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슈를 공안을 이용하여 풀어내려는 한심한 정권.  그 정권의 하수인인 '공안'조직들.  검찰이나 경찰, 아니 정부 자체가 공안 일색인 요즘, 간만에 신나는 소식을 보았다.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한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의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단에 의해 무죄로 판결이 났다는 뉴스다.  3년형 구형은 이리 저리 올라오더니, 역시 5년 동안의 꾸준한 작업이 빛을 발한 듯, 무죄소식은 한 곳에만 올라와 있다. 

 

같은 시간대에 인혁당 사건 유족들에게 배상금 초과지불에 대한 반환이 판결되었다는 꼭지를 보고나서 꼭지까지 돌아버렸었는데, 그나마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이렇게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는 나라가 유지될 수 있을까?  face value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나름 강국이다.  군사-경제-공업 같은 주요분야에서 세계 20위 권을 유지하고 있고, 자원도 빈약하고, 정치적으로도 후진국인, 게다가 반쪽으로 갈린 땅, 그리고 사분오열된 국론과 세대 및 계층문제를 떠올리면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 속은 심하게 곯아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겠다. 

 

국가가 유지되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다.  법과 도덕의 정의는 그 잣대가 심히 불공평하고 불균형적이라서 하다못해 상앙의 엄한 법가정책이라도 가져와야 할 것 같다.  상벌이 땅에 떨어진 나라에서 법이라는 제도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법은 언제가 가진자의 편이라고는 하지만, 법치가 발달할 수록 그것은 제도활용의 단계에서의 일이고, 이를 해결하는 다양한 장치들로 어느 정도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법의 적용이나 판결 자체가 불공정한 나라에서는 결국 법에 대한 신용과 존중, 즉 국가 구성원들 간의 약속이 지켜지기가 어렵게 된다.  필연적으로 이런 경우 법은 개개인의 주관적인 관점과 해석에 의해 그 시시비비의 결과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되는, 그러니까 어떤 standard로써의 위치와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딱 그렇다.  귀에 쏙 들어오는 구호나 말에 흔들리지 말고, 문제의 핵심, 문제의 본질을 살펴 이를 해결해야 한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이런 것은 결국 하나의 현상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촛불로는 현재의 불법적인 정권장악, 사실상 군부와 국가기관이 주도한 쿠데타에 의해 탄생한 정권을 몰아낼 수 없는 이유라고 본다. 

 

'항명'이니 '불복'이니 한다.  심지어는 부정선거논쟁이 커지면서 정쟁화되어 진짜 이슈들 - 부정선거, 국정원 개입 등 - 이 묻혀버릴 수 있다는 희안한 논리의 물타기도 종종 사설란에 올라온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한 가지를 전제로 하는데, 그것은 박근혜의 당선과 대통령 취임이 절차상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국정원/군부개입이라도 어떠냐, 박근혜의 당선은 거기서 덕을 본 것이 아니다'라는 소리도 많이 나오는데, 이 역시 전형적인 논리 비틀기라고 하겠다.  도둑이 돈을 훔치면, 그가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와는 무관하게 절도 그 자체로 범죄가 성립한다.  마찬가지로 군부/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여론조작과 부정선거는 그 자체로써 정권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된 테러이기에 전 정권의 차기주자인 박근혜씨가 거기서 덕을 보았는지의 여부는 이슈와는 무관하다. 

 

결론은 명백하고, 나는 이 점을 처음부터 강조해왔다.

박근혜 OUT!!!!!  그리고 그와 함께 뒷 배경으로 자리잡은 비밀스러운 그들도 OUT!!!

요컨데 박근혜씨는 수 많은 세력을 합종으로 연결하는 하나의 축이고, 그의 퇴진과 함께 그 세력을 대한민국에서 축출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치적인 면에서의 시작일 뿐이고, 그 이상 우리의 당면과제는 지속가능한 국가전반의 개혁, 나아가서 paradigm shift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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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10-24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도 방법은 하나죠. 뚝심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구태의연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국민을 바보로 아는지...

transient-guest 2013-10-25 01:40   좋아요 0 | URL
멍청함과 완고함, 그리고 주변세력의 견고함까지 콤보지요. 거기에 이 사람들이 생학하는 건 대중조작술이구요. 박근혜씨는 가카만큼의 정당성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아니지요.
 

"朴대통령 '제가 댓글 때문에 당선됐다는건가' 격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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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0-23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습니다~

transient-guest 2013-10-23 06:43   좋아요 0 | URL
철없는 아이를 대통령으로 만든 결과는 우리 모두가 뒤집어쓰겠지만요...

oren 2013-10-2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 말대로) 왜 자꾸 '발톱'만 내밀 생각밖에 하지 못할까요?

* * *

어떤 반대에 부닥치면 사람들은 그것이 정당한가를 보지 않고, 옳건 그르건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가만을 생각한다. 우리는 팔을 내밀기는커녕 발톱을 내민다.
(몽테뉴)

* * *

(철없는 아이를 훈계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도 재미있어 덧붙여 봅니다)

소크라테스가 자기 논거에 대한 반대를 항상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는 것은, 그의 역량이 대단히 컸으며 확실히 장점이 자기 편에 있게 될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반대를 새로운 영광의 재료로 맞이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자기의 우월감과 상대편에 대한 경멸감보다 더 우리를 민감하게 만드는 것은 없고, 이치로 보아서 약한 편이 도리어 고마운 마음으로 자기를 바로 세워 주는 반대 의견들을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본다. 사실 나는 나를 두려워하는 자들보다도 나를 거칠게 다루는 자들과 더 자주 사귀려고 한다. 우리를 숭배하고, 우리들 앞에 자리를 물려주는 자들과 상종하는 쾌락은 멋쩍고 해롭다. 안티스테네스는 어린아이들에게 자기를 추어주는 자들을 결코 고맙게 여기지 말라고 훈계하였다. 나는 열을 올리며 토론하다가 상대편이 약해서 승리할 때의 쾌감보다도 상대편의 올바른 이론 앞에 내가 굴복할 때의 나 자신에 대해서 얻는 승리감에 훨씬 더 큰 자존심을 갖는다.

transient-guest 2013-10-24 01:16   좋아요 0 | URL
몽테뉴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애도 애 나름이겠지요. 그네공주는 훈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ㅎ

saint236 2013-10-23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지도가 높은 이유는...제 판단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transient-guest 2013-10-24 01:14   좋아요 0 | URL
지지자나 박근혜씨나 마찬가지겠죠. 박근혜씨를 보면 전형적인 수구노인 같아요. 조금 불리하거나 듣기 싫은 이야기가 나오면 입과 귀를 닫는 것이 말이죠. 퇴진으로 가야할 때가 훨씬 지났는데요, 불복이니 항명이니 하는 그들의 terminology에 휘둘리는 민주당이 참 답답합니다.
 

얼마전에 다 읽었는데, 후기는 오늘에서야 겨우 남기게 되었다.  문제는 내용이 가물가물하다는 것, 나아가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 '도련님' 같은 작품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문체로 쓰여진 몽환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작품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지만, 일차사료로써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이 대륙에서의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추할 수 있는 단락이 있다.  알다시피 일본의 '전쟁 피해자' 가면놀이는 유명한 일본의 파렴치 덕목이라고 하겠다.  전쟁을 일으키고 이를 지지했다는 점은 어느새 뒤고 빠지고, 교묘한 교육과 기억의 조작을 통해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부풀리고, 나아가서 자기들이 전쟁의 희생양이라는 점을 피력할 때 흔히 드는 예가 일본의 일반 대중은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설'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도 지적한 바가 있지만, 이는 완전한 허구이다.  분명, 대다수의 일본 대중은 전쟁을 지지했었고, 전쟁이 가져다 줄 넓은 땅과 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책에서도 이런 점은 전쟁에 징집되어 나가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는 촌로의 발언에 반영되어 있다.  읽는 내내 이 부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한국의 한심한 현 정권의 행태와 일본의 세습 정치인들의 작태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1%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노동자'이다.  그런데, 이 절대다수의 '노동자'들 중 비교적 중상층부에 위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본가'인줄로 착각하고 있다.  또한 일반 노동자들 역시 자본가 계층으로 편입할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식화가 아닌 '탈의식화', 그러니까 우편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미래로 가는 길이다. 

 

일부 발언은 너무 '쟁의'나 '투쟁'에 대한 부분에 치우쳐져 있었기 때문에 공감이 어려웠지만, 분명 나 자신도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사는 바, 확고한 목적의식과 사고를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분열이 아닌 단결된 힘을 갖고, 뚜렷한 목적의식에 입각한 투표를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그 시작이 가능하다.  부정선거에 의한 박근혜의 당선, 하지만, 꽤 많은 노동자 계층이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탈의식화'는 요원하지만, 꼭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까지 읽고서는 3-4일을 아무것도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  간혹 찾아오는 독서불감증이 도진 것인데,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너무 바쁘거나, 너무 안 바쁜 경우, 그리고 삶의 이런 저런 문제들이 각각의 또는 총체적인 원인이 되는데, 여기에 책을 너무 많이 쌓아놓는 것도 독서불감증을 한층 더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한 달 전엔가 주문한 문학과 판타지 소설들이 모두 도착했고, 이들은 그 전에 쌓아둔 다른 책들과 함께,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한 동안 신간 주문도 자제해야 할 만큼 많은 책이 쌓여있는 것인데, 일견 행복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때에는 만화책을 읽어주어야 해소가 되는데, 지금 내 주변에는 만화책이 없다. 

 

차선책으로 독서불감증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읽는 책은 독서나 책에 관련된 책이다.  한국의 글쟁이들, 한국의 책쟁이들과 더불어 손쉽게 읽는 책은 지식인의 서재이다.

 

 

 

 

 

 

 

 

 

 

 

 

 

 

 

그런데, '지식인의 서재'를 읽으면서 이번에는 각 '명사'의 얼굴과 상을 보면서 그들이 말하는 바를 되새겼다는 점이 이번의 특이점이라고 하겠다.  그렇게 읽으면서 과연 그들의 삶이 그들이 책을 매개로 하여 쏟아내는 말과 얼마나 근접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의외로 반 정도는 삶과 책이 따로 논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책에 쓰인 글의 깊은 맛 이상, 이렇게 사람과 그의 말을 비교하면서 음미하는 것도 색다른 감상을 준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받은 느낌이 그렇게 많이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점은 조금 씁쓸했다.  같은 맥락에서 유영익이라는 사람, 이번 교학사의 역사조작의 중심에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충분히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과장일까?  마흔이 되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어린 아이도, 이십대의 젊은이도 자기 얼굴에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된다.  그러니까, 유영익 정도의 나이를 먹은 사람의 얼굴에는 그의 삶의 여정이, 철학이, 사고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좌우를 오가면서 노른자위의 요직을 골라먹고 사는 모 대학 총장 출신의 모씨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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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0-23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 노동대중들도 제국주의 시절엔 식민지 거느리는 데 찬성했지요.혹시나 국물이 떨어질까 하고요...부르주아 민주주의란 제국주의 시대와 보조를 같이했기 때문에 좀 찜찜합니다.

transient-guest 2013-10-24 01:12   좋아요 0 | URL
4대강 파괴를 방조하거나 내심 찬성한 다수의 사람들이 가카를 뽑을 때에도 이런 심리였을 것 같아요. 결국 사회 전체의 의식수준이 높아져야만 개혁을 지속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암기중심의 입시교육과 시험, 그리고 다시 이에 특화되어 변질되는 교과교육체제까지 전방위적으로 비판하는 다카시의 글에 일본만의 문제같지 않다는 생각은 나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제도는 좋든 싫든 식민지시대에 교육을 받은 친일 엘리트 계층에 의해 일본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베낀 것임을 볼 때, 일본의 정치-사회-교육-경제의 문제는 필경 십 년 정도면 한국에서도 발생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더욱 타산지석 이상의 심경으로 이 책을 읽게 하였다.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는 내가 언제나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주장하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되고자 원해왔던 바,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로 이를 확인하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스페셜리스트의 시대라는 말에 현혹되어 한 가지만 할 줄 아는 전문가 바보집단을 계속 양성해온 결과 이제는 소위 되는 분야에만 인재와 자본이 편중되는 현상이 시대의 norm이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 시절 다치바나 다카시의 일침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인문사회교육을 심화한다는 취지하에 도입된 주관식 입시는 다시 분석되어 그야말로 시험을 위한 독서를 부추기는 근원이 되고 있으니 이건 도대체 또 무엇인지 궁금하다. 

 

더욱 큰 이슈는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고 행동하는 힘을 젊은 세대의 머리에서 빼버린 것인데, 일견 놀이문화 또는 문화행사화한 촛불집회도 그런 면에서는 아쉽기가 그지 없다.  거부감을 줄이고 참여를 늘린 반면에, 실제로 촛불집회를 통해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면서, 이를 타개할 힘의 원동력이 20대의 의식화 부재 - 라고까지 하면 무리가 있겠지만 - 는 정말 아쉽다.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전문직 아니면 대기업 사원을 지향하는 사회, 아니 국민의 상당수가 연예인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어떤 희망을 볼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교육이 지향하는 바도, 그 수준도 너무도 떨어지고, 이제는 대학조차 기업입시를 위한 학원의 장이 되어버린 지금, 한국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읽는 내내 내가 한 생각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고 기억한다.

 

고이즈미 수상 시절의 일본의 정치와 미래를 평가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글을 모아놓은 책.  아베체제와 재무장을 향한 일본의 우경화를 보면서, 새삼 다치바나 다카시의 혜안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헌법은 법제의 근본 그 자체이지만, 이에 대한 해석을 이용하여 법을 교묘히 변질시키는 당시 일본 정계 우익의 책동은 우리의 현실에 그 다름아니다. 

 

일본의 군국지향과 우경화, 야스쿠니 문제, 전후 일본의 시대적 대처에 대한 전반적인 날선 비판은 역시 현 한국의 정치 사회를 바라보는데 있어 하나의 perspective를 마련해 준다. 

 

끝으로 수 많은 명언과 정세분석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정부의 성급하고도 무계획한 민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큰 사업체인 '정부'가 관리하는 사업체는 말 그대로 소중하게 관리되어야 하고, 이를 토막쳐서 팔아버리는 것은 '주변에서...입맛을 다시며 기다리고 있는 국내외의 금융자본에게 던져'버리는 것이다.  가카시절에 가장 심하게 일어났지만, 한국경제의 총체적인 이슈들과 그 원인은 바로 '좋은 것만 취해 민간에게 팔아넘기'는 관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본의 헌법개정을 통한 재무장이 미국의 입김과 지지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당시 다치바나 다카시의 분석과 의심은 최근 아베정권의 재무장 계획발표와 이를 지지하는 미국의 발언으로 확인된 상태이다.  늘어나는 군사비용의 상당부분을 일본이 떠맡게 하는 이 계획에 따라 동아시아에는 미국의 대중국 계획에 의한 전운이 감돌게 될 것이고, 일본과 한국은 여기서 큰 부분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상한 동맹형태로 미국의 중국견제에 이용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이 이와 같은 이유로 멸망하는 국가라면, 한국의 운명 또한 현재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민주주의의 근본인 선거와 자유민주주의 정제가 사실상 사라진 나라의 운명은 어둡다.  이 판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것은 깨어있는 민중의 행동밖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도 박근혜씨는 퇴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스페인, 프랑스, 유럽, 이스라엘과 뉴욕을 떠돌았던 젊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이야기.  평범한 나로써는 부럽기 그지없는 젊은 시절의 무규칙/무작정 여행.  그리고 냉전시절이 주던 일종의 제한된 안전, 그 치하에서의 여행까지 그리 politically correct하지는 않겠지만, 야릇한 시대에 대한 향수까지 주는 여행기록물이다. 

 

당사자는 물론 여행 당시에는 여행에만 충실했고, 이런 저런 감성적인 기록은 추억의 형태로 나중에 기억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세계를 정말로 인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육체의 여행'이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커다란 기로마다 여행을 떠났던' 그의 젊은 시절은 지금의 지의 거장이라는 찬사가 그리 아깝지 않은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한 인물을 규정하는데 있어 크나큰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여행이란 것을 많이 해보지 못한 나라는 사람, 주로 사유와 상상속에 인생경험의 상당부분이 근거하는 나는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생각으로 시작하여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너무도 많은 아쉬운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계획할 때, 한번 정도 생각해 볼만한 말: 여행의 패턴화는 여행의 자살이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에 있다.  일상성이라는 패턴을 벗어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발견하는지,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데 있다.  

 

몰입을 유도하고 이를 경영과 사업에 도입하라는 취지의 이 책은 정말이지 스티븐 코비, 톰 피터스, 그리고 피터 드러커 만큼이나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인용되는 것 같다.  그 만큼, 이제는 조금 시들하기도 하고, 이 관점에서 벗어난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하게 된다.

 

진정으로 산만하거나 조금 더 나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데 있어, 물론 이런 proven classic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개개인에 있어 다양한 장단점을 하나로 분석하여 효과적인 단 하나의 개조론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 적용만큼이나 무리 투성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으로는 다양한 이론을 참고하여 자기자신의 장단점을 확인하고 자기한테 잘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몰입의 비밀이 아닌가 싶다.  목표와 목적은 모두가 지향하는 한 가지일 수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요컨데, 평탄하게 근무하면서 정해진 월급 안에서의 삶과 그런 삶이 주는 만족이 일에서 바라는 최고의 목표가 될 수도 있는데, 그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이 리더가 될 수도 없겠지만, 되어서도 않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몰입하고 이를 관리하는 것 또한 그럴 수가 없는 것 같다.

 

다시 읽어본 결과, 여전히 난해하다.  '쥐'와 주인공은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렇게 J's Bar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있다.  물론 '쥐'는 J's Bar을 떠남에 있어 주인공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지체하겠지만, 그 역시 무엇인가 다른 시간과 삶으로 떠나려고 한다. 

 

어느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주인공을 찾아와 함께 머물게 되는 쌍둥이 자매는 핀볼머신의 양쪽을 닮았다.  공이 새는 것을 막아주고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힘을 가하면 공을 다시 포인트로 튕겨주는 그 양쪽의 귀 말이다.  그들이 주인공의 삶에 들어오는 시점에서 주인공은 그가 옛날에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여섯 자리 숫자의 점수를 올린 단 하나의 절대머쉰을 향한 추억을 떠올리는데, 단 한번, 마주한 과거와의 조우를 끝으로 이 쌍둥이는 핀볼머쉰처럼 주인공의 시공간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래서 무엇이 어쨌다는 거야 라고 생각한다면 하루키의 소설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잘 알겠는데, 정리하기조차 싫어지는 것은 내 게으름 이상 심한 작가의 무질서한 문장들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한 문장이, 그것도 말장난 같은 걸로 반 페이지를 넘어간다면 아무리 liberal한 approach를 취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야구 창단과 함께 찾아온 말뿐인 '프로의식'과 이를 향한 고취, 그리고 어느새 이 말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이에 반해 순수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추억되는 만년꼴찌 삼미 슈퍼스타즈의 순결한 야구. 

 

그러니까 우리는 프로가 될 필요도, 모두 성공할 필요도 없고, 행함 그 자체, 그러니까 인생 그 자체, 우리 삶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취지의 말 같은데, 영 머리가 아픈 작가의 문장력은 내 독서의 발목을 잡는다.  박완규를 빼닮은 작가의 사진과 학력을 보면서 주인공 - '나'로 동일시되는 - 의 학력은 왜 'S'대로 설정한 것일까?  이 부분은 나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서울사범학교를 나온 이문열씨가 자전적 주인공 캐릭터는 항상 '서울대학교' 입학으로, 즉 '한국 최고의 대학'의 입학을 통해 자아실현을 꿈꾸는 것으로 설정하는 유치함과 닮았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면 차라리 좀더 다른 설정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이유다.

 

그냥 심심파적삼아 집에서 한가할 때 다시 읽은 책이다.  예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는 현상이 부쩍 빈번해진 지금에는 이렇게 틈틈히 재독을 해주어야 한다.  사실 어릴 때의 기억력은 물론 지금보다 훨씬 좋았겠지만, 그 이상 재독, 삼독, 아닌 열독까지도 불사하던 당시 독서방식과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던 보유서적의 숫자와 내용을 기억하는 것에는 큰 상관관계가 있다. 

 

이 책은 특이하게 책이 아니라, 책이 보관되고 전시되었던 방식의 편천사를 고증을 통해 다루고 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재의 책꽂이 사용방식과 모양은 사실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책의 모양과 출판성의 변화에 따라 책꽂이도 변해온 것을 볼 수 있는데, 대단한 지식은 아니지만 소소한 책에 대한 잡식을 늘릴 수 있는 흥미로운 독서였다고 결론낸다.

 

이번 '황금가지'에서 나온 크리스티 전집의 구성이 원 구성인지, 아니면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굉장히 마음에 든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렇게 2-3권의 진지한 이야기를 읽으면 나오는 단편모음형식의 다음 권은 자칫하면 마라톤 같이 느껴질 수도 있는 전집독파의 페이스를 적절하게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중거리 달리기를 하고 살짝 지칠 무렵에는 경보로 가볍게 단거리를 주파하면서 체력을 끌어올리고 다음 구간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는 이 방식은 참으로 탁월하다.

 

애거서 크리스티 하면 으례 에르큘 포와로를 떠올리겠지만, 70여권이 넘는 단행본으로 나타나는 방대함에 걸맞게 작가는 많은 주요 캐릭터를 창조해냈는데, 이를 하나씩 보는 재미는 참 쏠솔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내가 가진 판본은 Easton Press에서 나온 가죽제본 장정본인데, Logos에서 35불에 구입했다.  어쩌면 내 유일한 지적 허영의 증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Hard Cover와 가죽제본 장정본의 선호를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하겠다.  이 책과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샤이러는 제 3 제국의 흥망이라는 걸작을 창조해냈으니, 그 대작의 근간이 되는 raw story를 조금씩 읽는 재미는 각별하다. 

 

일년간의 안식년을 스페인에서 보낸 샤이러 부부는 돈문제로 부득이하게 다시 일자리를 찾게 되는데, 그게 하필 1934-41년 사이, 해럴드의 베를린 주재원의 자리가 된다.  이 역사의 한복판에서 그가 쓴 생생한 일기는 평범하고 소박한 문체로, 긴박했던 당시의 유럽정세와 샤이러 개인의 정세판단이 녹아있는 그 자체로써도 매우 중요한 일차사료라고 할 수 있다.  다 읽고 나면 주요 포인트를 정리해 볼 생각이다. 

 

이 외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다음의 책들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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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0-09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적 허영이... 어디 있겠어요.
스스로 즐거우니 누리는 책삶이지요.
언제나 새롭고 아름다운 책들
기쁘게 누리셔요~ ^^

transient-guest 2013-10-10 03: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ㅎㅎ 그래도 독서와 책모으기 두 가지를 다 좋아하다 보니까, 가끔은 책이라는 물건에 너무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때가 있네요

노이에자이트 2013-10-13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를린 일기>...정말 저널리즘의 고전이죠.저런 명저를 원어로 읽다니 좋겠습니다.번역되면 좋겠어요.<제3제국의 흥망>은 두 번 번역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큰 반응은 없었죠.

transient-guest 2013-10-13 01:21   좋아요 0 | URL
<베를린 일기>는 읽을수록 명문과, 날카로운 통찰력에 놀라고, 또 히틀러, 괴벨스, 괴링 같은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묘사하는 부분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무척 새롭구요. 히틀러가 뻥카를 칠때에는 굉장히 신경질적이고 몸을 '흠칫'거리면서 떠는 버릇이 있었다더군요. 알았더라면 애초에 오스트리아를 병합할 때 영국/프랑스로부터 이 뻥카에 대한 콜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2차대전 이야기를 좋아해서 저는 <제3제국의 흥망>은 여러 번 읽었지요.

아이리시스 2013-11-0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여기 <베를린 일기>가 어디있단 말인가..이러면서 갔다가 아..저 제목 잘 안보이는 일곱번째 책인가.. 아닌가.. 다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가 다시..이렇게 세 번 정도 하다가.. BERLIN.. 발견..orz

transient-guest 2013-11-05 22:03   좋아요 0 | URL
ㅎㅎ 밑에 있으니까요ㅎㅎ 계속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빌 브라이슨의 신작 "One Summer, America, 1927"을 읽느라고 조금 주춤하지요.
 

상당한 우파성향이지만 재미있는 소설들을 써온 소설가 Tom Clancy가 어제 미국 나이 66세로 타계했다.  약 일주일을 터울로 최인호씨에 이어 좋은 작가를 하나 더 보낸 셈이다.  이 내용을 쓸 생각은 못하고 있다가, '노자'님 서재에서, 그리고 오는 신문에서 고인의 말을 보고 몇 자 써보게 되었다. 

 

"Fundamentally, I think of myself as a storyteller, not a writer.  I think about the characters I've created, and then I sit down and start typing and see what they will do."

 

신문에서 인용한 고인의 선승같은 느낌이 나는 이 말은 그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하루키도, 스티븐 킹도,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많은 책을 쓴 고인의 말이라서 그런지, 좀더 가슴에 와 닿는다. 

 

9-11 이후의 책들은 너무 테러리즘에 맞춘 우향적인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재미가 떨어졌던 것 같다.  그 전의 책들은 좀더 치밀하고 극적이었다면, 9-11이후의 책은 다소 미국의 대 테러전쟁에 대한 용비어천가 같았다고나 할까?  

 

아까운 또 하나의 소설가가 귀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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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0-0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알라딘 회원 다수는 톰 클랜시 독자들은 아닌가봐요.저와 트란 님만 관심이 있는 것 같군요.

transient-guest 2013-10-05 02:2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냉전시대의 소설들은 알라딘 이전의 이야기들이라서 그럴까요?ㅎㅎ 최근에는 한국에서 크게 히트한 책은 없던 것으로 아는데요, 혹 그게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