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친일파들의 자손의 후례자식까지도 나대는 세상이다.  다카기 마사오의 행각으로 상징되는 시대의 배반은 그의 딸이 한국 땅의 모든 협잡을 한몸에 싸안고 대통령직을 강탈하는 것으로 절정을 찍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역사교육은 대입에서 한참 멀어진 후에도 끝없이 몰락하고 있는데, 문성근씨의 말마따나 여기에는 어쩌면 깊고도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내에도 무수히 많은 항일전적지와 유적이 존재하지만, 만주는 특히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한일강제병합 후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설 자리가 없어진 우리 교민들, 그들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을 하던 지사들의 피와 땀이 어린 이곳은 그러나 중국의 외교정책에 따라, 그보다 더우기는 한국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돌봄을 받지 못하고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듯 하다.  


글쓴이는 박도라는 작가인데, 그의 책을 읽어본 바는 없으나 이런 취지의 책을 기획하고 쓴 것, 아니 그보다도 전에 만주와 중국 지역에 흩어져 있는 해방전쟁 유적지들을 살피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보고 한번 정도는 생각해보는 의미가 있겠다. 


한국 근현대사의 왜곡은 심각함을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고대사에 대한 부분은 좀 제껴두고라도 현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항일전사만큼은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을 기리자고들 하는데, 광복절 외에 건국절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은 나쁘지 않은 듯 하다만, '건국절'이 될 수 있는 날짜는 딱 한개인데, 4월 13일 (4월 11일이라는 설도 있다),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 유일한 '건국절' 후보라고 하겠다.


같은 순간의 같은 이야기를 4인칭으로 각각 서술해가는 구성이 특이한 무라카미 류의 작품.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딸, 전형적인 일본의 셀러리맨 아버지, 그리고 권태로운 어머니, 끝으로 히키코모리 아들.  


1970년대에도 간혹 발견된 현상이라고 하는데, 히키코모리는 일본의 장기불황시대 시절에 특히 대량으로 발생했다고도 한다.  사회전반에 걸친 피로감과 의욕상실이 개인의 대인기피로까지 발전한 현상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예전에 90년대 말 미국 신문에서 Parasite People이라는 term으로 이들을 다룬 기억이 있다.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지만,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왜 이런 책을 썼는지 궁금하면서도 좀체로 알기 어려운 면이 있다.  내게는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일본작가이지만, 한국에서도 꽤 많은 책이 번역되었고 일본에서도 유명한 작가로써 분명히 이런 저런 메시지를 던지는 해석을 본 기억이 있어 더더욱 궁금하다.  지금까지 3-4권 정도의 작품을 읽었는데, 딱히 무엇인가 깊은 감명을 받거나 격한 공감을 하지는 못했다.  일종의 project같은 독서.


도서정가제인지 뭔지를 시행한다는 난리통에 잔뜩 겁을 먹고서 세 번에 나누어서 필경 800불어치 정도의 책을 새로 주문해버렸다.  연말까지 열심히 일해야할 것이다.  이들 중에는 그간 벼르던 크리스티 전집의 나머지, 77권으로 끝나는 열 댓권도 들어있는데, 이제 35권을 읽고 있으니 그간 사들인 추리소설만해도 reserve가 필경 80권 정도는 될 것이다.  긴 겨울밤 문학도 좋지만, 인간본성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아니면 그저 단순한, 그것도 아니면 그냥 그로테스크한 추리소설을 한 권씩 읽어나가는 것도 좋다.


단순한 추리소설의 살인사건이라는 패턴을 벗어나 가끔은 이렇게 국제적인 음모가 얽힌 이야기도 흥미가 있다.  물론 그 중심은 추리와 추론이지만, 1차대전 중 미국참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루시테니아호의 침몰에서 시작되는, 또다른 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사라진 문서를 둘러싼 국제조직의 음모와 이를 저지하려는 '정의'의 편에 선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숨막히게 전개되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크리스티와의 두뇌게임에서 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진범을 일찍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이 50%나 되었는데도 말이다.


이 책에서는 범인이 '나는 범인이다'라고 처음부터 당당히 공표하고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트릭에 걸려 결국은 끝에서야 범인임을 알 수 있었다.  앞서처럼 운동을 하면서 틈틈히 읽은 것도 아니고 집에서 편하게 보았음에도 좀처럼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것도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의 하나려나?


이런 간단한 것도 알아보지 못했으니 지금 읽고 있는 35권의 트릭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겠다. 


밀리니까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읽은 직후에 리뷰를 남기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도 약 3-4권 정도가 더 밀려있는데,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미 많이 잊어버렸기 때문에 또다시 졸렬한 글이 나올 것 같다.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만, 남기는 글이 그렇다고 뭐 대단한 것도 아닌 무엇인가 계속 시도만 하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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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구입해서 잠시 다른 책을 내려놓고 바로 읽어냈다.  그만큼 친숙한 구성과 전개, 결말, 쉬운 단어 및 문장이 법률스릴러의 무협지같은 존 그리샴 소설의 매력이나 한계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 사만다는 뉴욕의 top 로펌의 부동산/회계분과의 3년차 변호사이다.  주당 100시간대의 billing hour는 기본인데, working hour가 아닌 billing hour가 주당 100시간이라면 working hour는 최하 120시간대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full-time에 해당하는 40시간을 billing하려면 기실 50시간대 이상의 업무시간은 나와야 그 정도를 순수하게 client billing hour로 쓸 수 있는데, billing이 100시간이라면 지난 3년간 사만다의 인생은 회사와 아파트를 오가는 생활이었다는 것.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누구나 원하는 Partner로의 신분상승을 꿈꾸던 그녀는 다른 수천명의 associate변호사들과 함께 2008년 리만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다가온 불경의 희생양이 되어 회사를 임시휴직하게 된다.  임시휴직의 조건으로 1년간 법률자문봉사를 하기 위해 애팔라치아 깊숙한 coal country로 들어간 그녀는 거기서 인생의 전화점을 맞게 된다.  


이 정도면 매우 흔한 그리샴 소설의 플롯이 된다.  지난 번에 읽은 Litigator처럼 큰 회사에 다니던 전도유망한 일반직 변호사가 어떤 계기로 다운타운 마천루에서 갑자기 길거리로 떨어지는 시작은 요 근래 그리샴 소설의 일반적인 시작이 아닌가 싶다.  점점 세상과 사람에 눈을 떠가면서 새로운 사명감이 생기는 주인공은 그러나 다른 작품들보다는 조금은 차별되어 책 후반부까지도 어떻게든 맘속 깊은 곳에서 오는 calling에서 멀어지고 싶어한다는 점이 조금은 다르고, 중간의 shocking한 대반전, 그리고 open-ended인 결말까지 약간은 기존의 작품들과 다르긴 했다.  그리샴 특유의 justice is served의 결말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 나름대로는 계속 써먹은 플롯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봐줄 수 있겠다.  


무협지라고 말했듯이 매우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인만큼, 한번 읽고 나면 남는 것은 많이 없지만, 늘 덩치 큰 bully와 싸우는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점이 맘에 들거니와, 초기작들처럼 오래 가는 스토리는 아니라도 기본에 충실한 재미를 주는 책이다.  아직은 번역되어 들어오지는 않은 듯 한데, 곧 한국어로도 출간이 될 것 같다.  


흔하게 나오지는 않는 편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중고 몇 권을 구입한 관계로 지난 책에 이어 읽게 된 작품이다.  추리소설을 이런 방향으로도 구성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는데, 특정인물의 기억이 타인에 의해 재구성된다는 기본플롯은 유독 일본의 소설에서, 추리소설이 아니라도, 또는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듯한 느낌이다.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일본인 또는 문화 특유의 오리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리학도 주인공은 오래전 헤어진 여자친구의 부탁으로 함께 어떤 장소로 함께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잊혀진 기억을 찾기 위한 과거사건의 재구성을 하게 된다.  단서는 집, 동네, 일기장, 오래된 물건.  옛날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재구성 또는 재배치 또는 리셋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기억을 찾아가는 것이 이 추리의 주안점이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회적 이슈나 살인자가 등장하지 않지만, 괴괴하니 오래된 빈 집, 그것도 예전에 있었던 오리지널의 레플리카로써의 빈 집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사냥이 나름 괴기스러운 느낌을 준다.  역시 쉽게 읽은 책인데, 시간을 때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다.


연말로 접어들면 내가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연말모드에 들어가는데, 남은 2개월간 line-up된 project가 몇 개 있기는 하지만,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이렇게 남은 한해가 흘러갈 것이다.  자영업 3년차인데, 계속 자라나는 업무량이 즐겁기만 하다.  힘들면 힘든대로 모두 내 하기 나름이고 나의 일이니 싫은 사람과 일하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은 큰 플러스가 된다.  덕분에 이번 해에도 무난한 목표량을 채울 듯 싶다. 책을 너무 많이 사들였다는 건 역시 다시 반성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골프 같은데 돈과 시간을 물쓰듯 하는 내 나이또래의 한인 남자들의 삶을 보면, 책읽기는 점잖고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취미라고 하겠다.


최근에 아마존을 통해 구한 Shirer의 책들 다수가 사무실에 있어 당분간은 다른 책들과 함께 이들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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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14-11-0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존 그리샴 소설에 관심이 가요. 전에 어떤 분이 `독서도 취미가 될 수 있다`하신 기억이 있는데 저도 이제 생존 차원이 아니라 취미 차원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일이 자라나는 것 같으시다니 저도 좋네요. 싫은 사람과 같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부럽구요. 다행히 전 아직까지 nice한 사람들을 만나서 회사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요. 문득 책읽기가 취미인 사람과 사는 사람은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transient-guest 2014-11-06 03:55   좋아요 0 | URL
쉽게 읽히는 소설이고 가끔은 통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 많아서 그리샴 소설은 즐겨 읽습니다. 즐기는 독서의 맛과 공부로써의 독서의 맛은 많은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이 두 가지의 경계가 허물어진 옛 선비스러운 독서는 많은 분들이 지향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구요. 끝으로 사람이 사는 모습은 제각각 다르면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결론지어졌을 살인을 논리적으로 추리하여 밝히는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간단명료하고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깊은 추리나 내면의 이야기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데에는 추리소설만한 것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이런 간단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짧게 끝나는 인과관계도 그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용의자들이 하필이면 왜 초자연적인 사건을 가장하여 단서를 흩뜨려놓고 알리바이를 만들려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어떤 사건의 경우 의도적인 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게 된다는 점이고 이 때문에 초등수사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은 모든 사건이 초자연현상과는 관계가 없음이 밝혀지면서 독자는 안심하게 되는 순간에 한 수를 두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책을 덮게 하는 것은 작가가 의도한 유쾌한 트릭일 것이다.  기회가 되는대로 구해서 읽고 모아두는 작가인데,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끼는 부분, 특히 너무 무겁지는 않은 소재와 구성이 맘에 든다.


재산이 많고, 가난한, 또는 경제관념이 없는 상속자들로 둘러싸인, 하지만 direct heir가 없는 노부인의 인생은 참으로 miserable했을 것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해주는 크리스티의 단골소재들 중 하나는 이런 노부인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이다. 기실 너무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나라도 그들에게 재산을 남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속자들 또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게 마련인데, 종종 이 노력은 positive한 방향보다는 그렇지 못한 쪽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이해한 노부인은 포와로에게 모종의 의뢰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지만, 아쉽게도 그전에 목숨을 잃고, 의뢰편지는 수 개월이 지나서야 포와로의 손에 들어가는데, 이 영리하고도 집요한 사냥개가 냄새를 맡는 순간 모든 것은 결국 끝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포와로가 등장하는 이상 사건이 미결로 끝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운명적으로 케이스가 종료될 것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미련을 갖고 두뇌게임을 하는 것은 독자로서의 의무이자 운명임을 느끼게 되어, 중간에 책을 덮지 못하고 다 읽어나간다. 크리스티 전작의 40%에서 조금 모자란 시점까지는 와버렸는데, 아직도 50권 이상의 책이 남아있고, 이를 읽어야만 캐드펠로 넘어갈 수 있겠다.


김영하 작가의 신작 에세이.  그간 한국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팟캐스트로 간간히 소식을 전하되 시사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던 그가 모종의 계기로 글로 사회속으로 뛰어든다는 출사표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간 좀 cool~한 이미지로, 약간은 떨어진 위치에서 방관자의 한 마디로 간간히 세상을 반추하고 거들어온 것 같았는데, 아마도 이제 다시는 그렇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세월호'는 그렇게 우리를 바꾸어 놓았고,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그저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변하지 않을 수 있을지...


'이십대는 몸으로, 사십대는 머리로 산다'고 썼는데,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면 이십대를 머리로 살고 사십대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몸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이십대는 관념에 꽉 찬 머리를 갖고 그렇게 하루를 살았고 외적인 것에는 애써 무신경한 척하면서 나 자신을 보호했음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두 배의 나이가 되어가면서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마냥 아쉽기만 하고,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살면 머리로 살면서 몸을 좀더 굴릴 수도 있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  정작 그러다가 '지금'을 놓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은 거의 100%인데, 그러면 육십대의 나는 사십대를 바라보면서 또 어떻게 징징거리고 있을까?  가끔은 '재수없음'이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는 김영하 작가이지만, 일정부분 나와는 코드가 맞는 것 같다.  작품의 파격성은 모르겠고, 에세이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도 그런 이유인 듯 싶다.  '보다'를 필두로 '읽다'와 '말하다'를 석 달 간격으로 출간할 예정이라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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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의 약속>

돈이 많고 매우 독선적인 노부인.  게디가 주변의 젊은이들을 꽉 붙잡고 마음대로 하는 노부인. 뒷방으로 물러나 있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절대 그럴 생각이 없는 노부인.  그녀의 죽음은 모든 이의 소망이었을 수 있다.  여행중에 자연사라도 해준다면 그 많은 유산은 골고루 나눠지고 많은 사람들의 새출발을 돕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부인은 실제로 죽었다.


아주 짧은 요약인데, 이미 정해진 숫자의 용의자들이 있고, 언제나처럼 이들을 솎아내는 것은 포와로의 임무이자 지적 유희라고 하겠다.  크리스티의 작품들 중 드물게도 그 서사와 전개가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심리상태에 트릭을 배치하고 용의자를 제시한 다음 역시 언제나처럼 반전을 통해 진범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다름아닌 '심리'와 '배경'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는 다른 배치와 구성이 있다.  지난 번에 읽은 '파계재판'에 이어 이번에도 명탐정급의 변호사가 등장하고 법원도 중요한 무대를 제공한다.  범인의 시점과 3자의 시점을 오가는 묘사와 전개도 맘에 들고, 모방범죄이면서 이미 진행중인 사건을 토대로 한층 더 개선된 범행수범을 진행시키는 한편 꾸준히 법원에 방청객으로 나타나는 심리도 재미있다.  


크리스티의 소설의 경우 종종 그 트릭의 억지를 느낄 때가 있다.  독자들에게는 정확하게 주어지지 않은 정보나 도저히 유추해낼 수 없는 인과관계가 해결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몇 권의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을 보면, 거의 모든 정보는 공평하게 독자에게도 주어지고, 소설의 분산장치에 눈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추리가 가능할 정도의 개연성을 보여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게다가 범인의 뒷통수를 치는 마지막 반전 - 그러니까 범죄의 모티브가 되는 '결과물'이 범인의 계획과는 달리 완전범죄가 되더라도 범인이 취할 수 없었음을 밝혀주는 것은 통쾌한 신의 한수가 아닌가 한다.  


읽다보니 별 것을 다 읽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 라이트 노벨 풍의 책을 내가 볼 줄이야. 보고나서도 재미를 느낄 줄이야.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강신주 박사가 말하는 포인트에 딱 들어가는 부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어설프고, 만화와도 같이 뻔한 수법임에도 불구하고 읽는내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지나가버린 옛 시절에 대한 망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있지도 않은 과거지만) 추리는 거의 부속물 수준이지만, 서점을 무대로 한 청춘물 같은 점이 맘에 들었다.


아직도 가끔씩 헌책방을 차려서 생계와는 상관없이 매일을 그렇게 책속에서 보내는 망상을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최소한 가게자리는 내 건물이어야 할 것이고, 이익은 볼 수 없더라고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이며, 부동산이던 무엇이던 side로 다른 수입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진행형도 되지 못하는 망상인 것이겠지.


<제3제국의 흥망>으로 처음 접했던 Shirer는 Berlin일기를 통해 팬이 되었는데, 의외로 그가 쓴 책이 다수 있어 하나씩 구해볼 계획을 잡았다.  예전에 헌책방에서 산 책이 20세기 하권에 해당하는 것을 알고 아마존을 뒤져보고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책을 사는 것, 읽는 것은 이들을 모아두는 것과 함께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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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10-2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벌써 추리소설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어요 ㅠㅠ

transient-guest 2014-10-29 04:32   좋아요 0 | URL
아이패드에서 PDF로 다운 받으신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책을 모아둔 파일을 받아 시전해 보심이 어떨런지요?ㅎ 안달루시아의 화창한 태양이 부럽네요. 세고비아가 그곳 출신이라죠?
 

페이퍼로 이렇게 몰아서 읽은 흔적을 남기는 때마다 느끼지만, 내가 짓는 제목이라는 것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다른 서재들을 다녀보면 참 제목도 맛깔나게 짓고, 글은 더더욱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는데 여기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걸음마를 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등의 이유로 자신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감도 없지는 않고, 조금은 게으른 관리를 하는 것을 요즘 특히 많이 느낀다.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글을 매번 남기면서 어떻게 더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하는 한편, 이 정도라도 꾸준히 남기는게 어디야 하는 생각도 한다.  늘 하는 고민이라고 하겠다.  


이 정도는 되어야 리뷰를 모아 책으로 출판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도록 만들어주는, 매우 잘 쓴 리뷰들이다.  유명한 작가나, 문호의 글과는 다르고, 특히 팔기 위해, 또는 책을 쓰기 위해 만들어진 리뷰와는 차원이 틀린 솔직하고 담백한 인생의 하루 하루에 깃든 독서를 볼 수 있었다.  저자는 '다락방'님.  1.0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오는 고수들이 즐비한 알라딘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서재를 꾸려가시는 분이 아닌가 싶다.


한 가지 내 자신에 견주어 보면, 이 책에서 저자는 너무도 솔직하게 책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쓴다는 점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꽤 높은 수준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서재에 남겼던 글이니만큼 아무래도 특히 처음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계속 꾸준히 방문객이 늘고 오프라인으로 사귀는 친구들이 늘어가면서도 그렇게 쓸 수 있었다는 점은 그만치 저자의 겉과 속이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감성을, 생각을, 배경이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책과 풀어낼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도 20대부터 이런 서재를 갖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유럽사를 전공하면서 이런 저런 글짓기를 하고 책을 많이 읽었었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무미건조한 글쓰기가 직업이 되어버린 듯한 시절이 아닌, 때가 덜 묻었고 글도 그때의 순진함 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나의 20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보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금은 더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소설'예찬에 격하게 공감했다.  젊은 시절 이런 저런 것들에 치이고 또 상당부분은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세상을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다.  이와 함께 놓치고 만 여러 경험들에 대한 아쉬움은 불혹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간혹 큰 조바심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세상을 보아야 하는데, 늘 세상을 생각하고 읽기만 했기에 나이와 함께 오는 막연한 놓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소설을 보면서, 자신을 견주어 보기도 하고, 겪지 못하는 대신, 대비하여 생각하면서 성장해온 듯 싶다.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책을 통해, 소설을 통해 다각도의 삶과 관점을 경험한 그녀의 독서를 보면서 그야말로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면 과장일까?


문득, 나도 읽는 책에 나 자신을 삽입하여 경험하고 사색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저 책은 멀리서 바라보는 제 3자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몸에 배인 습관이라서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교과서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만큼 읽는 내내 감동하고 감탄하고 즐거웠다.  알라딘 서재라는 공통분모를 빼더라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참고로 독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못해도 4단 책장 하나가 꽉 찰 만큼의 이런 이야기들을 읽어왔으니 아주 조금은 내 말을 믿어도 좋을 것 같다.


천명관 작가는 참으로 맛깔나게 글을 쓰는 작가이다.  게다가 언제나 그의 글을 읽으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간마다 scene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경험하는데, 오랜 시간동안 영화판에서 일한 이력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모두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는 밑바닥의 절망, 자포가지, 광포, 반전 등의 다양한 테마를 경험할 수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희망'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자살을 막은 불면증 아줌마가 나오는 한 이야기에서 희미하게 모성과 함께 '사랑' 또는 어떤 존재에 대한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냥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 


나가이 가후.  이 작가의 이름도 책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는 '장서의 괴로움'에서 언급된 이런 저런 일본의 고전작가들을 알라딘으로 검색하다가 주문하게 된 책이다.  다른 책들도 꽤 흥미를 끌었으나 번역되지 않았거나 절판되어 reference된 책들 중 유일하게 구할 수 있었다.


일본 '화류소설'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데, '화류소설'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문체나 내용, 그리고 구성과 서술은 모두 대체로 내가 좋아하는 담담함을 지니고 있다.  작가와 동일시해도 무방할 것 같은 주인공이 잠깐 우연한 기회에 기생과 짧게 마음을 나누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특별히 무엇을 기대하고 본다기 보다는 심야식당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은 기억이 난다.  


주저하다가 다가가지 못하고, 상대방도 어쩌면 그러는 사이에 엉켜있던 인연의 실타래는 금새 풀려버리고 각자의 삶속으로 등을 돌리고 지나가버리는 것이 대다수의 남녀관계일 것이다.  이를 잡으면 결혼으로 이어지고 끊어지거나 죽을때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게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들 외에 추리소설을 세 권 정도 읽었는데, 이들은 다른 페이퍼에 남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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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9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