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학전집들이 많이 세일하는 것 같다.  민음사도 그렇고 문학동네도 그렇고, 대산 세트와 함께 상당히 양질의 번역과 selection을 제공하는 전집들인데,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비교적 집중하는 분야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골라서 읽는 재미가 클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적용받지 못하여 별 의미가 없다.  


40%의 세일이면 책 100여권을 60만원 가량에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제한도 있고, 이미 구입한 책도 있겠지만, 그래도 탐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지금 갖고 있는 책들도 읽을 것들이 쌓여있고, 책이란 원래 여러 번 읽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치면 어쩌면 남은 기간 평생 책을 새로 사들이지 말아야 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큰 세일을 보면, 늘 아쉬운 것이다.  나도 어맹뿌 가카마냥, 아직도 배가 고픈 것일까?


셋트상품에 유난히 눈길이 가는 요즘이다.  빨리 일이나 마무리하고 들어가야지.  이러다가 갑자기 구매라도 눌러버리면 큰 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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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두 권은 그 성격이 앞서의 자계서 두 권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따로 정리했다.  고전문학은 나의 학구적인 그러나 때때로는 된장적인 욕구와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읽어야지 하면서, 읽었으면 하면서, 머리가 무거울 때에는 붙잡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최근에 로쟈선생의 책을 읽고나서 충동적으로 몇 권의 책을 사들였는데, 정작 책을 받고서는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기 공간을 하나 확보하여 '연구소'형태로 꾸미고 도피하는 것인가보다.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갈수록 아쉬운 것이다.  이 지역의 주택구조의 특성상 불가능하지만, 나는 이래서 지하실이 필요하다.  아니 많은 남자들이 지하실을 man cave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숫컷들에게는 그런 고독으로의 지향이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덜 자라나는 것은, 아니 나이를 들수록 퇴보하는 마음의 나이는 우리들을 세상은 kidult로 규정짓는다.  완전히 공감하지는 않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닐게다. 


자칫하면 편향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는 역사나 사회-정치관은, 이렇게 중간적인 입장에서, 그러나 매우 솔직하게 역사의 디테일한 면면을 살펴보는 것으로 보다 덜 극단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것, 우리의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운, 또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는 역사는 그 편향성 만큼이나, 잘못된 후대의 사고와 행동을 양산할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하나이고자 하는, 하지만 영원히 우리의 주류가 될 수는 없을 박노자 교수의 서술은 큰 의미가 있다.  단순히 민족주의 진영에서 하면 모든 것이 만사오케이라는 사고방식은 결국 수구세력의 '박정희' 하나면 만사오케이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단결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타자의 배제를 가져온다는 그의 말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세계는 다변하고 다원적인 곳이지, 양단으로 나뉘어 사고될 곳이 아닌 것이다.  물론 보다 더 단순한 '국민'교육은 낮은 차원의 학습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교육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고를 기르는 방향으로 학습된다면 역사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의 질과 깊이는 나아질 것 같다.  그렇게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것 또한 정상배나 모리배들과의 투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진정한 의미의 근대시민이 한국에 출현되어 '국민'시대의 막을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분과 독대하여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은 천생의 시간이 될 것 같다.  예전에 그의 책을 읽었을 때에 느꼈던 거부감은 결국 나의 적나라한 역사인식을 까발리는데 대한 거부에 다름 아니었을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언젠가 소개되었던 책이다.  미국의 무명작가와 영국의 서점직원들이 책을 주문하고 발송하는 과정에서 주고 받은 편지들을 모아 놓은 짧고 단순한 책인데, 읽는 내내 지금의 시대에서는 자주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특히 자신의 생활도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았을 미국의 작가가 사비를 털어서 전후 영국에서 귀한 생활물자와 음식을 보내주는 것을 보면서, 어떤 보편적인 나눔의 자세, 이제는 보기 드문, 그런 것에서, 지나간 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했다.  


영화로도 나와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구해볼 생각이다.  Anthony Hopkins가 아마도 프랭크로 나온 것 같은데, 영화가 워낙 오래되고, 흥행작도 아니기에 DVD로 구해야 할 듯하다.


아름답게 만들어진 전 시대의 책을 바다 건너에서 주문해 받아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아니 writer, 무명이라 해도, 생활은 가능한 수준의 작가로서의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하다.  어제 밤에 시작해서 오늘 아침에 끝낸 책인데, 지금까지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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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늘 마음이 급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근 몇 주간을 밤 늦게 자게 되어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허겁지겁 출근하는 것을 반복했다.  원래의 생활패턴을 되찾기 위해서 다시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시작했는데, 결과만 얘기하자면 별 문제 없이 일어나서 책을 보다가 다시 잠이 들어서, 8시가 넘은 시간에 부랴부랴 씻고 회사로 가야했다.  몇 번 이러다보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어인 일인지 지난 주간에는 크게 바쁠 것도 없었는데도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그래서 작심하고 주말을 위해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면서 책을 몇 권 싸들고 집에가서 주말 내내 짬짬히 읽어냈다.  꼭 의무감이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쌓아놓은 책을 한 권씩 읽어내려가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맛과 멋이 있다.  한가로운 주말 오후에 TV를 켜놓고, 또는 늦은 밤에 마트에 나가서 사온 와인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은 나의 된장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예전과는 달리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못하는데, 우선은 서점 카페의 배치와 구조가 오래 앉아있기에는 불편해진 것도 있고, 서점 내 곳곳에 있던 편안한 일인용 소파도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는 지난 3년 간 근처에 있던 반스앤노블 서점 4군데가 2군데로 줄어들만큼 악화된 경영난이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래 앉아만 있는 사람보다는 책을 살 사람이 필요한 것일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인 사무실을 차린 2012년 이후, 누군가를 상사로 모실 일이 없어졌다.  그 전에도 기실 작은 사무실의 no. 2의 자리에서 5년간 일을 했기 때문에 상하좌우로 촘촘하게 얽힌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그저 구본형의 책이라는 것과 앞으로 누군가를 고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좋은 이야기도 있고, 도움이 될 만한 phrase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의 관심을 충분히 끌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부하직원의 관점에서 상사를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점은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역시 구체적으로 맘에 와 닿지는 않은 것을 보면, 역시 현실에서 경험하면서 답을 찾는 것이 선행학습보다는 훨씬 더 나은 공부방법인 것 같다.  아마도 일반적인 환경에서의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직접적인 공부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앞서의 책보다 훨씬 더 통상의 자계서에 가까운 책이다.  인생의 성찰이나 하루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구본형의 모습은 그리 많이 느낄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반 정도 읽다가 말았는데, 업무효율과 강점의 극대화를 위해서 task를 20가지로 규정하여 나누고, 잘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그렇지 못한 일에는 잘해야 평균정도만 유지하라는 말에는 일견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만, 과연 조직생활에서 이런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다.  자계서의 특성상 지극한 일반화를 통해 단순한 모델을 제시하는 형식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앞서의 책과 함꼐, 자계서를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완벽한' 세상이라면, 모든 이가 룰을 지키는 그런 곳이라면 아마도 조금 더 실행이 용이한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쿵후영화를 보면 소위 '합'이라는 것을 맞춰가면서 고수의 대결이 이어지고, 고수와 저잣거리 건달의 싸움에서도 일정한 '합'이라는 법칙이 유지된다.  하지만 현대 MMA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애초에 '합'이 정해진 싸움은 없는 것이다.  실전에서는 뒤엉켜 난리를 치면서 치고박는 것이 더 일반적인 모습인데, 아쉽게서 자계서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합'이 성립할 수 있는 환경의 '가정'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자계서라도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환경에 맞춘 rephrasing과 적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설사 구본형의 책이라해도 말이다.


보통 자계서를 읽으면 읽는 당시에만 그렇다해도 적정수준의 motivation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책에는 더 이상 공감하기가 어렵다.  내가 더 깨인 탓인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덜 절박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정체기에 오른 나의 인생에서 다시금 한번 inspiration을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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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참사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수 많은 구조적인 문제와 행정이슈, 그리고 사람의 문제를 한꺼번에 날려버리려는 듯,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꼼수로 덮을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경해체라는 초강력 꼼수로 대처하는 박근혜씨의 대국민담화.  어떻게 생각해도 제정신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워낙에 좋은 글들이 많아서 길게 얘기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선장 이하 승무원 구속, 청해진 해운을 비롯한 유병언과 구원파 때리기, 그것도 안되니까 해경-언딘-해수부 마피아를 거론하였고, 여전히 들썩거리는 여론을 잠재우지 못하자 내세운 그들의 한 수.  


일거에 가장 책임이 큰 세력의 한 축인 해양경찰을 해체하면, 책임을 묻기 위한, 아니 더욱 중요한 제도개혁과 안전장치마련을 위한 모든 노력은 아예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해경의 문제를 해결해서 나은 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그러니까 어렵고도 복잡한 노력 대신에 조직 자체를 날려버리는게 무슨 도움이 될런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는 건지.  해경을 해체하면 해양경비와 순찰 및 치안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이렇든 저렇든, 그간 해경에 전담되었던 업무수행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는, 사람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정치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을 정치로 덮기 위한 박근혜씨의 이번 발표를 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이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는 기본적인 전제를 차치하고라도 이번의 이벤트성 아니면 노브레인성의 담화를 보면서 문득 다음의 말이 떠올랐다.


병신육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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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향료전쟁'을 읽고서 든 생각이지만, 그리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물론 특이한 주제를 찾아서 이야기로 만든 재주는 탁월하지만, 그리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책을 덮으면서 하게되는 생각은 'so what?'이다.  


멘드빌 경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있다고 한다.  '여행기'라는 책을 저술하여 후대의 모험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그의 기담은 작가의 정체만큼이나 의혹 덩어리가 된다.  어떤 곳은 진짜로 다녀온 듯한 정황적 증거로 인한 추론이 가능하지만, 어떤 곳에 대한 주장은 당시에 유행하던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다른 이의 책에서 차용한 것이라서 신빙성이 없다.  그러나 그의 정체를 밝히려는 노력과 함께 당시 여행했다고 주장하는 곳을 방문하여 최소한 긍정적인 추론이 나올 수 있는 정황적 증거를 찾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인데, 역시 재미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거리를 찾아서, 즉 이슈화하여 다시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은 책을 쓰는데 있어 기막힌 재주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다소 엉뚱하게도 작가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고, 그 이름부터 범상치 않음에 살짝 놀랐다.  작가의 이름은 Giles Milton이다.  필명이 아닌 실제 이름부터 그는 작가의 숙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다.  가일스와 발음이 비슷한, 독일어-프랑스에서 파생된 오랜 영어단어인 Guile은 "insidious cunning in attaining a goal; crafty or artful deception; duplicity"라고 풀어지고, 성씨가 되는 밀턴은 실락원의 그 유명한 저자와 같다.  이쯤해서 보면 멘드빌 경이라는 인물 자체의 정체가 모호해진다.  그런 인물자체가 작가의 창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여담이지만, 요즘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온갖 떡밥으로 가득차있어 거의 prequel 영화만 만드는 느낌인데, 수수께끼로 가득찬 그의 영화는 그의 이름에서 연상되는 riddle과 너무도 잘 들어맞는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우연이라도 희안한 우연이다.


자계서와 일상의 성찰, 그 중간에 위치한 저자가 아닌가 싶다.  다른 자계서 저자나 강사들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구본형의 포인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저술과 강연으로 먹고사는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일에 대한 자세와, 그보다는 더 진실한 자신 본연의 모습이 있고, 그 둘이 꼭 일치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난 구본형의 글과 강연이 100% selfless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나이가 들어서, 그리고 2004년 당시에도 벌써 초기보다 더 나아간 그의 글을 보면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계통의 다른 저자들과는 다르게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과 이슈제기까지 하는데, 이는 여타 다른 저자들의 '네 문제나 신경써라' 또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론으로 일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그 역시 마음먹기에 따라 삶의 태도가 변하고 이를 통해 보다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일 할 수 있음을 역설하지만, 그의 다른 생각과 말을 종합해서 판단해보면, 이 역시 한 분야에서 뛰어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구본형은 김XX, 공YY, 이ZZ, 등등의 유명한 이 계통의 인사들과는 다르다.  그의 합리적인 면 또한 좋다.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이들 또한 구본형이 걸어간 길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그들 중 일부의 글에서 구본형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데, 표현까지 선생과 비슷하게 가는 제자라면 더욱 노력하여 선생의 것을 털어내고 온전한 자기만의 것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부터 좋게 보면서도 가끔은 뭐랄까 조금은 자신의 모습보다는 다른 이의 허울을 쓴 것 같은 이 계통 저자의 글을 보면서 느끼던 불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번 책을 읽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제자가 스승의 영향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러서도 이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늦잠을 자고 급히 나오느라 원하는 책을 들고 오지 못했고,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반나절 일을 할 생각이라서 손에 잡힌 것이 없으니 오후에는 또 다른 구본형의 책을 볼 생각이다.  참고로 이 책이 나온 때는 2004년인데, 그로부터 약 9년 후 구본형은 폐암으로 별세했으니 희망에 가득찬 그의 이야기들이 이제는 쓸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새삼 그의 이른 귀천이 아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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