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로] 













산시로라고 하면 난 우선은 '스가타 산시로'를 떠올린다.  스가타 산시로는 메이지 시대, 강도관 유도의 초창기, founder 가노 지고로의 수제자들 중 한 명으로서 '산폭풍 = 야마아라시'라는 기술로 유명했던 사이고 시로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의 이름이자 주인공이다.  예전에 한번 다른 출판사의 번역으로 나온 [산시로]를 읽었고, 이번에 조금 더 정성들여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산시로]하면 '스가타 산시로'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흔히들 젊은 시절 한번쯤은 산시로가 되어봤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산시로가 겪는 일이나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묘사는, 비록 지금과 100년 이상의 시간차이가 나긴 하지만, 보통의 20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20대의 순수함과 풋풋함에서 오는 미숙함이랄까,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용기 내지는 timing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은 인서울 학교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가지만, 과거 지방에서 상경한 지역수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고 해서, 두 번째의 독서는 더욱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다.


산시로의 일도 그렇고, 다른 등장인물도 flow에서 큰 무리가 없는데 소세키의 여성 캐릭터는 왜 항상 연애와 결혼을 분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히 산시로와 썸을 타는 것 같았었는데, 소위 좀더 그럴듯한 상대가 갑툭튀해서 결말을 지어버리는 건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슷하게 차용된 것 같다.  어떤 분의 글에서도 이런 부분, 그러니까 신여성에 대한 소세키의 반감(?) 같은 것을 이야기한 것을 보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도, 마음이 지향하는 바와 머릿속에 들어있는 현실 사이의 묘한 괴리감 같은 것은 느껴진다.  아직은 자유연애가 성행하기 이전의 시대였고, 여자팔자는 능력보다는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던 때였음을 감안해야 하지만, 어쨌든 산시로의 썸은 그렇게 끝나버렸으니까.  


책이 나에게 가장 잘 다가오는 순간은 아마도 내가 겪었던 일이나 현재 느끼는 것에 투영이 되어 격한 공감을 느끼는 때가 아닌가 하는데, 그런 점에서 나도 분명 한때는 산시로였으리라.   


[그 후]













[그 후]가 [산시로]의 다음편이라고 해서 계속 산시로를 찾아보다가 이름이 바뀌었거나 성을 사용한 것인가 싶어 다시 한참 책을 뒤져보았다.  그러다가 온라인에서 간략한 reference를 찾고나서 이 바보같은 짓거리를 멈출 수 있었다.  


내용의 모티브가 [산시로]에서 이어지는, 전기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인 것을 그렇게 험한(?) 경로를 통해 알고 나서, 다시 열심히 읽어가면서 왜 이 책이 [산시로]에서 이어지는지 생각해보았다만, loose하게 이어지는 점 왜엔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산시로]의 이야기가 20대 초반의 대학시절을 다룬 것이라면 [그 후]는 말 그대로 사회에 나온 사람들의 삼각관계가 된다.  


좋아하는 여자는 친구의 아내가 되어 있다.  그것도 나의 중매로.  그런데, 실제로 이 여자와 썸을 타던 건 나였다.  게다가 이 친구놈은 결혼 후 취업자리가 잘 풀려 사는 듯 했는데, 알고보니 파락호가 되어 있다.  말하지는 않고 있지만, 친구의 아내가 사는 모습이 안쓰러워 이리저리 돈을 변통해주면 다른 것에 써버리고 만다.  겨우 다시 취직은 했는데, 사는 모습도, 부부사이도 그냥 그렇다.  "내"가 처음에 신경쓰는 건 부부가 잘 살았으면 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녀"가 좀 잘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절, 아니 소세키가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의 문제는 종종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또한 부자인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타 쓰는 룸펜이다.  그런 주제에 서생과 하녀까지 두고 살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아버지가 찍어주는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것이다.  제사에 쓰는 소처럼 정략결혼을 위해서 키워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나"라는 "소"가 갑자기 제물로 쓰이는 것을 거부하고 "사랑"을 하려고 한다.  사회통념상 문제가 있고, 친구라는 놈을 생각해도 그렇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나"에게는 땡전한푼이 없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오까네가 문제다.  


여러 번 고민도 하고, 형과 아버지와 형수와 이야기도 해보고.  하지만 결국 "나"는 맘이 가는대로 해야겠다.  게다가 "그녀"와의 마음도 확인을 했고.  그런데 방법이 좀 묘하다.  친구에게 가서 결심을 통보하다니.  


후회가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과거를 생각하면 이런 저럼 분기점에서 다른 행동을 취했었어야 했다는 건, 지금에서, 그간의 경험과 생각이 쌓였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과거에 취했었어야 하는 행동을 지금으로 가져와버리는 것에서 현실의 문제가 발생한다.  모두에게서 단절되는 것으로 말이다.  "그녀"는 얻었으되, 다른 걸 다 잃어버린 삶.  그 삶이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다.  맘대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문]













이제 드디어 3부작의 마지막이다.  [문]에서의 이야기는 [산시로]에서 [그 후]로 이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에서 [그 후] 다음의 일을 다룬다고 이해된다.


부부의 과거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뭔가 안좋은 일을 통해 맺어진 듯한 이야기는 대화나 설정에서 가끔씩 나오는데, 여기서 마치 [그 후]의 "나"와 "그녀"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한국의 멜로드라마 같은 [그 후]의 격정(?)과 모든 것을 던져버린 사랑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 이제 이 부부는 그렇게 세월속에서 다른 모든 것과 단절하고 가난하게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건 하나도 없고, 여전히 돈도 없고.  "그"에게는 아무런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원래 재산이 없지는 않던 집안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숙모가 다 가져가버렸고, 그 조건으로 뒤를 봐주던 동생은 재산이양이 다 끝나고 바로 cut-off되어버린다.  


마치 사랑의 흔적과 세월의 정만 남은 듯한 부부의 모습에서는 [산시로]의 가슴 설레이는 풋풋한 썸도, [그 후]의 애절한 사랑도 느껴지지 않는다.  함께한 세월에서 얻어지는 그것이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이런 경우 "애"가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옵션이 아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은 "애"는 가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인생의 변화는 더 이상 추구할 수 없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희미해지는 사랑을 잡아줄만한 것 또한 조금씩 사라져갈 것이다.  "정"이 "사랑"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문]의 다음 이야기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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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세키 전집을 계속 읽어나가고 있다.  흔히 전기 3부작으로 알려져 있는 [산시로], [그후], [문]까지 다 읽고 [춘분 지나고까지]를 보고 있다.  후기를 남겨야 하는데 요즘 바쁘기도 하고 마음이 번잡하여 서재에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2. 3월부터 나를 비롯하여 많은 한국사람들을 괴롭히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내년까지 넘어가면서 추이를 지켜볼 듯.  그 와중에 또 다른 방향으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일이 만들어지고 있다.  


3. 워크룸프레스의 책을 모으고 있다.  '제안들'은 2015년 12월 이후로는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이 시리즈는 원래 30권으로 기획한 것으로 안다.  이 밖에도 소소한 워크룸프레스의 책을 사들였다.  다 갖출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책 대부분이 손에 쏙 들어오는 가벼운 문고본인데, 디자인도 그렇고 주제도 나에겐 생소한 것들이 많아서 더욱 맘에 든다.  


4. 앞서 얘기한 소세키 전집은 11월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춘분 지나고까지]가 10권이고, 시리즈는 [명암]에서 14권으로 끝나니까, 다섯 권 정도만 더 읽으면 된다.  그런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태풍]과 [풀베개]를 다시 읽어볼까도 고민 중. 


5. 시마다 소지의 작품 여섯 권이 오늘 도착했다.  이들도 운동하면서 조금씩이라도 읽거나 주말에 커피를 마시면서 서점카페에 앉아서 읽어나갈 생각이다.  이번에 온 여섯 권으로 절판되었거나 다른 이유로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한국어로 번역된 시마다 소지의 모든 작품을 읽게 된다.  역시 나에겐 덕후의 기질이 있는 듯.  


6. [우리, 독립책방]이란 책을 샀는데, 책이라기 보단 잡기 같아서 조금은 실망스럽다.  좋은 내용으로 술술 읽히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7. 소세키를 다 읽으면 카잔차키스 - 이것도 전집에서 절판된 [성자 프란체스코 1]을 빼고는 다 구했다 - 를 도전할까 생각도 하는데, 카잔차키스는 쉽게 읽어지는 작가가 아니고 내용도 무척 high density라서 역시 고민하고 있다.  아니면 [마의 산]을 세 번째로 도전해야 할지...


아직 반나절은 더 일해야 하고, 내일은 벤쳐기업 세미나에 나름 내 전문분야 패널로 초대(?)를 받아서 저녁일정이 있어 이에 대한 준비도 해야하는 등 바쁜 편이다.  남은 2016년은 이렇게 오래 hold한 케이스들 밀어내고, 2017년을 위한 씨를 뿌리면서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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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크룸프레스의 사드 전집을 모으고 싶은데, 1권 출간 이후로 소식이 뜸해요.. ^^;;

transient-guest 2016-11-03 01:17   좋아요 0 | URL
출판사의 사정이 있겠지만, 처음에 예정한 바에 따라 시리즈를 이어주었으면 합니다. 독자와의 약속이기도 한데, 요즘은 워낙 불황이라서 그런지 이런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도 아직 기다리고 있어요...
 

[갱부]까지 소세키 전집에서 여섯 권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앞서의 다섯 권에서 굳이 비교하면 다른 작품들보다는 [풀베개]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나는 고양이소로소이다]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은 사회상을 반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저자의 경험과 주변인물, 그리고 사건을 빗대서 저자가 생각하는 시대상을 그린다면, [갱부]나 [풀베개]는 이들보다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습작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아직까지는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곤'폭포의 자살 모티브는 여기서도 나오고, 가끔씩 조연들의 대화에서도 어느 시절인지를 유추할 수 있는 주제가 나오지만, 그래도 [갱부]는 확실히 보다 더 작은 범위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화자는 도쿄의 괜찮은 집안출신에 분명히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수학 중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그를 사이에 둔 일종의 삼각관계가 형성이 되었는데, A에겐 관심이 좀 덜하고 B에게 맘이 더 가지만, 집안에서는 B보다는 A에게 더 기우는 와중에서 그의 행동이나 말에서 뭔가 사단이 났고, 꾸지람을 들은 끝에 세상을 등지겠다는 각오로 하이칼라 옷차림에 32전을 들고 탄광촌에 와버렸다.  굳이 갱부가 될 생각도 없이 어쩌다 보니 거간을 따라 기차를 타고 한참 들어간 촌에서 다시 걸어서 산속으로 멀리 들어서있는 광산촌으로 와버렸다.  


처신하는 방법도 모르고, 힘도 그저 그렇고, 순발력도 떨어지는 터라, 기왕 왔으니 한번 해보자라는 식으로 갱부가 되기 위해 하루를 견습삼아 갱부를 돌아다니느라 고생을 하고, 맛없는 밥을 먹고, 자다가는 빈대에 뜯긴다.  주변에서 보면 각이 딱 나오는 터,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듯한 사람은 차비를 주겠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걸 무시하고 갱부가 되겠다고 굳게 맘을 먹지만, 허무하게도 건강검진에서 떨어져서, 장부정리를 하는 고위직(!)으로 취직이 된다.  그나마 다섯 달 정도를 하고 나와버렸기에 별로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결말이다.  


[게공선]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깊은 묘사 같은 건 없다.  그저 화자의 눈에 비친 막장촌의 모습과 사람들, 그 모든 것들과의 interaction에서 오는 화자의 생각이 가끔 재미있지만, 딱 거기까지.  어쨌든 일곱 번째 [산시로]를 잡고 있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정민 선생의 글을 몇 권 앞서 읽은 바 있다.  견해에 있어 그 어조에 있어 내가 동의하거나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점도 있는데, 내 수행이 부족한 것이 큰 이유지만, 어떤 면으로는 정민 선생도 약간의 꼰대 기질을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나의 감상평이고, 정민 선생의 character는 실제로 아는 바가 없어 정확하다는 것의 근처에도 못 미치는 느낌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네 글자로 나타나는 고사를 풀어주고 세태평을 하고, 간략하게 선생의 말을 하는 것으로 하나씩 정리가 되어있어 읽기에는 부담이 없고 쉽게 눈에 들어오는 좋은 이야기는 큰 plus.  게다가 책읽기나 공부, 인생에 대한 주옥같은 말도 아주 눈에 쏘옥 들어온다.  하지만, 정확히는 두 건의 이야기에서는 선생 또한 연세와 지위, 거기서 바탕되는 자아를 넘지는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고사에서 강소-절강 일대의 화훼업자들이 매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쳐내고, 꺾고, 매어놓는 것을 미의 기준으로 삼아 주변지역의 매화를 모두 병들게 했다는 이야기가 소개된 후, 공자진이란 사람이 이를 300그루나 사들여 모두 자연스럽게 풀어높고 제멋대로 자라게 하여 치료했다는 것으로 매듭짓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강의 중에 이를 이야기하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글속의 병든 매화는 바로 너희다. 어려서부터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이렇게 하면 좋은 점수 못 받고, 저렇게 하면 좋은 대학 못 가 하면서 이리 꺾이고 저리 비틀리는 동안 본성을 다 잃고 말았다.  어느새 저도 그걸 맵시로 알아 칭찬받을 짓만 하고 취업에 필요한 스펙 쌓느라 바쁘지.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야"


이건 언어폭력에 언어도단이 아닌가?  물론 맥락과 강의를 하던 당시의 분위기, 그가 평소에 보여준 모습 등 모든 것을 다 고려하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책에 이걸 자랑스럽게(?) 쓴다는 건 좀 무리가 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요즘 이십 대가 고생하는 건, 그들의 탓이 아니고, 그들이 '병든 매화'가 된 것도 그들의 탓이 아니다.  사회가, 정치가, 기업이, 어른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미쳐야 정상이라고 하는 사회에서는 '병든 매화'가 상등급을 받고 이리저리 제멋대로 다양성을 보여주는 매화는 하급상품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무엇 하나도 이들이 획책했거나 원했던 것은 없다.  그런 이들에게 저만치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이런 평을 하는 건 좀 그렇다.  정민 선생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잡은 혐의점(?)을 뒷받침하는 듯한 이야기가 뒤에서 또 나온다.  "내공은 꾸준한 전공의 힘에서 나오지, 넓은 오지랖에서 나오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스펙 쌓기에 팔려 여기저기 기웃대지 말고 전공의 힘을 먼저 길러야 한다."  이건 개소리다.  현실을 무시했다면 나쁜 것이고, 모른다면 이딴 소리를 할 자격이 의심스럽다.  이런 소리는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할 소리가 아니라, 박근혜나 기업한테 가서 할 소리다.  선생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내공은 꾸준한 전공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젊은이들한테 자꾸 스펙 쌓으라고 하지 말고 전공과목공부 열심히 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시오!'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숙련직 같은 신입사원을 원하는 방식으로 사회비용을 지불하려하지 않는 세태에서 젊은이들이 이런 소릴 들어야할 이유는 없다.


지위가 높아지고 명예나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러니까 소위 원로라는 사람이 되어가면 갈수록 더 조심하고 더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범신이나 박 뭐시기라는 시인도 그렇고, 교수들도 그렇고 왜 그렇게 여제자나 여자후배들, 주변의 젊은 여자들에게 술시중을 들게 하고, 성추행을 하고, 심지어는 강간 - 그렇다, 성폭행이라고 하지 말아라.  그들이 제자들을 억지로 모텔로 끌고 가는 건 강간이지 성폭행이 아니다 - 하는가.  진보나 보수, 학계, 언론, 정치, 경제 어디서나 잠재적인 rapist들과 sexual assault로 넘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앞서 읽었던 정민 선생의 책에서도 뭔가 조금 불편함이 있었는데, 결국 이런 세대공감능력의 부재 혹은 모자람, 거기에 초연함으로 가장되는, 멀리 떨어져 훈수만 두고 있는 원로의 사회참여 혹은 인식의 부재로 보이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민 교수 한 사람에게, 책 한 권의 이야기 몇 가지로 심한 소리를 하는 건 조금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리고 좋은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던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글이란 것은 한번 써서 남들이 보면, 그 다음엔 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하고 해석을 하고 변명을 해도 그건 그대로 그만이고, 남들이 보는 평가나 받는 느낌은 내가 어쩔 도리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들은 글을 쓰고 나누는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정민 교수에 대한, 아니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써놓고, 설사 이에 다른 이를 불쾌하게 하고, 욕을 먹더라도 그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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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4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은 완성되고 나서도 수정할 수 있고, 기존에 쓴 글과 전혀 다른 생각을 정리해서 또 다른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제가 블로그에 쓴 글도 제 것이라 생각하고, 글의 부족한 점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결정하는 모습에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후자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글을 고치거나 삭제하는 일은 당연한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명예를 지키고 싶은 작가들은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transient-guest 2016-10-25 00:5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뭔가 위치가 높거나 가진 것이 많은, 소위 기득권이 될수록, 또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유연함과 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박범신 작가의 사건도 그렇고, 스승이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스승으로 사람들이 모시는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자기 자신 안에 갇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일종의 독단과 독선에 빠져있는 걸 보면서, 새삼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이야기라는 폴더는 사실 만들고서 거의 쿠폰을 나누는 용도로 사용했다.  오늘 한가롭게 앉아있다가 내가 사랑하는 명작, 그 안에서도 가장 멋진 장면을 찾아봤다. 



아무리 찾아봐도 저 시절의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아름답고 기품있는 캐릭터를 보지 못했다.  결혼을 좀 잘했더라면 훨씬 더 오래, 행복하게 커리어를 이어갔을텐데.  


'We will still have Paris"와 "Here's looking at you kid"은 전설로 남은 명대사, 명장면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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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22 0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사블랑카 노래가 바로 떠오르네요..^^.

transient-guest 2016-10-22 09:01   좋아요 0 | URL
네 저는 as time goes by가 떠오릅니다.ㅎㅎ 이 커플의 노래죠..ㅎ

모즈 2018-05-21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his is the beginning of a beautiful friendship!

transient-guest 2018-05-22 00:08   좋아요 0 | URL
마지막의 반전이 정말 명장면이었죠.ㅎㅎ 프로파간다영화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보여준 듯...ㅎㅎㅎ 반갑습니다.
 

아무래도 건강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가을을 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내 상태가 이상하다.  내가 책을 보다가 울.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끔 몰입하다가 감정이입이 되어 그런 때는 있었지만, 그것도 어쩌다가의 일이다.  















한창 이 영화가 화제였던 건 거의 이십 년 전의 일이다.  그땐 어렸기 때문에 사랑은 젊어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이 많은 배우들이 나누는 사랑장면, 아니 어쩌면 내용 그 자체, 그러니까, 중년이 넘어간 사람들이 나우는 사랑은, 불륜때문이 아니어도 그저 예쁘지 않아 보였고, 거기에 불륜이라는 요소가 들어가 더더욱 한 점의 아름다움도 볼 수가 없었다.  실제로 난 아직도 이 영화는 못 봤다.


어제부터 소세키를 읽는 것이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궁금하기도 하여 서가를 뒤져 이 책을 찾아냈고, 조금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워낙 유명한 장면이 많아서 어느 정도 영화의 장면과 책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고, 나머지는 온전히 나의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면서 그렇게 한줄씩 읽어나갔다.  


'...그는 자신을 조직체의 숫자만 채우기에 급급한 세상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수컷이라고 보았다...


이야기가 아름답고 애절한 것은 이 둘의 인생이 한 순간 겹쳐졌고, 평생 가져갈 사랑에 빠졌으며, 결국은 함께 떠나지 못했고, 이후 단 한번도 살아있는 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함께 떠났으면 갑자기 비포선셋의 후기가 되었을 것이다.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프란체스카는 끝내 로버트와 함께 갈 수 없었고, 그 한 순간의 사랑을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했음에 있다.  남편이 죽고 나서 남은 생을 함께 하기를 원했으나 로버트를 찾지 못했고, 프란체스카에게 로버트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로버트가 죽은 뒤의 일이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마지막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는 그 장면, 망설이다 끝내 떠나지 못하며 울고 있는 프란체스카, 아마도 그걸 알기 전부터 울고 있었을 로버트, 그 부분에서 나는 그만 정신줄을 놔버린 듯, 울고 말았다.  (확실히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진 듯...)  뒷 이야기는 나중에, 이 기억이 조금 희미해지면 다시 찾아볼 생각이다.














소세키 프로젝트 다섯 권째.  

앞서 '태풍'과 '풀베개'보다는 조금 더 스토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아직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고, 역시 각 등장인물이 상징하는 신시대의 인물, 모습, 그리고 구시대에서 신시대로 넘어오는 사람들의 interaction이다.  그런데, 소세키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정작 파악되지 않으니 책을 헛읽고 있는 듯.


이제 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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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0-22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십년도 더 전에 읽고 아무 감흥도 받지 못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지금은 어떨지요.

transient-guest 2016-10-22 06:48   좋아요 0 | URL
흔히들 `메디슨...`은 나이가 들수록, 인생경험이 쌓이면서 다르게 다가온다고 하네요. 저도 그런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10-22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비틀쥬스 보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transient-guest 2016-10-22 06:48   좋아요 0 | URL
ㅎㅎ 어릴 때 본 기억만 가물가물합니다.ㅎㅎ

보물선 2016-10-22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데선 비밀😊

transient-guest 2016-10-22 06:48   좋아요 0 | URL
맞아요..ㅎ

2016-10-22 0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2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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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나린 2016-10-22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만큼 순수함이 남아 있으셔서 그럴거에요^^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transient-guest 2016-10-22 09:02   좋아요 1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이제 나이를 먹고 경험이 늘어서 그런 것 같아요...

cyrus 2016-10-2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다면 정신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transient-guest 2016-10-24 10:29   좋아요 0 | URL
그건 그래요.ㅎ 아직은 감성이 좀 살아있나봐요...근데 가끔은 나이값도 못하고 주책이란 생각도 듭니다.ㅎ

2016-10-24 2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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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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