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타이거]

2014년 정도에 종영된 미드 Mentalist에서 보면 Red John이란 연쇄살인범의 조직원들이 쓰는 암호가 tiger tiger이다.  책이나 작가 혹은 스토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 사실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내가 머리속에 워낙 잡다한 것들이 많이 들어있는 사람이라서 간혹 겪는 일이다.  


어느 시기에 인류문명은 순간적인 공간이동법을 개발하고 이를 처음으로 연구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존트'라는 고유명사는 공간이동을 의미하게 된다.  단, 좌표가 정확하고 '존트'를 하는 사람이 연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면 '존트'는 불가능하며, 자칫하면 '존트'를 하다가 시공간의 사이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스토리에서 가장 흥미있게 느껴진 부분은 대개 이 정도로 '존트'에 대한 내용과 미래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제외하고는 다소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었던 주인공의 복수행각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 같다.  SF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그리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이와니미 총서 2 - 논문 잘 쓰는 법]

이 책을 읽고서 논문을 잘 쓸 수 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논술 때문에 고생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작가지망생들은 벌써 모두 등단해서 걸작을 뽑아내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은 많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부단한 노력으로 글쓰기를 연습하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재능은 타고나는 것, 여기에 몇 가지 좋은 지침서를 찾아 연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지름길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타고난 재능이 매우 중요한데 technical한 것은 가르칠 수 있지만, 이야기를 뽑아내는 재능, 즉 평범한 것을 재미있게 만드는 능력의 경우에는 배우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내용도 딱딱했고, 조금 지난 시절의 글쓰기 이론이라서 그랬는지, 눈에 딱 들어오는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글쓰기른 너무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측면으로 접근했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무엇을 배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저 교양을 위해 읽어나가는 책이라고나 할까.  기왕 시작한 거, 이와나미 신서의 책은 천천히라도 계속 읽어나갈 생각.


[우리, 독립책방]

걱정했던 것처럼 잡지기획 같은 맛이 너무 강했다.  거의 같은 질의내용을 다양한 서점주인의 시각에서 답변을 받았기 때문에 특별히 겹치는 내용은 없었지만, 역시 에세이 보다는 잡지의 기사 같은 느낌이라서 중반을 넘어가면서 지루하단 생각을 했다.  


독립책방이라는 것이 많이 생겼나 싶다.  그런데, 앞서 읽은 몇 권도 그랬지만, 실제로 책방을 꾸려서 세를 내고 벌이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영업이 되는 곳은 많지 않은 듯 했다.  오히려 다른 일을 해서 번 것으로 생활을 해결하고 심지어는 책방경영에 투자하는 듯한 모습을도 보였는데, 그렇게 해서 얼마나 꾸려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일종의 사회운동이나 개인의 꿈을 실현하는 수준에서 멈춘다면 결국 이것도 한 동안 유행을 타는 사회현상으로 끝날 것 같고, 이후로는 더더욱 서점을 운영하려는 사람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보기에는 좋지만, 아직까지는 내실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다.  부디 잘 키워져서 더 많은 작은 서점들, 자신만의 캐릭터를 고수하면서 이에 맞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화된 방향도 좋겠고, 평범한 보통의 서점도 좋겠다.  그저 많이 생기고 모두 번영하길.


[러시아 유령 군함 사건]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은 그 참혹함도 그랬고, 라스푸친 같은 인물에 얽힌 미스터리, 러시아 혁명에 얽힌 음모론 등 흥미있는 소재가 많이 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사건은 아나스타샤 공주 (라고 주장하는 이)의 갑작스런 등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세계불가사의백과에도 나와있을만큼 당시 유럽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했던 이야기인데, 혁명과 내전의 혼란속에서 급하게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황가의 유일한 생존자임을 주장하는 한 여자의 등장은 정치적인 문제와 유산문제 등 많은 이슈를 만들어 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번 이야기는 사실 처음에는 거의 추리가 불가능했었다.  


메이지 끄트머리 아니면 다이쇼 초기, 산중혼수에 갑자기 나타난 러시아 군함과 병사들.  마을의 전설로만 남아 있었던 사건이지만, 당시 이들이 묵던 호텔에 사진으로 남아있는 군함은 가짜가 아니었고, 귀신의 장난도 아닌 기상천외한 발상의 결과였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추리소설을 그렇게 읽어왔어도 연상능력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어, 아나스타샤에 얽힌 이야기만 대략 따라갔을 뿐, 결론이 나왔을 때에는 허탈할 만큼 터무니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정통 추리물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조금 모자라지만, 그럭저럭 평타는 한 것 같다.    


[이방의 기사]

이 또한 상당한 twist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미타라이와 이시오카가 처음으로 만나는 시점의 이야기다.  과거를 잃어버린 한 남자가 그야말로 장기판의 pawn이 되어 조작 위에 날조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없도록 완벽하게 setup된 무대와 플롯.  이것을 만든 건 사람의 마음, 사람에 대한 마음.  그런데 이것을 부수는 것도 사람의 마음, 사람에 대한 마음이다.  단순히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이시오카의 과거에 이런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당시만 해도 명탐정으로 이름을 떨치기 전, 맛없는 커피를 마시며 점성술을 가르치던 미타라이의 모습도 우습다.  비슷한 모티브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여러 번 본 기억이 나는데, 정확한 원전은 생각나지 않는다.  몇 군데서 나왔을 것이다.  

이 작품으로 이시오카가 나중에 보여주는 어둠이랄까, 의기소침함 같은 것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미타라이는 오히려 이때가 조금 더 인간 같고, 후기의 이야기에서는 Big Bang Theory의 Sheldon Cooper같다.  어쩌면 모든 것을 의심하는 버릇을 갖는 편이 살아가는데 있어 더 나은 방법인지 모르겠다.  사기도 분명히 이런 식으로 당하는 것이겠지?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이건 왠지 에드가 앨런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이 떠오르는 모티브다.  그런데 제목을 빼면 그렇게 많이 비슷한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일본 특유의 '덕후'기질을 보이는 범인의 집념이 만들어낸 공간임을 알게 된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 한 순간을 위해 엄청난 부를 기울여 만들어진 이 저택은 홋카이도 북단에 위치해 외따로 떨어져 있다.  여기에 초대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아주 보통의 인간도 있고, 어중간한 사람도 있고, 악한의 면모를 보여주는 지역유지/건달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남자도 있다.  작품이 달리 특이하다기 보다는 미타라이와 우시코시가 만나는, 일종의 콜라보레이션 같은 구성이 찰지게 재미있었다.  보통 미타라이가 등장하는 소설은시마다 소지가 창조한 다른 세계 - 유능한 경찰인 요시키 경감의 universe와 겹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비록 요시키 경감은 나오지 않았지만 여러 사건에서 그와 각별한 사이를 보여주었던 우시코시가 나온다.  즉 이들은 같은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미타라이가 이 사건에 도움을 주기 위해 홋카이도에 가는 것은 중반을 넘어간 시점인데, 우시코시가 도쿄에 청한 지원요청에 대한 답변으로 그가 추천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자료를 모두 주었다고 주장한 후 독자에게 추리도전을 던지는데, 역시 난 연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범인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의 수법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나쓰메 소세키와 런던미라 살인사건]

내가 시마다 소지의 팬이 되었기 때문에 읽은 책이다.  사실 그닥 흥미가 가는 플롯도 아니고 소설은 셜록 홈즈의 오마쥬 같은 면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소세키와 셜록 홈즈가 만났다는 가정으로 만들어진 세계지만, 역시 팬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런던에 유학중인 소세키는 우연한 기회에 셜록 홈즈와 왓슨을 만나게 되고 마침 멀쩡하게 잠자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미이라가 되어버린 괴사건을 함께 풀어나가게 된다.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소세키의 관점에서 묘사되는 홈즈와 왓슨인데, 시종일관 그의 관점으로 그려지는 홈즈는 반미치광이, 왓슨은 홈즈를 돌보는 정상인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왓슨의 기술은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셜록 홈즈의 모습인데,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난 역시 내가 아는 홈즈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다.  


트릭은 그냥 좀 우스운 결론으로 끝나는데, 역시 추리소설에서 요구되는 연상이 부족한 터,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플롯도 조금은 loose해서 제대로 건드리지 않거나 사용되지 않는 장치도 있기 때문에 그냥 스토리만 즐겨도 무방할 듯.


[최후의 일구]

두 개의 연결된 작품.  아마도 거품경기를 전후로 하여 일본을 흔들어 놓았던 사채금융에서 가져온 모티브인 듯.  속이 시원한 결말이었는데, 한국이 이상하게 나쁜 것들은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면이 없지 않기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풀어놓은 사채금융, 거기로 흘러든 막대한 아쿠자 money 같은 것들에서 야기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더욱 심해질 가계부채, 가족과 사회의 붕괴 같이, 한국이 곧 마주칠 거대한 문제들이 떠올랐다.  추리소설의 요소는 거의 없고, 야구에 바친, 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피어나지 못했던 주인공의 마지막 일구, 친구와 사회, 아니 자신을 위한 마지막 한번의 피칭이 가져온 통쾌한 결말이 기억에 남는다.





또다시 책읽기가 그저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은 바쁘다 말다, 연말로 흘러드는 형편인데, 이것 저것 새로 추진하는 것들 때문에 내년 초부터 맘이 분주할 듯.  12월까지 잘 close를 하고 짐거리를 내년으로 넘기지 않았으면 하는데, 여러 모로 걱정도 많고 신경도 많은 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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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럼프 때문에 걱정거리 하나 더 늘어나게 생겼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11-10 06:04   좋아요 0 | URL
이제부터 미국은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봐야지요...-_-: 다음 번에 좋은 사람이 나와도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일단 첫 4년은 재앙이구요..
 

[산시로] 













산시로라고 하면 난 우선은 '스가타 산시로'를 떠올린다.  스가타 산시로는 메이지 시대, 강도관 유도의 초창기, founder 가노 지고로의 수제자들 중 한 명으로서 '산폭풍 = 야마아라시'라는 기술로 유명했던 사이고 시로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의 이름이자 주인공이다.  예전에 한번 다른 출판사의 번역으로 나온 [산시로]를 읽었고, 이번에 조금 더 정성들여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산시로]하면 '스가타 산시로'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흔히들 젊은 시절 한번쯤은 산시로가 되어봤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산시로가 겪는 일이나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묘사는, 비록 지금과 100년 이상의 시간차이가 나긴 하지만, 보통의 20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20대의 순수함과 풋풋함에서 오는 미숙함이랄까,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용기 내지는 timing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은 인서울 학교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가지만, 과거 지방에서 상경한 지역수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고 해서, 두 번째의 독서는 더욱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다.


산시로의 일도 그렇고, 다른 등장인물도 flow에서 큰 무리가 없는데 소세키의 여성 캐릭터는 왜 항상 연애와 결혼을 분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히 산시로와 썸을 타는 것 같았었는데, 소위 좀더 그럴듯한 상대가 갑툭튀해서 결말을 지어버리는 건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슷하게 차용된 것 같다.  어떤 분의 글에서도 이런 부분, 그러니까 신여성에 대한 소세키의 반감(?) 같은 것을 이야기한 것을 보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도, 마음이 지향하는 바와 머릿속에 들어있는 현실 사이의 묘한 괴리감 같은 것은 느껴진다.  아직은 자유연애가 성행하기 이전의 시대였고, 여자팔자는 능력보다는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던 때였음을 감안해야 하지만, 어쨌든 산시로의 썸은 그렇게 끝나버렸으니까.  


책이 나에게 가장 잘 다가오는 순간은 아마도 내가 겪었던 일이나 현재 느끼는 것에 투영이 되어 격한 공감을 느끼는 때가 아닌가 하는데, 그런 점에서 나도 분명 한때는 산시로였으리라.   


[그 후]













[그 후]가 [산시로]의 다음편이라고 해서 계속 산시로를 찾아보다가 이름이 바뀌었거나 성을 사용한 것인가 싶어 다시 한참 책을 뒤져보았다.  그러다가 온라인에서 간략한 reference를 찾고나서 이 바보같은 짓거리를 멈출 수 있었다.  


내용의 모티브가 [산시로]에서 이어지는, 전기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인 것을 그렇게 험한(?) 경로를 통해 알고 나서, 다시 열심히 읽어가면서 왜 이 책이 [산시로]에서 이어지는지 생각해보았다만, loose하게 이어지는 점 왜엔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산시로]의 이야기가 20대 초반의 대학시절을 다룬 것이라면 [그 후]는 말 그대로 사회에 나온 사람들의 삼각관계가 된다.  


좋아하는 여자는 친구의 아내가 되어 있다.  그것도 나의 중매로.  그런데, 실제로 이 여자와 썸을 타던 건 나였다.  게다가 이 친구놈은 결혼 후 취업자리가 잘 풀려 사는 듯 했는데, 알고보니 파락호가 되어 있다.  말하지는 않고 있지만, 친구의 아내가 사는 모습이 안쓰러워 이리저리 돈을 변통해주면 다른 것에 써버리고 만다.  겨우 다시 취직은 했는데, 사는 모습도, 부부사이도 그냥 그렇다.  "내"가 처음에 신경쓰는 건 부부가 잘 살았으면 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녀"가 좀 잘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절, 아니 소세키가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의 문제는 종종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또한 부자인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타 쓰는 룸펜이다.  그런 주제에 서생과 하녀까지 두고 살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아버지가 찍어주는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것이다.  제사에 쓰는 소처럼 정략결혼을 위해서 키워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나"라는 "소"가 갑자기 제물로 쓰이는 것을 거부하고 "사랑"을 하려고 한다.  사회통념상 문제가 있고, 친구라는 놈을 생각해도 그렇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나"에게는 땡전한푼이 없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오까네가 문제다.  


여러 번 고민도 하고, 형과 아버지와 형수와 이야기도 해보고.  하지만 결국 "나"는 맘이 가는대로 해야겠다.  게다가 "그녀"와의 마음도 확인을 했고.  그런데 방법이 좀 묘하다.  친구에게 가서 결심을 통보하다니.  


후회가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과거를 생각하면 이런 저럼 분기점에서 다른 행동을 취했었어야 했다는 건, 지금에서, 그간의 경험과 생각이 쌓였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과거에 취했었어야 하는 행동을 지금으로 가져와버리는 것에서 현실의 문제가 발생한다.  모두에게서 단절되는 것으로 말이다.  "그녀"는 얻었으되, 다른 걸 다 잃어버린 삶.  그 삶이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다.  맘대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문]













이제 드디어 3부작의 마지막이다.  [문]에서의 이야기는 [산시로]에서 [그 후]로 이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에서 [그 후] 다음의 일을 다룬다고 이해된다.


부부의 과거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뭔가 안좋은 일을 통해 맺어진 듯한 이야기는 대화나 설정에서 가끔씩 나오는데, 여기서 마치 [그 후]의 "나"와 "그녀"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한국의 멜로드라마 같은 [그 후]의 격정(?)과 모든 것을 던져버린 사랑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 이제 이 부부는 그렇게 세월속에서 다른 모든 것과 단절하고 가난하게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건 하나도 없고, 여전히 돈도 없고.  "그"에게는 아무런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원래 재산이 없지는 않던 집안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숙모가 다 가져가버렸고, 그 조건으로 뒤를 봐주던 동생은 재산이양이 다 끝나고 바로 cut-off되어버린다.  


마치 사랑의 흔적과 세월의 정만 남은 듯한 부부의 모습에서는 [산시로]의 가슴 설레이는 풋풋한 썸도, [그 후]의 애절한 사랑도 느껴지지 않는다.  함께한 세월에서 얻어지는 그것이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이런 경우 "애"가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옵션이 아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은 "애"는 가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인생의 변화는 더 이상 추구할 수 없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희미해지는 사랑을 잡아줄만한 것 또한 조금씩 사라져갈 것이다.  "정"이 "사랑"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문]의 다음 이야기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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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세키 전집을 계속 읽어나가고 있다.  흔히 전기 3부작으로 알려져 있는 [산시로], [그후], [문]까지 다 읽고 [춘분 지나고까지]를 보고 있다.  후기를 남겨야 하는데 요즘 바쁘기도 하고 마음이 번잡하여 서재에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2. 3월부터 나를 비롯하여 많은 한국사람들을 괴롭히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내년까지 넘어가면서 추이를 지켜볼 듯.  그 와중에 또 다른 방향으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일이 만들어지고 있다.  


3. 워크룸프레스의 책을 모으고 있다.  '제안들'은 2015년 12월 이후로는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이 시리즈는 원래 30권으로 기획한 것으로 안다.  이 밖에도 소소한 워크룸프레스의 책을 사들였다.  다 갖출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책 대부분이 손에 쏙 들어오는 가벼운 문고본인데, 디자인도 그렇고 주제도 나에겐 생소한 것들이 많아서 더욱 맘에 든다.  


4. 앞서 얘기한 소세키 전집은 11월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춘분 지나고까지]가 10권이고, 시리즈는 [명암]에서 14권으로 끝나니까, 다섯 권 정도만 더 읽으면 된다.  그런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태풍]과 [풀베개]를 다시 읽어볼까도 고민 중. 


5. 시마다 소지의 작품 여섯 권이 오늘 도착했다.  이들도 운동하면서 조금씩이라도 읽거나 주말에 커피를 마시면서 서점카페에 앉아서 읽어나갈 생각이다.  이번에 온 여섯 권으로 절판되었거나 다른 이유로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한국어로 번역된 시마다 소지의 모든 작품을 읽게 된다.  역시 나에겐 덕후의 기질이 있는 듯.  


6. [우리, 독립책방]이란 책을 샀는데, 책이라기 보단 잡기 같아서 조금은 실망스럽다.  좋은 내용으로 술술 읽히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7. 소세키를 다 읽으면 카잔차키스 - 이것도 전집에서 절판된 [성자 프란체스코 1]을 빼고는 다 구했다 - 를 도전할까 생각도 하는데, 카잔차키스는 쉽게 읽어지는 작가가 아니고 내용도 무척 high density라서 역시 고민하고 있다.  아니면 [마의 산]을 세 번째로 도전해야 할지...


아직 반나절은 더 일해야 하고, 내일은 벤쳐기업 세미나에 나름 내 전문분야 패널로 초대(?)를 받아서 저녁일정이 있어 이에 대한 준비도 해야하는 등 바쁜 편이다.  남은 2016년은 이렇게 오래 hold한 케이스들 밀어내고, 2017년을 위한 씨를 뿌리면서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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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크룸프레스의 사드 전집을 모으고 싶은데, 1권 출간 이후로 소식이 뜸해요.. ^^;;

transient-guest 2016-11-03 01:17   좋아요 0 | URL
출판사의 사정이 있겠지만, 처음에 예정한 바에 따라 시리즈를 이어주었으면 합니다. 독자와의 약속이기도 한데, 요즘은 워낙 불황이라서 그런지 이런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도 아직 기다리고 있어요...
 

[갱부]까지 소세키 전집에서 여섯 권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앞서의 다섯 권에서 굳이 비교하면 다른 작품들보다는 [풀베개]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나는 고양이소로소이다]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은 사회상을 반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저자의 경험과 주변인물, 그리고 사건을 빗대서 저자가 생각하는 시대상을 그린다면, [갱부]나 [풀베개]는 이들보다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습작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아직까지는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곤'폭포의 자살 모티브는 여기서도 나오고, 가끔씩 조연들의 대화에서도 어느 시절인지를 유추할 수 있는 주제가 나오지만, 그래도 [갱부]는 확실히 보다 더 작은 범위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화자는 도쿄의 괜찮은 집안출신에 분명히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수학 중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그를 사이에 둔 일종의 삼각관계가 형성이 되었는데, A에겐 관심이 좀 덜하고 B에게 맘이 더 가지만, 집안에서는 B보다는 A에게 더 기우는 와중에서 그의 행동이나 말에서 뭔가 사단이 났고, 꾸지람을 들은 끝에 세상을 등지겠다는 각오로 하이칼라 옷차림에 32전을 들고 탄광촌에 와버렸다.  굳이 갱부가 될 생각도 없이 어쩌다 보니 거간을 따라 기차를 타고 한참 들어간 촌에서 다시 걸어서 산속으로 멀리 들어서있는 광산촌으로 와버렸다.  


처신하는 방법도 모르고, 힘도 그저 그렇고, 순발력도 떨어지는 터라, 기왕 왔으니 한번 해보자라는 식으로 갱부가 되기 위해 하루를 견습삼아 갱부를 돌아다니느라 고생을 하고, 맛없는 밥을 먹고, 자다가는 빈대에 뜯긴다.  주변에서 보면 각이 딱 나오는 터,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듯한 사람은 차비를 주겠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걸 무시하고 갱부가 되겠다고 굳게 맘을 먹지만, 허무하게도 건강검진에서 떨어져서, 장부정리를 하는 고위직(!)으로 취직이 된다.  그나마 다섯 달 정도를 하고 나와버렸기에 별로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결말이다.  


[게공선]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깊은 묘사 같은 건 없다.  그저 화자의 눈에 비친 막장촌의 모습과 사람들, 그 모든 것들과의 interaction에서 오는 화자의 생각이 가끔 재미있지만, 딱 거기까지.  어쨌든 일곱 번째 [산시로]를 잡고 있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정민 선생의 글을 몇 권 앞서 읽은 바 있다.  견해에 있어 그 어조에 있어 내가 동의하거나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점도 있는데, 내 수행이 부족한 것이 큰 이유지만, 어떤 면으로는 정민 선생도 약간의 꼰대 기질을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나의 감상평이고, 정민 선생의 character는 실제로 아는 바가 없어 정확하다는 것의 근처에도 못 미치는 느낌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네 글자로 나타나는 고사를 풀어주고 세태평을 하고, 간략하게 선생의 말을 하는 것으로 하나씩 정리가 되어있어 읽기에는 부담이 없고 쉽게 눈에 들어오는 좋은 이야기는 큰 plus.  게다가 책읽기나 공부, 인생에 대한 주옥같은 말도 아주 눈에 쏘옥 들어온다.  하지만, 정확히는 두 건의 이야기에서는 선생 또한 연세와 지위, 거기서 바탕되는 자아를 넘지는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고사에서 강소-절강 일대의 화훼업자들이 매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쳐내고, 꺾고, 매어놓는 것을 미의 기준으로 삼아 주변지역의 매화를 모두 병들게 했다는 이야기가 소개된 후, 공자진이란 사람이 이를 300그루나 사들여 모두 자연스럽게 풀어높고 제멋대로 자라게 하여 치료했다는 것으로 매듭짓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강의 중에 이를 이야기하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글속의 병든 매화는 바로 너희다. 어려서부터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이렇게 하면 좋은 점수 못 받고, 저렇게 하면 좋은 대학 못 가 하면서 이리 꺾이고 저리 비틀리는 동안 본성을 다 잃고 말았다.  어느새 저도 그걸 맵시로 알아 칭찬받을 짓만 하고 취업에 필요한 스펙 쌓느라 바쁘지.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야"


이건 언어폭력에 언어도단이 아닌가?  물론 맥락과 강의를 하던 당시의 분위기, 그가 평소에 보여준 모습 등 모든 것을 다 고려하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책에 이걸 자랑스럽게(?) 쓴다는 건 좀 무리가 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요즘 이십 대가 고생하는 건, 그들의 탓이 아니고, 그들이 '병든 매화'가 된 것도 그들의 탓이 아니다.  사회가, 정치가, 기업이, 어른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미쳐야 정상이라고 하는 사회에서는 '병든 매화'가 상등급을 받고 이리저리 제멋대로 다양성을 보여주는 매화는 하급상품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무엇 하나도 이들이 획책했거나 원했던 것은 없다.  그런 이들에게 저만치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이런 평을 하는 건 좀 그렇다.  정민 선생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잡은 혐의점(?)을 뒷받침하는 듯한 이야기가 뒤에서 또 나온다.  "내공은 꾸준한 전공의 힘에서 나오지, 넓은 오지랖에서 나오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스펙 쌓기에 팔려 여기저기 기웃대지 말고 전공의 힘을 먼저 길러야 한다."  이건 개소리다.  현실을 무시했다면 나쁜 것이고, 모른다면 이딴 소리를 할 자격이 의심스럽다.  이런 소리는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할 소리가 아니라, 박근혜나 기업한테 가서 할 소리다.  선생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내공은 꾸준한 전공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젊은이들한테 자꾸 스펙 쌓으라고 하지 말고 전공과목공부 열심히 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시오!'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숙련직 같은 신입사원을 원하는 방식으로 사회비용을 지불하려하지 않는 세태에서 젊은이들이 이런 소릴 들어야할 이유는 없다.


지위가 높아지고 명예나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러니까 소위 원로라는 사람이 되어가면 갈수록 더 조심하고 더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범신이나 박 뭐시기라는 시인도 그렇고, 교수들도 그렇고 왜 그렇게 여제자나 여자후배들, 주변의 젊은 여자들에게 술시중을 들게 하고, 성추행을 하고, 심지어는 강간 - 그렇다, 성폭행이라고 하지 말아라.  그들이 제자들을 억지로 모텔로 끌고 가는 건 강간이지 성폭행이 아니다 - 하는가.  진보나 보수, 학계, 언론, 정치, 경제 어디서나 잠재적인 rapist들과 sexual assault로 넘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앞서 읽었던 정민 선생의 책에서도 뭔가 조금 불편함이 있었는데, 결국 이런 세대공감능력의 부재 혹은 모자람, 거기에 초연함으로 가장되는, 멀리 떨어져 훈수만 두고 있는 원로의 사회참여 혹은 인식의 부재로 보이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민 교수 한 사람에게, 책 한 권의 이야기 몇 가지로 심한 소리를 하는 건 조금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리고 좋은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던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글이란 것은 한번 써서 남들이 보면, 그 다음엔 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하고 해석을 하고 변명을 해도 그건 그대로 그만이고, 남들이 보는 평가나 받는 느낌은 내가 어쩔 도리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들은 글을 쓰고 나누는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정민 교수에 대한, 아니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써놓고, 설사 이에 다른 이를 불쾌하게 하고, 욕을 먹더라도 그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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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4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은 완성되고 나서도 수정할 수 있고, 기존에 쓴 글과 전혀 다른 생각을 정리해서 또 다른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제가 블로그에 쓴 글도 제 것이라 생각하고, 글의 부족한 점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결정하는 모습에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후자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글을 고치거나 삭제하는 일은 당연한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명예를 지키고 싶은 작가들은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transient-guest 2016-10-25 00:5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뭔가 위치가 높거나 가진 것이 많은, 소위 기득권이 될수록, 또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유연함과 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박범신 작가의 사건도 그렇고, 스승이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스승으로 사람들이 모시는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자기 자신 안에 갇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일종의 독단과 독선에 빠져있는 걸 보면서, 새삼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이야기라는 폴더는 사실 만들고서 거의 쿠폰을 나누는 용도로 사용했다.  오늘 한가롭게 앉아있다가 내가 사랑하는 명작, 그 안에서도 가장 멋진 장면을 찾아봤다. 



아무리 찾아봐도 저 시절의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아름답고 기품있는 캐릭터를 보지 못했다.  결혼을 좀 잘했더라면 훨씬 더 오래, 행복하게 커리어를 이어갔을텐데.  


'We will still have Paris"와 "Here's looking at you kid"은 전설로 남은 명대사, 명장면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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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22 0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사블랑카 노래가 바로 떠오르네요..^^.

transient-guest 2016-10-22 09:01   좋아요 0 | URL
네 저는 as time goes by가 떠오릅니다.ㅎㅎ 이 커플의 노래죠..ㅎ

모즈 2018-05-21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his is the beginning of a beautiful friendship!

transient-guest 2018-05-22 00:08   좋아요 0 | URL
마지막의 반전이 정말 명장면이었죠.ㅎㅎ 프로파간다영화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보여준 듯...ㅎㅎㅎ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