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운영하면서 고객층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얼추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을 종종 느낀다. 다소 한가할 때에는 다들 규모에 맞춰 비슷한 비율의 한가함을 느끼고, 바빠지는 시기에는 의아할 정도로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문의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는 자연적인 주기, 특정분야의 경기, 정치, 경제, 절기를 비롯하여 수 많은 요소들로 인해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행동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독서에도 그런 대중적인 패턴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내 서재의 방문객 숫자, 내 독서빈도, 다른 서재의 독서빈도나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것을 살피면 확실히 11월은 전반적으로 책을 덜 읽게 되는 것 같다.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 아니 그 전의 Veteran's Day를 시작으로 겹치는 연휴로 이곳에서 11월은 연말을 시작하는 의미가 크다. 한국은 내가 알기로는 특별한 휴일이 없는 것이 11월이지만, 어떻게 보면 역시 한 해의 마감을 준비하는, 조금은 사이에 끼인 듯한, 가을과 겨울 사이의 모호한 정체성 때문에라도, 어디 한 군데 마음을 붙이고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
더구나 한국/미국 할 것 없이 이때는 본격적으로 해가 짧아지는 시기이다. 서머타임이 해제되고 난 자연시간이 돌아오는 이 시기에는 퇴근시간도 조금 앞당겨지고, 흐린 날에는 오후 4시만 조금 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6시에 퇴근하는 스케줄이라면 대략 5시부터는 시계와 상사의 눈치를 살피게 마련이다.
집에 와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특별히 흥미가 가는 것은 없고, 어둡고 추워진 절기상의 feature는 나 자신마저도 움츠러들게 만들어서, 공연히 히터를 켜고, 이불을 둘러쓴 다음 TV앞에서 2-3시간 정도를 보내기 일쑤인데, 이러고나면 가뜩이나 자연광이 없어 책을 읽기가 불편한 시기에, 피곤을 핑계로 한 두 페이지 정도를 읽어내려가다가 역시나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특별히 깊은 읽기를 시도한 것도 아닌데, 참으로 더딘 독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른 책을 조금 읽다가 지겨우면 자투리로 조금씩 Berlin Diary를 읽으면서 역사속에서 흥미를 찾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명문이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다. 가죽으로 제본된 양장본 외에도 지금에 와서 보니 다른 헌책방에서 구한 hardcover에 책 case까지 갖춰진 본이 한 권이 더 있다.
하멜표류기를 남긴 덕분에 효종이 다스리던 시기에 조선 땅에 함께 표류했던 36의 네덜란드 선원들 중 유일하게 그 이름이 남았다. 외국인을 국외로 보내지 않았던 조선의 법도상 이들은 대부분 병들어 죽거나 탈출을 꾀하다 죽었는데, 남은 15명에서 7명이 극적으로 탈출하여 당시 서방의 상관이 있었던 일본을 통해 귀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이 쓰인 취지가 조선의 문물을 알리거나 여행기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기실 세밀한 조선의 묘사나 극적인 내용은 별로 기대할 수 없는데, 이는 어릴 때 읽었던 '하멜'에 대한 책이나 교과서의 가르침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말하자면 하멜이 조선에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묘사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실제로는 하멜에게 있어 조선은 목숨을 걸로 탈출해야 했던 일종의 유형지에 다름 아니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전제군주정의 조선에서도 '왕' 또한 '법'을 따라야 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핑계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용에 왕은 이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법'에 의해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즉 이때에 벌써 조선에서는 '법'의 위중함을 전제군주로서 권력의 절정에 위치한 왕까지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지젝식으로 실재와 실제하는 현실은 엄연히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패당을 지어 국가를 농단하는 요즘의 금력과 권력을 보면 확실히 2008년 부터 한국의 정치와 사회의식은 상당히 퇴보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없지만, '하멜표류기'는 엄밀히 말해, 흔하지 않은, 외국인의 눈으로 본 조선 후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차 텍스트로써의 가치가 높다 하겠다.
단적으로 말해 이 책은 '재미가 없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시기에 다른 마음으로 읽어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이 쓰인 시기의 사서를 보면 느끼는 지겨움이 여기서도 느껴지는 것은 나로써 어쩔 수가 없다.
시대별로 변해가는 로마인의 정신을 당시의 문장가나 유명인사의 일차 텍스트에서 추론해 나가는 저자의 연구방법과 열정은 높이 살만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스토리'로써의 히스토리 보다는 학술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서술은 확실히 재미가 덜하기는 하다.
리뷰가 좋은 것을 보고 산 기억이 나는데, 물론 명문도 많고, 좋은 contrast도 많이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규정짓는 feature를 묘사하는 문장을 제외하고, 이 책의 포인트 그 자체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니까, 내가 모자라서 그렇다는 취지의 댓글은 사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