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읽은 책이 있는데, 미처 후기를 남기지 않고 지나간 것이 문득 떠올랐다.  그만큼 대단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는 의미로 생각되기도 한다만, 어쨌든 가능하면 꾸준하게 하는 것이 내가 남보다 조금 더 나은 점이라고 생각하기에 다시 페이퍼를 열었다.


한비야씨의 책은 처음 읽었다.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내가 원래 베스트셀러는 피하자는 주의가 있다.  거기에 월드비전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해서, 그 단체를 주 근거지로 사회활동을 하면서 유명세를 커리어로 만든 점이 없지 않다는 생각에 거의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저 걸어서 여기 저기를 돌아다닌 건 긍정적으로 보는데, 일단 그런 여행에서 얻어지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은 주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책이 나온 건 2001년이니까, 지금부터 무려 15년 전인데,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없어서, 세계로 막 나아가려고 시장을 열던 2001년의 중국과 2016년의 중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이다.  다시 말하면 이 책에서 나온 내용은 대개 지금은 큰 쓸모가 없고, 그저 2001년의 비전과 2016년의 현실을 비교하는 정도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정도.  그런데 이 책은 대략 1년 정도의 어학연수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라서 더더욱 외국인의 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기대할 수 없고, 내가 썼으면 출판도 어려웠을 책이 한비야라는 유명인이라서 팔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예전부터 이런 저런 채널로 한비야씨의 업적(?)을 둘러싼 행간의 이야기들을 접한 바도 있고 해서 더더욱 난 역시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온 탓에 읽었을 뿐, 내 돈을 주고 사서 읽을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읽은 어떤 이의 자전거 미국횡단 여행기를 읽었을 때에도 그 자체는 대단하지만서도 달리 큰 감동을 얻었거나 잘 썼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곳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단면적인 겉핥기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만도 못하다는 생각이다.   


그냥 디자인을 다룬 책.  특별히 좋은 서가나 서재를 소개했다기 보다는 디자인을 위주로 사진 90%에 글 10% 정도의 비율로 구성된 책이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고급한 서재부터, 영국 시골을 작은 서가, 그리고 현대풍의, 서재나 서가보다는 디자인 공방 같은 구조의 서재까지 다양한 사진을 보니 눈이 조금은 호사를 누렸다.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좀더 흥미있게 곰씹어 들여다볼 것 같지만, 워낙 그런 쪽으론 관심이 없기에 난 그저 어떤 서재가 내 맘에 드는지,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한지, 아니면 단순히 디자인에 더 치중을 했는지만 따져보았고, 글도 몇 자 없어서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마셔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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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2 0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2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6-09-22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한비야 강연을 한번 들은 적이 있는데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이라는,,,,에너지가 넘치는 , 말도 굉장히 빠르고... 인상을 받았습니다. 강연장면 사진을 몇 장 찍으려고 했는데 월드비젼 측에서 못 찍게하더군요. 무슨 연애인처럼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도 조금 받았어요...

transient-guest 2016-09-23 01:50   좋아요 0 | URL
열정은 넘치는 사람이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만 선교목적의 단체가 교묘히 자선단체를 표방하여 기부를 받고 그 운영의 투명성 등 문제가 되는 것으로 알려진 단체와 연계된 활동도 그렇고, 말씀처럼 이젠 너무도 높아진(?) 위상(?)에도 거부감이 있어요. 적어도 제가 읽은 저 위의 책은 무척 shallow합니다. 다른 건 모르겠어요. 특히 90년대의 여행 (어제 찾아봤습니다)을 다룬 책은 평가가 높습니다...
 

사람마다 자기한테 맞는 독서방법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상황, 수준, 경험, 필요 등 많은 변수가 반영되면 실질적으로 최고의 독서법이란 것을 정의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책을 읽어오면서 쌓은 경험에 비춰보면 다독과 완독은 적절히 섞으면 꾸준한 독서행활에 있어 꽤 좋은 방편이 되어주는 것 같다.  이번에도 그런 믿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다독은 여러 사람들이 많이 하는 얘기지만, 완독은 의외로 평가절하가 되어 있어 조금은 안타깝다.


그리스 신화에서 보면 희대의 악녀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바로 메데이아다.  코르키스의 왕녀였던 그녀는 황금빛 양모를 찾아 자기 나라에 온 이아손에게 반해 (1) 아버지와 국가를 배신하고, (2) 동생을 죽였으며, (3) 이아손을 돕기 위해 그의 적들을 죽였고 (4) 이후 이아손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자 둘 사이에 낳은 아이들을 죽였다고 한다.  서양에 전해지는 마녀 캐릭터의 원조격인데, 잠깐 다뤄지지만 무척 잔인하고 음험하게 전승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다양한 상상과 추론, 그리고 창작을 통해 이를 페미니스트의 시선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해석으로 새롭게 그러낸다.  수정주의적인 접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쩌면 원전에서는 잠깐 다뤄지는 메데이아와 그녀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군상의 독백을 통해 신선하게 그리고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못해도 이번 여름을 전후로 해서부터 운동을 하면서 간간히 읽어왔을 것이다.  SF활극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재미는 커녕 상당히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 책 대신 다른 것을 가져다 읽곤 하다가 이번에 1/3정도를 읽은 '메데이아...'를 다시 펼쳤는데, 이건 완전히 OMG, 어떻게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몰입도가 높은 책일까 하는 생각으로 3-4개월만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주었다. 


모든 책이 다 완독을 요구하지 않고, 완독을 deserve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고전이나 다른 분류로 선별된 좋은 책들은 완독을 하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든 경험이 아니었나 싶은데, 다독과 함께 가능하면 완독을 권하는 이유이다.  소위 말하는 논픽션의 경우, 특히 방법이나 이론을 내세운 책은 조악한 것도 많고, 내 목적과 맞지 않거나 좋은 논리를 펼치지 않는 저자의 경우 중간에 덮어도 크게 아까울 것이 없다.  하지만, 괜찮은 책일수록 처음에는 나와 click하지 못했어도 다음에 읽으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내가 이런 경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라서 어느 정도 자신있게 하는 말이다.  가능하면 다독+완독, 그리고 정독을 적절히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섞으면 꽤 괜찮은 일상의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슬슬 아사다 지로의 책도 국내의 번역본은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한 수치에 바탕을 둔 건 아니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판본이나 제목과 수록된 작품이 조금 다르게 섞여 나온 책을 읽게 되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는 말이다.  '시에'라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고, 다른 몇 가지의 단편 또한 이전에 한번 정도는 다른 책으로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을 사면서 그랬나, 아니면 다른 기회에 그랬던가, 제목과 구성이 조금 다른 같은 아사다 지로의 책을 사 읽은 것은 분명히 기억하니까, 이젠 슬슬 끝나가는 것이다.  단연코 한국어 번역으로는 '칼에 지다'로 나온 '미부키시덴'이 젤 좋았지만, 다른 아사다 지로의 작품도, 비록 국뽕 냄새도 나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거슬리는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 괜찮은 작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하게 세상에 나온 책이다.  이젠 완숙을 넘어 원로에 가까운 나이가 된 시오노 나나미는 꽤나 꼬장꼬장한 할머니인 듯, 출판사가 이 책에 엮인 글을 책으로 내기 위해 기울인 정성과 노력, 게다가 일본인 특유의 인간적인 면에 매달리는 앙탈(?)까지 - 신입사원을 담당자로 내세우면서 '사나이로 만들어 달라'는 말로 책을 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단다 - 꽤 힘들게 세상에 나온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간 따로 책으로 엮인 글이 아닌 것들, 주로 잡지나 신문에 기고한 것을 일일이 찾아서 따로 떼어낸 후 가봉하여 들고 와서 '사나이로 만들어 달라'는데, 시오노 나나미가 그간 자신에 대해 말해온 대로의 여자였다면, 그것도 이탈리안으로 희석되었지만, 일본색이 강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간 한국어로 번역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은데, 이 책에서 엮인 것들을 읽을 기회는 없었을 것이었기에, 그리고 꽤 오래간만에 읽는 그녀의 글은 다소 늙은 냄새도 나고 조금은 보수우파적인 거슬림도 있었지만, 여전히 괜찮았다.  


'생각의 궤적'보다는 좀더 느슨한 듯 느껴지는 책이다.  하지만, 소개된 글은 뭐랄까, 좀더 본격적으로 꼬장꼬장하게 다가온다.  왜색이 더 강해진 느낌도 있는데, 기실 그간 그런 색채가 덜 한 글과 작품이 주로 번역되어 나왔겠지, 아무렴 갑자기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달라졌겠는가.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해서, 시오노 나나미가 매력을 느끼는 상대는 '힘'있는 '남자' 또는 그에 못지 않게 '힘'있는 '여자'라는 생각,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녀는 지금 일본이 가는 길에 희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녀의 기준으로 볼 때, 아베 신조라는 못난이가 '힘'있는 척을 할 뿐, 진실로 '힘'을 가진 남자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이 책에서 나온 글에서 보면 '로마인'에서 시작해서 '르네상스'로 간 그간 그녀의 여정은 매우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한 동안 잊고 지내던 로마를 다시 세상으로 끄집어낸 것이 르네상스라면 (그녀의 말처럼) 말이다.  앞서의 연장선상에서 그저 반갑고 괜찮았던 reading.


알라딘 서재가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다.  어제도 하루 동안 집계되던 방문자 숫자와 다음 날 나온 같은 날짜의 통계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도 같은 문제로 알라딘에 문의했으나 다른 에러가 없었다고 하니, 이번에 문의해봐야 같은 답이 나올 것은 뻔한 일이다.  아무래도 북플을 런칭해서 양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지만, 질적으로는 매우 낮아진 것 같다.  요즘의 알라딘은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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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2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용 독서를 추구하는 시대가 되니까 완독을 ‘고지식한 독서 행위’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웬만하면 완독을 시도합니다. 대충 읽으면 책의 오류를 놓칠 수 있거든요.

요즘의 알라딘은 북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9-22 03:24   좋아요 0 | URL
저는 일단 책읽기라는 개념, 책이 무엇인지를 정립할 때, 공부나 research는 독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계서가 성공학을 거쳐 인문공부로 둔갑하면서 특히 가속화된 현상이 굳이 책을 완독하지 말 것이라는 지침인데, 글쎄요. 제 경험으로는 좋은 책은 설사 한 시기에 나와 맞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어느 날엔가는 깊은 속내를 보여주는 걸 많이 봤기 때문에, 저는 설사 지금은 내려놓은 책이라도 언젠가는 완독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완독할 만한 좋은 책을 사야하고, 그 책은 완독해야한다고 믿어요.. 이놈의 북플...-_-::: 기존의 서재가 많이 안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탐방서점 - 금정연과 김중혁, 두 작가의 서점 기행
프로파간다 편집부 엮음 / 프로파간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가 김중혁과 서평가 금정연이 각각 네 군데씩의 독립서점을 방문하여 세미나를 갖고 이를 대담형식으로 만든 책이다.  방문했던 서점은 유머마인드, 고요서사, 책방 만일, B-Platform, 일단멈춤, 한강문고, 땡스북스, 햇빛서점, 이렇게 여덟 개.  대담형식의 책에서 느껴지는 다소 지겨움 혹은 형식으로 인해 느껴지는 덜 정리된 느낌을 빼면 꽤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된다.  서점의 대형화를 넘어 온라인으로 집중된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고, 지난 10년 간 전국의 서점숫자는 거의 천 단위로 줄어들었다고 하는 시대에 이렇게 자신의 꿈을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반갑다.  비록 수입은 겨우 월세를 낼 정도이고, 실질적인 소득은 부업으로 버는 삶이지만, 그리고 어인 일이인지 이런 독립서점 또한 서울에 집중되는 중앙으로의 지향성은 좀 그렇지만, 그래도 부러운 삶.   


좀 낭만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데, 한 번 읽고 정말 좋았던 작품이 책장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좋지 않나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안심되는게 있어요...'차경희, 고요서사

--> 내가 책을 사들여 쌓아놓게 되는 이유일런지도 모를 고요서사 쥔장의 말씀.  나 역시 언젠가 읽을 것이라 생각되는, 지금 흥미를 갖고 있는 책은 가능하면 다 구해서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앞서 읽은 독서실력에서 교주가 역설한 바도 있지만, 책은 역시 갖고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면 아무리 처음엔 별로였던 책이라도 -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전제하에 - 신선하고 몰입도가 높아지는 한 순간이 오는데, 종종 경험하는 바, 책이란 물건이 늘 신기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된다.  언젠가 셜록홈즈와 왓슨이 담소를 나누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매서운 런던의 추위를 이겨냈을 것만 같은 아늑한 서재를 만들 것이다.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



'오래된 얘긴데, 외부 친절이 있고 내부 친절이 있다고 하잖아요. 외부 친절은 손님들한테 친절한 거고, 내부 친절은 직원들한테 친절한 건데, 이 두 개가 결합되지 않으면 친절이 안 나와요...직원들이 기쁘지 않는 것이 책에 그대로 드러나요...'최낙범, 한강문고

--> 경영자나 업주가 병신 같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일하기 싫은 환경을 조성해놓고, 120%를 바라는 것을 볼 때가 그렇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가 딱 그랬는데, 욕심을 조금만 덜 부리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것인지는 나도 곧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전형적인 모습은 내부친절 100%에 외부친절 50% 정도인듯.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는데, 지금까지는 내 철학을 잘 지켜왔다고 자평한다.  



'알리딘에서 샀는지 예스24에서 샀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납니다. 옛날에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면 책에다 써 놓죠, 몇 월 며칠. 지금은 그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사실은 책이 가지는 고유한 특질을 더해 주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게 없어지는 거죠...같은 책을 사더라도 더 의미있는 행위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중혁, 대담 탐방서점

--> 이건 100% 공감하는 바인데, 대략 2000년 이전까지 구매한 책들은 거의 다 어디서 언제 어떤 이유나 계기로 샀는지 지금도 다 기억하는 반면에, 그 이후의 책들은 사실 그리 의미를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판된지 오래인 윌리엄 샤이러의 '제 3제국의 흥망' 셋트를 산 곳은 당시 한국에 계시던 부모님이 내가 미국에 간 후 이사한 신흥타운의 1.5.3 서점이었다.  김용 무협지의 상당부분은 희망서점에서 샀고, 협객행은 책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들이 꽉 들어차있어 많은 중간규모 이상의 서점들이 성업중이던 동인천 어디에선가 구매했다.  지금이야 한국책은 거의 온라인에서 구매하지만, 가끔 한국에 갈 때 방문한 헌책방에서 한 책은 대략 어느 서점에서 샀는지 기억할 수 있다.  요즘도 헌책을 보면, 모월모일 누가 어디서 왜 샀는지를 간략하게 적은 책이 손에 들어올 때가 있는데, 대략 온라인서점이 활성화되기 이전의 날짜가 보인다.  


의욕이 완전히 떨어진 한 주간이다.  운동도 하기 싫고 밥먹기도 싫고, 일도 하기 싫다는 것.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지만, 해결은 요원하다.  아...갑자기 사는게 다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난 가을남인가???  늘 가을이 되면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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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독서 실력'에서 이어서 '책의 역습'을 읽었다.  사실 장바구니에 넣을 때에도 긴가민가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새로운 이론을 이야기한다는 점은 plus지만, 내용상 내가 크게 공감할 수 없었기에 조금 건성으로 읽어낸 부분은 minus.  책이란 매체를 전통적인 의미에서 보는 종이책이란 것 외에도 다양한 의미로 재해석했고, 이에 따라 책의 미래가 밝다고 역설하고,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실험적인 서점 plus alpha를 예찬한다.  그런데, 논리를 펼치는 과정에서 어쩌면 주객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 하는생각도 드는것이다.  옷가게에서, 음식점에서 sales 테제를 잡은 책팔기를 서점이라 할 수 있을런지, 또 그런 시도, 서점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변해가는 시장환경에 따라 서점의 identity를 다른 업종과 겹쳐 hybrid형태로 가져간다든가 하는 건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앞서 읽은 책과 비교하니 어쩌면 그리도 서로의 대착점에 있는건지.  분명, 저자가 얘기하는 부분은 현실과 세태를 반영한다만, 꼬장꼬장한 원론적인 독서를 이야기할 때 어쩐히 불편하다.  


어떻게 하다보니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 14권을 사면서 이를 전후하여 소세키에 대한 책을 먼저 두 권씩이나 읽게 되었다.  앞서 읽은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가 정말 '가뿐'한 책이었다면, 강상중 교수의 책은 이 책에서 선별된 나쓰메 소세키의 유명저작 - 나는 고양이소로이다, 산시로, 마음, 그 후 등 - 의 행간을 짚어보고 보다 깊은 discussion을 유도하는 내용으로 매우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내용으로 보나, 깊이 및 흥미로 보나 한 수 위인 셈이다.  이와나미 신서의 한 권으로 나왔는데, 사이토 다카시가 그랬던가, 이와나미 신서 150권을 읽으면 기본적인 교양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이와나미 시리즈로 AK북스가 내놓기 시작한 문고본을 한 권씩 모으게 되었는데, 실사구시에 목적을 둔 주제를 선정하는 등 다소 내 기준에서는 지겨울 수도 있는 책들 중 이런 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무척 반갑다.  '가뿐하게...'보다는 이 책이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본의 근대소설의 선구자로 꼽히는 나쓰메 소세키는 식민지시절 한국의 문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한국의 근대소설이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소세키의 대표작 몇 권 정도는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읽고나서 정리하지 못한 탓에, 그리고 띄엄띄엄 쉬다 읽었기 때문에 딱히 정리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  그냥 일단 읽었다는 취지로 남기는데, 조금 한가한 날 다시 뒤적거리면서 읽던 날의 기억을 떠올려볼 생각이다.  





스토너 또한 읽던 새벽에서 아침까지의 감동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쓸 수 없었고, 좀더 깊이 알기 위해 영문으로 읽으려는 생각에 영문판도 구입했으나 그 뒤로 다른 책과 일정에 밀려 감감 무소식이다.  역시 나중을 위해 기록만 해두기로 한다.  은근히 내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지길 기대하면서 아버지에게 추천했으나 읽은 후의 반응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로 돌아왔으니 사람마다 역시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는 그런 의미로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좀더 personal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이렇게 쓰고나니 후기를 쓰는 것이 살짝 두렵다.  홀딱 벗고 남들 앞에 서있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니까...


뭔가 시끌벅적한 것이 한국이나 여기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는데 행여 트럼프가 당선이라도 된다면...생각하기도 싫다.  갑작스런 힐러리의 건강문제가 가뜩이나 공화당의 끈질기고도 위선적인 이메일사건공격으로 머리가 아픈 선거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냥 벼락이라도 맞고 트럼프가 사라지는 걸 기대해본다.  정말이지 살아있어야 세상에 피해만 끼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보는 편인데, 트럼프나 박근혜나 그 일당이나...이명박이나...귀신은 뭐하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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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9-1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신들 직무 태만입니다. 게스트님도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

transient-guest 2016-09-15 01:07   좋아요 0 | URL
그런가봅다. 추석 즐겁게 보내셔요...ㅎ
 
독서실력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지영 옮김 / 생각의집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이런 저런 책이 새로 도착하여 정리하고 사무실에 일단 쌓아둘 공간을 확보한 후 리스팅을 하는 등 정신 없이 어제 오후를 보냈다.  그 와중에 일도 하고, 전화도 받으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떻게 해도 정리하기 힘들어지고 있는 사무실 공간에 대한 고민과 짜증은 덤으로 생긴다.  리뷰나 서평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어쨌든 미루지 않고 작성하려는 독서후기 또한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쌓인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억지로 머리를 짜내는데, 일종의 강제성이 생활에 종종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매사를 능동적으로 살면 좋겠지만, 워낙 평범한 사람인 나는 필요에 따라 억지로 상황을 만들고 나를 집어넣어야 하는 때가 있다.  


사이토 다카시, 다치바나 다카시, 장정일, 이현우, 금정연 등등 이루 다 기억할 수 없는 독서달인들이 쓴 책을 읽어왔다.  일부 공감하고, 어떤 경우엔 그리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만, 모두 내 독서지평을 넓게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카자키 다케시는 '장서의 괴로움'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책으로 장서덕후들의 교주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 서재'의 장샤오위엔 선생과 함께 나의 장서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 같다.  그들의 글을 읽으면 위로를 받는다는 말과도 같은데, 적어도 어떤 목적성의 독서 또는 수단으로써의 독서론을 설파하는 사람들 - 고수에서 하수까지 - 과는 다른 길을 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책과 책읽기 그 자체를 한없이 사랑한다는 점에서 다치바나 다카시 혹은 사이토 다카시류의 독서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인류의 스승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여기에 비하면 이모씨의 대두를 전후로 유행하기 시작한 자잘한 독서선생이나 관리학 강사들은 그 수준이 매우 얕다고 생각된다.  


금과옥조와도 같은 문장이 많았는데, '구매한 책을 전부 읽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읽는 책밖에 사지 않는 셈...게다가 책은 한 번 읽으면 그대로 용무가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참으로 어수룩한 생각...책과 착실히 마주하여 깊이 있는 독서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책을 쌓아두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아니, 그 길밖에 없다.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착실한 독서생활을 불가능...'을 읽었을 때에는 그간 내가 걸어온 장서인생과 철학을 다시 확인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가지고 있다는 것, 지금 당장 읽지 않더라도 흥미가 가는 책을 모으는 건 '지구와 달의 거리만큼 차이'가 있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베스트셀러에 관심이 없는 나처럼 그 또한 이들에겐 특별한 관심이 없으나, 출판계의 현황파악의 수단으로써의 사실적 중요성, 그리고 유행이 지난 후에 읽어보는 베스트셀러의 사회반영성 등에 대한 의견도 꽤 신선했다.  뒷쪽으로 갈수록 내가 모르는 일본서적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서 마지막엔 집중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는 상당한 공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공부를 못하는 편이었으나 책읽기를 즐겼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최소한 미국이라는 기름진 토양에서 내가 피어날 수 있는 계기와 준비과정은 고스란히 독서에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학창시절에 책읽기말고는 잘하는 것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교사에게 상처받았거나 용기를 얻은 이야기는 그대로 내가 기억하는 한 시기의 내 모습과 겹쳐진다.  


책읽기에 대한 외로움에서 시작된 독서이론과 책에 관련된 것들의 읽기가 여기까지 왔고,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젠 한 줄에 약 30권이 들어가는 4단책장 한 개로는 확실히 모자랄 만큼의 책을 모았다.  저자는 2개 정도인데, 난 아직 그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이 또한 고수에 견줘볼 때, 나에겐 구도의 길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무엇인가 다른 길을 찾게 했으니까.  


저자가 쓴 다른 책도, 칼럼의 글도 읽어보고 싶다.  다치바나 다카시와는 사뭇 다른 의미의 감동이 전해지는데, '수단'으로서의 독서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나는 '수단'으로, 그러니까 research를 위해 자료를 찾은 것은 책읽기로 치지 않는다.  물론 독서의 방법이나 형태에 어떤 기준이나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종이책을 그 재미를 위해 - 지식이든, 감동이든, 정보든지, 하지만 순수하게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 읽는 것을 말한다.  난 항상 그렇게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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