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두실 마루비 어린이 문학 22
지슬영 지음, 임나운 그림 / 마루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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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의 시대배경은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 사료가 적은 고대로 갈수록 쓰기 어렵지 않을까? 더구나 문자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라면....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동화도 있을까? 있다, 바로 이 책이다. 나는 두번째 읽어본다. 첫번째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던 <사라질 아이>고 두번째가 이 책이다. 더 있겠지만 내가 읽어본 중에는 그렇다.

문자로 된 사료가 없는 선사시대 서사의 발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두 작가님 모두 유적에서 찾으셨다. <사라질 아이>는 반구대 암각화, 이 책은 암사동 유적지다. 내가 볼 땐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역시 작가님들의 눈은 남다르다. 뭔가를 길어올리고,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 상상의 힘으로. 그러면 그 시대의 현장이 실감나게 펼쳐지는 것이다.

신석기시대? 농사를 겨우 시작하고, 여전히 채집과 수렵은 중요한 생산수단이고, 움집을 짓고 부족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그 시대. 그 시대에도 사람이 당연히 살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나와 같은 존재로 여겨 왔었던가?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은 없지만 아닌 것 같다. 나와 같은 희로애락을 느끼고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존재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대엔 생존 자체가 급선무였을 테니까. 하루하루가 살아남기를 위한 과업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의 질이 지금과 달랐을까? 그렇다면 역사가 발전해오지 못했겠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본질에 충실한 생각과 감정을 갖고 살았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렇게 까마득한 옛날의 서사를 만들면서 그 시대 아이의 회의와 고민이 이 시대 아이들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게 신기했다. 첫째는 자존감이고 둘째는 다양성이다. 역시 중요한 화두는 시대를 뛰어넘는가?

두실이는 버들숲 마을의 핵심 사냥꾼인 큰뫼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훌륭한 사냥꾼으로 만들고자 했다. 부족 남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실이에게는 사냥이 맞지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잘 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초조함과 질책 앞에서 두실은 작아져만 가는데...

두실에게도 좋아하는 일은 있었다. 바로 만들기다. 조개껍데기에 얼굴을 새겨 목걸이로 만들기도 하고 (작가님이 암사동에서 인상깊게 본 유물이 바로 이것), 활과 화살도 잘 만든다. 하지만 역할이 고정된 부족사회에서 그런 재능은 아버지의 수치일 뿐이었다. 반대 상황의 인물도 나온다. 이웃 갈대 마을의 가람비라는 여자아이. 여자아이지만 활을 잘 다루고 사냥꾼이 되고 싶어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연히 만나게 된 이들은 서로에게 공감한다.
"그냥 나로 살면 좋겠다. 달라지려고 애쓰지 말고, 원래의 나대로."

이 아이들이 그렇게 살게끔 되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이 책은 흥미를 더해간다. 독자 입장에서는 흥미지만 책 속 인물들에겐 지독한 재난이다. 많은 희생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훌륭한 도구들을 생산해 낸 두실, 언제나 두실을 격려하던 단짝친구 흰달, 이웃마을 아이지만 고난을 함께 겪은 가람비, 세 아이가 저마다의 역할로 마을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이 긴장감있게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서사 중 몰입이 안되었던 부분은 두실의 아버지가 마을 화재 때 돌아가신 게 아들의 선물(목걸이)을 챙기다가 그랬다는 부분이다. 티내지 않던 아버지의 부성애를 부각한 설정이라서 감동적일 수도 있는데, 나는 이런 게 싫어. 아 목숨이 달렸는데 그딴 물건이 뭐라고... 이런걸 보고 "엄마 T야?" 라고 하는 건가... 어쨌든 감상에 방해되는 나의 성향 중 하나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외의 서사는 기대 이상으로 몰입감과 속도감 있게 읽혔다. 선사시대 이야기를 읽고 Z세대 아이들이 인생과 진로를 논하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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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고양이 두 번째 이야기 한울림 꼬마별 그림책
최지혜 지음, 김고둥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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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고양이 첫번째 이야기를 못 읽었는데 두번째 이야기를 읽고 리뷰를 쓴다. 이전 이야기가 어땠을지 어느정도 짐작은 간다. 짐작이 안 가도 읽는 데 지장은 없고. 첫 권은 2024년에 시작된 새 교육과정 1학년 교과서에 실렸다고 한다. 아직 바뀐 학년 교과서를 면밀히 못봐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그림책이 많이 포함된 것 같다. 그림책을 수업에 활용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지고 일반화된 지도 오래되었으니 당연한 흐름인 것 같다.

이 책은 단순하게 읽어도 재미있지만 그림책 경험이 많은 아이들일수록 더 재미있게 읽겠다. 수많은 그림책의 표지들이 등장한다. 제목과 윤곽은 흐려져 있지만 읽어본 사람은 알아볼 수 있게. 그리고 이 작가님은 실제로 강화도에서 '바람숲 도서관'이라는 그림책 도서관을 운영하고 계시다고 한다! 강화도에 놀러가서 한번 꼭 들러보고 싶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도서관 이름과 같은 제목의 그림책 <바람숲 도서관>을 몇년 전에 읽었다. 작가님은 자신의 소망을 성취해내고, 그 과정을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펴내고 계신 중인듯.... 그러기가 쉽지 않을텐데 참 대단하시다.

이 책 또한 도서관의 실제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 도서관 고양이 레오. 이후 발견된 아기고양이 설탕과 소금이까지, 모두 실제 도서관의 고양이라니, 도서관에 방문해서 얘네들을 만나면 괜시리 무척 반가울 것 같은데?^^

도서관의 모습이 화면마다 가득가득 담겼는데 실제 모델이 있으니 그 모습을 반영해서 그리지 않았을까? 외부도 내부도 무척 아름답다. 산자락에 위치한 도서관까지 가는 길과 주변엔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고, 도서관 내부도 구석구석 아기자기 예쁘다. 복층 구조의 계단과 벽면 책장이 리모델링한 우리학교 도서실이랑 비슷하게 생겼네. 한가지 다른 점은 고양이들이 한식구라는 점!

이 책은 고양이 레오가 화자다. 어느날 레오는 가냘픈 울음소리를 듣고 2마리의 아기고양이를 발견했다. 아기고양이들은 레오를 따랐고 그렇게 도서관의 새 식구가 되어 설탕과 소금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아가들이 들어와 이제 레오의 물건들은 레오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고, 온갖 말썽도 참아 주었건만, 딱 한번 폭발한 날에 꾸중을 듣고 억울해 하는 레오.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그림책이 '소피가 화나면, 정말정말 화나면' '가시 소년' '고함쟁이 엄마' 여서 정말 웃겼다. 작가님들의 센스가 보통이 아니시다. 이 유머는 그림책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만 해당되지만.

위의 장면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아가들에게 "당장 내 그림책에서 나와!" 하고 심술을 부리던 레오는 어느새 아가들과 함께 그림책 속 모험을 하고 있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냥?" 하기도 하고, 커다란 사과 속에 들어가 여러 동물들과 함께 사과를 먹기도 하고.... 이런 장면들에 나온 그림책들이 (일부러 유명한 책들로 하셨겠지만) 다 아는 책들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나이든 나도 이런데 아이들은 얼마나 기뻐하겠냐고!^^

그런데.... 마지막 장면은 슬퍼.... 아주 자극적으로 슬프진 않은데 은은하게 슬퍼.... 설탕이랑 소금이는 레오만큼 자랐고 이제 못하는 것도 없어. 사람들한테 인기도 많고. 이제 레오는 자연의 섭리대로 갈 길을 가는 거야. 그것 또한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모두의 가는 길이 그렇기를.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너무 괴롭지도 않기를.

레오야. 이젠 도서관을 지켜보고 있어? 너를 계속 만날 수 있게 이렇게 책이 나와서 기쁘지? 아이들, 도서관, 고양이는 참 소중해. 너도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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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멋진 집이에요 바람그림책 158
나카가와 치히로 지음, 타카하시 카즈에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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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화자가 나와서 자기 집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 화자는 자연 속의 작은 생물들부터 시작한다. 개미, 나비, 거미... 각자가 자기 집을 좋아하는 마음이 잘 나타난다. 하지만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끝에는 약간의 곤란한 점이나 위험한 점, 성가신 점 등이 따라붙곤 하는데 대체로 천적이거나 위협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대상들이다. 하지만 그또한 어쩔 수 없는 일, 대수롭지 않은 일로 표현한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사는 생명들의 마음가짐인 걸까.

개미네 집은 모두가 알다시피 땅 속에 많은 방들이 있다. 부지런한 개미들은 열심히 방을 만들지만 삽질 한방에 쉽게 뒤집히는 게 개미집이기도 하다. 나비네 집은 노랑과 초록으로 된 동그란 집. 집이자 아가들의 먹이이기도 한, 바로 배추! 이어서 나비들을 위협하는 거미, 거미들을 위협하는 제비가 연이어서 나온다. 냉정하게 말하면 먹이사슬이면서도 슬프거나 끔찍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제비를 집적거리는 건 고양이다. 고양이의 집은 집사랑 사는 그곳이지. 집사의 품에 안겨 잠을 자면서도 "내가 귀여우니 어쩔 수 없지." 하는 고양이. 마지막으로 집사의 집. 여기 나온 모두가 함께 살고 있는, 마당 있고, 해가 잘 들며 온갖 초록과 따뜻한 색깔들이 함께 있는 집이다. 누구나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는 추억 속의 집. 하지만 이런 집에서 살려면, 수많은 생명을 품고 함께 살려면 엄청 부지런해야지. 그런 생각부터 튀어나오는 나는 회색도시에 적응해버린, 일 못하고 게으른 사람.^^;;;

윤곽선 없이 부드럽게 퍼지는 그림이 따스하고 평안한 느낌을 잘 전달해 준다. 자세하진 않지만 각 생물들의 생태도 간결하게 나타나 있어 생태그림책의 요소도 어느정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나비의 애벌레는 배추를 먹고 성충이 된 나비는 유채꽃과 라벤더 등의 꽃꿀을 먹는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매끈매끈하고 동그란, 초록과 노랑이 섞인 집' '어른을 위한 까페' 이렇게 시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서 지식책의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림만큼 언어도 부드럽다는 뜻이다.

읽을 때 꼭 음독을 추천하고 싶다. 가정에서라면 부모와 자녀가, 학교에서라면 교사와 학생이 각 화자들의 역할을 맡아 소리내어 읽어보면 한층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읽고나서 "아주 멋진 집이에요."로 시작하는 자기 집 소개를 해봐도 좋을 것이다. 학교에서 할 때는 좀 세심한 인도가 필요하긴 하겠다.

집만큼 소중한 게 또 얼마나 있을까. 나같은 집순이가 아니라도 집은 최종 안식처니까. 집은 모든 걸 내려놓고 가장 편한 내가 될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런데 그렇지 못한 아이, 집에 들어가기가 두렵거나 집에서도 쉼이 없는 아이가 있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집'을 소중하게 가꾸는데 좀더 마음을 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도 좀 그래야겠다. 정리도 좀 하고....^^;;;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어떤 생명이든 다른 생명의 '집'을 침해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사실 범인은 온리 인간이지 뭐...ㅠ 이 책의 색감처럼 아름다운 색 속에서 살고 싶다면 다른 생명들의 터전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참 많은 것을 담은 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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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수영 대회 야옹이 수영 교실 3
신현경 지음, 노예지 그림 / 북스그라운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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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수영 교실 1권의 리뷰를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2권도 넘어갔고... 3권의 리뷰를 써보려고 한다. 이 시리즈 참 괜찮다. 만화 아니면 고개를 젓는 아이들에게 건네주면 좋겠다. 그림도 내용도 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유치하지도 않고 수준이 있다. 이 책이 줄글책으로 가는 다리가 되어주어도 좋을 것 같다. 가정이나 학급문고에 꽂혀있기에 적절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판매지수가 높구나.

그림작가 노예지 님은 고양이를 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하는데, <고양이 난로>라는 책에서 같은 그림체를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참 좋았는데, 이 책을 그리기에 최적의 작가님을 잘 찾은 것 같다.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귀여운 그림체가 누구에게나 호감일 것 같고, 고양이 마을 이야기인 만큼 고양이 캐릭터가 많이 필요한데 다양하게 잘 살려내셨다. 수영 뿐 아니라 스케이트 등 다양한 운동 동작이 잘 표현되었고 특히 이번 3권은 내용이 거의 스포츠 만화 수준인데 그것 또한 긴박감 있게 잘 표현되었다.

1권에선 야호 마을에서 호야 코치의 지도 하에 수영교실을 열게되기까지의 과정이,
2권에선 아빠를 잃은 상처가 있는 나루가 호야 코치를 의심했다가 오해가 풀리는 과정을 담았고 수영 면으로는 생존수영법이 들어가 있다.
3권에선 고양이들의 수영 실력이 많이 성장했고 그중 재능있는 아이들도 드러난다. 호야 코치와 프릴 아주머니는 불꽃마을에서 열리는 '불꽃 수영 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정한다. 그 대회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

3권의 주인공은 '밍크' 라는 흰 고양이다. 얘는 스케이트나 발레 등을 하다 포기한 경험이 있고 '나는 재능이 없어' '내가 재능이 있나?'에 좀 민감한 아이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수영은 끝까지 해보려고 굳은 결심을 한다. 대회도 출전하기로 하고 연습에 열심히 참여한다. 소심하고 심하게 긴장하는 성격이 나랑 같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게 되는데...

친구들 중에는 만능스포츠맨 나루가 막강한 경쟁상대고, 다른 두 마을의 참가자 중에도 다크호스들이 있다. 밍크는 잘 안되는 부분을 해결하려고 새벽연습까지 다닌다. 연습을 마치고 먼동이 트는 모습을 새벽연습 친구인 카이와 함께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가슴 속에 해가 뜨는 기분이야."
"나도. 왠지 힘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려."
사람이라면 무릇 이런 기분을 체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불 속에서는 절대 못 느끼는 이 느낌. 죽도록 싫어도 일단 떨쳐 나와야 느낄 수 있는 이 느낌. 솔직히 나는 이걸 많이 느껴본 사람은 아니다. 나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들은 타고난 재능과 함께 이 느낌을 나보다 많이 체험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한 번도 못 느껴 봤다면? 당장 뭐라도 찾아보기! 성공 여부는 그 다음이다. 건강한 자존감과 생활태도가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요즘 이불 밖은 위험해 태세로 살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하려니 몹시 찔리네^^;;;)

드디어 대회. 마을별 5인에 뽑힌 선수들은 대회 참가를 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응원을 한다. 예선과 결선을 치르는 대회 과정을 실감나게 잘 담았다. 결과는? 기적 같은 건 없었지만 나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결과가 따르지 않았어도 충분히 감사할 만한 과정이었지만 결과도 따라왔으니 더욱 감사한 일!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프릴 아주머니와 나눈 대화도 아이들과 꼭꼭 짚어 읽어보고 싶은 대목이다.
"밍크야, 나무가 잘 자라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니?"
"물이랑 햇빛이요?"
"하나 더, 바람이 필요해.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더 튼튼하게 자란대. 이번 수영 대회가 너한테는 바람이었던 것 같아.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잘 버텨 냈어."
때로는 아이들을 이 '바람'의 장으로 인도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두 리더처럼. 하지만 갈수록 꺼려진다. 저항과 불평이 두렵기 때문이다. 타격도 크고. 하지만 지혜롭게 살살 해나가야겠지. (이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지만^^;;;) 결국 아이들의 성장은 거기서 일어나니까.

마지막장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인물을 보니 이 시리즈의 다음권도 나올 것 같다. 수영교실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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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포포프 - 잊힌 아이들을 돕는 비밀스러운 밤의 시간 다산어린이문학
안야 포르틴 지음, 밀라 웨스틴 그림, 정보람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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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핀란드아동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세계 여러나라에 번역된 책이라고 한다. 이력에 걸맞게 흥미롭고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가장 매력적인 소재는 '라디오'였다. 요즘의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통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 어린시절은 라디오의 시대였다. 나는 라디오를 사랑했다. 정말,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라디오가 TV, 컴퓨터, 스마트폰에 차례로 자리를 내주는 급변의 시기를 내가 살아왔구나. 어릴 때 TV가 없었던 우리 삼남매는 5시면 라디오의 어린이방송을 들었다. 우리가 '연속극'이라고 부르던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소리로만 감상하는 것이니 일종의 낭독극이라 할까. 기억나는 제목은 '어린왕자'와 '운디네' 등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 수준높은 명작들을 들려주었네. "아저씨, 나 양 한마리만 그려줘." 하던 성우분(여자성우였음)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운디네의 마지막은 어찌나 슬프던지 눈물바람이었던 기억이 나고... 가끔 그시간에 아빠가 고교야구 듣는다고 하나밖에 없는 라디오를 차지하면 언니랑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곤 했다.

라디오 면에선 조숙했던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방송을 즐겨들었는데, '별이 빛나는 밤에'라든지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방송들. (찾아보니 아직도 하고 있다! 놀랍다.) 송승환, 김창완, 이수만 등등 시조새 같은 분들의 진행을 들었고 커서는 이문세로 정착했다. (이문세 이후로는 잘 모른다.^^;;;)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가 됐었을까 의심스럽지만 고3때도 들으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정신적 안정감을 준다고 할까. 친구 같다고 할까. 내게 라디오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라디오 소재의 이 책에 눈길이 갔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매우 현실적인 설정과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섞여있다. 먼저 현실적인 설정은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양상으로 학대 상황에 처해진 아이들이 많다' 는 것이다. 난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다. 심하고 약하고의 차이가 있고, 본인들이 그걸 알거나 아니면 아예 인식도 못하거나의 차이가 있을 뿐, 생각보다 꽤 흔한 일이라고 본다. 국내 작품이 아닌 먼 유럽의 작품이라도 비슷하구나....

비현실적인 설정은 작품 속 어른들 중 일부(대표적으로 아만다)가 잊혀진 아이들의 한숨에 반응하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다. 아만다와 알프레드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만다는 아빠가 팽개쳐두고 남겨진 알프레드의 한숨을 들었고, 신문을 배달하는 길에 신문과 함께 사과, 양말 등을 투입구에 넣어주었다. 그러다 두 사람은 맞닥뜨리게 되고, 알프레드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집을 떠나 아만다의 집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알프레드는 알게 된다. 아만다가 찾아가는 아이들이 자기 말고도 있다는 것을. 어떤 아이는 온 집안이 부모가 마신 술병이고, 어떤 아이는 자기도 어린데 동생을 전적으로 돌봐야 한다. 그보다 더 끔찍한 상황도 있다. 여기서 바로 그 흥미로운 소재가 나온다. 라디오! 아만다의 집은 할머니께 물려받은 것인데, 할머니의 친척 아주머니의 친구가 러시아 물리학자 포포프라고. 그가 남겨둔 설계도와 통신기기를 두 사람이 찾아낸 것이다. 100년도 넘은 것들을. 안테나를 세우고 주파수를 찾아내고 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주파수 맞추기 위해 다이얼 돌리면 지지직 소리가 나던 어릴 적 기억도 났고.... 아만다는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잊혀진 아이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을 하자는 것. 방송 시작을 알리는 안내문을 먹을것을 갖다준 것과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전달해 준 후, 어느 토요일 새벽 드디어 방송을 개시했다. 이름하여 '라디오 포포프' 이 책의 제목이다.

진행자는 알프레드다. 매주 다른 이야기로 방송을 잘 진행한다. 알프레드의 방송 원고를 읽으면서 라디오 방송 원고를 쓰는 일도 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방송에서 인상적인 멘트는 이것이었다.
"가끔은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걸 기억하세요. 세상엔 언제나 여러분의 소리를 듣는 누군가가 있답니다. 여러분이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 때 여러분을 생각하는 누군가가요." (100쪽)

그 '잊혀진 아이들'은 주파수를 맞추고 라디오 포포프를 듣는데 성공했을까? 아만다의 민감한 귀는 그걸 구별해냈다.
"약간의 기다림과 흥분. 그리고 희망도 있었지. 내 귀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105쪽)
자신들과 다를 것 없는 아이가 진행하는 서툰 방송을 듣기 위해 1주일을 기다리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일지. 알 것 같았다. 왕년의 라디오 애청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테지.

한편, 아만다의 배달 일을 돕던 알프레드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장면을 목격하고, 겨우 아빠 눈을 피해 아만다의 집으로 돌아온다. 아빠는 아들을 찾겠다고 학교도 한번 찾아오는데.... 아빠가 아들 찾는게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다가가는 걸 보는 양 왜 이렇게 조마조마한겨.... 이 부분 이야기가 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한 부모의 존재가 안타까웠다. 그래도 이 책에 나온 '잊혀진 아이들'은 다행이다. 아만다와 같은 어른들이 소수지만 있었고, 라디오 포포프가 이어준 공감과 연대가 있었으니까.

가정에서의 아동학대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다. 오죽하면 이 작가가 '밝은 귀'라는 설정을 했을까. 그런 귀가 없다면 알아채기 어렵다는 게 아니겠나. 그 안에서 비틀려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다. 우리나라도 아동학대법을 만들었지만 그 아이들을 구제하는데 쓰이지 못하고 엉뚱한 데만 찔러 피를 보고 있다. 참 어려운 문제다. 작가는 그 해법을 '이웃'으로 본 것은 아닐까. '밝은 귀'는 이웃들의 눈과 감각인 것이겠지. 하지만 요즘처럼 오지랖이 혐오받는 세상에 이건 가능할까.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알프레드에게 많은 행복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끝난다. 이 책의 결말처럼 부모 복이 평생을 좌우하는 프레임이 아니길, 그리고 부모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길, 이웃의 사랑과 연대가 가능하길 바란다. 이웃의 역할에 대해선 나도 가장 자신없는 영역이긴 한데...ㅠ

이 책은 일단 재밌으니 어린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어른들도 많은 생각을 하고 나눌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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