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오드리!
로빈 벤웨이 지음, 박슬라 옮김 / 아일랜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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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16살 난 오드리. 그녀에게 특별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여느 또래들처럼 같이 학교에 다니고 쇼핑몰의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알바를 뛰는 지극히 평범한 여학생이다. 굳이 남들과 다른 점을 찾는다면, 음악에 대해 조예가 거의 마니아급이라는 것 정도? 아 하나 더, 그리고 언젠가 오버 그라운드를 꿈꾸며 밴드활동을 하는 남친이 있다. 바로 이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이 책 <잠깐만, 오드리!>의 시발점이 된다.

자신보다는 오로지 음악에만 매달려 사는 남친 에반에 대해 오드리는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절교를 선언한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실연을 당한 에반은 이 실연을 소재로 해서 노래 <잠깐만, 오드리!>를 만들고, 그가 이끄는 밴드 ‘두 구더스’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사방에서 <잠깐만, 오드리!>가 들려오고, 보통의 삶을 원했던 오드리는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일반적인 칙릿 소설 같기도 하지만, <잠깐만, 오드리!>에는 얼핏 보면 그냥 무심코 넘기기에는 심오한 주제들이 많은 것 같다. 일단, ‘두 구더스’로 대변되는 음악 산업계의 일면이 그 하나이다. 팝차트 정상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어느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기타를 뜯고, 드럼을 두들겨 대는 밴드의 자화상이 보인다.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결국 팬들의 관심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거대한 소비 시스템 하에서 움직이고 길들여지는 주인공들이 어떻게 보면 체스 판의 말과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밴드들은 대중이 좋아할만한 노래들을 만들기 위해 고심을 하고, 대중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소비한다. 소비의 통로는 정말 다양하다. 우리나라에 싸이월드에 해당하는 마이스페이스가 그들의 주요 홍보매체가 되고, 메신저과 핸드폰은 그런 음악 상품들을 계속해서 확대 생산하는데 있어서 한몫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아주 일상화가 되어 버린 파파라치들은 확실하게 “뜬” 대중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진을 찍어서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이런 상황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이 되었는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한편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가정의 중요성은 어김없이 다시 한 번 등장해서 오드리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새로 사귄 남친과 다투고 절친 빅토리아와도 대판 붙어서 그야말로 어디에 마음 둘 데 없는 오드리의 최후의 보루는 결국 아빠와 엄마 그리고 뚱뚱한 애완고양이 벤도몰레나가 지키는 홈 스윗 홈(home sweet home)인 것이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이 소설에서도 헤어진 남자 친구가 만든 노래 때문에 일상의 삶이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그런 사건(!!!)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이 쓰일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자신은 앵무새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은근 콘서트 장에서 VIP 대접을 받고, 백스테이지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그런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권을 마냥 즐기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놓여 있는 그 넓은 태평양 바다만큼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자유로운 그네들 미국의 십대들의 삶은 역시나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네 그것과는 메울 수 없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각 장의 부제처럼 달려 있는 팝송들 또한 예전 같았으면 모두 꿰고 있었을 테지만, 팝송에 대한 미련을 던 지금으로서는 낯설기만 했다. 물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밴드의 곡들도 있어서 반갑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거의 모르는 밴드들이 많았다. 이런 노래들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면 소설을 읽으면서 좀 더 이해가 잘 되었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X세대, Y세도 아닌 아이팟, 메신저와 마이스페이스로 무장한 새로운 Z세대의 삶을 관통하는 즐거움이 있는 <잠깐만, 오드리!>의 세계에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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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5
마이크 마퀴스 지음, 김백리 옮김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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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의 마이크 마퀴스가 쓴 <밥 딜런 평전>의 원제는 <자유의 종소리: 밥 딜런 예술의 정치학>이다. 1960년 초반 포크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당시의 치열했던 시대정신을 노래했던 밥 딜런에 대한 헌정사라고 할 수가 있겠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를 제패한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가 위세를 떨쳤던 50년대가 지나고 6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 사회는 내외의 많은 문제점들로 그야말로 폭발 일보 직전에 있었다. 우선 흑인들이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시작된 공민권 투쟁으로 대표되는 내부문제들과 외부적으로는 바로 미국의 앞마당이라 불리던 쿠바에서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촉발된 미사일 위기와 점점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던 베트남전의 확대는 물질적 풍요로 가득했던 미국 사회에 일대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미국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더 이상 바랄게 없을 정도의 풍족했지만, 평등에 기초한 공존과 반전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이상주의는 보수적인 기존 질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었다. 소위 말하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제도사회권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그들의 부모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으로 인한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 가운데, 미네소타 히빙 출신의 유태계 출신 밥 딜런(이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이라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쿠스틱 포크기타와 현실에 기초한 가사로 무장한 약관의 예의 싱어 송라이터는 말랑말랑한 팝송들이 판을 치고 있던 세태에 일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때 빚어진 반항아적이면서 구시대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의 이미지는 그 후 밥 딜런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물론 그가 작가가 말한 대로 저항그룹들과 명백하게 선을 그으면서 변절을 한 후에도 말이다.

밥 딜런이 자신의 최전성기를 달리던 1962~7년 동안 지금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커버가 되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명곡들을 연달아 히트시킨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그렇겠지만, 팬들의 인기를 염두에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싶은 아티스트로서의 진정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밥 딜런은, 1965년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뉴포트 포크페스티벌에서 종래의 어쿠스틱 기타 대신 전자 기타를 들면서 팬들을 경악시키기에 이른다. 진보진영으로부터는 ‘자본주의화’되었다는 혹평을 받는 수모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대 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던 우드스톡 페스티벌에도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저항정신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음악도 모두 상업화시켜 버리는 음반업계의 생태를 알고 있었던 밥 딜런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을 추구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자신만의 길을 방법을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 자신의 음악적 시도들이 팬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받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선배 우디 거스리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은 밥 딜런은 동시대의 필 옥스와 같이 정치적 성향이 강한 노래들을 발표한 아티스트들과 서로 상호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 후 70년대 초반 등장한 미국 노동자 계층의 영웅이라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들이 책의 후반부에서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제목이 왜 <밥 딜런 평전>이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실 책을 읽어 보면 알게 되겠지만, 밥 딜런의 평전 같은 성격보다는 밥 딜런이 전성기를 누리던 1960년대 음악계 전반에 걸친 작가의 통찰이 돋보이는 보고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팝송을 즐겨 들었지만, 왠지 포크하면 노친네들이 부르는 진부한 노래라고만 생각을 하고 아예 귀를 닫았던 적이 있었다. 이 책 <밥 딜런 평전>을 읽으면서 예전엔 일부러 듣지 않던 밥 딜런의 노래들을 구해서 듣게 됐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바뀐다고 했던가. 하지만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은 오늘날에도 당시 시대정신을 노래했던 밥 딜런의 노래들이 새로운 커버 버전으로 해서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걸 보면 진정성에 기반한 예술의 불멸성이 새삼 느껴졌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케네디 대통령 -> 로버트 케네디 대통령 후보 (224페이지)
2. 아티스 -> 아티스트 (233페이지)
3. Yours -> Your (27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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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입맞춤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9
에펠리 하우오파 지음, 서남희 옮김 / 들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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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리 하우오파.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책 <엉덩이에 입맞춤을>을 쓴 통가 출신의 인류학자이자 작가이다. 1939년 통가 출신의 선교사 부모님 슬하에서 파푸아 뉴기니에서 태어났다. 뉴기니-통가 그리고 피지를 잇는 그야말로 남태평양 토종 작가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울러 그의 작품을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태평양 출신의 작가가 쓴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남태평양에 있는 가상의 섬, 티포타에 사는 오일레이 봄보키 그리고 그의 엉덩이 질환이 주소재이다. 아니 좀 더 에펠리 하우오파 스타일로 까발리자면 똥구멍이 문제라는거다. 하지만, 비위가 약하신 분들도 있을 터이니 앞으로는 항문으로 통일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어쨌든 남태평양에 둥둥 떠 있는 조그만 섬 티포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유명인사인 우리의 주인공 오일레이가 정말 남부끄러운 병에 걸려 고생을 하게 됐다. 그의 전력은 전 헤비급 챔피언으로 철저한 남성우월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정말 남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병이 났다면 바로 고쳐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티포타 사람들 모두 현대식 병원에 가기를 꺼린다. 그건 바로 병원에 가서 병이 낫는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우수한 의료진과 약품의 부족으로 담당의사인 타우비 메이트마저 병원에 오는 것을 마다할 정도란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치료사 혹은 치유사라고 불리는 엉터리 주술사들이다. 하지만 어느 의사들도 그리고 도토레(치료사-치유사들의 고상한 표현이랄까)들도 오일레이의 엉덩이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또 티포타 사람들은 어찌나 그렇게 남의 이야기들을 하기 좋아하는지 그렇게 쉬쉬했건만 오일레이의 엉덩이에 대한 비밀은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렇게 전국적인 소문이 되어 버렸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정말 포복절도할 만큼 재밌고 신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지은이 에펠리 하우오파는 역시 인류학자답게 곳곳에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남태평양 사람들의 삶에 대한 분석들을 죽 나열해서 보여 주고 있다. 작은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타인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관심과 걱정들이 그것이다. 이제 핵가족화의 전개로 전통적 지역공동체의 개념이 파괴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이 그네들의 삶 가운데서는 절절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대의술이 아닌 전통신앙에 의존한 치료사 혹은 치유사들에게 병 치료를 구하는 모습도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그네들만의 문제가 아니듯이, 정도에 상관없이 일단 아프면 돈이 든다. 하지만 먹을 것조차 변변하지 않은 마당에 남태평양에 사는 이들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그들이 병원을 찾지 않는 이유는 단지 현대의학이 못미더워서만이 아닐 것이다. 값비싼 진료비와 그에 상응해서 들게 되는 약값을 도대체 감당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뭐 이런 문제는 마이클 무어의 <식코>에서 보이듯이 제3세계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주인공 오일레이가 부인 마카리타에게 청혼하는 과정 또한 남태평양의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재미를 보여준다. 이름나고 이젠 지역유지로 돈 많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은 오일레이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미래의 와이프 마카리타를 만나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마카리타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그네들의 딸을 자신에게 달라고 하자 마카리타의 부모님들은 엉뚱한 오해를 하면서도, 과히 싫지 않은 내색을 한다. 에펠리 하우오파의 재치와 유머가 반짝반짝 빛을 낸다.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하필이면 신체의 많은 부분 중에서 하필이면 작가는 엉덩이를 소재로 삼았을까? 일단 어느 정도는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에 의거한다고 한다. 4년간의 엉덩이 질환으로 고생한 그는 자신의 엉덩이가 다 나으면서 엉덩이를 소재로 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신체의 부위 중에서 가장 천대 받는 엉덩이를 위해서 말이다. 그건 바로 은유적으로 세계사적 국면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남태평양 아일랜더(섬나라 사람들 정도가 되겠다)들을 지칭한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남태평양 바다는 강대국들의 핵실험장이 되고, 참치사냥을 위한 낚시터가 되고, 돈 많고 부유한 관광객들을 위한 휴양지가 될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네들의 삶의 연속성을 계속된다는 것이다. 엉덩이가 아프고, 그 아픈 엉덩이를 낫게 하기 위해서 굿판을 벌이고 침을 맞고 별의별 짓을 다해도 낫지가 않는다. 가난과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세계인들은 몸부림을 치지만 그들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하우오파의 그런 재밌는 해학 속에는 이런 반의적이면서 고의적인 숨김 들이 존재한다. 확실히 <엉덩이에 입맞춤을>은 읽기에 재밌는 책이다. 하지만, 살짝 한 꺼풀만 벗겨 보면 21세기를 살아가는 남태평양 사람들의 삶의 애환들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다. 이런 뛰어난 작품을 만나게 된 행운에 입맞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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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족을 믿지 말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이선 옮김 / 김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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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그 방대한 분량에 한 번 놀랐고, 다음으로 이 책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여류작가 리저 러츠의 상상력과 구성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하지만 오락적 재미와 더불어서 다양한 캐릭터들의 치밀한 묘사와 속도감 넘치는 진행으로 책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페이지가 넘어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소설의 배경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지역이다. 그리고 1남 2녀의 자녀들을 둔 스펠만 가족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이 소설의 핵심 포인트는 바로 이들의 직업이다. 그들은 가족단위로 운영되는 사립탐정업을 하고 있다. 주인공 이자벨 스펠만은 올해 28세로 십 수 년째 ‘패밀리 비즈니스’에 참여하고 있다. 미행으로부터 시작해서 신원조회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능력의 소유자다. 물론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미성년시절부터 절친 페트라와 더불어 갖가지 비행들을 저지르면서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반면 두 살 터울 위의 오빠 데이비드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모범생 이미지로 시간당 400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촉망받는 변호사로 패밀리 비즈니스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있다. 그리고 과거 형사로 일하다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났지만 아내 소피 리를 잃은 삼촌 레이가 있다. 은퇴 전에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지만, 가까스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이후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레이 삼촌의 이름을 딴 막내 여동생(14세) 레이가 있다. 단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미행을 취미생활로 삼고 있으며 이자벨의 단골 술집인 ‘철학자 클럽’에 들러서 바텐더 밀로를 괴롭히며 진저에일을 마셔댄다.

이런 탄탄한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해서 저자 리저 러츠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리저 러츠는 바로 이런 평범하지 않은 조금은 이상한 가족들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현대 가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보다. 근래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은근히 예전에 TV 다이닝에서나 보이는 그런 전통적인 가족의 중요성에 새삼 비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자녀들이 부모들의 속을 뒤집어 놔도, 그들은 언제나 이자벨과 레이에게(모범생 데이비드는 예외로 하자!) 항상 “사랑한다”고 주문을 외운다.

아마도 저자 리저 러츠가 그랬듯이 가족의 이런 든든한 후원이 자녀들을 더 이상의 사회적 일탈행위들로부터 막아낸 원동력이 아닐까. 리저 러츠는 이 소설을 통해 애써 만든 캐릭터들이 아까웠던 모양으로, 시리즈 소설을 쓸 계획 중에 있다고 한다.

물론 가족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다소 진부해 보이는 주제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가족사에 더해서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끼워 넣는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을 잃지 않는다. 틴에이저 시절부터 시작된 이자벨의 연애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선뜻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거짓으로 관계를 시작한다. 바로 이런 문제로 인해 그녀의 관계는 지속될 수가 없다. 9번째 남친으로 등장한 대니얼도 그런 장애를 뛰어 넘지 못하고 두 손을 들어 버린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바탕으로 시리즈가 계속해서 나온다면 아마 텔레비전 시리즈로도 제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중요한 소재로도 사용된 <겟 스마트>같은 TV프로그램들이 언제나 우리나라 소설에도 등장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적합한 가족관계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한 수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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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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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근대 조선의 수도였던 ‘경성’(서울)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연애사건, 살인사건 그리고 기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번에 자살이라고 하는 어쩌면 금기에 해당하는 주제를 다룬 전봉관 작가의 <경성 자살 클럽>이 출간됐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보니, 죽음은 현실에 대한 자각이라는 표현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죽음 중에서도 자살은 극한 상황에 처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표현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책에서는 모두 해서 10개의 자살사건을 다루고 있다. 대한제국을 병탄한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수도 경성에 악머구리 끓는 듯한 문제들이 이 주제를 통해 폭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7:3의 비율로 여주인공들의 에피소드들이 압도적이었다. 남자들이 민족과 조국의 해방을 위한 대의 혹은 입시문제 등으로 자살을 택했다면, 여자들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가 연애와 관계된 정사(情死)였다. 아무래도 그러다 보니 다른 책에서 다룬 연애사건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다산북스에서 나온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과 윤심덕-강명화 그리고 홍옥임 스캔들이 그것이다.

특히 조혼(早婚)과 전래의 인습으로 인해, 자각된 신여성들과 유부남 남성들 간의 연애 그리고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은 새로운 천년이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들이다. 새로운 학문과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가치관들과 질서들이 해체되고, 재결합되는 그야말로 엄청난 격변의 과정 가운데 내던져진 우리의 꽃다운 청춘들에게 세상살이는 필연적으로 버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억압적인 일본의 제국주의적 지배는 삶에 대한 허무주의를 양산해내고 있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들이 바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내몬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물론 21세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실연당했다고 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는 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와 요즘의 사랑에 대한 관념이 그만큼 변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우선, 조혼 풍습으로 인해 괜찮은 미혼 남자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실연이라고 하게 되면 그 후유증이 엄청났다. 물론 당시 경성에도 자유연애주의 풍조가 만연해 있긴 했지만, 어쩌면 그들에게 연애는 자신의 일생을 걸만큼 중요한 일이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0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바로 8번째 <입시지옥>이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공부를 해야 성공할 수 있는 의식전환으로 인해 모든 조선의 부모들의 교육열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취학연령의 아동들의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학교의 수 때문에, 예닐곱 살 먹은 미취학 아동들이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러야 하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런 상황들이 거의 1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참 답답하기만 하다. 물론 그 당시와는 다른 이유의 과열된 입시경쟁이지만 그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의열단 출신의 나석주 의사의 의거는 비록 그가 목표한 것을 이루지는 못했을지라도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식민통치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쾌거였다. 그리고 모든 의사 표현 수단을 빼앗긴 약자들의 마지막 저항방법이라 볼 수 있는 테러리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근대 조선의 경성을 거닐며,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멋진 시간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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