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 - 미국 정신의 르네상스를 이끈 우정
하몬 스미스 지음, 서보명 옮김 / 이레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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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문학이든 순수문학이든 여하튼 문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기에 어떻게 소로우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어찌어찌해서 소로우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된 후 그냥 마음에 들었더랬다. 나도 한때는 자연속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있었고 도시의 번잡한 생활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기에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았다는 사실 자체에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월든>을 읽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세계를 뒤흔든 시민불복종>을 읽었다. 둘을 읽게 된 계기 사이에 모종의 연관성이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고 그저 <월든>을 읽으며 역시 나는 문학적,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기억만 난다. 그의 방대하고 깊이 있는 학식에 그저 놀라웠고 기가 죽었다. 한참 후에 우연히 <세계를 뒤흔든 시민불복종>을 읽으며 소로우에 대해, 그리고 그의 사상이 미친 여파가 어땠는지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다시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소로우를 언급하면 자연적으로 랠프 왈도 에머슨이 따라오니 그의 책을 읽어 보려고 검색하던 차에 발견한 것이다. 원래 선물 받고 읽지 않았던 에머슨 수상록이 있었는데 동생이 그 책을 보더니 얼른 달라기에-동생도 소로우와 에머슨을 좋아한다-줘 버려서 항상 아쉬운 마음이 있던 차다. 아직 에머슨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문학 세계나 생각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일단 자연인 에머슨을 알기에 적합한 책인 듯하다. 물론 소로우를 알기에도 적합하고.

 

  어떤 철학적(여기서 말하는 철학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고를 하고 그것을 체계화하는 과정이 어떠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 입장에서는 완성돼서 나온 것만 읽거나 배우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우정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에머슨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서 토론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보며 결과가 결코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며 어떤 이론이나 사상이 혼자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본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수시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더 깊이 발전시키며 사유하는 과정이 무한반복된 결과물이 아닐런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에머슨이 월듯 호숫가의 땅을 소유하지 못했더라면, 그곳에 오두막을 짓도록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소로우의 <월든>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소로우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소로우의 능력이 뛰어났으니 주위에서 그처럼 도움을 준 것이라 생각했다. 즉 소로우가 있기 위해 에머슨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겼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니 그와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에머슨이 없었다면, 에머슨이 소로우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소로우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에머슨이 소로우에게 그토록 많은 도움을 주고 성공하게 해주려 노력했는데 소로우가 너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전에 어느 그림책-<내 친구 소로우 선생님>-에서 브론슨 올콧이 소로우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그의 딸인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냥 같은 동네에 살아서 가끔 얼굴을 보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긴밀한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에머슨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젊은이를 발굴해서 작가로 성공하도록 격려하고 후원하는 역할을 하지만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관심을 거두지만 소로우가 침체기를 겪을 때도 계속 후원한 것을 보면 소로우에게는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사실 우정이 지속되다가 서로 다른 길을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결말이 좋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읽었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소로우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지속되었다. 중간에 잠시 서로의 생각이 달라 다른 길을 가긴 했지만 그건 어차피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생각이 동일할 수는 없으므로 당연할 수밖에 없다. 왜 같은 길을 가던 스승과 제자가 나중에는 결별하고 서로의 독자 노선을 추구하는 경우를 종종 보지 않던가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일 게다. 소로우와 에머슨의 작품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다루면서 자연인으로서 조명하는 이 책 덕분에 소로우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경외감을 갖고 읽었던 <월든>의 소로우가 아니라 단점도 있고 유약한 면도 있으며 인간적인 소로우를 만났다. 이제 에머슨이 궁금해졌다. 그에 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월든>을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처음 읽을 때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이 나와서 흥미를 떨어트렸는데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흥미를 돋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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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위반 -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박용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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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엄밀하게 말해서 나는 종부세 대상자도 아니니 종부세를 폐지하든 안하든 변하는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또 다주택 소유자의 양도세 폐지에 대해서도 당장 나와 관련없고, 오히려 혹시 나중에라도 이득이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아예 모르는 척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그럴까. 종부세 폐지로 인해 지방교부금이 줄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지역사회의 복지사업 축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 않던가. 4대강 사업에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예산과 위에서 이야기한 세금 감소로 인해 많은 사업이 축소되었는데 교육 예산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무상급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무상급식이 갑자기 시행되는 바람에 예산이 변경된 건 사실이겠지만 전적으로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야말로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방향으로만 본다고나 할까. 이렇게 결국 귀 닫고 눈 감고 살려고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언제나 그렇듯이.

 

  악몽과도 같았던 4년의 세월이 흘렀다. 끝났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일 년이 남았고 다음에 어찌될지 모르니 더 얼마를 참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 이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깨어있는 시민'을 강조했던 것이다. 현 대통령은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위험한 지 알았기에 전 대통령의 자취를 지우려고 그토록 기를 썼던 것이고.

 

  한겨레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책을 내가 골라 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 하나하나가 어쩜 그리 내 생각과 같은지 모르겠다. 법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우리의 법과 다른 나라의 법을 이야기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소 어렵긴 하지만 애초부터 저자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쓴 글이었기 때문에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같은 시기에 <닥치고 정치>를 함께 읽었는데 그 책은 상당히 직설적이고 거칠게 이야기해서 마음이 후련하긴 하지만 신뢰성 면에서는 이 책이 훨씬 낫다. 감성적이면서도 사회의 이면을 꼬집는 냉철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흔히들 언젠가는 선이 이긴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으려 애쓴다. 설마 BBK가, 용산참사가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당장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고 밝혀낼 수 없다 하더라도 먼 훗날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그것이 바로 정의고 선이 아닐런지. 그러나 제목에서 시사하듯 워낙 상식이 안 통하고 정의가 안 먹히는 사회에서 4년을 지내다 보니 언제나 선이 이긴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지금으로서 바라는 건 딱 하나다.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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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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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서, 혹은 읽으면서 갖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그럴 때마다 메모를 하기로 마음먹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다행히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되면(이런 맛 때문에 책 모임에 꾸준히 나가게 된다.) 뿌듯함을 느끼지만 그도 아니라면 리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그래서 간혹 리뷰 쓰는 일이 번거롭고 부담스럽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언가 남는 게 있어서 이 또한 뿌듯하다. 대개 책을 읽으면 바로 리뷰를 쓰는데 이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다. 원래 시간이 지난 뒤에 리뷰를 쓰면 그동안 책 내용을 곱씹으며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삶에 쫓기다 보면 책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번 가을에는 뭔 점검이 그리도 많은지-나와 관련된 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사람이 혼자 살 수 없기에 도와줘야 했다-도무지 짬을 낼 시간이 없었다. 책을 읽은지 시간이 오래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따라서 느낌이 많이 퇴색되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 서두가 좀 길었다.

  주류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섬을, 그것도 가까운 섬이 아니라 멀고도 먼 섬을 찾아간다는 기획의도를 듣고 참 재미있겠다 싶었다.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뒤부터 과거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일이 재미있어졌다. 그러니 딱이겠다 싶었다. 우선 유배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정약용과 정약전일 게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면서 조선의 인물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그런데 내가 역사를 너무 협소하게 생각했나 보다. 여기서는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규보를 제외하면 전부 조선시대의 인물인데도 처음에 이규보가 나와서인지 뇌리에는 그런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아마 여기서 다루는 인물들이 어떤 사건과 함께 언급되면 알아도 이름만 덜렁 나오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짧은 역사 지식 때문일 게다.

  한때는 유배를 가면 아무것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유배지에서 마을 사람들과 왕래도 하고 아이들도 가르치며 심지어 결혼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야말로 책 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리안치의 형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참했나 보다. 햇빛이 안 들게 처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면 습도는 얼마나 높을 것이며 하늘은 제대로 보였으려나. 그곳에서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어느 곳도 갈 수 없다면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좌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유배라는 형벌이 무서웠던 것이리라. 그러나 정약전이나 김만중 같은 사람은 유배지에 가서 오히려 걸작을 낳기도 했다. 여기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배지에서 그냥 허송세월을 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좌절하여 속으로 한이 쌓이기도 했다. 하긴 왜 아니 그랬을까.

  유배지가 서해의 섬도 있지만 대개 남도의 섬이 많다. 서울에서 가장 먼 섬을 찾다 보니 그리 된 것일 텐데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 그곳까지 가려면 그것부터가 고역이었겠다. 고문을 당한 후 유배지로 향하다가 죽는 일도 다반사였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 아닐까 싶다. 유배를 당한 사람들이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정치범이었기에 정권이 바뀌어 승승장구 한 사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이란 참 덧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인물과 역사에 더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기대했으나 그 보다는 섬의 현재 모습이 많아서-현재 모습도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인 모습이 너무 많기에 공감이 잘 되지 않아-약간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한 시대에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어떻게 지냈는지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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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없는가 - 중국 낙관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31가지 근거
데이빗 매리어트 & 칼 라크루와 지음, 김승완.황미영 옮김 / 평사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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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중국으로 출장갔을 때 일행 중 몇 명이 현지에서 직접 비자를 발급받았다. 원칙적으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약간의 돈을 주면 통한다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또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라면을 미리 부치면 절반 이상은 사라지고 나머지만 겨우 전달받을 수 있기에 아예 넉넉하게 보낸다는 말도 있었다. 중국은 그 정도로 부패가 만연한 나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헌데 아직도 그러한 관행이 별반 나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나라 사람들도 자기네 정부가 부패가 심하며 불리한 면은 감추려고 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이다. 알고는 있어도 바꾸려는 의지가 약한 것인지 아니면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냉전 체제가 무너진 후로 지금까지 미국이 독보적인 세계의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 서서히 중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의 경쟁국으로 올라올 기미가 보이자 미국에서도 긴장하고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 경제성장률이라는 하나의 시각으로 보자면 중국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단순히 경제만 성장한다고 해서 다른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말이다. 거의 '무'에서 어느 선까지 올라가는 것은 쉽지만 거기서부터는 단순히 외적인 성장으로는 표가 별로 나지 않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다른 부문의 성장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의 경우도 개발독재 시절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후유증과 부작용으로 아직까지도 곳곳에 문제가 있지 않던가. 사실 지금의 중국의 급성장을 보면 우리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나마 우리는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를 이루었기에 그나마 지금의 상황까지 올 수 있었지만 중국의 경우는 개방경제로 돌아섰다 해도 정치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폐쇄적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우리보다 훨씬 많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부정부패 문제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아닐런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도 곳곳에 부정부패가 남아 있지만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그와 함께 교묘해진다는 점도 확실하지만.

  이 책은 중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주면서 이런 식으로 해서는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지적한 모든 점이 분명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약간 불편했다. 중국이 우리와 같은 동양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지나치게 서구적인 시각에서 중국을 바라보고 그들의 잣대로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개인중심적인 사고를 기준으로 보자면 동양의 문화는 이해하지 못할 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름'의 문제이지 '틀림'이 아닌데도 틀리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몰고 간다. 패권을 쥐기 위해 벌이는 미국이나 유렵의 여러 나라가 보이는 행태는 정당하고 중국의 행태는 부당하다는 식의 전개도 거슬린다. 물론 저자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문제를 직시하자는 의도에서 한 이야기라는 점은 알지만 어쨌든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다고 중국의 문제가 정당화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중국이 아무리 경제가 급성장하고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해도 그들의 수준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일종의 졸부를 바라보는 시각과 같다고나 할까. 내적인 면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적인 것만 남을 따라가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읽으면서 중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데 어째 우리 이야기(과거형도 있고 현재형도 있는)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있는가 없는가 주목하고 있는 반면 우리에게는 아예 그럴 가능성이 없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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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2012-02-05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님이 읽은 책들의 리뷰를 들여다보면서..비슷한 생각을.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 종교를 보는 새로운 시각, 심층종교에 대한 두 종교학자의 대담
오강남.성해영 지음 / 북성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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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학생 토론수업을 참관했는데 선생님께서 학부모도 참여하라며 종이를 주신다. 거기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는데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여섯 명을 고르란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골랐는데 거기에는 목사도 끼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교회를 다니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지라 종교를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주저하지 않고 목사를 고른 이유는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종교란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종교를 갖진 않았지만 종교의 긍정적 측면을 부정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게을러서 종교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일요일이나 휴일에 갑자기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 많았던 지금까지의 생활을 고려하건대 종교가 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때는 교회를 다녀보고자 비교적 큰 교회에 나갔으나 한 번 나가고 그만 두었다. 목회자의 경험과 철학이 묻어나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간 것인데 계속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만 하고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는 등 기대한 바와 너무 달라 그 후로 가지 않았다. 아마 지금 대개의 교회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두 교수가 하는 말을 빌리자면 심층으로 들어가지 않고 표층에만 머무는 종교인 셈이다. 

  가장 관심 없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종교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갖고 어떤 종교생활을 하든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아예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한 친구라도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계기로 종교라는 것도 관심을 가질만한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종교를 가졌다고 할 수 있으니 인간과 종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세계 자체를 이해하는데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솔직히 종교학이라는 분야는 특정 종교에 심취한 사람이 관심 갖는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심지어 충분히 매력적인 분야라는 생각까지 든다. 특히 비교종교학은 상당히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기 때문에 역사와 사물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상당히 높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내가 보기에는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오랜 세월 종교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때로는 갈등이 해소되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조금씩 상대방을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원인이 각각의 종교가 표층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각각 가로로 잘랐을 때 각각의 종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보다  세로로 잘랐을 때 개별종교 안에서의 차이가 더 크다(53쪽)'는 오강남 교수의 말이 지금의 종교 문제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는 주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며 종교의 본질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하기에 종교에 의미를 두지 않는 나조차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종교의 기본에 대해 궁금해서 세계의 종교를 훑어주는 책을 읽고 있다. 이런 게 바로 책 읽기의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하나의 책으로 인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좁고 편협한 생각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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