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에서 본 거리 - 다섯손가락 이두헌 노래글
이두헌 지음 / 이은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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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어떤 우연이 겹쳐서였다. 얼마전 멜론의 재생목록에 '새벽기차'와 '이층에서 본 거리'를 추가해서 길을 가며 들었다. 둘 다 젊을 때(어릴 때?) 좋아하던 곡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층에서 본 거리 가사가 처음 보는 것처럼 다가왔다. 에잉? 이런 가사였나? 왜 난 그때 아무 의문도 없이 들었을까? 제미나이의 해석을 한번 물어봤다.

"어렸을때 '다섯손가락'이란 그룹의 노래를 좋아했거든. 아주아주 오랜만에 오늘 '이층에서 본 거리' 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가사가 새롭게 들리더라구.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적 내친구는 외면을 하고]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랬더니 제미나이의 답변이 아주 그럴듯했다.
'다섯손가락'의 명곡을 오랜만에 들으셨군요! 어릴 때 듣던 노래가 나이가 들어서 다시 들으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 정말 특별하죠.
​질문하신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외면을 하고"라는 구절은, 이 노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인 '순수했던 과거와의 결별'과 '비정하고 차가운 도시 삶에 물들어버린 서글픔'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몇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수녀'와 '친구'의 대비 (종교적 성스러움 vs 세속적 외면)
• ​수녀는 우리 사회에서 '순수함', '양심', '도덕', '평화' 혹은 '구원'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 ​반면, 어릴 적 그 누구보다 순수했던 내 친구는 그 수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해 버립니다.
• ​이는 친구가 단순히 수녀라는 사람을 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남아있던 일말의 순수함이나 양심을 마주하기 부끄러워 피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2. 도시 속에서 변해버린 인간관계와 무관심
• ​어릴 때는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서로에게 진심이었던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복잡하고 냉혹한 도시(이층에서 내려다보는 거리)의 삶에 적응하느라, 타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차가운 도시인'이 되어버린 것이죠.
• ​길거리에서 아는 체를 하지 않거나, 혹은 세상의 소외된 곳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무관심을 뜻하기도 합니다.
​3. '이층'이라는 관찰자 시점이 주는 쓸쓸함
• ​화자는 길거리에 섞여 있는 게 아니라 '이층'이라는 조금 떨어진 공간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 ​한때는 단짝이었을 친구가 거리에서 수녀를 외면하며 지나가는 차가운 모습을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하는 깊은 환멸과 쓸쓸함을 느끼는 순간을 포착한 가사입니다.

오호 그렇군 가사를 진짜 잘 쓰시네 하며 감탄하고 며칠 후, 알라딘에서 이 책이 나온걸 보았다. 오마나 웬일이야 하며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한참만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와서 받아왔다. 수많은 곡 중 이 곡부터 읽어보았더니 제미나이의 설명과는 많이 달랐다.ㅎㅎㅎㅎ 하지만 창작물이야 손을 떠나면 감상자의 몫인 거고, 저 해석도 꽤나 일리있으며 창작자의 고뇌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제미나이와 소설, 영화, 음악에 대한 감상을 몇 번 나눠본 결과, 넘겨짚다가 팔부러지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오류를 짚어주면 앗! 제가 착각을 했군요! 하고는 시침 뚝 따고 계속 넘겨짚기를 한다. 그러려니 하며 거리를 두고 봐야지 뭐.ㅎㅎ)

하지만 정보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정확하지 않을까?
"이 곡, 멤버중 이두헌 씨가 만든 곡 같은데, 해석해보니 꽤나 문학적 소양이 있으신 것 같네."
이렇게 물었더니 또 좔좔좔 설명을 이어갔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이층에서 본 거리>는 다섯손가락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이두헌 씨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가 맞습니다.
​이두헌 씨는 대중음악계에서도 '시적인 가사를 쓰는 음악가'로 아주 유명합니다. 단순히 귀에 꽂히는 노랫말이 아니라, 한 편의 단편 소설이나 시를 읽는 듯한 문학적 소양을 가사 곳곳에 녹여내기로 정평이 나 있죠.
​그의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한 편의 영화 같은 '시각적 묘사'
​이두헌 씨의 가사는 눈앞에 풍경이 그대로 그려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 ​<이층에서 본 거리>만 해도 '창가에 맺힌 빗방울', '길가에 지나가는 수녀', '약국에서 파는 담배'처럼 구체적인 오브제를 배치해 도시의 쓸쓸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시각화합니다.
• ​다섯손가락의 또 다른 메가 히트곡인 **<새벽기차>**나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역시 이두헌 씨의 작품인데, 제목만 들어도 어떤 계절과 시간, 분위기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서정성을 자랑합니다.
​2. 일상의 풍경을 철학적으로 뒤트는 통찰력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국'과 '담배', '친구'의 뒷모습을 보고 인간의 소외와 현대 사회의 모순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억지로 심오한 단어를 쓰지 않고,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는 게 진짜 문학적인 내공이죠.
​3. 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허문 행보
​실제로 이두헌 씨는 음악 활동 외에도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에세이집을 출간하거나 시인들과 교류하는 등 글과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인물입니다. 그의 깊은 사색과 독서량이 고스란히 다섯손가락의 노래에 자양분이 된 셈입니다.
​그 시절 청년이 썼던 청춘의 고뇌와 쓸쓸함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깊게 다가오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창작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미나이는 그때 이 책이 나온 것을 몰랐겠지만, 이렇게 본인이 쓴 노래 가사로 풀어가는 '노래글' 책을 읽어보니 제미나이의 찬사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시대 음악에 향수가 있거나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면 책장이 술술술 넘어갈 것 같다. 나도 멜론에 노래를 추가해 들어가며 읽었는데, 내가 알던 곡은 극히 일부란 것도 알게 되었다.

AI와 나눈 얘기를 너무 길게 늘어놔버렸네. 몇가지 감상만 간단히 쓰고 마쳐야겠다.
1.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것.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굳이 부끄러운 얘기 아픈 얘기 안해도 AI가 저리 찬사를 해주는 인물 아닌가? 그래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노래' 이야기를 쓰자면 어떨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안쓰면 안썼지 자신의 이야기를 빼고 노래를 논할 순 없었을 테니까. 에필로그에 그 심정이 담겼다.
"다 말해 버렸네요.
더 할 말이 없는 건 아마 오늘뿐일 거예요
살아있는 한 또 뭔가 말하려 하겠죠.
말은 그렇잖아요. 비온 뒤 풀이 자라듯 또 무성할 테니.
하지만 우리는 곧 모두 말을 잃게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말을 아무도 주우려 하지 않을 겁니다."

2. 노래도 어디로 어떻게 뻗어갈지 모른다는 것이 우리 인생과 똑같은 것 같다. 이두헌 씨는 그의 메가 히트곡들이 의외로 매우 '싱겁게' 탄생했다고 말한다. (싱겁게라는 말이 세번인가 나왔는데, 난 그때마다 모자무싸 속의 시인 황진만이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같은 곡. 저자는 공연에서도 이 곡을 되도록 안부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점 관객들의 니즈와 충돌한다.ㅎㅎ) 반면, 절절한 사연과 감정을 담아서 쓴 노래들이 묻혀있는 경우도 많다.

3. 예술가의 내면과 생활이 고요하고 잔잔할 수는 없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은 어떤 예술가나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애물단지인 것 같기도 하고... 치열한 감정 속에서 살고 계속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삶은 쉽지 않겠다.... 누구의 삶인들 쉽겠는가마는.... 그저 응원할 수밖에.

다섯손가락이 활동하던 시기는 나의 중고등 시절이었다. 그때 우린 친한 친구 생일에 음악테이프를 선물하길 좋아했는데, 자주 건넸던 음반이 바로 이 다섯손가락이었고 그외에 들국화와 부활 등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유튜브 검색해보니 3년 전에 모 방송사에서 '불꽃밴드' 라는 프로그램을 했더라고? 거기에 이 모든 아저씨들 다 나오셨다. (애들이 보면 할아버지라 하겠지만 난 아저씨라 하겠음. 오빠는 좀 그렇고ㅋ) 세월이 무상하도다..... 하지만 젊은이부터 늙은이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그것을 서로 따뜻하게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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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한소원 지음 / 스몰빅라이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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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디서 보고 도서관에 검색을 해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검색했을 때 대출중이었고 나는 예약을 눌러놨다. 잊고 있을 때쯤 도착했다는 문자가 와서 대출해왔다.

책을 받아 훑어보니 아마도 나는 '유식해지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골랐던 것 같다.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심리학 용어들,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싶어서. 목차를 훑어보면,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나누어 각 장별 약 20개씩, 총 80여개의 심리학 용어를 설명한다. 쭉 보면 어디서 들어본 것들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던 내 수준에선 정확히는 모르는, 그래서 써먹을 수는 없는 개념들이 대부분이다. 그걸 내가 써먹을 상태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에 걸었던 실용적인 목표였다. '삶의 무기'는 사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그리 쉽게 삶의 무기가 된다는 걸 믿지 않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읽기에 따라서 두가지 목표가 다 가능해 보인다. 나처럼 읽으면 교양서가, 저자의 의도에 맞춰 읽으면 거기에 더해 자기계발서가 될 것이다. 각 챕터가 3쪽 정도로 짧아서 마음에 깊이 들어갈 겨를은 없다. 하지만 각자 지금의 심리상태에 따라, 혹은 취약한 부분에 따라 염두에 둘 이론이나 법칙들이 있다. 그것들을 명심해 두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 한번 정독 후에 상황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독성이 무척 좋다. 술술 넘어간다. 빨리 넘기는 만큼 아하 해놓고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문제가 생기는데(ㅎㅎ) 이건 나의 문제인 것 같다. 위에 말한 목표를 잡으려면 한번씩이라도 쭉 써보면서 읽을 걸 그랬다. 일단 몇가지만 적어본다.

1장 [삶의 체력을 길러주는 심리 법칙]에서
- 과잉정당화(Overjustification)는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 늘 염두에 두던 법칙이다.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를 약화시킬 위험에 대해서.
- 그릿(Grit) 이 제목의 책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만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보니 끈기가 상당한 강점이더라.
- 행동편향, 부작위편향, 현상유지편향 등 편향에 대한 이론들도 들어있다.
- 시험 효과 (Testing Effect) 출력연습효과라고도 부른다. 내가 아무 보상도 없는 책리뷰를 꾸준히 쓰는 것도 이 효과를 노려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가웠던 내용이다.^^;;

2장 [내 마음을 풀어주는 심리법칙]에서
-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져도 갈수록 양극화되는 우리 사회를 보면 떠오르는 말. 허위 합의 효과 (False Consensus Effect)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온다.
- 여러 챕터를 보고 내린 내 결론. 나는 틀릴 수 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순간 나는 남들과 소통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된다.

3장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심리 법칙]에서
- 프랭클린 효과. 사람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호의를 베푼 사람을 좋아한다. 끄덕끄덕.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떠오르는 상황들이 있는 걸 보면 일리있는 이론.
- 스포트라이트 효과, 투명성 환상처럼 사람은 착각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
- 집단사고, 동조현상, 가스등효과 등은 살피고 조심해야 됨
- 호손효과(Hawthorn Effect)라는 용어는 새로 배움. 관심이 작업의 능률을 높임. 학교에서도 적용될 이론.

4장 [불행은 줄이고 행복은 늘리는 심리 법칙]에서
- 파워 포즈 (Power Pose) 라는 내용에서 찔끔. 나도 어깨 펴라는 소리 많이 듣는데. 단순히 건강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음.
- Miracle Running. 달리기가 뇌기능도 향상시킨다네. 음.....^^;;;;
- 제임스-랑게 정서 이론, 캐넌-바드 정서 이론, 샥터-싱거2요인 이론 등 잘 몰랐던 감정 이론들이 들어있었다. 감정의 발생이 우리가 기존에 생각해오던 것과 다르게 우리 몸의 생리적 변화 및 이를 바라보는 뇌의 해석과 아주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한다.
- 행복을 위해 추구해야 할 것, 주변을 정돈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알려주는 이론들이 들어있다. 헬퍼스 하이, 이케아 효과, 깨진 유리창 이론, 창고 효과 등등.

유식해지고 싶어서 이 책을 고른 독서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다 기억하질 못할 것 같으니...^^;; 하지만 한번 접해본 것은 다음에 다시 접할 때 더 깊어질테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무기'로 삼기 위해선 하나하나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돌아돌아 다시 접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으며 이번 독서는 여기까지. 저자는 해당 분야를 오래 공부하신 교수님이라고 하는데, 많은 이론(80여 가지)을 쉽고 간단하게 잘 정리해 주셔서 일반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인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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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게무의 여름 - 제73회 소학관 아동출판문화상 수상작, 제71회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수상작 다산어린이문학
모가미 잇페이 지음, 마메 이케다 그림, 고향옥 옮김 / 다산어린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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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계절 중 가장, 끔찍히 싫어하는 여름이지만 어릴 때는 아니었다. 여름이 주는 느낌과 추억이 있다. 특히 여름방학. 가장 자유롭고 신나는 시간. 나는 어린시절도 도시에서 자라서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시골의 여름이라면 더욱 무궁무진했을 자연 속에서의 놀이들. 모험과 탐험의 시간들. 이 책은 이러한 여름 이야기다.

책에서 다룬 시간은 길지 않다. 딱 한번의 여름방학이다. 천신마을에 사는 4명의 남자아이들(화자인 아킨과 야마, 슈, 가쓰)의 4학년 여름방학 이야기다. 일본도 우리처럼 도시집중이 심해서 이 학교 4학년이 아홉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그중 천신마을 아이들은 이 4명이 전부다. 인원이 적을 때 관계가 어긋나면 참 힘든데, 얘네들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똘똘 뭉쳐다니며 온갖 놀 궁리들을 한다. 이중에서 가쓰가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긴장요인이다.

가쓰의 근위축증은 그를 못 걷게 할 것이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 피할 수 없는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책에 어두움이나 슬픔은 없다. 닥친 불행이 없는데도 늘 뭔가 불안하여 지금을 즐기지 못하는 나는 이런 모습에서 삶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나 모험에서 가쓰를 제외하지 않는다. 가쓰의 방은 그들의 아지트다. (등장하지 않는 가쓰의 부모님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보통은 부모님의 염려와 통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절될 터인데) 가쓰는 만담을 즐기고, 연습한 것을 친구들 앞에서 선보인다. 그중에서도 주특기가 바로 '주게무'인데 그 내용은 우리나라로 치면 '김수한무....'와 같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른 가쓰가, 말하자면 '장수이름송'을 부른다는 것인데... 여기에서도 가슴의 미어짐이나 눈물의 느낌은 없다.

모험을 먼저 제안하는 것도 가쓰 쪽이다. 괴팍하고 무섭기로 소문난 '곰잡이 할아버지' 집으로 모험을 가자는.... 하지만 대체로 그렇듯이 소문은 소문일 뿐. 험상궂은 외모와 전혀 다른 할아버지의 따뜻함을 맛보고 돌아온다.

그동네 아이들의 통과의례인 '천신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들기'에 도전하겠다고 도움을 요청한 것도 가쓰였다.
"내년에는 못할지도 모르잖아. 올해가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고. 그러니까 제발, 응?"
이 말을 할 때, 딱한번 울컥한다. 아마 드러내진 않았지만 친구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강물 속에서 기다리다 잡아 준 친구도, 다리 위에서 튜브를 던져주고 뒤이어 뛰어든 친구도, 튜브를 잡아서 씌워주고 잡아준 친구도, 모두 가쓰의 성공을 함께 기뻐한다. 이렇게 눈부신 여름방학의 날들이 지나간다.

마지막 모험은 '요괴 칠엽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이 길은 멀고 울퉁불퉁하고 경사도 험했다. 이정도면 진짜 "위험하니 우리끼리 다녀올게" 해야되는 것 아니냐. 하지만 아이들은 방법을 찾는다. 외바퀴 손수레에 가쓰를 태우고 나머지 친구들은 진땀을 흘려가면서.... 몇번이나 손수레가 쓰러져 가쓰가 튕겨나가기도 했다. 부모님이 아시면 기함할 일이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은 또하나의 모험을 성공시켰다.

그 나무는 과연, 모험을 걸 만큼 크고 대단했다. 밑동의 커다란 구멍은 넷이 누울 정도로 컸다. 거기서 말하는 아이들의 꿈(장래희망) 이야기가 엄청 감동적!^^ 마지막까지도 유쾌하게 끝난다.

이 여름방학은 내년이면 얼마나 병이 더 진행되어있을지 모를 가쓰의 인생에 생생한 색을 입혀준 기간이 되겠다. 나머지 친구들도 '친구를 도와준 기억'이 아니라 '신나고 짜릿했던 모험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무얼 하든 함께 하고 싶은, 함께 하면 즐거운 그 마음이 우정일 것이다. 온전히 건강한 우정을 이 책으로 만났다.

장수 노래로 제목을 삼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길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것까지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다가오는 여름방학,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에게도 이런 시간들이 주어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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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양귀자 지음 / 쓰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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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시절 이름높던 양귀자 작가님의 소설들을 다 흘려보내고 뒤늦게 읽어보는 중이다. 지난번에 <모순>을 읽었고 이번에 읽은 책은 <희망>이다. 출간된 순으로 놓는다면 이 책이 먼저다. 처음엔 상,하 두권으로 나왔던 듯한데 합권하여 재출간되니 분량이 600쪽에 가깝다. 그래도 가독성이 워낙 뛰어나 큰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총 10개의 장인데 배경이나 인물을 설명하는 1,2장만 넘어가면 읽기에 엄청나게 가속이 붙어서 어느새 마지막장을 보게 된다.

90년도에 첫 출간되었다고 한다. 주 배경은 80년대 후반 쯤이라 하겠다. 학생운동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 이 책은 시대상을 진하게 담고 있다. 여러 인물들의 서사를 한데 모아야 하기에, 작가는 영리하게도 '나성여관'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여관집 3남매와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장기투숙객들. 여관이라는 배경은 아주 밀도 높고도 자연스럽게 시대상을 담은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를 흡수하고 긴밀하게 엮어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보니, 여기 담긴 현대사의 질곡은 크게 세 가지라 하겠다. 첫째는 학생운동이다. 이 역할은 여관집 장남 진도연이 맡았다.
둘째는 이산가족의 아픔이다. 10호실의 장기투숙객 할아버지다.
셋째는 중동 건설 근로자 파견과 그로 인한 부수적인 불행들이다. 이 사연은 9호실 장기투숙객 찌르레기 아저씨가 안고 있다.
그외 화려함을 쫓아 퇴폐적인 삶을 선택한 누나, 쇠락해가는 여관을 지키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어머니와, 기죽어 살아가는 아버지 등도 주요 인물이다.
이 모든 이들을 옆에서 보며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인물은 막내 진우연이다. 삼수생이라는 아주 애매하고 불안정한 신분이 관찰자와 고뇌자 역힐을 하기에 제격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에 대해서는 예전엔 역사나 도덕 수업 때 많이 다루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말에 힘이 잘 실리지 않는 것을 느끼곤 했다. 이제 해당되는 분들이 거의 생존해 계시지 않고, 들으면서 자란 나도 나이가 들었으니 젊거나 어린 세대들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주제다. 오랜만에 그 서사를 읽으면서 '그래, 참 기막힌 일이었다' 싶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 할아버지는 너무 싫었다. 북에 두고온 부귀영화를 평생 되뇌이면서 자신도, 새로 맺은 가족도 비참에 처하게 한 노인네가 꼴보기 싫었다. 딱한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짜증이 앞서는 나도 참 큰일이다. 남겨진 손자 민구가 얼마나 딱하냐고. 하지만 여관에 살던 기간 동안은 이런저런 사람들이 품어줬으니 90년대만 해도 옛날이었나 싶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소리니까.

중동 건설 근로자 이야기도 내가 어릴 때 있었던 일이라 실감은 못해본 역사이다. 이 책을 읽고 어느정도 실감을 했다고 할까. 찌르레기 아저씨. 겨우 만들어낸 따뜻하고 환한 가정이 뒤틀리고 꼬여 비참으로 끝나는 과정이 너무 안타까웠다. (물론 온갖 불행요인이 몰려서 그런 것이다. 중동에 갔던 것 자체가 불행은 아니지. 하지만 엄청 고생들은 하셨겠다. 가정을 위해 희생하려는 의식이 강했던 그때) 여관 주방 아줌마가 남몰래 흠모했을 만큼 아저씨는 독자에게도 참 마음이 가는 인물이다. 이 책에 진정성과 긴장감을 높여주는 아주 특별한 인물이다.

나머지 한 가지의 시대상, 학생운동. 이것은 내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닐 때 한창이었으니 가장 생생하게 체험한 시대상이라 하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밖에 안된 그들이 어찌 제적, 투옥, 고문을 불사하고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며 몸을 던졌을까. 분신의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생명과 온 인생을 걸게 한 그 동력은 대부분 순수했었겠지. 이 책의 장남 진도연처럼.... 지금 우리가 너무 당연해서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많은 부분 그 외침 위에 세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 정의감을 그대로 품고 있는가 생각하면 회의적이다. 이 책 이후 이어진 몇십년은 계속해서 진화해 나타나는 모순에 실망과 회의감이 더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흔히 후일담 소설이라고 부르는 소설들이 파장한 장터에서 부는 바람에 잔해들이 날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무게감을 갖고 있는 것이겠지.

결국 나성여관도 문을 닫고, 쓸쓸함 속에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그 쓸쓸함을 뚫고 나오는 희망을 담으려 작가는 노력했다. 그 3남매가 60대가 되었을 지금, 그 희망은 싹을 틔웠나?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하기 어렵다. 우연이를 비롯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삶의 무게를 견디고 빗장을 열고 걸어들어가는 태도, 이런 것들을 더욱 보기 어려워졌다. 이 책이 화석이 되지 않고 우리에게 계속 그것들을 되살려 준다면 좋을 것 같다. 희망의 뿌리는 단단한 땅속으로 뻗을 테니까.

이 책을 읽으며 드라마로 딱이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 보니 과연 있었네! 93년에 동명의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김호진 배우가 진우연 역할을 했었구나. 패악을 떠는 여관 안주인 역에는 나문희 씨가....^^ 유튜브에 있으니 심심할 때 하나씩 봐도 괜찮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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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첫눈 - 제16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 수상작 뉴온 8
오늘 지음, 토티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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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학년 동화를 한권 골라 읽어봤다. 웅진주니어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해서 믿고 골랐는데, 수상작인 이유는 알 것 같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말은 권해주거나 함께읽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사실 아이들이 각자 사든 기관에서 사주든 간에 여러 권이 구입되어야 하는 책은 '안전빵'을 고르게 된다. (나쁜 뜻 아님) 이 책은 안전빵이라기에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살짝씩 넘나든다. 그게 미묘하게 자극적이란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꼰대라는 걸 백퍼 인정하고 하는 말들이니 양해를 바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연애감정만 자극하는 옛날 하이틴로맨스 류의 저급한 책인 건 아니다. 어쩌다 일찍 '어른의 계절'을 맛보게 된 아이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어른들도 알고 있다. 이렇게 본의아니게 '어른의 계절'에 들어서버린 아이들이 있다는 걸. 그중 대부분은 주변환경 때문이란 걸. 하지만 그 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어떤 지점에서 아파하고 고뇌하는지 속속들이는 잘 모른다. 그래서 아이와 거리가 생기고 갈등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떤 아이들을 품고 위로하는 책이며 어른들에게도 의미있는 책일 수 있다.

열매네는 아빠만 온돌마을에 두고 엄마와 남매만 서울로 이사왔다. 5학년인 열매는 반에서 회장도 하는 적극적인 성격이고, 부회장인 최한빛과 사귀는 등 할건 다 하는 아이다. 타지역에서 온 열매와는 다르게 최한빛에겐 재니라는 소꿉친구가 있다. 그냥 가족끼리 친한 사이라고는 하지만 자꾸만 삼각관계로 얽힌다. 재니 생파를 안간댔다가 갔다가, 게임에 걸려서 뽀뽀를 했네 마네... 이 대목에서 난 1차 짜증.ㅎㅎ

마음이 울적한 열매는 최한빛과 연락을 끊고 여름방학을 맞아 충동적으로 어릴때 살던 집(아빠집)으로 내려왔다. 그 동네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직도 옆집에 살고 있는 연우와 연아 남매 가족. 그리고 잘해줬던 다정 언니.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되살아나며 동시에 다양한 감정들이 생성되고 재배치된다. 복잡한 심정을 담아 최한빛에게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 그 중 한 대목에 이 책의 제목이 들어있다.

"최한빛, 너는 어른의 계절이 뭔지 몰라. 서로 다른 두 계절이 맞물려 있어. 뜨겁고도 차가운 맛.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런 게 있어. 마치 한여름에 내리는 첫눈처럼 그런 어른의 계절이 있어." (103쪽)

열매가 이 어른의 계절에 강제진입당한 이유는 부모의 비밀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아빠랑 떨어져 올라와 같은 약국에서 일하는 친구 남동생과 연애하는 엄마. (드라마로 치면 '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 연애?) 그 비밀을 품고있기 힘들어 다정언니한테 고백했더니 더 강력한 아빠의 비밀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이렇게 열매네 가정에는 어른드라마에서 보던 일들이 두가지나 일어난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하다고, 기막힌 사연을 품고 있는 가정들이 실제로 숱하다. 이정도는 순한맛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매가 어른의 계절로 진입하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ㅠ

2차 짜증은 마지막 씬이 키스씬이고 그게 열매와 연우의 씬이라는 점이었다. 꼭 그렇게 마무리했어야 했나? 지금까지 열매의 내적 갈등을 잘 가져왔는데, 좀 다르게 마무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웠다. 부모님이 (엄마보다는 특히 아빠가) 단도리했어야 할 감정을 그러지 못해서 가족 전체를 으른의 세계로 빠뜨렸다면 열매라도 어른이 될 때까지는 좀 건강한 감정으로 크면 안돼? 사랑이 건강하지 않다는 거냐고는 말하지 말자.

초등 연애동화들도 이제 꽤 많다. (한때 그 목록을 적어본 적도 있었다.^^;;;) 이 책은 백퍼 연애동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 감정을 담고 있으니 포함시켜 본다면,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감각적(?)이다. 요즘 아이들의 감각 추구 경향이 강하다는 면에서 이건 장점은 아니라고 본다. 작품 속 말고 실제 아이들의 연애를 관찰해보면 이해와 존중, 서로를 세워주는 응원 같은 것과는 거리가 꽤 있다. 자극 놀이에 가깝다고 할까. 거기에 전류를 더 넣어줄 필요까지는 없어보인다. 그래서 난 이 작품의 결말이 꽤나 아쉬웠다.

지금까지 말한 건 경향성이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이 작품의 소재와 인물, 배경 모두 새롭고 의미있었다. 다만 감각만 쬐금 덜어냈으면 어떨까 하는 한 독자의 생각일 뿐이다. '어른의 계절'에 떠밀려 들어와버린, 내가 만났던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존재할 어린이들이 진짜 어른이 될때까지 건강하게 자라길 함께 응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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