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인데, 색이 유치하게 화려한 본이 내가 가진 초기본이고 좀더 심플하게 디자인 된 옆의 것이 다음에 나온 본이다.  지금은 둘 다 절판되었고, 나 역시 이 시리즈는 중고로 구매해서 읽었다.

 

어제부터 조금 한가했어야 하는것을, 별로 영양가 없는 미팅때문에 토요일에도 사무실에 잠깐 나왔어야 했다.  그 덕분에, 주말이 짧아진 것을 President's Day 연휴로 살짝 땜질이 되어, 오늘은 본가에 돌아와서, 아파트에서 들고온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고 있다.  연초부터 한 동안 소설을, 그것도 현대소설을 위주로 책을 읽었더니 슬슬 조금 지겹기도 하고 - 같은 패턴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덧 아무리 잘 읽던 것도 조금 물리기 마련이다 - 해서, 비판적인 읽기랄까,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 그간 모아놓은 장정일의 독서후기를 꺼내어 놓았다. 

 

새삼 느끼지만, 참으로 많은 책을 무지막지하게 읽어 내려간 흔적이거니와, 비교적 세심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자기의 평과 느낌을 갈겨내려간 기록은 '독서일기' 일곱 권, '빌린책...' 두 권, 그리고 '공부' 한 권 이렇게 모여있다.  다뤄진 책만 해도 필경 천 권은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은 그 모든 것들의 시작인 93년도에 처음 나온 장정일의 첫 독후감 모음집인 셈.

 

그의 신랄한 비판이나 찬사를 받은 수 많은 책들 중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좀 신경쓰이게 한다.  단순히 내 독서가 좁다 넓다를 떠나 출판되고 나서 이십 년을 채 살아남지 못하는 책들이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상당히 많은, 장정일이 93년을 전후하여 읽은 책들 중, 90년대 초반에 나온 책들을 보면, 제목은 커녕 저자조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내 독서력의 한계도 분명하지만, 그 이상, 한 권의 책, 또는 하나의 작가가 timeless classic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사실, 책에 대한 생각을 쓰려고 여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오늘은, 이번에는.  예전에도 다른 곳에서 본 내용을 이 책에서 다시 보게 되면서 서재를 통해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보니, 그 전에 한번 페이퍼에 쓴 적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주변사람들과 이야기만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애시당초 페이퍼나 리뷰를 쓰기 시작한 것이 읽은 것을 덜 까먹기 위해서였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려운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소개하려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츠바이크의 '어떤 정치적 인간의 초상'의 후기를 보고 좀 짧게 고쳐 올린 것이다.  즉 내가 정리한 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요제프 푸셰라는 인간이 있었더랬다.  1759년에 낭트란 도시에서, 한 잡화상의 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수도원 부속학교의 교사로 전전하다가 "이런 저런 기만"으로 구민들을 속여 32세의 나이에 프랑스 혁명의 권력중추였던 국민회의의 대의원이 된다.  처음의 소속은 온건파였지만, 로베스 피에르의 급진파가 권력을 잡자, 바로 (1) 급진파로 변신한다.  그 후, 로베스 피에르의 실각 후에는 (2) 5인 집정내각을 조종하여 (3) 나폴레옹에게 권력을 내준다.  나폴레옹이 제정을 부활시킨 후 푸셰는 (4) 오토라토 공작에 봉해지는데,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연패하자, (5) 다시 나폴레옹을 실각시키는 음모로 그를 밀어낸다.  그 후 (6) 과도정부의 수반이 되었다가, 다시 루이 18세 (푸셰가 포함된 400인 투표로 목이 잘린 루이 16세의 동생) 에게 프랑스를 넘긴다.  

 

장정일은 이 책의 후기를 쓰면서 푸셰만큼이나 다양한 정치행보와 변신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늘리고 종국에는 갓 싹이 트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밟고 18년간의 왕정을 이어간 다카키 마사오의 커리어를 오버랩 시킨다.  이 책을 쓰던 93년 당시는 이인제가 김영삼 정부의 첫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인데, 88년에 통일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데뷔한 그의 정치적 행보와 변신이 원조격인 푸셰를 능가하게 될 줄은 장정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로, 지금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쓴다면, 장정일은, 아니 나라면, 마사오 보다는 이인제의 - 심지어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의 정치력 - 변화무쌍함이 푸셰의 그것과 더 오버랩 시키게 될 것이다. (이 책도 품절이다. 아무튼 책이 마구 나왔다가 빨리 사라지는 한국의 출판문화는 내 큰 불만의 대상이다) 

 

이인제의 연표는 (1) 통일민주당, (2) 민주자유당, (3) 신한국당, (4) 국민신당, (5) 새정치국민회의, (6) 새천년민주당, (7) 자유민주연합, (8) 국민중심당, (9) 새천년민주당, (10) 통합민주당, (11) 무소속, (12) 자유선진당, (13) 선진통일당, 그리고 (14) 새누리당인데, 그야말로 돌고 돌아 제자리라는 말이 딱 이인제를 두고 한 말 같다.  이놈의 지분정치...

 

언제나 '승자'의 편에 있지는 않았고, 시대를 쫓아가는 기민함도 떨어지지만, 이인제를 비롯한 이런 '정치적 인간'들에게는 '이념'이라는 것이 없다고 츠바이크는 말한다.  매우 공감하게 되는 촌철살인의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을때 여러 가지 이유로 밑줄을 긋지 못한 부분들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표시해 놓으리라 했건만.  어떻게, 지난번과 똑같은 부분을 똑같은 이유로 놓치게 되는 것일까?  예컨대, 자 혹은 자를 대체할 책갈피가 없다던가, 화장실 변기 혹은 gym의 자전거에 앉아있을때에만, 밑줄 긋고 싶은 페이지와 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딱, 그때와 같은 그 부분들, 한 두 개도 아닌 그 부분들을 읽을 때,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렇게 무엇인가 모자랐더랬다.  여전히 줄을 긋지 못하고 보내버린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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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2-19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셰 저 사나이 결국 권력 줄타기하다가 마지막에 줄에서 떨어지죠.워낙 적이 많아서 늘 견제당하기도 했고요.술수로 흥한 자 술수로 망하죠.

transient-guest 2013-02-19 23: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지금 한국에서의 이야기는 아닌 듯 하네요. 계속 생명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요...
 

명박군의 self 훈장수여질: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하면서 자기자신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해왔다는 건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관행처럼 이어지던, 그리 크게 문제삼지 않던 것을 역대 최악이라고 당당히 평가받고 있는 명박군이기에 뉴스거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이런 관행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가뜩이나 훈장이나 상을 남발하여 적당히 오래 있고, 권력상층부에 붙어먹다보면 하나씩은 받게 되는게 한국의 훈장인데, 이렇게 자기에게 직접 수여하는 건 매우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무튼, 후계자를 잘 선정한 덕에 큰 무리는 없이 훈장을 타게 되겠지만, 참으로 길가던 소가 웃다 거꾸러질 노릇이다.

 

5세훈의 최근 발언 re: 세빛둥둥섬:

일단 이 정체불명의 물건이 뭐에 쓰려고 만든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만든 사람도 모를 것이다.  다만, 5세훈이 그의 롤모델인 명박군의 성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일종의 모방을 통한 청출어람의 시도였다고만 생각될 뿐.  그러나, 창조가 없는 모방은 단순한 도용으로 끝난다는 것을 샘플로 보여주기라도 한 듯, 현재로써는 이런 삽질이 쌓이고 쌓여, 5세훈은 현재 권력의 중추는 커녕, 뒷날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일종의 야인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내 생각에는 기왕에 아들내미가 시원치 않은 "soon to be former 대통령"께서 입양하여 충실한 후계자로 삼으면 어떨까?  종교는 다르지만, 어짜피 이런 인간들에게 그런게 문제가 될 리는 없을테니까.  어른은 입양할 수 없지만, 5세 아동은 가능하다.  잘 가르치면 시원찮은 아들내미의 집사정도는 어떻게 땜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법원 판결 re: 노회찬 의원:

일찌감치 관료화한 사법부와 검찰이 어떻게 기생하는지를 보여주는 paradigm으로써의 가치가 높은 판결이라고 하겠다.  나아가서 시대가 회귀하여 마사오나 대머리 시절에나 볼 수 있던 사법테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시범케이스기까지 하다.  명박군이 다시 발굴하여 그네꼬가 발전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분야.  이렇게 보면, 한국의 사법부는 법을 죽이는 (죽을 사) 부서라고 보이는데, 검찰과 사법부가 한통속이 되니 그 곰삭은 맛과 구린 향이 진동을 하는구나!  도대체 fact, 그것도 국회의원이 국가기관이 조사한 부정부패검사명단을 공개했다고 명예훼손이 되는 나라는 적어도 G-20에서는 한국밖에 없을 것 같다.  진정한 국격 업그레이드를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모 교회 목사님의 논문표절:

사실이라면 (교단인가 교회의 내부감사에서 밝혀졌다고 하니까 사실이겠지?), 일단 학위부터 반납하고 자숙하실 일이다.  교인들이야 그간 사역의 공이 어쩌구 저쩌구 하겠지만,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최소한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성직자로서뿐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체육계와 함께 대표적인 학력 뻥튀기 및 매수행위가 심각한 분야.  또한 체육계와 함께 사실 박사학력이 그리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하나씩은 꼭 가져야만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고 보는데.  아마도 8-90년대 체육계/교계분야의 출판물을 찾아보면 Pacific Western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가 가장 많을 듯.  (아시다시피 Pacific Western대학은 거의 명사화되다시피 한, 그리고 일제단속에 걸려서 없어진 학위공장이다.  지금은 다른 몇 군데가 또 비슷한 장사를 하는 것으로 아는데, 거의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안다). 

 

처벌:

한국의 형법은 상대적으로 처벌이 죄에 비해 약하다고 본다.  공안시절의 영향으로 국민정서가 그런 탓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공안정국이었던 지난 5년을 보면, 형법이 가장 무겁게 처벌한 케이스들은 모두 (1) 서민, (2) 야당인사, (3) 노조에 관련된 일들이고 가장 무겁게 처벌되었어야 할 (1) 살인, (2) 강간, (3) 공무원/정치인/기업인 부정부패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리된 것을 볼 수 있다.  죄를 지어도 합의만 잘하면, 권력의 비호를 받으면, 돈이 많으면, 등등에 의해 처벌을 받지 않거나 낮은 형량을 받게 되는데, 이런 류의 범죄가 근절이 될 까닭이 없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오원춘, 조두순, 은진수, 이명박의 일가친척들, 재벌황제들 등등등...일단 민사와 형사를 분리하여 민사합의와는 별도로 형사처벌이 되도록 법이 개정되고, 이와 함께 사법부와 검찰의 탈관료화, 탈엘리트화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허지웅 기자의 말마따나 그냥 그런 씨부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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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저자는 벌써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정칼럼을 쓰고 있는, 이제는 40대가 되어버린 글쟁이다.  하루키 전작을 위해 하루키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에 연관된 모든 책들을 읽어내리라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이를 시작한지 어언 일년, 이런 책이 나에게로 왔다. 

 

내가 하루키를 처음 접한 것은 20대 후반의 일이고, 본격적으로 읽고 빼져들어간 것은 30대를 넘어서이니, 나의 하루키 감성은 하루키가 처음 작가로서 글쓰기를 하던 시절과 겹치는 셈인데, 다수의 한국 reader들과는 확실히 좀 다르다.  하루키는 8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유명세를 이어이고 있는 작가이니, 초기에 그를 읽은 한국의 독자들은 아마도 나와는 많이 다른 감성으로 그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저자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처음 하루키를 접했는데, 이때는 1987년, 올림픽을 하루 앞두고 발악하던 전씨와 민주화를 열망하던 온 국민이 박터지게 싸우던, 그리고 그 결과 6.10 항쟁을 거쳐 (조작된) 민주화 이양을 위한 노태우의 6.29 선언이 있었던 바로 그 해이다.  아마도 내가 읽었더라면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을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어떻게 보면 매우 시기적절하게 손에 들은 셈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이 때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학교를 다녔다고 하니 아마도 저자가 느낀 하루키는 내가 추측하는 한국땅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을 것 같다.

 

어쨌든 고등학교 2학년으로서 처음 하루키를 접한 저자는 그 뒤로 그의 작품을 통해 온갖 인생의 슬픔과 혼란에 대한 '힐링'을 받았기에, 저자에게 있어 하루키는 그야말로 '북극성'같은 작가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세월의 감성과 감사의 결과물인 것이다.

 

하루키를 읽어온 사람이라면 많이 익숙한 하루키의 일대기를 위주로 그의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이 마치 하루키가 사랑해마지않는, CD나 MP3가 아닌 턴테이블을 타고 흐르는 재즈의 선율처럼 잔잔하게 이어진다.  작가와 작품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작가와 작품을 어느새 닮게 되는 것일까?  저자의 글에서 하루키와 그의 작품의 톤을 느낀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일종의 하루키 입문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이 책에서는 그간 저자가 살아온 인생의 에피소드가 하루키의 작품과 함께 녹아들어가 더할나위 없는 감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내가 살짝 속아넘어갔던 하루키와 저자의 대담 - 가상대담이다 - 은 읽는내내 너무 부러웠다, 가상대담임을 알게 되기 전까지...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봄직하다.  이미 쓰여진 책이니, 같은 책을 엮을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상상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맛과 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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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한국신문을 따로 구독하지 않기에 (사실 별로 읽을게 없다) 포탈을 통해 이런 저런 한국의 뉴스를 접하게 되는데, 이들 중에서 최근 2-3일간 나의 눈길을 끄는 기사를 보았다.  탤런트 이영애를 내세운 모 교수의 비빔밥 광고가 뉴욕타임즈에 전면으로 계재된 것이다.  세월도 비껴간 이영애의 단아한 한복 맵시를 내세우고 대장금의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비빔밥으로 추정되는 사진과 함께 예쁘게 올라간 사진과 함께 올라간 메시지는 누가 보아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임이 분명하다.

 

영어 메시지, 미국의 신문이라는 점 외에도, 이 광고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한 이유는 드라마 대장금을 실존했던 역사의 이야기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라면 그렇게 노골적으로 잘못된 fact를 내세우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로써, 많은 나라에 수출되어 한국의 음식을 - 정확한 현대의 음식이 아닐지라로 - 소개했다는 유명도와 impact를 생각할 때 당연한, 아니 매우 좋은 아이디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commercially anyway...

 

하지만, 이런 것들이 쌓이면,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한국의 역사적인 사실들은 왜곡되고, 이 왜곡들이 확대되어 다시 생산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실질적인 역사와는 관련이 별로 없는 소설적인 이야기가 한국의 역사로 둔갑되고,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떠나, 겉에서 보이는 한국은 현실과 동떨어진, 그래서 종종 진지하게 취급될 수 없는 역사이야기를 가진 나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전략적으로 이를 잘 이용하면 일본이나 중국처럼 자국 문화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날조된 얌전한, 그러나 용감한 벚꽃과 사무라이의 문화를 가졌다는 일본, 중국의 소림사 같은 것은 꾸준한 브랜드 마켓팅의 결과물에 다름 아닌 것이라고 보는데, 이런 부분에서 한국은 상당한 후발주자에 속하니만큼, 본 '비빔밥' 광고같은 컨셉은 물론 장기적으로 잘 관리되면, 그리고 컨텐츠가 뒷받침 된다면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찝찝함은 남는다.  

 

태권도가 세계로 수출될 때, 이는 가라테를 원류로 하여 만들어졌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무술임을 선전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도서관의 책에서 확인한 바이지만, 다수의 한국 사범들의 태권도 저작들에 이런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즉, 삼국시대에 우리 국가들은 상당부분 가난하여, 기마군단에 취약했기에 기마병을 상대하기 위해 특별히 수 많은 '날아차기'들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뒤돌려날아차기나 이단옆차기 같은 공격법이 말을 탄 상대를 가격하여 낙마시키고 맨손으로 제압하기 위한 전법에서 유래했다는 이 말은, 이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외국인의 손으로 쓰인 무술소개서적들에서 그대로 차용되었고, 지금도 외국의 태권도인들 중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비단 태권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이다.  기실, 다수의 동양무예들이 이런식의 날조된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로 내세우기를 즐긴다.

 

어느 것이 먼저일까?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의 위상이 낮았던 60-80년대까지는 분명히 이런 부분에서 이득을 보았을 것이니 더욱 그렇다.  또한 상대적으로 외국에 덜 소개된 한국의 상고시대 역사 - 한국 내에서조차 논란이 끊이지 않는 - 를 외국에 소개할 때에는 분명히 이런 과장도 필요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보면, 신화와 역사를 교묘히 섞고, 긍정적인 부분을 극대화하여 외국에 소개한 결과, 그들의 역사는 우리 역사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고 깊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나, 이번의 비빔밥 광고는 그 효과를 떠나 이제 임기가 채 열흘도 남지 않았다는 - 그러나 끊임없이 최후의 하루까지 사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 그 놈의 마누라의 돈지랄과 오버랩이 된다.  비싼 실리콘 밸리의 집 값으로 대여섯채, 조금 더 싼 곳의 집 값으로는 필경 열채가 넘는 집을 구매할 수 있는 국민의 혈세를 아낌없이 날려버린 - 물론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라 본질은 변하지 않은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추정되는 - 그 돈지랄 말이다.  (광고가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놈의 뻘짓과 악행 때문에 아무래도 모 교수의 광고를 다소 삐딱하게 보게 된 것 같다.  아무튼 쉽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하기는 어려운 감이 있는 문제이고, 많은 분들이 함께 장기적으로 고민해 볼만한 이슈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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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2-15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옛 역사 자료는 일본에 있다 하는데,
가만히 보면, 한국 옛 역사 자료가 일본 어디에 있는 줄 뻔히 안다면서
제대로 살피거나 파헤치거나 다루지 않는 모습을 보면,
역사학자나 정치가나 권력자는 서로서로
무슨 꿍꿍이가 있을는지 몰라요.

따지고 보면, 한국 무술은 '태권도' 아닌 '태껸'이겠지요.
한국 무술은 중국 쿵후와 마찬가지로
'딱딱한 틀'이나 '품새'가 따로 없거든요.

transient-guest 2013-02-15 23:42   좋아요 0 | URL
적어도 강단의 '주류'에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는 듯 합니다. 한국 역사에 대해 기술하려면 이제는 중국의 눈치까지 봐야할 지경이잖아요...
한국무술임이 확실히 확인되는 것은 태껸이고, 지금 전통무술을 표방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현대의 창작물이죠. 태권도의 창작이나 통합배경은 최홍희씨가 자서전에서 이미 밝힌 바 있지요..
 

써놓고 나니, 제목이 조금 우습다.  마치 무엇인가 있어보이려는, 그러나 너무도 평범한, 그러니까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 아는 제목이다.  그저, 그간 읽은 책들을 몇 개 엮어서 페이퍼에 남기려는 것인데 매우 자주 쓰는 '간략한'으로 시작되는 제목보다, 오늘은 조금 다른 제목을 생각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페이퍼의 제목을 정하는 것은, 리뷰의 제목을 생각해내는 것보다는 쉽다.  책 한 권을, 그 책에 대한 느낌 또는 내용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글제목을 생각해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리뷰위주로 (사실 페이퍼를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서) 글을 남기던 것이, 이제는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글꼭지를 정하는 것도 쉽다는 편리함에, 페이퍼를 더 자주 꾸미게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써내려 갔지만, 결국, 이것은 또다른 '간략한' 리뷰의 모음이다. 

 

 

 

 

 

 

 

 

 

 

 

 

 

 

이야기는 빌 브라이슨이라는, 아이오와 주의 데모인이라는 시골 출신의 미국 글쟁이가 20년에 가까운 영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뉴햄프셔주의 하노버라는 곳에 정착을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대략 1996년경의 이야기인데, 책으로는 1999년에 엮어져 나왔다. 

 

사실 이 걸출한 글쟁이는 그의 위트있는 입담과 넓은 지식으로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다수의 책이 '발칙한' 또는 '빌 브라이슨의'으로 시작되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고,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의 교포사회에서도 책을 좀 읽었다거나 하이킹/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은 한번씩은 읽었음직한 작가인데, 내가 그를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그리고 이형렬/한윤경의 팟캐스트에서 다루어지던 그를 기억해서 최근의 중고구매때 몇 권을 찾아낸 것이다.  이 사람.  아마보 대부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무지하게 웃긴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미국의 삼대 내지는 오대에 들어가는 매우 유명한 하이킹 트레일이다.  생긴지는 한 백년은 족히 넘은 것 같고, 지나는 구간은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이어지는 3,360 km에 달한다.  시설이라고는 중간에 나오는 그야말로 기둥에 지붕을 얹은 정도의 넓은 합숙공간, 그리고 간혹 보급품을 사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의 산장이 전부인데, 이곳을 완주하는데에는 약 반년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에서도 등장하는 어릴적 친구 - 사고뭉치 - 와 함께한 그의 여행은 트레일의 약 40%를 커버하는데 그쳤지만, 그 와중에 자연과 인간, 개발, 보전, 안전, 동물, 등등...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트레일을 건너면서 느낀 그의 생각, 그리고 친구와 함께한 재미있은 에피소드등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고, 가끔은 살짝 서글픈 감성을 자아낸다. 

 

예전부터 백두대간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백두대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한 트레일이 여기에, 존 뮤어 트레일과 오레곤 트레일과 함께 (서부) 존재하는 것을 보니, 일단 동네의 뒷산이나 파크부터 확실하게 정복하고 꿈꾸어도 되겠지 싶다.

 

옥의 티라면, 내가 읽은 버전이 예전의 판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번역이 좀 별로였다는 점이다.  군데군데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눈에 거슬렸고, 직역과 의역을 일정한 틀없이 오가는 부분도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번역을 한 홍은택이란 분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예전에 읽은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쓴 사람과 동일한 분인듯.  번역을 못했다기보다 상업적인 번역이라면 조금 더 신경써서 번역하고 수정했어야한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2008년에 새로 나온 개정판은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정이현 작가의 책은 언제 보아도, 남성의 과점과는 확실히 다른, 여성의 관점에서 다뤄지는 성, 사회, 사랑, 직장, 결혼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새로운 perspective를 준다.  물론, 너무도 여성의 눈으로 비춰진 사회상이 때로는 낯설기도 하고, 너무 순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편들을 모아놓은 두 책의 이야기들은 다른 책에서 다룬 단편들과 겹치는 것들도 조금은 있는 듯.  

 

뭐랄까, 서울 그리고 여자/부부라는 주제를 마치 두부나 고기를 칼로 썰어내면 나오는 여러 단면의 모습처럼 보여주는 그의 단편들은 2000년대의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를 황폐화된 사회상이라고 하겠고, 혹자는 썪어가는 물에서도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나름대로의 적응이라고 하겠지만.  때로는 raw하고, 때로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자학적인 비판같아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해도, 읽는 사람 나름대로의 관점과 경험에 비추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흑임자 김중혁 작가의 단편 모음집인데, 악기나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았다.  김중혁 작가는 문단에 데뷔하기 전에 매우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는데, 음악매장 주인, 여러 가지 잡지들의 기자 etc., 이런 경험들, 특히 음악/악기관련의 일에서 나온 발상을 단편으로 구현한 것 같다. 

 

작가 본인이 늘 이야기하듯이, 글에서 꼭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이는 김영하 작가도 하는 말인데, 읽는 사람으로써는 그리 가까이 와 닿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를 위한 책은 존재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싶은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이번 작품집 역시,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특이한 주제를 특이하게 엮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느껴지는 것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그러나, 이미 흑임자로서 얻어진 명성(?) 내지는 그의 목소리에 익숙해진 만큼의 가까움 때문일까, 특별히 탓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김중혁 작가는 그의 작품보다도 본인 자신이 더 기괴(?)하게 보일때가 있는데, 농담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흑임자 버전의 그와 히키코모리 같다는 글을 쓰는 작가 버전의 두 가지 character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딱 한번, '빨책'에서 실시간으로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인 적이 있는데, 목소리의 톤부터 달라지는 것이 참으로 엽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읽은, 그리고 재미있게 보았다는 말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을 다 읽고 나면, 김중혁 작가라는 character 그 자체와 함께 버무려 무엇인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기회가 되면, 다른 문제작(?)들을 구해서 이어가야 할 것 같다.

 

페이퍼를 다 쓰고 나니, 글이 매우 길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빌 브라이슨은 지금 읽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 보고서 따로 모아서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쩌랴, 이미 써버린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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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2-14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읽으셨으면 다음에 그 작가들 이야기 또 써 주셔요~

transient-guest 2013-02-14 09:33   좋아요 0 | URL
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