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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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2-3번은 더 읽은 것 같은데 이렇게 distort된 플롯의 기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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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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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잘 활용한 덕분에 길고 깊은 책 한 권을 오늘 완독할 수 있었다. 갑자기 닥친 가을 초입의 엄청난 늦더위로 잠을 설치고 겨우 일어나 잠깐 일을 하고 운동을 마친 후 점심시간을 조금 넘어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중이 나쁘지 않았던지 금방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었다. 30대 중반이 조금 못 미친 예전의 내가 읽은 조르바와 이제 40대 중반을 넘긴 지금의 내가 읽는 조르바는 여느 책과 다름 없이 변함이 없었지만 읽는 나는 달라져 있었다. 이번 21일 21권 project 내내 익숙하게 느낄 이 감정의 창을 거친 조르바 또한 많은 '꺼리'들을 준 것이다. 


혁명을 향해 떠나는 친구와 이별한 화자는 부둣가 술집에서 조르바를 만나 크레타로 향한다. 갈탄을 파다가 털어먹고, 다른 일을 벌이기 위한 물품을 사오라고 보낸 조르바는 젊은 처자에게 빠져 돈을 다 털어먹고 돌아온다. 수도원을 털어 마련한 밑천으로 다시 일을 벌이지만 이 역시 망해버리고. 이 과정에서 조르바의 인생관에 매료된 화자는 잠깐 스스로를 풀어주지만 종국에는 다시 익숙한 law and order의 세계로 돌아간다. 


바이마르의 혼란과 2차대전을 겪고 소식이 끊긴 조르바의 부고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 긴 방황과 구도의 이야기는 확실히 지금 나에겐 12-3년 전의 내가 본 기억보다 훨씬 더 쉽고 명료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경험의 독서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오십의 나이가 왜 지천명이라고 불리는지 몇 년 후면 직접 확인하게 될 변방의 일개 변호사에게는 그런 의미로 보인다. 


학습에 의한 지적 사유에 속한 화자의 순진한 세계관은 실존적이고 실증적인 조르바의 삶과 만나면서 한바탕 격랑을 맞는다. 그저 놓아버리면 될 것을 꽉 쥐고, 관념속의 이론을 준비되지 못한 실제에 대입하다가 쿠사리를 먹고. 다가오는 걸 그 의미 그대로 받아 즐기는 것으로 존중하지 못한 탓에 잠깐 깨어나 지상으로 내려왔던 영혼은 금방 다시 천상으로 구속되어 버리고 그 끝은 조르바와 헤어져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르바는 불한당이고 사기꾼이며 모험을 빙자한 허풍선이지만 그의 영혼은 그가 경험한 것을 녹여낸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흘러가는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데 화자나 나처럼 평생을 law and order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볼 때의 끌림은 자칫하면 우리 기준에서의 '인생'을 망치기 십상이니 조르바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조르바가 한때 이곳 저곳을 오르내린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종종 그런 시기가 있을 것이다. 단 조르바를 이렇다 저렇다는 표현으로 규정한다면 그건 더 이상 조르바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조르바를 읽고 교양을 쌓고 성공하란 무지성이 있다면 그 또한 조르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난 오늘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 이겨내고 살아내는 것에서 조르바를 보았다. 실체가 없는 '도' 또는 '삶'의 옳은 정형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슴을 좇다가 숲을 못 보는 사냥꾼처럼 옆에 있는 실재하는 삶을 놓치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 지금 이대로, 모든 기쁨과 슬픔, struggle과 striving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서 살아내는 것에서 진정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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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9-07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30대에, 40대에
십년 즈음 마다 다시 만나는 대작...
휴가 활용해서 알차게 읽으셨다니 이번 휴가를 뿌듯한 맘으로 기억하시겠어요
저는 아직 읽어본 적 없는데
올려주신 리뷰 읽다가, 그 옛날엔 [지와 사랑]으로 번역된 헤세 책이 생각 났어요^^

transient-guest 2022-09-07 02:17   좋아요 1 | URL
네 아무래도 긴 책을 읽으려면 평일엔 어렵겠다 싶어요. 주중에는 조금 쉬운 책으로 가고 주말에는 긴 책으로 갈 것 같아요. ‘지와 사랑‘은 처음 듣는 제목입니다. 예전엔 임의로 의역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데 혹시 그런 건가요? ‘분노의 포도‘를 ‘분노는 포도처럼‘으로 기억하는 올드타이머들도 꽤 있더라구요.

얄라알라 2022-09-07 09:19   좋아요 1 | URL
분노는 포도처럼?

와...영화 제목 스타일이네요

저는 중딩 때 아버지께서 사주신 세계문학 전집 중 [지와사랑]이 있어서 클 때까지 그 제목이 지와사랑인지 알았어요. 골드문트가 나오는 바로 그 책이요^^

transient-guest 2022-09-07 09:52   좋아요 0 | URL
그 시절 작명의 낭만이 있긴 해요. ㅎㅎ 영화제목도 그렇고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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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2-3년 터울로 두 번째 읽은 ‘조르바‘ 처음보다 훨씬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반추할 수 있었다. 이성과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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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9-07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올리버 트위스트] 앞부분 다시 읽었는데
초등학생 때 읽던 것과 아주 결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transient-guest 2022-09-07 01:29   좋아요 1 | URL
알면서도 신기한 일이죠 ㅎ 아직 21일 프로젝트 초입이라 과거에 읽은 책을 위주로 가고 있으니 계속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아요
 

거의 전 세계는 5월 1일 May Day를 노동절로 기념한다는데 미국은 그저 9월의 첫째 주 월요일을 연휴로 삼아 쉰다. 뭔가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과 유리된 듯한 이상한 기분이다. 


Indian Summer의 탓인지 기상이변의 탓인지 거대한 heat dome이 북서부와 남동부까지를 뒤덮어버렸다. 상대적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낸 이번 해, 덕분에 가장 더운 한 주를 맞이하고 있다. 저녁 7시면 요즘은 서늘했는데 오늘은 화씨 95도가 넘는다. 이번 주는 걸을 엄두를 못 낼 것 같다.


시원한 gym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으로 더위를 식히고 오늘의 목표를 위해 서점에서 계속 책을 읽다 왔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같아서 두 곳 모두 사람으로 넘치고 있었다.


back/bicep 57분 494칼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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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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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라는 나에게 언제 다시 읽어도 늘 새롭다. 이야기는 변함이 없지만 읽는 내가, 나의 시간이 계속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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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2-09-06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다시 읽고 있는데 반갑네요

언제 읽어도 새롭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transient-guest 2022-09-06 02:14   좋아요 1 | URL
영화도 그렇지만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습니다. 유희로, 지식을 위해, 정보를 위해, 생각을 위해 등등. 한번 구해서 보관만 잘 하면 밝은 빛과 건강한 눈이 있는 한 계속 즐길 수 있으니 더더욱. ㅎㅎ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9-06 1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정말 획기적인 작품인거 같아요. 너무 하루키적인 책~! 이 작품 읽을때마다 감탄입니다~!!

transient-guest 2022-09-06 11:36   좋아요 2 | URL
지금도 그렇게 느껴지니 책이 나올 당시엔 정말 대단했을 것 같아요. 그 나라도 사정이 참 복잡해서 이런 작가가 아쿠타가와 상을 받지 못한 걸 보면 문학상의 위상이랄까 이딴 것이 다 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다시 읽는 나는 그 전의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라서 다음 번에는 또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