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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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데이트 : 2015531일 오전 1022

 

책을 읽다 보면, 읽기도 전에 재밌겠다는 감이 오는 책이 있다. 최근 내게 그런 책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 막 읽은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는 읽기 전에 바로 그런 감이 왔다. 문제는 워낙에 할 일이 많아서, 신입직원 구직공고도 내야하고 인터뷰 일정도 잡아야 하고 또 월말 결산까지 겹쳐서 단박에 다 읽으려던 나의 계획은 일찌감치 물건너 가고 한가한 주말 새벽을 이용해서야 비로소 다 읽을 수가 있었다. 나의 감대로 59살 먹은 오베의 이야기는 정말 최고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스웨덴의 어느 아이패드 매장에서 시작된다. 책의 말미에 도착하면 최신 문명의 이기를 배척하는 우리의 오베가 외계의 암호 같은 아이패드 기기와 관련된 3G128기가바이트니 하는 사양 설명을 들으며 매장직원과 전투를 벌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는 초짜 작가답지 않게, 아주 정교한 이야기 틀을 이용해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인생을 조심스럽게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우리의 오베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기묘한 행동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우선 마을의 방범대원처럼 순찰을 돌며 평소와 다른 점들을 하나하나 체크한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고리를 만들겠노라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이유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 소냐를 잃은 이 남자는 그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학교 교사로 말썽쟁이 아이들에게 셰익스피어 읽는 법을 가르쳤다는 소냐는 까칠하고 퉁명스러운 오베의 세상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추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 소설의 전개와 더불어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들어난다. 소냐 없이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오베라는 남자는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할 것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오베가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고리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문제는 스웨덴 국민차라고 할 수 있는 사브 차만 타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해야한다는 자수성가를 원칙으로 삼은 오베에게 난데없이 등장한 이웃 멀대 패트릭과 이란 출신의 그의 아내 파르바네 가족의 출현이다. 어디 그 뿐인가, IT 기술자라는 이웃의 지미라는 청년부터 시작해서 우편배달 일을 하는 아드리안, 길고양이, 아드리안의 친구 동성애자 미리사드 그리고 지역신문 기자 레나까지 총동원되서 오베의 죽음을 방해하기에 나선다. 물론 그들이 오베의 결심을 알고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것은 아니고 하나 같이 우연에 바탕한 필연으로 오베의 삶 속에 풍덩 뛰어든 것이다.

 

소설에서 아주 유용한 플래시백 기법으로 배크만 작가는 오베라는 남자가 어떻게 해서 자신에게 과분하기만 한 소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40년 지기 루네와 무슨 이유 때문에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었는지에 대해 마치 신문연재소설 아니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에서 궁금하면 다음주를 기대하시라는 기법으로 독자를 홀리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게 유혹된 독자는 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술술 책장을 넘기게 된다. 도대체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 맞는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베라는 남자는 타고난 사랑꾼이었다. 아내 소냐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신문을 몇 시간이 읽을 수 있고 스페인 여행에서 당한 불의의 사고 때문에 휠체어를 타게 된 소냐의 출근을 위해 직접 휠체어 전용 레일을 깔 수 있는 그런 남자다. 소설은 중반에서 소냐와 오베의 과거사를 헤집으면서 온갖 다양한 캐릭터들이 연출하는 코믹한 상황에서 벗어나 감성을 자극하는 오베라는 남자의 진면모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당연히 오베는 그런 남자라는 사실에 독자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게 독자의 공감대를 얻는데 성공한 배크만 작가는 이제 마지막 고지에 기다리고 있는 피날레를 향해 감동이 전제된 마지막 플롯을 진군시킨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점차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캐릭터들을 <오베라는 남자>에 대거 등장시키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동성애자나 비만이 우리가 가진 편견처럼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가치중립적인 점에서 바라보면 오베가 선택한 것처럼 공존가능하다는 증명해 보인다. 다문화 가족인 파르바네/패트릭 패밀리도 마찬가지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성장배경이 전혀 다르지만, 보편적 인류애는 어디에서고 통하기 마련이다. 아드리안이 대표하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도 불가능한 주제는 아니다. 사브만을 고집하던 오베가 아드리안이 도요타를 사는 것을 허용하는 장면은 세대 간의 타협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진중한 주제만으로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것만은 아니다. 퉁명스러운 오베라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아드리안에게 블랙커피를 주문한 오베에게 우유를 넣느냐고 아드리안이 묻자, “우유를 넣으면 그게 블랙커피냐?”고 심퉁맞게 대꾸하는 장면으로 대변되는 유머는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는 비빔국수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해서 감칠맛나는 <오베라는 남자>라는 멋진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그가 발표한 다른 두 권의 책도 곧 소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 실력의 작가의 책이라면 기대가 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 좋고, 정의와 페어플레이, 근면한 노동 같은 전통적 가치들이 날로 퇴색해가고 있는 21세기에 19세기 스타일의 남자 오베는 어쩌면 돌도끼를 든 크로마뇽인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곁에 이렇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우직스럽게 고집하는 멋쟁이 사랑꾼 한 명 정도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 까칠하고 퉁명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오베 같은 남자야말로 흔히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랑을 제대로 아는 그런 멋진 남자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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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1 -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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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학 작품의 영화화가 할리우드의 대세인 모양이다. 하긴 괜찮은 영화 각본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올디스 굿디스라는 표현대로 영화의 영원한 타깃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원작의 영화화에 목을 메고 있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읽은 토머스 하디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도 이번 주에 개봉을 한다고 하는데, 톰 롭 스미스의 스릴러 <차일드 44>도 같이 개봉한다.

 

<차일드 44>의 시작은 섬뜩하기 짝이 없다. 스탈린 시절 극심했던 기근으로 모두가 굶주려야 했던 시절 이야기는 <한니발>의 기원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리고 소설은 20년 뒤로 점프를 해서 여전히 스탈린이 통치하고 있던 소비에트 소련 시절로 독자를 인도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레오 데미도프로 국가안보부 MGB(비밀경찰) 소속의 엘리트 요원이다. 나치 독일을 상대한 대애국전쟁의 전쟁영웅이기도 한 레오는 소설 초반에 두 개의 기묘한 사건에 엮어 고초를 치르게 된다. 하나는 동료 아들의 죽음에 관련된 미스터리이고, 다른 하나는 감시 중에 홀연히 사라진 수의사 추적 건이다.

 

전자는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 소비에트에서는 발생해서는 안되는 사건이라며 쉬쉬 하며 넘어가자는 분위기로 모종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경찰국가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는 단초가 된다. 두 번째 사건인 반역자 추적은 레오의 의지와 약물을 힘을 빌어 간신히 해결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와중에서 앙심을 품은 하급자 바실리의 음모에 빠지는 계기가 된다. 어느 소설에서고 빠질 수 없는 악당 역을 맡은 바실리는 레오의 사랑스러운 아내 라이사를 음모의 핵심에 배치해서 결국 레오를 엘리트 국가안보부 요원에서 민병대원으로 추락시키고 만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레오가 동료의 아들이 사고사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소설은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톰 롭 스미스는 구소련에서 악명을 떨친 희대의 싸이코패스 시리얼 킬러 안드레이 치카틸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차일드 44>를 재구성했다고 한다. 소설의 한 축은 그렇게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동시에, 완벽한 사회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했던 소비에트 시절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인민을 위한 시스템이라는 국가가 실제로는 최고통치자(스탈린)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조건 반역으로 규정되어, 관련된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찰국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렇게 반역자가 된 사람을 숨겨주는 것도 또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며 마구잡이 총질을 해대는 바실리의 모습과 연쇄살인법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공인된 국가 폭력의 실상에 작가는 현미경을 들이댄다.

 

소설 초반의 구성을 좀 더 빠르게 진행하면서, 레오와 범인과의 관계에 대한 핍진성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남는다. 하지만 이 소설을 쓴 톰 롭 스미스가 소설을 쓸 당시 이십대였고 구소련을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 정도 수작을 만들어냈다는 점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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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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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의 저자 토머스 하디의 책을 처음으로 읽게 됐다. 때마침 좋아하는 배우인 캐리 멀리건 주연의 동명의 영화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가 다시 영화화되어 개봉 예정이라고 해서, 책을 읽기 전에 영화 트레일러를 찾아보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러브스토리이자, 최초의 페미니스트 문학이라는 평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발표된 1874년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전개와 진행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근래에 소위 말하는 막장드라마에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보통 고전 작품의 전개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는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작품은 <콘힐 매거진>이라는 익명으로 연재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모두 57개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계된 진행을 따라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밧세바 에버딘(다윗의 부인이자, 솔로몬왕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다)과 관련된 세 명의 남자 주인공들 간의 치열한 러브스토리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밧세바를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28세의 남자 가브리엘 오크는 뛰어난 목동이자 농부로, 밧세바를 만난 근 순간부터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를 습격한 불운 덕분에 양떼를 모두 잃어버리고 고용 목동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밧세바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 두 번째 남자는 웨더베리에서 이름난 농장주인 윌리엄 볼드우드로 그녀가 장난으로 보낸 밸런타인 편지 한 장으로 그녀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밧세바에게 가장 치명적인 사랑은 바로 프랭크 트로이 하사다. 밧세바의 고용인인 패니 로빈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뻔하기도 하지만 엇갈린 운명 덕분에 패니가 아닌 밧세바와 트로이는 결혼하게 되지만, 이 결혼은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밧세바를 사랑하면서도 냉철하게 판단한 가브리엘 오크의 표현대로, 그녀는 과거에 가난했지만 비교적 교육을 잘 받았고 뛰어난 외모로 뭇 남성들의 인기를 끌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첫 만남에서 그녀를 평가했듯이 허영심과 특정한 남자의 소유물이 되고 싶지 않다고 당차게 이야기하는 밧세바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여성상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그런 자신의 자존감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죽은 숙부의 유산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농장주로 데뷔하고 나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경제력의 힘이었다. 당시 서구사회를 휩쓸고 있었던 생시몽주의 다시 말해 공상적 사회주의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시대를 앞서간 빼어난 밧세바 에버딘이라는 캐릭터와 그녀와 관계된 남자들의 로맨스를 엮어 가는 솜씨와 소설의 전개와 진행방식도 뛰어 나지만, 소설의 초반에 하늘에 떠 있는 별들로 시간을 세는 남자 가브리엘 오크의 세계를 기술하는 장면은 특히 놀라울 정도였다. 터무 없는 전개방식의 현대 막장물보다, 우리 세계를 감싸고 있는 우주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한 묘사와 어쩌면 인류가 지향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상주의를 꿈꾸며, 시대를 뛰어넘는 영원한 주제인 남녀간의 사랑 문제(삼각관계를 뛰어넘는 사각관계)를 다루는 대가의 실력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무일푼 신세가 된 가브리엘 오크가 밧세바 농장의 불을 끄고 그녀에게 목동으로 고용되어 찾아간 맥아 제조소에서 앞으로 같이 지내게 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1915년 무성영화로 처음 영화화된지 딱 백년 만에 다시 영화로 우리 곁을 찾아오는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가 너무 궁금하다. 새로운 할리우드의 뮤즈로 부상한 캐리 멀리건이 과연 강인하면서도 허영심 많고, 또 한편으로는 부서지기 쉬운 팔색조 같은 다채로운 밧세바 에버딘의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할지 기대가 된다. 역시 뛰어난 고전은 시대에 구애 없이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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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1 - 한정판
김규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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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알라딘 중고매장을 찾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풋내기들>을 사기 위해서 말이다. 책을 고른 다음, 그래픽노블 코너에서 오래전 네이버 웹툰으로 만난 김규삼 작가의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첫 번째 권을 읽었다. 한가한 구석에 가서 만화를 읽고 있노라니, 어렸을 적에 아시는 분이 하던 서점에 가서 그렇게 책을 읽던 생각이 절로 났다. 그 시절에는 돈을 벌 수가 없어서 책 사는 게 쉽지 않았었지. 지금은 책 살 여유는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 때처럼 열심히 책을 못 읽고 있다. 여유와 한가로움은 공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연재를 빼먹지 않고 다 본 것 같은데, 문득 김규삼 작가의 후속작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쌉니다 천리마마트>라는 작품이 있었나 보다. 그것도 연재 시작이 2010년이라고 하니 자그마치 5년 전에 나온 모양이다. 그 후로는 웹툰을 잘 찾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에는 단행본 만화가 대세였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특히 웹툰이 대세가 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만화가들이 웹툰 성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쪼록 성공을 거두시길 바란다.

 

김규삼 작가는 자신의 작품(<정글고>와 <천리마마트>)에서 입시경쟁과 성공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규격화된 시류를 비판하면서 조금은 기상천외한 방식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학교에서 실시되는 종교수업(부두교!!!)의 선생님으로 엄청 섹시한 외국인 선교사를 채용하는가 하면, 살인적 경쟁이 판을 치는 할인마트에 아마존 부족 40명 전체를 고용하는 파격을 선보인다. 만화적 상상이란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현실에서 도저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을 작가는 공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 잡기도 주목할 만하다. 우선 전교 1등의 불사조 캐릭터가 눈에 띈다. 보통의 청소년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지력의 소유자이면서, 사람이 아닌 존재 ‘불사조’가 보통의 인간과 경쟁할 수 없다는 설정이야말로 기발하지 않은가. 결정적으로 죽지 않는 영생불사의 존재라는 점이 놀랍다. 정글고의 이사장 역시 노골적으로 돈만 밝힌다고 처음부터 까고 시작한다. 교내방송을 통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라, 이사장이라고 선포하는 당당함이란. 대개의 비리 족벌사학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정글고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진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자체가 어디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는 방증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선생님들 역시 처음에는 꽃미남을 방불케 하는 미모의 소유자들이었지만 세월의 풍상에 시들어 가며 지금의 폭력교사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는 전설도 나온다. 그래서 여학생들이 앞장서서 지금의 꽃미남 생물샘을 지키기 위해 마사지와 팩을 손수 해주려고 야단들이다. 아무리 엉터리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수험생들에게 좋다는 미신만 시장에 퍼지면 다들 못사서 안달이라는 것도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요소로 등장한다. 수험생에게 특효라는 만년삼을 이용한 각종 요리는 어떤가.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무한경쟁 속에서 달리고 있는 한국교육계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희화화가 마냥 반갑지만은 것도 사실이다.

 

정글고 혹은 천리마마트에서 김규삼 작가가 그리는 것에 감탄하는 것 중에 하나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그것이 차라리 만화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그런 포인트에서 마구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너무 씁쓸해질 수밖에 없었다.

 

[리딩데이트] 2015년 5월 19일 화요일 오후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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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3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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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아이 장난감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폐관이 오후 5시라고 착각해서 그전에 가려고 자동차 액셀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그런데 내가 시간을 잘못 알았다. 6시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장난감을 반납하고, 망중한을 즐기며 마스다 미리 작가의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3>편을 도서관에서 앉은 자리에서 후딱 다 읽었다.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비서 일을 하며, 구두수선 가게를 하는 사쿠짱과 오순도순 사는 아키야마 치에코 씨의 삶은 아기자기하다. 아마 둘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그렇게 여유자적한 삶은 아니겠지만 퇴근길에 백화점 도시락 코너에서 신랑 사쿠짱이 좋아하는 도시락을 고르는 재미,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맥주라면 사죽을 못쓰는 사쿠짱을 꼬시기 위해 맥주 미끼를 놓는 그녀의 이야기는 단백한 재미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들이대는 남자 후배와 모종의 썸을 타는 스릴를 즐기기도 한다. 일종의 어장 관리라고 해야 할까. 남자 후배를 애타게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어김없이 고백하는 센스라니. 남편 사쿠짱을 도발하기 위해 종종 그 이야기도 꺼내 보곤 하지만, 무심하기 그지없는 사쿠짱에게 부인의 작전은 도통 먹히질 않는다. 알뜰 주부답게 시장에서 사온 배가 상했을 때는 바로 가서 다른 것으로 바꿔 달라고도 하지만, 사쿠짱은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부부의 아기자기한 이야기에 가끔 치에코 씨는 자기나 혹은 사쿠짱이 먼저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에 휩싸이기도 한다. 아니 당장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어찌해서 사후의 걱정까지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미리 사서 고민하는 게 아닌가라고 마스다 미리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도 한다.

 

1권과 2권에 잠깐 소개되기도 했는데, 치에코 씨와 사쿠짱이 만나게 된 계기도 3권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원래 치에코 씨는 사귀는 남자가 있었는데, 구둣가게에서 도제로 일하던 사쿠짱을 알게 되면서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치에코 씨의 전 남자친구는 있는 그대로의 치에코 씨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로서 치에코 씨를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대기도 한다. 어쨌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좋아해 줄 수 있는 남자야말로 자신의 짝이라고 생각한 치에코 씨의 선택이니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구의 선택이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화의 주인공 치에코 씨가 가끔 이유 없이 앙탈을 부리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하는 장면이 귀엽게 느껴진다. 말미에 달린 하코네 여행기는 평소의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지에서 온갖 군것질을 즐기는 커플의 소소한 행복 이야기로 아주 조금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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