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먹는 법 보름달문고 104
송미경 지음, 히히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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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느낌이다 했는데 익숙을 넘어 이미 읽어본 작품들이 들어있었다. 송미경 작가님의 초기 작품인 <어떤 아이가>가 절판되고 그중 3편은 이 책에, 2편은 또다른 한권에 실려 새로운 모양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그 두 책은 작가님의 초기작과 최근작의 결합이라고 하겠다.

읽어본 작품이지만 리뷰를 써놓지 않아서인지 10여년의 세월이 기억을 거의 지워버려서 어렴풋하게만 기억이 났다. 그중 가장 선명한 기억은 제일 앞에 실린 [어떤 아이가]이다. 그때도 좀 놀라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에 대한 관심 없이 그저 '동거'만 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서늘하게 보여준다고 느꼈는데, 그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이렇게 새롭고 특이하다고? 지금 봐도 특이하다. 하지만 이런 가족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그런 집들을 찾아 살고 있는 '어떤 아이'를 상상해본다. '어떤 아이'는 착하고, 집에 몰래 사는 대신 가족을 위해 필요한 소소한 일들을 나름 하려고 노력한다. 그동안 그 가족이 갈등 없이 살았다면 이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 문재랑 형 정재처럼 뒤늦게라도 깨닫고 서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른동생]은 웃음이 나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들은 외피와는 다른 고유의 나이를 갖고 있다는 설정이 웃기면서도 일면 공감이 가고 한편 섬뜩하기도 하다. 평생 철이 안 드는 것 같은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도 되고 애늙은이 그애가 생각나기도 하고. 나는 어떨까 싶기도 하고.

[없는 나]는 그 '없는 나'가 화자인 이야기다. 상황을 보면 그 아이는 축복받지 못한 생명이었고 외할머니는 딸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지우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고 출산을 했다. 하지만 '없는 나'가 태어난 것이다. 상상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구체적 묘사나 설명은 없다. 엄마는 아기용품을 샀고 아기 이름을 붙여 불렀고, 젖을 물리고 자장가를 불렀다. 정신병원에 데려가려는 가족을 피해 낯선 동네에 자리를 잡고 엄마와 '없는 나'는 꽤 긴 시간을 함께 살았다.

아이의 영혼이 엄마를 떠나 가야할 곳으로 가기까지 둘은 그저 사랑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 사랑의 표현이 얼마나 조용하고 따뜻하며 지극한지 눈물이 날 정도다. 떠나는 장면도 그렇다. 이런 사랑도 있을까.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겠기도, 조금 상상이 가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이것은 왜 동화일까 생각했다. 이럴 때 언제나 내 결론은 동화는 어린이들만 읽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 그들은 또 그들의 방식으로 감상하니, 각자 알아서 감상하면 된다는 것....

나머지 세 작품은 최근작인 것 같다. 표제작인 [오렌지 먹는 법]에서는 예서의 고모가 온다. 미국에 간지 오래돼서 처음 보는 고모다. 고모라면 할머니의 딸인데, 할머니는 놀라기만 할 뿐 반기지 않는다. 사실 두 사람은 큰 화해가 필요했던 거였다.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고모, 오랜 세월이 지나 아기를 안고 화해를 하러 온 고모. 화해는 잘 되었을까? 고모는 과일바구니를 사왔고, 예서네가 오렌지를 까먹는 과정을 작가님은 필요이상(?)으로 상세하게 묘사했다. 바로 그거였구나. 화해랑 닮은 것이. 오렌지 먹는 법은 그러니까 '화해를 하는 법'인 거구나. 껍질과 과육이 밀착되어 쭉쭉 까지지 않는다. 손에 묻기도 하고 얼굴에 튀기도 한다. 하지만 버릴 순 없잖아. 까고 나면 맛있잖아. 오렌지가 주는 메시지는 오렌지 만큼이나 상큼하네.

[나는 진짜 마술사가 아니니까]의 노고는 아빠, 형과 함께 유랑 마술단의 일원으로 낯선 마을을 떠돌며 마술쇼를 한다. 그의 앞에 '동생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해달라'는 남매가 나타난다. 이들의 운명의 공통점. 그리고 연대. 뭔가 환상적이면서 애틋한 송미경 특유의 느낌이 여기에도 있었다. 인상적이면서 내게 해석은 가장 어려운 작품이었다.

마지막 수록 작품 [사람 만들기]의 공간은 교실이다. 화자인 지수가 결석 후 이른 등교를 했을 때 교실 안엔 전날 했던 미술수업의 결과물인 찰흙작품들이 놓여있었다. 그 점토들이 생명력을 얻듯 살아나 지수와 또 한 아이와 함께 빗속을 달리는데 그 장면의 생동감이 대단하다. 그 사이에 아이들의 행동이나 작품의 소재들에서 작가의 메시지와 상징들이 짐작되기도 한다. (물론 해석은 독자의 자유다) 감쪽같이 돌아온 현실에서 지수는 은숨이한테 할말을 했고, 관계회복이 된 장면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난다. 찰흙은 내가 선생을 하며 수없이 사용해 본 재료인데, 그걸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역시 작가는 다르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초기작과 최근작이 나란히 놓인 이 책에서 송미경 작품의 변화라든가 이런걸 논할 눈은 내게 없는 것 같다. 여전한 느낌을 말할 수는 있으려나. 작가님은 어렸을 때 매우 느린 아이였다고 작가의말에서 본인이 말하고 있다. 보통의 아이들에게 작동하는 기능이 약간 늦게 작동하는 동안, 대신 대단한 무엇이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건 이야기의 씨앗과 그 느낌을 품은 일이다. 그 작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울거나 웃거나 혹 외로웠을까. 이런 책들을 읽으며 어른들이 아이의 마음을 조심스레 들여다봤으면 한다. 남아있다면 말이다. 남아있겠지?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재미와 공감의 지점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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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 - 원샷한솔 가족 이야기
김한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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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씨의 첫번째 책을 읽고나니 자연스럽게 두번째 책으로 손이 뻗어갔다. '천재견 토리' 쇼츠를 우연히 보고 한솔씨를 알게 되었는데 첫번째 책에는 토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첫번째 책도 한달음에 읽었지만 토리가 나오는 책은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토리가 전문가에게 도우미 훈련을 특별히 받고 한솔씨한테 보내졌을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토리가 가족이 된 과정은 일반 가정 입양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솔씨는 한참 고민했다. 내가 강아지를 데려오는 게 맞는건지.... 하지만 결단한 후에는 특유의 완벽주의로 하나하나 준비하고 해결해 나갔다. 필요한 도움이 있으면 요청하고 배우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설채현 수의사님의 도움도 그래서 받을 수 있었다.

훈련에 도움을 받았지만 반복과 숙달은 한솔 씨의 몫이었다. 그의 집요함과 인내심은 정말 닮고싶은 장점이다. 그렇게 해서 토리는 천재견으로 나같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시력을 잃은 후 한솔씨는 수많은 도전을 했지만 토리와 함께 한 도전은 더욱 특별했다. 특히 장애물경기(어질리티 대회) 출전이 그랬다. 결과만 보면 환호가 나오지만 과정까지 보면 눈물+감탄이 함께 나온다. 도전과, 그에 걸맞는 노력과 인내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한솔씨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주로 이렇게 해서 나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첫책보다 더 많이 감정에 자극을 받는 나를 느꼈다. 첫 책이 다큐라면 이 책은 감성 영화라고 할까. 첫장에 가슴이 무너졌다. (다행히 뒤로갈수록 힘이 붙고 유쾌해졌지만) 첫장이 생모에 대한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적인 표현들도 많아서 더 감정이 요동했다.
"첫번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무렇게나 잘라낸 필름 조각 같다. 애써 기억을 더듬으면 단편적인 장면과 냄새, 표정들이 맞춰지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얽히고설켜 둥둥 떠다닌다. 밤늦도록 술을 따르던 얼굴, 어딘가 울적해 보이는 미소, 새벽에 홀연히 사라진 빈 방, '해바라기' 멜로디... 이 모두를 나는 끝 모를 외로움의 장면들로 기억한다." (17쪽)
이제 한솔씨는 '보호자이기엔 외로웠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상처를 이해하지만, 난 그중 누구도 한솔이만큼 외롭진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첫장의 제목은 011로 시작되는 옛날 전화번호이다. 한솔이가 아버지 눈을 피해 수없이 공중전화를 걸었기에 20년이 넘게 지났어도 뇌리에 남아있는 번호.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 컬러링이 '해바라기'였다니. 여기서 눈물이 안날 수 없었던 거다. 나도 한때 그 노래를 좋아했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세상의 말 다 지우니
그말 하나 남네요. 늦었지만."
어린 한솔이가 울면서 그 노래를 수없이 반복해 듣다가 결국 포기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 화면 가득 웃고있는 한솔씨의 얼굴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기적인 것만 같다. 아빠 또한 내 기준으론 참 상대하기 어려운 성품이었다. 그래도 한솔씨가 그들을 다 이해하고 지금 행복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니. 인간의 신경줄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재질부터 강철재질까지 천차만별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좋은 마음을 먹고 스스로를 단련한 한솔 씨가 고맙다.

다정한 부모를 만나지 못한 그에게 다정한 큰엄마 가정에 들어가는 복이 주어졌다. 거기에서 한솔이는 비로소 평안을 맛보았는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두분의 말과 반응은 언제나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 삶이 무난하다는 감각. 예측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같은 상황에서 같은 느낌을 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그들이 주는 사랑을 비로소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였다." (72쪽)
부모들이 한번쯤 돌아봐야 할 말이다. 아이들을 안정되게 키운다는 것, 그건 거창함보다는 오히려 무난함에 있다는 것.
다음 말도 중요하다. 어떤 교수님들의 말씀보다 더 울림이 있다.
"자존감이 무너진 아이를 구하는 데 대단히 거창한 힘과 사건은 필요하지 않다. '1박2일'과 사또통닭, 같이 나무를 사러 가고 웃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평범한 시간들이, 그 시기의 아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라고 나는 확신한다." (72쪽)

이 책은 총 4부, 각 부의 말미에 편지가 한장씩 들어있다. 1장에선 혹시 지나간 엄마 아빠에게 썼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니어서 난 좋았다) 8살의 한솔이에게 썼다. 그렇게 어린 한솔이는 고개를 들었다.
2부에선 큰엄마 큰아빠께 썼다.
"그 이름 안에서,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3부에선 토리에게 썼고, 4부에선 '언젠가 만날 나의 아이에게' 썼다. 이 책을 읽어보니 한솔씨는 우리 큰애보다 한두살 많은 것 같다. 한창 주변에서 결혼하거나 자녀를 낳을 나이다. 그러니 한솔씨도 당연히 가정을 꿈꿀 것이다. 참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서, 빨리 좋은 사람과 함께했으면 하는 엄마마음이 생기네...^^;;;;

하지만 한솔씨는 여전히 조급하지 않게 미완성의 바탕 위에서 한걸음 나아가며 살아갈 것이다.
"가족을 꿈꾸며 품어온 수많은 번뇌와 슬픔, 그 끝에 찾은 나름의 결론들이 나를 여기 이 자리에 데려왔다.... (중략).... 겁 없이 다음을 기대하는 지금이 좋다. 내가 찾은 정답들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고민들 사이에서, 앞으로도 나는 계속 사랑하고 넘어지고 자라고 웃을 것이다." (221~222쪽)

전작을 장애 극복기로 용기와 긍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면, 이 책은 부모들이나 예비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다.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함부로 덤빌 일이 절대 아니며 그렇다고 거창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시작했으면 한다. 한솔이는 아픔 끝에 단단히 서게 되었지만 그 아픔을 어린 누군가가 다시 겪는 일은 한솔씨도 말리고 싶은 일일 테니까.

마지막으로 세상 귀엽고 똘똘한 토리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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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라는 우주 - 찬란하고 아름다운 날들의 기록
오선화 지음 / 이상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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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동네도서관에 신청했다. 연초여서 그런지 오래 걸려 책이 구입됐다는 연락이 왔다. 올해부터 책을 도서관에 의지하겠다고 결심한 터라 신중하게 책을 신청한다. (월 2권 제한이 있기 땜시) 근데 첫 신청이 이 책이었다니. 퇴직하고 이제 선생님 호칭에서 벗어나 학교 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참인데. 더구나 청소년은 나의 대상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거고,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그런 존재였는데. 난 무엇이 궁금해 이 책을 신청했을까.

페친도 아닌데 페북에서 작가님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런 일을 하는 작가님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 일이란 자칭 '청소년과 밥 먹는 사람' 이다. 상담사는 많지만 이렇게 삶에 뛰어드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선긋기를 잘하는 나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혼자만의 시간이나 공간을 침범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작가님이 정해놓은 '새벽 2시'라는 시간제한이 너무 끔찍하다. 제한은 정해놓기만 했을 뿐 그 제한을 뛰어넘는 연락이나 돌발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통잠 자는 생활'이 그립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작가님. '통잠'하면 수유 기간이 떠오른다. 아기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깨어 도무지 깊이 잘 수 없었던 그때. 통잠자는 게 소원이던 그때. 그게 인생 전체로 봤을 땐 길지 않았고 끝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런데 작가님은 '끝이 없는 수유 기간' 속에서 살고 계신 것 아닌가. 그런 마음이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궁금했다.

나에게 청소년의 이미지는 첫번째로 '시끄럽고 욕 잘하는 미성숙한 인간들' 이다. 어쩌다 중고등 하교시간에 같이 버스를 타게 되면 귀를 막고 싶고 내리고 싶다. 두번째는 '힘들고 불쌍한 아이들' 이다. 주로 부모들 때문이다. 요즘 부모들은 중간이 잘 없다. 자신들의 욕심과 고정관념으로 자녀들을 숨 못쉬게 압박하는 부류. 반대로 최소한의 필요한 관심과 돌봄마저도 나몰라라 하고 방치하는 부류. 그 사이 적정선을 지키는 경우를 별로 못본 것 같다. 극단적인 경우겠지만 부부상담을 받는 TV 프로그램 등을 보면 '저 틈바구니에서 자녀가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겠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전자의 이미지로 그들 옆에 다가가지 않는다면 작가님은 후자의 이미지로 그들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만나고 밥을 사준다. 방치하는 부모를 대신해 사고처리를 하러 동동거리며 쫓아다니기도 한다. 부모가 사랑의 울타리이긴 커녕 학대의 칼인 아이들에게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대신 주기도 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 대사는 이제는 나이들고 평범해진 이서진 배우의 빛났던 매력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다. 작가님이 자청한 삶이기도 하다. 같이 울고 애통해야 하고 때론 가슴을 부여잡고 불안과 조바심을 견뎌야하는, 필히 아플 수밖에 없는 그 삶을 작가님은 기쁨과 선물이 있기에 계속 걸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죽겠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옥상에 올라가는 아이들이 이젠 살아가겠다고 약속할 때, 그 지옥같던 고통의 터널을 같이 건너준 아이들이 월급을 탔다며 후배들의 밥값을 보내왔을 때, 이젠 편안해진 미소와 사랑의 말을 전해줄 때, 그건 중독성이 있나보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또 다른 청소년을 만나러 간다.

나는 작가님이 나랑은 아주 다른 마음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쁘지 않은 아이들을 보고 예쁘다고 허허거리고,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믿으며 애타는 사랑만을 전하는 사람. 당연히 나랑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사실 거의 그렇긴 하다. 하지만 책에는 이렇게 매끈한 면만 담기진 않았다. 소위 말하는 뒤통수(작가님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런), 해도해도 안되고 한도 끝도 없는 아이, 배은망덕한 아이, 심지어 '인간은 악하구나'를 증명하는 아이. 이런 인간들이 어떻게 없겠는가? 작가님은 이것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100의 하나가 가시라고 해서 나머지 99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냐는 것이다. 그 말에 난 설득되었다.

세상은 고통의 바다인 듯, 반백을 넘게 산 내가 알지도 못하던 참혹한 일들과 여러 종류의 아픔이 가득하다. 거기에 발가락 하나도 담그지 못하는 내가 있고, 그 안에서 헤엄치는 작가님 같은 분들이 있다. 내가 교직도 다 끝난 마당에 이 책을 왜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을 기억하겠다. 부끄러움을 알면서 살기 위해서라도 기억하고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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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사냥
차인표 지음 / 해결책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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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사냥이라니 어떤 비유일까 생각했다. 크게 보면 비유일 수도 있지만 비유가 아니기도 하다. 이야기엔 진짜 인어가 나온다. 그 인어를 인간들이 사냥한다. 제목 그대로의 일들이 벌어진다. 그 서사로 꽉 차있는 책이다.

인어라니 황당하겠다 싶지만 그런 느낌 없이 몰입하게 된다. 인어라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에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몸서리쳐짐까지 느끼며 책장이 숨가쁘게 넘어간다. 이건 작가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차인표 작가의 소설 3권을 다 읽었다. 첫권부터 인정했지만 이번 책에서 더욱 확정하게 되었다. 연예인 프리미엄이 필요없는 진정한 작가구나. 다음 작품 나올 때는 아직 안되었나? 기다려진다.

시대를 오가는 구성도 흥미롭고 쫀쫀하다. 100여년 전 1900년대, 외딴섬에 사는 어부 덕무와 그의 딸 영실, 영득이의 서사가 가까운 시대고, 또 한 시대는 그로부터 1000년 전이다. 소재는 같다. 인어 사냥이다. 1000년을 넘어, 두 시대는 절묘하게 연결된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경험했던 인어와의 만남. 알려지지 않아야 되는 것들은 평생 가슴 속에만 담아두어야 했을 것을, 알려진 소문은 탐욕을, 탐욕은 무자비한 행위를, 그 행위는 파멸을 가져온다.

아내를 잃은 덕무가 같은 병이 딸에게도 발병한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살리고 싶었을지 공감한다. 딸은 숨이 안쉬어져 허공에 손짓하는데, 그가 생포한 애처로운 어린 인어는 공영감에게 고문 수준의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그의 괴로움에 공감한다. 인간에겐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왜이리 어려울까.ㅠㅠ 그래도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고통을 보면서 느낀다. 순리를 거슬러서라도 얻겠다는 탐욕이 결국 얼마나 흉하게 뒤틀리는지 절감한다. 이 부분에서 인어는 비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어는 아니지만 그런 방식으로 취급당한 수많은 생명들이 있으니까.

뒷세대의 서사에는 강치도 나온다.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여 씨가 마르게 되었다는 그 강치... 차인표 작가는 의미있는 소재들을 찾고 공부하고 작품에 녹여 넣으려 애쓰는 작가인 것 같다. 또 그것들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하기도 한다. 묘사하는 문장들도 무척 아름답고, 대사도 자연스러우며 감정도 잘 전달된다.

뒷표지의 추천사를 보니 영화관련인들이 많다. 영화로 잘 표현되면 무척 멋질 만한 이야기겠다. 판타지의 존재인 인어를 어떻게 구현하는가, 천년 전 바닷가, 특히 공랑이 처음 발견한 그 환상적인 공간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가, 인어에 대한 인간의 마음 (어떤 이는 눈먼 탐욕, 어떤 이는 갈등과 고통, 어떤 이는 연민과 사랑)을 잘 연기하는지가 관건이겠다. 세번째는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많으니까. 하지만 첫번째와 두번째는 내 상상력으로는 무척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는 도전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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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캠핑장 - 반달이 뜨면 열리는,제13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정주영 지음, 김현민 그림 / 비룡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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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하고 무섭지만 단지 그렇지만은 않은, 깨알재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표지에서부터 풍긴다. 어린이들은 무서운 걸 좋아하니 몬스터는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캠핑장!!

화자인 오햇님이 도서관 구석에서 <괴물 손님 사전>이라는 책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사전에 수록된 괴물들이 맛보기로 몇몇 소개된다. 구슬부자 미룡이, 무술의 달인 백여랑, 식탐왕 꾸역이 등. '와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게 만드는 도입이다. 도입이 완벽하다. 그 책 마지막장에 초대장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몬스터 캠핑장으로의 초대장!

햇님이는 바로 모험단을 꾸려 (아빠와 강아지 두두) 캠핑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캠핑장은 기대와는 달리 을씨년스러워 실망했지만, 밤이 되어 달이 뜨고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리자 모든 것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한 몬스터는! 사자 같기도 하고 용 같기도 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 같기도 한 괴물, '사고뭉치 버럭이' 였다.

이 이름을 보는 순간, 아 이 이야기는 그저 재미로 쓴 얘기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은 재미로만 읽어도 충분하고, 어른들은 뭔가 생각할 지점이 있겠다는 생각. 우리 주변의 몬스터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라고 할까. [괴물 손님 사전의 시작] 부분을 읽으니 그 느낌이 더욱 확실하다.
"아득한 옛날 인간 세상에 괴물들이 나타나던 시대, 대부분의 인간들은 괴물이 무서워 피하고 숨기 바빴다. 그러나 괴물들을 손님으로 맞이해 깍듯이 보살펴준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이랑'이다." (34쪽)
어떻게보면 사람을 상대하는 모든 이들이 <몬스터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부터도 작년 한해의 몬스터전만도 족히 다섯 권은 쓸 것 같은데....ㅎㅎㅎ

등장한 버럭이는 고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캠핑장을 휩쓸었고 햇님이와 아빠는 속절없이 당했지만.... 점차 친구가 되어가고 말썽이 수습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아주 전형적이진 않고 흥미로운 소재도 맛난 양념처럼 들어 있어서 어린이 독자들이 즐겁게 읽을 것 같다.

버럭이와의 만남이 끝나자 이 책도 마무리된다. 그건 좀 의외였다. 도입에서 사전을 펼칠 때, 다양한 몬스터가 등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껏 캐릭터들을 만들어 놓고 등장은 하지 않는다고? 혹시 다음 권들이 계속 나오는게 아닐까? 이 책에 1권이라 표시되어 있진 않지만 아무래도 그럴 것 같다. 이미 기본 구성은 해놓으신 셈이니 말이다.

돌아온 햇님이는 <괴물 손님 사전>에서 버럭이 부분을 고친다. 그건 버럭이한테 씌워진 고정관념과 오명을 바로잡는 작업이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존재들이 많이 필요하다. 나도 누군가에겐 몬스터일 수 있겠지.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어떤 존재를 쉽게 규정하고 배척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이 책처럼 훈훈하고 재미나게 끝나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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