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크라이나에서 격추된 민항기: 


희생자들이 너무 불쌍하다.  국지전에 가까운 분쟁지역에서 설마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우크라이나에서 봉기한 테러세력은 사실상 러시아의 extended arm같은 존재이다.   이는 70년 전에 히틀러가 주데텐, 라인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및 폴란드를 침공할 때 즐겨 써먹은 케케묵은 수법이다.  누구나 아는 뻔한 사실이고, 결국 이런 무리한 영토병합 때문에 그간 다수의 우크라이나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희생되어왔고, 거기에 300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너무 얽혀있고, 과거 냉전 시대와는 달리 뭉치지 못하는 국제사회의 모습은 세월호 참극을 두고 우왕좌왕하는 한국의 정치를 닮았다.  계속 조사하라는 구호만 외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듯.  러시아가 그 정도에서 멈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니와, 중국 또한 열심히 소수민족 탄압과 영토확장에 나설 것이다.  


이 모든 시작은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그 이전 시대에도 이런 찌질한 전쟁과 침공이 있어왔지만,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라크 침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카의 4대강 만큼이나 거짓말로 시작해서 거짓말로 끝난 더러운 사건이다.  이와 함께 21세기 들어 미국의 군사-경제력의 몰락이 시작되었고, 이를 틈탄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이 급물살을 탓다고 하면 심한 일반론의 오류가 되려나?


그 결과를 우리는 그간 티벳에서, 신장에서, 만주에서, 체첸에서, 그루지야에서, 그리고 이제는 우크라이나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2.  가자침공: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국가이다.  유대인의 파워가 어쩌고 하는 음모론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멀쩡한 남의 땅에 들어와서 살던 사람들, 심지어는 2000년 전 그 땅에 남은 자기의 형제들을 모두 쫓아내고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누가봐도 말이 되지 않는 억지다.  서방에서 유행하는 '테러리스트' 와 '테러리즘'이라는 말의 원조는 기실 이스라엘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당시 그들이 자행한 민간인 대상의 끔찍한 사건은 모두 잊혀질 것 같지만, 세상 일이란게 어디 그렇게 자기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대로, 자자손손 이 피값을 치루게 될 것이다.  


3.  세월호:

여전히 그대로 지지부진.  여당이나 야당이나 기대할 구석이라곤 없다.  게다가 관변극우단체들까지 나서서 희생자 가족들을 핍박한다.  황산이라도 끼얹고 싶은 그 머저리 노인네들.  욕하는 것만으로는 얻을 것이 없다.  합리적인 사람들도 조직화해야 하지 않을까?  이 관변단체들의 자금줄부터 끊어버리는 것이 급선무다.  폭력은 나쁘지만, 분명히 이럴 때에는 2000년 전 성전에서 환전상들과 장삿치들의 가판대를 엎어버린 예수님의 '의노'가 필요하다.  


4.  박근혜씨:

여전히 꼴보기 싫다.  그 애비나 피붙이나, 주변인들이나 모두.  아무리 진보 후에는 반동의 세월이 오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이런 시대의 사생아 정권은 좋게 보아줄 부분이 하나도 없다.  


5.  연예인 뉴스:

심심하면 터지는 통에 그 효력을 상실한 듯.  이제는 종북도 연예인 마약사건도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6. 세상을 오래 산다면:

대한민국 통일이 보고 싶은데, 그 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은 '종북'몰이를 하면서 먹고 살던 생계형 극우 매설가들이 또 무엇으로 변신을 하는가이다.  물론 그 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은 그들이 목관을 타고 지구를 탈출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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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 만든 세 개의 4단 책장으로써, 사는 방에는 모두 일곱 개의 책장 분량의 책을 가져다 놓았다.  주로 문학서적을 영문/국문으로 적절하게 갖다놨고, 한 개의 책장에는 무술서적, 딱 4단 책장 하나 분량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열심히 문학에 빠져들 것 같았는데, 막상 정리하고 보니, 오히려 책읽기가 부담이 되는 것이다.  왜일까.

 

조금 바쁜 스케줄과 이런 저런 일과에 겹쳐 이번 달의 독서는 매우 저조하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그러다가, 내가 잘 하는 그것.  책읽기가 막히면 언제나 하는 마중물 같은 독서. 

 

그렇게 해서, 오후에 늦게 퇴근하는 것을 핑계로 4시부터인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여행을 떠나고픈 내 마음을 가득 담은 책이다. 

 

탁피디의 여행수다에 나오기 전에 나는 손미나 아나운서가 누군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도 사실 누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가 이 책을 썼고, 이혼을 했고, 소설을 한 권 출간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팟캐스트를 듣고 책을 구했는데, 기실 내 눈에는 너무 뻔해 보인 탓에 읽기는 지금에서야 읽은 것이다.

 

29쇄의 히트상품인 것과는 무관하게, 외국에서 오래 거주한 나에게는 탁 박히는 내용보다는 그저 적절히 된장적이고, 적절히 성찰적이고, 용감하고, 그리고 적당히 국수주의적인 그런 책으로 느껴진다.  내용도 좋고, 재미도 있고, 읽는 내내 스페인 곳곳을 누빈 듯한 기분을 갖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내 편견에 기인한 impression은 쉬이 가시지는 않는다. 

 

이곳에 살다보면 외국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은 많이 사라진다.  특히 '외국인'과 친구가 되거나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 하나도 신기할 것이 없기에, 스페인에 가서 사귄 외국친구들과 에피소드라던가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고, 부러울 수는 있어도, 환상 같은 것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영어공부를 위해서, 또는 호기심이든, 여타의 다른 이유로 '영어'하는 '백인'친구를 사귀면 '쿨'한 것인양 묘사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생각이 나는 것은.  작가의 의도도, 실제로 그녀가 느낀 감성도 그런 것이 아닐진데.

 

그저.  이 책을 읽는 두어 시간동안, 나도 자유를 느꼈다고 결론짓고 싶다.  나의 편견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굳이 그녀의 진취적인 삶의 태도가 멋지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리라.

 

덕분에, 퇴근하면서 Trader Joe에 들려 싸구려 스페인 산 와인을 두 병이나 사들고 왔다.  살라미와 함께.  술꾼에게 술을 마실 핑계는 얼마든지 널려 있지만, 그래도 책을 읽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연이지만, 사온 와인이 맛이 좋다.  이렇게 한 잔 걸치고 있다.

 

여행이 하고 싶어 이 책을 읽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이 책은 위의 책보다 먼저 읽었다, 심지어는. 

 

게으름과 이런 저런 이유로 늦어진 리뷰일 뿐인데, 그리 많이 쓸 내용은 없다.

 

드 보통을 낮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유독 잘 먹히는 듯한 그의 글에 대한 약간의 반감이랄까.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것도 재주고, 사소한 소재에서 긴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또한 그의 재주일 것이다.

 

공항에는 떠나기 위한 설레임.  도착의 안도감.  이런 것들이 적절히 베어있다.  작년 이만때였나?  저녁 비행기로 도착하는 사람을 픽업하러 SFO에 갔을 때, 건조한 이곳의 공기와는 달리 다소 습한 시멘트 바닥의 내음과, 세계 곳곳에서 모여드는 듯한 to-and-from의 여행객들의 향취를 느꼈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 여행에 대한 갈구를 느끼는 글을 남겼더랬다. 

 

그런데.  공항이 아니라 여행기술에 대한 책을 내고, 지금도 그런 이야기를 잘 하는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약하다'.   의뢰를 받아 쓴다는 점이 저자의 자유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부자연스러움은 차치하고, 그냥 그렇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에서 여행에 대한 영감도, 다른 공항을 보면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여행의 감흥도 받지 못했음이다. 

 

누군가의 말해 의하면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외국인 작가'라는 알랭 드 보통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아직도 다른 책들 몇 권의 정리가 밀려는 있지만, 쉬이 진도가 나가지 않을 뿐더러, 배도 부르고, 날도 늦어지는 관계로, 빨리 다시 와인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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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7-2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은 지금도 친정에 있어요. 손미나의 책. 그 때는 한창 스페인어를 해보겠다고 의욕 충만해 있었던 터라 이 책 읽고 꿈에 부풀었었던 기억이 ^^;; 나네요. 알랭 드 보통은 저도 사실 신간을 챙겨 읽는 독자인데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라는 건 미처 몰랐어요. 의뢰를 받아 쓴다는 사실도요...나이가 들수록 모든 것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는데 여행도 그렇게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또 자유롭게 언젠가는 한번 떠나봤으면, 하는 마음은 항상 남는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4-07-23 00:44   좋아요 0 | URL
스페인어 발음은 굉장히 쉽습니다. 영어와는 달리 발음 그대로 읽어버리면 되거든요. 저도 책을 읽으면서 스페인에 가보고 싶어졌어요. 더운 곳은 질색인데...ㅎ 드 보통의 다른 책은 모르지만, 이 책은 의뢰를 받고, 자유도를 보장 받은 상태에서 썼다고 하네요. 늘 어디론가 새로운 것을 눈에 담기 위해 떠나고도 싶고, 좋아하는 동네에서 공부하면서 살고 싶기도해요.

Forgettable. 2014-07-22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탁pd 여행수다 들으시는군요!! 저는 요즘 안들은지 꽤 됐는데 엄청재밌죠? ㅋㅋ 저도 완전 팬입니다. ㅎㅎ '영어' 할 줄 아는 '백인' 친구 ㅋㅋㅋㅋㅋㅋㅋ 빵터졌네요 ㅋㅋ

transient-guest 2014-07-23 00:47   좋아요 0 | URL
탁PD를 보면 끼가 장난이 아닌 듯 합니다. 그런 형 하나 있으면 진짜 재밌겠어요.ㅎㅎ 요즘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눈이 띄는 한국인의 타인지향...파비앙 같은 애가 뭐가 대단해서 tv에 나오고 그러는지, 절기마다 명절마다 한번씩은 나오는 외국인 노래자랑 류도 그렇고. 왜 그리 다른 나라에서 한국을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건지도 모르겠구요. ㅎ 그런게 이 책에서도 없지는 않았던 느낌이라서 그런 말이 나왔네요.

노이에자이트 2014-07-2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인 미남과 사귀려고 아무리 영어 열심히 배워봤자 미남들 많기로 유명한 남유럽이나 발칸 및 동유럽 지역은 영어가 거의 안 통할텐데...캘리포니아에 많은 히스패닉 계 사람들도 거의 영어가 안 통하잖아요...이번 월드컵에 나온 선수들 중에서도 영어로 인터뷰가 안 되는 선수들이 많던데요.

transient-guest 2014-07-23 00:48   좋아요 0 | URL
그 멀리까지 가나요. 한국에 들어와있는 애들만 봐도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많던데. 솔직히 현지인 강사라는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본토에서는 loser에 가까운 애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도 피부 하얗고 영어하면 좋아보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Forgettable. 2014-07-23 00:57   좋아요 0 | URL
loser에 가까운게 아니라 좀만 얘기해보면 아예 loser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원어민 선생님이랍시고 들어와 있는 남자 애들, 전 이쪽이 직업이라 그런 애들 많이 만나봤는데 거의 50%가...
(나머지 50%는 여자강사들 ㅎㅎㅎ )

transient-guest 2014-07-23 03:15   좋아요 0 | URL
저도 한국행-미국행 비행기에서 종종 마주치는데, 제가 본 사람들은 정말 별볼일 없는 냥반들이라는 삘을 받았어요. 말하는 것도 그렇고, 한국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아시아권 여행하다가 돈 떨어지면 적당한 나라 찍고 가서 영어 좀 가르쳐 돈 벌고 여행 계속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실제로 한국에 가면 여자들이 물심양면으로 받든다는 환상을 가진 사람도 있는 듯 합니다.

oren 2014-07-26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미나 아나운서는 10여 년 전에 제가 다니던 회사의 수많은 직원들이 TV 프로그램(직장인들이 나와 노래나 장기자랑도 하고, 사장님이 폼 잡고 나와서 인사도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던 듯해요)에 출연했을 때,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자 아나운서였기 때문에 특히 인상에 남았더랬어요. 그녀가 스페인으로 건너가고 훗날 저 책을 펴냈을 때 '얼른 사 놓고' 여태까지 한 번도 안 읽었네요. 스페인은 저고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인데, 어느 젊은 여자 아나운서의 책이 그리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을 듯해서 나중에라도 그 책을 펼치게 될지는 약간 의문이 들기도 하네요.

보통의 책은 저도 몇 권 읽었는데, 그의 평범하지도 않고 쉽게 읽혀지지도 않는(어떨 땐 주파수가 너무 다른 사람이구나 싶을 때도 많은) 그런 글을 '한국의 독자들'이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이유를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더군요.

transient-guest 2014-07-28 02:57   좋아요 0 | URL
여행을 생각할 때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저 한 젊은 아나운서가 자신의 삶을 개척한 이야기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함께 제가 느낀 점을 남기게 된 것이죠. '보통'씨는 어떻게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은 소재로 깊은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좋은 것 같아요. 또 무엇인가 성찰하는 듯한 독백 같은 글이 특히 한국인의 정서에 어필하는 것 같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책은 다 읽어보고 싶은데 의외로 절판된 것들이 다시 채워지지 않네요.  그냥 주시면 너무 좋겠지만, 이곳으로 보내시는 가격도 있으니까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수 있었으면 하네요.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뇌사
다찌바나 다카시 지음 / 신한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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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사 그들의 이야기
다찌바나 다까시 지음 / 동암문화사 / 1991년 10월
3,800원 → 3,800원(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2014년 07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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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知의 도전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태선주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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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7-17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naver.com/ksi0428/220062235458

요런 방법이 있다고 하네요. ㅎㅎ 참고하시라고..
도움되면 좋을텐데 제겐 청춘표류밖에 없어서.

transient-guest 2014-07-17 01:01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다른 책을 품절센터에 의뢰해 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좀 어렵더군요. 나중에 한국에 나갈 기회가 있으면 출판사에 전화해서 물어보는 것도 좋겠네요. 헌책방은 언제나 옵션이구요.ㅎ
 

지금까지 쓴 글을 다듬고 정리하여 책 한 권으로 만들어 지인들과 나누고픈 마음이 있다.  물론 출판이나 인세 또는 유명세를 보는게 아닌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작은 희망인데, 어제 마침 조금 일찍 업무를 마치고 시간을 낼 수 있어 프롤로그를 써봤다.  간만에 평일, 해가 밝은 시간에 시원한 카페에 앉아 아이스모카를 마시면서 한 시간 정도 끼적거리다 무라카미 류를 읽다가 하면서 작업한 글이다.  


프롤로그: 태초에 책이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그러니까 내 기억이 닿는 가장 먼 과거의 순간부터 책은 늘 내 옆에 있었다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모습들을 떠올려보면 단편적인 몇 개의 장면들이 영화화면처럼 그렇게 내 눈앞에 펼쳐진다.  5살 즈음에 인천 송림아파트에 살던 시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까지 놀이터에서 트럭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가을 무렵의 저녁 해를 등에 지고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가던 모습,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사는 이모가 보내온 예쁜 구두를 신고 신나게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가 한바탕 구르고 울던 모습, 그리고 조금 더 나중에 살던 도화동의 단독에서 따끈한 구들장에 배를 깔고 엎어져서 책을 보던 내 모습이 그들이다어렵던 시절에도 책에는 돈을 아끼지 않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 집에는 늘 책이 가득했는데, 서울의 모 백화점에서 팔던 월트디즈니 동화전집과 카세트 테이프는 그 당시로는 드물게 책과 테이프 모두 국어본과 영어 원문이 같이 들어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한참을 그렇게 집에서 사주는 책을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읽었는데,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세계위인전기 전집, 백과사전세트, SF전집과 함께 청아출판사에서 나온 이야기 세계사, 중국사, 그리고 한국사를 열심히 읽던 모습이 대략 중학교 2학년 무렵까지의 내 독서편력이다그러다가 3학년 때부터는 김용의 무협지를 무려 점심값을 아껴가면서 한 권씩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내게도 독서의 정체성 같은 일종의 자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그 시기부터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점을 들려 책을 구경하고 갖고 싶은 책은 돈을 모아서 한 권씩 구입하곤 했었다선인재단의 가장 꼭대기에서 교문까지 걸어서 내려오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10분 정도, 거기서부터 제물포 지하상가를 통과해서 버스 역까지 내려오는 시간은 15분 정도였고, 그 중간에는 오락실, 분식집, 술집, 당구장과 함께 서점들도 여럿 있었는데, 구매할 때에는 가급적이면 정책적(?)인 차원에서 구매는 당시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실직한 선생님께서 운영하던 서점에서 하려고 노력했다그 서점에서 사 읽은 책들 중, 니벨룽겐의 노래, 서부전선 이상없다, 그리고 나의 투쟁은 지금도 내 책꽂이에서 쉬고 있다물론 부모님 몰래 사서 숨겨놓고 읽던 공작왕과 북두신권 해적판도 잊을 수 없다.  집에서 사주지 않는 책은 용돈을 아껴서 사들였고, 모자란 부분은 밥값을 아껴서 채웠다예를 들어 점심으로 백반을 사먹으라고 준 돈 1000을 라면으로 때우면 약 700원 정도가 남고, 그 짓을 5일간 되풀이 하면 책 한 권 값이 나온 원리인데, 더 모자란 경우에는 버스표를 팔고 나머지 거리를 걸어가는 방식으로 충당했다내가 갖고 있는 김용의 책 대부분이 그렇게 얻어진 것인데, 그 덕분에 나는 아직도 그 옛날 인세도 지불하지 않고 들여온 김용의 소설 전부를 금사 벽혈검을 제외하고는 모두 갖고 있다.

 

그러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훌쩍 미국으로 와버렸는데, 이 시기부터 책이라고는 여름방학이 되어 한국에 돌아오는 시기를 택해 이런 저런 CD와 함께 사들여 미국으로 가져가는 것이 전부였기에 그리 다양한 독서를 할 수는 없었다영어로 된 책이야 지천에 깔려있었지만, 당시만해도 영어 = 공부였고, 영어책을 재미로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부모님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한국어로 된 책은 내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고리였기 때문에 신주단지처럼 갖고 있는 책을 모시고, 읽고 또 읽고 했던 것 같다이 시기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이문열의 평역삼국지와 청아출판사의 역사책 시리즈 외에는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지금이야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비교적 쉬운 경로로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고, 책도 좋았지만 수퍼닌텐도로 구현된 당시 최고의 오락게임인 Street Fighter 2와 운동, 영화, 그리고 몇 안 되는 현지친구들과 노는 일에도 시간을 빼앗기느라 갖고 있는 책이 고장 책장 두 개가 채 못 되었기 때문에 일단 다양한 책을 읽기보다는 한 권을 여러 번 읽었던 것 같다그때 만약 영어책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였더라면 아마도 한 10년은 더 빨리 R. A. Salvatore Robert Jordan같은 판타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유럽역사를 전공한 덕분에 교과서로 쓰인 고전을 중심으로 영어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살면서 처음으로 문학을 제대로 접하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려고 로스쿨로 진학하게 될 것이었지만, 95년 입학 당시만 해도 역사를 공부해서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꽤 열심히 책을 보고, 서점을 돌아다니고 했는데, 따르던 몇 교수님의 방에도 종종 들려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등 꽤나 열정적인 공부를 했었다물론 성적은 생각만큼 나와주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재미있는 공부를 한 처음이자 지금까지는 마지막의 4년으로 남아 있는 UCSC의 맑은 공기를 맡으며 보낸 대학생활은 내 인생의 큰 자산이다지금도 찾는 다운타운의 헌책방이자 중고음반을 파는 LOGOS와도 이때 맺은 인연을 시작으로 근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에만 해도 하드커버나 가죽으로 제본된 장정본에 대한 욕심은커녕 그런 것들 것 대한 인식조차도 없었기 때문에 되는대로, 손길이 가는 대로 책을 구했는데, 특히 교과서로 쓰인 녀석들은 거진 값이 저렴한 펭귄문고판이 대부분이라서 지금은 그 두께가 반 정도로 줄어버린 채 보관되고 있는데 나이와 함께 떨어진 시력 덕분에 2002년부터는 안경을 쓰기 시작한 뒤로도 눈은 계속 나빠졌기 때문에 이 책들을 읽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한때는 싹 정리하고 큼직한 녀석들로 바꾸어 나갈 생각도 했었지만, 좋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영광이나 미래의 기대만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은 안쓰러움을 넘어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달리 보면, 누구나 이런 시기를 거쳐서 보다 더 안정적인 삶의 시기에 들어서는 것이 보통이기도 하다결국 문제의 본질은 일종의 balancing인데, 그런 의미에서 난 로스쿨 생활 내내 꽤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공부는 늘 어렵게 마련이지만, 적성에 맞는 공부에는 지식을 얻는 즐거움이 있다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공부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큰 보람을 느낄 수가 없는데, 돌아보면 로스쿨 공부가 나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차라리 변호사인 지금 실무를 통해 특정분야의 일과 법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지금은 재미를 느끼지만, 법률의 바탕공부는 정말 재미없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했다그나마 나를 버티게 한 것은 과거도 아닌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었는데 시험에 붙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보니 그 희망은 일루션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로스쿨 시절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 몇 년간은 거의 책을 읽지 못했다내 독서인생을 하나의 컬러차트로 만든다면 이 시기는 아마도 백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2007년 초입부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물꼬는 대망시리즈로  1부에 구성된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쓰였다야마오카 소하치라는 걸출한 대하소설작가의 책인데, 손자병법, 삼국지와 함께 기업인들이 꼽는 경영서적들로 늘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특히 이 책에는 영웅호걸과 기인이사, 그리고 미녀들이 등장하는 모험담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인생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에 내 생각으로는 30대에 즈음하여서는 누구나 한번 정도는 읽어봐야 할 책이다오다 노부나가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어지는 일본통일의 시기를 권력의 중추에서 보내면서도 살아남아 종국에는 일본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는 200년간 이어진 평화시기를 연 일통강호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하나의 재미라고 하겠는데, 당시 나는 이 책을 통해, 꿈을 품되, 현실에 맞춰 가장 먼저 해 나갈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배웠고, 이로 인해 상당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마음으로 받들지 않는 사람을 보스로 받들고 그 밑에서 일을 하는 것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적응하고, 힘을 길러 자신의 발판으로 삼는 지혜는 이렇게 읽은 책을 실생활에서 얻어지는 경험과 대비하여 하나씩 배워진다.

 

이때부터 연간 읽은 책의 권수를 헤아리는 버릇이 생겼는데,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한해 평균 220여권을 읽은 것 같다그리고 2011년부터는 읽은 것을 남기기 위해 알라딘에 서재를 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쓰면서 연습하는 독서행각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까지가 어제 쓴 글의 전부이다.  정말 글모음을 만들게 된다면 여러 번 고쳐 쓰게 될 것이지만, 점심을 먹다가 심심해서 한번 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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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0 0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10 0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4-07-26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ransient-guest 님께서는 아주 일찍 미국으로 건너가셨군요. 유럽사를 전공하셨다는 것도 흥미롭고, 지금 하시는 일도 흥미롭네요. 그리고 독서 편력도 정말 독특하신 데가 많고요.

아무튼 책을 펴내기 위해 시작한 '이번 시도'가 부디 좋은 결실로 이이지길 바라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4-07-28 02:58   좋아요 0 | URL
안정을 추구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끊임없는 배움과 변화를 갈망하기도 합니다. 독서도 그런 취지에서 가급적 통달을 목표로 장르를 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구요. 격려 감사합니다.ㅎ
 

시간 참 빠르네요.  2014년 새해를 맞은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월입니다.  게다가 이번주가 지나가면 7월 하고도 중순이에요.  늘 이맘때면 산꼭대기에서 다시 내려가는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가 12월이 되면 새로운 일보다는 마무리에 신경을 쓰면서 지나간 한해에 따라 다음 해를 가늠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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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재미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네요.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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