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과 퇴행, 이명박 정부 3년 백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전국교수노동조합.학술단체협의회 엮음 / 메이데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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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쳇바퀴를 돈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못 느끼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돌이켜 보면 지난날의 패턴과 동일하게 가고 있음을 알게 되니 말이다. 처음 이 정부가 출범했을 때의 좌절감과 낭패감이 얼마나 컸었던가를 기억해 본다. 현 정부는 역시가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된 정부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어쩜 그리 사사건건 반대로만 가는지. 그런데 더 좌절을 느끼게 하는 건 그 길이 제대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내 주변에는 나처럼 모두 비주류라 그런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지만 주류에 속하는 언론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그렇다.

  사람은 적응을 아주 잘하는 동물인가 보다. 정말이지 누구에게 이득이 될지 뻔히 보이는 일을 설마 바꿀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살까 내지는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하는 데도 어떻게 항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나 싶어서 화 나고 속이 터졌는데 이제 그래봤자 변하는 것도 없고 변화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냥 혼자 넋두리만 한다. 그러면서 여하튼 여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모두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와 반대로 간다. 현 정부는 출범 때부터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공공연히 표방했기에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이 변하리라는 것쯤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혹시나 그들의 주장대로 낙수효과가 정말 생기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모르긴 해도 현 정부도 그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CEO 대통령'께서' 그 정도도 몰랐다니. 감세와 규제 완화라는 당근을 주며 물가안정과 고용 확대를 기대했지만 그 역시 한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기름값을 조금만이라도 인하하라고 그처럼 애원하고 때로는 압박해보지만 그 대기업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초창기에 야심차게 추진했던 'MB 물가'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켠에서는 자유시장을 이야기하다가 물가상승이라는 불이 떨어지자 정부에서 규제하려고 하니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겠나 말이다. 그동안 뿌린 당근을 생각하며 대기업이 따라주리라 기대했던 게 아닌가 싶다. 기업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몰랐지 싶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읽다가 열 받아 뒷목 잡을 일이 많으리라 기대했으나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그럴 일이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희망적이구나'라는 생각으로 뒷목 잡을 일이 없었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라 새로울 것이 없어서였다는 얘기다. 각 분야의 교수와 전문가들이 각각의 사건이나 분야에 대해 잘잘못을 세세하게 따져 묻는데 너무 딱딱한 어조와 사건 나열식이라 읽는 '맛'은 없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글은 아니었다. 그냥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동조할지 몰라도 혹여나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설득당할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냥 그들끼리(물론 거기에는 나도 포함된다.)의 속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조금 안타깝다.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게, 이건 현 정부가 조금 잘못했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닐런지. 여하튼 그래도 먼 훗날 역사는 제대로 평가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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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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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향인지 서향인지, 여하튼 어둠침침한 도서실에 분위기를 쇄신할 겸 장미꽃을 꽂아 놓았다. 물론 내가 사다 놓은 것은 아니고 어찌어찌 얻어다 놓은 장미다. 오늘 한 선생님이 시든 꽃잎은 따줘야 예쁘다며 벌어진 꽃잎을 따서 꽃병 주위에 흩어 놓고 묻는다. "이렇게 하니까 어때요?" "왜 꽃잎을 거기다 버리셨어요?" 이 선생님, 자지러진다. 선생님 딴에는 떼어낸 꽃잎을 운치있게 꽃병 주변에 배치한 것이란다. 그걸 버렸다고 표현했으니. 그 선생님이 말한다. "이과 맞구나!" 그렇다. 감성적 소양이 약간 부족한 이과 출신. 그래서 소설보다는 뭔가 얻을 게 있는 지식 정보책을 좋아한다. 아니면 팩트를 기본으로 하고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팩션은 '얻을 게' 있으므로 그나마 좋아하지만 순수한 소설은 그냥 시간이 남을 때, 또는 머리를 식힐 때 보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야기속에 푹 빠져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아무래도 어린이 책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동화는 많이 읽는데, 이 책의 주인공이 청소년이라서 지금까지 내가 읽던 종류의 책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때로는 혼자 킬킬대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이런 식의 이야기 방식이야 이미 많이 접했기에 새로울 게 없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건 여전하다.

  처음에는 고등학생이 임신을 해서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겠거니 했다. 솔직히 말해서 미혼모 문제가 심각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딸 키우는 입장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이야기하거나 문제점을 짚어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어차피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고,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남들보다 일찍 죽는다는 것을 알고 보내는 삶은 어떨까를 넘어 도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무슨 의미를 갖고 사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매일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어쨌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현재의 삶이 때로는 힘들고 지겹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무척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한계가 분명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현재를 열심히 사는 아름이를 보면서 인생은 양보다 질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누군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때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문득 아이들 고모부가 생각난다. 암 선고를 받고 투병중일 때 찾아뵈었는데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것이 마지막 만남일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순간 삶이란 무엇일까 싶었다. 우리는 대개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반대로 언제 떠날지 알면 열심히 살지 않을까. 그건 아닌 듯하다. 아름이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를 더 열심히 사는 것이다. 오히려 떠날 자신보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정말이지 이기적인 현재의 나로서는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가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라는 글귀가 무척 가슴에 와닿기에 나름 흥분하며 이야기했더니 어떤 이는 말장난일 뿐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다. 어차피 글은 말장난이니까. 그러나 그러한 글이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읽히고 기억되면 경구가 되는 것 아닐까. 어쨌든 소설을 읽다 밑줄 쳐보긴 또 처음이다.

  어찌 보면 우울한 이야기만 있을 것 같지만 장씨 할아버지와 아름이의 대화 덕분에 수시로 웃을 수밖에없었다. 특히 방송 촬영할 때 할아버지가 인터뷰하는 장면은 어찌나 웃긴지 모른다. 마치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분명 결론은 아름이가 죽을 텐데,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웃어도 되나 싶기도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서 미래의 자신을 보고 반대로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 슬프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가타부타 설명도 없는 프롤로그를 아무 생각없이, 조금 갸우뚱하지만 조금 지나면 프롤로그가 이처럼 강렬하고 집약적으로 설명해주기도 드물다는 것을 안다. 소설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꼭 필요한 인물과 사건이 잘 어우러진, 감동적이고 그러면서도 삶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져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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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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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뿌듯함과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책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기에 앞서 이런 책을 읽은 나 자신을 대견해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좋은 책이 우선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니 웃기는 소리한다고 속단하지는 마시길. 여하튼 오랜만에 뿌듯함과 희열을 느끼는 책을 만났다. 이 시리즈의 책이야 진작에 읽었고, 여행(이 책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많았다.)을 떠나기 전에 미리 살펴보는 책으로 자리잡았는데 새로운 책이 나왔다니 안 읽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문화재청장할 때 무슨 일을 얼마나 잘 했는지 모른다. 구설에 오른 적도 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도 굳이 신경쓰지 않았다. 내게는 다만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저자로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차라리 문화재청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구설에 오르지 않고 좀 더 좋은 이미지로 남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가졌는데, 이 책을 읽으며 보니 그게 아니다. 오히려 문화재청장이기에 가능했던 일을 많이 추진했다. 이래서 어느 분야든 잘 알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는가 보다.

 경복궁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경복궁과 자금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내 마음과 어찌 그리 같은지. 자금성에 가서 느꼈던 것은 비록 규모는 우리의 경복궁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거창하지만 섬세한 면에서는 우리가 월등히 앞선다는 사실이었다. 경복궁 곳곳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사였다면 자금성에서는  규모의 장대함에 대한 감탄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규모보다는 섬세한 아름다움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금성에는 온 세계 사람들이 밀려들지만 우리네 경복궁은 한산하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을 뿐이다. 저자는 자금성과 경복궁의 규모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니까 당시 어느 모로 보나 중국이 동아시아의 중심국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국제적인 관례를 따랐을 뿐이라는 얘기다. 즉 왕궁과 황궁의 차이일 뿐이니 거기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다.

 책을 보고 경복궁에 가거나, 설명을 들으며 갔을 때와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사실 처음에는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겠거니 했는데, 역시 아니다. 우뚝 솟아 있는 근정전의 뜻을 풀이하는 부분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다. 아, 이 양반이 전 정부에서 일 했던 사람이었지. 정도전이 이름을 근정전이라 지으면서 했다는 이야기, 어쩜 이리 지금의 상황과도 맞는지. 이래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유효한 것이 고전이라고 하는가 보다.

 반교리에 집을 짓고 살면서 들려주는 부여의 이야기는 어찌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마늘쫑을 바늘로 찔러서 뽑는다는 사실은 나도 처음 알았다. 엄마는 어떻게 뽑는지 물어봐야겠다. 내 기억으로는 잡아 뽑다가 끊어져서 저자처럼 머리만 먹었던 것 같은데 그게 근 이십 년 전 이야기니 지금은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특징을 역사적인 지식과 개인적인 이야기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문적인 지식과 함께 현장에 직접 가서 느낀 감상을 곁들이고 있어서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때로는 저자처럼 깊은 지식이 없기에 내가 갔을 때는 그만큼의 느낌을 못 받는 경우가 있어 좌절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것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번 여름에는 이 책을 들고 선암사를 가야겠다. 저자는 봄꽃이 피는 계절이 좋다고 하는데, 이미 그 시기는 놓쳤고 내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머니까 여름에라도 가야겠다. 한 번 갔다오긴 했는데 그때 내가 본 것들과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 중 겹치는 게 거의 없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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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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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근처에 허브농원이 있다. 잘 꾸며놓은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맛과 상큼한 향이 좋아 종종 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허브차를 마시면 돌아갈 때 작은 화분을 하나 준다. 작년 봄엔가 여럿이 가서 차를 마시고 가져온 라벤다가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한다. 작년에 꽃을 피우지 않아 속상했는데 알고 보니 꽃은 봄에 피우는가 보다. 그런 걸 가을에 꽃이 피지 않는다고 속상해 했으니 괜한 오해를 한 셈이다. 이 책을 읽는데 라방드 포푸리를 베개에 넣으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거나 보라색꽃이 아름답고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무척 좋다기에 도대체 무슨 꽃일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라벤더였다. 안 그래도 카뮈의 묘소 사진을 보며 혹시나 했다. 프로방스에서는 라벤더를 밖에서 키워도 되는가 보다. 우리는 겨울에는 실내에 들여놓아야 하는데. 그게 바로 지중해 기후의 장점인가.

  이 책을 읽고 언젠가는 프로방스를 꼭 가겠다고 결심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프로방스라는 지명은 알퐁스 도데의 <별> 때문에 모두 익숙할 것이다. 그게 중학교였는지 고등학교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여하튼 교과서에 실렸으니 웬만큼 기억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사실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냥 아름다운 장면이겠구나만 생각했지 그곳의 자연은 어떨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추가되었다.

  우리나라 여름은 온도가 높고 습도까지 높아서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느낌인데 프로방스는 강렬한 햇빛은 있지만 건조하다니 우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일 것이다. 습도가 낮아서 햇빛이 더욱 강렬하고 모두 감탄하는 그런 풍경이 연출되는 것이겠지. 거기다가 바람이 불면, 정말 시원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에서의 바람을 생각했을 때 얘기란다. 저자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바람을 왜 싫어하는지 몰랐다고 하니, 역시 환경은 사람의 생각을 규정짓는다. 햇살은 강렬하고 건조한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면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겠지. 특히 커다란 사이프러스나무에 바람이 분다면 어떨까. 아마 고흐가 이런 모습을 보고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저자는 아를에서 고흐의 흔적을 찾아다니며(프랑스의 지명이 익숙하지 않아서 당췌 저자가 이야기하는 지명이 어느 부분인지 감이 없다. 그저 대충 짐작할 뿐이다.) 그와 내면의 대화를 할 때 사이프러스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기대했는데 웬걸, 한 마디도 없다. 고흐의 그림에서 사이프러스나무가 워낙 강렬한 인상을 줬기에 그 맛을 느끼고 싶었는데 아쉽다. 생 레미 병원이며 고흐가 그린 방, 카페 등등을 돌아다닌 이야기를 읽다 보니 고흐의 그림들이 지나간다. 비록 고흐의 그림을 모두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찌보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일기 형식의 글인데도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여행 이야기보다 푹 빠져, 마치 저자와 함께 그곳을 거닐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그리워하고 원하는 모든 것이 갖춰져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고요함, 햇살, 느긋함 그리고 자연. 이런 것들이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이다. 때로는 분주한 여행이 좋을 수도 있지만 워낙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관계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골라다니는데 프로방스가 딱 그런 곳이다.

  문득 난 왜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것일까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상당한 귀차니스트여서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구는 것도 무척 좋아하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자연의 모습,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것을 접하는 경이로움과 그런 곳에서는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알지 못하고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마주치는 '나'는 지금까지 규정지어진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전혀 다르게 행동할 주변머리도 없다. 그러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확실히 다르다. 어쩌면 그러한 변화가 나를 자꾸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끔 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그곳에서 온전히 자신을 만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완전한 휴식을 취하고 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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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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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책을 누군가와 같이 읽은 것도 아니요, 이념서나 철학서를 읽은 것도 아니다. 우연히 대학 4학년 때부터 어떤 주간지를 꾸준히 보기 시작했고 정치와 관련된 책을 조금 읽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역사나 세계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는군). 그러나 관심은 많다. 내가 뭔가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관심이 많은 것뿐이다.

 3년 전에는 매일 속으로 화를 내고 살았던 듯하다. 세상이 내가 생각한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당시 상황을 성토하기 바빴다. 모든 것을 보수 탓으로 돌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단지 화풀이 대상을 미리 정해놓았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실망한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아예 포기했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진보든 좌파든 지금처럼 하다가는 집권은 커녕 국민의 관심을 받는 것조차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읽게 된 책이다. 그동안 진보측 사람들의 말이며 행동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이 책을 읽으니 조금 감이 잡힌다. 그들은 자신들이 활동했던 운동권적 기질이 아직도 남아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일반 국민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자신들이 앞에서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와 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난 촛불집회를 보고 화들짝 놀랐던 것이고. 하지만 지금은 이미 그때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헌데도 여전히 그네들의 고정관념틀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일반 대중과의 괴리는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정치가는 권력에 관심이 없어야 한다는, 아니 적어도 권력을 위해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나도 은연중에 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기에 '정치가라는 직업은 권력감을 제공한다.'라는 글귀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차피 권력을 잡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권력에 초월해야 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생각 아닌가. 그렇다면 권력을 잘 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그것과 거리를 두라는 얘기는 아니잖은가.

 '유머와 웃음이 없는 정치는 위험하다.'는 말이 왜 그리 공감되던지. 지난 정권 때는 대통령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좌중이 웃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으나 현 정권에서는 그런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진지하게 지시하고 설명하는 장면만 기억난다. 물론 진보도 마찬가지다. 원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길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잘못만 성토하고 흥분을 잘한단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불평불만만 일삼는 사람처럼 보인단다. 그러면서 막상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현재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등을 돌리지는 못하더라도(대안이 없으므로) 적어도 지지하지는 않는 것일 게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5회로 진행된 강연을 묶은 책인데 꼭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도 흥미있는 책이다. 정치의 속성부터(어쩌면 내가 가장 오해를 많이 한 게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현재의 문제점과 대안까지 골고루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 상대편의 잘못을 부각시키며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반해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상대편이 잘못한다는 전제는 똑같지만 적어도 이쪽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의 잘못만 이야기하는 책은 읽는 도중에는 비록 속이 후련할지 몰라도 읽고 나서 얼굴이 일그러지고 마음이 불편한데 비해 이 책은 읽으면서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정치' 이야기에는 으레 정치가가 주였는데 이 책은 정치가가 아니라 순수한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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