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스무 권의 책을 읽는 것이 목표다. 2007-2016년 사이에 대략 2000-2500권 정도를 읽은 것으로 추산되는 내 인생의 독서량을 보면, 그리고 남은 수명을 평균적으로 계산하고 최대한 건강하게 노년을 보낸다고 가정하여,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40-50년 정도가 남아있다고 하면, 30대부터 계산을 해서 죽기 전까지 '독만권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만리로'는 쉽지 않겠지만, '독만권서'는 잘 하면 해보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bookworm이라면 한번 정도 해볼 수 있는 계산인데, 물론 아주 어릴 때부터 읽은 책까지 계산을 하면 서른 살 이전에 이미 1500-2000권 정도는 본 것 같다만, 이건 달리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을 시작한 2007년부터를 기점으로 잡아서 계산한 것이다.  몸의 건강, 정신의 건강, 주변상황의 건강, 거기에 노년을 잘 보낼 수 있는 적정수준의 은퇴준비까지. 예전에 읽은 책에서 어떤 의사가 지금은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하지만 은퇴 후의 독서생활을 꿈꾸면서 지금부터 책을 모으고 있다는 걸 봤는데,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사들이는 책이 없지는 않다. 다만 책읽기를 미루지는 않겠다는 것이 내 원칙이고 형편이 나아질수록 여행을 이에 더하고 싶은 바램이다. 젊은 시절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생각을 못하고 방학이면 한국에 돌아갔던 것이 많이 후회가 되는데, 내가 대학을 다니던 95-99년 사이는 정말 여행을 다니기 좋았던 시절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참 late bloomer도 이런 경우가 없는데, 요즘엔 그냥 late bloomer니까 남들보다 한 10년 정도 나이를 천천히 먹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산다.  어제 조금 일찍 퇴근하면서 운동을 하루 쉬고 집에 와서 자이언츠의 야구게임을 보면서 책을 읽었다.  


마침 '정사 삼국지'를 주문해 놓았기 때문에 지난 주간부터 읽은 책이다.  연의와 정사를 비교하는 수준을 넘어서 보다 더 행간을 짚으면서 주요사건을 다루는데, 나쁘지 않다. 다만 역자의 오류인지, 저자가 실수를 한 것인지 몇 군데에서 틀린 내용을 보았는데 '조비'로 써야 할 부분을 '조조'로 계속 쓴다던가, 유표의 역량을 표현함에 있어서 한 지역에 안주할 뿐 적극적으로 난세에 개입해 전국을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는 설명을 하고서 난세에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겠지만 치세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취지로 앞의 설명을 딱 정 반대로 정리하는 부분이 그런 것들이다.  '유유'의 책은 디자인도 예쁘고 기획도 훌륭한데, 이런 부분은 좀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원저을 비교할 수 없으니 내가 본 것이 정확한지 확실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추측하기로는 중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앞과 뒤가 바뀐 채 작업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전체적으로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포인트를 짚어볼 수 있었기 때문에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본다.  '위연'이나, '강유'에 대한 생각,'관우'나 '여포'도 그렇고 어쩌면 정사를 읽더라도 연의를 읽어온 탓에 거의 몸에 배인 습관과도 같은 특정관점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삼국지'를 보는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  한 가지 의문은 '관구검'에 관한 부분이데, 내가 아는 '관구검'은 모용씨가 세운 연나라의 장수로서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항복을 가장한 밀우에게 암살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기억의 오류와 당시 읽은 어린이버전의 책의 잘못된 설명 탓인 듯, '관구검'은 위나라의 장수였고 고구려침공과는 무관하게 나중에 난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죽은 것으로 나온다. 중국과 한국, 중국과 북한의 사서를 비교해서 읽어보는 호사를 누릴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만 중국이 예전부터 사서를 만듦에 있어 자국은 높이고 타국은 낮추는 전통이 있어 제대로 된 중국의 역사책을 구하는 건 동북공정이전에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런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로마사람들이 바라보던 라인강 넘어의 모든 사람들을 총칭하던 말. 지금의 프랑스일부, 독일을 비롯하여 동유럽과 북유럽사람들을 부족으로 나눠서 구분하고 사는 땅과 풍습을 간략하게 기술한 책이다. 당시의 사서와 집정관으로서의 경험, 그리고 당시 접할 수 있었던 여행자들의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과학적이지 못하지만, 이미 2000년, 아니 그 이전부터 이렇게 주변을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왔다는 점이 새삼 고맙다.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보고 싶어서 상대적으로 짧고 부담이 없는 책을 뽑아왔다. 천병희선생이 번역한 고전을 모으고 있는데 내 노후대책(?)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들에 포함되어 있다. 그 독서의 첫 걸음이 '게르마니아'였다.  천병희선생의 책을 모으는 건 사실 나에게도 당장의 독서보다는 미래를 위한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씩 읽고 싶은데 언젠가 절판이 될까봐 불안한 마음에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는 잘 나오고 있다. 값이 꽤 나가기 때문에 한꺼번에 사지 못하고 조금씩 구해서 모은 끝에 거의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읽은 책.  예전에 읽은 느낌도 나는데 만약 이미 봤더라면 어떤 식으로 남겼을까?  아가사 크리스티를 모티브로 한 부분, 그리고 등장하는 추리동호회회원들의 닉네임이 각각 유명한 작가의 이름을 따온 것이 단순한 구성요소가 아닌 트릭을 일부였다는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덕분에 한 가지가 밝혀지면서 나머지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버렸고 다소 막판에 힘이 빠져버린 느낌을 받았다.  평이한 재미와 평이한 추리.


주말에 책을 많이 읽지 못하면 주중엔 아무래도 책을 제대로 읽기 어려운 4월이었다. 5월에는 모든 면에서 조금씩 더 분발할 것이다.  봄과 함께 내 중년의 책읽기도 다른 일들도 모두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  요즘은 한국뉴스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재미있다. 70년 동안 정말 고생도 많이 하고 분단을 이용해서 치부하고 호가호위한 놈들도 많았다.  이제부터는 꽃길만 갈 수 있도록 양측 정부도, 사람들도 모두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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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8-05-01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병희 선생님 책을 사모으고 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죠...그래도 꾸준히 사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사겠지요. 제가 그분보다 나이가 어리니..^^

transient-guest 2018-05-01 12:17   좋아요 0 | URL
책값이 알라딘us기준으로 하면 정말 비싸더라구요. 사무실을 차리고 두 번째 해부터 조금씩 사정이 나아져서 그때부터 한 권씩 모았지요. 아껴두고 조금씩 꺼내먹을 생각입니다.ㅎㅎ

cyrus 2018-05-01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후를 위해 많은 책을 사려면 노후를 위한 집을 마련해야 합니다. 많은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커다란 집이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8-05-02 01:20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면, 아니 지금이라도 가능하면 조금 한적한 교외로 이사가고 싶습니다. 좋은 동네에 있는 넓고 아름다운 집을 매우 저렴하게 살 수 있어요.ㅎ 뭐 그런 마음가짐입니다. 사실 벌어먹고 사느라 busy town에 살지 나이를 더 먹으면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ㅎ
 
삼국지를 읽다 - 중국 사학계의 거목 여사면의 문학고전 고쳐 읽기 유유 동양고전강의 1
여사면 지음, 정병윤 옮김 / 유유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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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정사 삼국지를 읽을 수도 있어 특히 관심이 간 책. 행간을 잘 펼쳐냈고 정사와 연의를 비교하는 수준을 넘어 사실관계와 배경에 대한 추론을 던지는 면도 좋다. 다만 수정주의시각에서 역사를 추리하면서 다소 현대의 관점으로 과거을 살피는데 조금은 무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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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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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한 수준의 추리. 예전에 읽고 다시 읽는 건지 가물가물한데 셋팅이 낯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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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아
타키투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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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역사책이나 정세를 다룬 책으로는 상당히 소박한 수준. 하지만 원전을 제대로 번역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거의 2000년 전의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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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8-05-01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병희 번역은 확실히 가독성은 최고입니다...그래서 저도 천병희 번역을 선호합니다.

transient-guest 2018-05-01 12:21   좋아요 0 | URL
중역과는 다른 맛이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이쪽 관련한 책들은 주로 중역이었는데 확실히 다르네요. 천병희선생님의 책보다는 조금 더 이론적인 면에 치중했다는 평을 받는 박종현교수님의 책도 조금씩 사들이고 있습니다. 이건 겨울서점에서 권유를 받았네요.
 

갖 오후가 시작된 시간이다. 잠깐 볼일을 보고나서 사무실로 들어가는 대신 서점으로 와버렸다. 그만큼 한가하기도 하거니와, 달리 갈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일이야 찾으면 뭐라도 할 일이 있겠지만, 어쩐지 머리를 쓰기 싫은 내 기분이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나를 보내버린 것이다. 밀린 이야기를 몇 개 정리하고 책을 좀 읽다가 하루를 마감할 생각이다. 오늘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잠깐 spin을 돌리고 한 시간동안 요가를 했다. 요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나서의 세 번째 요가강습이었는데 오늘은 꽤 고강도의 동작이 많았던지 한 시간을 하면서 땀을 엄청 흘렸는데, 역기를 들면서 흘리는 땀과, 달리기를 하면서 흘리는 땀, 그리고 요가처럼 정적인 운동을 하면서 흘리는 땀의 느낌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 무척 신기하다. 요가를 하고 나서는 그 좋은 기분을 그대로 이어가려고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고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아침식사도 채식을 했다. 자주는 안 될 말이고 아주 가끔은 이렇게 아무런 일정이 없는 평일도 나쁘지 않다고 종종 말한다.  slow down된 business를 빼면 오늘이 딱 그런 날, 딱 그런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날이다.  봄바람이 부는 따스한 실리콘밸리의 날씨는 3-5월 사이가 가장 좋고, 9-11월이 그 다음으로 좋다.  인구가 갑자기 늘고 집값이 3-4배로 뛴 탓에 매연과 스모그도 늘었지만, 그래도 사는 곳은 산이 가까워서 그런지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공기가 정화되어 새벽이면 쌉쌀하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온갖 첨단기업이, 그리고 그걸 보고 몰려든 인간들이 돈을 싸들고 와서 집값을 올려버린 이유가 이런 좋은 환경이 아닌가 싶다.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작품은 환상과 역사, 그리고 현실을 경계를 넘나든다는 걸 '뒤마 클럽'을 읽으면서, 그리고 그 책을 원작으로 한 the 9th Gate를 그 전에 보면서 이미 알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이 작가의 책 몇 권을 주문했던 계기가 '뒤마 클럽'이라고 기억하는데, 이번에 갖고 있는 두 권을 모두 읽고, 이는 다시 마침 중고로 풀린 물건들까지 작가의 소설을 모조리 주문해버리는 계기가 되었으니 책과 책, 작가와 작가, 때로는 작가와 책을 넘나드는 여행은 무척 즐겁다. 


때는 스페인왕정의 말기, 대략 19세기의 중반이다. 이미 검술이나 결투 같은 호사스러운 귀족의 취미는 피스톨같은 화기에 자리를 내어 준지 오래다. 한때 촉망받는 프랑스군의 장교였고 당시 파리의 검술대가였던 선생의 의발제자였던 돈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생계를 위한 검술교습으로 근근히, 딱 신사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살아가고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과거 영광스러웠던 시절의 흔적과 책으로 채워져 있는데, 어울리는 사람들이라고는 그가 검술을 가르치는 귀족, 귀족의 자제, 그리고 카페에서 떠드는 이들 몇 명이 고작이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그의 삶에 어떤 여자가 걸어들어오면서 그가 몸담고 있던 세계의 안팎이 완전히 바뀌는데, 그가 dearly hold하고 있는 golden age의 가치관, 이에 근거한 대인관계까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건 결국 검술과 검술로 대변되는 구시대의 가치관에 입각한 탈세속적일만큼 주변에, 사회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의 탓이 가장 크다.  혁명가도 무엇도 협잡꾼에 다름아님을 알게 되고, 잠깐이나마 다시 사랑에 빠졌던 대상이 또한 그를 속였음을 알게 되는 노검객의 남은 인생이 무척이나 덧없게 느껴진다.  하나의 가치관을 고집하고 그 모습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모습에는 처연함 이상을 위엄이 있다만, 그거 말고는 달리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건 좀 딱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생뚱맞게도 펜싱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검도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아직도 그 부상이 완치되지 않았기에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무도에서 멀어지고 있는데, 혹시 서양의 검술을 익히는 것으로 이 맘을 달래볼 수 있으려나?


갑자기 현대로 와 버린 작품속의 세계에 문득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아주 잠깐이지만 책읽기를 미룰 생각이 들었던 건 결국 '검의 대가'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종의 learning curve와도 같은 이 현상은 기실 책에서 책을 넘나들면서 흔히 겪는 일인데, 한 권의 책에 푹 빠져 읽고나면 그 증상이 좀더 심한 것 같다.  


주인공은 문화재급의 그림을 복원하는 화가. 어느 날 주문을 받아 작업을 하게 된 그림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내고, 단순히 그림값이 올라가는 계기로 생각되었던 그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림속에 머물러 있었어야 할 미스테리가 하나씩 현실로 펼쳐진다. 이걸 풀어나가기 위해 그림속의 체스게임을 멘토와 함께 찾아낸 체스의 고수랑 풀어나가는 과정은 소설의 중요한 부분인데, 대충이지만 체스의 기본룰을 아는 것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나름 도움이 됐다.  체스라는 게임에 대한 오이디푸스적인 해석도 신선했고, 장기판의 주인공들인 각 장기말, 특히 비숍에 대한 해석은 무척 특이했는데, 역시나 이 책을 보면서 체스를 두고 싶어진 나였다.  가끔 구닥다리 영국늙은이처럼 잘 만든 체스판, 역시 정성들여 만든 장기말을 양측에 포진시키고 책을 보면서 혼자 체스를 두는 자신을 그려보는데, 멋지다고 혼자는 생각해겠지만, 남들의 눈에는 셸든 쿠퍼처럼 보일 것 같다. '검의 대가'의 추리는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의외의 반전에 잠깐 당황했던 책이다.


잔잔한 위로 같았던 책. 지친 눈과 마음을 차분하고 희망적으로 바꾸어 준, 뭔가 설레임을 가득 던져준 책.  늘 여행을 꿈꾸지만 현실은 일년에 한번 멀리 가는 것도 감지덕지하는 수준. 근처에 쉽게 다녀올만한 곳들이 많이는 있지만 어쩐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요즘은 쉬는 날은 그저 쉬고, 일하는 날엔 쉬는 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상상하는 기괴한 쳇바퀴를 돌리는 것이 이 아저씨의 일상이다.  사진과 글이 어우러진 펜그림이 무척 담백하다.


세계 최대의 서점거리 진보초. 일상의 아무런 꿈이 없이 그저 책을 읽고 산책을 다니는 삶을 살기 위해 일주일에 이틀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던 저자는 우연한 계기로 서점에 입사하고 다시 우연히 그런 마음이 들어 중고서점을 열고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다. 차별화, 문화공간화, 다중적이고 유기적인 책과 다른 것들의 연결이 아무리 일본이라도 점점 책이 덜 팔려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이런 중고서점이 유지되게 하는 것 같다.  갑자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듯한 생각을 했는데, 저자가 살던 아주 조금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삶을 걸어볼 방법이 없지는 않다만, 버려야 하는 건 욕심과 미래에 대한 걱정인데, 이걸 쉽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 그래도 절약하고 필요 없는 걸 사들이지 않으면 책과 산책으로 가득한 삶이 가능하다는 구체적인 실증사례를 본 것 같아 은근 기쁘다.


삶과 이룬 모든 것들이 어머니가 그린 아들의 인생, 그러니까 어머니의 꿈이 투영된 것 같았던 전쟁영웅, 정치가, 빼어난 작가이자 유명인이었던 로맹 가리의 유서와도 같은 책. 이 책이 쓰이고 1년 정도 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말 그대로 유서가 된 생의 반추가 아닌가.  '새벽의 약속'에서 극화되었던 로맹 가리 자신의 이야기를 좀더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삶과 죽음을 보면 로맹 가리는 늘 나에게 쓸쓸함과 허무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제 겨우 오후 두 시가 되었는데, 벌써 하품이 난다.  아침잠이 없는 편이지만 역시 새벽 네 시에 일어난 하루는 오후가 피곤하다.  커피를 많이 마셔도 하품이 나고 졸음이 오는 건 완전히 이겨낼 수 없고 그저 막상 자려고 누워버리면 잠이 오지 않게 할 뿐이다.  


허름한 아파트이지만 배란다를 화분과 이런 저런 물건으로 둘러서 바깥의 눈을 차단하고 낮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좋은 자리로 만들었다.  날씨가 풀린 요즘은 그렇게 퇴근해서 그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 보면 2-3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린다.  오늘도 그 시간을 즐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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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26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벽 다섯시만 되면 눈이 떠져요. 정신이 맑으면 읽다만 책을 보고, 그렇지 않으면 눈을 붙입니다.

transient-guest 2018-04-26 09:11   좋아요 0 | URL
아침에 일찍 책을 읽는 건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죠 ㅎㅎ 차나 커피 한 잔 끓일 때 그걸 기다리는 시간까지도 운치가 그만입니다 ㅎ

cyrus 2018-04-26 11:56   좋아요 0 | URL
아침 출근시간이 여유로워 진다면 저도 t-guest님처럼 모닝커피를 끊여서 마시고 싶습니다.. ㅠㅠ

안녕반짝 2018-04-26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의 대가> 오래전에 정말 인상깊게 읽은 책이었는데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저도 잔잔한 위로를 받았어요.
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자신읽게 밝히기도 했고요.
저는 여행 준비가 너무 귀찮아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걸 인정하기로 했거든요.^^

transient-guest 2018-04-27 05:04   좋아요 0 | URL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작품은 아주 특이한 것 같아요.ㅎ 여행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도 있으니 아예 여행을 제껴놓지 마시구요..ㅎㅎㅎ 저는 사실 무계획여행이 더 좋은 사람인데 막상 너무 무계획하게 가면 어렵게 간 여행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ㅎ 자기류가 최고라고 봐요.

이지 2018-04-26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바람이 부는 가장 좋은 4월은 밖으로 산책을 다녀야죵!

transient-guest 2018-04-27 05:05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ㅎ 근처에 파크가 제법 있어서 좀더 날이 풀리면 산책도 하고 책 한권 들고 나갈 생각입니다.

LAYLA 2018-04-26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여러개 담아가네요^^ 책이야기 나눔 감사합니다 :)

transient-guest 2018-04-27 05:05   좋아요 0 | URL
Layla님 안녕하세요!! 저도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