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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느껴지는 책을 만나는 것은 보람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그런 책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 (어린이책 빼고는 대부분의 책이 그렇다고 할까^^;;;) 그래서 마음의 결심은 잘 지켜지지 못하고, 여전히 나는 무식자로 살아가고 있지. 하지만 인간이 무식자인 것은 당연하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달까. 세상엔 너무나 많은 지식이 있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으며 그것들은 또 얼마나 복합적이고 복잡하냐.... 이 책을 읽고 '오호 그랬단 말이지' 하지만 그것 또한 일면일 뿐이니... 하지만 이 책 속 어디선가의 표현대로 그 일면 일면을 알아가며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여’간다. 선명하게 본다는 것은 나로선 어불성설이다. 평생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벗어나지 못하겠지. 그래도 안 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 책은 심지어 꽤 재밌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떤 매체에 기고했던 원고들을 다듬어 출판한 책이다. 저자는 사회학자이다. 사회학자가 쓴 역사서. 사회학과 역사학은 그 관련이 높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책에서 다룬 근현대사는 더더욱. 이 책은 통사가 아니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대한 18가지 이야기로 되어있다. 관심이 가는 에피소드들부터 읽든가 골라 읽어도 별 상관은 없는 구성이다. 나는 이번 긴 연휴동안 생각날 때 두세편씩 읽었다. 어린이역사책 정도의 기본만 아는 내게 이 책의 이야기들은 본채에 가려진 뒤뜰에 무수히 떨어진 꽃잎들 같은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표제로 사용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가 가장 궁금한 꼭지이긴 했다. 나는 연식이 제법 되는 사람이라 그 영화를 봤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학교 단체 관람으로. (우리 학교는 대한극장, 단성사 등의 주류 영화관이 아닌 동네 변두리 영화관에서 가끔 그렇게 단체관람을 했었다) 철없던 내게 그 영화는 거의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심지어 줄거리마저도. 남은 것은 휘파람이 들려주던 그 유명한 멜로디 뿐. 콰이강이 어디에 있는 강인지도 잘 몰랐....;;; 그랬으니 그 장면에 실제로는 조선인이 끼어 있었을 거라는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그것도 포로 감시원으로.... 그걸 하고 싶어서 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악몽으로 기억되는 조선인... 그런 점이 슬프다.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엔 뭔가 슬프다. 인간은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일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될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의, 그리고 역사의 복잡함인 것 같다. 근본적 원인을 두고 그 말단의 사실에만 집착하면 안되지만 또 묵살해서도 안되는 이중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후퇴 앞에서 리샹난을 생각하다’ ‘카스바에서의 망향, 자기 연민의 서사를 넘어서기’ ‘식민지에도 스타는 탄생하는가’ 같은 꼭지에서는 그시대에도 대중문화가 있었구나 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되었다. 대중문화는 그 시대 서민들의 감정을 반영하며, 어느 시대에나 뛰어난 대중문화인(연예인)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그리고 고난의 시대에 그들의 삶도 파란만장할 수밖에 없었겠다. 파란만장한 삶이야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시대 자체가 그럴 때는 더더욱.
일제강점기에 매우 다양한 입장과 처신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결과론의 관점에서 봐서 그렇지 그당시에는 어떤 게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학자와 예술가, 전문직들도 자신의 능력을 어떤 식으로 쓰는게 옳은지 고민했고, 생각한 방법도 다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자기만 살려고 남을 등치거나 배반하지만 않았으면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압록강을 건넌 의사들’ 이라는 꼭지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독일 유학 갔다가 거기서 글을 쓰고 삶을 마친 이미륵 작가 이야기가 나오는데, <압록강은 흐른다>가 번역 작품인 것은 그런 이유였구나. 근데 나 그 책을 안 읽었어. 표지와 제목은 수없이 봤는데도...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내가 놓친 작품들을 읽을 동기가 생긴다.
‘사할린 한인, 나의 나라는 어디인가?’ 라는 꼭지는 얼마전 이금이 작가의 ‘슬픔의 틈새’를 읽어서 그런지 비교적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금이 작가님이 참 잘 쓰셨네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존인물을 다룬 이야기인 줄도 몰랐네. 그 ‘마리아’가 가족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고 그게 각색된 것이 뮤지컬과 영화인 줄은.... 나는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다 해도 스토리는 창작일거라 생각했는데 실화였다니. 그런데 실화는 정말 실화일까? 마리아의 입장에서 쓰여진 실화는 자녀들의 입장에선 매우 속상한 이야기였다고. 마리아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그들은 높은 수준의 음악가족이었으며 첫째 부인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이 꼭지는 이런 미묘한 가족사를 고발하려는 내용은 아니고, 그들의 아버지, 자식들을 군대식으로 훈육한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자상했다는 폰 트라프의 현역군인 시절 이야기다. 그가 공을 세운 공격들은 근대사의 비극들과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평생 침묵했으나 저자는 묻고자 한다. 이미 고인이 된 그에게라기보다는 우리들에게일 것이다. 역사의 비극에 개인의 책임은 없는가?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가 나오는 ‘레니 리펜슈탈, 무지한 아름다움은 무죄일까?’ 라는 꼭지에서도 저자는 무지의 책임을 말하고자 한다. 몰랐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없음을.... 문득 생각이 났는데, 지식, 정보의 습득이 예전보다 훨씬 쉬운 오늘날에는 이런 위험이 줄어들어야 맞는데 오히려 더더더더더더더 어려워졌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정보는 넘치는데 거짓정보도 같이 넘쳐. 얼마나 교묘한지 분간하기도 쉽지 않아. 그러니까 알고 싶은 대로 알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 지식은 그걸 합리화하는데 주로 써먹어. 후일에 누군가 나에게 그때 왜 그렇게 어리석었냐고 물으면 내가 할 말이 있을까. 근현대사도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아니 앞으로는 더할수도...ㅠ
저자는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이라는 표현으로 이 책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사람들, 잠시 알았지만 또 잊어버릴 그 이름들을 통해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과 고뇌를 조금 엿본 느낌도 들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나름대로 몸부림쳤다. 같은 뜻에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가기도 했다. 당신이 맞았는지는 모르겠고 중요하지 않고 그저 애쓰셨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느 세월에 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책을 읽고 또 다음에 읽을 책을 연결하고 하는 게 유튜브 보는 것보다는 낫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이 독서를 마무리한다. 몰랐던 게 많았고 따라서 생각할 것도 많아서 흥미로운 독서가 됐다. 짧은 호흡으로 한꼭지씩 읽는 다양한 소재의 재미있는 역사서를 찾는다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