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유는 없다.  이 책을 오랫만에 다시 뽑아 든 것은 말 그대로 '즐겁게 살고 싶다'는 제목에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2012년 하루키로 시작해서 하루키로 끝난 한 해, 정말이지 징하게 하루키의 책을 읽고 때늦은 그의 팬을 자처했었다.  그 후 작년에 나온 '색채가...'를 읽은 것과 다른 이름으로 재발매된 몇 권의 에세이집을 읽은 것 외에는 그의 책을 읽지는 않았다.  뭐랄까.  한국에서는 하루키가 너무 메이저가 되어 90년대 그가 처음으로 한국의 독자들을 열광시키던 그 시기의 느낌이 없어졌다고나 할까.  역시 하루키의 책은 그 당시의 책, 그러니까 80년대에 쓰인 책들이 더 재미있고 정감이 어린다.  묘한 아날로그의 감성과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련한 향수라고 할까?  물론 우리에게 80년대는 전혀 다르게 기억되겠지만.


4개월이 채 못되는 금년, 업무는 작년 한 해에 걸쳐 발생한 양보다 더 많아졌다.  새끼 변호사로 일하면서 워낙 모든 처리를 도맡아 했던터라 일은 그런대로 어렵지 않게 하고 있는데, 행정적인 업무가 느끼기로는 작년의 4배는 넘어선 듯 하다.  이대로 가면 나도 회사를 키우고 직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방에 숨어 지내게 될 날이 머지 않은 듯 하다.  한국의 살인적인 업무시간과 강도는 차치하고라도 당장 다른 로펌의 일중독자들이 보면 헛웃음만 나올 소리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보니 이 책의 제목이 눈에 꽂혔던 모양이다.  예전에 여러 번 읽은게 분명한데, 이번에 읽으니 색다르게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책은 역시 이렇게 모아두고 꺼내어 보는 맛이 각별하다.  책을 정리해서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처분하는 것은 나에게는 무리일듯.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지 않는 원칙아닌 버릇과 함께 지켜지는 나만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96년에 나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이 책의 내용을 새삼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이렇게 지치는 한 주를 보내는 나에게 잠깐이나마 휴식을 주었다는 점에 감사할 뿐이다.


9-11과 이라크 침공 전까지만 해도 연간 2-3억대 매출이던 블랙워터는 전쟁 후 1년만에 2-3천억대 회사가 된다.  블랙워터 뿐 아니라 군산복합체로 상징되는 미국의 군사산업은 이제 병참과 무기생산의 수익구조를 넘어 전쟁 그 자체를 민영화하여 수익모델로 만들어 버렸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6년, 일례로, 이라크에 주둔하던 정규군과 용병의 비율이 1대 1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이런 류의 회사들은 전통적으로 강한 공화당과 수구세력을 지지하면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의 아젠다를 고수하는 정치행태를 보여 왔는데, 그런 조직이 돈과 무기 및 고도로 훈련된 사병조직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음으로 양으로 정계의 막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상식적으로 합리적인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잃어버린 10년이 확실시 되는, 이명박의 당선과 함께 시작된 과거로의 회귀나, 나찌의 행보를 그대로 빼어닮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지역적으로 조장되는 인종청소의 초기단계를 볼 때, 이런 pseudo-크리스찬 용병회사의 존재는 민주주의와 합리적인 시민사회에 있어 큰 위협이 된다.  앞서에도 말한 바 있지만 강정마을에, 한국의 통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런 용병회사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미국 정부, 아니 그들을 조종하는 군산복합체의 힘 앞에 한국 정부는 너무도 무력하기에 걱정이 된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세월호가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좌초하고 말도 안되는 초기대응과 관련자들의 태만으로 아마도 이 정부들어 최고의 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창 피어날 생명들이 그렇게 사그러져갈 때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선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태만과 실수는 엄중한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섣부른 마녀사냥은 경계하도록 하자.  깨인 그대들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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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조성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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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보통 특별한 due date이 있는 때가 아닌 이상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주중에는 아무리 맘이 급해서 이리 저리 뛰지만 금요일이 되면 내 맘도 고객들의 맘도 가라앉는 것 같다.  물론 이제 3년 간 내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생긴 전화상담의 노하우도 무시할 수가 없다.  끊어내는 방법을 더 익혔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데, 어쨌든 바쁜 일상에서 이렇게 하루 정도 쉬면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좋다.  덕분에 점심 때 운동을 할 수 있었는데, 날이 더워진 덕분에 흠뻑 땀에 젖은 것을 조금 말리는 정도로 하고 들어와서 마저 책을 다 읽고 간간히 들어오는 메일에 답변을 적어 보내주었다.  


러시아 문학, 나아가서 러시아의 지성사는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한번 정도는 관심을 갖게 되는 분야라고 본다.  그런데 그 역사적인 특성과 지리적인 특이점 이상 그 계보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나오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시대적인 배경에 함께 붙여 해석하는 것, 나아가서 이를 자신의 삶이나 세상에 대입하여 비교분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강의로도 들었고, 공부도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하여, 러시아 문학은 어렵다.  어린 시절에 재미로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접한 것이 아니라 공부의 하나로써 접한 러시아 문학과 인텔리겐챠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계속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게 한다.  


그러다가 최근에 나온 로쟈의 책을 통해 조금 더 이에 다가갈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  푸슈킨으로 시작해서 체호프로 끝나는 계보파악과 주요작품을 통한 역사적, 철학적 혹은 문학적인 고찰은 강의노트를 책으로 꾸린 형태에 맞게 쉽게 잘 들어온다.  그전에 읽은 작품들도 있고, 읽으려고 하는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일단 간략한 배경설명과 함께 무엇을 찾아볼 것인가에 대한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준 느낌이다.  일견 지루할 수도 있었을 내용과 구성을 강의 특유의 lively한 어조와 풀이로 잘 잡아낸 것 같다.  다시 러시아 문학을 향해 나갈 힘을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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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4-12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러시아 문학 등 해외문학에 대해 어느 정도 배우나요?

transient-guest 2014-04-13 06:00   좋아요 0 | URL
중고등학교 때에는 일반적으로 자국문학을 많이 하는데, 학교나 과목에 따라 고전문학도 배웁니다. 특히 비싸고 등급이 놓은 사립학교에서는 매우 일찍부터 인문사회 전반에 대한 교육과정이 특화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 고등학교 때에는 호밀밭의 파수꾼, 스타인벡, 앵무새 죽이기 등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4-04-13 17:22   좋아요 0 | URL
좋은 사립학교에서는 유럽에서 하는 교육 비슷하게 하는군요.

transient-guest 2014-04-13 23:22   좋아요 0 | URL
결국 이공계를 중시하면서도 엘리트교육은 인문사회교육으로 기초를 닦고 기본교양을 쌓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 같아요. 최근에 유행한 독서-자기계발서 계열의 책 몇 권이 이 부분을 많이 이야기 했지요.ㅣ
 

한주 내내 일에 시달리다가 (기쁜 일이다) 오늘 오후에는 드디어 모든 것을 던져놓고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식히고 있다.  그래도 질적인 면이나 속도에서 모두들 만족해주니 고마울 다름이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다가 레르몬토프라는 러시아 문인의 시를 보았다.  즉석에서 흥이 돋아 마치 TV드라마 '명동백작'에서의 박인환처럼 혼자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역시 시는 그렇게, 듣는 사람이 없어도 소리내어 읽어야 제맛인 듯, 제 멋대로 취해버렸다.  


나 홀로 길을 나선다.

안개 속으로 자갈길이 빛나고

밤은 고요하다.  황야는 신에게 귀 기울이고

별들은 별들과 속삭인다.


하늘은 장중하고 아름답구나!

대지는 푸른빛 속에 잠들고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아프고 힘들게 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기다리는 걸까?  무엇을 후회해야 하는 걸까?


이미 나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나에게 과거는 전혀 후회스럽지 않다.

나는 자유와 평온을 찾고 있다!

나는 모든 걸 잊고 잠들고 싶다!


하지만 무덤 속의 차가운 잠이 아니라,

영원히 그렇게 잠들었으면......

생명의 힘이 가슴속에서 조곤조곤 잠들어

숨 쉴 때마다 잠들어 가슴이 부풀어 오르게


밤새도록 하루 종일 나의 귀를 즐겁게 해주며,

달콤란 목소리가 나에게 사랑을 노래하고,

내 위로는 영원히 푸르른,

울창한 참나무가 몸을 숙여 수군거렸으면.


[나 홀로 길을 나선다]라는 시라고 하는데, 푸슈킨 다음으로 이 책에서 소개되는 걸 보면 익히 알려진 톨스토이나 도스토엡스키보다는 앞선 사람인데, 덜 알려진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영웅'이 유명하다는데 제목만 언뜻 기억이 나는 정도.  물론 이는 내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레르몬토프는 많이 유명해지기 전에 결투로 일찍 죽었다고 하며 장례식 때에도 몇 사람 모이지 않았다고 하니 이래저래 미안해진다.


보통은 문학과 시를 청춘의 시기에 접하는데 나는 그 시기를 역사소설로 보냈고 문학은 20대 중반에 시는 이제와서야 조금 배워가고 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는 분명 더 어려지는 것 같다.  oh well...


곧 마무리하고 집에 가다가 운동으로 묵은 피로를 말끔히 씻고 경건한 저녁을 맞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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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4-1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명동백작! 어쩐지 상상이 가는걸요 ㅋㅋ 좋은 시이고, 유쾌한 감상이네요. 저도 시집이랑은 거리가 멀지만 요렇게 간간히 (우연히) 만나는 시들은 참 좋아합니다. ^^

transient-guest 2014-04-1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읽어보니 좋아서 한번 소리내어 읽어봤지요. 소설이나 산문보다 어려운게 시라고 하네요. 이렇게 조금씩 들어가봅니다
 

언제나처럼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조금씩 읽고 있다.  아직까지 다 읽은 녀석은 없지만, 오늘 아마존에서 주문한 몇 권과 함께 썰을 풀어본다.

 

영문으로 구해서 읽고 있는 이 책은 Bush와 니오콘의 전쟁민영화를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한 용병업계를 특히 부시전쟁 최대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는 Blackwater라는 회사의 비약적인 성장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살펴본다.  내가 구한 판본은 The George Polk Award를 수상한 후에 다시 업데이트해서 나온 것인데 BN에서 7불 정도에 구했다.  한국어 버전은 D/C를 해서 2만원 정도인데 드물게 미국에서 더 싼 값에 새책을 산 것이다.

 

부시전쟁의 억지나 문제점, 네오콘, 민영화 등 수많은 문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전쟁민영화의 관점에서의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데, 이게 비단 미국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Blackwater의 비즈니스 모델을 삼성 에스원에서 도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니 늘 국지전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정규군의 교전수칙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회사소속 용병단이 치안을 맡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강정마을에서 시위를 막는 조직이 경찰이나 미군이 아닌 Blackwater소속 용병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 책을 다 읽어야 결론을 짓겠지만, 지금 읽은 내용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다.  

 

이 책이 내 페이퍼와 리뷰에 등장한 지도 어언 3년.  지금까지 필경 3-4번 이상은 무엇인가의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 책은 진행형이다. 

 

잠들기 전 틈틈히 읽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예전에 읽었던 부분만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거북이는 이 책을 읽는 나를 볼 때 떠오르는 동물이다.  그나마 끈기있게 꾸준히 읽어나가면 좋겠지만, 이런 저런 일과 다른 책들에 흥미를 빼앗기는 바람에 늘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덮곤한다.

 

게다가 다 읽고 난 후에 과연 책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서 더욱 거시기하다.

 

History Channel이나 Science 또는 National Geographics Channel에서 나온 것으로 더욱 그 얼굴이 친숙한 미치오 가쿠 박사의 새 책이다.  The Big Bang Theory의 셸든처럼 이론물리학자인 그가 바라본 마음과 정신탐구, 그러니까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인데, 앞서의 책을 보면서 조금씩 읽어보고 있다. 

 

아직까지 도입부를 조금 넘어간 정도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어렵겠지만, 가쿠박사는 어려운 과학을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게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는 재주가 탁월한데, 말을 참 재미있게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에 평행우주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 사람의 책은 일종의 과학교양서적으로 모두 읽어볼만 하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마따나 과거 인문사회나 언어학이 교양인의 상식이었다면 현대의 교양상식은 자연과학일 수도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론물리학자가 모두 다 셸든 같았다면 참 모두 고생하고들 있을텐데, 가쿠박사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살짝 든다.

 

끝으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는, 어제 시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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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4-04-0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왕성하게 책 읽고 계시군요. 잘 지내셨나요? ^^

transient-guest 2014-04-10 00:59   좋아요 0 | URL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책읽기가 버거울 때도 있을 정도니 저야 좋죠.ㅎㅎ 벌써 사무실 연지 3년째가 됩니다. 이 계통에서 일한지도 8년째네요. 잘 지내시죠?ㅎ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이 더 있다.  리뷰를 써본다고 하면서 그냥 잊고 지나갔는데, 그 기억조차도 믿지 못하기에 다른 창으로 서재를 띄우고 확인해보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잊고 있었다는 것.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책과 여행을 맺어 함께 생각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책과 여행은 적대적이면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아닌가 싶다.  여행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 책을 읽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 책과 관련된 곳을 찾는 재미를 여행 틈틈히 느끼는 사람, 여행을 하면서 일상의 번잡함을 떠난 덕분에 더 많은 책을 읽게 된 사람 등등, 책으로 엮이는 것만 해도 꽤 많다는 것을 느낀다. 

 

저자는 내 나이정도에서 보면 참 깜찍해 보이는 이십대 처자다.  특이한 인생유전 때문인지 어린 나이에 인도로 가게 되었고, 다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히말라야 인근의 기숙사 학교로 갔고, 거기서 어쩌면 다가올 앞으로의 인생의 방향을 보여줄 도서관, 그것도 무엇인가 비밀스러운 승원결사의 장경각과도 같아보이는 지하 도서관을 발견한다.  그 후, 그녀의 일상에서 책은 항상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고,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 정적인 행위 하나와 동적이 행위 - 것을 즐기면서 세상을 여행하고 읽은 것에 비추어 사유한다.  도입부는 조금 믿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젊은 사람이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가식적인 면이 거의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예전에 본 젊은 작가가 '책'에 '미쳐' 보냈다는 '청춘'이야기보다는 훨씬 기획의 냄새가 덜 난다.  내용 그 자체로는 대단한 신선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것이기를 바라는 오랜 사색의 내음 덕분에 잘못하면 매우 generic했었을지도 모를 책에 저자만의 그 무엇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나도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젊은 시절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여러 문명의 이기 덕분에 이렇게 책을 쓰고 출판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일이 되었고, 역시 내 젊은 시절 갖 유행이 시작되던 해외여행이 이제는 보편화 되어 어쩌면 학창시절에 유럽여행 정도는 다녀와야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럴수록, 그렇게 변화가 다가올 수록, 한 편의 나는 바깥으로 돌고 싶고, 변화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반면, 다른 내면의 나는 세상 한 귀퉁이에 내 자리를 찾아 나의 책들과 음악과 함께 숨어들고 싶어진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으니 진정한 잠행과는 한참 멀지만, 그렇게 조용하게 사그러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처음에 제목을 잘못 읽고서는 '독거노인'이라고 쓴 줄 알았다.  서평집 같은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 책의 제목이 희안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독서독인'인다.  책읽기와 책읽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로 그 평이 좋게 남지 못한 사람들의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의 이야기를 섞는다.  여기서 독서의 독인은 그 어감의 외로움이 남는데 저자의 인생관, 또는 사고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것을 비판하는 사람은 외롭다.  독서도 무엇도 다 비판의 대상이 된다면 더구나 그 독성에서 오는 피로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인지 힘이 들었다.  기실 신화화 된 인물이나 사건의 본질을 살피면 허탈할만큼 알려진 내용과 많이 다른 것은 종종 본다.  문제는 이런 것들에 눈뜨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매사를 비판적인 눈으로 보게 되면 세상살이가 힘들어 진다는 것이고, 덩달아 모든 것을 비딱하게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 자체로써 문제라기 보다 삶이 힘들 수도 있는 것이니까 사실 개인의 선택이다.

 

박교수님의 말씀처럼 모든것을 상대화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 선을 그어야 하는지는 개인이 판단해볼 문제다.  나아가서 나쁜 사상이나 사건사실을 왜곡하거나 곡해하는 책이 아니라면 읽은 사람이 좋은 부분을 추려서 양식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 책의 내용을 중간중간 보면 나오는 저자의 극단적인 순혈주의와도 같은 순결성은 조금 버겁다.  가끔 강신주 박사의 강연을 들을 때에도 느끼지만, 나 빼고 다 이상한 놈이라는 논리로 흐를 수도 있는 부분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자신부터 상대화 하고 볼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렇게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들이 있다면 세상에는 그만큼 더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  진중권처럼 이런 분들은 툭하면 입바른 소리를 해서 모든 이의 빈축을 사는데, 그런 외로움을 딛을 수 있다면 독야청청한 흉내라도 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이런 사고는 나의 노선은 아닌 것 같다. 

 

간만에 자기 캐릭터가 확실한 책을 읽었는데, 그 반가움 만큼이나 불편함이 남기도 했고 무엇보다 책의 마무리, 그러니까 끝맺음이 맘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것은 겉멋으로 치부할 지도 모르겠지만, 한 권의 책을 읽은 독자로써, 그리고 이를 사들인 장서가로써 불만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두 권 모두 푹 빠져서 읽었는데, 장정일의 의견을 차용하면 이 두 권은 매우 열정적으로 쓰여진 책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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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7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8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