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구입해서 잠시 다른 책을 내려놓고 바로 읽어냈다.  그만큼 친숙한 구성과 전개, 결말, 쉬운 단어 및 문장이 법률스릴러의 무협지같은 존 그리샴 소설의 매력이나 한계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 사만다는 뉴욕의 top 로펌의 부동산/회계분과의 3년차 변호사이다.  주당 100시간대의 billing hour는 기본인데, working hour가 아닌 billing hour가 주당 100시간이라면 working hour는 최하 120시간대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full-time에 해당하는 40시간을 billing하려면 기실 50시간대 이상의 업무시간은 나와야 그 정도를 순수하게 client billing hour로 쓸 수 있는데, billing이 100시간이라면 지난 3년간 사만다의 인생은 회사와 아파트를 오가는 생활이었다는 것.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누구나 원하는 Partner로의 신분상승을 꿈꾸던 그녀는 다른 수천명의 associate변호사들과 함께 2008년 리만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다가온 불경의 희생양이 되어 회사를 임시휴직하게 된다.  임시휴직의 조건으로 1년간 법률자문봉사를 하기 위해 애팔라치아 깊숙한 coal country로 들어간 그녀는 거기서 인생의 전화점을 맞게 된다.  


이 정도면 매우 흔한 그리샴 소설의 플롯이 된다.  지난 번에 읽은 Litigator처럼 큰 회사에 다니던 전도유망한 일반직 변호사가 어떤 계기로 다운타운 마천루에서 갑자기 길거리로 떨어지는 시작은 요 근래 그리샴 소설의 일반적인 시작이 아닌가 싶다.  점점 세상과 사람에 눈을 떠가면서 새로운 사명감이 생기는 주인공은 그러나 다른 작품들보다는 조금은 차별되어 책 후반부까지도 어떻게든 맘속 깊은 곳에서 오는 calling에서 멀어지고 싶어한다는 점이 조금은 다르고, 중간의 shocking한 대반전, 그리고 open-ended인 결말까지 약간은 기존의 작품들과 다르긴 했다.  그리샴 특유의 justice is served의 결말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 나름대로는 계속 써먹은 플롯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봐줄 수 있겠다.  


무협지라고 말했듯이 매우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인만큼, 한번 읽고 나면 남는 것은 많이 없지만, 늘 덩치 큰 bully와 싸우는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점이 맘에 들거니와, 초기작들처럼 오래 가는 스토리는 아니라도 기본에 충실한 재미를 주는 책이다.  아직은 번역되어 들어오지는 않은 듯 한데, 곧 한국어로도 출간이 될 것 같다.  


흔하게 나오지는 않는 편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중고 몇 권을 구입한 관계로 지난 책에 이어 읽게 된 작품이다.  추리소설을 이런 방향으로도 구성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는데, 특정인물의 기억이 타인에 의해 재구성된다는 기본플롯은 유독 일본의 소설에서, 추리소설이 아니라도, 또는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듯한 느낌이다.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일본인 또는 문화 특유의 오리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리학도 주인공은 오래전 헤어진 여자친구의 부탁으로 함께 어떤 장소로 함께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잊혀진 기억을 찾기 위한 과거사건의 재구성을 하게 된다.  단서는 집, 동네, 일기장, 오래된 물건.  옛날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재구성 또는 재배치 또는 리셋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기억을 찾아가는 것이 이 추리의 주안점이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회적 이슈나 살인자가 등장하지 않지만, 괴괴하니 오래된 빈 집, 그것도 예전에 있었던 오리지널의 레플리카로써의 빈 집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사냥이 나름 괴기스러운 느낌을 준다.  역시 쉽게 읽은 책인데, 시간을 때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다.


연말로 접어들면 내가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연말모드에 들어가는데, 남은 2개월간 line-up된 project가 몇 개 있기는 하지만,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이렇게 남은 한해가 흘러갈 것이다.  자영업 3년차인데, 계속 자라나는 업무량이 즐겁기만 하다.  힘들면 힘든대로 모두 내 하기 나름이고 나의 일이니 싫은 사람과 일하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은 큰 플러스가 된다.  덕분에 이번 해에도 무난한 목표량을 채울 듯 싶다. 책을 너무 많이 사들였다는 건 역시 다시 반성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골프 같은데 돈과 시간을 물쓰듯 하는 내 나이또래의 한인 남자들의 삶을 보면, 책읽기는 점잖고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취미라고 하겠다.


최근에 아마존을 통해 구한 Shirer의 책들 다수가 사무실에 있어 당분간은 다른 책들과 함께 이들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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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14-11-0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존 그리샴 소설에 관심이 가요. 전에 어떤 분이 `독서도 취미가 될 수 있다`하신 기억이 있는데 저도 이제 생존 차원이 아니라 취미 차원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일이 자라나는 것 같으시다니 저도 좋네요. 싫은 사람과 같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부럽구요. 다행히 전 아직까지 nice한 사람들을 만나서 회사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요. 문득 책읽기가 취미인 사람과 사는 사람은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transient-guest 2014-11-06 03:55   좋아요 0 | URL
쉽게 읽히는 소설이고 가끔은 통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 많아서 그리샴 소설은 즐겨 읽습니다. 즐기는 독서의 맛과 공부로써의 독서의 맛은 많은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이 두 가지의 경계가 허물어진 옛 선비스러운 독서는 많은 분들이 지향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구요. 끝으로 사람이 사는 모습은 제각각 다르면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결론지어졌을 살인을 논리적으로 추리하여 밝히는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간단명료하고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깊은 추리나 내면의 이야기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데에는 추리소설만한 것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이런 간단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짧게 끝나는 인과관계도 그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용의자들이 하필이면 왜 초자연적인 사건을 가장하여 단서를 흩뜨려놓고 알리바이를 만들려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어떤 사건의 경우 의도적인 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게 된다는 점이고 이 때문에 초등수사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은 모든 사건이 초자연현상과는 관계가 없음이 밝혀지면서 독자는 안심하게 되는 순간에 한 수를 두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책을 덮게 하는 것은 작가가 의도한 유쾌한 트릭일 것이다.  기회가 되는대로 구해서 읽고 모아두는 작가인데,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끼는 부분, 특히 너무 무겁지는 않은 소재와 구성이 맘에 든다.


재산이 많고, 가난한, 또는 경제관념이 없는 상속자들로 둘러싸인, 하지만 direct heir가 없는 노부인의 인생은 참으로 miserable했을 것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해주는 크리스티의 단골소재들 중 하나는 이런 노부인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이다. 기실 너무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나라도 그들에게 재산을 남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속자들 또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게 마련인데, 종종 이 노력은 positive한 방향보다는 그렇지 못한 쪽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이해한 노부인은 포와로에게 모종의 의뢰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지만, 아쉽게도 그전에 목숨을 잃고, 의뢰편지는 수 개월이 지나서야 포와로의 손에 들어가는데, 이 영리하고도 집요한 사냥개가 냄새를 맡는 순간 모든 것은 결국 끝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포와로가 등장하는 이상 사건이 미결로 끝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운명적으로 케이스가 종료될 것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미련을 갖고 두뇌게임을 하는 것은 독자로서의 의무이자 운명임을 느끼게 되어, 중간에 책을 덮지 못하고 다 읽어나간다. 크리스티 전작의 40%에서 조금 모자란 시점까지는 와버렸는데, 아직도 50권 이상의 책이 남아있고, 이를 읽어야만 캐드펠로 넘어갈 수 있겠다.


김영하 작가의 신작 에세이.  그간 한국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팟캐스트로 간간히 소식을 전하되 시사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던 그가 모종의 계기로 글로 사회속으로 뛰어든다는 출사표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간 좀 cool~한 이미지로, 약간은 떨어진 위치에서 방관자의 한 마디로 간간히 세상을 반추하고 거들어온 것 같았는데, 아마도 이제 다시는 그렇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세월호'는 그렇게 우리를 바꾸어 놓았고,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그저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변하지 않을 수 있을지...


'이십대는 몸으로, 사십대는 머리로 산다'고 썼는데,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면 이십대를 머리로 살고 사십대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몸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이십대는 관념에 꽉 찬 머리를 갖고 그렇게 하루를 살았고 외적인 것에는 애써 무신경한 척하면서 나 자신을 보호했음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두 배의 나이가 되어가면서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마냥 아쉽기만 하고,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살면 머리로 살면서 몸을 좀더 굴릴 수도 있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  정작 그러다가 '지금'을 놓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은 거의 100%인데, 그러면 육십대의 나는 사십대를 바라보면서 또 어떻게 징징거리고 있을까?  가끔은 '재수없음'이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는 김영하 작가이지만, 일정부분 나와는 코드가 맞는 것 같다.  작품의 파격성은 모르겠고, 에세이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도 그런 이유인 듯 싶다.  '보다'를 필두로 '읽다'와 '말하다'를 석 달 간격으로 출간할 예정이라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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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의 약속>

돈이 많고 매우 독선적인 노부인.  게디가 주변의 젊은이들을 꽉 붙잡고 마음대로 하는 노부인. 뒷방으로 물러나 있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절대 그럴 생각이 없는 노부인.  그녀의 죽음은 모든 이의 소망이었을 수 있다.  여행중에 자연사라도 해준다면 그 많은 유산은 골고루 나눠지고 많은 사람들의 새출발을 돕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부인은 실제로 죽었다.


아주 짧은 요약인데, 이미 정해진 숫자의 용의자들이 있고, 언제나처럼 이들을 솎아내는 것은 포와로의 임무이자 지적 유희라고 하겠다.  크리스티의 작품들 중 드물게도 그 서사와 전개가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심리상태에 트릭을 배치하고 용의자를 제시한 다음 역시 언제나처럼 반전을 통해 진범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다름아닌 '심리'와 '배경'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는 다른 배치와 구성이 있다.  지난 번에 읽은 '파계재판'에 이어 이번에도 명탐정급의 변호사가 등장하고 법원도 중요한 무대를 제공한다.  범인의 시점과 3자의 시점을 오가는 묘사와 전개도 맘에 들고, 모방범죄이면서 이미 진행중인 사건을 토대로 한층 더 개선된 범행수범을 진행시키는 한편 꾸준히 법원에 방청객으로 나타나는 심리도 재미있다.  


크리스티의 소설의 경우 종종 그 트릭의 억지를 느낄 때가 있다.  독자들에게는 정확하게 주어지지 않은 정보나 도저히 유추해낼 수 없는 인과관계가 해결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몇 권의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을 보면, 거의 모든 정보는 공평하게 독자에게도 주어지고, 소설의 분산장치에 눈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추리가 가능할 정도의 개연성을 보여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게다가 범인의 뒷통수를 치는 마지막 반전 - 그러니까 범죄의 모티브가 되는 '결과물'이 범인의 계획과는 달리 완전범죄가 되더라도 범인이 취할 수 없었음을 밝혀주는 것은 통쾌한 신의 한수가 아닌가 한다.  


읽다보니 별 것을 다 읽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 라이트 노벨 풍의 책을 내가 볼 줄이야. 보고나서도 재미를 느낄 줄이야.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강신주 박사가 말하는 포인트에 딱 들어가는 부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어설프고, 만화와도 같이 뻔한 수법임에도 불구하고 읽는내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지나가버린 옛 시절에 대한 망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있지도 않은 과거지만) 추리는 거의 부속물 수준이지만, 서점을 무대로 한 청춘물 같은 점이 맘에 들었다.


아직도 가끔씩 헌책방을 차려서 생계와는 상관없이 매일을 그렇게 책속에서 보내는 망상을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최소한 가게자리는 내 건물이어야 할 것이고, 이익은 볼 수 없더라고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이며, 부동산이던 무엇이던 side로 다른 수입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진행형도 되지 못하는 망상인 것이겠지.


<제3제국의 흥망>으로 처음 접했던 Shirer는 Berlin일기를 통해 팬이 되었는데, 의외로 그가 쓴 책이 다수 있어 하나씩 구해볼 계획을 잡았다.  예전에 헌책방에서 산 책이 20세기 하권에 해당하는 것을 알고 아마존을 뒤져보고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책을 사는 것, 읽는 것은 이들을 모아두는 것과 함께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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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10-2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벌써 추리소설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어요 ㅠㅠ

transient-guest 2014-10-29 04:32   좋아요 0 | URL
아이패드에서 PDF로 다운 받으신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책을 모아둔 파일을 받아 시전해 보심이 어떨런지요?ㅎ 안달루시아의 화창한 태양이 부럽네요. 세고비아가 그곳 출신이라죠?
 

페이퍼로 이렇게 몰아서 읽은 흔적을 남기는 때마다 느끼지만, 내가 짓는 제목이라는 것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다른 서재들을 다녀보면 참 제목도 맛깔나게 짓고, 글은 더더욱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는데 여기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걸음마를 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등의 이유로 자신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감도 없지는 않고, 조금은 게으른 관리를 하는 것을 요즘 특히 많이 느낀다.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글을 매번 남기면서 어떻게 더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하는 한편, 이 정도라도 꾸준히 남기는게 어디야 하는 생각도 한다.  늘 하는 고민이라고 하겠다.  


이 정도는 되어야 리뷰를 모아 책으로 출판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도록 만들어주는, 매우 잘 쓴 리뷰들이다.  유명한 작가나, 문호의 글과는 다르고, 특히 팔기 위해, 또는 책을 쓰기 위해 만들어진 리뷰와는 차원이 틀린 솔직하고 담백한 인생의 하루 하루에 깃든 독서를 볼 수 있었다.  저자는 '다락방'님.  1.0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오는 고수들이 즐비한 알라딘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서재를 꾸려가시는 분이 아닌가 싶다.


한 가지 내 자신에 견주어 보면, 이 책에서 저자는 너무도 솔직하게 책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쓴다는 점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꽤 높은 수준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서재에 남겼던 글이니만큼 아무래도 특히 처음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계속 꾸준히 방문객이 늘고 오프라인으로 사귀는 친구들이 늘어가면서도 그렇게 쓸 수 있었다는 점은 그만치 저자의 겉과 속이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감성을, 생각을, 배경이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책과 풀어낼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도 20대부터 이런 서재를 갖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유럽사를 전공하면서 이런 저런 글짓기를 하고 책을 많이 읽었었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무미건조한 글쓰기가 직업이 되어버린 듯한 시절이 아닌, 때가 덜 묻었고 글도 그때의 순진함 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나의 20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보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금은 더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소설'예찬에 격하게 공감했다.  젊은 시절 이런 저런 것들에 치이고 또 상당부분은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세상을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다.  이와 함께 놓치고 만 여러 경험들에 대한 아쉬움은 불혹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간혹 큰 조바심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세상을 보아야 하는데, 늘 세상을 생각하고 읽기만 했기에 나이와 함께 오는 막연한 놓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소설을 보면서, 자신을 견주어 보기도 하고, 겪지 못하는 대신, 대비하여 생각하면서 성장해온 듯 싶다.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책을 통해, 소설을 통해 다각도의 삶과 관점을 경험한 그녀의 독서를 보면서 그야말로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면 과장일까?


문득, 나도 읽는 책에 나 자신을 삽입하여 경험하고 사색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저 책은 멀리서 바라보는 제 3자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몸에 배인 습관이라서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교과서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만큼 읽는 내내 감동하고 감탄하고 즐거웠다.  알라딘 서재라는 공통분모를 빼더라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참고로 독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못해도 4단 책장 하나가 꽉 찰 만큼의 이런 이야기들을 읽어왔으니 아주 조금은 내 말을 믿어도 좋을 것 같다.


천명관 작가는 참으로 맛깔나게 글을 쓰는 작가이다.  게다가 언제나 그의 글을 읽으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간마다 scene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경험하는데, 오랜 시간동안 영화판에서 일한 이력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모두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는 밑바닥의 절망, 자포가지, 광포, 반전 등의 다양한 테마를 경험할 수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희망'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자살을 막은 불면증 아줌마가 나오는 한 이야기에서 희미하게 모성과 함께 '사랑' 또는 어떤 존재에 대한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냥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 


나가이 가후.  이 작가의 이름도 책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는 '장서의 괴로움'에서 언급된 이런 저런 일본의 고전작가들을 알라딘으로 검색하다가 주문하게 된 책이다.  다른 책들도 꽤 흥미를 끌었으나 번역되지 않았거나 절판되어 reference된 책들 중 유일하게 구할 수 있었다.


일본 '화류소설'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데, '화류소설'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문체나 내용, 그리고 구성과 서술은 모두 대체로 내가 좋아하는 담담함을 지니고 있다.  작가와 동일시해도 무방할 것 같은 주인공이 잠깐 우연한 기회에 기생과 짧게 마음을 나누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특별히 무엇을 기대하고 본다기 보다는 심야식당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은 기억이 난다.  


주저하다가 다가가지 못하고, 상대방도 어쩌면 그러는 사이에 엉켜있던 인연의 실타래는 금새 풀려버리고 각자의 삶속으로 등을 돌리고 지나가버리는 것이 대다수의 남녀관계일 것이다.  이를 잡으면 결혼으로 이어지고 끊어지거나 죽을때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게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들 외에 추리소설을 세 권 정도 읽었는데, 이들은 다른 페이퍼에 남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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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9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분명히 오늘 페이퍼를 정리하면서 읽은 책을 다 남긴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두 권을 까많게 잊고 빼먹었다.  머리가 나빠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대 이전에 읽은 책들은 상당부분 지금까지도 특정 장면과 문장을 그대로 기억하는 반면에 이후에 읽은 책들은 잊어버리는 빈도와 정도가 심해진다. 특히 30대에 들어 읽은 책들은 여러 번을 읽어도 문장 같은것들은 거의 다 잊어버리고, 잘해야 책제목과 읽었는지 여부 정도만 기억할 수 있다.  술이 문제인지, 외우기를 예전에 멈춘 탓인지.  독서와 글쓰기 못지않게 암기능력을 다시 일정한 수준이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탤런트 뺨치게 예쁜 엄머와 그 엄마를 닮은 깜찍한 딸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이 책은 이를 완벽하게 배신해줄 것이다.  표지의 디자인과 색상 때문인지, 중립적인 제목의 '엄마의 도쿄'는 이들과 어우러져 매우 처연한 느낌을 주었다.  예전부터 이 책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최근에 주문해서 읽었다. 


이 책은 단순히 동경의 맛집이나 가볼만한 곳을 소개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닌만큼, 정보를 얻기위함이라면 읽을 이유가 없다.  다만, 이제는 성인이 되어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한 여자가, 자식과 함께 한창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동경으로 와 살면서 겪은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때로는 과거의, 때로는 현재의 시점에서 서술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고 기리는 글이다.  


마치 니나 상고비치의 책처럼 이런 행위를 통해 어머니의 삶은 저자의 기억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구성되며, 다시 한번 살아진다.  그리고 세상에 남은 저자는 이를 통해 어머니를 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늘 우리의 부모님 세대, 아니 정확하게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비록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을 그저 그런 가벼운 에세이들 중 하나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 독서, 이론과 같이 여러 번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어진 이야기를 넘은 다른 고민과 해결책을 지향하는 책이다.  내용은 조금 평이하고 예로 든 사례나 작가/책도 그러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나누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하여 구매했다.  


독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기실 모든 공부나 수양은 나눔을 통해 깊어지고 명확해짐은 law school시절 토론을 통한 판례분석에서 경험했던 바 있다.  혼자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제한된 개인의 경험과 머리로는 한계가 생기는데, 나눔까지 가지 않고, 그저 이에 대한 이해나 문제점을 다른 이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서 깨달음이 오는 경험은 일상에서 무척 흔하게 접한다.  회의의 목적이 상하수직적인 보고와 지시전달이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다만, 조금은 다른 독서이론의 책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구성이나 조금은 얕은 내용이 아쉽기는 했다.  모임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방법, 토론을 이끌어나가면서 중재하고 조정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하게 다루었으면 하고, 성공사례에 대한 참가자의 에세이는 조금 지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내 업계에서 간혹 client의 자필편지형식을 이용한 변호사의 마케팅을 보는데, 심한 경우 짜고치는 고스톱이 극명하게 보이는 이런 방식은 지독하게 치사하고 낮은 수준의 광고라고 생각하는 내 성향상 그렇다는 것이다.


가벼운 라이트 노벨과도 같은 느낌이 묻어나는 책이다.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이유로 일본을 떠나 낯설고도 먼 핀란드에 정착한 31세의 주인공, 자신을 찾고 싶어 무작정 떠나기로 한 나라가 하필이면 핀란드가 되어버린 중년의 여자.  그리고 또다른 일본여자.  이렇게 셋이 모여든 갈매기 식당의 붙박이가 된 독수리 오형제 덕후 핀란드 청년이 주가되어 벌이는 일상의 모습이 이 책의 거의 전부이다.  영화로 본 후 책을 구했는데, 솔직히 영화의 영상미로 보여지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도 든다.


글자체가 크지 않았더라면 문고판 50여 페이지로 꾸며졌을 정도의 적은 분량이지만, 그래도 좀처럼 가보기 어려운 북유럽의 핀란드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조금이나마 엿보게 해주었다는 점은 positive하다.



간만에 읽은 세이초의 또다른 작품이다. 실제로 일어났다고도 하는 2차대전 말기에 있었던 일단의 일본제국 내에서 이미 진 전쟁을 되도록이면 빨리, 그리고 가급적이면 패전국이 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끝내려던 온건파 세력의 공작이 있었다는 전제를 두고, 이에 연루된 외교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여 쓴 책이다.  세이초의 작품들을 보면 순수한 창작도 있지만, 유명한 작품들의 경우 특히 정부나 고위관료 또는 흑막이 되는 우익세력이나 미군정청의 입김이 닿았던 사건들의 진위를 유추하는 형식의 책이 많은데, 이 책 또한 같은 계통의 책인 듯 싶다.  과연 사회파의 시조라고 할 만하다.


요즘처럼 사건사고가 많은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한 명 정도는 있어서, 세월호참극, 2012부정선거를 전후한 저축은행사건, 뽕쟁이 wife의 법인, 우익세력의 준동, 일베지원, 국정원 같은 굵직한 이슈들을 작품으로 또는 논픽션으로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국가였다면 BBK사건은 적어도 스무명 이상의 다른 작가들이 각각 논픽션으로 또는 다큐멘터리로 다루었을 것이라던 장정일의 말이 절실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내가 읽은 판본은 우측의 것이고 2014년에 다시 나온 듯 싶다.  욕을 먹던 말던 스테디셀러가 되고 볼 노릇이다.


나는 늘 이 책과 '먼 북소리...'어쩌고 하는 하루키의 그리스-이탈리아 여행기를 헷깔려했었는데, 이번에 읽으니 완전히 다른 시기, 다른 여행을 다루었음을 알겠다.  


폐쇄적인 성격이 강한 봉쇄수도원에는 미치지 못해도, 이런 '오지'에 틀어박혀 있는 수도원에서 평생 사람을 멀리하면서 자기 속으로 신과 함께 들어가버린 사람들의 경향은 (1) 타인에게 매우 친절하거나 (2) 괴팍하거나 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흔히들 시골에 가면 볼 수 있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뜻하거나 마치 "여긴 뭐하러 왔어?"라고 묻는 듯한, 만사가 귀찮고 짜증나기만 하는 촌로의 두 가지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가을이 되었으니 문학을 읽어야지 하다가, 하루키를 다시 전독해야지 하다가 겨울이 되어 러시아 문학을 파들어가야지 하면서 정작 아무것도 못하던 것이 기억한다.  이번에는 조금 더 자신을 단련하여 문학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는게 정확한 나의 심정인데, 이미 못읽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지금,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는 것 또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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