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21 | 222 | 22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한 글자 한 글자 쓰다 보면 웅진책마을
패트리샤 매클라클랜 지음, 박정애 옮김, 전재은 그림 / 웅진주니어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고 글쓰기의 가치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글이 딸려서 많이 쓰진 않는다. 요즘엔 페북에 가끔 쓰고, 예전엔 인터넷서점이나 교사 커뮤니티 등에 가끔 쓰는 정도였다. 글을 잘쓰시는 분들은 글재주보다도 사고의 깊이와 유연성과 통찰력이 대단하신 분들인 걸 깨닫고 나니, 글쓰기에 욕심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글이란게 손가락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것일진대 머리가 채워지지 않는 한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고, 머리를 채우자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쓰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글쓰기는 나에게 큰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 말보다 글이 편해서이다. 나는 대면 관계를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고 사람을 직접 상대해서는 내 의사를 강하게 펼치지 못한다. 그럴 때는 글이 훨씬 낫다. 눈앞에 사람이 없어야 할 말을 제대로 다 할 수 있다.
둘째, 휘발되는 생각과 느낌을 잡아둘 수 있어서이다. 내가 제일 많이 쓰는 글은 서평이니(이것도 한달에 두편 정도가 고작이지만) 그것으로 예를 들면, 서평을 써놓은 책과 안 쓴 책은 나중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읽은 책의 내용도 잊게 마련인데, 서평을 써놓으면 그만큼의 기억은 붙잡고 있는 셈이 된다. 물론 한참 지나 읽어보면 "내가 이런 글을 썼었나?" 할 때도 있고, "이 책을 읽고 이거밖에 생각 못했나?" 또는 "책을 잘못 읽었네."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의미가 있는 일이다.
셋째, 글쓰기는 나 스스로 나를 정리하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작업이다. 감정과 생각이 뒤엉켜 있을 때 글을 쓰면 가닥이 잡히고 정리가 된다. 그러면 어느정도는 나를 객관화하여 볼 수 있게 된다. 또 글쓰기를 글똥누기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듯이 배설처럼 시원하기도 하다. 심하지 않은 마음의 동요는 이정도로도 충분히 해결된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내용이 반가웠고 부럽기도 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한 작가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글쓰기의 가치와 기쁨을 가르쳐 준 이야기' 정도 될 것이다. 나도 한때는 의욕적으로 덤볐으나 그리 잘되진 않았었다. 아이들은(요즘 아이들은 특히) 쓰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공책 필기를 자주 하지도 않는데 어쩌다 좀 쓰게 되면 죽는 소리를 한다. 글을 써야 하는 학습지를 나눠주면 몇줄인지부터 세어본다. 거부감이 없는 아이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이런 식이다. 아이들이 싫어하다보니 나도 특별히 강조하기보다는 기본만 하는 식으로 바뀌게 된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아이들과 타협(?)을 해버렸지만, 나름 노력하고 있을 때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서투른건 괜찮으니 솔직하게 쓴다. 거기에 감동이 있다. 이오덕 선생님이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하고 하셨던 것도 이것을 전제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미라벨 선생님은 '속삭임을 들어보세요.' 라고 조언했고 그것이 글로 이어지도록 유도했는데 위에 말한 솔직함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하면 영감이라고 할까? 누구의 삶에든 글이 될만한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잡아내고 거짓없이 진정성을 갖고 쓴 글은 훌륭한 글이다. 이 책의 작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둘째, 쓴 글의 공유와 그 과정에서의 소통이다. 인간에게는 표현의 욕구가 있고 무의식중에 나누려는 욕구를 가지고 글을 쓰게 된다. 페북을 하거나 인터넷 서재에 글을 올리는 것도 그런 욕구를 반영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적당한 반응이 있어야 쓰고자 하는 욕구가 소진되지 않는다. 내가 사용했던 공유의 방법은 학급문집 겸 소식지였는데 학기당 두 세번 발행하며 아이들이 쓴 시, 일기, 독서감상문, 그 외 국어시간의 글쓰기 결과물들을 실어주었다. 부끄럽지만 지금은 못하고 있다.... 이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내년부턴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이정도의 공유도 상당한 노력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은 부족했다고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문집 활동만 해도 다른 친구의 글을 서로 보고 배우며 상승하는 효과가 꽤 있긴 하다. 교사가 직접 가르쳐 주는 것보다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의 모방에서 훨씬 많이 배운다. 하지만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이 더해지면 훨씬 좋다. 미라벨 선생님의 이런 단순한 방식이 사실은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일쯤엔 여러분 중에서 누군가가 글을 써서 들고 올 거 같네요. 원한다면 친구들 앞에서 직접 자기 글을 읽어도 좋고요, 내가 대신 읽어줄 수도 있어요. 친구의 글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우리 모두 예의를 지킬 거예요.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얘기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고 하는 식으로요."

이런 지도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닥친 아픔과 기쁨, 슬픔과 걱정들을 풀어내었고 그러면서 이해와 우정을 배워나갔다.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예뻤다. 그 아이들의 시도 예뻤고 친구의 시를 존중하고 칭찬하고 이해하는 태도도 너무 예뻤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만큼.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부모님들을 초청하여 전시된 글을 통해 자녀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자리도 만들어 주었다. 이제 아이들은 한 글자, 한 문장,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우리의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두들 공감하고 있다.

문득 문자와 글이 없는 삶을 상상하니 세상의 기쁨이 반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라벨 선생님처럼 이 기쁨을 알려줄 책임을 양 어깨에 느끼니 정말 무겁네.... 우연히 만난 이 책을 나의 소중한 책 목록, 아이들에게 권해줄 책 목록에 동시에 넣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스쿠니 신사의 비밀 - 칼과 거울에 깃든 246만 명의 영혼, 그 비밀을 밝혀라! 역사 탐정 클럽 H 1
김대호 지음, 정은규 그림 / 아카넷주니어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도서관의 수서를 하다보니 웬만한 책은 학교도서관에서 다 조달하지만, 오늘은 방학이라 25분 거리의 학교를 포기하고 10분 거리의 지역도서관에 왔다. 어린이책 장서수는 학교보다 적다. 그래도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늘 골라온 책 중 한 권은 <야스쿠니 신사의 비밀>이다. 이전 학교 도서관에도 수서해 놓은 기억이 나는데 책을 읽어보진 않았었다. 오늘따라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띈 것은 이유가 있겠지.

저자의 이름이 낯선데, 역사교육과로 박사학위도 받고 고등학교 역사선생님이셨다니 내용이 가볍진 않겠다는 신뢰가 갔다. 과연, 동화작가는 아니시라 대화체나 대화를 잇는 문장 등에 약간 어색함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내용만큼은 날 깜짝 놀라게 했다. 수없이 듣고 말했던 '야스쿠니 신사'와 '가미카제 특공대'에 왜 그동안 이런 의문을 품지 못했을까? 내 자신이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지난 성탄절에 방영된 '일사각오 주기철'을 감명깊게 보았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겠다는 목사님의 신앙을 왜 그리 잔인하게 꺾으려 했을까? 그들에게 신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정치인들이 참배하여 주변국들을 불편하게 하는 야스쿠니 신사는 어떤 곳인가?

전범들을 추도하고 제사하기 때문에 문제라고만 알고 있던 나에게 2만 1천명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 그중엔 생존해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 그들의 취소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 등은 충격이고 부끄러움이었다.(이렇게 아는 것이 없었다니...) 또한 합사된 이들 중 가미카제 특공대로 사망한 이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때는 가슴이 아팠다. 뉘라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마음대로 받아들일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이들의 존재... 아프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을 못하겠다.

역사탐정클럽 아이들이 이 문제를 파헤치게 된 계기는 아이디 Wednesday1004 라는 사람에게서 온 메일 때문이었는데 '수요일' 이라는 아이디를 보면서 이야기의 귀결이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을 하게 된다. 이 메일에서 아이들에게 던진 문제는 이것이다. "어떻게 해서 야스쿠니 신사의 한국인들이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도 의미깊다.

부녀 2대에 걸쳐 수치스럽고 원통한 협상을 하는 것을 보며 느끼는 두려움이 이 책을 읽으며 더욱 섬뜩하게 다가왔다. 야스쿠니 신사를 미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들이 원하는 것을 꿰뚫어보고 대비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약하고 어리석기만 한 것인가?

이런 모든 생각 끝에 마지막으로 '역사수업'을 생각해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모두 이 역사탐정클럽 회원들이라면 역사공부는 저절로 되지 않을까? 지난 한학기동안 사회시간에 역사수업을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의 강의식 수업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을 인정한다. 역사동화 프로젝트라는 것도 시도해 봤지만 아쉬움을 달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보고 해결해내겠다는 의욕을 끌어내진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처럼 아이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의지를 갖고, 서로가 알아낸 내용을 함께 나누며 해답을 찾아가는 수업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가지 필요조건이 있다. 교사인 나의 방향감각과 현실감각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에게 감탄하며 경의를 표한다. 나도 노력해야겠다. 비록 현실은 암담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어의 노래 - 마음에 용기와 지혜를 주는 황선미의 민담 10편
황선미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비룡소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작동화를 즐겨 읽던 내가 옛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환희 님의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읽은 후부터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내게 가장 강렬히 다가온 것은 옛이야기의 심리적 가치에 관한 내용이다. 구전된 이야기들의 각편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화소들의 심층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들어있으며 놀라운 심리적 가치로 아이들의 내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는 각각의 상징성들을 훼손하지 않도록 무척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황선미 님의 신작이 나와서 무척 반가운 마음에 클릭해 보았더니 이번엔 창작동화가 아닌 옛이야기다. 인어의 노래를 비롯한 10편의 유럽민담이 들어있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 위에 적은 저런 걱정은 접어두고,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일까 기대하며 읽어나갔다. 더구나 그림작가 또한 그 유명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이니 환상의 조합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림작가의 나라인 폴란드의 민담이 가장 많이 들어있고, 그 외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등의 민담이 들어있다. 그림형제의 동화에만 익숙해져서인지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낯설지 않다는 것. 이야기의 패턴이나 화소가 유사한 것은 어느 문화권이든 인간 내면의 문제나 갈등이 유사하기 때문이라던데, 여기서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내용이 나오는 것이 식상하기 보다는 오히려 흥미로웠다.

<고사리꽃>에서는 집념 끝에 행운을 움켜쥔 아첵이라는 청년이 나온다. 그런데 그 행운의 조건이 '그 누구와도 나누어서는 안된다' 였으니 그것은 과연 행운이었을까? 괴로운 생각을 하지 않으려 쾌락에 몰두하지만 자신을 더욱 파괴할 뿐이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이런 모습이 이 시대에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는 데에 가슴이 서늘하다.

<왕이 된 농부>에서는 착하고, 영악하지 못하고, 그래서 구박받고, 결국 쫓겨나는 특유의 셋째아들이 나온다. 물론 해피엔딩이다.

<인어의 노래>에서는 이 세상에서 인어가 사라진, 다시말해 인생의 신비로움과 꿈이 사라지게 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안타깝다. 그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도 있었는데....

<황금오리>에서 구두장이 루텍은 황금오리의 행운을 갖게 되는데, 여기서도 금화 100냥을 자신에게만 써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걸 보는 독자는 안타까워한다. '야아~ 돈 쓰기가 얼마나 쉬운데~ 이렇게 쓰면 되잖아~' 하지만 그건 요즘 이야기인듯. 결국 루텍은 돈을 다 못썼을 뿐 아니라 남은 돈을 거지에게 주기까지 했다. <고사리꽃>과 정반대네? 결말도 그렇다.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고, 각 이야기의 앞장에는 그 이야기의 주제라고도, 핵심문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간단한 문구가 단정하게 박혀있는데 몇 개만 소개하려 한다. 마치 이 시대의 경구 같기도 해서 말이다.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는 행운은 인간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에게는 출신보다 중요한 게 있다오."
"젊은이, 행운을 잃었다고 생각하는가?"
"두려워 마세요, 왕자님. 공주의 아량 덕분에 우리의 질긴 사슬이 풀리는군요."

이 책은 꽤 두껍고, 무겁고, 고급스럽고, 책값도 꽤 비싸다.(책의 가치에 비해 비싸단 뜻은 아니다^^) 대여보다도 소장용으로 좋은 책일듯해서 선물용으로 좋을 것 같다. 아이들 선물용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끼리 주고받아도 괜찮을 것 같다. 천천히 한편씩 음미하며 읽어도 좋겠다.

이 이야기들의 원형을 본 적은 없으니 작가가 재화를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무척 아름답다는 것, 마음을 울린다는 것이다. 이 작업을 시작하셨으니 다음 책도 나오면 어떨까도 생각해본다. 세상에는 아직도 묻혀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을터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면의 정석 - 영화보다 재밌고, 라면보다 맛있는 우리들 이야기
신정민 지음, 신홍비 그림 / 돌멩이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라면의 정석이라는 제목과, 후루룩 라면을 빨아올리는 만화체의 표지가 날 끌어당겼다. 나도 라면을 좋아한다. 아직은 소화기관이 괜찮은지 야식으로 먹어도 끄덕없다. 아마 혼자 살았다면 온갖 종류의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을 것이다. 어제는 주황색 삼양라면, 오늘은 짜파게티, 내일은 비빔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난 이 책에 여러 아이들이 등장해 서로가 주장하는 라면의 비법, 즉 <라면의 정석>을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거라면 나도 할 말이 좀 있거든.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전교생 8명의 시골분교에서 모두가 한가지씩 역할을 맡아 만든 단편영화가 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상을 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책이다. 영화를 본 경험도 거의 없는 아이들이 무려 제작을 했고 수상까지 했다니 꿈 같은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시작은 방과후 수업이었다. 인원이 적다보니 전교생이 같은 부서를 한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결정한 부서는 영화만들기부였다. 서울에 근무하는 나는 이런 부서를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문예체 진흥 사업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난 이 취지에 매우 공감하는 쪽이다. 취지와 다르게 어그러지는 일은 어디에나 있지만 말이다. 하여간 이렇게 되어 영화 선생님이 학교에 오시게 되고, 주인공의 경험과 아이디어, 아이들의 역할분담, 뜻밖의 재능 등이 결합되어 영화 <라면의 정석>은 탄생하게 된다.

실제 나의 교실에서는 영화는 커녕 역할극도 마음 먹어야 겨우 몇번 할 뿐이다. 이런 일을 가로막는 장벽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인정하기 싫지만 내 마음의 장벽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영화를 제작해야 된다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 그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을 증명해 내는 것. 이런 일들을 경험한 아이들의 삶의 태도는 훨씬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지난주에 우리 학교는 학년별로 꿈끼발표회라는 것을 했는데, 옆반은 강력한 지도자와 그 아이를 잘 따르는 나머지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어 전권을 위임해 주셨지만 우리반 놈들의 면면을 볼 때 극성파들의 아귀다툼과 소심파들의 눈물이 불보듯 뻔하여 내가 전권을 쥐고 모든 결정과 연습을 진행했다. 다행히 잘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나의 한계와 심리적 장벽이 의식되어 맘이 편치가 않다.

문예체 장려라는 원칙에 동의한다고 했는데, 담임교사가 문예체에 전문적 기능을 갖고 있을수도 있지만 기능적으로 다 갖출 순 없으니 이 책에서처럼 전문강사가 파견되어 협력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반드시 추억을 선물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대한 자기주도적 활동 기회를 제공해 줄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처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든, 아귀다툼 끝에 울고 짜든, 하여간 시도는 해보는게 필요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게임 마니또 푸른숲 어린이 문학 36
선자은 지음, 고상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없는 도움과 사랑의 상징인 마니또, 우리 어릴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꽤 많은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마니또. 그런 마니또를 이렇게 서늘하게 비틀어도 되는거야?

 

당연히 된다. 될 뿐만 아니라 속이 시원하기까지 하다. (지금 내가 비틀려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아이들은 '순수'하지 않을 수도 있고 교실은 '천국'이 아닌 정글일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선생님은 마니또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행복한 교실을 꿈꾸며 마니또 제도를 시작하셨다. 그러나 아이들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속셈들은 제각각 다르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있다면 모두가 그것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일에든 왜곡과 상처의 위험이 있다. 그것은 그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이다.

 

지율. 반들반들 윤이 나는 깨끗한 백자 같은 아이. 큰 매력은 없이 조용하지만 흠도 없는 아이. 이 사건의 피해자이지만 나름대로 해결해 가면서 많은 부분이 변해간다. 당당하고 많은 친구들 앞에서 웃고 말할 수 있는 아이로.

 

모모.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반의 왕따(라기보다는 스따) 같은 아이. 지율이의 마니또가 되었다가 누명을 뒤집어쓸 위험에 처하자 뜻하지 않게 지율이 사건의 비밀수사관이 된다. 이 아이는 과연 제대로 수사를 할까?

 

아름. 교실에 하나 아니면 두셋쯤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아이. 관계에 관심이 많고 그것 없이는 존재의미를 못 느끼는 아이. 있으면 외롭지 않지만 때로는 성가시고 피곤한 아이. 나름 순진하지만 그건 단순해서이고 이타적이진 않은 아이.

 

은석. 이런 남자 모범생은 흔치 않다. 이 아이의 행동과 그 동기도 놀랍다. 이 서늘한 현실적 이야기에서 가장 현실과 먼 캐릭터라고 하겠다. 하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인물.

 

시현. 예쁘고 못돼먹은 아이. 범행의 동기가 가장 큰 아이. 이 아이가 관연 범인일까?

 

작가는 '작가의 말' 에서 학교생활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학교생활은 사실 이 정도로 치열하다. 고학년이 될수록 교실 안에는 경쟁과 심리전이 팽배하다. 그 속에서 소외되어 약자로 보이는 모모같은 아이도 사실은 복잡한 속을 가진 인간이고, 마냥 착하고 순해 보이던 부회장 지율도 상황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일 수 있다."

현장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작가의 날카로운 눈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권력을 둘러싼 암투는 벌어진다. 단수 낮게시리 치고받고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물밑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그 과정은 때로 꽤 비겁하기도 교활하기도 하다. 을이어서 서럽던 아이가 이런 엎치락뒤치락을 통해 갑의 자리에 올라서면 단번에 갑질을 시작한다. 그러다 순식간에 다시 추락하기도 하고.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작가의 말' 에는 이런 말도 있다. "마니또 이야기를 한다면 으레 나오는 아름답고 다정한 이야기는 재미없고 싫었다. 이상하고 무섭기도 한 마니또 게임을 통해 진정한 마니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난 작가가 말하는 <진정한 마니또 이야기>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느끼는 건 이거다. 어떤 아이가 교실의 권력관계에서 암투를 벌이고 갑의 위치에서 갑질을 하다 추락하며 엎치락 뒤치락의 모습을 보여줄지라도 너무 비난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반면 무척 신뢰가 가는, 반듯한 아이도 있게 마련이지만 그 아이에게 너무나 큰 신뢰로 짐을 지우지도 말자는 것이다. 천성이라는 것도 있고 가정교육도 있고, 따라서 못된 아이 착한 아이 어느 정도는 구분이 된다. 하지만 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큰 실망도 하지 않는다. 그게 날 좀 냉소적인 교사, 아이들과 친밀하지 않은 교사, 열정없이 할 일만 하는 교사로 만든다 해도 어쩔 수는 없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21 | 222 | 22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