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가 지향하는 독서, 좋아하는 작가, 또는 다른 비슷한 유형의 특정인사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논리나 이론적인 당위성이 필요하지 않고, 다만 철저하게 자신만의 취향이나 선택에 따른 것이니까 호불호는 있을 수 있어도 옳고 그름을 논할 주제는 아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나에게 바로 이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나도 그처럼 자기만의 공간을 책과 다른 미디어적인 부산물로 가득 채워 놓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한 세상을 보냈으면 좋겠다.  글재주도 없고, 강연은 꿈 같은 소리라서, 그저 그의 삶을 mimic하는 것은 독서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라서 이는 물론 그냥 희망을 가장한 요망사항일 뿐이다.  다만, 사무실을 확장하거나 아니면 더 여유가 되어 자기만의 업무공간으로써의 건물을 마련할 수 있다면, 작더라도, 그 공간을 내 책과 영화 같은 것들로 가득 채울 수 있어도 좋겠지 싶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이 자신의 밥줄이고, 따라서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은 단순한 놀이를 위한 동굴이 아닌 삶의 공간인 것처럼, 나의 사무실도 그렇게 꾸며지면 좋겠지 싶다.  시간을 아끼고 조금 더 아늑한 심리적 배려를 위해 자기 소유의 건물이나 공간이라면 더욱 좋겠는데, 여기에 운동을 할 수 있는 weight room과 나무 floor가 깔린 작은 도장 공간을 함께 넣으면 참 좋겠다.  예전에 다니는 검도장 건물이 그랬는데, 반 채 정도가 이층까지 터진 도장이고, 나머지는 강연실 두 채와 함께 이층으로 나누어 살림공간을 만들어 놓았던 것 같다.  여기에 책이 들어가고 업무를 볼 수 있는 구조라면 더없이 좋겠다.  이런 공상을 하면서 일을 하면서, 그렇게 하루는 또 지나간다.

 

나름대로 대단히 유명한 인사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그의 책을 찾아가면서 읽고 있는데, 나는 다카시가 암에 걸린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2006-7년 경의 일인 듯 싶은데, 아직까지는 재발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 같다. 

 

방광암에 걸린 그는 치료과정을 거치면서 그 특유의 진지한 태도로 암에 대한 조사를 하고 이를 NHK 다큐로 찍어냈다.  이 책에서도 그가 늘 해온 것처럼 자세한 조사를 하고 책을 일고 암에 대한 리포트를 실제 사례에 비춰, 의사의 현실적인 관점과는 사뭇 다른, 하지만 더없이 현실적인 케이스 사례로 스터디했다. 

 

암의 근원에는 생명의 비밀이 숨어있고 암의 작용은 근본적으로 생명력의 작용이기에 근절보다는 공존하는 치료가 미래의 지향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쇠약해진 몸이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하고 스러지는 것을 볼 때, 구체적으로 악성암의 상태에서 항암치료로 연장하는 시간은 2개월 정도라고 할 때, 어쩌면 완치보다는 containment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조금 더 육체적인 조건에 친화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무엇보다 그는 암을 겪어 내면서 이 공부를 했으니까, 그의 그간의 경력을 볼 때 신빙성 있는 관점이라고 하겠다. 

 

지금은 절판된 다른 책들도 재출간되었으면 한다.  늘 생각하지만, 이렇게 한 세상 책을 읽으면서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있겠는가?  일본인 특유의 더쿠기질이 보이는 삶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드디어 이제까지 영문으로 번역된 Vampire Hunter D 시리즈를 다 읽었다.  21은 곧 나올 예정이니까, 잠깐 또 스토리를 잊어버릴 수 있겠다.  이건 사실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그저 읽을 때 그 찰나의 느낌을 즐기는 책이다.  이런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면 좀더 원본에 가까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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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완전판) - 커튼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확실하지는 않지만 예전의 크리스티 시리즈에서는 이 '커튼'을 마지막 편으로 배치했던 것 같다.  아마도 포와로의 죽음 때문일 것이다.  사실 미스 마플이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감 같이 다른 중심인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도 않을 정도로 크리스티 시리즈의 대명사는 포와로였다.  마치 코난 도일 하면 홈즈라던가 모리스 르블랑 하면 뤼팽이라던가 하는 구도를 반영한 사고였는데, 그 만큼, 아주 최근까지도 나는 크리스티의 탐정은 포와로 하나로 알고 있었다. 

 

전집에서는 14번째의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배경은 포와로의 말년. 어떻게 보면 2차대전 후, 해체되어 가던 대영제국의 마지막과 묘하게 오버랲 되는 느낌인데, 두뇌는 정정할 지언정, 관절염과 노령으로 고생하는 포와로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게 된다.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그의 가치관과 희대의 살인마의 범죄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그 살인, 그 사이의 가치관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오직 한 가지의 방법은 무엇일까.  과연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읽은 '커튼'은 읽는 내내 정해진 결말을 향해 치닫는 한 존재에 깊이 몰입되어 가슴이 조마조마했더랬다.  그래도 남은 시리즈에서 회고담으로써 또는 다른 시대적 배경에서 포와로는 부활하겠지?  혹시 궁금하다.  이 시리즈도 다른 작가들이 쓴 spin off가 있는지.  있다면 포와로가 다시 살아나는 스토리가 있지는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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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이녀석의 이름은 미미.  금년으로 14살이 되는 암컷 진돗개.  우리 집안에서 태어나서 눈을 뜨기 전부터 우리 가족을 알던 녀석이다.  알고 지낸 세월이 14년이 되니까, 지금 와서 보면 어지간한 사람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 만난 사람들보다도 더 오래 친구로 지낸 셈이다. 

 

이제는 많이 늙고, 당뇨까지 걸러서 예전처럼 날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원체 호기심이 많고 날랜 녀석이라서 여러 번 담을 넘거나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버린 덕분에 우리 가족의 속을 참 여러 번 썩였었다.  심지어는 동네를 지나가는 고속도로가 이 녀석 때문에 마비된 적이 있다는 사실.  한창때의 일인데, 집을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어찌어찌해서 고속도로 길로 들어선 것.  다행히 어떤 눈밝은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다른 차들을 다 세우고, 경찰을 부르고...당시 녀석을 찾고 있던 우리와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별 탈 없이 녀석을 찾아온 적도 있다.

 

최근에는 문이 살짝 열린 틈에 성치 않은 몸을 끌고 동네마실을 갖다가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이때에도 이웃에서 눈이 안 보이고 늙은 개가 힘겹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서 자기 집 뒷뜰로 유인해서 쉬게 한 뒤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바로 동물보호소에 데려다 줬는데, 그 덕분에 다음 날 아침, 밥도 잘 먹고 인슐린 주사까지 얻어맞는 녀석을 찾아올 수 있었다.  그 뒤로는 고생한 기억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 듯, 양양하게 회춘(?)한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다.

 

한가한 오후에 사진을 뒤적이다가 얼마 전에 찍어놓은 녀석의 사진이 있어 올려봤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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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2-0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된 가족이네요. ^^

transient-guest 2014-02-04 01:40   좋아요 0 | URL
20대 이후에는 이렇게 오래 누군가를 알고 지낸 경우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정말 오랜 가족이고 친구에요.ㅎ
 

지난 1월 20일은 Martin Luther King Jr. Day로 연휴였다.  실제로 킹목사의 생일은 1월 15일인데 매년 그 바로 다음 주의 월요일을 공식휴일로 쉬기 때문에 한 해의 첫 연휴라고 볼 수 있다.  워싱턴과 링컨 대통령의 생일을 합쳐 만든 2월 중순의 President's Day연휴와 함께 새해 초반, 한 해를 시작하면서 살짝 밀려오는 부담이나 피로감을 덜고 잠시 쉬어갈 수 있게 해주는 고마훈 연휴들이다.  킹목사 Day연휴 때 Lake Tahoe에 가서 짧은 여행을 하다가 이곳에도 헌책방이 있을까 싶어 찾아보고 방문한 곳이다. 

 

내가 즐겨찾는 로고스나 Recyled Books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 규모의 서점이지만 Keynote는 대형서점이 들어오지 않는 South Lake Tahoe라는, 그야말로 관광객과 리조트 직원을 빼면 인구도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영업하는 몇 개 안되는 서점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역시 너무 작고 지저분 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저 한번 와봤다 하는 정도의 기억만 남겼다.

보다시피 아주 작은 상가건물의 한 동을 서점으로 꾸며놨는데, 내부는 주인 할아버지의 책상, 그리고 아주 좁은 복도로 간신히 걸어다닐 수 있는 공간을 빼고는 책과 LP/CD로 꽉 차있었다.  이렇게 쓰고보니 나름 책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이긴 한데, 보관상태랄까 진열상태랄까, 마치 주인 할아버지가 서점의 마지막 주인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좀 너무한 얘기일까?  

 

 

마지막 사진의 저 유리문 책장에는 이 서점에서 가장 비싼 책들이 따로 보관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초판본이나 이런 희귀서적이겠지 싶다.  구세군과 함께 이런 곳에서는 책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좋은 값에 희귀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John Dunning의 북맨 시리즈가 떠올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책 냄새가 아닌, 씻지 않은 사람의 냄새가 심하고 환기도 잘 시키지 않는 지저분한 분위기 때문에 서점의 내부를 즐기지는 못했다.  소중한 것들을 모아놓은 공간인데, 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평화시장 쪽의 헌책방 밀집단지가 떠오른다.  그곳에서도 마구 쌓아놓은 책더미가 맘에 들지 않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두 권이나 사왔다.  지역을 생각하면 그리 싼 값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서점이 조금이나마 오래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래된 예전 PC를 뒤져보면 분명히 아벨서점에서 찍은 사진들도 몇 개가 나올텐데, 찾으면 그 참에 아벨서점을 추억해 볼 생각이다.  아직도 건재하게 지역사회의 리더 역할을 하고 계시는 사장님도 생각이 난다.  난 겨울의 아벨서점 내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책으로 가득찬 따뜻한 공간,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까지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그냥 누구라도 붙잡고 말을 걸고 싶을 정도로 나를 들뜨게 하는 그곳이 아벨서점이다.  다음에는 꼭 다시 한번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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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밀리다 못해서 이제는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을 지경으로 읽고나서 방치한 책이 쌓였다.  그렇다고 책읽기를 멈춘 것은 아니다.  하다못해 한번 읽고 말 책이라도 읽어야 사는 나 같은 문자중독자라면 이렇게 후기를 주기적으로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듯 싶다.  생업과 운동, 가정, 잠...이런 것들에서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무엇인가를 남기자는 것인데, 재주도 없으면서 욕심은 있어서 그래도 잘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몇 번이나 쓰다가 지워버린 리뷰가 여러 편 있다.  선을 볼 때마다 점점 덜 맘에 드는 상대가 나오는 것처럼 리뷰로 여러 번 쓰면, 그때마다 점점 더 조악해지는 글이 나온다.  그렇게 버티고 미루다가 결국에는 이렇게 한꺼번에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여러 번 그렇게 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  그나마 읽은 책들이 대부분 마중물처럼 더 좋은 독서나 깊은 독서를 위해 퍼부은 일종의 양적 독서였다고 하면 위안이 될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말 전혀 쓸데없는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래도 좀 잘 남겨보고 싶은 맘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작년 초반의 일이다.  알라딘 US가 직영체제로 넘어가면서 잠시 한국의 가격을 그대로 적용해준다는 꼼수에 넘어가서 한창 엄청나게 많은 책을 지르고 있었다.  물론 금방 배송료의 압박 때문에 결국 이전의 현지값과 다른 점이 없다는 생각에 신간구매는 줄였지만 2-3불 대에 나오는 중고책의 유혹은 엄청 강했다.  이때 아마 민음사의 문학전집도 많이 구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마침 또 딴지일보에서 나왔던 한국형 판타지 소설의 계보를 보면서 쓸데없이 후끈 달아올라서 이리 저리 책더미를 뒤지면서 구한 책이 이 시리즈이다.  룬의 아이들로 유명한 전민희 작가의 작품을 더 구한 것과 함께 약간의 수확이라면 수확인데, 지금 보니 또 다시 나오고 있는 책인 듯 싶다.  그만큼 꾸준한 작품이라는 점이 새삼 반갑다.

 

아직 전권을 다 읽은 것이 아니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얼개를 가졌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3-4권에서 한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야기의 중심은 세계나 공주가 아닌 말 그대로 'God's Knight"들이다.  특정한 성향을 부여받은 불사의 존재들인 이들은 신의 뜻에 따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세상의 일에 관여하고 떄로는 파괴를 통해, 때로는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세계의 질서를 잡기 위한 모험을 한다.  분명히 톨킨과 D&D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것 같지만, 나름대로 여기서 좀더 발전한 구성을 모색한 점이 돋보인다.  하지만, 글 자체는 역시 PC통신시절의 글을 읽는 것처럼 가벼운 것이 구어체와 현대어체를 섞어 놓았기 때문에 치밀한 맛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알라딘의 database가 가끔 아쉬울 때가 있는데, 이렇게 내가 영문번역으로 읽은 책을 따로 찾을 수 없어 번거롭지만 사진을 찍어서 올려야 하는 경우다.  어쨌든 지난 Lake Tahoe여행 이후로 다시 Vampire Hunter D에 대한 재미가 터져나와 바로 지난 주간에 두 권의 후속작들을 읽을 수 있었다.  "Fortress of the Elder God"에서는 벰파이어 일족과 일전을 벌인 잊혀진 그들의 고신을 멸하기 위한 여정에서 얽힌 D의 이야기를 "Mercenary Road"에서는 마찬가지로 5천년만에 다시 살아나 전쟁을 벌이는 아버지와 아들 벰파이어를 은행강도를 잡으러 가면서 마주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시리즈의 초기만 해도 주인공 D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는 것이 쉽지가 않았는데, 19권에서는 말도 좀 많이 하고 중간 중간에 비짚고 나오는 그의 emotion을 보는 것이 이채로우면서도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이제 20권을 읽을 시점인데, 곧 21권이 나온다고 하니 Jim Butcher의 Dresden Files의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아시모프라는 대가의 책을 읽은 것은, 아니 구하는 것만해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희대의 괴짜같은 이 천재작가는 어떻게 보면 아더 클락크 같이 진지한 철학을 던지지는 않지만, 생각해보면 가능한 모든 상상을 동원하여 거의 모든 대상과 주제를 모티브로 하여 희안한 이야기를 써낸다.  운 좋게 주말의 logos방문에서 아더 클락크의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와 아시모프의 Robots of Dawn을 구했는데, 하인라인, 섀클리와 함께 내가 열심히 찾는 작가들이다.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먼 미래에는 역사를 일정한 방향으로, 정확하게는 관리자들의 시대에서 볼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작한다.  여기에 따라 몇 몇의 사건이나 인물들을 사라지거나 다른 삶을 살게 되지만 대국적인 관점에서 큰 전쟁이나 학살을 막으면서도 자신들의 시대가 사라지지 않을 수준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관리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주인공이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다 무너지는데, 이야기의 끝에 던지는 (1) 관리조작된 평화 vs (2) 자연스러운 진화라는 화두는 끝끝내 풀어지지 못했다.

 

원제를 직역하면 '여명'이 아닌 '황혼'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이야기를 보면 켈트의 지난 시절, 요정과 난쟁이, 영혼과 정령이 사람과 함께 살던, 사람의 의식속에 살아있었기에, 그들의 존재를 느끼고 살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이들, 그리고 이들을 인식하고 함께하던, 그러니까 이교도로써 박멸의 대상이 아닌 생활속에서 켈트인들과 함께 한 존재에 대한 추억을 다루고 있다.  이런 것들이 지난 800년 간의 식민통치와 정복자가 강제한 외래문화와 인종 - 그러니까 스코틀랜드계 장로교의 이주 - 때문에 이제는 아련한 기억속에서만 남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이야기라면 '황혼'이 아닐까?  역자의 후기에 나온 "여명"으로 번역된 이유는 정치적으로는 분명 맞아보인다.  그러니까, 아일랜드가 가장 어둡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위대한 아일랜드의 문필가들은 민족중흥의 새벽을 꿈꾸었다는 이야기인데, 너무도 현대에 와서 돌아보는 정치/역사적인 관점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읽고 받은 느낌은 '황혼'이 분명하다.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요정과 정령들, 사람들의 의식변화와 함께 우리 곁을 떠난 이들 '도깨비'와 '성황신'은 우리의 세계관에서는 그들의 황혼을 맞이한 것일테고, 이들의 황혼과 함께 우리의 의식세계도 보다 더 기계화 되고 현대화 된 것일테니까. 

 

유일신교 - 천주교/유대교/개신교, 이슬람 같은 - 의 도래와 세계정복은 분명히 인류역사에 있어 어떤 한 phase를 보여주는데, 이들은 기존의 local신앙을 대체하거나 흡수하는 방식으로 우리 머릿속에서 오래된 존재들을 떠나보냈다.  많은 숫자의 종교건축물이 위치한 자리가 그 전 시대 신앙의 대상이 숭배되던 자리를 그대로 덮고 만들어졌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너무 깊게 들어갈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이런 것들의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한밤의 술자리는 흥겨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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