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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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이후, 미국 전역에 보도된 충격적인 영상 하나가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던 월드 트레이트 센터(WTC)가 마침내 무너져 내리자, 그것을 보고 환호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장면이었다. 미국 언론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분노를 조장하는 듯 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 효과는 대단했다. 미국 본토가 공격을 받은 초유의 사태 속에서 민주당 8년 시절을 보낸 미국 사람들은 급속도로 우경화하기 시작했고, 맹목적인 애국주의의 물결이 전 미국을 휩쓸었다. 당장에라도 911 테러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아프간의 오사마 빈 라덴을 핵무기로 폭격하라는 자동차 범퍼 스티커가 불티나게 팔렸다. 그 가운데 이성적인 목소리들은 발붙일 틈이 없었다.

 

 

 

 

파키스탄 출신 작가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에는 주인공 찬게즈가 그토록 미국의 일부가 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주류 사회에 편입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터진 911 테러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작가의 명백한 페르소나인 찬게즈(칭기스칸의 애너그램이라고 했던가)는 파키스탄 라호르 출신의 뛰어난 인재로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대 프린스턴 출신으로 언더우드샘슨이라는 기업 감정(평가) 회사에 취업해서 소위 잘나가는 슈퍼엘리트다. 이렇게 미국식 교육의 혜택을 풍족하게 받은 찬게즈가 180도로 바뀌어서, WTC가 불타는 장면을 보고 자신이 느낀 첫 번째 반응이 ‘즐거움’이었노라고 밝히고 근본주의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모신 하미드는 절묘한 서사 구성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우선 주인공 찬게즈는 자신의 무대였던 미국 뉴욕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 파키스탄 라호르의 아나르칼리의 어느 거리에서 처음 만난 미국인에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가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일하게 된 언더우드샘슨에서는 무한경쟁을 통한 효율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끊임없이 직원들에게 세뇌하는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첨병이다. 아울러 아무 것도 ‘우연’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바로 찬게즈와 아나르칼리에서 만난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미국인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이 점을 잊지 말고 모신 하미드의 서사를 따라가 보자.

 

작가의 서사 구조 한쪽에 아무런 배경 없는 파키스탄 출신의 남자 찬게즈가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프린스턴 학벌이라는 무기를 들고, 세상이라는 거친 무대에서 싸우는 과정이 그려졌다면 다른 한 쪽에는 주인공 찬게즈의 러브스토리가 자리 잡고 있다. 찬게즈의 이름이 중세 세계의 정복자 이름의 애너그램이라면 그가 사랑하는 미국 여인 에리카라는 이름은 볼 것도 없이 많은 이들이 사랑에 빠진 아메리카의 재현이다. 찬게즈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연애의 싸움을 하고 있다. 본인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에리카의 죽은 첫 애인 크리스와의 경쟁이다. 아무리 불확실한 것도 수치화하고 계량화해낼 수 있는 철두철미한 교육을 받은 찬게즈는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이길 수 없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진흙탕 싸움에 빠져든 것이다.

 

고대 페르시아 전쟁 이래 서양과 동양의 갈등/전쟁 구조는 21세기 파키스탄 작가의 치밀한 문학 작품을 통해 다시 형상화됐다. 동양남자 찬게즈의 물질적으로 발전한 서방세계에 대한 처절한 구애는 죽은 애인을 잊을 수 없다는 야릇한 핑계로 요리조리 피하는 에리카의 밀당의 다름 아니다. 뛰어난 현실감각을 지닌 이 남자는 자신의 업무나 관계 파악에서는 냉철한 이성을 발휘하지만, 도대체 사랑이라는 게임 앞에서는 철저하게 무장해제당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바로 그 점을 작가는 '주저(reluctant)'라는 표현으로 집약해낸 게 아닐까. 어떤 노력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죽은 옛 애인과의 게임은 아무리 뛰어난 학벌과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미국 주류사회에 동화될 수 없는 이방인의 비애를 절묘하게 짚어낸다. 이창래 선생이나 줌파 라히리의 이민자 문학이 화해 혹은 타협을 지향한다면, 모신 하미드의 그것은 좀 더 공세적이다. 물론, 이 작품 하나로 그의 문학 세계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말이다.

 

한 때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던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더 이상 관용적이지 않다. 그것은 마치 과거 로마제국이 관용(클레멘티아) 정책을 버리고 수구적으로 변해 가면서 세계 제국의 위상을 잃었던 것과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는 느낌이다. 찬게즈는 꾸준하게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에리카를 포기하지 않지만, 에리카의 세계에 그를 받아들일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한 조건부 짝사랑이다. 미국 사회에 효용이 될 만한 재능과 능력을 가진 이들은 환영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문호개방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사랑의 유효기간 만료는 이민자들의 합법적인 체류를 보장하는 비자 기간 만료와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랑이 끝나면 그들은 미국을 떠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를 오스만 제국의 기독교 용병 예니체리에 비유한 장면은 신의 한수처럼 다가온다. 술탄에게 예니체리들은 언제나 소모품에 불과했다는 점에서도 그들의 운명은 일치한다.

 

다시 작가 모신 하미드는 독자를 라호르의 번잡한 아나르칼리 거리로 데려간다. 찬게즈는 계속해서 정체불명의 이 미국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파키스탄 전통 차와 음식, 문화를 권한다. 이미 수천 년 전에 자신의 조국 파키스탄은 뛰어난 문명을 이루고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역전되었다고 자조하는 찬게즈의 모습에서 작가의 의도가 무언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면서도 고향 라호르를 잊을 수 없었던 남자 찬게즈는 미국에서의 생활과 업무 때문에 파견된 칠레에서의 자각을 통해 반미투사 혹은 근본주의자라 불리게 되었다.

 

소설의 후반부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런 급격한 변신의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느낌은 있어도 작가의 문학적 미니멀리즘을 통한 직접적 현실성 담보가 인상적이다. 그만큼 현실과 문학적 창조의 상상력을 오가는 모신 하미드의 작법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열린 결말을 배려한 점도 역시 일품이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2012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영화도 봐서 책과 비교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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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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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젊은 날의 피카소 전이라는 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피카소의 초기작을 보면서, 저 정도 그림이야 내가 발로 그려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초기작은 훗날 그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대가로 인정을 받은 후에 재평가를 받은 작품인 것이다.

 

말하는 원숭이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 있는지? 그리고 또 잠깐 아래층에 내려간다고 한 남편이 사라졌다가 한참 뒤에야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 이 정도는 돼야 기담 혹은 괴담의 범주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아마 범인(凡人)이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했다면 술좌석의 농담 혹은 우스갯소리로 치부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쓰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번에 새로 나온 하루키의 소설집 <도쿄기담집>은 최신작이 아니다. 2005년에 나온 책으로 모두 5편의 ‘기담’스러운 단편 소설집이다. 나는 맨 먼저 맨 마지막에 실린 <시나가와 원숭이>편부터 읽기 시작했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시나가와라는 지명을 알 리가 없고, 뒤편에 달린 원숭이에 시선을 끌었다. 안도 미즈키라는 여성이 기억상실 때문에 병원을 찾고, 상담사를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상담의 과정을 거쳐 아주 오래 전, 고교시절 자살한 학교 후배에게서 모든 것이 연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종착역에는 도쿄 시나가와의 말하는 원숭이가 있었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말하는 원숭이가 아니라, 자신이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는 진실을 대면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그녀가 다시 기억력을 되찾게 되었는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5편의 단편 중에서 <하나레이 해변>이 가장 재밌었다.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이라는 곳에서 상어에게 물려 다리를 잃고 결국 목숨마저 잃게 된 어느 청년의 어머니 사치의 이야기다. 하와이에서 윈드서핑이 목숨까지 걸 정도인가 하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사치는 예전에 미국 생활 덕분에 현지에서 영어 소통에 문제가 없다. 그런 세심한 장치까지 배려해 주다니, 역시 하루키답다. 아니면, 본인이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2년간 체류한 경험 덕분인지 미국 생활에 대한 그의 감상을 책 곳곳에서 엿볼 수가 있다. 어쩌면 하루키의 재즈 사랑도 그 덕분인지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상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어떻게 해서 그녀가 호놀룰루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런저런 만남을 통해 사치의 과거를 되짚어 가는 품이 고수다운 풍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무런 부담 없이 타인의 삶을 엿보는 그런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소설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주인공/타인의 삶에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간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보이저리즘(관음증)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들의 기일 즈음해서 하나레이 해변을 찾아 며칠씩 보내곤 하는 그녀에게만 왜 외다리 서퍼가 보이지 않는건지 참으로 기이할 따름이다.

 

남자가 평생 동안 만나야 할 의미 있는 여자의 수는 세 명 뿐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남자 준페이의 고민 역시 재밌다. 어차피 깨지기 마련인 터부를 마련하는 고수 하루키는 한 번의 만남 그러니까 다시 말해 원 스트라이크 이후 투 스트라이크를 준비한다. 정말 딱 맞는 상대를 만났다고 준페이는 생각하지만(물론 육체관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기리에는 자신의 직업도 알려 주지 않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미스터리다. 어쩌면 이렇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발을 보여주는지 하루키답다. 대뜸 기리에가 직업 킬러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그렇게 쉬운 직업으로 정할 리가 없지. 얘깃거리가 떨어지지 않는 두 사람이야말로 천생연분이 아니었을까. 결국 준페이는 기리에의 자극을 받아 만날 자리를 옮겨가는 콩팥 모양의 돌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창작에 있어 정말 중요한 건, 영감이 아니라 어떤 식의 자극이라는 하루키 식 고백일까? 미스터리한 그녀의 실종 역시 예측가능한 좌표상에 자리 잡고 있다.

 

하루키 소설집의 공간적 배경은 소설집의 제목이 가리키고 있듯이 대도시 도쿄다. 인구 천만명이 사는 예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다투고, 싸우고, 화해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이 스펙터클하게 변화하는 공간의 이야기가 하루키 식 기담의 원천이 아닐까. 얼마 전 뉴스에 보니 셀카가 뭐라고 남들보다 압도적인 셀카를 찍으려다 절벽에서 추락사하고 고압선에 감전되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이 이야기야말로 기담이 아닌가.

 

판에 박힌 듯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가정을 떠나 자발적 홈리스가 된다는 이야기도 이젠 식상하다. 일상의 모든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면세계의 일탈 욕구가 빚어낸 이야기도 이제는 설명 가능하다. 어느 시대에는 통용되지 않던 이야기나 상식도 시간이 지나가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폭도나 정신병자로 치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진짜 이 소설집에서 하루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상식의 수용 문제가 아니라 그의 작풍 또는 스타일이 아닐까. 정확하게 꼭 집어서 이게 바로 하루키 스타일이야라고 말하기 쉽지 않지만, 재즈와 위스키를 사랑하는 여피 스타일적인 삶의 방식 말이다. <하나레이 해변>의 사치처럼 상실 가운데서도 그런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물론 그러기 위해선 금전적 여유가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하루키는 두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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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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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그동안 성석제 작가의 다른 책들도 꾸준하게 읽어 왔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신간 <투명인간>처럼 현실계에 다가선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해방 전 시대부터 현대사를 관통하는 서사를 구축해냈다. 그리고 글쟁이답게,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창조해낸 캐릭터들의 광휘는 눈이 부시다 못해 찬란하기까지 하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저파’ 프란치스코 교황의 낮은 곳에 임하라는 메씨지가 일종의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성석제 작가 역시 우리가 흔히 보는 막장드라마의 필수 요소인 재벌이나 권력자들을 등장시키는 대신 밑바닥 인생에 초점을 맞춘다. 소설 <투명인간>의 주인공 만수의 3대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축약판이다. 만석꾼이었던 그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좌익 사상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옥고를 치르고, 집안이 단박에 거덜 나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그렇게 산골에서 화전을 이루기 살기 시작한 만수네는 천만다행으로 한국전쟁이라는 참화는 피해갈 수 있었지만,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든 가난이라는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줄줄이 사탕처럼 형제들이 즐비한 만수는 온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모은 백수처럼 그리고 훗날 또 다른 총기를 보여준 석수처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수십일 을 걸어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는 돈끼호떼의 둔마 로시난떼처럼 그렇게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걷는 오늘의 대한민국 건설에 이바지한 장삼이사의 전형으로 그렇게 다가온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머나먼 월남에서 고엽제로 어이 없이 비명횡사한 집안의 기둥 백수의 뒤를 이어 집안의 가장이 된 만수에게 가족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이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각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보다 훨씬 잘난 석수가 자신을 형대접 하지 않아도, 그를 온전하게 받아 주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살얼음판 같은 인생 역정을 겪는 식구들을 전심전력을 다해 뒷바라지 한다.

 

삶에서 평범함을 추구하지만, 도무지 평범할 수 없는 인생의 간난신고를 겪은 만수의 삶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과연 국가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1차원적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1960, 1970년대 고도의 독재개발을 추구한 국가는 국민에게 무한한 인내와 희생을 요구했다. 인간관계에서 최소 단위를 구성하는 만수네 가족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백수는 순전히 자신이 가진 천재성으로 성공의 끝자락에 다가서지만, 어찌할 수 없는 가난은 결국 그의 발목을 잡고 전쟁터로 파병된다. 집안의 기둥 백수는 월남에 파견되어 조국근대화의 최전선에서 달러를 벌어 훗날 만수 가족이 신산한 서울 생활을 버틸 수 있는 단초가 되는 재봉틀을 사는데 일조했다. 백수는 명분 없는 전쟁에서 장렬한 전사도 아닌 미군이 월남 정글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초강력 고엽제 때문에 어이없이 병사하게 된다.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구로공단에 먼저 취업한 친구의 편지에 상경한 만수의 누이 역시 사실을 담보하지 않는 편지의 의미 없음을 현장에서 직접 깨닫게 된다. 몸뚱이 외에 아무런 생산 수단도, 자본도 가지지 않은 이들이 갈 곳은 정해져 있으며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석제 작가의 소설은 명징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 문제는 40년이 지난 오늘에도 예의 불평등과 소득분배 불균형의 문제는 여전히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우리의 주인공 만수가 부딪히는 사회적 현실 또한 불편하다. 소설의 전반부가 산업화의 여명기와 성숙기를 그렸다면, 각자의 목소리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정리된 후반부에는 비로소 만수가 주인공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공간의 배경 역시 만수네 일가가 살던 시골에서 벗어나 도시화의 영향으로 본격적인 이촌향도가 진행된 1980년대에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서울로 이동한다.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을 읽으면서 이렇게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빚어낸 작가의 글발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 또한 역사의 질곡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지 못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민주화 투쟁의 열기가 치솟던 시절에도 우리의 주인공 만수는 우직스럽게 공장에 취업해서 자신의 일을 누가 보건말건 그야말로 투명인간처럼 묵묵하게 해낸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학생 혹은 엘리트의 외침은 만수에게 사치일 뿐이다. 아직 독립하지 못한 동생들의 대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짠돌이 소리 듣기를 마다하지 않으면 알뜰살뜰 돈 모으기에 전념하는 그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임무를 부모 세대가 아닌 형제 세대에게 전가한 것도 책임감과 부채 의식의 극대화라는 성석제 작가의 전략이었을까.

 

좀 먹고 살만해지니 닥친 전대미문의 IMF 경제위기 속에서도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을 무기삼아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가족의 테두리를 온몸을 내던져 지켜낸다. 만수네 가족을 덮치는 시도 때도 없는 간난신고의 스펙터클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더 놀라운 것은, 예의 사건사고들이 우리 현대사에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이미 존재하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 성석제 작가가 창조해낸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의 조합을 적절하게 맞춰 놓았다고나 할까. 다시 한 번 캐릭터들의 보여주는 다채로운 광휘에 갈채를 보낸다.

 

개인적으로 <투명인간>은 성석제 작가가 전작 <조동관약전>에서 보여준, 시대상에 대한 사적 투쟁의 침잠이라는 점에서 <만수전(萬壽傳)>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똥깐이가 난장을 부르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슈퍼맨(초인)이었다면, 만수는 ·니체의 위버멘쉬(초인)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주인공 만수가 어떤 철학적 사유를 통해 모든 것을 개인적 노력으로 극복해내는 초인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나는 가난이 부여한 다양한 고통이라는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한 만수 혹은 우리 장삼이사를 시험에 들게 하는 끝없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기록이라고 부르고 싶다.

 

<투명인간>의 가독성은 엄청났다. 흥미로운 역사서(우리나라 현대사)를 읽는 재미에 덧붙여서 희비극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캐릭터들의 향연에 책장 넘기기를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물론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극적인 결정의 순간에 내가 이 상황에서 만수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라는 고민도 빼놓을 수가 없다. 최근에 어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투영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고의 몰입이었다. 2014년 대표작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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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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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천명관 작가의 소설집이 새로 나왔단다. 아직 이창래 선생의 신작도 다 못 읽어서 버벅대는 판에 나의 손가락은 절로 구매로 향한다. 도대체 칠면조와 육체노동자랑 무슨 상관일까? 닭(치킨)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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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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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가 일본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가 참 도발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예의 작가의 책을 읽은 독서모임에서 그녀보다 고수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다나베 세이코였다. 아마 <침대의 목적>과 <아주 사적인 시간>을 추천받았던 것 같은데 묵혀 두고 있다가, 지난주에 <춘정 문어발>로 다나베 여사의 문학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 다음에 읽은 책이 바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하 <조제>)이다. 이 책도 오래 전, 어느 여행지에서 우연히 어느 커플이 동명의 영화를 꼭 보라고 추천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추천 받은 영화라면 바로 구해서 봤을 텐데, 이제 영화마저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지라 그냥 안보고 버텼다. 그렇게 길게 돌고 돌아 이제야 <조제>와 만났다.

 

다나베 여사는 1928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87세다. 28세도 아닌 87세라니. 그런데 젊은 처자 못지않은 감각으로 여성들의 은근하면서도 오묘한 심리를 까발리는데 도가 튼 모양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보니 그녀의 관심은 오욕칠정의 세계가 그야말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남녀 관계에 있다고 했던가. <조제>에 실린 9편의 단편을 통해 다나베 여사는 우리가 즐겨보는 <사랑과 전쟁> 뺨치는 파격적이면서도 달달한 연애이야기를 풀어낸다.

 

자매간에도 질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첫 번째 에피소드인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에서는 일이나 연애에서 모두 잘 나가는 동생을 둔 언니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살림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요즘 말로 하면 모태솔로라고 해야 하나. 언젠가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는데 이야기의 주인공 고즈에는 그마저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동생 미도리가 어느 날 갑자기 먼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예비신랑감에 필요이상의 기대를 보이는 고즈에. 야릇한 갈등의 전조를 내비친다.

 

다음은 역시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다. 조제는 이 단편의 여주인공 구미코가 프랑수아 사강의 소설의 주인공 조제를 본 따 지은 자신의 별명이다. 어려서 뇌성마비 진단을 받아 하반신마비의 장애를 가진 조제는 우연한 기회에 대학생 츠네오에게 도움을 받아 인연을 쌓게 된다. 그런 조제를 돌봐주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그야말로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한 조제를 찾아간 츠네오는 동정과 연민에 휩싸이게 된다. 츠네오는 그렇게 조제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야수의 왕 호랑이를 보러 동물원을 찾는다. 그리고 해변여행을 떠나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들에게 자신들을 투영하며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한다. 완전무결한 행복이 죽음 그 자체라니. 너무 내냉소적인 게 아닐까.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짧은 단편을 가지고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려면 반드시 각색 작업이 필요하겠지. 중요한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이벤트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러닝타임 두 시간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하지만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을 채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가능한 한 롱테이크로 촬영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어떻게 새로운 버전의 <조제>를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기회가 닿는 대로 영화를 봐야지 싶다.

 

<조제>에는 어쨌거나 다양한 사랑에 대한 버전이 실려 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모와 조카의 관계를 다룬 <사랑의 관>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선언과 함께 진행되지만 못내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 강렬한 여운을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워커홀릭으로 일에 미친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을 통해 알게 된 연하남과의 줄타기 연애는 아슬아슬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다나베 여사는 절제의 미덕에 대한 서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긴 무림의 절대고수라면 이 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일에 미쳐서 나를 돌봐주니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바람피우게 되었다, 진부하다 진부해. 치키라는 손가락 인형의 입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고전적 수법이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이 양반 대단하구나.

 

 

 

 

남자는 여자가 원하는 것을 알고는 있기나 하나? 열 살 연상의 남자는 연하의 여자를 자신의 별장에 고이 모셔 두고 일에 너무 바쁜 나머지 찾지 않는다. 폭주족이 인근에 출몰하자, 자기 대신 조카를 보낸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즐기는 듯 한 태도가 영 마뜩치 않다. 결혼 중에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밥타령을 하는 남편의 “욕망에 충실한 빛나는 에고”를 냉소적으로 찬양하기도 한다. 전처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두 집 살림을 하는 남편을 호색의 날다람쥐라고 부르는 에리코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썸타는 사이도 아니면서 내 것인 듯 아닌 듯한 그런 미묘한 여성의 감정선을 잡아내는 기술이 정말 유려하다.

 

이렇게 다양한 사랑의 방정식을 통해 다나베 여사는 남자들에게 묻는 것 같다. 니들이 사랑이 뭔지 아냐고 말이다. 물론 이 질문은 남자는 소중한 취미라고 쓴 다나베 여사 정도는 돼야 물을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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