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 서양과 조선의 만남
박천홍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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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해냈다는 뿌듯함이 앞섰다. 장장 800페이지(주석을 제외하면 조금 안 되지만)가 넘는 책을 읽어냈다는 뿌듯함. 그러나 솔직히 내용이 남는다고는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수많은 인물의 이름과 직책들을 읽다 보면 정작 내가 지금 무엇을 읽고 있나를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생소한 직책들까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쪽에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헷갈릴 것 같다. 솔직히 전문가의 해석이나 평가가 들어있는 것을 기대했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읽고 나니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외국의 배가 출몰하던 시기를 대충 조선 후기로만 알고 있었다. 자세히 다룬 적도 없었거니와 쇄국정책을 이야기하고 개항을 이야기할 때만 잠시 언급되어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란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였다.

외국의 배가 우리나라 해안에 닿았을 때는 당연히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을 텐데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물론 하멜이 제주도에 닿았을 때 주민들과 말이 안 통해서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훨씬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과 만났을 것이라는 점은 생각질 않은 셈이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국가적으로 외국인과 거래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배척했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인간적인 면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그동안 읽었던 탐험에 대한 책이 생각난다. 그것들은 주로 서양인의 눈에 비친 원주민의 생활이라서 미개하다느니 초라한 행색이었다느니 하는 식의 서술이었다. 대개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 남미 등의 나라였기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었는데 마찬가지로 서양인은 우리를 같은 식으로 묘사했다. 그렇다면 역시나 그들은 우리를 미개하고 궁핍한 생활을 하는 민족이라고 생각했을 것 아닌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도 했다.

외국인들은 일지나 여행기 형식으로 자유로운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는 글들이 많으나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들은 대부분 관에서 주관한 문서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의 것이 재미있고 다양한 반면 우리의 것은 딱딱하고 형식적이어서 기초적인 것 외에 다른 것은 알아내기가 힘들다. 또한 규격화된 질문지 형식의 문답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것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형식을 중시하는지 알겠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개인의 창의력이 집단의 횡포에 묻히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닌가하는 확대해석까지 해보았다. 게다가 외국의 배가 나타나기만 하면 거의 대부분 담당자가 문초를 당했다는 사실은 참 어이없다. 과연 중앙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하여,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한 것은 아닐런지. 지금과 너무 닮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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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라면 교양 2
하승우 지음 / 뜨인돌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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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남편과 어떤 이야기 끝에 우리나라가 모병제가 되면 많은 것이 변화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 남자들이 향유하는 문화의 대부분은 바로 군대와 관련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까지 이어져 결국 나이가 들면 더욱 견고해진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도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어제 일인양 눈을 반짝이며 생생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내 아버지에게서도 보았으니까. 남자들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바로 군대 이야기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이야기했듯이 가장 황금 같은 시기를 억울하게 군대에서 보냈다는 동병상련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중에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정식 군대가 아닌 대체 복무를 한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것이겠지. 마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 대하듯이 말이다. 처음엔 신의 아들이 아니고 어둠의 자식이라서 좌절하고 비통해 하다가도 군대라는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면 오히려 신의 아들들이 설 자리를 잃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은 정말 통쾌했다. 아무래도 난 여자라서 그런 남자들의 심리를 미처 몰랐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현재 우리의 많은 문화가 군사문화에서 나왔다는 것은 모두 알 것이다. 특히 학교의 모습을 보면 작은 군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는 게 많다. 지금은 많이 자율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것은 사실이다. 애초부터 군사정권이 오래 집권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군사정권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것은 아마도 그런 국민일수록 자신들의 의지대로 휘두르기에 훨씬 편하고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이렇게 훤히 알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그런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패배주의와 타성에 젖어 주저앉는 것은 비겁한 짓이며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그래서 행동하는 지식인을 지향하고자 한단다. 아, 내가 우리 사회에 꼭 있었으면 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사실 나 같은 일개 시민이 정부 정책에 아무리 반대를 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잘못을 이야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저 힘 없는 한 사람일 뿐인 것을. 그럴 때는 지식인이 나서서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는데, 특히 언론이 나서서 이야기하면 파급효과가 크겠지만 아시다시피 현재의 언론에 그런 것을 기대할 수가 없기에 이런 지식인이 나서서 큰소리로 이야기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군대가 없다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우리는 아직 대치중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마도 오랫동안 세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국방비를 계속해서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이야기하듯이 상대가 무기를 산다고, 아니면 더 좋은 신식 무기로 무장할까봐 우리가 먼저 선수쳐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결국 서로를 파멸하는 길이라는 사실이 뻔하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의 현실은 그렇다. 현재의 통치자들은(아마 통치자들은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군대를 다녀와서 복종에 익숙한 시민들이어야 관리하기 훨씬 편하니까.

남편도 남자라면 무조건 군대를 갔다와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은 변했다. 어쩌면 내 아이가 언젠가는 군대를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이 아깝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군대가 지금의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관대했으면 좋겠다. 실은 나도 전에는 그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았으나 그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또 이 책을 읽어보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다. 저자에게 설득당한 것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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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당선작이네요~~ 축하합니다! ^^

봄햇살 2008-09-0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느 것이 당선작인지 몰랐지 뭡니까.ㅋㅋ 감사합니다.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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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강한 인상의 제목이다. 처음엔 무슨 추리 소설인줄 알았다. 하지만 저자를 보니 역사 관련 책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기질 때문에 음지에 가려진 인물에 큰 관심을 가진다고 했는데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 행여 한 줄이라도 놓칠까봐 천천히 읽었다. 남아 있는 쪽수가 적어질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여타의 책들에 비해 이 책은 아쉬움이 컸다. 벌써 다 끝났나 하는 생각에.

평소에도 사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이런 류의 책들이 무척이나 반갑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눌러야 하고 어떠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상당히 중의적인 표현을 하며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점 등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정치인이 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겉에 드러나는 말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임금과 신하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간혹 저저가 '혹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로지 주자학을 제일로 쳤던 시기에 양명학을 받아들이고 온갖 핍박을 당하면서도  강화학파를 이룰 정도로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정제두를 비롯하여 유득공, 윤휴, 조식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난다. 아니, 도대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주장하는데 왜 그걸 꺾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조금만 호흡을 가다듬고 역사란 과거를 지나 현재를 본다는 사실을 대입해서 현재를 보면 지금이라고 더 나아진 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그 사대의 대상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에서 하는 것이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 현실은 생각지도 않고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 어디 한 두 가지던가. 그런데 꼭 진짜로 좋은 것은 배척한다는 게 지금의 문제지만 말이다.

대동법을 실시하려고 애썼던 김육의 이야기나 유수원, 박제가, 이익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한번 한숨짓지 않을 수 없었다. 공납의 폐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뻔한 상황에서도 대동법이나 호포제를 실시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양반들의 반대 때문이라는 사실(이건 진작에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다시 들으면 또 열받는다.)은 어쩜 그리 지금의 상황과 똑같을까. 그러니 당시 양반들을 탓해 무엇하랴.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양반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군역도 지지 않는다는 점이 말도 안 되는 것이건만 왜 그 당시 백성들은 가만히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품다가도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만다. 그래, 지금도 그런 걸 뭐. 소위 말하는 상류층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세금을 훨씬 적게 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군대에 안 가지 않는가 말이다. 그나마 조금 제자리를 찾아가던 세제가 이 정권 들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 하니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어쩜 몇 백 년이 지났는데도 상황은 이리 똑같은 것일까. 그리고 그걸 뻔히 아는데도 왜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 조선시대 백성들이 무지해서 그랬다는 생각을 했었으니 마찬가지로 지금의 시민도 그런 것인가. 다만 모든 사람들의 학력이 조금 높아진 것 뿐인가 보다.

역사란 과거를 지나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하는 것이라는 말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하긴 그때야 무조건 사실을 외울 뿐이었지 현재와 접목시킬 생각을 못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당시 시대에 도전했던 사람들을 읽으며 과연 현재에 시대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들의 주장을 과거가 된 뒤에 새겨 듣지 말고 현재 새겨 듣는다면 변화가 훨씬 빨리 다가 올텐데. 그런 사람을 가려내는 안목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누군가가 발굴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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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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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과 달리 예쁘장한 표지에 눈길이 먼저 간다. 대개 이런 책은 표지가 무겁게 디자인되지 않나? 어떤 이름이 붙든 경제에 관한 것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내게 평화경제학이라는 부제를 단 책을 집어드는데 노란표지가 부담감을 많이 덜어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국주의라는 말을 떠올리면 유럽의 많은 나라들과 함께 일본이 생각나면서 자동으로 식민지로 살았던 우리의 역사가 떠오른다. 그런데 여기서 주장하는 이야기들을 읽어보니 나도 모르게 우리가 제국주의로 가는 것에 찬성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주체가 된다면 별 상관이 없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전쟁이 우리 땅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비록 전쟁은 반대할지라도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득을 따져볼 수도 있는 그런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제국주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따지다 보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교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더이상 국내에서 경제안정의 해법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자연스레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어있다는 단순한 논리가 지금의 현실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또한 그런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가치를 인정하는 많은 논조들을 익히 듣고 있었고 어느 정도 나도 거기에 동조하고 있었다. 북한이 한 민족이라서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가 먼저 선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끈끈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결국은 북한을 우리의 내부식민지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단다. 물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식민지라는 말을 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아마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기에 식민지라는 말에 과민반응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우리는 현재 어설픈 제국주의로 가고자 하고, 그 길이 가장 쉬운 문제 해결 방법(현재의)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워낙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우리 민족이 자랑스러웠던 때도 있으나 갈수록 점점 무서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까지 나와 남을 가를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민족이나 국가를 앞세워 개인의 의사를 드러내는 통로가 막힌다는 사실을 절감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자주 국가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식민지나 다름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물론 모두 아는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설마라며 착각이길 바랐다. 이미 문화도 상당히 많은 부분 미국화 되었으며 고급 두뇌들도 미국으로 가서 유학을 하고 거기서 배운 것들을 가지고 들어오면 지배층이 되어 다시 나라를 이끌어 가니 당연한 것이겠지. 게다가 우리의 역사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내버려 두다가 누군가가 그것을 이야기 하면 그제서야 발끈하고 나서는 게 현실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만 해도 그렇고, 근래 불거졌던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스스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힘센 나라들에 기대서 해결하려고 했던 게 사실이니까. 

우리가 경제적 안정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잘 이끌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 일본과 어떻게 평화를 유지해 나가느냐가 이 책에서 끝까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제도 '한 중 일을 위한 평화경제학'이라고 했나보다. 세 나라가 서로 얽히고 설킨 현재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야만 동북아시아에서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서로 협력해서 여러가지 정책을 마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아직까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특히 우리가 미국에게만 의지하려고 할 경우에는 더욱 더.

그나저나 닫는 글에서 현재의 교육 실태를 비꼬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상당 부분 공감이 갔다. 그리고 저자가 다른 나라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그러나 과연 그럴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 가능성 없는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자꾸 꼬이기만 하고 정리가 안 된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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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리아드 (양장, 한정판)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송경아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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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생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것이다. 따라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도.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그런 로봇이 나올거라는 환상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냥 흘려들었다. 왜? 그리 간단히 이룰 수 없다는 걸 너무나 뻔히 아니까.

사실 소설을 별로 읽지 않는 내게 과학소설이라는 장르는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고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흔히 과학소설이라 함은 공상과학을 제일 먼저 떠올리며 약간은 허무맹랑하거나 로봇으로 통칭되는 기계들이 주인이고 인간이 클라이언트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그렇게 인간을 지배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절대로.

처음에 분명히 투르를과 클라포시우스가 기계라고 이야기를 했건만 읽는 동안 자꾸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착각한다. 그러다가 회로가 어쩌고 나사가 어쩌고 하면 그제서야 '아차'한다. 그만큼 저자는 기계들을 통해서 인간을 은근히 비꼰다. 그 로봇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을 보면 그대로 인간 세계에 적용을 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아니,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기계이면서 또 다른 기계를 만들어 그 기계와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한다는 설정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만약 그들이 만든 기계가 스스로 발전해서(사실 그랬잖은가.) 투르를이나 클라포시우스처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에 생각이 미치면 무한루프에 빠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두 창조자는 본인들이 기계를 만들었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너무 똑똑해서 제어하지 못할 것 같으면 잽싸게 부품을 해체해 버린다. 그럴 때 대개의 SF 소설이라면 기계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창조자가 못 하도록 음모를 꾸밀 텐데 그러진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더 공상과학 소설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일반 소설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특히 시를 짓는 기계를 만들었을 때 결국 완벽한 시를 짓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나 그 기계를 만들기 위해 태초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에 해당하는 모든 지식을 집어 넣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권위와 불필요한 관료제를 풍자한 글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단순히 기존의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조합하고 뒤틀어서 사용하는 단어들은-비록 읽는데 상당한 수고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이 책의 매력을 한층 더 높인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를 가듯 '배'를 타고 다른 은하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배라는 것을 지구에서 보듯 물에서 다니는 것으로 이해하고 읽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우리가 우주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아주 보편적인 운송수단이라는 뜻이었을까. 이렇듯 우리는 내가 경험한 범주에서 다른 것을 판단하고 상상하려 한다. 작가는 그것을 보기 좋게 뛰어넘는 것일 테고.

그래도 한때는 프로그래머였던 사람으로서 참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머리가 좀 아팠지만 대신 수많은 전산 용어들이 나올 때는 절로 흥이 났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단어들이냐. 초반부를 읽으면서 마치 일리아드랑 비슷한 구조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목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제대로 파악했다는 소리?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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