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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위 토크 Shall We Talk - 대립과 갈등에 빠진 한국사회를 향한 고언
인터뷰 지승호& 김미화.김어준.김영희.김혜남.우석훈.장하준.조한혜정.진중권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2월
평점 :
무력감에 빠져 지낸 지 꽤 된다. 한때는 입에 거품 물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냥 신경 안쓰기로 했다(그러다가도 아주 가끔 입에 거품 문다). 무력감을 넘어 이제 무관심의 단계라고나 할까.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할 정도로 이것은 무서운 단어인데 지금 내가 그렇다.
전에 모 시사주간지 기자와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아무리 사람들이 반대하고 잘못을 지적해도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은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분 말씀이 이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일을 돌이킬 힘의 원천이 될 수도 있고, 또 나중에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작은 목소리라도 냈다는 위안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다. 하긴 일제강점기 때 조선일보가 어떤 기사를 내보냈는지 지금도 역추적해서 이야기하며 그들의 정통성을 따지는 걸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나중에 후손에게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했음을 알려줘서 분명 잘못된 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또한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뭐, 그래도 여전히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비교적 나와 비슷한 프레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이미 여러 곳에서 지금의 진보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현 정권에 반대한다는 구도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비록 현 정부가 못하는 일이 많더라도 대통령만 바뀐다고 모든 일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체득한 바 있다. 솔직히 우리는 여당과 야당이라는 것만 존재한다는 생각도 든다. 야당이었던 사람들이 여당이 되면 여당의 모습이 바뀌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만 교환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집권자 한 사람만 바뀐다고 문제가 해결될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바뀌고, 그러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교육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왜 바뀌지 않는 걸까. 참 미스터리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좀 지나치게 앞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체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과 정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어떨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 생각을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반대쪽에서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도 읽어야하는 게 당연하건만 잘 안된다. 미리 선입견을 갖고 있어서겠지.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이런 책을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현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게 될텐데 왜 읽지 않을까 안타까운데 그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세상은 복잡한 듯하면서도 실은 정말 단순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척 어렵다. 서로 상대의 입장을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면 될텐데 그걸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이 첵도 제목을 대화하자고 제안한 것은 아닐런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 먹고 사는 문제는 그 어떤 것보다 앞선다. 아무리 민주화가 중요하고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해도 경제를 간과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걸 근래 절감한다. 그런데 진보라는 사람들은 그걸 무시했다. 그래서인지 진보도 잘 살아야한다는 김어준의 말이 왜 이리 와닿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데 불안하고 경쟁만이 전부인 세상에서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옛날 방식의 진보가치는 이미 퇴색했다. 세상은 변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변하는데 그 때 그 사람들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으니 진보가 맥을 못 추는 건 아닐런지. 아무튼 진중권과 우석훈, 장하준, 김어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의 틀에 있는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고 김미화, 김영희, 김혜남, 조한혜정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화적인 차원에서 요즘을 바라봤다. 인터뷰 형식이라 전체적인 맥이 한 눈에 잡히진 않지만 대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