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이 읽고 싶었으나, 대다수 현대일들처럼 내게는 얌전하게 앉아 책을 읽을 시간이 턱없이, 진심으로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으로 영화를 선택해서 보게 됐다. 물론 책도 구해서 나의 책상 위에 잘 모셔 놓았다. 400쪽 가까운 책은 언제 읽으려나.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영화 <아일랜드>가 미래의 세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소설/영화 <네버 렛 미 고>는 현재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차이점 정도. 그리고 <아일랜드>의 주인공들은 철저하게 복제된 클론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모르고 있다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네버 렛 미 고>에서는 그들, 기증자들이 순순히 체념하고 자신의 운명에 따른다는 점 정도. 사실 <아일랜드>처럼 자유의지를 가진 클론들의 반란을 예상했다면 그것은 온전하게 관객의 오류다.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 고>에서는 소설에서처럼 간병사 캐시 H(캐리 멀리건 분)의 입장에서 관조적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세 번째 기증에 나선 오랜 시절부터 친구이자 연인인 토미 D의 마지막 기증을 지켜보며 영화는 곧바로 플래시백으로 접어든다. 소설과는 다른 각색자가 각본을 맡은 만큼, 이 정도의 각색은 봐줄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시작된 11살난 캐시와 토미(앤드루 가필드 분) 그리고 루스(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유년시절을 보낸 1978년의 헤일셤으로 돌아간다.


이 어린아이들이 장래의 기증을 위해 키워지는 장면은 비극이다. 적당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그리고 갖가지 교육과 예술활동, 그들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미래의 단 한 가지 목표를 가리키고 있다. 1952년에 시작된 획기적인 발명으로 인류의 수명이 100살까지 늘어났다는 전제 아래 진행되는 국가기증프로그램(National Donor Program:NDP)의 실체가 바로 이 헤일셤에서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작 영화에서 다루는 무서운 진실은 모두가 NDP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에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카메라는 관객을 1985년의 코티지로 데려간다. 캐시와 토미 그리고 루스는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며 서로 간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기증자로서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랑에 빠진 헤일셤 출신의 남녀들에게는 기증 유예가 주어진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건 굉장히 절박한 이슈임에도 영화에서는 그렇게 묘사가 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증자의 운명이 어떻게 진행된다는 것은 캐시가 본격적인 기증자들의 간병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1994년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영화라고는 하지만, 기증자들이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고 숙명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장면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수년 간의 간병사 생활 끝에 캐시는 어린 시절의 친구 루스와 만나게 된다. 루스는 이미 두 번의 기증을 마치고, 가까스로 연명을 하고 있다. 오래 전에 토미와 헤어진 루스는 캐시에게 토미를 만나러 가자는 제안을 한다. 사실 그들의 애증의 관계를 뒤로 한 극적인 해후는 여전히 관객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그들의 최종운명이 어떻게 될 지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마담이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고 믿는 토미는 캐시에게 자신이 수년간 작업한 그림을 보여주고, 캐시와의 진정한 사랑을 입증한다면 기증 유예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헤일셤에서의 예술활동은 그들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한 프로그램 입안자들의 계획이라고 토미는 철썩 같이 믿는다.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상상했던 비극적인 장면은 루스의 마지막 기증 장면 외에는 거의 없지만, <네버 렛 미 고>는 최근에 본 가장 슬픈 영화다. 아무리 클론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존재론적이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영화에서는(혹시 소설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 헤일셤의 아이들이 선정되었는지, 그리고 기증의 구체적인 수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나중에 캐시의 독백처럼 기증받는 이들의 삶이 어떤 의미에서 기증자들의 삶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유년 시절부터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자란 캐시와 토미 그리고 루스가 처음 세상에 나가 다이너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것을 보고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 순간 왜 그들의 운명에 대해 알려준 루시 선생님의 상황극이 바로 연상됐다. 어쩌면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전조는 비오는 날 루시 선생님이 들려준 기증자들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사실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그것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내게 주어진 삶을 조금 더 연장시켜 보겠다고 타인(클론)을 태연하게 희생시키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보지 못한 개인의 단상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에게 그런 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그들과 다르게 도덕률을 우선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최근 <위대한 개츠비>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 주었던 영국 출신 배우 캐리 멀리건이 맡은 캐시 H 역에 호감이 갔다. 말로 이래서 좋다라고 꼭 집어서 표현하긴 어렵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연기에 몰입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오히려 그녀보다 더 뛰어난 스타성을 자랑하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루스보다 낫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자리 잡은 앤드루 가필드의 토미 D 역할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주연을 맡은 세 명의 배우들은 서로 간에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갈등이 어우러진 미묘한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슬픈 영화를 보고 나서 허겁지겁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을 펴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60여쪽을 읽어내려갔다. 물론 원작소설과 영화는 달랐지만, 같은 뿌리를 가진 ‘클론’답게 공명하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가 감성적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디테일에서 도저히 영화가 추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어서 빨리 원작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읽어야겠다.


정말 슬픈 영화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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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6-2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정말 좋아요!!! 꼭 읽으세요!

레삭매냐 2017-06-26 11:02   좋아요 1 | URL
소설도 책 읽고 나서 바로 읽었더라구요 :>
리뷰는 예전에 쓴 거 울궈먹기였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책 중에서(제가 지금까지 읽은)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더군요. 슬프고 비극적인.

유부만두 2017-06-26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아름다운 비극! 영어문장이 꽤 아름다워요....

잠자냥 2017-07-20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 소설을 영화화하면 원작보다 못한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작품은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다 좋았어요. 캐리 멀리건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조합, 그리고 그 영화의 황량한 분위기 등등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더군요.

레삭매냐 2017-07-20 10:58   좋아요 1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캐리 멀리건이 덩그러니 남아 거리를 쳐다 보던
마지막 장면이던가요 정말 아름답고 슬펐던 것
같습니다.

말씀 하신 대로, 대부분 소설의 영화화가 기대
만 못한데,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너무 슬픈 영화였어요.
 

 

드디어 HULU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원작 <시녀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미드 시즌 1이 끝났다.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이제부터 원작소설의 이야기들은 끝이 나고, 앞으로 시즌 2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시즌2는 언제 당장 방영이 되는지 궁금하다. 버라이어티 온라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HULU의 어떤 시리즈보다도 많은 최다 시청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시즌 2는 2018년에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좀 더 제작을 앞당겨서 빨리 방송해 주시길 바랄 뿐.

 

 

열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역시 마지막 편이라 그런지 긴장감이 거의 최고조에 달했다는 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세레나 조이(소설에서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이지적이며 젊고 악독하게 그려진다)는 남편 커맨더 프레드가 오프레드를 데리고 밤나들이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의 의상에 오프레드의 메이크업이 묻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오프레드를 찾아가 이마가 찢어져 피를 흘릴 정도로 강력한 싸다구를 날린다. 그리고 암시장에서 구한 임신 테스터 기로 오프레드의 임신여부를 확인하는 세레나 조이. 기적이 일어났도다. 거의 동시에 커맨더 프레드를 찾아가 밤나들이에 대한 추궁을 하고, 오프레드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새로운 생명이야말로 기적이라며 기뻐하는 커맨더 프레드에게 그녀는 잔인하게도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편, 지저벨을 탈출한 모이라는 천신만고 끝에 미국 캐나다 국경을 넘어 온타리오에 도착한다. 난민캠프에 도착한 그녀는 비로소 재생산을 위한 “국가적 자원”이 아니라 인간적인 배우를 받게 된다. 어느 친절한 난민 센터 직원의 도움으로 재활을 위한 기초 자금과 셀룰라폰, 옷가지 일체 그리고 간단한 생활방식 등을 소개 받는다. 신정국가 길리어드에 적응해야만 했던 자유주의자 모이라에게 캐나다는 신세계였다. 어쩌면 이런 설정은 트럼프가 통치하는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진보적 방송의 냉소적 비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레나 조이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닉과 그녀의 관계를 눈치챈 듯 다른 차량으로 오프레드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그곳은 바로 오프레드를 그녀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딸 해나가는 사는 곳이었다. 오프레드를 차에 가두고, 해나의 모습을 보여준 세레나 조이는 자신의 아이가 안전하면 해나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오프레드의 아이가 자신이나 커맨더 프레드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의 위선적인 태도에 정말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격분한 오프레드는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세레나 조이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욕들로 대응하고 저주한다. 이어지는 커맨더 퍼트냄에 대한 재판에서 커맨더 프레드는 용서해주자는 소수의견을 제시하지만, 퍼트냄의 아내는 남편에게 최고형을 가해 달라는 청원을 했다는 소식에 커맨더 프레드는 경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왼손 손목 절단형은 정말 디테일했다. 물론 끔찍하기도 했고.

 

 

오프레드는 디 아이(The Eye)인 것으로 추정되는 닉을 찾아가지만 그는 부재 중이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커맨더 프레드에게 자신이 임신한 아이가 그의 아이라고 거짓말한다. 오프레드가 몰래 건네받은 패키지는 자신의 경우처럼 강제로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고 폭행당하고 짐승 같은 취급을 받은 동료 시녀들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묶음이었다. 그것들을 밤새도록 읽으면서 오프레드는 일종의 위안감을 느낀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길리어드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인 아이들을 해치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처벌하는 석살형(stoning)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세상에 구약의 율법에나 등장하는 처벌을 시녀들에게 시행하라니 놀랍기 짝이 없다. 세 명의 수호자들이 나타나서 돌을 실은 카트를 부린다. 그녀들에게 묵직한 돌을 하나씩 들라고 명령한 리디아 아주머니는 오늘의 형벌을 받을 사람을 끌어 오라고 명령한다. 주인공은 바로 오프다니엘, 아니 전편에서 자신의 딸(샬럿)을 데리고 다리 위에 올라가 인질극을 벌였던 재닌이었다. 거의 정신줄을 놓고 횡설수설하는 재닌을 둘러싼 시녀들에게 리디아 아주머니는 처형을 명령한다. 처음으로 명령을 거부한 시녀는 수호자에게 가격당해 피를 뿌리며 땅바닥에 넘어진다. 하지만 오프레드를 필두로 다른 모든 시녀들은 재닌의 처형을 거부한다. 길리어드에서 명령에 대한 거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면서도 그녀들은 인간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해산명령을 받고 무리를 지어 보무도 당당하게 자신들의 집으로 귀가한다.

 

 

장면은 다시 전환되어 캐나다의 안전한 난민캠프에 수용된 모이라가 오프레드의 남편 루크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리스트에 기입해 두었던 모이라의 탈출 소식을 알게 된 루크가 한달음에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의지할 데 없는 모이라는 자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는 루크의 말에 뜨거운 포옹으로 대답한다.

 

물론 이런 시녀들의 집단 불복종에 길리어드가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검은밴이 오프레드를 잡아가기 위해 출동하고, 소리 없이 등장한 닉은 오프레드에게 자신을 믿고 그냥 그녀를 잡으러 온 수호자들을 따라가라고 말한다. 오프레드는 엄동설한에 제대로 된 복장도 갖추지 못한 채, 두 명의 수호자들을 따라 자신의 운명에 어떤 일이 닥칠 지도 모른 채 검은색 밴에 올라탄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인터넷에 떠도는 <시녀 이야기> 시즌 2에 대한 잡다한 정보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오프레드는 여전히 시즌 2에서도 자신의 빛나는 역할을 이어 나갈 것이다. 모이라 역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원작자 마거릿 애트우드가 속편을 쓰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직 소설을 다 읽은 게 아니어서 과연 맨 마지막 부분에 정상화된 길리어드에서 과거를 연구하던 이들이 던진 10가지 질문인가(아직 못 읽어봐서 확실하진 않다) 대해서 어떤 식의 대답이 나올진 모르겠지만 얼마나 흥미로울 지 모르겠다.

 

페어 더너웨이가 세레나 조이(배역으로는 적당하다는 느낌이다)로 나오는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해서 어떨진 모르겠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으로 볼 때, 아마 영화 버전보다 이번 드라마가 완성도나 스토리 전개의 짜임새에 있어서 훨씬 더 감각적이고 재밌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서 다루는 페미니즘 혹은 젠더 이슈를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소수의 포퓰리즘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는 디스토피아적 발상 등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녀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의 진폭은 상상 이상이다. 가임기의 여성들을 치욕적인 재교육 과정을 거쳐 인간이 아닌 “국가적 자원”으로 간주하는 신정국가 길리어드 전체주의의 실체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채 10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렇게 완벽하게 국가를 바꿀 수가 있을까.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1930년대 합법적인 방식으로 국가권력을 획득한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어떤 국가를 만들어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집단지도체제로 길리어드를 지배하는 10명의 커맨더들 역시 일체의 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신의 뜻(정말 자의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이라는 특정한 계급이 사회적 존재로서 누릴 수 있는 일체의 자유와 재산을 배제시키고 “국가적 자원”이라는 미명 아래 미래세대의 재생산에 투입시키지 않았던가. 그들은 타인에게는 엄격한 종교적 규칙들을 강요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저벨이라는 환락의 공간을 만들어 억눌린 욕망을 해소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리바이어던들의 모습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소설에서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주인공 오프레드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모스는 이번 칸느 영화제에서 스웨덴 영화 <스퀘어>에도 출연했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는 배우였는데 이번 기회에 인생작을 만났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길리어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딸 해나를 봤을 때 그 절규하는 장면는 정말 최고였다. 커맨더 프레드를 기만하기 위해 그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거짓말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최소한 자신이 임신한 동안만은 세레나 조이가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아는 영민함으로 신에게 워터포드 가정에 아이를 내려 달라고 기도했겠느냐고 세레나 조이에게 되묻는 장면은 또 어떤가. 그 외에도 커맨더 프레드 역의 조셉 파인즈(셰익스피어 전문배우라고 했던가), 우아하면서도 냉혹한 이미지의 딱 어울리는 세레나 조이 역의 이본느 스트라호브스키 등의 열연은 어쩔 수 없이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역시나 우울하고 잿빛 이미지의 길리어드에서의 삶을 정확하게 타격하고 있는 배경음악도 칭찬하고 싶다.

 

올해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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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6-16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0@기대해봐야겠어요.
빨리 책을 펴야하는데-

레삭매냐 2017-06-16 13:30   좋아요 1 | URL
책이랑 같이 병행해서 드라마도 보고
책도 읽고 그러니까 더 재밌는 것 같습니다.

전 한 1/4 가량 읽었는데 분발해야겠네요.

2017-07-04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4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싱글맨
톰 포드 감독, 줄리안 무어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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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책을 잡고 살았다. <베를린이여 안녕>으로 시작해서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싱글맨>에 이르기까지 국내에 출간된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책은 모두 다 읽었다. 그래봐야 꼴랑 세 권 밖에 안되지만. <싱글맨>은 원서까지 구해서 번역판과 비교해 가며 읽기도 했다. 번역판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오역과 의역이 심해서 아쉬웠지만 원작가가 하고 싶었던 고갱이는 알아 들었으니 그 정도면 됐다 싶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원서에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그리고 나서 자연스레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최근 들어 거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는 아주 많이 끌렸다. 탑게이 패션 디자이너로 죽어가던 구찌를 회생시킨 톰 포드가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그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첫 번째 연출작으로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자도 그렇고 감독 자신도 성적소주자이니 이 얼마나 훌륭한 조합인가 말이다.


이미 기존의 책 리뷰에서 <싱글맨>의 스토리를 다루었으니 아무래도 영화 리뷰는 원작과 영화의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다. 우선 영화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 하지만 원작을 그대로 영화화할 수는 없었겠지. 영화는 또다른 창작의 세계 아닌가. 감독이 원작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과감하게 들어내고, 또 자신의 생각이 담긴 부분들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섬세한 감성을 가진 성적소수자답게 톰 포드는 슬로우모션 컷으로 주인공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 분)이 애인 짐(매튜 구드)이 죽고 난 뒤에 상실감을 멋지게 영상화하는데 성공했다. 원작에서처럼 영화에서도 조지의 파란만장한 하루를 그린다. 시대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를 한달 남짓 앞둔 1962년 11월 30일 금요일(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덴버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짐의 죽음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마 소설에서는 짐이 오하이오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지.




자그마치 1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파트너 짐의 죽음 앞에 (영화 속에서) 조지는 모종의 결심을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소설과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조지는 주변을 정리하고 자살을 결심한다. 소설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자살을 의미하는 권총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의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조지는 메르세데스를 몰고, 바닷가에 자리 잡은 멋진 별장 같은 집을 가지고 있다. 기상하고 나서 일상의 조지로 돌아가는 과정은 소설의 흐름을 그대로 따른다. 잠깐 엿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의 일상을 일별하며 차를 운전해서 자신의 일터로 향하는 조지. 바로 이 장면에서 톰 포드는 슬로우컷으로 성적소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거리가 얼마나 멀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과 조지가 퇴근 후에 샬럿(줄리엄 무어 분)에게 사다 줄 술을 사러 가는 길에 만난 카를로스와의 담배피는 시퀀스가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톰 포드가 아니라면 도저히 잡아낼 수 없었던 그런 매혹적인 최고의 장면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자신의 일터인 대학에 도착해서 동료 교수와 이야기하는 동안 테니스를 치던 젊은 육체를 훑던 조지의 일별, 그건 어쩌면 주인공의 눈길이 아니라 카메라 연출을 지시하던 감독의 욕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쉴새없이 떠들어 대며 쿠바의 미사일 위기를 말하는 동료 교수가 식구들과 함께 방공호에 지내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에서 감독의 유머감각을 얼핏 보기도 했다.




현재진행형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톰 포드는 조지와 짐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짐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지가 거의 정신이 나가 폭우 속에 샬럿을 찾아가는 장면 등의 플래시백으로 처리하는 컷은 일품이었다. 소설에서 크리스 아이셔우드가 공을 들여 조지의 상실감에 대한 심리묘사에 치중했다면, 톰 포드는 컷 단위로 이루어진 일련의 시퀀스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주인공의 심리를 간결하게 재현해낸다. 그게 바로 영화와 소설의 결정적 차이였을까. 굉장히 마음에 드는 신예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 수 없다.




소설에서는 정말 인상 깊었던 강의 장면은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아쉬웠다. 올더그 헉슬리의 소설 <After Many a Summer>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소수그룹에 대한 강의 내용으로 압축하고 건너뛰는 시퀀스는 소설의 참맛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대학 강의 시퀀스에서 충격적인 장면 하나는 교수님 바로 앞에서 대놓고, 그것도 강의 도중에 줄담배를 피워대는 로이스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대학 분위기가 자유롭다지만 아마 1960년대에는 그랬던 모양이지. 믿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한때 연적이었던 병실에서 죽어가는 도리스를 방문하는 대신 톰 포드는 리쿼 스토어에서 카를로스와의 만나 그리고 은행 방문으로 새로운 재창조했는데 나름 수긍이 가는 모디피케이션이 아니었나 싶다. 짐과 바위산 위에서 나누는 플래시백으로 처리된 대화도 마음에 들었다. 조지가 권총 자살을 연습하는 장면도 소설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부분인데, 침대 위에 침낭을 깔고 이런 저런 자세를 시도해 보는 장면이 웃프게 그려진다.


이즘에서 주인공들의 연기에 대해 품평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 우리에게는 <킹스맨>의 비밀 에이전트로 비로소 널리 알려졌지만, 6년 전에 만들어진 <싱글맨>에서 그는 자신의 필생의 역작에 가까운 그런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느낌이다. 짐의 부고를 들었을 때, 보여준 그의 눈물 연기 그리고 폭우를 뚫고 샬럿을 집-내 예상대로 샬럿의 집에 대한 톰 포드의 공간설정은 정말 탁월했다-에 찾아가 오열하는 장면에 대해서 어떤 부연설명도 필요 없는 그런 절정의 연기를 보여 주지 않았던가. 샬럿의 집에 가서 춤추는 장면은 또 어떤가. 그동안 줄리언 무어가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싱글맨>을 통해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짧은 분량에 등장하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시니컬하면서도 세상 희로애락을 한줄기 담배연기에 말아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조지의 제자 케니 포터 역을 맡은 니콜라스 홀트의 연기도 눈여겨 볼만하다. 전쟁이 끝난 1946년 조지가 짐을 처음 만난 스타보드 사이드 바로 술을 찾아간 조지는 케니를 만나게 되고 밤수영에 도전했다가 낭패를 당한다. 소설에 나오지 않지만 톰 포드는 이마에 난 상처를 케니가 치료해 주고자 밴드를 찾다가 짐의 누드 사진을 보고 중년교수의 비밀을 알게 되는 케니의 심리묘사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요즘 하도 영화를 보지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 영화 <싱글맨>은 기대이상이었다. 바로 직전에 원작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영화를 보면서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다른 작품들도 빠른 시일 내에 번역돼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원한 바람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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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1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에서의 콜린 퍼스는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짐 캐리를 보는 것 같았달까요. 내가 알던 그 배우가 아니잖아!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짐 캐리 오열씬도 인상적이죠. 톰 포드처럼 미셸 공드리도 배우를 잘 살려 영화 참 멋지게 찍었죠.

레삭매냐 2017-06-21 09:12   좋아요 1 | URL
전 아직 <이터널 선샤인>을 보지 못해서요 :>
다만 <트루만쇼>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아니 이 짐 캐리가 내가 그전에 에이스
벤츄라에서 본 그 짐 캐리가 맞나 싶더라구요.

영화 <싱글맨>의 영상은 정말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트란 안 훙의 <그린 파파야 향기>
에 버금갈 만한 탐미적인 영상이 독보적이었습니다.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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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넛셸>을 읽기 위해 그동안 모아 두기만 하고 읽지 않고 있던 이언 매큐언 작가의 소설을 네 권이나 읽었다. 그리고 <이런 사랑>도 읽기 시작했지만, 아직 완독에 이르진 못했다. <칠드런 액트>, <이노센트>, <체실 비치에서> 그리고 <암스테르담>을 읽으면서 그의 팬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게 되었다. 이 모든 건, 바로 이 책 <넛셸>을 읽기 위한 몸풀기 운동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주에 신간 <넛셸>이 수중에 들어왔고, 다른 독서를 멀리하고 바로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번달 독서모임 선정작이 <넛셸>이라는 건 비밀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언 매큐언의 소설의 주인공은 남성인데, 이번 작에서는 그런 일종의 편견을 부수었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바로 모든 것을 청력(hearing)으로 판단하는 태아다. 아, 그리고 이 소설에서 빠뜨릴 수 없는 전범은 바로 <햄릿>이다. 위대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라고나 할까.


비극 <햄릿>에서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숙부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관계에서 결국 비극으로 끝난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명백한 <햄릿>의 오마주 <넛셸>의 주인공 태아는 만삭의 어머니 트루디와 그녀의 애인이자 삼촌인 클로드의 아버지 존 케언크로스에 대한 살인모의를 엿듣는다. 곧 탄생을 앞둔 주인공 태아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태아가 세상을 배우는 방법은 어머니 트루디가 즐겨 듣는 라디오드라마와 팟캐스트 방송이다. 지난달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이달의 토론책으로 정하자고 의견을 개진하면서, 내용을 설명하니 우리 독서 멤버는 바로 낙태반대에 대한 주장이냐고 강력하게 항의하셨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점이었다. 낙태 시점에 있어서 태아가 인간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매번 생겼었는데, 아무리 문학적 상상력의 발로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생각할 정도라면 당연히 인간으로 간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주장을 듣고 나니 단순하게 소설의 서사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어쨌든 태아가 가진 실존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태아는 시인이자 출판업자인 아버지 존을 죽이는 시도를 가진 어머니와 삼촌을 증오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햄릿>에서 주인공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고민했다면, 역시 1989년 발표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마이키 이야기>에서 어른 뺨치는 대사로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예의 태아처럼 이언 매큐언의 태아도 유사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애증관계로 대변되는, 무엇 하나 복잡하지 않은 게 없는 인간사에 대한 고통과 번민이야말로 <넛셸>에서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노련한 작가 이언 매큐언은 다양한 장치로 서사의 전개와 반전을 마련했다. 우선 올빼미 시인 같이 주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시 말해서 팔리지 않는 시인을 육성하고 후원하는 무능력한 남편으로 아버지 존을 매도해서, 자신들의 살인모의를 정당화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팩트를 동원해서. 과연 그게 그들의 살인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부동액을 이용한 독살을 계획한다. 자신의 부정한 어머니를 ‘작은 생쥐’라 부르는 클로드는 트루디와 함께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음주와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출생에 대비해서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세상에 내던져진 자신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인다. 아버지를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탓하면서도 동시에 음모의 가담자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한편, 태아의 복잡한 심정을 지나치게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이언 매큐언이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탁월한 매력들이 실종된 느낌을 받았다. 2~3일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은 틀렸다. 다 읽는데 일주일이나 걸렸으니 말이다.


작가가 준비한 트루디와 클로드 악당 2인조에 대한 불의의 일격은 존이 갑자기 대동하고 나타난 올빼미 시인 엘로디라는 여성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트루디를 여전히 사랑하는 존이 그녀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악당들의 살인 속도를 가속화시킬 뿐이었다. 존은 사랑에 빠져 9년 전에 찾았던 두브로브니크 시절까지 회상씬으로 돌려보지만, 욕정(lust)과 금전의 유혹에 빠진 트루디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제스처였을 뿐이다. 아, 악당들의 표적은 역시나 존의 막대한 부동산이었다.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최종적 가치는 돈이었다만 말인가. 가치의 권위적 분배라는 정치적 함의가 실종된 시대에 금전이야말로 인간에게 허용된 유일한 욕망의 귀결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입맛이 씁쓸해졌다. 그 외에도 간간히 이언 매큐언은 난민들이 지중해에서 수천 명씩 빠져 죽는 시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서구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IS 집단에 대한 이야기들도 시의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들은 다음과 같다. 태아가 트루디를 통해 대신 섭취한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 성인들도 전문적인 취향과 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할 생산지까지 파악하는 놀라운 능력 말이다. 아버지 존을 살해하고 경찰 조사에 대비해서 트루디와 클로드가 알리바이를 맞추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욕정으로 얽힌 관계는 상호불신으로 이어지고, 클로드의 배신을 예상한 트루디가 마련한 장치가 보여주는 기발한 발상.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문득 태아가 엄마 트루디의 뱃속에서 그런 놀라운 사유에 이르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긴 시간을 거쳐 다양한 종류의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었던가. 아이를 기르다 보니 꼬맹이가 쉴 새 없이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듣는 중이다. 질문과 응답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게 기본이 아닌가? 소설의 주인공 태아는 그런 일체의 과정 대신 라디오드라마와 팟캐스트만으로 특정한 지식(특히 시각적 정보)도 없이 삶을 이해하기 위한 그렇게 복잡한 개념들을 어떻게 배웠단 말인가. 아기들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청각이라는 기능을 이용해서? 이언 매큐언 작가의 기발한 상상은 어쩌면 처음부터 이런 한계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 그렇다면 과연 악당들의 음모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중반의 다소 지루한 전개에 비해 후반에 작가가 야심차게 준비한 설정(무려 태아의 복수!!!)은 이 대가의 실력이 역시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역설적이지만 출생을 앞둔 태아의 복수는 필멸이라는 숙명을 진 인간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들어준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의식 속에 자리한 선악의 구분에 대해서도. 아무래도 난 다시 한 번 <햄릿>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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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6-13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넛셸>을 읽기 위한 몸풀기로 <칠드런 액트>, <이노센트>, <체실 비치에서> 그리고 <암스테르담>을 읽으셨다니, 일어나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레삭매냐님의 이언매큐언 리뷰가 올라올 때마다 너무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저는 <속죄>랑 <칠드런 액트>만 읽었고 다른 책들은 일단 대기중인데, 다른 책들보다 이 책 <넛셸>을 먼저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드네요. 태아의 목소리라니 기대되고, 다시 <햄릿>을 부르는 작품이라니... 기대만발입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7-06-13 11:46   좋아요 0 | URL
이번달 저희 독서모임 책으로 제가 추천해서
더 열심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멤버 중의 한 분은 <이런 사랑>이 최고
라고 하셔서 그 책도 어렵사리 구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위화 작가의 <형제>와 요즘 드라마
로 핫한 <시녀 이야기>에 밀려 버렸네요.

다음 주말이 모임인데 그 전에 <이런 사랑>과
<토요일> 그리고 <시멘트 가든>까지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 이언 매큐언의 최고작이라고 하는 <속죄>
는 맨 끝에 읽어 보려구요. 최고라고 하니까요.

단발머리 2017-06-13 11:51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독서모임 활동 열심히 하시나봐요. 저는 아이들이랑 아이들 엄마들이랑 6년째 독서모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애들이 많이 커서 독서목록은 근사한데... 아이들이 열의가 별로 없습니다. 엄마들은 뜨거운데 ... ㅎㅎㅎㅎㅎㅎㅎ

다 읽으시려면 엄청 열씸히 달리셔야 될듯요. 그런데도 부럽습니다.
저는 레삭매냐님 페이퍼 보고 <시녀이야기> 특별판에 대한 갈증이....
좀 무섭기도 한데, 읽고 싶기도 하고 ㅠㅠ

<속죄>는 이렇게 부른다죠. 이언 매큐언 최고작 <속죄>

레삭매냐 2017-06-13 13:50   좋아요 0 | URL
6년이나 되셨군요~
저희도 7년 되었네요. 그동안 우여곡절
이 많았지만 어찌어찌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시간의 더께가 쌓이니 편안하고 좋더라구요.
꾸준하게 같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녀 이야기> 무지 재밌습니다. 어젯밤에도
잡으니까 한 100쪽 정도 진도가 나가더라구요.

강추합니다. 최고작 속죄도 읽어야겠네요...
 

 

반세기도 넘게 불화하던 미국과 쿠바가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게 벌써 3년 전이었던가. 1959년 1월 1일, 훌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피델 카스트로는 인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새로운 독재자가 되어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대중에게 설파했지만, 이웃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로 카스트로와 그의 혁명 동지들의 꿈은 한낱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쿠바 섬에 상륙한 이래, 식민지배의 사슬은 끊어 버렸을 진 몰라도 지상낙원 건설이라는 꿈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으로 미국과 국교정상화가 되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트럼프는 국교정상화 이전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시 한 번 카리브해에 어떤 종류의 허리케인이 불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다.

 

쿠바의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남북 라틴아메리카를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 때 소련이 미사일을 배치해서 미국의 목을 겨누지 않았던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의 하나였던 토머스 제퍼슨은 일찍이 쿠바를 미합중국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퍼슨 뿐만 아니라 존 퀸시 애덤스와 뷰캐넌, 먼로를 비롯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쿠바를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기를 고대해 마지 않았다. 쿠바섬에 평화롭게 살던 인디오 원주민들을 몰살시키고 식민화한 스페인 제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미국은 짭짤한 수익을 냈다. 필리핀 제도와 괌 그리고 쿠바를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플래트 수정안이라는 해괴한 법안으로 지금도 말썽이 되고 있는 관타나모 기지를 비롯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쿠바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합법적 장치들을 만들어냈다.

 

미국은 자신들의 도움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 수 있었던 쿠바에 개입해서, 대의민주주의를 이식한다는 명분 아래 부정부패를 일삼는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매판자본전략을 활용해서 쿠바의 모든 것이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게끔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40년 뒤에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끄는 사회주의 칠레의 구리 가격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던 것처럼, 쿠바의 유일한 생산품인 사탕수수 재배를 통해 만든 설탕산업을 비롯한 쿠바의 모든 산업을 미국 자본에 종속시켜 버렸다. 다시 말해 기존의 지배자가 가톨릭 십자가를 앞세운 제국주의 스페인이었다면, 이번에는 자본주의 미국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지배자는 군바리이자 깡패두목에 가까운 바티스타를 대리인으로 삼아 기존의 불평등한 플래트 수정안을 폐기하고, 외국의 이익을 통제하며, 교육 제도 등을 개혁하려고 했던 안토니오 기테라스의 기도를 무산시키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를 암살시키는 방식으로 자국의 쿠바에서의 우월한 기득권 유지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아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 이전에 걸출한 혁명가 호세 마르티가 있었다는 점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어제 읽은 <체 게바라>의 상당 부분도 쿠바혁명에 할애되었었는데, <쿠바혁명과 카스트로>에서는 대놓고 쿠바 혁명의 연원과 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피델 카스트로를 주연으로 삼아 리우스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1953년 몬카다 병영 습격사건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카스트로는 망명지 멕시코에서 운명의 동지 체 게바라를 만나 참단한 실패를 경험삼아 새로운 조직과 혁명 대의 그리고 치열한 군사훈련을 통해 쿠바에 상륙해서 역사에 기록된 게릴라 전투의 신화를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어쩌면 쿠바야말로 무장투쟁을 통한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 그룹은 우선적으로 토지개혁으로부터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전문적인 경제관료나 국가운영을 해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 게릴라 전사들은 상당한 시행착오도 경험했다고 한다. 수만 명을 희생시킨 독재정권에 기생했던 부역자 청산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독재자와 혁명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가톨릭교회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좋지만, 공산주의는 싫다는 대중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혁명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카스트로는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CIA의 사주를 받는 반혁명그룹의 지속적인 공격과 부유층 부르주아 계급 사보타주로 쿠바는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폴란드 같은 사회주의 진영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무력사용도 마다하지 않았고, 케네디 행정부 시절 처참한 실패로 끝난 피그스만 침공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 때 포로로 잡힌 용병들 몸값으로 한 명당 한 대의 트럭을 요청해서 관철시켰다고 했던가. 용병 쿠바인들이 쿠바 경제발전에 유일하게 공헌한 일이었다고, 리우스는 그리고 있다.

 

점점 쿠바가 사회주의 진영으로 경도되는 움직임을 미국은 쿠바산 설탕의 수입을 중지하고, 자신의 동맹국들에게도 쿠바의 설탕을 구입하지 말 것으로 요청했다. 미국은 1970년대 아옌뎨의 칠레산 구리 판매처를 없애 버리기에 앞서, 카스트로의 쿠바산 설탕에 대한 경제적 제재라는 방식을 동원했던 것이다. 한편 1963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카스트로 정권은 사회 다방면에 걸쳐 본격적인 개혁에 나섰다. 혁명 영웅 체 게바라를 공업부장관에 임명해서 경제 재건과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에 나섰지만, 모든 것을 미국에 의존해 왔던 상황에서 설비투자를 위한 자본도, 공장 운영을 위한 기술력도 없던 상황에서 혼란을 가중시켰고, 시련의 시기였다고 리우스는 적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연 재해에, 미국의 침공에 대비한 전쟁물자 비축도 허약한 쿠바 경제에 짐이 되었을 것이다. 다수의 미국 경제전문가들이 쿠바 경제의 몰락을 예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쿠바는 1969년까지 농지개혁을 필두로 해서 도시개혁, 교육제도와 의료제도의 개혁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저자는 기록한다. 무엇보다 높은 문맹율을 헌신적인 교사들의 노력으로 라틴아메리카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수많은 부르주아 의사들이 미국으로 탈출하면서 절대 의료전문가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훗날 베네수엘라를 비롯해서 라틴아메리카 각지로 의료진을 수출할 정도로 뛰어난 의료인들을 양성하는 기초를 세웠다.

 

물론 리우스 작가가 쿠바혁명에 상당히 호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종의 선전선동도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들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리우스 작가는 바티스타 정권에 부역한 반대파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망명함으로써 오히려 쿠바가 내정개혁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식의 전개하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너무 좋게만 해석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어쨌든 미국의 계속되는 경제봉쇄로 쿠바 경제가 입은 타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수퍼맨 미국을 상대로 반세기가 넘게 혁명정신을 고수해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카스트로 독재에 대한 평가도 객관적으로 다루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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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9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찾는 헌책방에 라이트 C. 밀즈의 《양코배기야, 들어봐라!》라는 책이 있어요. 밀즈는 이 책에서 쿠바 혁명을 지지합니다. 레샥매냐님의 글을 읽으니까 밀즈의 책을 사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사실 몇 개월 전부터 이 책을 눈여겨보고 있었거든요. 책의 주제가 유행이 지난 거라서 그런지 이 책을 고르는 사람이 없어요.

레삭매냐 2017-06-09 11:51   좋아요 0 | URL
모름지기 한 가지 사건에는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한데, 그런 균형이 아쉽습니다.

<양코배기야, 들어봐라>도 재밌는 책 같아
보이네요. 저도 바로 램프의 요정 헌책방
에 있나 검색해 봤네요.

말씀 대로 유행타는 주제가 아니라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듯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