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간김에 뒹굴고 있는 몇 권을 찾아서 내리 읽었다.  문학이나 전문서적은 좀 다르지만, 내 눈에 익숙한 일반소설이나 수필, 또는 현대문학은 조금 쉽기 읽어지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이 줄줄 읽어냈다.

 

성석제의 글은 늘 맛깔스럽다.  이런 저런 칼럼이나 어쩌다 손에 걸리는 잡문집 위주의 글을 주로 읽었는데, 항상 주변의 소박한 주제를 사용해서 재미있고도 깊은 글을 써내는 솜씨가 부럽기 그지없다.

 

음식에 얽힌 촘촘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한 이 책은 아마도 누나가 사놓고 정리를 게을리 한 덕분에 방 한쪽 귀퉁이에서 발견했다.  주말까지 이런 책이 집에 있는줄도 모를 정도로 친누나의 정리솜씨는 '완벽'하다.  물론 완전히 반대의 의미로 말이다.  예전에 오죽하면 내가 '청소력'을 사주었을까...

 

언젠가 성석제의 책도 모두 읽어내리라 생각한 것이 몇 년전인데, 쏟어져나오는 신간과, 꼭 읽어두어야 할 고전문학, 그리고 간간히 삶에 떠밀려 유혹처럼 읽게되는 이런 저런 정보서적에 그의 글이 설 자리는 없었나보다.  늘 그렇듯이 목록은 늘어갈 뿐이다.

 

정유정하면 '7년의 밤'이나 '28'을 떠올리는 나에게 이 책은 역시 이런 책도 있었던가 싶은 작품이다.  정유정의 책을 처음 읽는다면 아마도 그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누나의 '청소력'에 따라 주말까지 그 존재를 도무지 드러내지 않았던 책이다. 

 

솔직히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함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는 한국의 현대문단의 고민 혹은 방만이 아닐까 싶다.  김중혁 작가도 말했거니와, 작가가 꼭 어떤 의미를 담고 글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권의 책을 읽고나면, 그것도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읽고나면 최소한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다. 

 

작가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어갔을 이야기는 읽는 내내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사나이' 그리고 '형제 복지원' 사건을 떠올리게 했고, 간간히 나는 분노했었다.  구성은 나름 탄탄하지만, 그 결말이 나로써는 도무지 공감하기는 어렵다, 솔직히.

 

곧 크리스마스와 함께 이곳의 2대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추수감사절이다.  늘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국가인구의 반은 족히 넘는 듯한 한국에서는 특히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연인의 날, 아니면 단체로 여행가는 날같지만, 이곳에서의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가족이 모이는 날이다.  워낙에 멀리들 떨어져 사는 탓에 이렇게 한 해를 마감하는 연휴에 휴가를 붙여 가족과 모이는 것이다.  

 

다행히 가족은 근처에 있으니 연말에는 앞서 계획한대로 러시아 문학을 중점으로 이런 저런 책을 맘껏 읽어야지 싶다.  내년에는 내년의 몫이 있을테니까, 2013년은 2013년의 몫에 따라 잘 마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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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운영하면서 고객층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얼추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을 종종 느낀다.  다소 한가할 때에는 다들 규모에 맞춰 비슷한 비율의 한가함을 느끼고, 바빠지는 시기에는 의아할 정도로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문의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는 자연적인 주기, 특정분야의 경기, 정치, 경제, 절기를 비롯하여 수 많은 요소들로 인해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행동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독서에도 그런 대중적인 패턴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내 서재의 방문객 숫자, 내 독서빈도, 다른 서재의 독서빈도나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것을 살피면 확실히 11월은 전반적으로 책을 덜 읽게 되는 것 같다.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 아니 그 전의 Veteran's Day를 시작으로 겹치는 연휴로 이곳에서 11월은 연말을 시작하는 의미가 크다.  한국은 내가 알기로는 특별한 휴일이 없는 것이 11월이지만, 어떻게 보면 역시 한 해의 마감을 준비하는, 조금은 사이에 끼인 듯한, 가을과 겨울 사이의 모호한 정체성 때문에라도, 어디 한 군데 마음을 붙이고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 

 

더구나 한국/미국 할 것 없이 이때는 본격적으로 해가 짧아지는 시기이다.  서머타임이 해제되고 난 자연시간이 돌아오는 이 시기에는 퇴근시간도 조금 앞당겨지고, 흐린 날에는 오후 4시만 조금 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6시에 퇴근하는 스케줄이라면 대략 5시부터는 시계와 상사의 눈치를 살피게 마련이다. 

 

집에 와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특별히 흥미가 가는 것은 없고, 어둡고 추워진 절기상의 feature는 나 자신마저도 움츠러들게 만들어서, 공연히 히터를 켜고, 이불을 둘러쓴 다음 TV앞에서 2-3시간 정도를 보내기 일쑤인데, 이러고나면 가뜩이나 자연광이 없어 책을 읽기가 불편한 시기에, 피곤을 핑계로 한 두 페이지 정도를 읽어내려가다가 역시나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특별히 깊은 읽기를 시도한 것도 아닌데, 참으로 더딘 독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른 책을 조금 읽다가 지겨우면 자투리로 조금씩 Berlin Diary를 읽으면서 역사속에서 흥미를 찾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명문이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다.  가죽으로 제본된 양장본 외에도 지금에 와서 보니 다른 헌책방에서 구한 hardcover에 책 case까지 갖춰진 본이 한 권이 더 있다. 

 

하멜표류기를 남긴 덕분에 효종이 다스리던 시기에 조선 땅에 함께 표류했던 36의 네덜란드 선원들 중 유일하게 그 이름이 남았다.  외국인을 국외로 보내지 않았던 조선의 법도상 이들은 대부분 병들어 죽거나 탈출을 꾀하다 죽었는데, 남은 15명에서 7명이 극적으로 탈출하여 당시 서방의 상관이 있었던 일본을 통해 귀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이 쓰인 취지가 조선의 문물을 알리거나 여행기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기실 세밀한 조선의 묘사나 극적인 내용은 별로 기대할 수 없는데, 이는 어릴 때 읽었던 '하멜'에 대한 책이나 교과서의 가르침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말하자면 하멜이 조선에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묘사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실제로는 하멜에게 있어 조선은 목숨을 걸로 탈출해야 했던 일종의 유형지에 다름 아니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전제군주정의 조선에서도 '왕' 또한 '법'을 따라야 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핑계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용에 왕은 이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법'에 의해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즉 이때에 벌써 조선에서는 '법'의 위중함을 전제군주로서 권력의 절정에 위치한 왕까지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지젝식으로 실재와 실제하는 현실은 엄연히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패당을 지어 국가를 농단하는 요즘의 금력과 권력을 보면 확실히 2008년 부터 한국의 정치와 사회의식은 상당히 퇴보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없지만, '하멜표류기'는 엄밀히 말해, 흔하지 않은, 외국인의 눈으로 본 조선 후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차 텍스트로써의 가치가 높다 하겠다. 

 

단적으로 말해 이 책은 '재미가 없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시기에 다른 마음으로 읽어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이 쓰인 시기의 사서를 보면 느끼는 지겨움이 여기서도 느껴지는 것은 나로써 어쩔 수가 없다. 

 

시대별로 변해가는 로마인의 정신을 당시의 문장가나 유명인사의 일차 텍스트에서 추론해 나가는 저자의 연구방법과 열정은 높이 살만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스토리'로써의 히스토리 보다는 학술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서술은 확실히 재미가 덜하기는 하다.

 

리뷰가 좋은 것을 보고 산 기억이 나는데, 물론 명문도 많고, 좋은 contrast도 많이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규정짓는 feature를 묘사하는 문장을 제외하고, 이 책의 포인트 그 자체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니까, 내가 모자라서 그렇다는 취지의 댓글은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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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1-2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 <히스토리에>를 한 번 읽어 보시면, 생각을 새롭게 열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기생수>를 그린 분이 천천히 그리는 <히스토리에>도 앞으로 만화 명작 가운데 하나로 남을 작품이 되리라 생각해요.

곧 섣달이 되겠군요~

transient-guest 2013-11-23 13:42   좋아요 0 | URL
호오.. 그 시절에 기생수를 처음 보고나서 충격을 받은게 떠오르네요. 기회가 되면 구해서 봐야겠네요..ㅎ

노이에자이트 2013-11-2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에 먼저 온 네럴란드 남자인 벨테브레는 박연이라는 이름도 받고 귀화해서 살았는데 하멜과는 대조적이죠.벨테브레가 더 교양있고 점잖았다고 합니다.

transient-guest 2013-11-23 13:43   좋아요 0 | URL
그런 벨테브레도 하멜표류기에서 나름 고생을 좀 한 것처럼 묘사가 되더라구요. 하멜보다는 벨테브레가 좀더 높은 신분이었나봐요.ㅎ

saint236 2013-11-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권 프로젝트 아직도 못마쳤네요. 자꾸 다른 책으로 외도를 하게 되니...

transient-guest 2013-11-24 14:28   좋아요 0 | URL
저도 마지막은 한 권을 남기고 못마쳤지요. 외도도 그렇고, 책 고르기도 그렇고, 더구나 읽고싶은 책은 넘치고, 어쩔수가 없지요. 어쩌면 우리는 덜 절박하던가, 아니면, '독서성공경영학'교파와는 좀 다른 성향의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ㅎㅎ
 

내가 열렬히 지지하고 좋아하는 딴지를 통해, 아니 사실은 '아부나이 니홍고'를 통해 알게된 '국민도서관 책꽂이'가 제대로 launch되었나 싶다.  http://bookoob.co.kr/ 

 

사실 요즘 딴지도 그렇고 총수도 그렇고 박근혜씨의 패당의 끊임없는 법악용으로 각종 소송에 시달리느라 수염이 빠질 지경이라고 하는데, 이런 수익성 없어 보이는 사업을 해도 괜찮은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만, 일단 신개념 아날로그 Clouding을 도서에 접목한 아이디어 자체는 상당히 돋보인다.

 

즉, 국민도서관은 Hub-Spoke구조에서 일종의 Hub으로써 Spoke에 해당하는 각 회원들의 온갖 도서를 맡아 보관하고 이를 또다른 회원들에게 대여해주는 역할을 한다.  보통 책을 기증하거나 파는 식으로 영영 떠나보내는 것은 나같은 애서가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 되기 때문에, '나눔'이라는 말이 옹색하게 사실 내 책은 나만의 전유물이 된다.  그런데, 이 국민도서관을 이용하면 책을 나누는 나에게 Hub에 일종의 할당구역을 만들어주고, 여기에 내 책을 보관하면서, 이를 원하는 다른 reader에게 빌려주는 역할을 대행하는 방법은 확실히 거부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책을 보관하는 입장에서 겉에 보관용지까지 사용하는 세심함을 보여준다고 하니, 한국에 있었다면 이용해보았을 것 같다. 

 

회원가입이나 이런 것은 현재로써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구조장치나 원리는 알 수가 없다만, 벌써 2만권이 넘는 책이 모였다고 하니,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구나 한국처럼 공간의 제약이 심한 아파트 생활이 주로인 경우, 우리같은 장서가들은 공간 뿐 아니라 책의 총 무게에도 신경을 써야 하느니만큼, 국민도서관을 잘 이용하면 양질의 책을 남과 나누면서 보관도 받고, 또 여기에 덤으로 일종의 도서 네트워크까지 만들어 갈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타상피에 싹쓸이까지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서가를 가득 채운 책을 보면서 흐뭇해 하는 류의 즐거움은 누릴 수 없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책을 남이 읽고 그 사랑의 이유를 공감해주는데서 오는 기쁨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호연지기가 있다면 국민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익구조의 비밀은 아마도 택배비용에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보관에 들어가는 부지와 인건비를 빼고도 이익이 될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벌이는 사회운동이니만큼, 기대하고 지켜볼 일이다.   

 

PS: 사이트를 본격적으로 디벼보니 딴지에서 하는 일 같지는 않고, 시작한 것도 최근이 아닌 최소한 2011년을 전후한 것이 최근에 딴지의 podcast에서 광고를 타면서 날 착각하게 한 것 같다.  어쨌든 굉장이 좋은 프로그램 같기는 하다. 

 

PS2: 굳이 수정하기는 귀찮아서 글수정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히 PS까지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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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많은 Sci-Fi소설들은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소년소녀 공상과학문고의 편집본이었다.  그들 중 '화성의 공주'를 비롯하여 동 작가가 쓴 '타잔' 그리고 '펠루시다' 시리즈는 이곳에서 한 권씩 구해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수많은 작품들은 그 원제는 물론 작가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것이 많은데, 당시 '도시 우주선'이라는 제목으로 읽은 'Orphans of the Sky'가 로버트 하인라인이라는 거장의 작품인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고,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늘이다.  생뚱맞기 그지 않는 '조던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으니, 그 누가 이 작품을 알아볼 수 있을까?  사실은 자랑질을 하려고 페이퍼를 열었는데, 한국에는 오히려 번역본이 유통되고 있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살짝 김이 새는 감도 없지 않다.

 

지난 주에 큰 맘을 먹고 거금을 들여 구한 'Orphans of the Sky'를 오늘 받았다.  1963년에 나온 판본인데, Book Club Edition주제에 꽤나 비싼 30불이라는 값을 치르고 amazon에서 구했다.  원작은 두 판본으로 1941년에 출간되었던 것이고, 그 후로도 계속 복간되었던 것 같다.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하인라인은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나 'Starship Troopers'로 더 유명한 작가이다.  초기작을 보면 뛰어난 상상력과 작품성 외에도 시대의 이슈들을 Sci-Fi로 해석하고 재배치하는 면에도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후기작들의 경우, 다소 삼천포로 빠진 듯한 느낌을 받게도 하는데, 아시모프의 말에 의하면 강신술과 영의 세계 같은 '비과학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결과라고 한다.

 

 

원래에는 이 사진과 함께, '들어는 봤나 Orphans of the Sky'라는 말을 쓰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아니, 살짝 무안하기까지 하다.  Sci-Fi팬이라면 주저없이 구해서 읽기를 권한다.  국내의 열악한 출판사정을 볼 때, 언제 절판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작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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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1-19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인라인이나 아시모프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편이라 다행입니다.그럭저럭 고정팬이 생겼더구만요.

transient-guest 2013-11-19 02:03   좋아요 0 | URL
다행입니다. 너무도 많은 SF작품들이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 같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1-19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어린이나 청소년 층에서는 어슐라 르귄도 좋아하던데 미국 쪽에선 어떤지요?

transient-guest 2013-11-20 02:47   좋아요 0 | URL
꾸준하게 책이 전시되기는 합니다만, 대형서점에 가보면 이는 일반 SF/Fantasy에 전시되어 있고, 조금 더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부각시키는 것 같습니다. 해리 포터, 퍼시 잭슨, 그 밖에도 정말 많은 pre-teen에서 teen고객을 대상으로 한 section이 따로 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3-11-20 17:4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요즘은 우리나라에도 SF나 Fantasy 전문출판사들이 몇 개 생겼어요.

transient-guest 2013-11-22 02:31   좋아요 0 | URL
저도 황금가지, 열림원에서 나온 책을 많이 봅니다. 박상준씨가 굉장히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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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글이고, 창작인데도 소설은 쉽고 문학은 어렵게 느껴진다.  많은 이들의 서재를 돌고 리뷰를 보면 상대적으로 현대소설이나 자기계발서적의 페이퍼가 더 많은 것을 보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위로하는 것도 잠시.  내 독서가 무엇인가 뒤쳐지거나 모자란 듯한 생각을 떨치기 어려울 때가 더 많다.  어쩌면 젊은 시절, 아니 십대의 어린 시절에 이미 한번 정도는 읽었어야 했을 많은 고전문학을 이제서야 조금씩 읽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가학적 성찰 같기도 한 이런 부담감은, 결국 책을 읽어내는 것을 통해 조금씩 떨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러시아 문학에서 비교적 초기작가군에 속하는 푸쉬킨의 작품이다.  소년소녀 명작문고 시절부터 제목은 보아왔기에,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음에도 '대위의 딸'은 익숙한 작품이었다.  한국어로 번역되는 외국 작품의 제목이 간혹 의역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대위의 딸'은 말 그대로 '대위의 딸', 얼추 추정하기로 '카피탄스까야 도츠까', 영문으로도 'The Captain's Daughter'인 바, 말 그대로 '대위의 딸'과 주인공의 이야기가 된다. 

 

우선 예전에도 말했지만,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에는 이름을 읽는 법을 먼저 숙지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못하고 책을 읽으면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흡사 '도쿠카와 이에야쓰' 같은 일본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에 겪는 헷깔림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비치' 여자는 '~브나'라는 중간이름이 함께 이름에 나오는데, 이는 누구의 아들 혹은 딸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저자인 알렉산드르 세르게이에비치 푸쉬킨이라는 이름은 세르게이의 아들, 알렉산드르 푸쉬킨이 된다.  여자의 경우 '세르게이에브나'가 되었겠지만.  어쨌든 이런 이름 구별법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등장인물의 이름에 얽힌 가족관계를 알 수 있게 되는데, 장편소설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능력이라고 본다.

 

푸쉬킨의 삶, 그러니까 진보와 왕당을 오간 듯한 그의 짧은 여정을 볼 때,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자비로운 에카테리나의 모습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푸가쵸프의 난에 대한 그의 묘사 또한 일부분 이해할 수 있는데가 있다.  어쨌든 그 당시, 문학과 사상의 전위에 있었으나,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힘이 없었던 전제군주정하의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그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간 거의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만약 그가 젊은 나이에 결투로 죽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진화한 모습, 그러니까, 초기작에서 보이는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로써의 창작력을 넘어선 깊은 작품들이 더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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