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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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잘 활용한 덕분에 길고 깊은 책 한 권을 오늘 완독할 수 있었다. 갑자기 닥친 가을 초입의 엄청난 늦더위로 잠을 설치고 겨우 일어나 잠깐 일을 하고 운동을 마친 후 점심시간을 조금 넘어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중이 나쁘지 않았던지 금방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었다. 30대 중반이 조금 못 미친 예전의 내가 읽은 조르바와 이제 40대 중반을 넘긴 지금의 내가 읽는 조르바는 여느 책과 다름 없이 변함이 없었지만 읽는 나는 달라져 있었다. 이번 21일 21권 project 내내 익숙하게 느낄 이 감정의 창을 거친 조르바 또한 많은 '꺼리'들을 준 것이다. 


혁명을 향해 떠나는 친구와 이별한 화자는 부둣가 술집에서 조르바를 만나 크레타로 향한다. 갈탄을 파다가 털어먹고, 다른 일을 벌이기 위한 물품을 사오라고 보낸 조르바는 젊은 처자에게 빠져 돈을 다 털어먹고 돌아온다. 수도원을 털어 마련한 밑천으로 다시 일을 벌이지만 이 역시 망해버리고. 이 과정에서 조르바의 인생관에 매료된 화자는 잠깐 스스로를 풀어주지만 종국에는 다시 익숙한 law and order의 세계로 돌아간다. 


바이마르의 혼란과 2차대전을 겪고 소식이 끊긴 조르바의 부고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 긴 방황과 구도의 이야기는 확실히 지금 나에겐 12-3년 전의 내가 본 기억보다 훨씬 더 쉽고 명료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경험의 독서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오십의 나이가 왜 지천명이라고 불리는지 몇 년 후면 직접 확인하게 될 변방의 일개 변호사에게는 그런 의미로 보인다. 


학습에 의한 지적 사유에 속한 화자의 순진한 세계관은 실존적이고 실증적인 조르바의 삶과 만나면서 한바탕 격랑을 맞는다. 그저 놓아버리면 될 것을 꽉 쥐고, 관념속의 이론을 준비되지 못한 실제에 대입하다가 쿠사리를 먹고. 다가오는 걸 그 의미 그대로 받아 즐기는 것으로 존중하지 못한 탓에 잠깐 깨어나 지상으로 내려왔던 영혼은 금방 다시 천상으로 구속되어 버리고 그 끝은 조르바와 헤어져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르바는 불한당이고 사기꾼이며 모험을 빙자한 허풍선이지만 그의 영혼은 그가 경험한 것을 녹여낸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흘러가는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데 화자나 나처럼 평생을 law and order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볼 때의 끌림은 자칫하면 우리 기준에서의 '인생'을 망치기 십상이니 조르바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조르바가 한때 이곳 저곳을 오르내린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종종 그런 시기가 있을 것이다. 단 조르바를 이렇다 저렇다는 표현으로 규정한다면 그건 더 이상 조르바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조르바를 읽고 교양을 쌓고 성공하란 무지성이 있다면 그 또한 조르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난 오늘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 이겨내고 살아내는 것에서 조르바를 보았다. 실체가 없는 '도' 또는 '삶'의 옳은 정형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슴을 좇다가 숲을 못 보는 사냥꾼처럼 옆에 있는 실재하는 삶을 놓치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 지금 이대로, 모든 기쁨과 슬픔, struggle과 striving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서 살아내는 것에서 진정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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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9-07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30대에, 40대에
십년 즈음 마다 다시 만나는 대작...
휴가 활용해서 알차게 읽으셨다니 이번 휴가를 뿌듯한 맘으로 기억하시겠어요
저는 아직 읽어본 적 없는데
올려주신 리뷰 읽다가, 그 옛날엔 [지와 사랑]으로 번역된 헤세 책이 생각 났어요^^

transient-guest 2022-09-07 02:17   좋아요 1 | URL
네 아무래도 긴 책을 읽으려면 평일엔 어렵겠다 싶어요. 주중에는 조금 쉬운 책으로 가고 주말에는 긴 책으로 갈 것 같아요. ‘지와 사랑‘은 처음 듣는 제목입니다. 예전엔 임의로 의역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데 혹시 그런 건가요? ‘분노의 포도‘를 ‘분노는 포도처럼‘으로 기억하는 올드타이머들도 꽤 있더라구요.

얄라알라 2022-09-07 09:19   좋아요 1 | URL
분노는 포도처럼?

와...영화 제목 스타일이네요

저는 중딩 때 아버지께서 사주신 세계문학 전집 중 [지와사랑]이 있어서 클 때까지 그 제목이 지와사랑인지 알았어요. 골드문트가 나오는 바로 그 책이요^^

transient-guest 2022-09-07 09:52   좋아요 0 | URL
그 시절 작명의 낭만이 있긴 해요. ㅎㅎ 영화제목도 그렇고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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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2-3년 터울로 두 번째 읽은 ‘조르바‘ 처음보다 훨씬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반추할 수 있었다. 이성과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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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9-07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올리버 트위스트] 앞부분 다시 읽었는데
초등학생 때 읽던 것과 아주 결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transient-guest 2022-09-07 01:29   좋아요 1 | URL
알면서도 신기한 일이죠 ㅎ 아직 21일 프로젝트 초입이라 과거에 읽은 책을 위주로 가고 있으니 계속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아요
 

거의 전 세계는 5월 1일 May Day를 노동절로 기념한다는데 미국은 그저 9월의 첫째 주 월요일을 연휴로 삼아 쉰다. 뭔가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과 유리된 듯한 이상한 기분이다. 


Indian Summer의 탓인지 기상이변의 탓인지 거대한 heat dome이 북서부와 남동부까지를 뒤덮어버렸다. 상대적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낸 이번 해, 덕분에 가장 더운 한 주를 맞이하고 있다. 저녁 7시면 요즘은 서늘했는데 오늘은 화씨 95도가 넘는다. 이번 주는 걸을 엄두를 못 낼 것 같다.


시원한 gym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으로 더위를 식히고 오늘의 목표를 위해 서점에서 계속 책을 읽다 왔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같아서 두 곳 모두 사람으로 넘치고 있었다.


back/bicep 57분 494칼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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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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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라는 나에게 언제 다시 읽어도 늘 새롭다. 이야기는 변함이 없지만 읽는 내가, 나의 시간이 계속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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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2-09-06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다시 읽고 있는데 반갑네요

언제 읽어도 새롭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transient-guest 2022-09-06 02:14   좋아요 1 | URL
영화도 그렇지만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습니다. 유희로, 지식을 위해, 정보를 위해, 생각을 위해 등등. 한번 구해서 보관만 잘 하면 밝은 빛과 건강한 눈이 있는 한 계속 즐길 수 있으니 더더욱. ㅎㅎ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9-06 1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정말 획기적인 작품인거 같아요. 너무 하루키적인 책~! 이 작품 읽을때마다 감탄입니다~!!

transient-guest 2022-09-06 11:36   좋아요 2 | URL
지금도 그렇게 느껴지니 책이 나올 당시엔 정말 대단했을 것 같아요. 그 나라도 사정이 참 복잡해서 이런 작가가 아쿠타가와 상을 받지 못한 걸 보면 문학상의 위상이랄까 이딴 것이 다 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다시 읽는 나는 그 전의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라서 다음 번에는 또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지 궁금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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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9월 24일까지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시간이 좀 났기 때문인데 이런 도전은 숱한 독서인들이 이미 성공적으로 마친 바 개인적으로 리셋의 의미를 두고는 있지만 뭔가 대단한 건 아니다. 어떤 이는 벌써 여러 번 일년 365일 간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긴 바 있으니까 더더욱 21일 21권이란 건 일단 숫자로 보아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첫 번째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은 건 내 독서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던 2012년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당시 여러 가지의 일이 한꺼번에 닥친 시기를 살아내고 있었고 어쩌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나는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큰 힘이 된 전투적이고 꾸준한 독서를 시작한 2012년 남들은 이미 다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작을 축으로 삼아 미친듯이 읽고 구한 그 시절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지난 10년에서 앞으로의 10년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삼고자 한다. 


이 책은 이미 네 번째가 아니면 다섯 번째 읽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 그 시기의 화두에 맞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도 익숙한 그대로의 이야기지만 읽는 내가 늘 달라져 있는 것이 이유가 되지 않을까. 


대학을 다니는 화자가 방학 동안 Jay's Bar에서 쥐란 친구와 만나 매일 맥주를 마시고 그 나이와 시대에 맞는 뭔가 그럴듯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20대에서의 인생과 개똥철학을 논하고 어떤 여자를 만나다가 방학이 끝나 다시 도쿄로 돌아와 30대를 맞이하고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보통을 삶을 살면서 그 시절 한때의 사람과 장소와 경험을 회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심플하고 짧은 이야기로 무라키미 하루키는 '군조 문학상'을 받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이 책에서는 작가로서 하루키의 왕성한 시기에 나온 작품들의 모티브가 된 많은 테제들이 이미 등장한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읽을 때마다 다른 작품으로 파생된 '쥐', '양', '우물', '우물에 빠진 남자', '자살한 여자친구', '재즈', '클래식', 'LP', '맥주,' '버번 위스키,' 등이 점차 선명하게 하나씩 들어오게 된다. 읽으면서 계속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말이다.


나의 20대를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내 모습을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밖의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도 어렵지만 그땐 전혀 몰랐던 인간관계의 어려움, 연애, 주고 받는 것이 뭔지 모르고 내 중심적으로 해석해나가던 인간관계, 허제, 겉모습, 비교우위, 뭔가 깊이 있는 듯, 하지만 실제의 경험에 바탕하지 아니했던 인생관 등등. 그야말로 부끄러움 90에 그리움 10인데 그 10은 젊음의 무한한 가능성에 매긴 점수일 뿐 당시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여러 면에서 훨씬 나은 사람 같아서 그 젊음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그립지 않은 시절이다. 


Jays Bar는 아니지만, 손쉽게 구하기 좋은 맥주를 마시면서 칩과 육포를 안주 삼에 참 많은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지 않을 땐 가끔 인적이 끊긴 깊은 한밤 중의 Pier에 나가서 바다 공기를 마시거나 나중에 달리기를 하게된 3-4학년의 어느 지점에서는 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track을 달리다가 안개를 뚫고 눈 앞에 나타난 사슴에 놀라기도 했다. 본격적인 목적의식을 갖고 삶에 달려든 4학년 시절에는 졸업을 준비하면서 인턴으로 뛰고, 알바를 다니고 하면서 진짜 하루의 자는 시간을 빼곤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살기도 했으니 지금보다 못하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빛나던 지기는 그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가능성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지만 뭔가 이룰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과 의지가 늘 함께 하던 세기말 그때의 내가. 


세기말을 훌쩍 넘어 밀레니얼을 지나 금 세기 세 번째 decade의 초입인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거의 두 배의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커리어나 금전적으로나 심지어 신체의 능력까지도 그때의 나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이다. '쥐'같이 개똥철학을 논하던 친구들도 하나 둘 씩 삶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차도 여러 대를 갈아탔고, 사는 곳도 많이 바뀌었고 재즈와 클래식을 즐기고 '우물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건' 내 자신이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자살한' 과거의 여자친구 같은 건 없다. 


안정적인 은퇴를 꿈꾸며 노력하면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부지런히 세상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겨버렸는지 내년부터는 근처의 안 가본 곳부터 하나씩 짧게다도 다녀올 결심을 해버린 나는 이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비해 짧아지는 것이 거의 확정될 반 세기의 나를 향해 가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보다는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신의 모습에서 장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자의 안쓰러움을 본다. 


점점 과거에 즐긴 많은 것들이 재미없어지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특히 한국 사람) 왜 늘 돈 얘기와 골프 얘기가 주요 테마가 되는지 이상하게 생각되는 요즘이다. 다른 건 몰라도, 심지어 비디오 게임은 더 이상 즐기지 않게 되더라도,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몸을 쓰는 것, 여행과 정신, 그리고 영혼의 수양은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을 함께했던 수많은 인연들에게도 축복을. 이제는 어느덧 우리는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음을 새삼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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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5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6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