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뇌에 관한 과학적인 보고서 - 인간은 왜 지금의 인간인가
에두아르도 푼셋 지음, 유혜경 옮김 / 새터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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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짧은 순간에 그야말로 수만 가지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당시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가만히 돌이켜 보면 어떻게 한순간에 그토록 다양한 생각을 했을까 의아할 정도의 경험, 누구나 겪어보지 않았을까. 이처럼 뇌는 신기하고 경이롭다. 아니, 인간의 매커니즘이 그렇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헛점이 많은 것 또한 인간의 매커니즘이라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더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는 사실도 이런 이중적인 생각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밝혀진 것이 얼마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알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한다.  

 굳이 다윈이라는 과학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도 진화되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어느만큼 진화되었을까.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것을 일일이 따라갈 필요는 없을 테고 우리는 흥미있고 큰 부분만 따라가면 될 것이다. 어차피 자세히 알려준다고 해서 그걸 다 이해하지도 못할 테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더 당연할 테니까. 

 지구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제는 어린이들도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다. 지구의 나이에서 보자면 아주 보잘 것 없는 시간이지만 인간의 시간으로 보자면 긴 세월 동안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지냈다. 지구의 역사를 일 년으로 축약해본다면 인간의 탄생은 마지막에 걸칠 것이라는 얘기는 인류의 역사가 그만큼 짧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인류가 진화의 관점에서 보잘 것 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거기에 매달려 진실을 밝혀내고자 애쓰는 것일 게다.  

 우리는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다. 물론 산소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물질은 많지만 숨을 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산소인데 역설적이게도 생명의 발전에 필요한 분자들에게는 산소가 해로운 물질이란다. 산소를 피해 도망가거나 산소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숨는 유기체가 있다니 산소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물질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내 기준이었나 보다. 그러니까 외부의 생명체가 있는지 알아볼 때 산소는 그다지 중요한 항목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 아닐까(확신하지 못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간혹 번역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지식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수식어의 부정확한 위치로 의미가 모호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자발적인 모든 행동은 기본적으로 무의식적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의식적인 모든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뇌가 정교하게 계획한 것이다." (128쪽) 

 자발적으로 행동한 것조차 사실은 뇌가 무의식적으로 행동한 것이고, 오히려 의식적인 행동을 뇌가 계획한 것이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지. 그러나 내가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어느 한 순간에 뇌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기도 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발을 뗄까 말까 하는 그 짧은 순간마저 머릿속으로는 수십 가지 가능성과 미래 상황까지 따지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우리의 뇌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궁금한 게 늘어난다. 

 30년 이상 인지 신경학 분야에서 연구한 로모 박사에게 더 이상의 호기심 내지는 연구 의욕이 남아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그의 답(앞서 뇌가 우리는 속인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뇌는 또 우리가 뇌를 이해하는 과정에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함정일 뿐이다. 매우 아름다운 함정이다. 뇌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계속해서 노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가야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331쪽)은 뇌의 교묘하고 탁월한 능력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처럼 수십 년간 한 우물을 판 연구자조차 모르는 것이 있다고 '착각'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오죽할까. 그러기에 오늘도 이처럼 이런 책을 읽으며 이해하려고 애쓰는가 보다. 구체적인 사례나 객관적인 자료를 들어 뇌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뇌를 기준으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이야기해서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주로 사랑과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뒷부분도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모르겠는 부분도 있었다. 역시 내 수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그래도 내 수준에서 얻은 몇 가지 소득은 있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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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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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이 바뀌고 나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외형상으로 보자면 그 전과 바뀐 것이 없는데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을까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것일텐데 바로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물론 다른쪽 사람들은 이조차 주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느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뻔히 보이는데도 일부의 이익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때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심정은 화가 나다 못해 허탈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보면 분명 발전해왔지만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몇 년 사이에 상당히 퇴보했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원래대로 되돌려놓겠다고 벼르지만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하는지 자명하게 드러났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내 주변에 있는 대개의 사람들이 현재 잘못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누가 이 정권을 지지하는 것일까. 하긴 이걸 보더라도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은 비주류임이 확실하다. 주류였다면 분명 현재를 '좋은 시절'이라고 느낄 테니까. 

  언제던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를 만나서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원래는 강연이었으나 어찌어찌해서 사장실에서 간담회를 하게 되었다. 그때 오연호 대표가 조국 교수를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잘생겼지, 머리 좋지(서울대, 그것도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그곳에서 교수를 하고 있으니), 글 잘 쓰지, 게다가 진보적이기까지 한 사람이 그리 흔한 것이 아니잖은가. 그러면서 조국 교수가 이 나라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서 어떨 것 같냐고 슬쩍 묻기도 했었다. 조국 교수가 첫머리에 밝혔듯이 대담 도중 오 대표가 조 교수에게 그런 권유를 많이 했단다. 그야말로 '상품성'(이것은 내가 생각해낸 말이 아니라 조국 교수가 직접 한 말이다.)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자기 분야에서 일 잘하며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이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후 망가지는 걸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치를 잘한다 해도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추기는 절대 불가능할 뿐더러 옳은 길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길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지 않았던가. 개인적으로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면서도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국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만 봐도 그렇다. 나도 조국 교수를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금의 그 모습과 그 마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물론 정치를 하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것은 아주 힘들다는 걸 알기에 차라리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길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내가 궁금했던 것을 이토록 명쾌하게 풀어줄 수 있을까 싶어 마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현 정권은 무조건 잘못하고 전 정권은 모두 잘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사실 현재의 문제점을 파고들어가다 보면 보수'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어느 사회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보수는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 기득권이자 수구세력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듯이 보도 일종의 수구세력일 뿐이다. 정치는 진보이지만 생활은 보수인, 그야말로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예전에 우리는 이랬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못한 게 사실이다. 솔직히 나도 한때 시리즈가 '누구'에게만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러니 80년대의 학생운동만을 생각하다가 특정한 집행부 없이 중구난방이었던 촛불집회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만약 지금의 진보 세력이 정신만 차렸다면 한쪽에서 이토록 말도 안되는 일을 밀고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인간이 모든 면에서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일 수는 없다. 나도 대개는 보적이지만 때로는 많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있다. 현재의 상태가 더 편해서, 혹은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서 변하지 말았으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간혹 갈등하기도 하고 남편에게 핀잔듣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고 올바른 것인가는 알고 있으며 거기에 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조국 교수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무조건 진보적이라거나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합리적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좋다. 조국 교수는 민노당의 어떤 행동은 당연한 것인 반면 어떤 행동은 옳지 못했다고 명확히 이야기하고, 386의 한계와 앞으로의 과제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어느 한 편을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다른 편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단지 옳은 방향으로 나가야 할 길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어쩌다 보니 조국 교수에 대한 예찬론이 되어 버렸는데 어쨌든 진보측에서 유능하고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집권이 목표가 아니라 그들의 가치를 실현할 방법을 찾는 게 목표였으면 한다. 그러면 보수 정권이라도 그들이 할 일이 있을 것 아닌가. 물론 이왕이면 집권하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으니 좋겠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진정한 목표는 가려질 수도 있을 것 같아 하는 얘기다. 오연호 대표기자와 조국 교수는 어차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니 이야기하면서도 죽이 잘 맞았을 것이다. 대담을 나누는 동안 그들의 화기애해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된다. 이 책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읽어도 좋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갖도 있는 사람이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궁금할 때 읽어도 좋겠다고 오연호 대표는 말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보수쪽에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텐데 나는 내 기준에서 지나치게 선을 그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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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로드 - 라이더들을 설레게 하는 80일간의 일본 기행
차백성 지음 / 엘빅미디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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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동네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서 모든 아이들이 수영을 배울 때 나는 물이 무서워 가장자리에서 물장구 치는 것에 만족했다. 또한 학교까지의 거리가 멀어서 아이들이 자전거 타고 다닐 때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나는 꿋꿋하게 걸어다녔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아주 못 타는 건 아니다. 단지 맞은 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면 피할 자신이 없어서 내려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을 뿐이다. 대학 다닐 때 여행다니는 과동아리를 들었는데 거기서 하이킹을 갔었다. 이때는 차도 한쪽으로 난 길이 있어서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만날 염려가 없었다. 여자도 몇 명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만 뒤쳐졌다. 사실 잘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그토록 오래, 먼 거리를 달리는 게 처음이니 당연했다. 결국 내리막길에서 신나게 달리다가 길 옆 도랑으로 굴렀다. 근처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놀라서 쳐다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도 그땐 특별한 관계(?)에 있었던 친구와 단 둘이 뒤에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무척 미안했었다. 그 후로 절대 하이킹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럴 기회도 없었지만 어쨌든 내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때는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 가는 꿈을 꾸기도 했으나 이젠 포기했다. 내겐 너무 먼 자전거이기에. 

 의외로 자전거로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간혹 자전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어찌나 부럽던지. 저렴한 비용으로 자기와의 싸움에 도전하고 결국 이긴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점이 부럽다. 안락함을 포기한 여행,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책임지는 여행,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집을 떠나서 80일간 자전거로 여행을 한 것으로 알았는데 그건 아니란다. 세 번에 걸쳐 총 80일의 일정이다. 여하튼 그것도 대단하다. 길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모든 것을 갖추고 떠나도 일단 집을 떠나면 집에서만큼 편안하지 않다. 하물며 해외에서 최소한의 경비로 최소한의 것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오죽할까. 솔직히 나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아니다.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맛을 몰라서 이런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번 맛을 들이면 아무리 힘들어도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 테니까. 

 우리는 일본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이기에 무언가 배워야하지만 그러기에는 지난날의 감정이 남아있어 배척하고 싶어한다. 단순히 그들의 역사적 사료를 보고 유적을 관람하는 차원이라면 실컷 즐길 수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와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다면, 그것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면 결코 편하게 그들의 유적을 바라볼 수 없다. 저자도 그런 감정을 곳곳에서 느끼고 있는 듯하다. 원폭 돔을 단순히 피해의 상징물로 여긴다던가 다른 나라를 식민지배하며 지독하게 착취한 것은 잊고 기회로 만들려고 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그렇다. 모든 것은 양면적이므로 만약 내가 일본인이라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래도 전범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추켜세울 수 있으려나. 이미 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해버려서인지 도저히 그들처럼 생각할 것 같진 않다. 특히 원폭 피해에만 초점을 맞추고 원폭이 투하되기 전의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그들의 몰염치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잘 안된다. 세계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심지어 직설적으로 이야기해도 미동도 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이 확실히 선진국이구나 하는 점만은 느낀다. 특히 어디를 가나 외국 여행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밖에서 바라보는 일본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 아닐까. 경주를 여행하다 보면 외국인을 많이 만난다. 그러나 자금성을 가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여행객이 많다. 그걸 보고 아직도 우리가 세계에서 어느 위치인지 절감했다. 저자는 일본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작은 추억을 만들었던데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돌아가서 그런 여행이었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이상하게 저자가 만든 추억에 관심이 가기보다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들의 추억에 우리가 얼마나 남을까가 궁금해진다. 저자가 하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멋진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기에 역으로 한번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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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 스물여덟 명의 아이들과 함께 쓴 희망교육에세이
고정원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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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서 나를 포함한 회원들이 여러 곳으로 책읽어주기 봉사를 나간다. 그럴 때 고려하는 부분이 지속성여부다. 특히 환경이 열악한 공부방으로 자원봉사를 나갈 경우 일단 경계와 못미더운 눈초리를 보내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 아이들은 '저 선생님은 언제 떠나려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다.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부터 공감이 되었다. 내가 경험했던,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와 무척 흡사하기 때문이다. 책을 덮을 때까지 줄곧 저자와 같은 기분이 되어 함께 울고 웃었다.

중학교에 상담자원봉사를 나가는데 고작해야 한 아이를 네 사간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부모와의 갈등 때문에 집을 나왔지만 아버지가 먼저 전화해서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갈 의사가 있다는 아이도 있었다. 일종의 자존심 싸움인데 자칫 나쁜 일에 휩쓸릴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보기엔 아주 사소한 문제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본인에겐 집을 나올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당시엔 하지 못했다. 저자가 만난 아이들 중에도 비슷한 마음을 가진 아이가 있기에 그제서야 그 아이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갔다.

정작 본인들은 한 단어 걸러 욕을 쓰면서도 듣기 싫은 소리에 많은 아이들이 욕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너희들도 욕을 많이 하지 않느냐고 하면 그건 친근감의 표시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걔네들의 이야기인즉 감정이 섞인 욕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은 아직 어린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나는 짧은 순간 만났던 아이들과 있었던 일도 할 이야기가 많은데 몇 년간, 그것도 훨씬 많은 아이들과 만난 저자는 오죽할까. 모르긴 해도 이 책에 있는 이야기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왕따, 폭행, 가출, 절도. 그동안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안됐다는 생각과 함께 부모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부모들도 얼마나 힘들까 싶기도 했다. 내 마음대로 절대 되지 않는 것이 자식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부모가 관심과 사랑을 갖고 지켜봐준다면 한때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제 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이다.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면서 만약 부모 대신 누군가 그 역할을 해준다면 돌이키지 못하는 상태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이 책의 저자 같은 어른 말이다. 물론 저자가 모든 아이들을 제 궤도에 올려놓진 못했다. 그건 아마 누구라도 불가능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개 가정환경이 안 좋다. 가정환경이 좋아도 일탈하는 아이들이 있을텐데 왜 꼭 귀결점은 '가정환경이 안좋다'일까.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도 스스로를 다잡으며 열심히 생활하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 괜히 선입견을 갖게 될까봐 조심스럽고 걱정되기도 한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아이도 사실 속으로 상처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데 과연 우리 아이는 어떤 상처가 있을까. 아직은 잘 지내고 있으니 상처를 극복한 것일까. 나는 아이가 싫어하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고 아이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할 얘기가 무지 많지만 문득 그런 이야기가 부질없어 보인다. 백마디 말보다 한 번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게 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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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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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적인 이야기를 하며 열을 내다가 항상 도달하는 결론이 있다. 바로 지금의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 결론이 거기에 이르면 허탈감에 빠진다.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니까. 게다가 언론이 정치와 사회경제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언론 자체가 하나의 권력으로 군림하니 그것을 누가 견제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다. 언론인 스스로 자신의 고유 역할을 되찾는 수밖에. 그러나 말이 쉽지 이 또한 쉬운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그래서 이처럼 작정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사람에게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은이가 말하듯이 기자는 직장에 충실해야 하는 월급쟁이일 뿐이라고 생각할 때 언론인 본연의 의무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공중파 방송에서 하는 이야기나 신문에서 하는 이야기가 전부 진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알고' 있을 뿐이지 어떤 현상에 적용시키지는 못한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언론에서 보여주는 범위를 벗어나서 사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나도 뉴스에서 나오는 것이 사실일지언정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안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아니, 솔직히 그 전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적극적인 운동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연계열에서 그 정도면 운동권이라고 할 만한 선배의 말을 듣고서야 뭔가 번쩍하는 느낌이었다. 뉴스에서는 말 뿐만 아니라 이미지가 상당히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언론사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고 누구를 어느 방향에서 인터뷰하느냐에 따라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제 일반상식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왜'라는 의문을 갖고 언론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전에는 기자나 아나운서의 의견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뉴스에서 어떻게 그 언론사의 논조가 드러날 수 있는지 의아해했으나,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연히 안다. 특히 이념에 따라 보는 시각이 확연히 차이나는 사안이 발생했을 때를 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가만히 있으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의심을 가질 때라야 비로소 보인다. 즉 개인이 똑똑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지은이가 기자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확실히 어느 순간부터 변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조차 현 정부의 시각을 대변하는 듯한 이야기를 해서 뜨악하기도 했다. 특히 요즘처럼 방송 대부분을 G20에 맞추는 것을 보며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일전에 원전수주 때도 좀 심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뒷이야기가 있었단다. 여기서는 주로 경제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는데 외국 언론은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의 원전수주가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그 때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사안들은 부풀려서 보도하던 언론들이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방문과 시기를 같이 해서 발표하기 위해, 즉 대통령의 업적인 것처럼 보여지게 하고 싶어 그랬다는 얘기다. 당시에도 원전수주를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보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뉴스에서는 마치 이 정권이기에 가능한 치적인 양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지은이가 지적하기를 이것은 기자들이 정부나 기업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좀 더 호기심을 갖고 깊이 파고들어가려는 기자본성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어디 그러한 적이 한두번인가 싶어 허탈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일간지의 신뢰도가 워낙 떨어져서 일간지 대신 인터넷에서 본 뉴스를 인용하며 마치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처럼 포털에서 본 뉴스가 바로 일간지가 내보내는 뉴스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그 사실은 간과한 채 인터넷이라는 형식에만 집착한 결과다. 외국에서 주목하는 오마이뉴스가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전 정권과 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현 정권에 밉보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시민의식이 거기까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런지. 

상당부분 내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에 속 시원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나와 반대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차분히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감정적으로 비판만 하는 어조라서 반대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귀기울여 들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조선일보를 아예 한 단계 접고 대하는 것처럼. 그 부분이 아쉬웠다.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하고.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 어느 선까지는 안다는 전제하에, 아니 당연히 알고 있어야 마땅하다는 전제하에 흥분해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도 종종 남편으로부터 현실은 외면한 채 이상만 추구한다는 핀잔을 듣곤 한다. 또 하나, 정치나 사회뉴스에 대한 이면의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경제를 주로 이야기해서 약간 아쉬웠다. 그나저나 지은이가 작정하고 썼다는데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과연 이 기자는 복직하고 계속 남아있을 수 있으려나. 이처럼 신랄하게 본인의 회사를 비판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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