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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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읽어야 하는 책을 읽게 된다. 작년 겨울에 사둔 책을 네그리타가 만개한 봄에 읽는다. 자전적 에세이 <사나운 애착>을 통해 스스로를 공부벌레, 문학소녀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규정한 해방된 작가 비비언 고닉을 처음 읽었다. 뉴욕 브롱스의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내력이 <사나운 애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이 작가의 글을 매력적으로 만드는가. 책에 매달려 있는 3일 동안, 책으로 전자책으로 그야말로 책을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읽었다. 퇴근길 버스에서 전자책으로 만나는 비비언 고닉의 일화들이 어찌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책이 발표된 건, 1987년으로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이다. 아니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 아닌가. 오십줄에 들어선 작가는 자신보다 훨씬 연세가 드신 어머니가 맨해튼으로 브롱스로 그리고 윌리엄스버그로 계속해서 공간이동을 하며 자신의 과거를 속삭인다.

 

일단 아버지를 46세에 잃은 어머니와는 그야말로 징글징글한 애증의 관계다. 나도 살아 보니,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사람이 보통 원수가 되더라. 자주 안보는 사람과는 원수가 될 일이 없다.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작가와 어머니 같은 경우는 너무 붙어 있어서, 다른 가족도 아닌 유대인 이민자 가정이니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가정에는 대부분 회고록에 담을 만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치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가 괴로워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추모하는 장면을 작가는 냉정하게 드라마퀸의 연기라고 평가한다. 나치 부역자 처벌에 나선 검사 역할을 맡은 어머니는 훗날 시티칼리지에 진학해서 새로운 삶이 영역에 들어선 딸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무시로 뛰어넘는다. 이들 사이에서 말폭탄으로 유혈사태에 가까운 사투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 실제로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는 어머니였다.

 

세대 간의 전쟁은 선택이 아닌 디폴트였다. 석사 학위까지 딴 딸의 유식함에 질린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그래, 나는 무식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체험으로 지난 300년 간의 연애소설에 대해 지식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딸과의 토론을 일축해 버린다. 동시에 자신은 그러지 못했지만 해방구 시티칼리지에서 자주적인 생각과 토론하는 법 그리고 새로운 지식인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한 딸의 성공을 아낌 없이 축하해 주기도 한다. 자고로 그런 법이다, 가족이란 관계는. 반세기를 뛰어넘는 애증의 세월에 대한 비비언 고닉이 구사하는 변증이라고 해야할까.

 

24세에 금발의 외국인 화가가 비비언 고닉은 어머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순결고수 경찰을 자처한 어머니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 그전에 해방된 여성이자 자주적인 사고의 소유자로 거듭난 작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이웃집 과부 네티 러바인이었다. 남편이 어이 없이 죽고 난 다음, 비유대인 여성이었던 네티는 브롱스의 게토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선택을 했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발산했고, 무수한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그 중에는 교구 신부도 있었다고 했던가.

 

네티는 남성우월주의적 시선이 넘실거리던 1950년대 미국의 가부장적 프레임 속에서 비비언이 매력적인 오브제로 거듭날 수 있는 스킬을 전수해준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은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방된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수해 나간다. 아니 그리고 보니 밀레니엄 세대에 태어나 나는 달라 달라를 외치던 어느 걸그룹의 데뷔곡 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공부벌레에서 문학소녀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진화를 거듭하던 작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두 인물을 에세이 속으로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 네티 러바인 여사와 어머니가 될 것이다.

 

다시 결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카산드라를 자처했던 어머니의 예언대로 금발의 외국인 화가와는 애시당초 맞지 않는 결혼이었다. 떠들썩한 유대식 가정 결혼식부터 어쩌면 파국은 예정되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캘리포니아에서 나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기세 좋게 출발한 스테판과의 결혼은 5년 만에 박살이 났다. 이걸 자아의 충돌로 해석해야 할까? 아니면 서로 너무나 다른 두 개의 행성 간에 교집합의 부재로 보아야 할까? 타인을 이해해야 하고, 나를 죽여야 한다는 결혼 생활의 타협을 이십대의 고닉은 어디서고 배우지 못했던 게 아니었는지. 아니면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결혼생활을 너무나 이상화시킨 어머니가 안겨준 PTSD 혹은 트라우마 같은 무언가가 작동한 결과는 아니었는지.

 

그후 고닉은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이웃집 소년 데이비 러빈슨 그리고 자신보다 20살이나 많은 유부남 좌파 노동운동가 조 더빈이라는 작자들과 더불어 허기와 욕망으로 가득한 관계를 갖기도 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된 데이비는 사회복지사였다 다시 18세기에나 등장할 법한 정통 유대교 랍비로 변신을 거듭한다. 뻔뻔한 유부남 조 더빈에게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모두 쓰레기지만, 그래도 한 놈 정도는 필요하다고 세라 이모가 그랬던가, 어머니가 그러셨던가. 일찍이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아니 에르노가 자기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만 글로 쓴다고 했는데, 그전에 앞서 몸소 실천한 해방된 여성이 바로 비비언 고닉이 아니었나 싶다.

다음은 뉴욕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브롱스 토박이 비비언 고닉은 이혼하고 다시 브롱스로 복귀해서 빌리지 보이스 기자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두루 주유했다. 평생 여행이라고는 고작해봐야 가족들과 뉴욕 인근 동네만 다닌 어머니와는 시각차가 다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두 모녀는 그야말로 다시는 보지 않을 각오로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동시에 로어이스트사이드와 하우스턴가를 누비며, 커피는 자고로 연하게 끓여야 한다 아니다 진하게 끓여야 한다로 옥신각신한다. 바로 이런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이 바로 뉴욕이다.

 

, 어디선가 만난 외로움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그렇지 외로움은 누구에게 의지해서 풀어낸 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야지. 아니 그런 외로움 해결에 대한 의존적 태도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작가처럼 뉴욕이라는 밀레니엄 캐피탈에서 누릴 수 있었던 숱한 문화적 혜택들이 있었다면 더더욱 말이다. 모두가 가고 싶다고 해서 휘트니미술관 전시를 보러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나도 방문했던 MoMA와 저 멀리서 궁륭형 지붕이 보였을 때, 염통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구겐하임 뮤지엄이 보고 싶다고 해서 내일이라도 당장 보러 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비비언 고닉은 직사각형에 자주적인 인간으로 거듭난 자신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사납게(fierce) 투쟁했다. 모두의 삶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와중에 아버지를 상실한 열패감부터 시작해서 죽은 부군을 따라겠다고 무덤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연출하는 어머니, 쓰레기 같은 놈들과의 순수하고 강렬한 성적 욕망, 숱하게 남자들이 꼬이는 이웃의 매력적인 젊은 과부 네티 등과의 다양한 애착들(attachments)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어쩌면 삶이라는 투쟁 속에서 발생한 이런 소소한 애착들이 하나둘 모여 나라는 존재가 이루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애착들을 걷어내고 난 뒤에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

 

[뱀다리] 역시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가 아닐 수 없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통해 조지 기싱의 <짝 없는 여자들>과 버나드 맬러머드의 <수선공>(무려 퓰리처 수상작!)이라는 책들의 존재를 알게 됐다. 후자는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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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3-03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할거리가 너무 많아서 전 리뷰를 못쓰겠어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니까 글로 적기가 힘드네요
애증의 모녀관계는 많은 상처를 남깁니다^^
독서가 이리 즐겁다니...
독서에 올인하게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도 우리 엄마라는게 아이러니예요^^
레삭매냐님, 즐겁게 읽으시는 모습 눈에 보일듯 했어요~~

레삭매냐 2023-03-03 14:10   좋아요 1 | URL
저도 책 읽으면서 A4 사이즈
노트 네바닥에 메모를 했는데
다 써먹지도 못했네요 ㅠㅠ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

비비언 고닉의 다른 책들도
만나 보고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3-03-03 17: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녀는 애증의 관계가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카산드라를 자처했다니 완전 그러네요.
이 책 도착해 있는데 저도 빨리 읽어야겠어요^^

레삭매냐 2023-03-03 17:59   좋아요 2 | URL
저자 - 어머니 그리고 네티
의 애증의 트라이앵글이
정말 흥미진진했답니다.

넘모 재밌어서 후딱 읽게
되었네요. 다른 책도 어서~

미미 2023-03-03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초반부 읽다 말았는데 오늘 저도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아 진짜 재밌네요^^*

레삭매냐 2023-03-03 21:08   좋아요 2 | URL
저는 지난 12월에 사서 아예
펴 보지도 않고 있다가 이번
에 읽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읽을 수가 있었
답니다. 너무 재미지구요.

레알 굿입니다!

자목련 2023-03-04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선은 좋아요!
저도 이제 읽으려고요^^

레삭매냐 2023-03-05 16:07   좋아요 0 | URL
비비언 고닉, 짱입니다 -

전 어제 새로 산 다른 고닉
여사의 책도 읽고 있답니다.

빠이팅, 응원합니다.

바람돌이 2023-03-04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이제 배송받았는데 책의 판형이 작고 그리 두껍지 않아서 읽기 어렵지 않겠구나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읽으신 분들은 진짜 할말이 이렇게 많다고 하니 점점 기대가 됩니다. ^^

레삭매냐 2023-03-05 16:26   좋아요 1 | URL
아주 재미져서 술술술~
그렇게 넘어간답니다.

새로 나온 책도 읽어 보려
고 한답니다.

이 책에 대한 다양한 이야
기들, 기대해 봅니다.

얄라알라 2023-03-06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직사각형에 자주적인 인간...
아, 정말 레삭매냐님께서 ‘언젠가는 읽게 될 책‘을 유혹하시는 문장이 말입니다 ㅋㅋ고단수이십니다.

네그리타가 만개한 봄!
사진 또 새로 올려주시면 하고 조용히 부탁 아닌 부탁을^^

저는 봄 맞아 애니시다 큰 아이로 데려왔는데 한 달도 안 되어서.....그냥 초록만 남았어요^^:;;

레삭매냐 2023-03-06 12:04   좋아요 1 | URL
저는 또 애니시다는 무언가 하고
검색해 봤지 뭡니까 파닥파닥 ~

노랑노랑하 꽃들이 아주 예뻐
보이더라구요. 역시 식물의 세계
는 무궁무진한가 봅니다.

아시는 분이 시흥 모처에 있다
는 희귀 식물 가게 나들이 포스
팅을 해주셨는데 저도 한 번
가보고 싶더라구요 헷 :>

네그리타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답니다. 어제 사진에 담았어
야 했는데 까비요.

책쟁이-리뷰어에게 최고의 상찬
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자목련 2023-03-10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빠 돌아가시고 슬픔에 잠식된 엄마를 보는 일은 너무 괴로울 것 같습니다. 고닉처럼 어찌 이렇게 잘 풀어내셨을까요. 좋았던 만큼 리뷰 쓰기는 어려운 책이었어요. 고닉이 매력적인 작가라는 건 분명하고요! 멋진 글 잘 일었습니다^^*

레삭매냐 2023-03-11 11: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특히나 부모님
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럴 것 같
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슬픔은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물론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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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소재와 이슈의 마법사라고 부를 만하다. 이언 매큐언의 부커상 수상작(1998년 수상)으로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암스테르담>다시읽었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읽은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다. 그전에도 한 번 읽었지만 리뷰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나 보다.

 

소설 <암스테르담>은 죽음으로 시작한다. 소설에 나오지도 않는 망자 몰리 레인의 장례식에 모인 네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다. 고인의 남편 조지 레인은 죽은 부인의 애인들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우중충하고 이미지의 돈 많은 출판업자 조지가 어떻게 해서 자유로운 영혼인 몰리를 아내로 삼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처음부터 작가는 망자에 대한 정보 없이 산 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고인에 대한 이미지를 빌드업하기 시작한다.

 

먼저 클라이브 린리가 있다. 중년 남자로 유산상속을 받아 젊어서부터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정부에서 의뢰받은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한 교향곡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크고 작은 성공을 체험했다고 해야 할까. 아티스트답게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산행을 즐긴다. 산행 중에 떠오른 악상이야말로 클라이브의 재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자는 <더 저지>의 편집국장으로 맹활약 중인 버넌 핼리데이다. 나중에 조지가 제공한 사진을 대중에 공개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 내각의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도 빠질 수 없는 몰리의 애인이다.

 

매큐언 선생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은 작품의 길이에 상관없이 5개의 챕터로 소설을 구성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소설 <암스테르담>도 예외는 아니다. 이언 매큐언 선생은 등장인물들이 종사하는 직업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하나씩 밝혀 나간다. 역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클라이브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신문기자, 출판업자 그리고 정치인보다(그리고 보니 거의 사회를 이끄는 모든 직업군을 망라한 느낌이다) 지식인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작곡가라는 직업이 갖는 우월감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에게 일종의 뮤즈로서 영감을 주었던 여신이었던 몰리 레인에 대한 이미지를 재창조해낸다. 누군가에게는 작업의 영감을, 삶의 의미였고 혹은 무한한 쾌락을 주었던 인물이 이제는 한 줌의 재로 남게 되었다는 허망함이 압도적이다. 중세 이래 인간에게 무한반복 중인 메멘토 모리는 매큐언 선생의 소설에서도 변주되고 있었다.

 

소설을 읽는 몰리를 사이에 둔 연적이자, 수십 년 지기였던 클라이브와 버넌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소설에 등장하는 조지를 제외한 나머지 남자들은 몰리의 마지막 남자였던 조지가 만든 음모의 희생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흙탕 개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고상한 지위와 직책을 가진 사람들 역시 욕망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외무장관 가머니의 에피소드를 살펴보자.

 

크로스드레싱에 캣워크 포즈를 취하며 잘 나가는 보수정치인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겉으로는 강력한 이민규제 법안을 밀어 붙이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우파 정치인의 사생활이 실제와는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유권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거기에 양념처럼 곁들여서,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저명한 정치인의 평판을 하루아침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선정적인 가십성 기사를 게재하고, 개인의 사생활 보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언론매체의 본성에 대해서도 작가는 일침을 가한다. 문제는 그런 방식이 오래 전부터 횡행해 왔고, 지금은 그 당시보다 더 심각해졌다는 정도의 차이 정도랄까.

 

등장인물들의 개인사 뿐만 아니라, 이미 그 시절부터 브렉시트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져 왔다는 것을 이언 매큐언 소설의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미래를 위한 하나의 유럽인가? 아니면 위대한 대영제국의 부활인가에 대한 논쟁은 이미 통합 이전부터 영국의 국가적 이슈였다는 점을 매큐언 소설의 읽으면서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과거냐 미래냐, 청년세대와 노인세대 간의 갈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추체험의 발현이 브렉시트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로 나왔을 뿐이다. 문학을 통해 그런 정치적 가능성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흥미를 돋우는 요망한 상상은 접어 두고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인간관계가 언제나 그렇듯, 상호간의 호혜적 관계 유지는 지난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클라이브와 버넌의 관계로 작가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손익분기점의 설명을 시도한다. 아무리 친구라고 하지만 내가 아닌 타자의 이익을 위해 내가 언제까지 손해볼 수 있을까? 결론은 작가가 소설에서 표현했듯이, “우정에 대한 전반적이고 상세한 재정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클라이브와 버넌이 암스테르담에 간 결정적 이유다. 얄궂은 두 개의 초대장이 서로에게 발부되었다고 해야 할까나.

 

소설 <암스테르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두 가지를 꼽고 싶다. 하나는 세상사에 지친 클라이브가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찾아 산행하는 장면이다. 필생의 역작을 위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필요악이지 않을까. 다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의무조차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다른 하나는, 결정적 순간에 버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로즈 가머니의 여사의 정치적 쇼다. 아무리 사전에 연출된 것이라고 하지만, 로즈 가머니 여사처럼 천연덕스럽게 궁지에 몰린 남편의 위기탈출을 돕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뭐 이언 매큐언 정도 되는 작가라면 이 정도의 반전 정도는 당연히 준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으로 인간관계의 저변을 파고들어, 이렇게 멋진 소설을 창조해낸 작가의 역량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나의 이언 매큐언을 찾는 여정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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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2-28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짧은데 참 좋았던 기억이에요. 다른 긴 소설보다 이게 특히 좋았는데 절판되어 아쉬웠는데 다시 나왔네요 :)

레삭매냐 2023-02-28 11:40   좋아요 1 | URL
절판되었다가 다시 나온 건
환영하지만, 가격 인상이 된
건 슬픕니다.

번역도 새로 했으면 하는 바
람은 이번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네요.

자목련 2023-02-28 1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읽고 리뷰까지 썼으나 기억엔 없고요.
말씀처럼 개정판은 환영하지만 가격 인상과 택배비를 생각하면 선뜻 구매가 어렵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3-02-28 13:41   좋아요 0 | URL
물가 압력이 이 정도일 줄
미처 몰랐네요.

책도 이제는 당분간은 도서
관 희망도서와 구간을 읽어
야지 싶습니다.

책 사기에 이렇게 신중하게
될 줄이야 ㅠㅠ

blanca 2023-02-28 13:42   좋아요 1 | URL
저는 지금 책 팔려고 쌓아 놓았어요. 중고 팔고 사려고요.

blanca 2023-02-28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안 그래도 이 책 배송 기다리고 있어요. 레삭매냐님 글 읽으니 더욱 더 기대되네요.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2-28 14:57   좋아요 0 | URL
아 - 저도 이참에 다시 책팔기
책 정리하기 프로젝트 돌려야
하나 싶네요.

당장 팔 책부터 봐야지 싶습
니다.

이언 매큐언 작가가 한창 때
쓴 작품이니 만큼 마음에 드
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람돌이 2023-02-28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 번역판으로 읽었었는데 매끄럽게 읽히지 않아서 고생햇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도 이언 매큐언답게 아픈데를 콕 쑤시는 그런 긴장감이 있었다는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요. ㅠ.ㅠ

레삭매냐 2023-02-28 19:27   좋아요 1 | URL
역자가 같은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개정판으로 낼 때에는 가격이 오
르는 만큼 새로운 역자를 기용해서
번역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읽고 잊어 버리고 또 읽는 게 우리
책쟁이들의 숙명이 아니겠습니까.

moonnight 2023-02-28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책으로 분명히-_- 읽었으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요ㅜㅜ 장례식에 모였다 정도만-_-;;;; 왜 읽는 걸까요-_ㅠ

레삭매냐 2023-02-28 19:29   좋아요 1 | URL
클래식은 다시 읽는다
라는 말을 예전에 이탈로
칼비노 선생이 말했었죠.

책은 한 번 읽는 게 아니라
다시 읽는 게 디폴트가 아
닐까요. 저도 읽고서도 다
잊어 버린답니다.
 
중세 3 :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 중세를 지배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12
올리비에 보비노 지음, 파스칼 마냐 그림, 이정은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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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말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중세>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시리즈 3권을 빌렸다. 생각보다 글밥이 많아서인지 금방 읽을 줄 알았던 그래픽 노블들을 다 읽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보니 1권과 2권 리뷰는 쓰지도 못했네.

 

3권은 중세의 두 축 가운데 봉건제도와 핵심이었던 기독교(가톨릭)를 다룬다. 로마 시대에 소아시아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기독교 문명은 서구 문명의 핵심 요체의 자리에 오른다.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 시대에 기독교가 유입될 때만 하더라도, 유일신 사상의 기독교는 다수 로마 민중들에게 배척당하고 심지어 박해를 받기도 했다. 유구한 기독교 역사에서 박해와 순교는 교세를 누그러뜨리는 기제가 아닌 오히려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훗날 일본의 위정자들은 그런 기독교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무지막지한 탄압 대신 교묘하게 사제와 신도들의 배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전파를 억압하는데 성공했다. 아마 고대 시대에는 이런 정치적 방법을 몰랐던 모양이다. 기독교인들을 십자가형이나 사자굴에 던져 넣는 방식이 유효할 거라는 판단착오가 그 반대 효과를 불러 오기도 했다.

 

기존의 로마 중심의 세계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고 노바 로마라 부르기 시작하며, 세계의 중심을 동쪽으로 이동시킨 콘스탄티누스 시절에 비로소 기독교는 제국의 유일한 종교의 지위를 얻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그 후 천년 이상 중세 시대를 지배한 기독교 세상이 열리게 됐다.

 

로마 교회의 수장인 교황을 중심으로 서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이끄는 동로마교회의 분열은 1054년 결정적인 분기점을 만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사도로 꼽히는 베드로의 대리인으로 자청하던 교황이 어느 순간부터 그리스도의 대리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사도의 대리인의 위치와 성자의 대리인의 위치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의 수직적 체계는 필연적으로 세속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관계였다. 야심적인 교황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교권이 세속권을 능가하게 되었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교황에게는 제후들을 파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파문당한 제후나 세속군주는 봉건 질서 시스템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기 마련이었다. 권위가 사라진 군주에게 계속해서 충성을 맹세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로마 교황들은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연옥을 발명해서 면죄부를 발행하고, 그리스어로 쓰인 니케아 신경에는 원래 없었던 필리오케를 삽입해서 위격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등 동방교회와 점점 멀어지는 길을 택하기 시작했다.

 

필리오케(filioque:그리고 아들로부터도) 논쟁은 초기 기독교 신학 논쟁에서 유래되었다. 27편의 신약성경들은 그리스어로 쓰였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라틴어와 달리 그리스어는 추상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는 언어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신과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기독교 교리에서 핵심을 이루는 삼위일체 개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가, 인간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논쟁이 선행했다. 논쟁을 즐기는 그리스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주제는 없었다. 게다가 신성과 인성을 각각 강조하는 이단까지 가세하면서 논쟁에 기름을 끼얹게 되었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에 입각한 니케아 신경이 채택되면서 위격에 대한 논쟁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서방교회에서 당시 에스파냐에서 널리 퍼져 있던 아리우스파를 배제하기 위해 니케아 신경에 원래 그리스어 버전에는 없던 필리오케를 슬쩍 끼워 넣으면서 동서교회의 갈등이 폭발해 버렸다.

 

2차전은 성상파괴 문제였다. 군인 출신 동로마 황제 레오 3세가 726년 성상파괴 명령을 내리면서 동서교회 갈등이 다시 분출했다. 당시 무슬림과 대치하고 있던 레오 3세는 일절의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이슬람 세력의 영향을 받아 동로마 교회에서 유행하던 성상을 모조리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동로마 교회는 황제의 권력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황의 통제 아래 있었던 서로마교회의 상황은 동로마의 그것과는 달랐다. 로마에서 교황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세속권을 강화해 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황이 동로마 황제의 일방적 명령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 117년에 걸친 성상파괴 논쟁(Iconoclast Controversy)은 기존의 전례를 따르는 것으로 유야무야되고 만다.

 

1054년 교황의 특사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파문하고, 대주교 역시 특사를 파문하는 사태로 교회는 분열하게 된다. 그리고 4차 십자군원정 당시 콘스탄티노플이 십자군에게 약탈당하는 사태로 동서교회는 분열을 넘어 서로 적대의 관계로 돌입하게 된다.

 

중세 교회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신앙이나 구원의 문제를 등한시하고 대형 교회 건축에 집중하게 되면서 결국 몰락하게 되는 과정은 21세기 한국 교회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즐겨보는 종리스찬 JDSN이 너튜브에서 언급한 대로, 외형적으로 거대한 양적 성장을 이룬 한국 교회가 더 이상 청년 세대에 매력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고 기존의 성도들조차 가나안 성도들이 되는 현상에 소위 교계 지도자들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염불보다 젯밥이 눈이 먼 사이비 목사들이 정치판을 휘젓는 모습도 기가 차다. 종교 권력이 세속화되었을 때, 중세 가톨릭교회는 권력의 정점에서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붕괴가 시작되었을 때, 그들만 모르고 있었다. 21세기 어느 나라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외면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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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2-1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분이네요 ^^
종리스찬 tv 보고 왔어요

레삭매냐 2023-02-15 17:27   좋아요 1 | URL
인스타로 알게 된 분인데
콘텐츠가 인상적이어서
자주 보고 있답니다.

가필드 2023-02-17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샥메냐님 얼마전에 봤던 난처한 미술이야기 중세편을 다룬 4-5편도 생각나게 하네요
성상 파괴로 남아 있는 유물들이 많이 없다 하셨거든요 ㅠㅠ 교회들이 세속화되어 있는게
문제인거 같아요 이럴때일수록 초대 교회들의 갈급했던마음들이 생각나게 합니다

레삭매냐 2023-02-17 14:37   좋아요 1 | URL
논쟁이라는 게 막상 당시에는
죽어라고 싸우지만 나중에 지
나고 나면 왜 싸웠는지도 모르
기가 다반사인 것 같습니다.

성상 파괴논쟁도 발발할 시점
에는 뜨거웠지만, 나중에 결
국 유야무야되고 말았지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라는
캐치 프레이즈는 500년 전 종
교개혁 당시부터 있었던 표현
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다는 게
참...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벤저민 카터 헷 지음, 이선주 옮김 / 눌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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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벤저민 카터 헷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를 마침내 다 읽었다. 책의 절반가량을 호기롭게 읽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그 이유가 뭘까하고 말이다.

 

내 나름대로 분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계속된 14년 동안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었다. 대략적으로 당시 독일 국내 정치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는 점 그리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으로 독일 경제가 나락으로 추락했고,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과 수많은 실직자들이 발생해서 결국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집권했다는 정도의 지식이 전부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출범시킨 사회민주당을 필두로 한 독일 국내 정치에 대해 몰랐고, 그레고어 슈트라서-쿠르트 폰 슐라이허-프란츠 폰 파펜 등등의 정치 플레이어에 대한 무지 때문에 잠시 쉬게 되지 않았나 싶다.

 

벤저민 카터 헷이 저술한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에서는 보다 근원적인 분석에서 출발한다. 19148, 독일 제국은 발칸에서 시작된 전쟁에 하나가 된 상태로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4년 뒤인 191811월 전쟁에 진 것도 아닌데 결국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쓰게 되었다는 신화가 탄생했다. 그것은 독일 민족정신에 그어진 하나의 생채기였다. 21번이나 내각이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의 원죄는 그런 패배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게다가 1919년은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탄생한 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파멸과 창조는 한 끝 차이라는 걸까. 저자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독일 민중이 어떻게 해서 히틀러라는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야만적 지도자를 선택하게 되었고, 훗날 2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재난 속으로 뛰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꼽은 키워드는 두 가지다. 오판과 과소평가. 파펜이나 슐라이허 같은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히틀러와 나치당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오판했다. 192311월 뮌헨의 비어홀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보헤미아 졸병출신 아돌프 히틀러는 당시에는 애송이였지만, 혼란스러운 정치판에서 체급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치기 어린 비어홀 폭동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독재자는 군대와 관료의 조력 없이 권력을 찬탈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후 독일 내부의 정치 혼란과 경제 위기는 나치즘이 독버섯처럼 퍼질 수 있는 기가 막힌 환경이었다. 나치는 농촌 중심의 신교도에게 인기를 끌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베를린이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계열 노동자들의 요새였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1925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전쟁 영웅 힌덴부르크는 우파 중심의 국가 통합을 꿈꾸었다.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귀족 출신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정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았다. 프로이센 귀족 출신의 육군 원수가 오스트리아 출신 상병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보지 않아도 뻔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까.

 

독일 정치에 분노와 증오의 싹을 뿌린 나치가 두 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집단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프로파간다의 전문가였다. 당시 유명한 상업광고를 능가하는 정치 선전으로 괴벨스는 히틀러를 독일 국가의 마지막 희망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편에 그런 선전이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는 철모단과 돌격대라는 무력집단을 동원한 정치 폭력이 존재했다. 나치 집단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1931-32년 내란 위기는 절정이었다. 문득 수년 뒤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에 앞서 독일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다른 하나의 키워드인 과소평가를 살펴보자. 당시 독일의 다수 중산층 보수주의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히틀러 일당에 베팅을 걸었다. 그들은 히틀러와 수하들의 권력욕과 야망을 과소평가했다. 1933130, 힌덴부르크가 지루한 줄다리기 협상 끝에 어쩔 수 없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자 나치들은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의회 다수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을 모두 불법화시키고, 게슈타포를 동원한 정적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괴벨스도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서 언론을 통제했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매체였던 라디오를 동원하고, 포스터를 이용한 여론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그전에 자본을 동원한 이게파르벤 같은 대기업이 언론을 순치시키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지금 현재 차례로 건설기업에 넘어간 언론의 모습과 어쩌면 이렇게 일치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반대파들이 히틀러 집권 초기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역시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12년 독재와 전쟁 그리고 패전과 분단을 피할 수가 없었다. 히틀러의 전횡을 막기 위한 부총리 프란츠 폰 파펜과 에트가어 율리우스 융, 프리츠 귄터 폰 치어슈키, 헤르베르트 폰 보제 같이 양심적 인사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1934630<장검의 밤> 사건으로 일소되면서 히틀러와 나치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반대파 뿐 아니라, 자신의 집권에 정치 폭력을 행사하면서 지대한 공을 세운 돌격대와 한 때 동지이자 돌격대 지도자 에른스트 룀마저 숙청해 버렸다.

 

저자는 독일 중심주의가 독일 정치에서 우선시 되었을 때, 전쟁이 일어났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유럽 공동체 건설의 아이디어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이미 태동되었다는 점도 놀랍다. 민주주의가 번성하고 미국-영국-프랑스와 협력할 때, 독일이 번영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역사가 보여준다. 유럽 통합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국가가 독일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신호들이 잇달아 들어왔을 때, 오판과 과소평가로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결과는 독일 민족을 파멸로 인도했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의 독일 사람들은 민주 시민 양성을 국가적 목표로 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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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3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3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02-1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읽어야 할듯요

레삭매냐 2023-02-15 17:28   좋아요 1 | URL
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다 읽고
나니 보람찼습니다.
 
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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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부터 읽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던 책이 있었다. 김훈 작가의 <하얼빈>이었다. , 다른 책도 하나 있었지.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전자는 사지 않았고, 후자는 사서 읽었다. <해방일지>는 이번 달궁 독서모임의 책이기도 해서, 다음달이 되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을 계획이다. 김훈 작가의 책들은 개인적으로 정한 어떤 이유 때문에 사서 읽지는 않고, 빌려서 읽는다.

 

고등학교 시절 왜 이렇게 한국 근대사가 싫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국사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물론 어렵기도 했었지만.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외우다 보니 역사적 사건들 간의 상호작용을 몰랐고, 억지로 외운 것들을 쉽게 까먹기 마련이었다. 이번에 <하얼빈>을 읽으면서 한국 근대사를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게다가 침략자 일본의 개항 이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다 보니 유기적 관계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그리고 너뷰트로 그전에 봐둔 러일전쟁에 대한 개관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청일전투에서 일본군이 육전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던 성환 전투에 대한 작가의 단상에서는 무릎을 쳤다. 이런 거지, 하고 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소설에 대한 감상을 말하기 전에 서설이 길었다. 역사적 사건에 기반한 소설 <하얼빈>은 두 가지 시선에서 출발한다. 하나는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조슈 번사 출신으로 조선 침략에 선봉에 서 있던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다른 캐릭터는 그를 사냥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황해도 신천 출신의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다. 전혀 서로 다른 두 캐릭터의 심리를 오가며 서사를 이끌어 간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독자의 의구심을 작가는 단박에 뽀개 버린다.

 

우선 이토는 철저하게 자국의 이해에서 조선 침략에 나섰다. 그는 을사늑약부터 시작해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방식으로 조선의 국권을 침탈하는 선봉장이었다. 군대해산 후, 조선 팔도에서 일제에 대항하는 의병이 곳곳에서 일어서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서 소요를 진압하고 민중을 학살했다. 메이지 유신이라는 폭압적 방식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미개한 조선을 문명화시킨다는 자신들만의 논리를 구사했다. 그리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소위 탈아시아해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자신의 실력에 비해 과대망상에 가까운 헛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토는 무력이 아닌 도장으로 조선을 집어 삼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움직이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던 건, 이른바 국가 조선의 운영을 맡았던 사대부들이 이런 일본의 침탈에 대항하지 못하고 국운이 쇠락하는 왕조 국가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깨닫고 앞장서서 친일에 나섰다는 점이다. 대대손손 누려온 지극의 복락을 연장하기 위해 그들은 양심이나 체면 혹은 배알도 없이 일제에 협력했다. 오히려 국가로부터 아무 것도 받은 것도 없이 항상 수탈만 당하던 백성들이 나서서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의 기관총 앞에 농장기로 무장하고 항거했다. 많이 보던 모습이 아니던가. 역사는 비극적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목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소설의 한 축에 빌런 이토가 있었다면, 다른 한 축에는 그를 사냥해야 하는 포수 신천 출신 도마 안중근이 있었다. 19세에 교구 사제 빌렘에게 세례를 받은 안중근은 순흥 안씨 집안의 가장이었다. 어려서부터 리더십이 있었고 하는 식의 영웅 신화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노루 사냥을 즐기던 그에게 총알은 한 발이면 충분했다. 서두에 등장하는 그의 사냥에 묘사는 결국 이어질 대사에 대한 명징한 암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안중근은 이토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왜 그가 이토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무엇이 방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야 하는 것처럼, 주인공을 운명의 시간과 장소에 데려다 놓기 마련이다.

 

, 순서가 좀 어긋나긴 했지만 이토는 근대화의 부산물인 시간에 국가 조선과 민중을 적용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어쩌면 서양 근대화의 기본은 노동을 측정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물자와 사람을 이동시킬 수 있는 가장 유요한 수단인 쇠비린내나는 철도의 부설이지 싶다. 사적 시간에 얽매인 민중들을 교화해서 공적 시간의 개념으로 유도해내서, 하나의 동일한 일체감과 유대감을 만드는데 성공해서 병영국가로 나가기 시작한 국가 일본을 건설한 자신감에서 초대 통감 이토는 조선을 통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향에서 후대 교육에 매진하기도 했던 안중근은 사랑하는 처자와 정든 땅을 버리고 국권 침탈의 수괴로 자신이 정한 이토를 저격하기로 결심한다. 그 와중에 스며든 빌렘 신부나 뮈텔 주교와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십계명에도 나오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유로 사제들은 안중근의 거사에 반대한다. 실제로 한국 천주교에서는 안중근이 이토 저격에 성공한 다음, 정치적 이유로 안중근과 선긋기에 나섰다. 안중근의 의거가 독립전쟁의 일환이자 정당방위였다는 점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런 부분들은 소설만으로는 알 수 없기에 결국 추가로 공부해야 했다. 일개 독자로 이럴진대, 글 쓰는 작가들은 도대체 이런 서사를 쓰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 정확한 사전 조사가 필요한 걸까.

 

작가에 대한 개인의 호오와 상관없이 <하얼빈>은 김훈의 스타일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문장은 언제나처럼 간결했고, 힘이 넘쳤다. 예를 들어 안중근은 깊이 잠들었다라는 문장을 보자. 이토라는 거물의 저격을 앞두고, 청년 안중근의 심리상태를 이보다 더 조준사격하듯 표현할 방법이 없지 않을까. 일본과 러시아 관헌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얼굴도 알지 못하는 타겟을 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역사가 말해 주지만, 그에게 필요한 건 단 세 발의 총알뿐이었다. 불안한 사냥꾼의 심리처럼, 총구는 늘 흔들렸다.

 

그리고 이토가 죽었다고 해서, 무너져 가는 조선이 다시 기적처럼 부활할 수도 없는 그런 형국이었다. 이토가 죽었어도, 이토의 후계자들은 조선을 통한 대륙 진출이라는 고래 일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숱한 청춘들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영악한 책사였던 이토의 모든 행동은 자국의 조선 침략을 위한 방편이었다. 순종의 남행부터 시작해서, 볼모로 황태자 이은의 태사를 자처하며 일본으로 잡아간 것까지. 고려 왕조의 폐허 앞에 망해가는 나라의 군주 순종 일행을 배치해서 촬영한 사진은 프로파간다와 정치쇼의 극치였다. 러일전쟁 당시, 그들이 군신이라 일컫는 노기 마레스케의 멍청한 전술로 러시아군의 토치카와 기관총 앞에 숱한 일본군이 갈려 나간 백옥산 참배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토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살다가 총에 맞았다.

 

이토의 저격까지 직전까지 밀도를 압축해 가던 서사는 저격 성공으로 긴장이 완화된다. 그리고 안중근은 여순 감옥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죽음을 기다린다. 다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는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자신에게서 정치적 정당성을 제거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검찰관 미조부치의 예리한 심문을 유연하게 맞받아친다. 사실 안중근 재판 역시 자신들이 그나마 문명국이라는 점을 열방에 과시하고 싶은 하나의 정치쇼였다. 이미 결론은 나 있었으며,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안중근의 묘역이 사후, 성역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제는 유해를 가족들에게 인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독립된 조국에 자신을 묻어 달라는 안중근의 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점이 통탄할 심정이다.

 

다음 달이면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순국 113주기다. 마음이 처연하다.


[뱀다리] “뮈텔은 신앙과 문명을 군함에 실어서 세계에 전하는 조국 프랑스와 프랑스 왕과 프랑스 군대와 프랑스 교회를 위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251).”

 

안중근이 사형 언도를 받은 1910214일은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인데, 프랑스에 왕이 있었나? 50대 뮈텔 주교에게 치매라도 온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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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2-10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하얼빈> 재밌을 거 같네요^^

레삭매냐 2023-02-15 17:34   좋아요 1 | URL
다른 건 몰라도 가독성 하나
는 끝내 줍니다.

간결하면서도 힘찬 서사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