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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별의 집 - 엄마가 쓴 열두 달 야영 일기
김선미 지음 / 마고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야영. 우리에게는 낯선 단어가 아닐까 싶다. 워낙 씻는 것에 예민한 남편 때문에 선뜻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나도 점점 그렇게 되어간다는 점이다. 이제는 불편한 것 싫고 춤거나 더운 것도 못 참겠으니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렇지만 우리도 야영을 했던 적이 있다. 지인 중에서 이 책의 저자만큼이나 야영을 좋아하고 즐기는 가족인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부럽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텐트를 들고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은 차량 도난 사고 때문에 엉망이 되는 아픈 추억으로 남았다. 그 후로 우리는 야영은 꿈도 못꾼다. 물론 그 사고가 야영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자는 것도 불편하고 씻는 것도 불편한 것은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딸고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데리고 매월 야영을 떠날 계획을 했다는 글을 읽고 참 부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야영을 간다는 그 자체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런 야영을 아이들이 따라간다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 아이들 같으면 별별 소리로 불평을 해서 결국은 '그래, 그럼 넌 가지 마.'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테니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불편함도 감수하고 즐기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내심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읽다 보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특히 여행 가서 이 집도 싸운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 모두 똑같구나. 아이 키우는 부모 마음은 다 비슷하고 여기에 살고 있는 또래의 모습은 다 비슷하구나하고 말이다. 물론 저자의 두 딸은 나름대로 자연을 즐기고 느낄 줄 아는 감성을 가졌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것은 아마도 부모가 오랫동안 함께 여행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도 mp3들으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을 보고 부모가 잔소리 하는 모습이라던가 야영은 불편하다고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집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기에 자주 다니는 편이다. 그러기에 저자가 다닌 곳과 겹치는 부분도 꽤 있다. 그런데 느낌은 전혀 다르다. 당연하다. 우리는 주로(아니 모두) 콘도나 펜션으로 다녔고 저자는 전부 야영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난 뭔가를 얻을 목적으로 열심히 다녔던 것에 반해 저자는 자연을 느끼기 위해 다녔다는 점이다. 그러니 느낌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밖에 나가면 복잡하게 밥 해먹는 것이 싫어서 최대한 간단하게 해먹었던 나에 비해 저자는 그런 것까지 치밀하게 준비를 하나보다. 그동안 '여행 갈 때는 짐을 최소한으로'가 내 신조였는데 아무래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차가 있는데 만약을 대비해서 여유있게 준비하는 게 뭐 힘들겠나.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본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어른들이 더 성숙해지는 것 같다. 아이들과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계속 되짚어 보고 반성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이곳에 사는 평범한 아이 엄마로서 공감이 많이 갔다. 지금 막 사춘기를 통과하는 딸과 하루도 조용히 지나갈 날이 없는 내게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래, 아이들은 놔 두면 스스로 알아서 잘 하건만 왜 미리 걱정하고 겁먹는단 말인가.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갔어도 혼자 이어폰으로 노래 들으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지 왜 꼭 함께 멀뚱히 있어야 하는 것인가. 자꾸 내 안으로 들이려고만 했지 날아가도록 놔주지는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단순히 야영 했던 이야기를 위주로 풀어내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감성적인 부분이 충분히 채워졌다. 마치 나도 여행을 함께 하고 난 듯 가슴 벅차면서도 말로 표현 못할 잔잔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잔상들을 나눌 수 있었다. 이런 글을 전문적으로 쓰던 사람이라 그런지 편안하면서도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나저나 우리도 다음 여행 때는 큰 아이에게 돈을 맡겨봐야겠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걔는 구두쇠라 돈 타내기 힘들 것이라며 걱정을 한다. 그래도 한번 맡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