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러너
임지형 지음 / 상상스퀘어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나왔을 때 마침 학교도서관에서 구입도서 신청을 받길래, 옳다구나 하고 교사용 도서로 신청했다. 그리고 나서 약간 후회를.... 도서관 구입 절차는 한 달이 넘게 걸린다. 이번주에야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받고 대출해와서 주말에 읽었다. 가독성은 최고였다. 300쪽이 넘지만 두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드라마 보듯이 편하게 읽으면 된다. 재미만 있다면 난 드라마보다도 책이 더 편하다. 아 그러고보니 이 책도 드라마로 나와도 괜찮겠다.

이 책을 쓰시는데 그런 전략을 쓰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에 전략이라면 정말 탁월하게 세운 전략이다. 일단 러닝이라는 소재. 요즘 이거 안하면 대화에 못 낄 정도로 열풍이다. 그만큼 효과가 보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 지금 사람들이 한창 신나있는 소재를 다룬 소설, 안 집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두번째는 30대, 미혼, 구직자라는 인물의 상황. 이건 같은 연령대를 당연히 끌어당길테고, 그 부모 세대 비슷한 나까지도 읽어보게 만들었다. 조금 앞두고 있거나 막 지나온 연령대도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말하자면 이 책에 끌릴 대상이 매우 폭넓다는 뜻이다.

지난 연휴때 하루 반짝 개었던 날에 난 안산 자락길을 걸으러 갔었다. 그 종착지가 바로 이 책에 자주 나오는 홍제폭포이고 그 하천이 바로 주인공 연희가 달리는 코스인 홍제천이다. 여기를 가봤던 건 이 독서를 위해 아주 좋은 일이었다. 가본 곳을 묘사하니 책이 훨씬 잘 넘어가고 실감났다. 폭포까페도, 거기서 고개를 약간 돌리면 보이는 물레방아도, 겨우 한 번 봤다고 반가운....ㅎㅎ 그러니 같은 홍제천 러너들에겐 엄청 사랑스러운 책이 되겠다.

작가님과 페친이어서 아는 바, 작가님 자신이 러닝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고 오랜 경험을 가진 분이다. 주인공의 연령대나 상황을 약간 바꾸었을 뿐 본인의 경험이 그대로 투입된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한다. 후반부에 가서 연희는 하프마라톤에까지 도전하게 되는데, 이또한 작가님의 경험이다. 연희는 시작이지만 작가님은 이미 그 단계를 지나 노련한 경력자라는 점이 다를 뿐.

지방대를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연희동'에 자리잡은 도연희가 화자이고 고교동창인 두 친구가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요즘 젊은 세대가 겪는 방황과 어려움의 표상이다. 그중 연희가 취업전선에서 가장 쓴맛을 많이 봤고 상처도 많다. 하지만 완전히 최악으로 끝나지 않는 것, 아무리 힘든 세대라 해도 희망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책의 소재 덕분이다. <연희동 러너> 이 제목은 작가님과 연희를 동시에 지칭한다.

소설이지만 꽤나 실용적인 효과도 있다. 러닝에 대한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잘 녹아있다. 또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한없이 침잠해 들어가던 연희의 초기 상황과 심리 묘사도 매우 공감이 갔고, 때문에 연희의 떨쳐 일어남을 함께 응원하는 마음이 되었다. 연희의 구직 과정의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는 참고가 됐다. (누군가들에게는 엄청난 공감이 되겠지) 우연히 만나 연희의 달리기를 돕는 지훈의 존재도, 살짝 피어나는 로맨스도 약간의 판타지 같지만 빠지면 아쉬운 필수요소라고 하겠다.^^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회사에서 맞닥뜨린 인간관계의 살벌함 또한 어떤 직장인이든 공감할 일이다. 그중 하팀장의 반전에도 공감한다. 드라마에서 많이 본 캐릭터 같아 기시감이 있으면서 애틋함도 생기는 캐릭터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쉽게 믿어버려도 안되지만 섣불리 혐오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다시 상기한다. 직장에서도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책은 몹시 건강하다. 달리기를 소재로 삼았으니 오죽하랴. 그런데 요즘은 어쩐지 건강한 이야기는 가벼운 이야기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간사의 비참함과 인간 본성의 끔찍함을 보여주어야 높게 쳐주는...? 물론 그런 작품도 귀하다. 하지만 이렇게 읽고나면 기분좋은 의욕이 솟아나는 책이 어찌 안 귀할소냐. 이런 책도 수많은 문학 중에서 한자리에 반드시 꽂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독립한 아들이 오랜만에 와서 밥 먹인 후 이 책을 손에 들려 보냈다.
"이거 도서관 책이야. 담주에 꼭 가져와!"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한다.ㅎ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절한 땅콩 호텔 - 제2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초승달문고 56
임고을 지음, 김규아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닭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고기오>라는 책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임고을 작가님이 문학동네초승달 문학상을 받으셨구나. <고기오....>가 신선하며 좀 난해(?)했다면 이 책은 훨씬 가볍고 경쾌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심오하다? 생각하기에 따라 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책들이다. 그런 책일수록 함께읽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생각한 것을 나눌 때 훨씬 풍성한 감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걸(약속이 있는걸) 부담스러워 하는 나는 안하겠지만.^^;;; 그래서 리뷰라도 써본다.

요즘 우리 2학년은 <인물>이라는 교과서를 배우는데,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을 소개하는 차시가 있었다. <참 고마운 인생수업>이라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같은 방식의 작은책 만들기 활동을 해보았다. 그중 아주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초롱이(이 아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에게서 처음에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고양이를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아니 이런 문장은 우리반 어린이들이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닌데?ㅎㅎㅎ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의외의 결과물이 나오는 법. 이걸 전체에 읽어주며 '순이는 고양이한테 처음엔 경계하는 것을 배웠군요. 그러다 믿음이 생기면 서로 사랑하는 것도요. 순이랑 초롱이처럼요."
그러자 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을 읽으며 순이랑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은 땅콩호텔의 직원인 '너츠'이다. 귀여운 생김새를 보고 어떤 동물인가 했더니 햄스터였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할 듯. 아이들은 귀여운 거라면 꺼뻑 넘어가니까.^^

땅콩섬의 유명한 관광지 땅콩산 국립공원이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그에 맞추어 땅콩호텔도 쉬기로 했다. 직원은 모두 너츠의 가족들이어서 들뜬 마음으로 세계여행을 떠나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너츠만 남았다. 손님들이 모두 빠졌지만 '왕땅콩방'에 있는 장기투숙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츠는 만족한다.
"가족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낼 생각에 가슴이 뛰었어요."
나랑 똑같은 캐릭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천지 돌아다니는 것보다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을 좋아하는 것이. 하지만 완벽히 혼자인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나같은 경우는 그렇다. 완벽한 단절은 두려워하면서 연결도 귀찮아한다. 얍삽한 건가, 이기적인 거겠지...ㅠㅠ

드디어 혼자 호텔을 맡은 날이 밝았다. 그동안 너츠는 불친절하다며 가족의 구박을 많이 받았다. 가족들은 못미더워 수첩을 남기고 떠났다. 일종의 매뉴얼. 나름 친절한 직원의 역할을 잘하려 애쓰던 중, 드디어 한번도 대면한 적 없던 왕땅콩방의 투숙객과 만나게 되었다. 두려움과 신비감이 공존하던 그 의문의 투숙객은 의외로 작은 개구리였다. 이름은 폴짝 씨라고 했다.

두 주인공의 만남이 참 새롭고 신선하다. 기시감이 전혀 없는 이야기다. 고객과 직원으로 만난 주인공들. 폴짝 씨는 오늘이 땅콩산에 갈 수 있는 마지막날인 걸 알고 등반을 서두르고, 넛츠에게 안내를 요청한다. 넛츠는 마지막이고 뭐고 간에 거기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으나 계약조건에 있는 내용이라 할 수 없이 동행한다. ‘천절함’을 절대 잃지 않으면서.

넛츠의 고객 응대 모습을 보면서 요즘 ‘영혼을 빼려고’ 노력하는 직장인들의 풍속도가 떠올랐다. 나의 직장도 예외는 아니다. 괜히 영혼을 넣어 응대했다가 공격으로 돌아오면 그 상처는 회복하기 힘들다. 아예 영혼을 빼면 그나마 상처는 받지 않으니까, 알맹이 빠진 껍데기에 친절함만 덕지덕지 묻히고 일을 한다. 그 일이 즐거울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내 안에 눌러놨던 영혼이 고개 들어 꿈틀거리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아니 내가 느낄 사이도 없이 저절로 그러고 있을 때가 있다. 그때는 매뉴얼이고 주의사항이고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일 뿐이다. 기름바른 장어처럼 미끈하게 빠지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처받으면 더 두꺼운 껍질을 쓰게 된다. 그 껍질에는 친절이라는 채색이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반 아이가 고양이에게 배웠다는 것처럼 어쩌면 ‘경계’는 필요할 것이다. 너무 열어놓은 사람도 나는 썩 편하진 않더라고.... 하지만 끝까지 닫힌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을 해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아니다. 그 과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도록 하자. 귀엽고 상큼하고 흐뭇하고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앤서
문경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경민 작가님의 책 중에서 비교적 덜 팔린 책인거 같은데, 서사의 힘은 어느 작품 못지않은 책이었다. 와 진짜 이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구나 생각했다. 작가의 말에 보니 작가님 또한 이런 욕심을 솔직히 고백한다.
“《앤서》는 서사 자체가 중요한 소설이다. 나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삶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도 아니다. 이야기 자체를 훌륭하게 만들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앤서》를 포기하지 않고 고치고 버리는 일을 반복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갈고 닦아왔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펼쳐보고 싶었던 욕망 때문이었다.”
수많은 원고를 버리고 다시 써서 다듬은 책이라는 말씀이었다. 자전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주변인이 겪은 일을 모티프로 한 작품도 아니고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 미래를 다룬 상상의 이야기였다. 스케일도 짜임새도 몰입감도 대단했다. 영화 느낌이 나는 책이기도 했다. 장면이 잘 상상되어서. 이상하지? 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장면인데 상상이 가. 당연히 본 적이 없다. 미래를 다룬 이야기니까.

아주 먼 미래는 아니고 수십년 후의 근미래를 다루고 있다. 근데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이라고 할까. 너무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세상이다. 개연성이 있는 상상이다. 왜냐면 지구는 급속도로 망가져가고 있고, 인간은 아름답지 못하니까. 그중에 애쓰는 사람도 없진 않다. 하지만 거악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구는 거의 멸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겨우 거주하고 있는 곳들을 셸터라고 부른다. 이들의 삶이란 생존이 전부다. 식량도 부족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것들은 도처에 있다. 선사시대 원시인의 삶이 이렇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원시인들을 무시하는 거겠지. 그들에게는 발전의 가능성과 미래가 있었으니까. 멸망의 공포 속에서 사는 것과는 다르지.

“이것은 유이와 킨의 이야기다.”
이렇게 책이 시작된다.
그들이 열여덟 살일 때, 우연히 만나 서로를 구해주었다. 아르굴이라는 생체병기가 번성하며 인간을 공격하는 세상에서 그것들 중에 고립되었을 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발안셀터의 사령관인 아버지 밑에서 군인으로 자라온 유이는 그순간 총을 들어 죽으려 했으나 킨이 나타나 살려주었다. 그에게는 아르굴이 덤비지 않는 유전자가 있는 듯했다. 알고보니 그는 마낙셀터의 유전자조작 인간이었다. 마낙셀터를 탈출한 그를 사령관이 위험을 무릅쓰고 거둬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생명을 빚졌다. 그리고 사랑했다.

생존이 왔다갔다 하는 판국에 사랑을 한다는 것. 말이 안되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며칠전 일제강점기 고난의 역사를 담은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더라. 어쩌면 더 열정적으로. 그러나 유이와 킨의 사랑은 1년 뿐이었다. 마낙셸터가 발안셸터를 공격해 사령관마저 죽이고 멸망시켰다. 의문의 이유로 마낙셸터도 멸망했다. 유이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지금은 앤서(동아시아 국가 연합 셸터)라는 곳에 와 있다. 이전 셸터들 보다는 그나마 살만한 곳이었다. 유이는 이곳에서 말하자면 난민 같은 신분이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갈고닦은 여러 가지 능력들이 앤서에 도움이 되었고 정식 주민의 자격을 얻게 됐다. 그러면서 또 18년이 흘러 30대 후반의 나이가 됐다. 킨은 그때의 난리통에 생사도 알 수 없이 헤어졌다.

그러던 킨이 나타났다! 온라인으로. 앤서의 포털에 그가 쓴 ‘킨의 일기’가 올라왔다. 발안셸터가 멸망하던 당시의 이야기가 현장감있게 상세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서술되어 있었다. 다만 유이는 도려낸 듯 등장하지 않았다. 앤서는 연일 그 연재물로 들끓고, 유이의 마음은 복잡하게 요동친다.

연재를 마친 킨은 드디어 동영상으로 실물을 드러냈다. 18년 만에 보는 킨이 유이는 낯설다. 외모 뿐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의 그 킨이 아닌 것 같다. 무엇이 그를 저렇게 다른 사람이 되게 했을까. 그는 동영상을 통해 드디어 목적과 본심을 드러냈다. 그의 칼끝은 앤서의 대통령 파비언을 향하고 있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사회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살겠다고 모인 곳은 또다른 지옥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유이가 이 책을 이끌어간다. 하나하나 진실이 열릴 때마다 충격이고 반전이다. 작가님의 스토리 능력에 놀라게 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유이는 킨을 만날 수 있을까. 킨의 실체는 무엇일까. 둘은 다시 진심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까. 셀터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인간이 망친 지구와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무엇이 남아있을까.

작가는 그래도 완전한 멸망을 그려내지 않았고, 유이는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난다. 말하자면 열린 결말이다. 짧은 문장 하나가 작가의 메시지인가 싶게 눈에 띄었다.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삶을 찾고 싶었다.” (303쪽)
마지막을 향해서 간다는 점에서는 원시인이나 우리나 이 책의 사람들이나 같지 않을까. 어떤 시대에서나 어떻게 살지는 본인만의 선택이다.

이 책을 읽은 날이 하필 긴 연휴의 끝이어서 나는 조금 우울하고 두려웠나 보다. 나는 그래도 참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어.... 하지만 스멀스멀 불안은 다가온다. 정확한 실체가 없는 그것은 인간이 당연히 가는 마땅한 그 길마저도 불안으로 채색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이러고 있는 것이 맞는지 두렵게 한다.

군인 출신인 유이가 다치고 내던져지면서도 결단하고 실행하고 하는 모습들이 멋있었다. (드라마로 만든다면 엄청 멋있는 캐릭터가 될 듯) 주변에서 폭탄이 터져도 시체가 즐비해도 목숨이 붙어있으면 사는 거다. 유이는 그 끈질긴 생명력의 표상 같았다. 이상적인 캐릭터인 건 맞다. 하지만 유이도 인간이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몇 페이지를 더 쓴다면 거기엔 유이의 끝이 나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그렇다. 그런 오늘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작가님은 항상 작가의 말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시던데, 이번 책에서도 쉽지 않은 자신의 상황을 살짝 언급하셨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을 잘 살고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내일을 모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정도이지 않을까. 내 손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빌려주면서.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면 잡으면서. 이 책이 그리는 미래는 절대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유이의 모습은 마음 속에 남겨두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느껴지는 책을 만나는 것은 보람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그런 책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 (어린이책 빼고는 대부분의 책이 그렇다고 할까^^;;;) 그래서 마음의 결심은 잘 지켜지지 못하고, 여전히 나는 무식자로 살아가고 있지. 하지만 인간이 무식자인 것은 당연하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달까. 세상엔 너무나 많은 지식이 있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으며 그것들은 또 얼마나 복합적이고 복잡하냐.... 이 책을 읽고 '오호 그랬단 말이지' 하지만 그것 또한 일면일 뿐이니... 하지만 이 책 속 어디선가의 표현대로 그 일면 일면을 알아가며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여’간다. 선명하게 본다는 것은 나로선 어불성설이다. 평생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벗어나지 못하겠지. 그래도 안 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 책은 심지어 꽤 재밌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떤 매체에 기고했던 원고들을 다듬어 출판한 책이다. 저자는 사회학자이다. 사회학자가 쓴 역사서. 사회학과 역사학은 그 관련이 높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책에서 다룬 근현대사는 더더욱. 이 책은 통사가 아니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대한 18가지 이야기로 되어있다. 관심이 가는 에피소드들부터 읽든가 골라 읽어도 별 상관은 없는 구성이다. 나는 이번 긴 연휴동안 생각날 때 두세편씩 읽었다. 어린이역사책 정도의 기본만 아는 내게 이 책의 이야기들은 본채에 가려진 뒤뜰에 무수히 떨어진 꽃잎들 같은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표제로 사용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가 가장 궁금한 꼭지이긴 했다. 나는 연식이 제법 되는 사람이라 그 영화를 봤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학교 단체 관람으로. (우리 학교는 대한극장, 단성사 등의 주류 영화관이 아닌 동네 변두리 영화관에서 가끔 그렇게 단체관람을 했었다) 철없던 내게 그 영화는 거의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심지어 줄거리마저도. 남은 것은 휘파람이 들려주던 그 유명한 멜로디 뿐. 콰이강이 어디에 있는 강인지도 잘 몰랐....;;; 그랬으니 그 장면에 실제로는 조선인이 끼어 있었을 거라는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그것도 포로 감시원으로.... 그걸 하고 싶어서 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악몽으로 기억되는 조선인... 그런 점이 슬프다.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엔 뭔가 슬프다. 인간은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일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될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의, 그리고 역사의 복잡함인 것 같다. 근본적 원인을 두고 그 말단의 사실에만 집착하면 안되지만 또 묵살해서도 안되는 이중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후퇴 앞에서 리샹난을 생각하다’ ‘카스바에서의 망향, 자기 연민의 서사를 넘어서기’ ‘식민지에도 스타는 탄생하는가’ 같은 꼭지에서는 그시대에도 대중문화가 있었구나 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되었다. 대중문화는 그 시대 서민들의 감정을 반영하며, 어느 시대에나 뛰어난 대중문화인(연예인)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그리고 고난의 시대에 그들의 삶도 파란만장할 수밖에 없었겠다. 파란만장한 삶이야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시대 자체가 그럴 때는 더더욱.

일제강점기에 매우 다양한 입장과 처신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결과론의 관점에서 봐서 그렇지 그당시에는 어떤 게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학자와 예술가, 전문직들도 자신의 능력을 어떤 식으로 쓰는게 옳은지 고민했고, 생각한 방법도 다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자기만 살려고 남을 등치거나 배반하지만 않았으면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압록강을 건넌 의사들’ 이라는 꼭지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독일 유학 갔다가 거기서 글을 쓰고 삶을 마친 이미륵 작가 이야기가 나오는데, <압록강은 흐른다>가 번역 작품인 것은 그런 이유였구나. 근데 나 그 책을 안 읽었어. 표지와 제목은 수없이 봤는데도...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내가 놓친 작품들을 읽을 동기가 생긴다.

‘사할린 한인, 나의 나라는 어디인가?’ 라는 꼭지는 얼마전 이금이 작가의 ‘슬픔의 틈새’를 읽어서 그런지 비교적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금이 작가님이 참 잘 쓰셨네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존인물을 다룬 이야기인 줄도 몰랐네. 그 ‘마리아’가 가족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고 그게 각색된 것이 뮤지컬과 영화인 줄은.... 나는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다 해도 스토리는 창작일거라 생각했는데 실화였다니. 그런데 실화는 정말 실화일까? 마리아의 입장에서 쓰여진 실화는 자녀들의 입장에선 매우 속상한 이야기였다고. 마리아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그들은 높은 수준의 음악가족이었으며 첫째 부인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이 꼭지는 이런 미묘한 가족사를 고발하려는 내용은 아니고, 그들의 아버지, 자식들을 군대식으로 훈육한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자상했다는 폰 트라프의 현역군인 시절 이야기다. 그가 공을 세운 공격들은 근대사의 비극들과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평생 침묵했으나 저자는 묻고자 한다. 이미 고인이 된 그에게라기보다는 우리들에게일 것이다. 역사의 비극에 개인의 책임은 없는가?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가 나오는 ‘레니 리펜슈탈, 무지한 아름다움은 무죄일까?’ 라는 꼭지에서도 저자는 무지의 책임을 말하고자 한다. 몰랐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없음을.... 문득 생각이 났는데, 지식, 정보의 습득이 예전보다 훨씬 쉬운 오늘날에는 이런 위험이 줄어들어야 맞는데 오히려 더더더더더더더 어려워졌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정보는 넘치는데 거짓정보도 같이 넘쳐. 얼마나 교묘한지 분간하기도 쉽지 않아. 그러니까 알고 싶은 대로 알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 지식은 그걸 합리화하는데 주로 써먹어. 후일에 누군가 나에게 그때 왜 그렇게 어리석었냐고 물으면 내가 할 말이 있을까. 근현대사도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아니 앞으로는 더할수도...ㅠ

저자는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이라는 표현으로 이 책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사람들, 잠시 알았지만 또 잊어버릴 그 이름들을 통해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과 고뇌를 조금 엿본 느낌도 들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나름대로 몸부림쳤다. 같은 뜻에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가기도 했다. 당신이 맞았는지는 모르겠고 중요하지 않고 그저 애쓰셨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느 세월에 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책을 읽고 또 다음에 읽을 책을 연결하고 하는 게 유튜브 보는 것보다는 낫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이 독서를 마무리한다. 몰랐던 게 많았고 따라서 생각할 것도 많아서 흥미로운 독서가 됐다. 짧은 호흡으로 한꼭지씩 읽는 다양한 소재의 재미있는 역사서를 찾는다면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 - 2025 뉴베리 대상 수상작 큰곰자리 고학년 5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고정아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임슬립 소재의 SF를 보면서 뭔가 거슬리지 않은 적은 처음인거 같다. 왠지 그런게 나오면 나는 몰입이 안되더란 말이야.... 내가 뭐 아는게 많아서 논리를 따져서 그런게 아니고 그냥 왠지 그렇더라.... 근데 왜 이 책에선 아무것도 거슬리지 않았을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어서 였을까.

마이클을 비롯한 이 책의 인물들은 1999년을 살아가고 있다. 미래에서 온 리지는 2199년에서 왔다. 200년을 뛰어넘은 시간여행이 이뤄졌으며 독자들은 그 사이(앞시간 쪽에 훨씬 가까운)에서 살아가고 있다.

1999년을 배경으로 선택한 작가의 의도가 탁월한 것 같다. 근데 그 시기 한참 젊은 날을 살았던 내게는 부끄럽게도 그때의 기억이 별로 없다. 육아와 직장생활, 잦은 이사 등으로 그저 눈앞의 것에만 급급해서 살아서였나. 이제 와서 y2k 같은 것을 찾아보니 아 맞다, 그랬었지 하고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게 다행이었던 게 아닐까. 작가가 이 시기를 선택한 것은 마이클의 불안한 내면과 관련이 있다. 12살(미국 학제로는 중학생)인 마이클은 이제 몇 달 남은 밀레니엄을 불안해하며 마트에서 통조림을 슬쩍하여 방에 쌓아두는 습관이 생겼다. 양심의 가책은 불안감을 한층 증폭시키지만 행위를 멈추지는 못한다.

마이클 주변의 인물들 + 미래에서 온 여행자 1명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다.
마이클의 엄마 : 닥치는 대로 일하며 혼자서 마이클을 키우지만 벌이가 신통치 못하다. 얼마 전 마이클이 아팠을 때 결근한 일로 해고된 뒤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 앞에서는 늘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려 애쓴다.
기비 : 이웃의 고등학생. 시간제로 마이클의 돌보미 일을 한다. 얘네 아빠가 바로 엄마를 해고한 사람인데 비록 푼돈이긴 해도 엄마한테 고용되었다는 설정이 우습지만, 받은 돈 이상으로 마이클에게 정성을 다한다. 이웃이자 친구이자 마이클이 남몰래 좋아하는 첫사랑?이기도 하다.
모슬리 : 아파트 관리인 아저씨. 단순한 주변인인 줄 알았는데 중요한 인물이었다. 느닷없이 감정의 파도와 감동을 몰고 오는 인물.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지만 사실상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은, 내 가까운 사람이거나 혹은 나일 수도 있는 캐릭터를 그려낸 게 아닌가 싶다.
리지 : 200년 뒤 세상에서 온 소년. 기비와 같은 나이고 엄마가 과학자. 형제들과 함께 엄마 연구실의 학생이다. (미래의 학교, 가정의 모습을 슬쩍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정도 단면으로는 전체적인 파악은 어렵게... 슬쩍만 보여주는 느낌) 엄마 세이비오 박사가 바로 시간여행 기기(공간 텔레포트) 연구자. 4명의 아들들은 모두 연구소의 천재적 학생들. 하지만 형제들끼리 힐난하고 투닥거리는 건 지금 시대와 똑같음. 그러던 중 리지가 충동적으로 기계조작을 하고 마이클의 시대로 건너옴.

이렇게 된 이야기다. 1999와 2199년이 교차 구성되며 2199 부분은 약간 회색 종이로 구분되어 있는데, 서술이 완전 달라 작가의 센스가 느껴지고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영화로 잘 만들면 무척 재미있겠다.

그러잖아도 y2k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마이클에게 리지의 등장은 큰 기회이다. 더구나 그가 가져온 ‘요약서’라는 책. 그건 말하자면 2199년 시점에서의 역사책이다. 그걸 볼 수만 있다면.... 하지만 리지는 절대 보여주지도 말해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범위에서 최소한의 행동만 하고 돌아간.... 그랬기에 패러독스가 덜 느껴졌던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초점이 ‘지금 여기’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건 제목에서부터 느껴진다. 그 제목이 본문 여러 군데에 나온다.

‘The first state of being’
이 제목을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로 번역했다. 고심한 제목이라고 느껴지지만 굳이 의역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문에서는 ‘존재의 첫 번째 순간’이라고 번역했다. 이런 식이다.
『“있잖아.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해.”
“존재의 첫 번째 순간. 우리 엄마가 ‘현재’를 가리키는 말이야. 차를 타고 달리는 지금 이 순간.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 여기는? 이건 첫 번째 순간이야. 가장 중요한 순간, 모든 게 의미있는 순간. 그래서 나는 내가 미래에 벌여 놓은 혼란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미래, 그건 제3의 순간이야. 미래는 돌아간 다음에 걱정할 거야. 당장은 그냥 지금 여기에 있고 싶어. 너희랑 형편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156~157쪽)
『“그런 건 제3의 순간에 대한 생각이야.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는 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지금을 살아야 해. 그게 첫 번째 순간이야.”
“첫 번째 순간.”
마이클이 웅얼거리자 리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 이곳이 우리 인생 최고의 장소야.”』 (193쪽)

‘존재의 첫 번째 순간’이라는 멋진 말을 해주었다고 해서 리지가 미래에서 온 선지자 같은 존재는 전혀 아니다. 사고를 쳐 스스로도 당황하며 복귀를 시도하는 청소년일 뿐이다. 그건 이쪽과 저쪽 모두의 노력이 필요했는데 그 순조롭지 않은 과정이 독자들의 긴장감을 높인다. 더구나 이시대의 면역을 갖지 못한 리지가 감기에 걸려 아프게 되었을 때는 특히.

사소한 부분도 놓치면 아까울 정도로 잘 짜여진 이 책에서 가장 편하게 웃음지었던 대목은 리지가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쇼핑몰’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이것저것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 하지만 그 장면들에 특히 작가는 많은 메시지를 넣어 놓았다. 이 책은 두 번 정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독서에서 100% 캐치하기는 어려우니까. 내가 바로 그러한데, 다시 처음부터 읽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정도는 되어야 뉴베리 대상을 받는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받은 작가라니! ‘안녕 우주’를 안 읽은 것을 후회하며 다음 도서관 방문 때 찾아봐야겠다.

번역이 꽤 까다로운 책이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리지가 200년 전 유행어랍시고 배워 온 어설픈 은어나 줄임말들도 다 우리말식으로 바꿔야 했고, 그렇게 눈에 띄는 작업보다도 더 어려운 세밀한 부분들이 많았을 것 같아서. 느낌의 차이를 살려야 할 부분도 많았을 것 같고.

스포가 되겠지만 누구나 생각하는 결말이라 얘기하자면 리지는 결국 무사히 돌아갔고, 현재에는 현재의 사람들만 남았다. 그 ‘요약서’의 행방이 아주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것만은 스포 금지.^^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래를 안다는 것과 미래를 준비(대비)한다는 것은 다르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미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미래는 현재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뿐이다. 번역 제목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구석구석 아주 다양한 메시지가 결국 큰 메시지로 통합되는 책. 그래서 지금 당장 작은 한 발이라도 떼게 되는 책. 그런 책에 큰 점수를 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길게 썼는데도 아직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네.... 그래도 이제 그만 쓰고 명절연휴를 즐기러(테레비 보러?) 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