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이 되라 - 운명을 바꾸는 창조의 기술
강신장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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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유를 가지고 융합하거나 변형하고 비틀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깨달은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전에는 내가 창의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아예 포기했는데 그 후로는 열심히 생각해 보기라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연결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창조의 기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는 부분에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놀아본 사람이 창조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젠가 어린이책 작가를 만났는데 그 작가도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우물을 다 파고 난 다음에는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간혹 내 관심사가 너무 넓어서 오히려 아무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이야기를 보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당장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언젠가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라면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 있던 사람이 쓴 책이라니 이 책을 읽으면 금방 창의력이 생길 것 같다. 게다가 운명을 바꾸고 싶지 않느냐는 강한 메시지로 독자를 유혹한다. 이렇게 보면 직장인만을 염두에 둔 책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그럼 아이를 키우는 주부는 읽을 필요가 없단 얘긴가. 그걸 염두에 뒀는지 아이의 창의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도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뭐,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혹 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이건 특정 직업이나 특정 연령대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끝에서 이야기하듯이 모든 연령대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책이다. 내용을 어느 만큼 자기것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할 따름이다. 

상당히 많은 부분 동의하고 공감하며 읽었다. 또 알고 있었지만 미처 꺼내지 못한 것들을 꺼내는 계기도 되었다. 그러나 몇 가지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우리나라와 같은 경쟁만 남아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 철저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가치를 경제적인 것에 집중한 듯 보였다. 물론 경제는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부분이며 필요한 가치다. 그러나 경제가 모든 가치 위에 군림하는 듯 보였다. 경제연구소에 있던 사람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환경과 생태는 일체 다루지 않는다. 오로지 경쟁을 도구로 한 경제를 이야기할 뿐이다. 현대가 서산 간척사업을 하면서 폐유조선을 침몰시키면서 성공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일에 대한 정확한 사실 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반론을 하진 못하겠지만 그 뉘앙스가 마치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은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편적인 것을 예로 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 식의 사고가 여러 곳에서 느껴졌다. 

삼성과 같은 가장 제왕적인 그룹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만들어내다니 아이러니하다. 곳곳에서 삼성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느껴졌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기업이며 그나마 세계에 내놓을 만한 기업인 삼성.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므로 넘어가야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영감을 얻고 나아가 창조적이 되려면 다른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근로시간이 너무 많다. 이것은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CEO들과 함께 하는 저자 같은 사람이 그들에게 이런 사실을 인지시켜 줘야하는 것 아닐까. 단순히 직장인들이 다른 세상을 만나러 가기 힘든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극복할 방안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게 창조의 큰 밑천이니까. 저자는 그러한 현상만 던져놓고 문제제기에 대한, 자신과 같은 CEO의 의무는 간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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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오묘한 수학방정식
클레망스 강디요 지음, 김세리 옮김 / 재미마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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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휘리릭 넘겨 보니 제목도 특이하지만 쫄라맨처럼 아주 간단한 그림과 글이 그려져 있다. 인생은 수학 방정식이라니. 사실 인생은 어느 학문에 대입하더라도 통하는 게 있을 정도로 모든 학문과 연결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수학과 인생을 결부시켜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 바로 얼마전에 읽었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소설이다. 그 책을 생각하며 이것도 그런 종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결론은 전혀 '아니올시다'다. 프랑스 작가의 책답게 내용을 그다지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모두 맞는 말이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각각 하나였던 여자나 남자가 만나 둘을 이루고 다시 하나가 빠져 나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사칙연산으로 표현했다. 이 정도는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내용이니 그냥 그렇구나 싶다. 그러나 기하학을 설명하고 함수를 설명하는 부분에 이르면 어딘가에 적어 놓고 싶은 글귀가 자주 나타난다. 특히 함수를 설명하는데 '같은 동시에 다른 그는 나와 나의 차이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그런 타인'이라는 말, 정말 멋지다. 이렇게 말로만 써 놓으니까 의미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데 그림과 함께 보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y는 거울처럼 x의 이미지를 그에게 되돌려 보내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누군가라는 얘기다.  

사람과의 만남도 함수로 표현했다. 절대값 함수는 보배 같은 이웃이란다. 판단하려들지 않고 절대적 가치의 개념으로 본연의 모습을 비추어 주기 때문이란다. 또 x값이 변해도 y는 그대로인 함수는 자기중심적인 이웃이라고 말한다. 그가 상대방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사람은(원래 함수라면 상대방이라야 한다)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비관적인 이웃과 낙관적인 이웃을 다른 함수로 표현한다.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이 많을까, 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이웃으로 비춰질까 돌아본다. 

마찬가지로 복소수도 인생으로 표현했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육체는 실수부에 해당하고 사고는 허수부에 해당한단다. 그 둘이 함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특히 허수부를 작동시켜 얻은 긍정적인 계획들은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결국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니까 육체를 활발히 움직이고 그에 못지 않게 사고도 원활해야 제대로 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띠지에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되어 있는 게 무슨 의미인지 중반을 넘어가서야 알았다. 간혹 프랑스어를 모르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지만 주석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그걸 보며 이해했다. 인생에 빗대어 수학을 이야기하는 건지, 수학에 빗대어 인생을 이야기하는 건지 잠시 헷갈리지만 그 둘 모두 맞는 말일 게다. 인생은 정말 오묘한 수학 방정식,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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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서 만나다
토니 브래드먼 엮음, 김화경 옮김 / 동산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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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특히 안 좋은 쪽에서의 일이라는 것이 마음 아프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전쟁을 겪고 가난을 겪었다. 또한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 다른 나라로 몰래 떠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극복하고 그럭저럭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당시를 내가 직접 살아보지 않아서 그 고통을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에게는 옛일이 된 이런 것들이 어느 곳에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니, 사실로서 알고는 있어도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기는, 솔직히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어느 정도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듯하다. 물론 그 전에도 내전이나 전쟁터에서 어린이들이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긴 했으나 이처럼 다양한 나라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나지는 않았다. 모두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야기라 마치 연결된 이야기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특히 외국으로 도피한 이들이 모두 아이들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개중에는 어른들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어린이니까. 

고향에서는 행복한 가정에서 부러울 것 없이 지내던 아이들이 외국으로 도망가는 상황은 그야말로 비참하다. 그나마 엄마와 가족이 함께 떠나는 경우는 행운처럼 여겨질 정도다. 온 식구가 아이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힘겹게 비용을 마련해서 혼자 떠나보내는 이야기는 먹먹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이야기가 그래도 희망적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난민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좋은 이웃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하니까. 그들도 언젠가는 당당한 사람으로 자라겠지. 

작가가 영국인이라 영국에 난민 신청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처음엔 출발한 나라가 다양하니 도착한 나라도 다양할 줄 알았는데 대개가 영국이다. 어떤 이야기는 글쓴이가 중간을 너무 생략해서 앞뒤가 연결되지 않아 지레짐작으로 유추하기도 했다. 아마 그들의 문화를 잘 몰라서 그랬을 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책은 작품이 어떻고를 따지는 게 아니라 내용에 가슴 아파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읽어야 함은 확실하다. 이 이야기들이 먼 과거를 회상하는, 지금은 끝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일어나고 있고, 그리고 모르긴 해도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라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  

그런데 각 이야기의 주인공이 대개 흑인인데 표지는 예쁘장한 백인이다. 왜 그랬을까. 책 내용과 아무리 연결시키려 해도 잘 안된다. 그리고 그들이 난민을 신청하게 된 원인, 즉 그들 고향에서 일어난 일이 많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그 보다는 탈출하면서 겪은 이야기나 탈출 후 정착할 때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하긴 제목을 봐도 쉼터가 주가 되긴 하겠다. 세계의 다양한 상황을 알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데는 동의하면서도 약간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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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아저씨 2010-06-16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표지 소녀는 코소보 학살을 피해 탈출한 보스니아 난민 소녀로, 로이터 통신 기자가 찍은 사진이라고 하네요.

봄햇살 2010-06-16 19:2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제가 오해를 했네요. 난민이라면 흑인일 거란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예쁘장한 백인 사진을 보며 연출된 거라 생각했어요. 고정관념이란 참... 표지에 그런 설명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오해는 하지 않았을 것을...
 
리얼 진보 Real Progressive - 19개 진보 프레임으로 보는 진짜 세상
강수돌.구갑우.김상봉 외 지음 / 레디앙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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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지 너무 오래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전에는 책을 읽으면 인용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해줬는데 요즘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옛말이 꼭 맞는다. 여쨌든 가물가물하는 기억으로 써야겠다. 

얼마전부터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 이런 거였다.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진보가 있나, 진보가 좋은 것이라면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는 것일까(물론 어느 사회나 보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진보가 일부를 차지하는 게 상식이지만 우린 좀 심하게 일그러진 듯하다), 앞으로 변화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등등의 생각들. 그래서 한때는 아예 신경을 꺼보자고도 결심했었다. 그런데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도통 의욕이 없어서 그냥 속을 끓이더라도 원래대로 살기로 했다. 어차피 변화가 피부에 느껴질 정도라면 그것 또한 문제일 거라고 위안을 하며. 

사실 진보에게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어찌보면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그들만의 진보를 꿈꾸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일반인들의 생각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대의만 생각했다고나 할까. 물론 아무것도 없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초가 닦였을 때는 그것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을 텐데 그들은 그것을 간과했다. 아직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앞에서 이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게 바로 촛불이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요즘 젊은 애들은'하며 자신들의 방식을 강요해야 할까. 전혀 아니다. 물론 그들도 알고 있다. 문제는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닐런지. 그래서 이 책에서 진보의 정의를 되돌아보고 고민을 해야한다는 말이 와닿는다.  

다양한 곳에서 진보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어느 것은 아직은 너무나 먼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갑자기 변하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니까. 교육이면 교육, 주택이면 주택, 복지면 복지 이 모든 게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왜 바뀌지 않을까. 그것은 결과만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런지. 과정부터 차근차근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건 어느 한 쪽의 잘못이 아닐 게다. 솔직히 현재 많은 사람들이 진보에게 실망했다. 물론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언론의 잘못부터 시작해서 원인을 규명하려면 복잡해지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없다. 이제라도 제발 진보가 힘을 얻어 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 나라가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속 끓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19명이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이런 게 느껴졌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거나 공개강의를 하는 사람들의 글은 읽기 편하고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공감도 되었다. 반면 교수가 쓴 글들은(물론 모두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디나 '전부'라는 건 없으니까) 그들의 논조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편치 않았다. 현학적인 표현이 많았다고나 할까. 직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에둘러 표현하거나 쉬운 표현이 있는데도 어려운 말을 쓰거나 복잡한 문장을 썼다.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이런 책, 그것도 진보를 논하고 진보계층을 좀 더 넓히기 위한 책에서 먹물 냄새를 풍기는 건 좀 그렇다. 이걸 이해하는 사람만 오라는 것도 아닐텐데. 이런 것도 진보의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난 어느 분야나 '현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상황은 책상에서 생각했을 때의 상황과 분명히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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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위 토크 Shall We Talk -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
인터뷰 지승호& 김미화.김어준.김영희.김혜남.우석훈.장하준.조한혜정.진중권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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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에 빠져 지낸 지 꽤 된다. 한때는 입에 거품 물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냥 신경 안쓰기로 했다(그러다가도 아주 가끔 입에 거품 문다). 무력감을 넘어 이제 무관심의 단계라고나 할까.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할 정도로 이것은 무서운 단어인데 지금 내가 그렇다.  

전에 모 시사주간지 기자와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아무리 사람들이 반대하고 잘못을 지적해도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은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분 말씀이 이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일을 돌이킬 힘의 원천이 될 수도 있고, 또 나중에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작은 목소리라도 냈다는 위안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다. 하긴 일제강점기 때 조선일보가 어떤 기사를 내보냈는지 지금도 역추적해서 이야기하며 그들의 정통성을 따지는 걸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나중에 후손에게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했음을 알려줘서 분명 잘못된 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또한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뭐, 그래도 여전히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비교적 나와 비슷한 프레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이미 여러 곳에서 지금의 진보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현 정권에 반대한다는 구도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비록 현 정부가 못하는 일이 많더라도 대통령만 바뀐다고 모든 일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체득한 바 있다. 솔직히 우리는 여당과 야당이라는 것만 존재한다는 생각도 든다. 야당이었던 사람들이 여당이 되면 여당의 모습이 바뀌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만 교환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집권자 한 사람만 바뀐다고 문제가 해결될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바뀌고, 그러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교육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왜 바뀌지 않는 걸까. 참 미스터리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좀 지나치게 앞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체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과 정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어떨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 생각을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반대쪽에서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도 읽어야하는 게 당연하건만 잘 안된다. 미리 선입견을 갖고 있어서겠지.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이런 책을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현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게 될텐데 왜 읽지 않을까 안타까운데 그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세상은 복잡한 듯하면서도 실은 정말 단순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척 어렵다. 서로 상대의 입장을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면 될텐데 그걸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이 첵도 제목을 대화하자고 제안한 것은 아닐런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 먹고 사는 문제는 그 어떤 것보다 앞선다. 아무리 민주화가 중요하고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해도 경제를 간과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걸 근래 절감한다. 그런데 진보라는 사람들은 그걸 무시했다. 그래서인지 진보도 잘 살아야한다는 김어준의 말이 왜 이리 와닿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데 불안하고 경쟁만이 전부인 세상에서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옛날 방식의 진보가치는 이미 퇴색했다. 세상은 변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변하는데 그 때 그 사람들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으니 진보가 맥을 못 추는 건 아닐런지. 아무튼 진중권과 우석훈, 장하준, 김어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의 틀에 있는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고 김미화, 김영희, 김혜남, 조한혜정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화적인 차원에서 요즘을 바라봤다. 인터뷰 형식이라 전체적인 맥이 한 눈에 잡히진 않지만 대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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