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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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책이 도서관에서 자주 눈에 띄었는데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루다가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세상을 떠난지도 100년이 넘은 작가다. 그런데 요즘 작품이라고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물론 생활상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인간의 내면 측면에서 말이다. 제목 또한 <마음>이다. '심리' '자아' '고뇌' '정신' 등등을 포괄하여 가장 적당한 제목이라 생각된다.

화자는 한 대학생인데 중심인물은 그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한 중년의 남자다. 우연히 만나 호감을 갖게된 선생님을 화자는 유난히 따른다. 선생님은 타인과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따르는 화자를 굳이 내치지는 않는다. 아니, 마지막에는 자신의 '마음'을 상세히 서술한 편지를 화자에게 남긴다.

그게 '유서'라는 게 슬픈 점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심리묘사는 관찰자나 전지적시점이 아닌 자기고백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이 책은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선생님과 나 2.부모님과 나 3.선생님의 유서) 이중 1,2는 학생이 화자이고 3은 선생님의 서신이다. 화자가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선생님은 왜 조용하실까, 왜 어두우실까, 사회생활을 안하실까 등 이해하지 못했던 의문에 대한 대답이 그 서신에 들어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죽음이 들어있다. 그게 모든 것이라 슬프다. 그리고 그 평생의 고뇌에 대한 마지막 결론이 자살이라는 점도 슬프다.

선생님에게는 예쁘고 상냥한 사모님이 있었는데 그녀는 대학생시절 하숙집의 딸이었고, 선생님이 끌어들인 친구 K가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하숙집 주인(그녀의 어머니)을 통해 청혼했는데, 그게 참 졸렬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젊은시절 누구나 부족한 처신을 하지 않나.... 그러나 만회할 수 없었다. K가 자살해 버렸으니.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와 결혼은 했지만 심리적 고통과 평생 싸우며 산다. 그 과정을 기록한 '유서'는 그래서 길다. 언제나 당위가 앞서는 나는 이 책이 참 힘들었다. 결국 그게 결론인가 라는 생각과 제일 불쌍한 사람은 사모님이네 라는 생각이 앞서서 이 책에 가득한 심리묘사를 깊이 들여다보진 못했다.

마음, 그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만 든다. 이제 고양이...를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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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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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나온 이 책이 쭉 그랬는지 역주행하는 건지 순위권에 있길래 나도 읽어봤다. 그시절 책이 아직도 읽힌다는 건 왠지 기분이 좋은 일이라서 말이다. 그때의 나는 아가들이 딸린 젊은 엄마이자 초짜 직장인이었고, 소설을 읽을 여유는 없던 시절이었기에 못읽고 넘어갔었을 거다. 그 전에 나온 <원미동 사람들>은 학생때라 읽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랜 과거라선지 기억이 거의 안난다. 결국 수십년이 지나서야 양귀자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으로 정독한 셈이다.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생각할만큼 감탄할 필력을 갖추셨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마음에 꼭 들었던 건 아니다. 작품성으로 보면 별 다섯개를 누르지만 동의로 치면 네 개, 아니면 세 개...? 하지만 내가 동의되어야만 좋은 책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맞는 작품이 나와야할 만큼 내 생각이 인류보편적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동의든 비동의든 생각과 말이 흘러나오는 작품은 의미가 있는 거니까.^^

워낙 포인트가 많아서 그중에 몇가지만 써볼까 한다.
1. 양감 (볼륨)
초반에 인생의 볼륨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30년이나 전에 쓰신 이 표현이 지금의 나를 사로잡았다. 화자인 안진진은 첫 장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15쪽)
인생의 양감. 그건 어떻게 주어지는 것인가. 이것만 가지고도 긴 토론이 가능할 것 같다. 작가가 안진진의 어머니를 통해 보여주는 답은 '불행'인 것 같다. 다르게 말하면 고생(고난)이겠지. 고난이 인간을 성숙시킨다는 점에 동의한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다는 말도. 그런 면에서 어린시절부터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큰 풍파 없이 살아온 나의 인생 볼륨은 아주 빈약하다. 납작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풍족하게 자란 건 아님ㅎ) 이 책에서 어머니 자매는 쌍둥이로 나오는데, 이 쌍둥이의 갈라진 인생을 통해 작가는 대비를 극대화한다. 남편복도 자식복도 없는 고생투성이 엄마의 인생. 모든 것 다 가진 듯한 이모의 인생. 그런데 작가님은 엄마의 인생을 양감 가득한 인생으로, 이모의 인생을 납작 붙은, 혹은 텅 빈 인생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대체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동의되지는 않았다. 내가 납작한 쪽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너무나 선명한 대비라서 동의되지 않았달까. 인생은 그렇게나 선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처럼 모순되기 때문에. 모순의 모순. 모순의 모순의 모순.... 이 뒤섞인 것이 세상이라서. 그래서 난 이 극명한 대비가 좀 불편했던 것 같다.

2. 옳지 않음
이모 인생에 양감이 없다 설정했으니 그 자식들 또한 당연히 그렇게 그려냈을 것이다. 부잣집에서 양친부모의 극진한 관심과 지원 속에서 자라 유학중인 사촌들. 그중에 진진과 동갑인 주리를 단둘이 만났을 때, 주리는 진진 동생 진모를 '옳지 않다'고 표현했다. (진모로 말하자면 스스로 같잖은 조폭 놀이를 하다가 살인미수를 저지르고 그나마 엄마의 헌신으로 간신히 합의되어 지금 짧은 옥고를 치르는 중)
"진모 일은 너무 안됐어. 하지만 진모가 한 일은 정말 옳지 못한 거야.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잖아. 나는 정말로 모르겠더라. 진모가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어." (173쪽)
이 말에 안진진은 주리와 바로 벽을 쳤다. 내가 주리라면 딱 첫문장만 말하고 다음은 생략할 거 같긴 하다. 해봤자 소용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옳음, 옳지 않음으로 접근해서는 상대방과 절대 소통할 수 없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난 주리 말에 동의한다. 납작한 인생을, 즉 평탄한 인생을 살아서 세상을 모른다고 판단할 자격도 없나?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단순하지 않다는 건 맞지만, 그래도 하지 말아야 될 선택은 있는 거다. 그걸 지적했다고 비난받는 게 내가 비난받는 것처럼 약간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오히려 진진의 비난이 나는 더 수용하기 어려웠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173쪽)
악도 악 나름이지 진모처럼 가당찮은 겉멋에 빠져 인생 낭비하다 저지른 죄악에 무슨 저런 의미씩이나? 나는 이 부분을 진진의 몸부림이라고 해석했다. 이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봤다면 책을 덮었을 것이다. 주제 자체가 치기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으니. 설마 그건 아닐 거라고 본다. 진진의 아버지에 대한 합리화 또한 몸부림이라고 난 해석했다. 왜냐면 동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이 한평생 살고도 못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어. 그것으로 이미 우리 아버지는 자식에게 해줘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봐." (177쪽)
알콜중독자에 엄청난 가정폭력을 자행하고 부양의 의무도 저버린 아버지를 변호하고 싶은 몸부림을 주리가 알고 "그래" 하고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재반박하는 주리. 그점은 딱하긴 한데, 말인즉 틀린 말이 아니라 이거야. 그런 인간한테까지 의미있는 서사를 애써서 줄 건 없다는 거야 내 말은..... (어휴, 내가 이렇게 납작하네^^;;;;)

3. 존재감
이 낱말은 직접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앞의 '양감'이란 말과 더불어 나에게 많이 떠오른 말이기에 적어본다. 진진의 엄마는 사고가 터질수록 삶의 활기를 찾고 힘이 넘친다. 아들이 저지른 사고, 죽었나 싶게 몇년간 안돌아오다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남편 등... 여기서 활력을 낸다는게 불만은 아니다. 다행이고 고마운 거지. 문제는 이모... 착한 이모는 안진진네한테 도움을 많이 주었고 안진진을 예뻐하며 마음도 잘 나눈다. 이모부는 재미없지만 풍요로운 가정을 만들어주는 사람이고 아이들도 엘리트코스를 이탈없이 잘 가는 애들이다. 하지만 이모는 마지막에 '불행했다'고 자신의 삶을 규정했고 마침내 극단적인 선택을...ㅠ 이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존재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없으면 안된다, 내가 꼭 필요하다는 확신. 그게 객관적 행불행을 확 뒤집는 절대적 요인으로 이 작품에서 그려진 것 같다. 대체로는 인정하나 이렇게 극단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 이거야말로 납작한 설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존재감이란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단순하게 다루어졌다고 생각한다.

4. 선택과 나아감
스물다섯이라는, 지금시대론 어리지만 98년에는 그럴만한 나이에 진진은 결혼을 생각하며 두 남자를 만난다. (의도적인 양다리는 아니었기에 비난할 생각은 없다.) 누굴 선택할지 독자들이 끝까지 궁금해하도록 이 선택은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이 선택 또한 '모순'이란 제목의 정점을 찍는 선택이다. 마치 내내 A를 지향해놓고 "음 그런데 나는 B를 선택하겠어." 하는 느낌이다. 딱히 반감은 들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이런 느낌이랄까.ㅎ 이 책이 보여주는 삶의 '모순'에 너무 젖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동의 못하는 지점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품을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이런 모순을 인정하고, 실수를 예견하면서도 삶의 발걸음을 내디딘다는 것.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네 가지 말했는데 글이 길어졌네.... 여기까지만 쓰고 다음으로 '희망'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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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되어 버렸다 보름달문고 105
김화요 지음, 근하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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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 여학생들의 관계 문제를 다룬 동화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이 책도 제목을 보는 순간, '아~ 대충 알겠다' 이런 느낌이었다. 게다가 더이상 나에게는 관심사도 아니기에 읽을까말까 하다가 감기로 집에 틀어박힌 날, 한번 꺼내서 넘겨봤다. 오, 의외로 잘 넘어가서 다 읽어버렸다. 내용도 뻔하지 않았다. 주제를 상당히 잘 다룬 작품이며 직면할 지점도 잘 짚어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그럴 일은 없지만 고학년 여학생들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 책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내 생각과 같아서 속이 시원했던 것도 있다.

화자인 손여울은 6학년 첫날 잔뜩 긴장해 있다. 대다수의 고학년 여학생들이 이렇다고 들었다. 나는 뭘 그렇게까지 할까 생각하는데 걔네들 생각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3월 초는 그들의 '소속'을 결정짓는 기간이다. 1년간 몰려다닐 그룹, 그리고 안전한 '단짝'을 만들고 고정시키는 기간인 것이다. 여기에서 도태되면 1년이 괴롭단다. 그래서 이 보이지 않는 움직임은 매우 치열하다고 한다.

소극적인 여울이에게 다행히도 자은이가 말을 걸고 옆자리에 앉았다. 귀엽고 활기차고 애교가 많은 아이였다. 둘은 첫날부터 같이 하교한 것을 시작으로 완전한 단짝이 되었다. 여울이가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진 듯했다.

하지만 자은이는 여울이와 다른 점이 많았다. 그중 독자들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성향이 있었으니 바로 '급'을 따진다는 것이었다.
"성준희가 신다빈이랑 다닐 급은 아니지."
이런 식이다. 자은이가 나눈 급에서 최상위에는 늘씬하고 예쁜 신다빈이 있다. 그리고 자신도 어디쯤에 위치한다. 급이 낮은 아이가 위의 급과 어울리려고 하는 것을 '주제에?' 이런 느낌으로 본다.

헉, 철렁했다. 두가지 이유에서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 유난히 이런 느낌을 많이 받은 해가 있었다. 당연히도 그해는 몹시 힘들었다. 다음으로는 이런 마음이 나에게는 없던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급'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쓰진 않는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누군가는 우러러보고 누군가는 업신여기는, 다르게 말하면 누군가의 접근엔 감지덕지하고 누군가의 접근엔 어딜 감히? 라며 불쾌해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지 아니한가? 이것은 어쩌면 다스려야 하는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한다. 오죽하면 인간들은 신분을 만들었을까. 이제 발전된 사회가 되어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무형의 신분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이 바로 자은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급'이다.

이것은 권력과도 관계가 있다. 인간의 권력욕은 역사가 증명한다. 모든 살육과 배신, 비정함이 다 권력욕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크기는 개인차가 큰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권력욕이 강한 사람은 '다루기 힘들며'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나는 학급이 구성되면 가장 먼저 이 권력관계를 파악했다. 별다르게 불거지는 게 없으면 그 해는 안심했고 눈에 띄는 권력관계가 있으면 늘 주시하며 억제하려 애썼다. 소위 권력추구형 여왕벌이 있고, 자신을 그 급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권력의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고 싶은 아이들이 시녀를 자청한다. (용어가 그런것이고 여성에게 국한된 것은 아님)

이 책의 신다빈은 권력욕을 거칠게 표출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급'을 당연하게 여기는 아이다. 얘한테도 단짝이 있었기에 관계는 평행한 듯했으나.... 구조가 바뀌는 일이 생겼다. 신다빈 단짝이 전학을 간 것이다. 이후 자은이는 최상위 '급' 신다빈의 시녀를 자청했고, 그래서 [셋이 되어버렸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여울이가 한 고생이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게 다인줄 알았던 여울이에게 '새로운 인간형'들이 나타났다. 이게 이 책의 가장 신선한 점이고 나도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준희와 수아라는 두 아이는 언뜻 단짝으로 보였으나 경계는 없었다. 한마디로 쿨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으니 따뜻하면서 쿨하다고 할까. 걔네들은 여울이의 호의에 경계없이 고마워했고, 장점을 발견하면 시기없이 칭찬해주었다. 모둠발표까지 성공적으로 하고난 후 함께 다니게 되자 여울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끼면 홀수가 되니까, 그게, 괜히 불편해질까 봐."
그러자 아이들의 대답들이 넘 좋았다. 아, 난 늘 이런 아이들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아.
"셋이 다니면... 좋은 점이 더 많을 것 같은데. 둘이 있을 때보다 화제도 다양해지고, 혹시 둘 사이에 오해가 생기면 한 명이 중재도 해 주고."
"그리고 세 명이면 메뉴도 세 개 시킬 수 있음. 그럼 세 가지를 맛볼 수 있는 거니 이득."
"우리는 너랑 더 친해지고 싶고, 그래서 같이 다녔으면 좋겠는데. 숫자가 중요한가?"
그렇다. 둘이든 셋이든 뭐가 더 좋다는 법은 없다. 얘네들이 넷이 되지 말란 법도 없고 누군가 자연스럽게 빠지면 또 둘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문제는 관계 자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준희와 수아를 보니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다. 눈에 띄는 (자은이 말대로 급이 높은)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교실을 유연하게 채워주던 아이들. 언제나 깍두기들을 품어주던 아이들. 교사인 나조차 내 걱정을 솔직히 말해도 되었던, 그 틈을 살며시 채우고 아무것도 아닌듯 태평하던, 딱히 칭찬도 바라지 않던 그 아이들.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웠던가.

이 책은 이런 아이들의 가치를 높여주어서 내 마음에 딱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권력지향성 또한 천성인 것을 어쩌면 좋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그럴수록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성찰은 평생 해야 한다. 이 말이 이해가 안가면 부모님께 노인정 이야기를 좀 들어보면 단번에 이해 갈걸? 아이들도 노인들도 평생 돌아보아야 할 관계 이야기를 이 책은 요란스럽지 않게 잘 담았다. 부디 모두들 관계 속에서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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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말의 가시 바일라 26
김영주 지음 / 서유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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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작가님들이 많으신 것 같다. 내가 알던 김영주 작가님만 해도 남녀 각각 한분씩 계셨다. 그분들 중 누굴까 하면서 봤더니 또 다른 분이었다. 책도 많이 내신 분이네. 좋은 작가님들도 많고 읽을 책들은 더더욱 많다.^^

작가가 어떤 소재를 발견해내고 그 고유의 특성에 따라 작품의 주제를 표상할 상징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건 큰 행운인 것 같다. 이 책의 '돌말'이 바로 그러하다. 돌말. 들어는 봤는데 뭔지 잘 몰랐다가 검색해봤더니 식물성 플랑크톤이었다. 먹이사슬의 베이스에 위치하는, 맨눈으로는 보기 어려운 작은 생물.

그 돌말을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가시가 있는 종류가 있는데, 그들은 그 가시로 서로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깍지를 낀다고 한다.
"돌말은 서로의 가시를 붙잡고 깍지를 껴.
그렇게 하나둘 모여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지.
보석처럼 빛나는 무늬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상이 살만해 보이더라."
이것이 이 소설의 중심 이미지이다. 돌말을 관찰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상상할 수 있다. 인간의 시력으로 볼수 없는 미시세계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그 한 장면으로 풀어간 이 청소년 소설은 그 이미지만큼이나 섬세하고 아름답다.

주인공들의 처지가 밝은 것은 전혀 아니다. 처음부터 한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건이 나와서 흠칫 놀랐다. 결말까지 이 아이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이 과정들을 통해 성장했으니 그래도 괜찮았어... 할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하나뿐이니까. 슬픔이란 자국은 지우지 못하고 그냥 안고 가는 것이다. 뒤늦게 알게된 그 아이의 마음에 남은 사람들은 안타까움과 후회가 남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민주의 죽음 때문에 서로 잘 모르던 세미(화자)와 수현(남학생)이 엮여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수현이는 얼핏 돈독이 오른 비인간적인 놈으로 보이는데, 세상에 의지할 데라곤 한 군데도 없이 혼자 힘으로 서야 하는 보육원 출신 자립청소년이다. 그가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건 그나마 건강한 지표라고 하겠다.

세미로 말하자면 부모님은 계시지만 아빠가 빚쟁이... 돈사고의 고충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수없는 이사와 늘 긴장해야 하는 형편은 아이를 고립시켰다.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까칠한 아이로 성장시켰다.

말하자면 각자의 아이들은 가시를 잔뜩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랐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가시를 '돌말의 가시'에 대입시켜 공격의 가시가 아닌 연대의 가시로 만든다. 이상적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연대하는 이들은 팔자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들이 깍지를 낀 모습들은 작가가 제시하는 이 돌말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다.

적절한 어른 조력자가 나오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자 다행스러운 점이다. 담임선생님의 친구 선홍쌤. (담임선생님이 소개) 동네 후미진 서점에서 아이들과 과학동아리를 하고 관찰샘플을 채취하고 정리하는 일들을 하는. 실속없는 일은 절대 안하려는 나랑은 너무 달라서 선뜻 이해는 가지 않지만 이런 넉넉한 마음의 어른들이 그나마 아이들을 살린다. 아이들 자체의 자생력도 있긴 하지만 어른의 존재도 필요하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작은 세상에 감탄해마지않을 아름다운 형상이 있다. 저마다의 세상이 모두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아름다움에 현미경을 대어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표지에 보일듯말듯한 제목마저도 그 이미지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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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진은영 지음, 이수지 그림 / 초록귤(우리학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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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서 살펴보니 4월 16일을 발행일로 찍고 나온 책이다. 어느새... 12년이 지난 4월 16일.

97년생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그해, 2014년에 그애들은 고2였고 살아있다면 올해 서른이다. 그사이 취직도 했겠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아이들도 있겠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세월 빠르네, 말하며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도 되었을 엄마 아빠들은 여전히 무뎌지지 않는 아픔 속에서 이날을 맞았겠지.

어제가 그날이어서 페북에서도 많은 추모 포스팅을 보았다. 12번째 추도회에 처음으로 대통령도 참석했다는 뉴스도 보았다. 많은 재난들이 있었고 어느하나 슬프지 않은 것은 없지만 이 재난은 여전히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어 답답하고 언제쯤 제대로 된 추모를 할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날씨도 궂던 그해의 4월을 분명히 기억한다. 전원 구조되었다는 오보에 안심했던 전국민은 정반대의 현장에 기함했다. 전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는 눈앞에서 많은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수장되었다. 그 집단적 패닉을 어떻게 잊을까. 하지만 조금씩 무디어진 나를 느끼기는 한다. 하지만 부모는 그럴 수가 없겠지.

제목만 보고는 이 책이 세월호 이야기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 바로 알게 되었다.
"엄마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화자는 그때 떠난 학생 중 한 명인 예은이다. 그해 가을 예은이의 생일날 진은영 시인이 썼던 시를 그림책에 맞게 조금 다듬은 것이다. 그날은 또다른 한명의 생일이기도 했다. 예은이의 쌍둥이 언니. 쌍둥이 자매를 잃고 혼자 남은 아이의 심정은 어떨까. 시인은 그 언니를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의 쌍둥이 언니,
나와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을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이렇게 언니나 할머니, 친구들을 부르기도 하지만 예은이의 편지는 (진은영 시인의 생일시는) 주로 엄마아빠를 향한다.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외치고
나를 위해 싸우고
그날 이후에도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그날 이후 엄마아빠가 싸워야 했던 세월을 위로하는 느낌이다. 자식을 그렇게 잃은 슬픔을 덜어주진 못할망정 상처를 파헤치고 모욕까지 주었던 그 세월을 생각하면 하늘에서도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그래서 꼭 말하고 싶을 것 같다. 저는 괜찮아요. 저는 잘 있어요. 부디 우리 엄마 아빠를 지켜주세요. 더이상 슬프지 않게 해주세요. 이런 슬픔이 또 있지 않게 해주세요.

이 책 또한 이러한 예은이들의 마음에서 나온 책이라고 생각한다. 예은이들은 자신들이 잘 있다는 말로 부모를 위로한다. 그보다 더 큰 외로가 있을까.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뭉게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 햇빛이 눈부시게 펄럭이고."

이 장면과 며칠 전 알게된 이찬혁 솔로앨범에 있는 '장례희망'이라는 곡이 교차되었다. 그렇다고 슬픔이 기쁨이 될 수는 없지. 하지만 엄마아빠들의 작았던 기쁨 옆에 나란히 등을 댄 거대한 '슬픔'도 이제는 딱지가 앉은 모습이길 기도한다. 우리가 함께 기억하며 목소리를 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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