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퀸의 사전적(?) 의미에는 광대도 있고, 한국의 록밴드도 있다.  게다가 '할리퀸 소설'이라는 여성취향의 로맨스 소설과 할리퀸 새우라는 어종으로도 풀이가 나온다.  하도 '할리퀸'이라는 생소하지만 익숙한 단어를 여러 곳에서 접했던 바, 이번 크리스트 소설 '신비의 사나이 할리퀸'을 보면서 도대체 '할리퀸'이 뭔가, 크리스티 소설이 '할리퀸'이라는 말이 시작된 첫 지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방금 찾아보면서 스펠링을 검색하니 여기서의 할리퀸은 할리 Queen이 아니라 Quinn이라는 전형적인 영국의 last name이다.  그러니까 할리퀸이 아니라 할리 퀸이라고 해야 옳겠다.  크리스티가 가장 좋아한 케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등장하는 작품은 모두 단편이며 특히 새터스웨이트가 등장하는 단편에서 그에게 영감을 주고 사라지는 정도의 역할만 볼 수 있다.  소설을 보면 실제 인물인지 새터스웨이트가 상상하는 가공의 인물이지 모호할 때도 있는데, 원제인 The Myterious Mr. Quinn을 음미해보면 처음부터 작정하고 이런 생제르맹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낸 듯. 

 

자주 이야기 하지만, 호흡이 긴 추리를 재미있게 읽다가 조금 늘어지는 감이 없지않아 지칠 때에는 이렇게 알맞은 단편모음집이 등장하는 구성은 최고라고 하겠다.  

 

인생 황혼기의 노인 새터스웨이트의 특기는 관찰이다.  타인의 행불행과 깊은 속마음을 짐작하면 엿보는 것을 즐기는 그는 할리퀸의 등장과 함께 사건의 전면에 탁월한 타이밍으로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데, 알고보면 이미 모든 것을 보았고, 알고 있었던 것을 할리퀸의 한 마디로 영감을 얻거 풀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그리고 언제나 돌아보면 사라진 할리퀸을 보면서 나는 그가 새터스웨이트의 머릿속에만 있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할리퀸을 보고 듣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나마 할리퀸은 실존하는 케릭터 같다.  언뜻 저녁 노을과 함께 떠올랐다가 달과 함께 사라지는 우리 머릿속의 번득임을 의인화한 인물일까?  I will never know....

 

이 작가를 접한 것은 '김두식-황진영'이 함께 진행하는 podcast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인터뷰 때 하던 말이 인상적인데, 생활고에 대한 질문에 적게 쓰기 때문에 지금의 벌이로도 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 같다.  젊은 작가이고 목소리가 맘에 들어 작품을 사보게 되었다.

 

여자.  한국땅에서 여자라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여자가 아닌 남자인 내가 보아도 답답한 그 차별, 한, 집착, 외로움, 이런 것들을 견뎌내면서 우리의 어머니들은 우리를 낳고 키워서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길러냈다.  때로는 무능한 남편에 시달리고, 유능하면 유능한대로 말썽부리기를 주저않던 아버지들까지도 다독여내고 견뎌내는 어머니로서의 여자는 그 우상화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더욱 여성차별의 상징이 되어버린 감도 없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외화벌이의 역군으로, 현모양처로, 강한 전사로, 일꾼으로 그렇게 정작 여성이 원하는 것과는 큰 상관없이 시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가르치는 여성의 진정한 이야기는 아직도 제대로 시작되지는 못한 것 같다는 것이 이 소설을 읽고나서 새삼 가슴에 박힌다.  쓰고 나니 무척 유치한데, 달리는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할 수가 없어 아쉽다.

 

전집의 시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시대는 모르겠지만,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중반까지도 '전집'세트는 책에 돈을 조금이라도 쓰는 집이라면 하나씩은 있었는데, 주로 외판원 아주머니들이 발품을 팔아 공급되는 고급상품이었다.  금성출판사 같은 인지도 있는 곳에서 '위인전기' '공상과학' '문학' '백과사전'의 형태로 세계유수의 좋은 책을 선별하여 낸 것들의 구성은 지금 보아도 무척 뛰어난 부분이 있어, 자유롭게 한 권씩 책을 사보는 것이 주류인 지금에도 헌책방을 통해 꽤 활발히 구매되는 것 같다.  2006-7년 언제인가 그렇게 나도 짝이 맞지 않는 금성출판사의 '전집' 한 세트를 꽤 좋은 가격에 아벨서점에서 구입하여 보관하고 있다.  문고본과는 다른 하드커버로 만든 진한 청색바탕에 금색으로 박은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보면 지금과는 다른 그 멋과 맛을 느낄 수 있기에 책장에 꽂아놓기만 해도 좋은 것이다.

 

내가 가진 세트는 문학과 과학, 고전, 사상, 사회,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유수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을 한 것이라서 정말 다양한, 그러나 단권으로 만나기 힘든 이야기들도 여럿 만날 수 있는데, 드디어 읽기 시작한 전집 (이라고 해야 짝이 다 빠져서 15권 정도가 될락말락하는)의 첫 번째는 HG 웰스가 쓴 '세계문화대소사'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다른 이의 '나의 신념'이라는 에세이.   


HG 웰스는 대략 SF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혜안과 통찰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숭배하는 고전의 대가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아니 그의 시대에서 10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웰스의 작품들 또한 고전이라 해야 마땅하다.  


혹자의 말을 빌리면 우리 시대의 교양은 자연과학지식이겠으나, 20세기 초입만해도 젠틀맨의 관심은 정치, 경제, 사회를 망라한 역사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작가가 1920년에 출간한 세계문화사대계의 축약본격인 이 책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역사서술과 함께 저자의 의견이 들어가는 부분의 글은 HG웰스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몇 가지 quote과 함께 나의 생각을 적어본다.


우리 모든 인종은 자유롭게 한데 섞이고, 구름처럼 만났다 흩어졌다 다시 만났다 하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이 사실을 잊지 않을 때 극단적인 오류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피부색이나 출생국가에 기인하는 인종차별은 지금까지도 완전하게 해소되지 못한 인류의 극악들 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연히 같은 백인종끼리의 차별도 당연시되던 당시의 사회적인 인식에 비춰보면 파격적이다 못해 혁명적인 발언이라 하겠다.


(유태인들이) 단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성서를 얻었기 때문이다...유태인이 성서를 만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성서가 유태인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성서를 매체로 해서 단결해 있었다.  예루살렘은...이름만의 수도에 불과했고 그들의 사실상의 수도는 성서 안에 있었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현대 유태인의 본류는 아슈케나지 유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의 혈통과 팔레스타인을 기반으로 했던 2000년 전의 셈족 유태인과는 다른 인종이며 중세무렵 (이 부분은 여러가지 설이 있다) 집단개종한 '백인'계 민족이다.  오히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인종이 혈통상으로는 성서의 '이스라엘'사람에 가까운, 그러니까 2000년 전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망한 유대왕국의 후손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을만큼, 유태인이라 함은 결국 그 혈통이나 인종적인 의미에서의 그룹이 아니라 '믿음'과 '시스템'을 공유하는 그룹이라 하겠다.  실제로 Chinese Jew라는, 중국계 혈통이면서 유태교를 받아들인 '유태인'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하니, HG웰스의 요점정리는 역시 탁월하다고 하겠다.


공간과 시간에서 시작하여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축약정리한 이 책은 1차대전 후의 세계에서 멈춰있는데, 1946년에 작고한 웰스가 왜 그 뒷 이야기를 마저 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어떤 이야기는 시대적인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대가의 혜안이 돋보이는 Classic이다.


뒷 장에 짧게 삽입된 HJ 레스키의 이야기도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는데, 사회주의라는 것이 센세이션이던 시대에서 반국가적인 시대, 그리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던 시대를 거쳐 현재 그 말기증상을 보여주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대안적인 아이디어로 재조명되는 지금 더욱 한번 정도 깊이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들이다.


HJ 래스키는 영국의 정치사상가로써 20세기 초에서 중반까지 살아있었던 사람이다.  다음은 이 책에서 건진 그의 말이다.


정치적 자유가 금권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한 추상적인 정치적 자유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계급은 결코 자진해서 그 권력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윤을 산출하는 힘에 대한 도전이 있다면...주인들은...사람이나 운동을 압살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글을 모아놓은 전집은 더 이상 시대가 요구하는 형태의 출판은 아닌 듯 하다.  그것보다는 자기가 찾은 reference를 바탕으로 하나씩 작품을 모으는 형태로, 어떻게 보면 덜 대중적인 방향으로 출판이 움직이고, 더 이상 만들어진 구성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에 뒤쳐지기 싫은 잠재적 고객을 위해 출판시장은 끊임없는 광고와 조정을 통해 구매자의 마음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집류도 지금와서 보니 충분히 헌책방에서 노려봄직 하다.  무엇보다 나름 당시 유명하던 학자와 편집자들의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구성이니만큼,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유수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S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 전집은 60권으로 이루어진 금성출판사의 현대인 교양총서고, 내가 가진 녀석들은 약 30권이 조금 못되는 것 같다.  나중에 분명히 헌책방에 마주치면 한질로 되어 있을테니 그냥 사들여서 중복되는 것들과 함께 보관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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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7-0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인 교양총서는 아담하고 깔끔하죠.몇 몇 책은 축약본이지만 완역본도 많고요.

금성사에서 좋은 전집이 많이 나왔어요.저도 어린이 청소년용을 몇 권 구입했습니다.특히 과학학습만화 몇 권은 아주 유용하게 참고하고 있어요.세계문학전집도 괜찮고요.

transient-guest 2014-07-09 00:54   좋아요 0 | URL
저는 예전에 위인전기 (한국/세계), SF, 만화 한국사, 그리고 백과사전전집을 갖고 있었는데, 미국에 올 때 남들 주고 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까운 것이, 제 독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녀석들이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또 여러 집에서 좋은 책을 읽었을테니까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현대인 교양총서는 아벨서점에서 구입할 때 두 질이 있었는데, 똑같은 책들이 빠져있더라구요. 어인일인지..
 

이 책을 주문할때만 해도 그 내용이 이처럼 방대한 fact를 시간흐름에 맞춰 전후일본의 시발점이 되는 천황제와 도쿄대학교의 역사로 풀어낸 것일줄은 몰랐다.  약 2000페이지가 넘어가는 엄청난 양인데, 다카시의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상당부분이 사건사실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다.  좀 나쁘게 말하면 지겨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다카시의 책이니만큼 읽는 중간마다 그의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찾을 수 있었다. 


전에 읽은 같은 작가의 이런 저런 대학, 교육, 및 정치담론을 보면서 역시 한국의 현대사는 일본의 그것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다는 생각을 한 바 있다.  기실 강점기 교육을 받는 친일 엘리트가 해방 후에도 숙청되기는 커녕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군대, 언론 등 나라의 요직을 대부분 차지해버린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최근 창극의 참극에서 보았듯이 일제, 그러니까 현대 일본보다는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에 가까운 자들이 대한민국 건국 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한국의 건설에는 음으로 양으로 일본의 입김과 간섭이 영향을 끼쳤는데, 특이한 점은 상당부분의 그런 답습이 한국인에 의해서 이어져왔다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도쿄대학은 철저하게 국가에 의해, 국가를 위한 목적으로 인재양성을 위해 세워진 교육기관이다. 따라서 모든 교과과정은 당시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 정부의 숙원인 서구화, 탈아, 근대화와 부국강병에 초점이 맞춰졌었고, 이후 이들은 메이지, 그리고 소화시대의 팽창시대를 거쳐 전후에 이어 지금까지도 일본을 움직이는 최고 엘리트 기관이 되어있다.  한국의 서울대학교 출신들이 사회전반에 포진되어 모든 요직을 독차지한 한국 현대사의 전신이 결국 여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물론 세세한 모습은 차이가 있으나 거쳐온 역사를 보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볼 수 있기에 이 책을 읽는 것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읽는 것이기도 하다.


도쿄대학을 둘러싼 일본의 이런 저런 이야기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할만큼 너무도 일본에 국한된 fact에 충실했으나, 엉뚱하게도 나는 여기서 당시 군국주의자 - 이들을 혁신파라고 불렀다 - 들이 적은 숫자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내세운 '일인일살, 일살다생'의 개념에 살짝 끌렸다.  과정이 잘못되면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인정 받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보면 암살은 정도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지기는 커녕 더더욱 나빠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7인회니, 만만회니, 그리고 그 뒤를 알 수 없는 닭씨의 비선라인의 전횡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what if를 떠올리는 것은 망상주의적인 낭만파 기질이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테러,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불특정다수를 노리는 폭탄테러 같은 짓 말고, 우리 독립지사들의 전술적인 방법론으로써의 테러와 암살은 힘있는 majority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강한 유혹으로써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과거의 망령이 백주대낮을 활보하면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는 지금, 이미 쌓일만큼 쌓인 조직력과 자금줄로 향후 스러지지 않을 강고한 권력으로 자손대대로 한국을 지배하려는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쩌면 한 사람이 한 명을 암살하여 일인의 죽음으로 다수를 살리는 것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솔깃하니까.  하지만, 암살로 야기될 혼란과 이를 기화로 다시 세를 불리는 불의한 조직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서라도 폭력은 답이 될 수가 없음이다.  그저 엉뚱한 상상을 해보는 것 뿐이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선생의 마지막 작품인 듯 싶다.  '백년간의 고독'에서 보여지는 환상소설의 묘사와도 같은 부분이 있고, 한 노인의 회고와도 같고, 사랑을 찾지 못해 육체를 갈구한 늙은이의 씨부렁거림 같기도 하다만, 같은 얘기라도 '은교'에서 언뜻 느껴지는 작가의 딸딸이 같은 투영이 이 작품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90이 되어서 숫처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 때문에 오히려 평소의 자신처럼 쉽게 돈으로 몸을 사들여 섞지 못하고 그저 환상처럼 중간의 외줄타기를 즐기면서 행복해하는 노인의 모습은 마치 '여자'를 알기전에 먼저 관념으로 시작되는 첫사랑을 닮았다.  지나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러니까 남자의 말로 경험을 하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러나 그 경험을 처음으로 치루기 전까지는 그 관념의 세계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해결된다.  


그런데, 이 노인의 사랑은 먼저 몸으로 시작되었고, 90대가 되어 죽음을 예감하는 어느 날 갑자기 숫처녀을 찾고, 그녀를 보자마자 '관념'적으로 지켜보는 사랑을 하게되는 거꾸로 가는 형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첫 번째로 배웠어야 했을 사랑의 방식을 인생의 황혼기의 마지막에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 


노인이 되면 다시 아이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인지, 무엇인지 쉬이 추론하기에는 내 문학독해력이 너무도 보잘것이 없다.  그저 왜 이 책을 이 나이에 썼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면, 처음과 끝, 끝과 처음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노대가가 말년에 쓴 작품이니만큼, 살아온 세월의 그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인데, 언제나처럼 나는 알 수가 없다.


July 4th연휴를 하루 일찍 시작하였는데, 막상 하루 쉰다고하여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럭저럭 지리한 하루를 보냈다.  지금은 실로 오랫만에 서점에 나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다가 이렇게 끼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른 책 한 권이 더 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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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4-07-0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황과 도쿄대학교 재미있습니다. 두꺼워서 보기가 어렵지요!

transient-guest 2014-07-05 06:11   좋아요 0 | URL
중간에 정리하지 않고 읽어서 그렇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확실히 fact나열이 좀 길긴 합니다. 분석보다는 이벤트 기록에 충실한 면이 있고, 참고자료도 꼼꼼하게 리스트 되어 있기에 자료로써의 가치도 높더군요.
 

지난 2주간 열심히 업무를 진행시킨 결과 July 4th연휴를 앞둔 오늘, 어느 정도 예정대로 맞춰가는 듯 하다.  그간 이런 저런 서류와 커버편지 등 작업한 양으로만 보면 거의 100페이지 정도의 legal paper를 작성했고, 그 외에도 소소한 잡무와 상담 및 업데이트로 하루가 지나가는 등 정신없는 일상이 이어진 결과, 지금 내 머릿속은 텅 빈 상태같다.  


이렇게 저렇게 책도 적이아니 읽었건만, 정리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뭔가 하고픈 말도 많이 있고, 다카시의 책은 합쳐서 2000페이지가 넘는 fact정리라서 이 역시 현 시점의 정세와 대입하여 쓰고픈 것들이 있건만 시작할 수가 없는 일종의 burnout 상태가 된 것 같다.  엊그제도 1914-2014의 대비점을 갖고 몇 줄 적어보다가 던져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업무량이 떨어지는 7-8월이라서 다소 조용하기는 하지만, 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몇 client는 계약한지 석달이 훌쩍 넘어가는 지금에서야 자료를 넘겨주기 시작했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는 진리를 몸으로 다시금 느끼고 있다.  8월까지 이런 케이스들을 다 처리하면 조금 더 control이 생길 것 같다.  일이란 것이 proactive하게 끌고 나가야지, 잘못하면 스케줄에 치어서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실수도 많아지고 마음만 급해지는 등 지양해야 될 방향이다.  


게다가 오늘은 그런 날이었는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케이스의 고객이 몇 사람 이상한 문제로 전화를 걸어 상담하고 진정시키느라 정신을 써버리고, 기분만 나빠지고 이렇게 오후까지 앉아서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주말에 만든 책장 때문에 기분이 좋았는데 말이다.  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사서 직접 짜면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이게 되지만, 값이나 질에서보나 IKEA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책장이 나온다.  같은 것을 완성품으로 사면 개당 근 250-300불까지 나오는데, 넉넉잡고 130-50불 정도면 세 개를 만들 수 있다.  한번 만들면 아마 대를 이어서 쓸 수 있을만큼 튼튼한 녀석이 나오니까 아니 만들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연휴를 앞뒀는데, 미리 계획을 하지 못한탓에 어디 가보지도 못하고 쉬면서 보내게 되었다.  남들 놀때 나도 좀 놀아야하는데..


6월부터 기존에 해오던 운동에 변화를 주기 위해 running을 도입했다.  뛰지 않은지 7년은 넘은 것 같은데, 첫 3주를 잡고 10마일 total 주행거리를 목표로 했으나 기계에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6.6마일에서 마감했다.  7월의 목표는 15마일의 총 주행거리다.  기계에서 하면 2-3마일도 거뜬하지만, 쉽게 지겨워지기 때문에 주로는 weight lifting후 마감운동으로 하고 있다.  밖에서 running하는게 훨씬 더 좋은 운동인데, 족저근막염 이후로는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주저하고 있다.  한때는 3마일을 30분에 주파하던 시절도 있었건만.  이렇게 해서는 금년에 검도를 다시 시작하는 것도 어렵겠다는 생각이다.  거기에 총쏘는 걸 좀 배워보려고 한국 UDT소령 출신의 관장님이 운영하는 합기도 도장에도 다닐 생각인데, 계획만 잔뜩 잡고 망해버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릴 때의 결핍.  운동을 잘 못하고 싸움도 못 하던 아이가 자라서 늙으면 나같이 된다.  무술이나 강함에 끝없는 동경을 갖게 되는데, 사실 뭘 좀 본다는 사람에게 들으면 이생의 문제만은 아니고, 전생부터 가져온 동경인 듯.  누가 그랬는데, 나를 보면 바깥에서 토너먼트를 뛰는 기사들을 멀리 서실에서 부럽게 바라보는 문사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근데 또 결핍이 맞기도 한게, 내가 지금 이 나이에도 게임기나 게임을 좋아한다.  자주 하지도 못하고 잘 하지도 못하면서도 말이다.  내가 어릴 때 역시 이런 것들을 유독 싫어하던 부모님 덕분에 자주 접하지 못하고 커서 그런 것 같다.  나이 들고 돈을 벌면서 좋은 점은 이런 것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는 것도 분명히 포함된다.


비나 왔으면 빗소리를 들으면서 막걸리나 한 잔 하겠는데, 여름에는 비는 커녕 해만 쨍쨍한 곳이라서 운치가 없다.  


한 해의 반이 지나갔는데, 작년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운 내용으로 사무실이 운영되어 다행이긴 하다.  


쓰다보니 정말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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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야기하는 사건은 약 2주일 전에 있었던 일인데, 쓰다 만 채로 방치하다가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흔히들 junk food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보통 생각하는 junk food의 의미란 작게는 거의 모든 fast food에서 더 넓게는 통조림, 포장음식, 튀김음식, TV dinner라고 부르는 직사각형 박스에 담긴 냉동음식 등 slow food가 아닌 것은 거의 다 포함시키고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음식처럼 restaurant음식과 food court음식이 그 질과 가격을 중심으로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 값이 싼, 그러니까 좋은 재료를 기대할 수 없고, 그저 엄청난 나트륨과 당, 그리고 MSG를 부어 wok에서 볶아낸 것들은 junk에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냥 junk만 해도 몸에는 굉장히 나쁜 음식이다.  기본적인 나트륨과 당 함량이 기준치보다 훨씬 높고, 저가의 재료로 맛을 내기 위한 MSG가 듬뿍 들어간데다 냉동상태에서 튀기거나 microwave로 녹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일쑤라서 자주 먹으면 위에 구멍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음식도 어린 시절에는 잘만 들어가고 소화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십대는 달리 어른들이 '무쇠도 녹이는 나이'라고 하는게 아닌 듯.  말 그대로 위장과 대장의 기능이 포항제철의 용광로 같은 나이가 십대라는 것이다. 


어제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혼자 먹는 점심이고 가볍게 때울 생각으로 마침 근처에 있는 Chinese fast food를 to-go해와서 먹었다.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식당은 takeout을 주로 하는 곳인데, law school 다닐 때 자취하던 아파트에서 가까워서 자주 간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낮은 quality의 음식을 매우 높은 quantity에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곳이다.  자취할 때 여기서 사온 저녁과 맥주로 한 끼니를 때우곤 했었다.  그 덕분에 졸업할 때에는 입학할 때보다 확 불어서 학교를 나오게 되었었지만 말이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익숙한 메뉴에서 두 가지 음식을 골라 포장하여 사무실고 갖고 왔다.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한 숟가락씩 입에 넣고 과도한 MSG와 설탕 맛을 음미하고 있었는데, 왠일인지 한 숟갈씩 넣을 때마다 배속에서 천둥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먹을 때만해도 늦은 점심이라서 속이 빈 탓이려니 했지만, 그 뒤로 약 3-4일 동안 나는 이상한 체증에 시달렸고, stomach flu라고 걸린 마냥 몸이 시리는 증상과 소화불량으로 고생을 톡톡히 했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화가 날 것이다.  나쁜 재료와 나쁜 양념을 MSG와 설탕 그리고 역시 저급한 기름으로 볶아낸 탓에 내가 아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욕이라도 걸지게 할 판이다.  그게 보통의 감정적인 대응이었을게다, 내가 한 10년만 젊었어도 말이다.


이번 증상이 올 때 딱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저런 분노가 아닌 새삼스러운 나이먹음에 대한 서글픔이었다.  그러니까, 옛날 같으면 소화시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을 나이를 먹으니 위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기실 이런 음식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fast food는 햄버거도 타코도 피자도 그 무엇도 맛이 없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이런데서 두 번 먹을 것을 조금 더 나은데서 한 번 먹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중국음식은 기실 정말 좋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면 재료의 질도 질이거니와 대소의 구분이 있을 뿐 raw MSG와 사용하는 공장소스에 첨가된 MSG와 설탕으로 떡칠한 맛이 보통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맛이다.  그래도 달큼하고 쉬운 맛을 푸짐하게 즐기는 것에는 중국음식만한 것이 없는데, 이제는 그것도 조심해야할 것 같다.  


아프면, 단순히 학교를 하루 쉬거나 숙제를 미루는 것은 어릴 때의 일이다.  나이가 들고,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replace할 수 있는 대타나 직원이 있어도 그리 쉬이 아플 권리와 자유가 없는 것이다.  


20대에 지금 같은 강도로 운동을 했더라면 아마도 몸짱이 되었을 것을, 이제는 겨우 현상유지만 하는 수준의 메타볼리즘과 함께 그렇게 나이는 음식도 맛도 하나씩 빼앗고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 같다.  이제는 한국의 길거리 떡볶기와 튀김도 조심해서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운 시장바닥의 맛도 역시 조심할 대상일게다.  


이래저래 시달리면서 저런 생각을 했더랬다.  일도 많이 밀리고, 그 덕분에 주말까지 반납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평균 직장인의 업무강도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빡빡하고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번 주만 고생하면 어느 정도 다시 본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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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5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5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사다 지로는 일본의 유명작가이다.  '철도원'이나 '바람의 검 신선조'의 원작 작가이기도 하여 한국에서도 꽤 많이 알려져 있고, 다수의 작품들이 번역되어 들어와 있다.  다른 일본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꽤 갈리는 편인 것으로 아는데, 나는 이 작가를 좋아하여 기회가 되는대로 작품을 구해 읽는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주제를 다루는 이 작가의 인생유전도 그 작품만큼 드라마틱 한데, 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다가 집안이 몰락하여 일설에 따르면 야쿠자 생활을 한 적이 있을만큼 험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몰락한 유력집안의 자식이 좋은 작가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말을 듣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믿거나 말거나.  


요즘 한국에서는 '으~~~리' 마케팅이 반짝성업 중인 것 같다.  살이 너무 불어나서 데뷔초의 샤프한 모습이나 전성기의 단단함과는 거리가 먼 김보성의, 고생 끝 CF전성기가 돌아온 것인지 아무튼 사방이 '의리' 투성이다.  이는 물론 그만큼 '의리'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상을 거꾸로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무엇인가 외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기실 내적으로는 결핍상태인 경우가 종종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쉽게 보면 보수, 가치, 자유, 법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왕왕 그런 것들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사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되리라.  


'총을 몰래 팔아서 돈을 만들어 오라는' 보스의 말을 잘못 이해하여 경쟁 패밀리의 보스를 제거하고 형을 살다 나온 듣보잡 조직의 듣보잡 똘마니.  현대에 살고 있으되, 머리는 2.26사건의 황도파로 남은 자위대 하사.  그리고 장래를 촉망받는 수재출신의 관료로써 상관의 죄를 뒤집어 쓰고 모든 것을 잃은 전직 공무원.  퇴직형사에 의해 모인 이들 셋이 벌이는 좌충우돌 '의리'와 '정의'로운 모험담이 아사다 지로 특유의 입담과 해학으로 재미있게 쓰였다.  


어제 저녁부터 읽기 시작해서 밤에 두 권을 다 끝냈을만큼 쉽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 책은 가벼운 reading으로 손색이 없다.  게다가 2.26정신을, 그러니까 '천황' 어쩌고, '대일본제국' 어쩌고 하는 정신을 가진 자위대 하사가 혼자 난동을 피우는 이유가 '일본의 이라크 파병'은 '평화헌법'을위반하고 정치적인 거래에 따라 죄없는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기 때문이라는 reasoning은 풍자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만큼 교묘한 사건과 이념의 twist 그 자체같다.


갑자기 어제 CNN에서 다룬 현재 이라크 사태가 생각이 난다.  앤더슨 쿠퍼가 인터뷰한 정세전문가가 생각이 난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부터 지금의 사태를 예견하고 예언해온 사람인데, 체이니 전부통령의 견해에 대해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위선자'라고 말한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4대강의 두고 이를 반대해온 전문가가 TV에 나와서 이명박은 '위선적인 사기꾼'이라고 말한 것보다도 더한 수위의 발언이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것이 용인되는 미국, 그 이상, 이 발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는 미국의 문화이다.  


유교덕치와 도덕을 운운하는 자들의 속내에는 엄격한 법치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물론 사람이 그 모양이니 법치도 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의 현실을 볼 때 이것도 옛날 이야기 같지만, 그래도 법이란 것은 어떤 명확한 가치와 척도를 갖고 세상을 다스리는 것인데 반해, 덕치와 도덕이나 종교적인 가치에 기반한 사회정의라는 것은 모호하고 추상적이기 그지없어 늘 abuse되고 manipulate되기 마련이다.  적어도 작금의 한국에는 합리적인 법제와 엄격하고 평등한 적용이 필요하다.  이 토대에 비로소 도덕도, 덕치도, 문화도 팍팍한 법제를 보다 더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윤활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딕 체이니가 저 발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착하거나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그 고소를 할 수 없는, 또는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환경 때문일게다 (아무렴 일각에서는 부시보다 더 나쁜 놈으로 체이니를 꼽는데 말이다).  


'으리' 이야기에서 참 멀리도 와 버렸다.  

오늘도 축구는 이어지고, 창극이는 창중이처럼 버티고, 나는 일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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