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서구의 종교를 예를 들지 않더라도 믿음의 영역에 있어 세상의 상당 부분은 이미 일신교의에 기반한 '신'이 갖고 있다.  유대-그리스도교의 전통이래 가톨릭과 수 많은 개신교파의 한 세력, 이슬람교파의 한 세력, 그리고 불교 (정확히는 다신교의 전통에서 왔고, 지역에 따른 토착화, 그리고 특정 존재의 신성에 큰 의미를 두기 보다는 수행과 정진을 통한 해탈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로 크게 나뉘고, 남은 부분은 힌두교나 시크교를 비롯한, 이제는 거의 흔적만 남아있는 경우가 더 많은 토착종교가 차지하고 있는 정도.

  

그런데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초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로 채택된 시기를 전후로 해도 서구 다신교의 전통이 살아있었고, 로마제국이 멸망하고도 한참은 다양한 유럽부족들의 토착신앙에서도 다신교의를 볼 수 있었다.  일단 범위를 좁혀서, 올림푸스의 12주신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로마의 다신교를 보면, (북방유럽도 그런 면이 있지만) 거개가 자연현상을 대변하는 듯하고, 일신교의에서 보여주는 '신'보다는 훨씬 더 낮고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즉 신은 정말로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조금 낭만적으로 바라보면 이런 다신교 시절의 '신'은 늘 우리 옆에서 사람과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늘어나고 문명이 일어남에 따라 함께 더욱 정교해지고 문명화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신을 shape해간 것.  


어두운 밤거리를 배회하면서 여자들의 '적'이 된 '남자'를 사냥하는 여자가 있다.  키 185 cm, 매우 well built된 몸매의 이 여자가 지금 사용하는 alias는 Selene Disilva.  그 전에 사용했던 이름들도 모두 같은 의미로써, 같은 존재를 나타낸다.  그녀의 이름은 Artemis.  올림푸스 12주신들 중 하나로써, 일신교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다신교 신들의 디아스포라 이후 그렇게 인간들 틈에 섞여 살아왔던 것.  아주 rare하긴 하지만, 아직도 가끔 그녀를 찾는 - 정확히는 그녀의 보호가 지향하는 것을 원하는 - 존재들 덕분에 나날이 약해지는 신성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이미 현대문명이 밀어낸, 그래서 스러져가는 신들 - 크레타섬의 동굴에서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는 제우스, 아프리카 어디에선가 온종일 화덕만 쳐다보고 있는 헤카베 등 - 처럼 언젠가는 인간의 기억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그들이 온 카오스로 돌아가야 한다.  


센트럴 파크에서 젊고 매력적인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녀는 일종의 종교적인 제의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은 신들의 황혼을 reverse하려는 비밀스러운 고대 제전을 준비하는 신비스러운 인물이 주도하고 있다.  


용의자들은 흩어진 신들 중 하나일 것인데, 디오니소스나 헤르메스 같은 현대 문명의 이기와 쾌락으로 그 '숭배'가 이어지고 있는 신들이나 rock star가 되어있는 아폴로 신, 지구 어딘선가 전쟁과 전투속에서 그 존재를 이어가고 있는 아레스 신, 혹은 또다른 존재가 원하는 건 신들의 부활인 것으로 추정된다.  


스토리는 비교적 평범한 판타지와 추리의 결합이지만, concept이 신선했다고 생각된다.  신-자연현상이라는 흔한 관계보다는 좀더 철학적으로 발전한 신-사람-신의 never-ending순환고리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가 있었다.  신은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은 신을 shape해나가는 것, 신의 기억도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일부에 의해 영향을 받고 기억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에서 좀더 인본주의에 기반한 - 일신교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 이론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예전부터 흥미로운 토론의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가 civilize되어가면서, 신들의 모습도 맨발로 야생을 뛰어다니면서 날고기를 먹던 야성 가득한 그것에서 아고라의 학자들이나 스파르타의 전사의 모습으로 변해갔다는 것을 stretch하면 구약성서 속에서 계속 발전하고 넓어지는 신 '야훼'의 모습이 실상은 그만큼 사막을 떠돌던 목양민족으로서의 유대인에서 정착하고 정주한 농경민족으로서의 유대인으로의 발전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예전 해방신학이 유행하던 시절 더 많이 회자되던 논리 같다).  


삼부작으로 나온 것 같은데, 첫 이야기의 결말은 그럭저럭 매듭지어졌지만, 원래 이렇게 고독한 수호자의 이야기나 mentalist또는 holmes처럼 조금은 만능의 히어로를 좋아하기 때문에 벌써부커 기다려진다.  Jim Butcher가 만든 Harry Dresden도 참 좋아하는데 이 시카고의 기인 마법사의 이야기는 언제 또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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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책읽기가 시들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쨌든 마구잡이로 만화책이든, 소설이든 닥치는 대로 읽어서 다시 책읽기의 재미를 느끼고 거기서부터 고전문학이나 논픽션 같은 책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방법이 다른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책읽기에서 한 동안 멀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 어떻게 하든지 다시 재미를 느끼고 읽어가려고 발버둥을 치게 된다.  한 3-4년, 새로 사들인 책도 별로 없이, 책장에 멋지게 꽂아놓고 지나갔던 때가 있는데, 꽤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금 돌아봐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되는 것은 피하고 싶다.  마침 알라딘에 주문한 책들이 한 시기에 들어왔고, 추리소설, 무협지, 고전문학, 논픽션 등 다양한 녀석들을 받게 되어 일단 읽고 싶은 책들부터 달려들기로 했다.














[선례후병]이라고 했으니, 일단 칭찬부터 하자.  금사벽혈검은 내가 유일하게 갖지 못했던 김용의 작품이다.  처음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1993년이니까, 중간에 구했을 법도 한데, 어쩌다 보니 나온 것도 모르고 지나갔던 것.  최근에 사조삼부곡과 녹정기, 천룡팔부와 비곡소오강호를 새로 구하면서 이 책도 함께 사들여 읽은 것으로 난 김용이 쓴 모든 작품들을 읽었고, 갖고 있게 되었다.  녹정기-비호외전-설산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전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의 배경은 명나라가 망하기 직전의 중국인데, 주인공은 당시 반간계로 억울하게 죽은 명나라 마지막 명장 원숭환의 아들이다.  워낙 뒷날 언급되는 철검문의 구난, 오독교의 하척수, 화산파의 귀신수 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요인물로 등장했기 때문에 그간의 많은 궁금증이 풀렸는데, missing link를 찾은, 딱 그런 기분이다.  여기까지는 좋은 이야기.


나쁜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일단 번역.  이건 중국어를 모르는 내가 봐도 발번역이 분명한데,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분에서 한국어로 말이 되지 않는 표현, 그러니까 초중국어를 하는 초보가 문장을 직역해 놓은 듯한 번역이 많았다.  무협지를 많이 읽었고, 스토리와 문파의 배경을 잘 아는 나였기에 스토리를 파악하면서 읽을 수 있었진, 초심자가 이 책을 봤으면 다시는 무협지를 찾지 않았을 정도로 무성의한 번역, 감수 및 편집과 교정이 아니었나 싶다.  1993년에 처음 나왔고, 최근에 다시 나왔는데, 거의 있는 그대로 재출간한 것 같다.  번역의 문제도 있지만, 개발로 편집하고 교정한 티가 너무 많이 난다.  누구냐 넌?


여기에 너무도 자주 등장인물이나 주요배경의 명칭이 이상하게 나왔기 때문에 역시 기존의 무협진와 배경지식이 아니었더라면 다 읽지 않았을 것 같은 부분이 많다.  점창파를 정창파로, 황옥도인과 황목도인이 왔다갔다 하는 건 애교. 


중원문화사는 그간 영웅문으로 대표되던 김용의 다양한 작품들을 번역해 들여온 공로가 있다. 불법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난 영웅문 말고도 천룡팔부 (대륙의 별), 녹정기, 비곡소오강호 (아! 만리성), 협객행, 연성결, 설산비호, 비호외전 등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사실 번역도 이제까지의 경우 금사벽혈검처럼 이상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독 이번의 작품은 문제가 많은 것이 좀 이상하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십팔사략도 구할 계획인데, 좀더 나은 번역이었으면 한다.  


이 책은 김용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작가가 다시 고쳐서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  김용 하면 역사소설 수준의 무협지를 쓴 작가라고 알지만, 이 책의 완성도는 처녀작인 서검은구록 (소설 청향비)보다도 못한 것 같다.  명나라 숭정황제-틈왕 이자성-오삼계-금나라의 역학관계에서 명나라가 망한 건 이자성에 의해서인데, 이자성은 정권을 잡자마자 바로 민심을 잃고, 특히 산해관을 지키던 총병 오삼계의 애첩을 빼앗은 탓에 금나라와 오삼계의 연합으로 바로 왕권을 잃고 말았으니, 대업을 이루는 것은 어렵지는 이것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한가지 특이한 건 역시 협사의 역할인데, 원승지는 그토록 고강한 무공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고, 사태판단도 너무 순진하다고 할 만큼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점들은 나중에 나온 작품들에서 많이 고쳐진 것으로 생각된다.  예전 홍콩영화 클래식에서 나온 금사벽혈검 영화에서의 유치한 액션이 자꾸 떠올라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탓에 살짝 고생을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많은 무협지, 하고도 한국의 무협소설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구도와 기승전결을 보이는 반면에 좌백의 소설들은 굉장히 특이한 이야기와 주인공, 배경과 반전을 보여준다.  '대도오'난 '생사박'에서의 주인공들도 그랬고, 간혹 보는 단편에서도 그렇다.  덕분에 오히려 이 책은 금사벽혈검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거부가 아들이 돈도 지키고 잘 살 수 있게 고수로 만들었지만, 정작 돈을 벌고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죽은 탓에 가난해진 이야기나, 순전히 우연으로 세상을 떠돌다가 흑도 고수의 제자가 된 정생의 이야기도 그렇고, 허무와 반전, 그리고 거창함을 쏙 빼버린 강호와 기인협사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이게 좌백식 이야기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진산이 보여주는 영상미에 가까운 묘사나 구성은 볼 수 없고, 매일 보는 우리 세상의 삶과 아귀다툼이 좌백이 보여주는 강호의 모습이다.  '대도오'는 언제든 나오면 다시 구할 생각인데, 다른 작품들도 일단 나오는 건 다 봐야한다.


이들 외에도 두 권을 더 읽었는데, 일단 따로 정리하기로 한다.  비곡소오강호를 다시 읽을까 고민하고 있으나 너무 바쁜 스케줄과 다음 주에 잡힌 출장을 make-up하려고 주말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어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이렇게 물을 붓다보면 파이프에서 콸콸 신선한 지하수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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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6-04-1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들도 있구나 했습니다. lol 저도 조금씩이라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 뭔가 팍 터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나름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이 바쁘시다니 좋습니다 (만) 글 좀 자주 써 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거든요. ㅎㅎ

transient-guest 2016-04-18 11:45   좋아요 0 | URL
무협지는 안 보셨나봐요. 흥미위주가 대부분이지만 작품성과 가독성이 높은 것들도 꽤 있습니다.ㅎㅎ 늘 up and down이에요. 책이 많아지면서 더 그런 듯 합니다. 원래 한 권씩 구해서 귀하게 읽어야 하는건데...ㅎㅎ 기다려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저 한 권이라도 더 소개하는 정도면 바랄 것이 없네요..

오드득 2016-04-1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책 읽기가 시들한 시점인데 닥치는 대로 읽어서 넘기려고 하고 있어요. 저랑 비슷한 방식이라 놀랐습니다^^
저는 소오강호를 가장 좋아합니다. 호금전의 영화 때문에 읽게되었는데 정말 좋더군요. 그것이 김용과의 첫만남이었습니다. 벽혈검도 장철의 영화로만 봤는데 언제 한 번 만나봐야겠네요^^

transient-guest 2016-04-18 11:4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ㅎㅎ 세상이 넓고 사람도 많은데, 또 이렇게 비슷한 경우도 보네요. 읽을수록 소오강호의 매력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오강호의 영호충은 참 멋진 협객이라서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호금전 감독은 `협녀`로 접했구 영상미와 디테일이 좋은 감독이라고 봤습니다. 김용의 작품은 우수한 것들이 꽤 있습니다. 드디어 전작했네요.ㅎ
 

그간 밀린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는 수준에서 일단 다시 노력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서재가 애초에 아니었음에도 그간 많이 관심을 받고 좋은 글을 받으면서 조금씩 다른 이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일종의 '블로그'질을 하는 이유에 어찌 타인의 관심이 완전히 배제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최근의 performance와 알라딘의 경향을 보건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이다.  물론, 2016년도 '서재의 달인'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나찌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헐리우드의 영화에서 온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원초적인 공포와 나찌의 만행, 영웅적인 저항, 수형자들끼리 서로 보듬어 주는 모습, 우정(?) 같은 것에서 우리는 유대인 = 희생자라는 등식과 폭력 = 나찌의 등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나쁜 일, 예컨데 폭력과 살인 같은, 대량살상이 아닌 매일 같이 일어났다던 폭력의 절대다수는 수형자들에 의해 서로에게 저질러졌다는 이 책의 기억과 분석 - 다른 내용 외에도 - 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구조적인 이유로도 그랬겠지만, 인간성을 빼앗긴 자들의 발악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해석되는 않는 다양한 고찰을 제시하는 이 책은 너무도 솔직하게 불편한 면이 없지 않다. 아무래도 나찌가 지배한 유럽의 다른 지역들보다는 상황이 좋았던 이탈리아의 유대계인 레비의 경우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수용소로 보내졌던 만큼 좀더 다른 경험을 했을 것이고, 이에 따른 다른 기억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역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에 부합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한 시점에, 한 수용소에서 일어난 것을 남겼다는 점에서 레비가 말한 것들은 전쟁 내내 수용소에서 유대인들 또는 수형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의 샘플일 수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래 자신에게,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했던 탓일까, 독일의 전후세대와 직접적인 전쟁세대에게서 보여진 기억의 왜곡과 부정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 복잡한 속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이 제시한 나름대로의 이유에 완전히 설득되지 않는 건 그는 죽었고, 그를 죽게 만든 사건의 원흉들 - 책임자들 말고, 일반 대중으로서의 - 은 삶을 이어갔다는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외에도 악의 대중성, 악의 없이 행해지는 악, 매일의 악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중국의 현대소설은 확실한 신선함이 있다.  그간 읽어온 서구의 고전이나 인기소설과도 다르고 일본의 근대문학이나 소설과도 다른 풋풋함과 우스꽝스러움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뭔가 시골스러움을 보는데, 이건 물론 몇 권 채 읽지 않고 하는 말이니까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짤리고 우연한 기회에 사설 러브호텔을 운영하는 '사부님'의 이야기도, 불까기를 하고 나서 죽은 소를 둘러싼 이야기의 결말도, 무척 우습고, 은근히 체제에 대한 비판 같기도 하고, 그냥 골때리는 이야기로 치부되기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다.  위화나 모옌도 그렇고 다양한 중국작가들의 책이 계속 나오는 건 고무적이다.  이제까지 중국의 책이라고 하면 사서삼경이나 삼국지 같은 역사소설, 루쉰과 무협지 정도만 생각했는데, 얼마나 많은 좋은 작가들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책 여러 권을 읽어가면서 한 페이지 정도의 후기를 남겨 이를 모은 책이 있다면 이렇게 몇 권을 작심하고 다루는 책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앞서 읽은 '서서비행'과 함께 구했고,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부럽기 때문에 그렇게 글쓴이를 동경하면서, 하지만 주로는 하~ 어떻게 그런 일로 먹고 살지? 하면서 흥미있는 그의 돈키호테 이야기로, 가르강튀아, 걸리버 여행기, 그리고 전혀 모르는 다른 책들 몇 권을 소개 받았다.  덕분에 돈키호테를 해설한 책과 가르강튀아를 주문했거나 보관함에 담았다 (당분간 책주문을 정말로 자제해야 할만큼 많은 책을 약 한 달의 기간에 주문했고, 그 액수는...중소기업의 일반경력직 한 달 봉급...-_-).  글을 풀어나가는 솜씨도 좋고 흥미있는 책을 잘 골라서 이야기를 풀었지만, 조금은 익숙해짐이 필요한 또 하나의 풍이다.  장정일의 예전 글도 좋고, 로쟈님도 좋고, 마태우스님의 글도, 그 밖에 일일이 거론하자면 약 150-200권의 책을 이야기 해야할 다양한 '책'에 관한 다른 책들처럼 글쓴이의 '풍'도 익숙해질 것이다.  가끔 보이는 그의 시대비판이나 모 독서맨토에 대한 sarcasm에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는데, 누군가 이런 독서-성공학에 대한 비판서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한때 열심히 읽었고, 잘 받아들이면 좋은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역시 독서-성공학-자계서는 그 책을 쓴 사람이 성공하는 책이지 읽은 사람이 성공하는 책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사기(?)는 보다 더 심층적으로 분석되고 파헤쳐져야 한다.


원제가 따로 있는 이 책은 SM의 걸그룹 '소녀시대'가 등장하던 시기에 맞춰 '프라하의 소녀시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이 판본 이전의 이름이 reference되지 않는다.  어느새 소녀들은 처녀가 되었고 그들의 '소녀'시대는 이미 2세대, 3세대 혹은 4세대 아이돌들이 공장식 제조와 판매를 통해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요네하라 마리는 이미 고인이 된 일본의 작가인데, 공산당이던 아버지의 부임에 맞춰 동유럽에서 십대를 보낸 경험이 있다.  이 책은 그때의 추억과 함께 당시 '소녀시대'를 함께 누린 친구들을 나중에 성인이 되어 만난 후일담으로 엮어 낸 책이다.  어린 나이에도 나름대로는 어른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간 당시 어린 소녀들의 우정도, 이야기도, 또 일부는 변해버린 나중의 모습도, 중년이 된 나는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랬기에 열혈투사에서 쁘띠 부르조아의 모습으로 상류지향을 삶을 사는 한 친구도, 계속 투사로 남은 친구도 요네하라 마리의 씁쓸함은 차치하고라도, 만나면 반갑지 않았을까?  

(1) 가족과 함께 베네주엘라로 돌아간 호세의 가족이 모두 총살당했다는 소식 (호세는 그냥 아이였다), 그리고 (2) 보스니아 내전 당시 폭격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친구의 이야기에서 사상과 전쟁의 무서움을 새삼 느꼈다.  점점 안정이 사라지는 시대, 서구를 기준으로 큰 전쟁이 없은지도 60년이 넘은 지금, 어디선가, 언젠가 큰 전쟁이 일어나거나 변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에 가끔 남은 생을 걱정하곤 하는데, 생각해보면, 전쟁과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는 것이다.


마구잡이로 써내려가니 쉽다.  잠깐이지만 다른 이들이 잘 쓴 글을 읽지 않은 덕분일 수도 있겠다.  부러워하지 말고 그렇게 그냥 남기자.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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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4-1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부님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재미있겠습니다. 모옌의 작품은 하나도 읽은 게 없군요 ㅜㅜ

transient-guest 2016-04-12 09:16   좋아요 0 | URL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모옌의 노벨상 수상 전후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있었는데요, 과연 노벨상급의 작가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좋은 듯 합니다.ㅎㅎ 영화로 접한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라로 먼저 유명해졌다고도 하네요.

cyrus 2016-04-1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딱지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글을 많이 써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적어도 일 년에 100편 이상(마이리뷰, 페이퍼 수 모두 합산) 써야합니다. 2012년에는 제가 글 120편 정도 썼습니다. 전년에 비하면 적은 수인데 서재의 달인 딱지 받았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4-13 00:58   좋아요 0 | URL
방문자 숫자보다는 글을 올린 숫자가 중요한 것이군요. 그럼 좀더 열심히 써야겠네요.ㅎㅎㅎ `서재의 달인`타이틀 보다도 알라딘에서 보내주는 선물이...ㅎㅎ 이건 미국까지 보내주더라구요.. 연간 엄청난 구매를 알라딘을 통해서만 하니까, 저는 조금 물욕을 부려도 될 것 같습니다.ㅎ

Forgettable. 2016-04-14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쑤퉁의 책을 거의 전작을 읽었는데 그만큼 정말 재밌어요. 중국 현대소설 매력이 대단합니다. 이혼지침서, 마씨집안 자녀교육기 정말 재밌어요!

transient-guest 2016-04-14 06:10   좋아요 0 | URL
또다른 작가를 소개시켜 주시는군요. ㅎㅎ 보관함의 리스트가 줄어들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3-4월 사이에 정말 많은 책을 주문했거든요...둘 곳이 없어서..읽은 책은 사무실에서 빼서 부모님 댁에 가져다 놓을 생각입니다..ㅎㅎ 찾아봐야겠네요.
 

지난 번에 사이러스 (혹은 키루스)님의 글을 읽고 쓰다 말다 하면서 오늘까지 보관했던 글을 정리했습니다.


어제 사이러스님의 글을 읽고나서, 밤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오늘까지도 '헌책방'과 '중고책방'에 대하여, 그리고 서점에서 책을 파는 것 외에도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복합문화공간을 꾀하는 것,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지금의 중소규모서점들이 지향하게 된 모습에 대한 고찰...까지는 아니고.  그냥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서점에 대한 책, 책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같은 서점에 대한 것들고 꽤 많이 있기에 주로는 긍정적인 눈으로 '헌책방'의 '중고서점'화 내지는 업종다양화를 바라본 것 같다. 


그런데, 실상 좀더 행간을 짚어보면 이와 같은 '헌책방'의 '중고서점'화, 혹은 서점의 '탈서점'화나 복합문화공간지향성은 훨씬 더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 같다.  사이러스 (혹은 키루스)님의 글을 읽으면 몇 가지로 이들이 압축되는데 다음의 내용으로 정리해보았다.


1. '헌책방'의 '중고서점'화 혹은 지향성:


헌책방이란 말 대시 중고서점이란 말을 쓰는 것으 politically correct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몇 번인가 책이나 블로그에서 접하고 호의적으로 반응을 했었다.   헌책방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낡고 오래된 듯한, 아니 무엇보다 '헌책'이라는 표현보다는 같은 말이라도 '중고'책이라는 표현이 더 나은 것이라는 의견이 골자인데, 일견 말이 되는 듯 했다.  사실, 깊이 생각해보았다기 보다는 그저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책과 이를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접이 가장 기본적인 단어의 취사선택에서라도 개선한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상 보면 '헌책방'이라는 표현이 그리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중고'나 '헌'책이나 결국은 비슷한 의미인데, 굳이 '중고서점'이라는 표현을 좀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인정해야만 할 논리적인 스탠다드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일종의 말장난에 다름 아닌 것이난 생각도 든다.  굳이 헌책방이 중고서점으로 바뀌어 불려야 하는가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은데, 헌 책 보다는 중고 책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소규모 영세업자의 영역의 헌책방을 중고서점으로 바꾸어 부름에 따라 보다 대형화되고 조직화된 자본의 시장침투가 용이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2.  '중고서점'이 쓰고 있는 '헌책방'의 탈:


앞서 말했지만, 헌책방에서 오는 어감도 그렇고, 아무래도 헌책방은 소상공인의 영역이고, 보다 더 가벼운 주머니의 사람들이 좀더 좋은 가격에 책을 구하기 위해 second hand로 거래되는 책, 남이 보다 넘긴 책들을 찾는 공간이다.  규모에 있어서나 고객층에 있어서나 전통적으로 헌책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낮은 곳에 위치만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frequented되는 공간이라고 생각되고 마켓 자체도 그런 태생적 feature가 있다고 보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이것이 차별이나 다른 형태로 헌책방 업계를 얕잡아 볼 수 이유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실상이 그렇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출판과 유통이 모두 변한 책 마켓의 특성상 좀더 다른 의미, 다른 구조, 또는 다른 사용자들과 업계와 섞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전통적으로는 일종의 틈새마켓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서점업계와 유통구조가 인터넷을 만나고, 이후 다시 책읽는 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시대가 되어 전체적인 책시장 자체의 규모가 줄어들고, 마진의 pie가 줄어든 지금 슬그머니 이 영세시장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자본세력이 들어오면서 이들이 '중고서점'이라는 말로 '헌책방' 마켓에 들어온 것 같다.  이 역시 별 생각이 없이 그냥 깨끗한 헌책방이 생겨서 좋다는 정도로만 봤는데, 실상을 놓고 보면 이들이 파는 건 '헌책'이 아닌 말 그대로 '중고'새책인 듯 싶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깨끗한 책을 덜 주고 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헌책방에서 유통되는 건 이런 새 '중고'책보다는 새책시장과는 다른 별개의 마켓으로써, 사라지는 것들을 모아들이고 이를 되파는 등 보다 더 산발적이고 비조직화된, 서점마다 각각의 캐릭터와 주력분야 및 주인의 전문성을 갖춘 헌책방과 중고서점과는 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헌책방의 경우, 특히 오래 영업해온 서점은 주인의 전문성이나 종류의 특화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아가서 기업형 편의점의 잠식도 모자라서 포화상태에 이른 소상공마켓이 한때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서점운영은 한 가정이 중산층 수준의 삶, 설사 그보다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손 벌리고 기본임금과 격무에 시달리지 않고서도 도시근교의 삶을 보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중고서점'의 경우, 오너는 모두 회사로, 구성원은 모두 시급알바로 기본적인 책의 전문성보다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사의 재고를 recycle하는 수준 (조금 비약이 심하지만)이 아닌가 싶다.  책의 종류도 무엇도 모두 구조화되어 회사의 필요와 상품성에 의해 결정되는, 하지만 '헌책방'의 추억과 보다 더 현대적으로 자본적인 예쁜 장식이 이 현실을 포장하여, 우리 모두를 둔감하게 하는 것 같다.  책을 읽는 이라면 어느 정도의 깨인 마음과 머리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그런 이들까지도 이런 facade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3. 탈서점화, 또는 복합공간화

이건 조금 어렵다.  대형서점까지도 사라져가는 시대에 작은 개인서점이나 헌책방을 꾸려가려면 정말 많은 꼼수와 차별화가 필요한 건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마치 헌책방이나 개인서점이 가야할 미래의 길이라고만 보는 건, 그 칭찬일색의 평가만큼이나 불편하고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각종 안전망이나 시스템 수준의 보호가 사라진 현대의 헬조선에서 무엇이 과연 옳고 그른가를 논하는 것, 특히 먹고사는 문제를 기본으로 놓고 이야기 하는 경우, 무척 어려운 일이다.  정답은 없다고 결론이 나오면서도, 무엇인가 불편하고,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다.  나의 의견이 전부도 아니고 다 맞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부터, 아니 사실 이 글을 쓰던 그 날부터의 결심이지만, 나는 오늘부터 중고서점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용어에서 오는 negative한 또는 positive한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이 말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헌책방은 헌책방으로 부르는 건 내 자유이거니와, 이게 지금의 나에겐 최선의 저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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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1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헌책방` 대신에 `책방`으로 쓴 적이 있었어요. `헌책방` 용어에 사람의 손때가 묻은 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거든요. 그러다가 다시 예전 용어를 쓰고 있어요. 그러면 저는 `알라딘 중고서점`을 `알라딘 서점`으로 써야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4-13 00:5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때 쓰신 글을 보고 마구 쓰다가, 도통 결말이 나지 않았는데, 어제 다행스럽게도 조금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꼭 헌책방과 알라딘 중고를 구분지어 쓸 것입니다.
 

아우!!  누군가 행정업무를 좀 맡아주었으면....

직원이 생기는 건 연말 정도...지금 진행 중이고, 사람은 가볍게 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 바를 그대로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고집을 부린 결과, 좋은 사람을 쓰게 되었지만, 조금 힘에 부치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형편이 모호할 때 사람을 쓰게 되면 필연적으로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구조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다른 회사에서 일할 때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나 또한 그런 구조에서 오는 심경의 변화를 완전히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부분은 절대로 서둘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사무실의 업무가 늘어나고서 3년이 지난 지금은 가끔 법무에 방해가 될 정도의 행정업무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도 이렇게 free writing을 하면서, 책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건수가 되기도 하니, 사람이 사는게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다.


책이 나오는 속도가 점점 떨어져서 이젠 일년에 한 권이 나올까 말까 한 Vampire Hunter D의 23번째 이야기.  여전히 D는 돌아다니면서 귀족으로 불리는 흡혈귀들을 사냥하고 있다.  이번에는 귀족에게 피를 빨렸음에도 불구하고 흡혈귀로 변하지 않은 소녀가 이야기의 중심.  그간 흡혈귀로 변한 자신의 가족을 하나씩 처치하면서 그 원인을 제공한 귀족들을 찾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이 둘의 path가 만나고.  책 말미에 보면 이 소녀 또한 모든 귀족들의 성조인 Dracula의 실험작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역시 유일한 성공작은 D 하나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벰파이어를 주제로 한 이야기에서 종종 등장하는 Alucard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된 것이 부수적인 수입.  Alucard는 Dracula를 거꾸로 쓴 이름인데, 헬싱의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하고, 다른 흡혈귀 이야기에서도 차용된 것을 기억한다.  역시 진리는 단순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 케이스가 되겠다.  24권이 드디어 grand finale가 될 것 같은데,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아직 세 권이 더 남아 있는데, 몇 번이고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 전에도 쓰다만 글이 몇 개 더 남아있는데,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단순히 책만 그런 것이 아닌, 전반적인 슬럼프와 정체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쓰는 것도, 심지어는 읽는 것도... 당분간은 책주문을 조금 멈춰야지 싶은데, 전집 몇 권은 절판되기 전에 구하고 싶은 맘 때문에, 지금 엄청난 숫자의 책이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보관함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아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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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16-04-0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정업무때문에 본업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그럴 때는 힘이 많이 들지요... 그래도 사람을 함부로 쓰지 않고 ,쓰더라도 다 써버리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는 tran님을 존경합니다. 그런 보스밑에서 일하고 싶네요. 한국은 금요일 오후에요. 즐거운 금요일,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 :)

transient-guest 2016-04-09 02: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아직까지는 어떻게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ㅎㅎ 조금씩 능력에 맞춰 확장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과도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님께서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ㅎ

몬스터 2016-04-08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 아이쿠.....transient guest 님의 현 상황이 느껴지네요. ㅎㅎ 잘 되실겁니다

transient-guest 2016-04-09 03: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ㅎ 조금씩 해결해나가야지요. ㅎ 책읽기도 그렇게 다시 마중물을 부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