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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에서 본 거리 - 다섯손가락 이두헌 노래글
이두헌 지음 / 이은북 / 2026년 4월
평점 :
이 책을 읽게 된 건 어떤 우연이 겹쳐서였다. 얼마전 멜론의 재생목록에 '새벽기차'와 '이층에서 본 거리'를 추가해서 길을 가며 들었다. 둘 다 젊을 때(어릴 때?) 좋아하던 곡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층에서 본 거리 가사가 처음 보는 것처럼 다가왔다. 에잉? 이런 가사였나? 왜 난 그때 아무 의문도 없이 들었을까? 제미나이의 해석을 한번 물어봤다.
"어렸을때 '다섯손가락'이란 그룹의 노래를 좋아했거든. 아주아주 오랜만에 오늘 '이층에서 본 거리' 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가사가 새롭게 들리더라구.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적 내친구는 외면을 하고]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랬더니 제미나이의 답변이 아주 그럴듯했다.
'다섯손가락'의 명곡을 오랜만에 들으셨군요! 어릴 때 듣던 노래가 나이가 들어서 다시 들으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 정말 특별하죠.
질문하신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외면을 하고"라는 구절은, 이 노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인 '순수했던 과거와의 결별'과 '비정하고 차가운 도시 삶에 물들어버린 서글픔'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몇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수녀'와 '친구'의 대비 (종교적 성스러움 vs 세속적 외면)
• 수녀는 우리 사회에서 '순수함', '양심', '도덕', '평화' 혹은 '구원'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 반면, 어릴 적 그 누구보다 순수했던 내 친구는 그 수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해 버립니다.
• 이는 친구가 단순히 수녀라는 사람을 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남아있던 일말의 순수함이나 양심을 마주하기 부끄러워 피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2. 도시 속에서 변해버린 인간관계와 무관심
• 어릴 때는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서로에게 진심이었던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복잡하고 냉혹한 도시(이층에서 내려다보는 거리)의 삶에 적응하느라, 타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차가운 도시인'이 되어버린 것이죠.
• 길거리에서 아는 체를 하지 않거나, 혹은 세상의 소외된 곳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무관심을 뜻하기도 합니다.
3. '이층'이라는 관찰자 시점이 주는 쓸쓸함
• 화자는 길거리에 섞여 있는 게 아니라 '이층'이라는 조금 떨어진 공간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 한때는 단짝이었을 친구가 거리에서 수녀를 외면하며 지나가는 차가운 모습을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하는 깊은 환멸과 쓸쓸함을 느끼는 순간을 포착한 가사입니다.
오호 그렇군 가사를 진짜 잘 쓰시네 하며 감탄하고 며칠 후, 알라딘에서 이 책이 나온걸 보았다. 오마나 웬일이야 하며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한참만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와서 받아왔다. 수많은 곡 중 이 곡부터 읽어보았더니 제미나이의 설명과는 많이 달랐다.ㅎㅎㅎㅎ 하지만 창작물이야 손을 떠나면 감상자의 몫인 거고, 저 해석도 꽤나 일리있으며 창작자의 고뇌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제미나이와 소설, 영화, 음악에 대한 감상을 몇 번 나눠본 결과, 넘겨짚다가 팔부러지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오류를 짚어주면 앗! 제가 착각을 했군요! 하고는 시침 뚝 따고 계속 넘겨짚기를 한다. 그러려니 하며 거리를 두고 봐야지 뭐.ㅎㅎ)
하지만 정보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정확하지 않을까?
"이 곡, 멤버중 이두헌 씨가 만든 곡 같은데, 해석해보니 꽤나 문학적 소양이 있으신 것 같네."
이렇게 물었더니 또 좔좔좔 설명을 이어갔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이층에서 본 거리>는 다섯손가락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이두헌 씨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가 맞습니다.
이두헌 씨는 대중음악계에서도 '시적인 가사를 쓰는 음악가'로 아주 유명합니다. 단순히 귀에 꽂히는 노랫말이 아니라, 한 편의 단편 소설이나 시를 읽는 듯한 문학적 소양을 가사 곳곳에 녹여내기로 정평이 나 있죠.
그의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한 편의 영화 같은 '시각적 묘사'
이두헌 씨의 가사는 눈앞에 풍경이 그대로 그려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 <이층에서 본 거리>만 해도 '창가에 맺힌 빗방울', '길가에 지나가는 수녀', '약국에서 파는 담배'처럼 구체적인 오브제를 배치해 도시의 쓸쓸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시각화합니다.
• 다섯손가락의 또 다른 메가 히트곡인 **<새벽기차>**나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역시 이두헌 씨의 작품인데, 제목만 들어도 어떤 계절과 시간, 분위기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서정성을 자랑합니다.
2. 일상의 풍경을 철학적으로 뒤트는 통찰력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국'과 '담배', '친구'의 뒷모습을 보고 인간의 소외와 현대 사회의 모순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억지로 심오한 단어를 쓰지 않고,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는 게 진짜 문학적인 내공이죠.
3. 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허문 행보
실제로 이두헌 씨는 음악 활동 외에도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에세이집을 출간하거나 시인들과 교류하는 등 글과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인물입니다. 그의 깊은 사색과 독서량이 고스란히 다섯손가락의 노래에 자양분이 된 셈입니다.
그 시절 청년이 썼던 청춘의 고뇌와 쓸쓸함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깊게 다가오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창작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미나이는 그때 이 책이 나온 것을 몰랐겠지만, 이렇게 본인이 쓴 노래 가사로 풀어가는 '노래글' 책을 읽어보니 제미나이의 찬사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시대 음악에 향수가 있거나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면 책장이 술술술 넘어갈 것 같다. 나도 멜론에 노래를 추가해 들어가며 읽었는데, 내가 알던 곡은 극히 일부란 것도 알게 되었다.
AI와 나눈 얘기를 너무 길게 늘어놔버렸네. 몇가지 감상만 간단히 쓰고 마쳐야겠다.
1.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것.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굳이 부끄러운 얘기 아픈 얘기 안해도 AI가 저리 찬사를 해주는 인물 아닌가? 그래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노래' 이야기를 쓰자면 어떨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안쓰면 안썼지 자신의 이야기를 빼고 노래를 논할 순 없었을 테니까. 에필로그에 그 심정이 담겼다.
"다 말해 버렸네요.
더 할 말이 없는 건 아마 오늘뿐일 거예요
살아있는 한 또 뭔가 말하려 하겠죠.
말은 그렇잖아요. 비온 뒤 풀이 자라듯 또 무성할 테니.
하지만 우리는 곧 모두 말을 잃게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말을 아무도 주우려 하지 않을 겁니다."
2. 노래도 어디로 어떻게 뻗어갈지 모른다는 것이 우리 인생과 똑같은 것 같다. 이두헌 씨는 그의 메가 히트곡들이 의외로 매우 '싱겁게' 탄생했다고 말한다. (싱겁게라는 말이 세번인가 나왔는데, 난 그때마다 모자무싸 속의 시인 황진만이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같은 곡. 저자는 공연에서도 이 곡을 되도록 안부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점 관객들의 니즈와 충돌한다.ㅎㅎ) 반면, 절절한 사연과 감정을 담아서 쓴 노래들이 묻혀있는 경우도 많다.
3. 예술가의 내면과 생활이 고요하고 잔잔할 수는 없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은 어떤 예술가나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애물단지인 것 같기도 하고... 치열한 감정 속에서 살고 계속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삶은 쉽지 않겠다.... 누구의 삶인들 쉽겠는가마는.... 그저 응원할 수밖에.
다섯손가락이 활동하던 시기는 나의 중고등 시절이었다. 그때 우린 친한 친구 생일에 음악테이프를 선물하길 좋아했는데, 자주 건넸던 음반이 바로 이 다섯손가락이었고 그외에 들국화와 부활 등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유튜브 검색해보니 3년 전에 모 방송사에서 '불꽃밴드' 라는 프로그램을 했더라고? 거기에 이 모든 아저씨들 다 나오셨다. (애들이 보면 할아버지라 하겠지만 난 아저씨라 하겠음. 오빠는 좀 그렇고ㅋ) 세월이 무상하도다..... 하지만 젊은이부터 늙은이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그것을 서로 따뜻하게 보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