기'도 10년이나 해온 프로젝트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질문에 답해주고, 작업을 조력하는 오랜 시간을 들여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게다가 코끼리를 만져보기 위해 태국에 다녀오는 여정까지. 가성비가 엉망인,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이런 일들을 통해 이 그림책이 탄생했다. 그런데, 정말 가성비가 없을까?
이것도 생각 나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 '쓸데없다'는 생각은 좁은 시야에 갇힌 단견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없다'기보다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인 경우들.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시야를 한 걸음 넓혀주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추천사 중의 한 문장을 빌려 쓰면 이렇다.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미술작품과 이야기들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감각을 일깨우고, 그렇게 독자의 세상을 넓혀주는 경험을 선사한다."
나는 감각의 한계에 대해서 매우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시각이 차단된 상태, 청각이 차단된 상태를 그저 암흑으로만, 답답함이 지배하는 세상으로만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짐작하는 감각을 초월하여 느끼고 표현할 공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작품은 거칠기도 하지만 놀랍도록 정확한 부분도 있으며 재미있는 상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사진처럼 대상과 똑같은 시각이미지는 아니지만 누구나 보았을 때 "아, 코끼리?" 라고 알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모든 작품들을 재미있게 공감하며 보았다.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거기에다 나는 뒷장에 추가된 '작가의 말'에서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가성비를 운운하는 단순한 나에게 다가오는 깊이있는 문장들이었다.
"오랜 시간 아이들과 미술 작업을 하면서 저는 결핍을 대면하는 눈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장애로 인해 어떤 기능이 결여되었더라도, 그 결여는 새로운 신체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스스로 차이를 창조하는 주체적 과정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낯선 존재에 공감하는 힘과 생각하는 힘, 즉 상상력의 결과물입니다. 창조의 세계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결핍도 무거워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결핍, 장애, 그리고 타인에게 보이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