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시간 몰입의 법칙 - 개정판
이지성 지음 / 맑은소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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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새삼스럽게 이런 책인지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책이라면 2007년에서 2009년 사이에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계속 꿈꾸는 것을 이어가기 위해 많이 읽었었고, 이는 또한 시대의 유행과도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와서 또 읽는 것인지?

 

일단은 두 가지 이유를 떠올릴 수 있는데, 첫째는 '긍정의 배신'을 읽은 후의 일종의 객관적인 나만의 관점으로의 해석을 위함이고, 둘째는 나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데, 약 50대 50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뜻밖에도 이 책의 메시는 매우 단순하다.  꿈을 꾸라는 것.  노력하라는 것.  구체적으로는 18시간 본인의 성공을 위한 분야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사례로 반복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즉 반복을 통한 학습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심리학적으로 이 방법은 상당한 효과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유용하다고 하겠다.  다.만.

 

역시 2012년의 나에게는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성공사례들은 어쩔 수가 없다.  굳이 한국의 재벌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가 예로 든 IBM의 창업주 토마스 왓슨의 경우는 아무리 봐도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은데, 그의 IBM은 비도덕적이고 법의 경계에 있는 상당수의 방법으로 마켓을 장악했고 (그 자신의 sales 기법 자체가 그랬다고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상도덕이나 기타 인간적인 도의는 깡그리 무시됐다.  결정적으로 IBM은 나치에 의한 유태인 박멸작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는데, 그것은 IBM의 펀칭머신을 통한 체계적인 관리를 개발-도입케 한 것이다.  IBM전까지 아날로그로 관리되어오던 유태인 박멸을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펀칭카드 도입을 통해 디지털화하였고, 이를 독점계약-납품하여 큰 돈을 번 것이 토마스 왓슨의 IBM이었다.  심지어는 교묘한 로비와 은폐를 통하여 2차대전 중 교전국과의 교역을 금지한 법까지 어겨가면서 현 IBM 신화의 토대가 되는 자금과 조직력을 키워냈다고도 본다.  과연 저자가 역설하는 Christian의 관점에서 토마스 왓슨이 성공의 예가 될 수 있을까?  재벌-정치인의 성공사례역시 마찬가지.

 

사실 이 문제는 이지성이라는 작가만의 이슈가 아닌, 다른 유명저자들의 책에서도 중복되는 부분인데, 이런 무조건적인 단순화는 작가로서 지양해야 마땅하지 않나 싶다.  성공학이나 관련학 강의의 큰 구매자가 대부분 재벌회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굳이 비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꿈을 가지라.  그리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달려들어라.  포기하지 말고, 달려라.  그러면 이룰 것이다.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종종 외부효과로 작용하는 사회적인 문제와 구조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노력하고 꿈꾸는 사람들은 많고, 저자가 강조하는 것 이상의 비전과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이들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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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마크를 보면 1999년에 쓴 소설 같은데, 구성이나 무대설정의 편의를 위해서인지 (물론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의 무대는 퍼스널 컴퓨터가 처음 나오던 무렵을 전후하여 시작된다.  어느 빈터에서 살해된 전당포 주인.  이 사건을 잇는, 그러나 모두가 간과한 단서인 두 아이.  그들의 성장과정.  seemingly 시간과 공간상 전혀 관계가 없는 사건들을 연결하는 단서인 두 사람.  그들의 주변 사람들.  종국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시간과 공간의 두 사람. 

 

추리소설의 특성상 독후감을 써버리면 거의 무조건 spoiler가 나와버리는 현실 때문에, 어지간한 고전 - '셜록 홈즈'같은 - 이 아니라면 간략한 리뷰를 쓰고 마는 것이 앞으로 이 책을 읽을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과 같은 '헌신'이나 '무조건적인 사랑'은 이 작품에도 나오는 테마이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 건지, 또 그걸로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것인지에 대한 답, 저자는 주지 않는다.  강한 운명론, 그리고 엮이고 꼬인 인간관계와 업보의 윤회가 어떤 모티브를 주는 것 같다.  비교적 light한 편이고, 조금 읽다보면 어느 정도의 추리가 가능하다.  즉 정통 추리물과 같은 두뇌게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  하지만,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시대설정 때문에 퍼스널 컴퓨터가 처음 나오던 시절 '카세트 테잎'을 돌려 데이타를 저장하고 사용하는 것에서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상용화 되는 시대를 다시 그려볼 수 있는 부가적인 재미도 찾을 수 있다.  이름난 작가에 걸맞는 책.  DC된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한 점도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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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어릴적부터 집안 어디엔가 꽂혀있는 것을 보았던 책이다.  '백년'과 '고독'이란 말이 머리에 남아 항상 어떤 책인지, 얼마나 끔찍하게 오랜 외로움이길래 '백년'이나 '고독'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막상 읽게 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로, 이미 동 작가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란 책을 나름 감명깊게 읽은 후 '백년의 고독' (혹은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어볼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신화, 환상, 몽환적 요소들을 '부엔디아' 가문의 부침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풀어낸, 나로써는 아직까지 작가의 의도가, 즉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게 하는 책이다.  마르께즈는 이 책으로 노벨상을 받았는데도 나는 왜 이 책이 훌륭한 작품인지 아직은 모르는 것이다.  공부가 더 필요한 것 같다.

 

정확하게 테제를 잡을 수 없는 책의 경우 적당한 시간이 흐른뒤에 읽어보면 매우 surprising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잘 정리되어 읽히는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리 재미없게 느껴졌던 책도 재독을 하게되면 가슴에 깊이 와 닿는 것을 이미 여러번 느낀 바 있기에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백년의 고독'역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다음번에나 (운이 좋다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렴풋이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한데, 아직까지는 꿈속과 현실의 경계사이에서 눈에 보이는 그 무엇 마냥 정확한 형상화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았다는 경험, 그리고 또다른 문학작품 한 개를 읽어냈다는 기쁨이 남는다.  저자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잔잔함과는 다른, 색다른 맛이 있는 것 같다.  노벨상은 '개'나 '소'나 받는 것이 아니다.  캠브리지 인명사전이나 마르퀴즈 인명사전 같이 적절한 커리어를 가진 자가 돈을 주면 올려주는 것도 아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은 전 세계의 문학작품들 중에서 선택되어진 것이니만큼, 깊이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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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다락방 2 - 실천편 - 부의 격차보다 무서운 꿈의 격차
이지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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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다락방 2 실천편'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은 '꿈꾸는 다락방'의 후기이지 보강으로써 조금 더 실질적인 방법론과 구체적인 예를 다루었다고 한다.  이 책은 역시 '긍정의 배신'을 읽은 후 느낀 바가 있어 시작된 성공학-계발서적 다시 읽기의 두 번째로 읽게 되었는데, 처음에 읽었을 때보다 좀더 critical하게 읽은 것 같다.  매우 좋은 메시지와 이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논증하면서 보다 확실한 방법론, 즉 field manual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그 메시지 만큼이나 잘 정리가 되었기에 매우 apparent하다.

 

일전의 책에서 다룬 VD=R의 법칙은 잘못 이해하면 그야말로 안드로메다로 정신이 날아가버리는 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또는 R에 위배되는 행동을 해도 VD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기실 '긍정의 배신'에서 문제로 삼는 메시지, 내지는 이 메시지에 영향을 받은 행동 trend의 상당부분이 여기서 기인한다고 보는데, 저자는, 특히 개신교적인 관점에서 이런 'false' 메시지는 (1) 강사들의 본질적인 자질문제, (2) 비개신교적인 개념의 도입, 그리고 (3) follower들에 문제가 있다고 저자는 보는데, 상당부분의 공격은 (2) 비개신교적인 개념의 도입에 치중된다.  이는 저자의 개신교도로서의 바탕과 경험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저자는 '스승'으로 생각했던 나폴레온 힐의 사상이 힌두이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와 '결별'할 정도로 개신교도적인 성향이 강하다.  '꿈꾸는 다락방 2 실천편'은 이런 면에서, 적어도 나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너무도 편협한 감이 없지 않다.  실증적인 예로 자주 반복되는 VD=R과정의 '기도'의 필요성에 대한 역설은 결국 그가 주장한 VD=R 위에 기도가 있음으로 결론지어지는데, 이는 그간 VD=R의 개념에 대한 그의 설명과 이론을 볼 때 살짝 모순됨이 느껴진다.  물론 Catholic Christian으로서 기도의 효과나 필요성에 의심을 품지는 않지만, VD=R과 연계한 저자의 이론/설명이 좀 억지스럽다고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더욱 이슈가 있다고 보이는 부분은 (1) 정주영, (2) 이건희, 그리고 (3) 이명박을 예로 든 VD=R의 성공사례인데, 사실 이들 중 정주영 회장을 제외한 사람들이 과연 VD=R의 사례가 될 수 있는지 큰 의문이디.  초판 발행시점이 2008년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저자는 이들의 사례나 개인적인 성향에 동조하지 않는다 했다.  하지만, 그 이상, 열거된 이 셋이 과연 일반인의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VD=R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VD=R을 나쁘게 사용한 예가 더 사실에 가깝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또한 인용된 사례들은 - 이건희/이명박의 경우 - 그들이 자신들을 promote하기 위해 출판된 책에서 주장한, 그들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과거의 사건들인데, 그것을 액면 그대로 끌어다가 사용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구체적인 fact search와 이에 대한 critical한 분석이 아쉽다.  온갖 편법적인 방법을 사용한 결과가 이건희/이명박 성공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때, 과연 이 둘이 VD=R의 효과적이고 교육적인 예가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또한 기업의 성공사례의 인용도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문제가 있다.  이건희 체제하에서의 삼성의 성공을 예로 들 때, 이건희의 VD=R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의 눈에는 이건희의 vision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죽고, 다쳤는지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또한 저자에 의하면 이건희는 밤에 생각하고 아침에 자면서 VD=R을 하면서 이를 '노력'보다 중요한 것인 VD=R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역설하는데, 이 역시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리더의 역할은 VD=R에서 끝나지 않는다.  즉 목표를 설정하고 비전을 내세우며 모두를 독력하고 희생을 강요하려면, 보다 더 큰 리더의 희생과 앞장섬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컨에 앞서 열거된 - 정주영 회장까지도 - 이런면에서 고통은 나누게 하면서 성공의 결과물은 나누는데 너무 인색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이 경우 VR=R의 실례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된다.  또한 VD=R을 이루는 과정의 수많은 범법, 편법행위와 법의 구멍을 이용한 요식행위, 뇌물수수, 노조탄압과 같은 외부효과들은 그들의 VD=R은 잘해야 매우 그릇된 형태로 사용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이런 구성상의 이슈나 저자의 개인적인 종교적 preference를 빼고, 이 책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훌륭하다.  즉 Action은 VD=R을 지속시키는 에너지라는 것인데, 노력과 VD=R은 얽히고 섥혀서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음양과 같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행동없는 믿음, 믿음없는 행동은 있을 수 없다는 표현과도 일맥상통하는데가 있는데, 결국 VD=R을 이루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없다면 VD=R은 허무한 개그와도 같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접하기 전 자주 써온 표현은:

 

Dream/Vision - 중장기적인, 즉 거시적인 비전과 꿈을 가질 것.

Plan - Dream/Vision에서 나온 중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꿈과 비전을 단기적인 목표로 설정하여 구체화 하는 것.  즉 행동을 위한 전초단계.

Walking - 이제 설정된 미시적인 단계목표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는 것.

 

이 세 가지의 단순화/시각화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말해주는 내 버전의 VD=R인 셈이다.  책을 쓸 만큼 성공하지도 못했고, 구체적인 예도 조사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의 삶의 패턴이 되었던 법칙이기에 여기서 써 보았다. 

 

이슈가 되는 부분과 군더더기를 다 떨어내면 내가 찾은 '꿈꾸는 다락방 2 실천편'의 결론은 이렇다. VD=R - 내가 잘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라.  그것이 VD=R을 지속시키는 꾸준한 action으로 연결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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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도
펠릭스 J. 팔마 지음, 변선희 옮김 / 살림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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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영국.  공상과학 (Science Fiction)이라는 장르가 정확하게 정립되기도 전, 쥘 베른같은 거장의 뒤를 이어 H.G. 웰스라는 걸출한 작가가 Time Machine이라는 책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한편, 시대를 더욱 열광하게 만든 이가 있으니 쥘리암 머레이가 바로 그 사람.  무역과 모험을 통해 부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그에 의하면 시간여행을 가능케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마법이었으니, 원주민 부족에게서 시간의 막을 뚫어놓은 상태를 거대한 상자에 봉인하여 런던으로 가져와 시간여행시대를 연다, 매우 비싼 값으로...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열광하는 시대.  20세기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던 이 '순수의 시대' 뒷편에는 가난한 절대다수가 런던의 배설구에서 나오는 쓰레기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터운 안개속을 활보하는 Jack the Ripper에 의해 뒷골목의 창녀들이 하나씩 살해당하고... 

이 책은 모두 세 파트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1) 헤링턴의 과거여행을 통한 애인 구출작전, (2) 미래에서 온 데릭 셰클튼 대장과 19세기 귀족 아가씨의 사랑, 그리고 (3) 미래인의 유명작가 납치살해극이 바로 그들이고, 이들은 또 서로 시간과 공간으로 맺어져 있다.  이 이야기의 모든 포커스, 나아가서 시작과 끝은 쥘리암 머레이와 H.G. 웰스.  소설의 특성상 이 이상의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뿐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쓴 소설이고, 'Time Traveller's Wife'라는 책/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theory가 일부 사용되었기에 더욱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나의 이상향 (셜록홈즈전집 리뷰에서, 그리고 그 후에도 종종 밝혔듯이)인 이 시대의 런던이 주요무대로 등장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PS 영어번역본을 먼저 읽고 쓴 후기를 일부 고쳐서 한국어 판 발간에 따라 다시 올린다.  요즘 이상하게도 영어책 리뷰는 '책'의 그림이 모두 깨져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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