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런 삶의 해부 - 거짓말, 그리고 이중생활의 심리학
게일 살츠 지음, 박정숙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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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이러저러한 일들과 연관되어 심리학이나 정신과 교수들의 강연을 자주 들었다. 물론 주로 다루는 문제들이 이 책에서처럼 어른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이나 청소년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한때는 심리학에 매력을 느껴서 책을 보려고 시도했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나에게 있어 그쪽은 아무래도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만 절감했을 뿐이다. 전공과 다르다는 것은 이처럼 벽을 느낄 수밖에 없나보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을 것이다. 내게도 '아마도' 비밀이 있을 것이고. 다만 의식적으로 감추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감추는 것일 수도 있겠지. 가끔 남편과 대화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혹시 비밀 있어?'라고. 아마 이건 대부분의 부부들이 하는 대화 중 하나 아닐까. 그럴 때 둘 다 말로는 없다고 하지만 글쎄, 그걸 믿을 수는 없다. 나도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여기서는 이런 무의식적 비밀과 의식적 비밀을 구별한다.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감추려고 할 때 즉 의식적 비밀인 경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렇다고 무의식적 비밀은 전혀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간혹 깊이 들어가다 보면 무의식적인 것이 원인인 경우도 있으니까. 여기 있는 사례들은 전적으로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지만 30년 동안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한 것들을 토대로 했으니 말도 안 되는 그런 사례는 아닐 것이다. 분명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났을 만한 것들일 게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 보여지는 이해 못할 사람들이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는 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걸 노리고 일부러 정신질환자인 척 하는 경우도 있다지 않은가. 어렸을 때 발달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으면 커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꼭 그런 것은 아니라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여러 요인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단다. 하긴 어느 하나가 정확히 하나의 원인과 일대일 대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겠지.

여러 비밀스러운 삶을 들여다보면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캐들어가다보면 결국 기저에는 자아존중감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적어도 나는 책을 읽고 그렇게 결론내렸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문제를 일으키고 어떤 사람은 극복하는 것을 보면 자신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것이 그전부터 꾸준히 들었던 이야기였다. 사실은 마지막에 잠깐 나왔던 것처럼 상담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사례를 들려주기를 기대했는데 결과만 놓고 분석하듯 이야기를 이끌어 가서 조금 아쉬웠다. 전문가들이야 후자가 훨씬 좋겠지만 나같은 문외한들은 전자가 훨씬 흥미로울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의 문제를 상담하는 과정을 보고 흥미를 느끼는 것도 일종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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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 - 미국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가치 있는 가정들 라면 교양 1
김준형 지음 / 뜨인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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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교양이란다. 이름이 참 재미있다. 무슨 뜻일까 의아하지만 제목을 보면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사실을 가정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이것은 즉 현재 미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얘기다. 아마 그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미국에 우리는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게 현실이고. 물론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전적으로 강자와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각 장마다 만약이라는 전제 하에 시나리오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는 꼭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한국전쟁 때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생체 실험에 관련된 자료를 넘겨 받는 대신 전범 재판을 형식적으로 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아니었나? 오히려 당시에 일본은 우리를 영구 식민지로 지배하기 위해 미국과 물밑접촉을 했다고도 한다. 

미소 냉전체제가 서로 공생하기 위해, 서로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는 것 또한 이미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다만 소련의 힘이 미국이 이야기했듯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었다니 약간 의외였다. 또한 집권자들이 반공정책을 얼마나 적절히 이용했는지도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선거 때만 되면 북풍을 일으키곤 했으니까. 뭐, 우리는 아직도 어떤 것에 시민들이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할라치면 북한의 위협을 핑계 삼아 유야무야 시키곤 하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마냥 속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보다 미국이 자국의 남아도는 무기를 팔기 위해 툭하면 북한의 위협을 흘리는 것이 더 문제다. 그러면 보수 언론은 그걸 엄청 크게 보도해서 불안을 조성하고 결국 무기를 사는 것이다. 언제까지 그런 술수에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이미 알고 있다시피 국가간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미국은 절대 우리를 모른체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예전에 그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해 줬는데 그러느냐라며 핏대를 세운다. 과연 순수하게 우리를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그건 절대 아니다. 미국은 아니 어떤 나라든 자국의 이익이 없는데 순수하게 인간적인 차원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도와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아직도 환상에서 못 벗어나니 답답하다.

저자는 결코 미국과 등을 돌리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는 절대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미국의 정책에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말자는 것이다. 서서히 우리도 미국으로부터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 군사력의 독립도 그 중 하나라고 본다. 당장 힘들고 시민들의 부담이 늘어난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미국에게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들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당신이 저를 지켜주세요라고 하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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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십년의 한국 - 우리시대 희망을 찾는 7인의 발언록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2
리영희 외 지음, 박상환 엮음 / 철수와영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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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바뀌든 국회의원이 바뀌든 여당과 야당이 바뀌든 간에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누가 정권을 잡든 누가 여당이 되든 간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큰 틀에서는 바뀌는 게 거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어떤 지식인이 했다는 "세상에 좌파 정부란 없다."라는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보수주의자들(물론 우리나라에서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수가 아니라 수구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이 좌파라고 이야기하는 노무현 정부조차 유렵의 기준으로 보자면 오히려 우파라는데 우리는 극구 좌파라고 우긴다. 만약 이번 쇠고기 파동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보수(수구)세력들이 판을 치고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인 단체들이 서서히 늘어났던 것을 기억한다면 그런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뭐, 내가 모르는 곳에서는 아직도 그들이 판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7인의 발언록. 그러나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한 것이 아니라 주로 각각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라 그런지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가끔 '그래 바로 이거야'라며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으면서 말이다. 얼마전이 연평해전 발발일이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북방한계선(NLL)에서 일어난 교전 때문에 사망한 군인도 있고 부상당한 군인도 있다(아마 예전 같았으면 이걸 갖고도 엄청나게 반공교육 시키지 않았을까.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위로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북방한계선의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북쪽으로 더이상 올라갈 수 없는 선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뒤에 감추어진 진실은 이승만 정권에서 위로 올라가려다 문제가 불거져 생긴 선이라는 점을 말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앞으로는 국민이라는 말을 쓰는 대신 '민주주의적 시민'이라는 말을 써야겠다. 리영희 교수가 말한 것을 들으니 지금까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였다. 국민이라는 것은 국가라는 상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봉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15p)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오로지 경제 하나 때문에 현재의 대통령을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손호철 교수는 경제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경제를 지해할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나친 시장 중심주의 정책과 경쟁 때문에 지금의 우리들은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가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경제가 우선이라고 이야기한다. 당장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뒤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직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경제만을 부르짖으니 한심하다. 지금 우리는 누가 봐도 경제가 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출총제 폐지나 완화를 준비하고 있다. 경제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문외한이고 주변에 전문가가 없는 나도 지금은 성장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분배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그들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무엇을 듣는 것일까. 이럴 때 대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출세해! 하지만 그건 다분히 패배주의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정책을 결정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치는 넋두리일지라도 내 자리에서 내가 느끼는 대로 최대한 이야기할 것이다, 앞으로도.

여기에 나온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자면 끝이 없다.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야겠다. 현재 과거사청산 문제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 정권에서 활발하게 논의했으나 야당의 강력한 저지로 주춤하다가 이젠 아예 어찌되는 건지 이야기가 없다. 안병욱 교수의 주장처럼 친일을 했다는 것을 밝혀내서 어떤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사실만은 알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절대 안된다고 한다. 만약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그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 스스로 그네들 선조들의 친일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후퇴하지 않고 나아간다고 하는데 요즘의 현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간신히 독립성을 되찾으려던 사법부가 다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할 것 같은 분위기도 감지되고,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은근슬쩍 재벌들의 밥그릇을 늘려줄 정책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 7명의 저자들이 다시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지금 다시 강의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니,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러면 속이라도 시원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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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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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거의 잘못된 일을 보며 한심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과거에만 국한된 일일까. 요즘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후세에 무엇이라고 평할지 짐작이 간다.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 국민의 건강권을 송두리째 바칠까. 그것도 그쪽에서 먼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그들의 요구사항을 '알아서' 제시해 주었으니 그들로서는 우리가 얼마나 고마울까. 아니 '우리'가 아니라 일부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이것은 분명 사대주의에 부합된 행동이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그걸 모르는 것일까. 하긴 그들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남에게 보여지고 자신들의 위신을 높이는 일이 가장 급했을 텐데. 아, 그리고 또 있다. 앞으로 미국의 세를 등에 업고 국민들을 쉽게 '통치'하기 위한 계산도 들어 있었겠지.

흔히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현실은 그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있을까. 만약 이 책을 작년에 읽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한탄하며, 현재를 곱씹으며 읽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유성룡이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구나, 인품이 곧고 뛰어난 정치가이자 외교가였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즉 단순히 한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읽은 시점이 하필이면 유성룡이 처한 상황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 현재에 읽었기에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며 읽게 되었다. 일찍이 유성룡에 대한 대략적인 것은 알고 있었기에 유성룡 개인의 위대함보다는 어쩌면 당시 통치자였던 선조의 무능함에 더 격분하며 읽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점이 지금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기에.

무릇 권력이란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유셩룡이 살던 시대에도 당쟁 때문에 국정운영은 뒷전이고 서로 상대의 실정을 들추기 바빴던 시기였고 지금도-비록 당쟁이 아니라 정당한 당적을 갖고 있더라도-현안을 현명하게 처리하기 보다는 당리당략에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를 저울질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거기에 또 하나를 덧붙이자면 통치자는 민심의 방향을 읽고 그들의 요구사항이 뭔지 알아냈어야 하는데 그 또한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자신의 목숨과 권력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명에 빌붙을 기회만 엿보고 있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지금의 대통령도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의 권력을 탄탄하게 만드는데만 집착했다(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되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마치 자기가 지금까지의 대통령 중 가장 힘이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대국민 사과라고 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오로지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것 밖에 없다고 항변한 것 아니던가. 제대로 된 사과라면 현 상황을 인정하고 진짜로 국민들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어야 했다. 어떻게든 당신들을 설득하겠다는 기조를 시종일관 유지하니 듣고 있는 국민들이 화가 날 수밖에. 

당시 선조는 백성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고 유성룡을 믿고 따르니 그를 제거하기 위해 억지를 썼다. 그래서 결국은 유성룡과 이순신을 함께 잃었다. 어디 유성룡 뿐인가. 자기보다 민심을 더 많이 얻은 신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하고 아첨하거나 힘이 그다지 없는 사람을 곁에 두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이 부분도 지금과 비슷하다. 인물의 됨됨이 보다는 한때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을 기용하고(그러니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만한 통로가 없지.) 권력을 나눠가질 것 같은 자리는 권한을 축소하는 등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게 수렴되도록 만들었다. 

또한 언제나 최고 권력자 주변에는 실세가 있어 그 주변에 다시 권력을 좇는 사람들이 꼬이게 된다. 선조가 유성룡을 영의정에 기용하면 그 주변으로 사람이 몰려든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유성룡의 경우 객관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것에 공정을 기했으므로 사사로운 이권이 자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반대로 유성룡이 물러나고(쫓겨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면 다시 암투가 시작되곤 한다. 그래서 유성룡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동인의 영수자리에 있었지만(이때 서인의 영수인 이이도 유성룡과 비슷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우리나라로서 큰 행운이다.) 서인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던 그의 인물됨은 지금을 되돌아보게 한다. 언제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실세 논란이 있곤 한다. 그래서 도중하차하는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기도 한다. 이번에도 누가 보아도 실세인데도 본인은 끝까지 아니라면서 요직에 자기 사람을 앉힌다. 과연 그게 대통령에게 득이 되는 일일까. 절대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가 다 안다. 그러나 딱 두 사람만 모르는 듯하다. 바로 대통령과 그 실세.

언제나 백성들의 고통을 정확히 꿰뚫었고 그 방법 또한 제대로 알고 있었던 유성룡. 지금은 그런 사람이 왜 없을까. 아니, 어쩌면 어딘가에 있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양반들은 군역의 의무도 지지 않고 납세의 의무도 지지 않는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강행하지만 결국 있는 자(권력과 경제력)들의 힘에 밀려 모든 것이 원래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고 유성룡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 또한 어쩜 지금의 상황과 이리도 비슷할까. 권력이든 돈이든 있는 자의 아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 이젠 누구나 다 안다. 게다가 현재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고 하는데 그 혜택은 있는 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니던가. 일부 강남의 부자들(결국 이들이 권력자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때문에 많은 부동산 관련 법안들이 수정되었고 대기업에게 세금을 덜 걷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고 싶다. 아니 누가 그런 정책을 생각해 냈는지 궁금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조선에서는 백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만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질 않다는 점이다. 이번 촛불집회만 보더라도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촛불집회를 해서 무엇을 얻어내겠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몇몇이 모여 불만은 토로한다고 해서 그들이 의견을 들어줄 리 만무하다. 그럴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것이 바로 민심이고 일반인의 의견표출 아닐까.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만약'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렇게 가정해 보고 싶다. 만약 그 때 유성룡이 실각하지 않고, 아니 나중에 선조가 다시 불러들일 때 나가서 다만 몇 년이라도 제대로 된 정치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그 가정을 지금에 대입해 본다. 만약 지금 국민들이 이렇게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이미 그건 실행된 것이니까 협상을 잘 했다고 가정하고 이런 '만약'을 대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재협상에서 우리가 또 다시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서 실질적인 소득도 못 얻고 무기까지 엄청 많이 사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제발 이것만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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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과 육식 - 사육동물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
리처드 W. 불리엣 지음, 임옥희 옮김 / 알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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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 국내에서는 광우병 파동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어느 기사에서는 소나 돼지를 도살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이 육식에 대해 다루며 육식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파헤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읽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어느 하나를 생각하고 있으면 그와 비슷한 이야기만 나와도 모두 연관지어 생각하려는 속성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야생동물이 처음 인간에게 다가오고 인간이 그들을 통제하게 된 연유를 누구나가 그렇듯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정말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어쩌면 지극히 현재의 인간을 기준으로 꿰어 맞춘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역시 저자는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역사학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의심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고.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했을 때 그를 원숭이처럼 그려놓고 조롱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그렇다면 지금의 원숭이들이 언젠가는 인간이 될 것 아니냐는 강한 항의를 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현재 가축이 되었지만 그것이 야생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들이 새로운 야생 동물로 바뀌리라는 보장도 없다. 다만 모든 것을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소나 돼지 등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해 주는 가축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강아지나 고양이는 사람이 보호하고 기르는 애완동물일 뿐이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고기를 얻기 위해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식품을 제공해야 하는 현재의 비효율적인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또한 후기사육시대적인 착취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진정한 천재가 나타나 전기사육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도록 기다려야한다는데 그 또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해법이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만 하겠다는 약속을 하지도 못하겠다. 어쨌거나 지금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옳은 방향으로 바꿀 만한 방법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것인가. 우선 이 책을 읽으며 사육의 기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언젠가 천재가 나타나지 않을까. 사실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이렇게 뜯어보니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된다. 그런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이해하는데 애먹었다. 아니면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걸까. 어쨌든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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