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
탁동철 지음, 나오미양 그림 / 양철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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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같은 교사라고 해도 이 책의 담임선생님과 나는 전혀 다른 경험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이 30센티 안쪽 오그린 세계에 갇힌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나도 사실 그 부류에 속한다. 이렇게 더운 날엔 에어컨 없는 곳에 한발자국도 나가기 싫어하는, 자연은 그저 '거기 잘 있기만' 하면 좋겠는 부류. 이 책도 에어컨 빵빵한 까페에 와서 읽었다. 작가의 말 마지막 문장 "책을 읽는 여러분도 장호와 친구들처럼 30센티 너머 세계를 만날 수 있기를. 자기 말과 감각을 되찾고, 자연 속에서 생생하게 자라나는 자연의 아이가 되기를." 이 바람이 나에게 적용되기는 영 틀렸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라도 느껴보는 것이 아예 모르는 것 보다는 낫다. 작가님의 바람처럼 아이들이 이 세계에 대한 감각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너무나 중요한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거기 잘 있기만' 할 리도 없고.

산골 마을 중에서도 더 깊이 들어가 홀로 있는 집에 장호 할아버지 댁이 있다. 택배도 닿지 않아 이웃집에 내려와서 찾아야 하는 곳이다. 웬만한 아이들 같으면 하루도 못버티고 도시의 문명에 목말라 칭얼대겠지. 하지만 장호는 절대 다른 곳에 가지 않으려 마음먹었다. 아주 어릴때도 여기 맡겨져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체득한 자연의 감각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장호가 너무나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만신창이가 된 짐승처럼.

부모의 불화와 폭력, 헤어짐의 추한 과정은 장호의 마음에 불에 데인 상처처럼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뿐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악랄하게 괴롭히는 아이가 있었고, 참았던 분노가 터져나온 날, 감쪽같이 구도가 바뀌어 있었다. 흔한 일이다. 평상시 가해자는 이럴 때 피해자 코스프레를 오지게 한다. 장호는 한순간에 가해자가 되어있었다. 실제로 안해야 하는 행동을 한꺼번에 많이도 했다.ㅠ 사지에 몰린 장호를 할아버지가 다시 데려갔다. 주변인들은 마음의 병, 대인기피증, 분노조절 장애, 치료 등등을 언급했지만 할아버지는 귀를 닫았다. 몇달간 등교거부도 용인하고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학년이 올라가는 3월, "할아버지랑 계속 살려면 학교에 가야 한다"고 선포하셨고 장호는 코뚜레 꿰인듯이 괴로워하며 학교에 간다. 다니던 도시 학교와는 딴판인 산골 학교로.

그곳의 담임 선생님은 아마도 작가님인 듯. 그리고 작가님 또한 산골 태생으로 자연과 어울려 자라신 것 같다. 겪어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다. 아이들은 억세고 선생님 말을 순순히 듣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않고 능숙하게 받아쳐가며 지도하시는 작가님은 보통 고수가 아니시네. 언뜻언뜻 보이는 수업장면도 그렇고 텃밭이든, 사육이든, 바깥 활동 모든 것이 나로선 엄두를 내기 힘든 것들이었다. 아이들은 때로 만용을 부려 엄청난 일을 도모하다 실패하곤 했는데, 내가 알았다면 결사적으로 말릴 위험한 일들이었지만 이 동네 교사나 어른들은 적당히 눈감아 주다가 어떤 때는 나타나서 도와주시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얼마나 남아있는 걸까. 아예 접해본 적도 없는 나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사라지지 말았으면 하고 바랄 뿐.

이곳에서 사계절을 지내며 꾹 닫았던 입을 열고, 마음이 열리고, 장점을 발휘하며 인정도 받고, 꽤 멋진 처신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장호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아주 은근한 담임의 배려도 잘 보면 보이고, 다들 허술하지만 함께 성장하는 조연 어린이들의 캐릭터도 각각 재미있다. 마지막 썰매 장면에선 가슴이 활짝 펴진 장호의 모습이 느껴지는데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게 잘 표현되었다.

교사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아이가 마음을 여는 이 지난한 과정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며 어떻게 인내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이 책보다도 훨씬 어려울 테니까. 아이들이 읽는다면 장호가 일깨우는 자연의 감각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게 있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두 가지가 필수구나. 하나는 자연이고 또하나는 함께하는 친구. 갈수록 둘 중 하나도 가질 수 없도록 아이들을 몰아대는 시대이니 어찌 위기라 하지 않을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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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의 캔버스
함영기 지음 / 푸른칠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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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기 선생님의 『교육사유』 책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적어놓지 않았더니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내용과 함께 문장도 참 좋다고 느끼다가, 아참 이분 수학선생님이라고 했는데? 이과이신 분이 감수성은 문과시네 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던 기억이....^^;;

그 감수성의 결정판이 이 소설인 것 같다. 작가의말에서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르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일단 나는 소설이라고 간주하고 쓰겠다. 여섯 편의 단편이 모인 책이다. 각 주인공은 다른 작품에서 주변인물로 다시 등장하기도 하므로 독립된 단편이라기 보다는 연작이라 하는 편이 맞겠다. 책 속의 인물은 교사였던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작가가 만난 제자들이기도 하다. 마음을 다해 제자들과 만나왔던 작가였기에 경험과 사유가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파란만장한 교직인생은 누구나 소설로 남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소설로 치면 몇 권이다.” 이런 말 흔히 하지 않나. 물론 그걸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일단 나는 그럴 문학성도 없고 남한테 펼쳐줄 이야기도 없다. 내 기준으론(?) 다행스러운 지난날이었다고 할까. 별일은 없었다는 거니까......

첫 번째 작품 [그날 새벽] 이 작품이 단독으로 나왔다면 웬 철지난 운동권 감성이냐 했을 것 같다. 파장한 장터에서 부는 쓸쓸한 바람 같다고 할까. 하지만 그 젊은 주인공은 이후 작품에서 청소년 주인공들의 교사로 나온다. 딱 부러지게 말하고 있진 않지만 짐작할 수 있게.

[춤을 추다]에 나오는 지영이와 상헌이가 친해지는 모습이 난 보기 좋았다. 흔히 나오는 청소년 썸타는 얘기가 아니었다. 얘네들은 어린 나이에 벌써 인생의 무게를 짊어진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연대감이라고 할까. 상헌이가 태권도장에서 ‘사범 형’으로 일하면서 관장님이 쥐어주신 돈으로 지영, 지영 동생들을 불러 ‘초원식당’에서 삼겹살을 함께 먹을 때, 그건 시혜가 아니었다. 밥친구였다. “혼밥이 제일 맛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나는 얘네들보다도 인생을 모르는 거다. 눈물젖은 혼밥을 먹어본 사람은 이렇게 밥친구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거다. 늦은 저녁 함께 귀가하는 길, 느닷없는 지영의 춤, 얼떨떨하게 보다가 태권도 품새로 응수하는 상헌. 아이들의 광란(?)은 그들 나름의 축제였다. 가장 절실한 축제. 짠하고도 아름다웠다. 그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시발 롤 모델] 이 아이 이야기는 몇 년 전에 함 선생님이 페북에서 하셨던 것 같다. 말하자면 거의 실화? 자기 기분 상하게 했다며 사과하라고 교사를 다그치던 그 패악한 놈이 결국엔 당신이 롤 모델이라고 고백했다니. 시발 소리 섞어가면서. 이런 애들 잘 보면 은근 귀엽고 짠한 데가 있지. 하지만 난 만나기 싫다. 너무 솔직해서 탈이지?;;;;;

[소라의 겨울] 이야기가 제목처럼 가장 시리고 아프다. 소라는 앞편에서 지영이의 친한 친구로 나오는데, 그때의 소라는 늘 밝고 명랑했을 뿐 아니라 어색한 자리를 자연스럽고 훈훈하게 채워주는 윤활유 같은 아이였다. 그런 소라에게도 아픈 가정의 문제가 있었고 결국 최악으로 치달아 소라 또한 참혹한 일들을 당하고 극단적 위기에 몰렸다. 청소년 쉼터에서 지영이에게 보낼 기약도 없는 편지를 쓰는 소라.... 그나마 쉼터라는 곳도 있고, 그들을 돕는 직업인들도 있지만 (없는 편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래도 가정이라는 최소단위의 울타리가 박살나버린 아이들을 대신해줄 존재는 찾기 어렵다. 소라가 다리에 힘을 넣고 일어서기를 기대할 수밖에... 그 편지가 지영이에게 전달되고 중학교 시절 그랬듯이 서로의 사정 빤히 알고 무심한 듯 연대하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힘들고 아픈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가능하기를....ㅠ

표제작인 [지훈이의 캔버스] 속의 지훈이는 지영이의 동생이다. 청각장애가 있어서 학업에 흥미를 잃고 많이 뒤쳐져 있다. 담임은 지훈이를 배려해 가운데 앞자리에 앉혔지만 가장 잘 보이는 그 자리에 앉아 지훈이는 낙서만 할 뿐이다. (그 일로 젊은 여선생님을 화나게 하기도) 하지만 지훈이의 낙서는 그림으로 진화해갔다. 그 진화는 날로 수준을 더해갔다. 교실의 곳곳이 ‘지훈이의 캔버스’가 되었다. 지훈이의 타고난 재능 때문이지만 그것만으로 가능했을 리가. 구박하지 않고 무심히 판을 깔아준 선생님의 배려 때문이었다. 이런 희망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면 좋겠다. 책임감이 무겁다 해도.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교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 동시에 책임감 따위 벗으라고 강요하는 듯했다. 이 편의 마무리가 신파같아 보여도 절대로 코웃음을 치지 않겠다. 내가 못했다고 남도 하지 못하란 법은 없으니까. 나는 이제 퇴직을 고려하고 있는 늙은 교사지만 후배들의 교직생활에 이런 보람도 있기를 빌겠다.

마지막 [정수야 정수야] 속의 정수는 선생님이 아주 젊을 때 만났던 제자다. 삼십 년이 흘러 페이스북에서 연결되었다고 한다. 제자의 나이도 벌써 오십이 되었다. 그 또한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이었고 부모 잃고 친척에게도 버려져 서울역 앞에서 미아가 되어 결국 농아원에서 살며 학교를 다니던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보청기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성실한 생활인이다. 이 작품은 교사가 그 제자에게 쓰는 편지처럼 서술되어 있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오늘은 네가 내 선생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존경스러운 제자도 있는 것이다. 참 감사하게도.

먼저 퇴직하신, 말하자면 교직의 선배님이신 작가님의 (아마도 거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읽으며 재미있기도 했고 가슴 아프기도 했고 나를 성찰하기도 했다. 소설이니까 이야기로 가볍게 읽어도 되지만 때로 무겁게 다가오기도 하고 교직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게 되는 부분도 많있다. 겪은 이야기라 해도 이런 서사력을 가지신 선생님(수학 선생님!)이 부럽기도 하다. 표현력도 상당하시다. 사실 처음에는 쭉 구입해오던 출판사의 책이라 자동적으로 구입한 이유가 컸는데, 읽고 나니 마음껏 추천할 마음이 솟아나서 왠지 보람있다. 아담한 판형에 표지도 예쁘고 페이지당 편집도 적절해 가독성도 높다. 읽어보면 다양한 상념들이 다가올 책으로 추천한다. 소설로 보는 교육사유라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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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의 조금 용감한 하루 작은 곰자리 84
마야 다츠카와 지음, 장미란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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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두더지와 초대한 토끼. 완전 반대 성격이다. 흔히 쓰는 말로 하면 토끼는 외향인이고 두더지는 내향인이랄까. 남을 일부러 초대해 자기 집에 여럿이 모여 신나게 노는 걸 즐긴다면 누가봐도 외향인 맞겠지. 그리고 그 초대에 부담을 느껴서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기껏 선물까지 준비해 길을 나섰으면서도 가도 될까, 돌아갈까를 고민하는 두더지는 극내향인이라 하겠지.

미국에 거주한다고 하는데 일본 이름인 걸 보면 일본계 미국인 아닐까 짐작되는 이 작가는 여러 작품을 냈지만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강렬하지 않고 부드러운 색감에 귀여운 그림이 처음 보는 것 같지 않고 익숙하다. 작은 일에도 큰 용기를 내야 하는 두더지의 마음과 행동을 친근하고 공감 가게 잘 표현해 놓았다.

토끼의 초대장을 보고 “이번엔 진짜 가야겠지?” 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두더지는 그동안 번번이 초대에 응하지 못한 것 같다. 가기로 결심한 두더지는 토끼가 좋아하는 슈크림을 열심히 만들어 포장한다. “다른 친구들도 좋아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드디어 길을 떠났다. 가는 길에 오락가락하는 마음이 이 책의 절반을 넘는다. 땅 밑에서 온갖 고민을 하며 가고 있는 두더지와 땅 위에서 각각 선물을 준비해 신나게 가고 있는 다른 동물들의 모습이 대비되는 장도 있다.

드디어 토끼 집앞에 도착했고 집안은 벌써 떠들썩하다. 두더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멈칫거린다. 그때, 똑같이 멈칫거리는 동물이 옆에 와 있었다. 스컹크였다. 눈치빠른 토끼가 어느새 나와 둘을 반갑게 맞지만, 둘은 선물만 주고 돌아선다. ‘둘이 친해지면 좋겠네’ 라고 생각하는 토끼는 외향인기만 한게 아니라 오지랖 백만평이구나. 오작교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도 세상에는 필요하다. 세상은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구나 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 피곤한 경우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토끼가 의도적으로 오작교를 놓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같은 캐릭터의 둘은 마음이 통했다. 다음 장면에서 둘은 스컹크네 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마도 이럴 때 둘은 수다쟁이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토끼한테 말한 ‘다음에’에는 서로가 믿는 구석이 되어 좀더 적극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로 말하자면 토끼와는 거리가 멀고 두더지에 가깝다. 요즘 mbti로 사람을 소개하는 데 거부감이 많긴 하지만 어쨌든 나도 간이검사를 해보았는데 I가 100퍼가 나온거야! 진짜 극극극내향인인 거지. 뭐 그래도 만날 사람들은 만나가면서 살긴 한다. 하지만 내가 앞장서서 사람들을 모으거나 어딘가에 머리 디밀고 들어간 적은 한번도 없구나 깨닫게 된다. 그러지 않았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이런 성격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라고 친구가 없진 않다. 나랑 똑같은 스컹크도 있는가 하면 반대인 토끼가 내 주변에 있기도 하다. 이렇게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모두가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

두더지의 ‘조금’ 용감한 하루라고 제목을 지었다. 오늘 두더지는 용기를 냈지만 엄청나게는 아니고 아주 ‘조금’의 시도를 했을 뿐이다. 난 그게 맘에 들었다. 사람이 180° 바뀌어야 하나? ‘조금’ 용기를 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한걸음에 박수를 크게 쳐줄 용의가 난 얼마든지 있다. 다만 부류로 무리짓고 혐오하지만 말았으면 한다. 거절했던 친구에게 초대장을 또다시 보내고, 돌아서는 친구를 흔쾌히 배웅한 토끼처럼 말이다. 쓰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고려해야 할 다양성에는 이런 면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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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음 지음, 장서영 그림 / 꿈터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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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게시판에서 이 책 제목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제목만 봐도 뭔얘기 하려는지 알 것 같아서?ㅎㅎ 하지만 <강남사장님>을 썼던 작가님의 능청이면 너무 뻔하지 않게 쓰셨을 것 같아 신청해봤다. 예상대로 꽤 재미있다. 2학년쯤이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 고학년에게도 시사점이 많아 읽을 만하겠다. 온라인서점의 분류로는 3,4학년용으로 되어있다. 분량이나 난이도 면에서는 적당하다. 하지만 유튜브로 대표되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인정 갈구'를 문제로 삼는다면 고학년에게 적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군신화를 가져와 이야기를 열고, 산속의 많은 동물들이 웅녀 할멈 도움으로 사람이 되었다는 설정을 하시다니 역시 능청의 스케일이 크다. 하지만 호랑이는 여전히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자존심이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으니.... 결국 호랑이도 굶주린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웅녀할멈을 찾아간다.

점집을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는 웅녀할멈의 건물은 지상 100층, 지하 100층이었다. 호랑이를 반갑게 맞은 웅녀할멈은 이런 점괘를 내놓았다.
"유튜브를 하거라."
실소가 터지는데, 왠지 흥미진진하고 기대도 된다. 이어지는 웅녀할멈의 말이 뼈를 때린다.
"사람이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스마트폰이 있어야 한다. 둘째, 아이디가 있어야 한다. 셋째, 유튜브에 좋아요 100만 개를 받아야 한다. 알겠느냐? 이것이 사람들에게 사람으로 인정받는 길이다. 사람들에게 사람으로 인정받으면 짐승이라도 사람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라도 짐승 취급을 받는 곳이 사람 사는 세상 이치니라."

이리하여 호랑이는 지하 100층의 구석방에서 유튜브를 시작한다. 좋아요 만개가 늘어날 때마다 한 층씩 상승하고 1층에 다다르면 인간이 된다! 어흥이라는 아이디로 먹방을 시작한 호랑이는 맛있는 걸 먹는 게 일인 그 생활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아울러 좋아요도 승승장구하는데.....

인기란 건, 사람들의 관심이란 건 물거품과 같은 것이어서 한순간에 꺼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오르락 내리락 여러 위기를 겪고 몸도 마음도 상해 가며 드디어 1층에 다다른 호랑이. 그런데 책이 거의 끝나 간다. 2권으로 이어지는 것. 호랑이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급한 마음에 대충 서명한 계약서(100쪽이나 된다) 어느 구석에 보니 계속 사람으로 살려면 좋아요 100만을 유지해야 한다니? 2권의 내용을 뻔히 알 것 같은 느낌이면서 역시 뻔하지 않을 것 같은 기대감이 동시에 든다.^^

<좋아요가 싫어요> 이 제목 또한 너무 뻔하면서도 그렇게 치부해버리기 어렵다. 나의 sns나 블로그는 조용한 편이지만 조용을 넘어 고요해져 버린다면 어떨까? 글이란 건(혹은 영상이든) 기본적으로 나만 보자고 쓰는 건 아니다. 소통의 욕망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폰을 열었을 때 빨간 숫자가 뜨면 일단 기분이 좋고 아무 반응이 없으면 내가 뭘 잘못 썼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 이게 지나쳐서 소통의 욕망을 넘어 인정의 욕망으로 들어가면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생겨난다. 2권에서는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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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x4의 세계 - 제2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41
조우리 지음, 노인경 그림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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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건 찐인데. 큰 게 왔다." 라는 작품을 가끔씩 만난다. 감수성이 떨어져서인지 그 주기가 갈수록 길어진다.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은 자주 접하지만 이렇게 감탄하는 일은 드물다. 오랜만에 가슴에 안는 작품을 만났다.

사실 이 책이 알라딘 메인에 떴을 때부터 사고 싶었다. 근데 슬픈 말이지만 난 지난 겨울 책정리를 일부 한 이후로 이제 책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도서관만 이용하기로.... (이로써 난 진정한 독자의 자격을 상실했다. 어쩔 수 없지 뭐.ㅠ) 그러다보니 이제서야 이 책이 내 차지가 됐다. 읽으면서 약간은 후회가 되었다. 사서 읽어도 좋았을걸....;;;;

이 책의 세계는 크지 않다. 오히려 매우 작다. 기껏해야 4×4의 천장 패널만 하루종일 봐야하는 좁고 지루한 병실이다. 거기에 가로(본명 제갈호)가 입원해 있다. 이름이 가로인 것도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다. 왜냐고? 가로는 세로를 만나기 때문이다. (본명 오새롬) 세로 또한 그 병원의 장기 입원자로 보인다. 두 아이가 만나는 방식, 그게 내겐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것 같다. 아프고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만나는 방식. 그게 재미있으면서도 눈물겹고 흥미로우면서도 애틋했다.

병원신세를 져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곳은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퇴원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곳이다. 평소 좋아하지 않았던 집이라도 애타게 그리워지게 만드는 곳. 나는 부모님 간병으로 잠깐씩 있어봤을 뿐인데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어린 장기 환자들과 그 아이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호야(가로)는 돈벌어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할아버지가 옆에 붙어있다. 옆 침대 누나는 엄마와 매일 싸우고, 간병인이 붙어있는 아이는 하루종일 목소리 한 번 들어보기 어렵다. 좁은 공간 안에서 저마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삭막한 공간 안의 이야기가 이렇게 노란색의 색조로 펼쳐졌다는 것이 작가님의 역량이라 생각한다. 노인경 작가님의 그림도 한몫한다. 보도블록 틈에서도 민들레가 피어나듯이, 좁고 괴로운 공간에 갇힌 아이들도 이렇게 노란빛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노란색 포스트잇을 사용해서.

그 매개가 책이었다는 점. 그중에서도 특히 <클로디아의 비밀>이었다는 점이 너무 반갑고 좋았다. 명작은 이렇게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20여년 전, 내가 동화를 다시 읽기 시작하던 때 기름을 부어줬던 바로 그 책! 어린이병동 복도 구석에 간이도서관이 생겼다. 애용하던 호야가 그 책에 꽂혀 여러 번 가져다 읽다가 어느날 구석에 그려진 누군가의 흔적, 작은 강아지 그림을 발견한다. 그 표시에 한참 머물렀던 호야는 그 옆에 자신의 표시를 남긴다. 가로세로 세 줄, 열 여섯칸이 되는 그림. 강아지 그림의 아이도 그걸 봤다. 그리고 단번에 알아챘다. 그때부터 두 아이는 <클로디아의 비밀>에 포스트잇을 붙여 도서관에 꽂아두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손가락질 몇번이면 지구상 어디든 톡이 가는 세상에, 같은 병동에 입원해 있으면서 이 아날로그적 소통이라니!! 하지만 이 소통은 너무 귀엽고, 예쁘면서도 신선하고 설렜다. 지루한 시간을 기대로 채워주는 마법. 그게 어떤 면에서는 생존전략이라 할지라도 아름다웠다. 나도 힘들었던 시기를 돌아보면 지금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몰입하곤 했었다. 그게 본능이라 해도 그렇게만 치부할 수 있을까? 더구나 자칫 절망만 남을 뻔한 이 어린이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의미와 기쁨을 찾는 이런 과정에서.

둘의 대면도 이루어진다. 병원 정원에서. 하지만 위기도 온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둘 다 아픈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가로는 근육병으로 걸을 가망이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고, 세로는 아마도 암병동에 있는 것 같다. 세로가 많이 아파 편지를 쓸 수 없을 때, 대필해준 세로 엄마의 편지에 가슴이 뭉클했다.

가로의 병이 낫진 않았지만(낫는 병이 아니니ㅠ) 생활적응을 위해 일단 집으로 오면서 둘은 기약없이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뚱뚱해진 <클로디아의 비밀> 책에서 떼어낸 포스트잇이 방의 벽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보면서 모든 것을 넘어설 것 같은 그들의 우정을 다시 느낀다. 이런 우정 요즘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없었다. 어린이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우정에 대해 무엇을 느낄까.

그들의 노란 포스트잇은 편지이기도 했고 제목인 4×4의 빙고판이기도 했다. 빙고판에 쓰여진 그들의 취향, 그리고 소망, 그리고 마음..... 내가 이 책을 꼽은 첫번째 이유다. 나는 어린이책을 읽고 나서 독후자료를 만드는 취미가 조금 있는데, 이 책은 그럴 생각이 바로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독자들 옆에 앉아 그들 마음의 파문을 지켜보는 걸로 충분할 것 같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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