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를 향한 새로운 좌파 선언의 전략
사민+복지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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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보수 정권에서는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그간 좌편향적인 정책들에 대해 심판하겠다고 벼른다. 글쎄, 좌편향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금융규제나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나 같은 서민의 입장에서는 그게 왜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과연 지난 정권이 좌편향적이었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나 진보라는 개념을 상당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사용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군가가 우리나라에서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실질적으로 따져보면 보수일 뿐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 이야기는 단지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상대방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반대의 개념을 차용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 좌파라던가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움찔한다.(그에 반해 진보라는 말은 상당히 그럴 듯하게 들려서 주로 그 말을 사용했다.) 이제 그런 강박관념을 떨쳐 버릴 때도 됐건만.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며 그 쪽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즉 실질적인 내용은 모르면서 겉에 드러난 몇 가지만 가지고 아는 척을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1부의 내용은 운동권이 아니었으며 지극히 평범한(때론 소극적인) 생활을 한, 그렇다고 그쪽 지식도 없는 내 경우는 책장 넘기는 속도가 무척 느린 부분이었다. 대신 많이 알게 되었고 나를 반성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동안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민노당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왜 분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두 개의 정당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객관적 입장에서 보자면 모두 보수인 정당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진보라 생각하며 한 쪽에 코드를 맞추고 있었으니. 그것만 보더라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은 진보니 좌파니 해도 실질적으로는 머리로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자신의 도덕성을 드러내보이거나 안도감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자처했을 뿐 진정 내 것을 내놓으면서까지 실천하고 싶진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연대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올 당시만 해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건이 막 터졌을 때라 그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내심 아쉽다. 만약 그에 대한 것도 다루었다면 현재의 상황을 훨씬 잘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금융 위기가 왜 오게 되었고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우리에게 나타난 그간의 사건까지 두루 이해가 된다. 그저 하나의 정책이 만들어지고 실행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미국의 주도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니 내 좁은 시야를 확인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2부의 내용은 현재 나타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읽어내려갔다. 그나저나 미국의 금융 문제가 확연하게 드러났는데도 우리는 그 길을 가겠다고 고집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의 복지정책을 동경한다. 그러나 그 재원을 마련해야 하려면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낫겠다고 말을 바꾼다. 분명 세금을 더 부담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무턱대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여기서는 차근차근 설명한다. 스웬덴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사실 나도 무덤에서 요람까지라는 말로 스웨덴의 복지를 인용하긴 했어도 정작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복지국가가 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과정을 보니 쉽게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무수한 담론과 토론을 거쳐 형셩되었다는 것을 알겠다. 우리에게도 과연 그런 토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을까. 그래서 스웨덴처럼은 아니더라도 보편적 복지가 실현될 날이 있을까 모르겠다. 아직도 대다수는 미국의 방식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어떤 정책에 대한 토론을 할 때 보면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 이것은 당연한 것일 게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조건은 생각하지 않고 중간에 필요한 것만 똑 떼어내 단순비교를 한다는 점이다. 요즘 세금 인하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외국은 보유세가 우리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예로 들며 재산세를 낮추고 종부세를 수정하려 한다. 그러나 그만큼 다른 부문에서 웬만큼의 평등이 이루어진 상태라는 점은 간과한다. 세금을 줄여서 국가의 재정이 줄어든 것은 어떻게 메우려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늘려도 시원찮은 복지비용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겠지. 그것이 전 정권의 좌편향 정책이라고 공격하는 것일 테고. 사실 지금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야당이 없다. 진보 지식인들이 거대 담론을 형성해서 제발 지금의 이 난국을 이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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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리 미소짱의 하루 30분, 영어 그림책 육아 - 영어가 엄마의 목소리처럼 친근해지는 굿 페어런츠 시리즈 6
이윤정 지음 / 살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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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니 새삼 아이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한창 일상에서의 영어 교육(편의상 그렇게 이름지어 보았다.)이 유행하던 때라 영어 그림책을 많이 '수집'하러 다녔고 생활에서도 영어로 이야기하고자 노력했었다. 그 당시는 문화센터 등지에서 영어로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엄마를 꽤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글쎄, 내가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대부분 전문 교육기관에 맡겨서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엄마들을 볼 수가 없다. 아니면 이젠 문화센터를 다닐 나이가 지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당시 모아 놓은 영어 그림책이 꽤 된다. 비록 지금 아이는 컸지만 영어에 있어서는 저자의 아이인 지호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림책을 어떻게 활용해볼까 하는 마음에 집어 들었다. 역시나 친근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 비디오도 있고. 그런 것들을 보며 한때는 나도 아이들에게 영어를 친근하게 접해주고자 노력했었는데 유아기를 지나고 나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아 착잡하다. 그래서 이 책을 받은 날 바로 아이와 영어 그림책을 읽었다.

아이가 컸을 때 영어를 가르치는 목적이 진짜 영어를 알기를 바라는 것이겠지만, 어렸을 때는 가장 큰 목적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것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지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쉬운 것부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이가 좋아하는 책부터 읽어주고 보여주었다니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직장맘인데도 이렇게 했다는데 집에 있는 나는 아이가 졸라도 책 한 권 읽어주기 힘들었으니 너무 비교된다. 나의 게으름을 반성했고 세로운 자극을 받았다. 웬만한 작가도 줄줄 꿰고 있겠다 좋은 책도 웬만큼 알겠다 이제 아이와 함께 책을 보는 것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지호는 어려서부터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흥미를 갖게 하고자 시작했다는데, 우리 아이는 그런 나이는 지났으니 좋은 책을 함께 보며 언어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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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계의 아틀라스 - 지도로 보는 세계의 미래 책과함께 아틀라스 2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외 지음, 안수연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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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한 해 지날 때는 모르지만 몇 년 단위로 묶어서 세상을 보면 변화하는 것이 드러난다. 일례로 소련이 붕괴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독일이 통일되는 날 텔레비전을 보며 변화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했었다. 만약 100년이 지난 후에 두 가지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궁금해지니까.

이렇듯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것들은 분명 어느 날 갑자기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변화할 것이다. 그런 변화의 의미와 과정을 지도와 함께 상세하게 풀어가는 책이 바로 이것이다. 저자의 전편인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다. 그 책이 지도를 바탕으로 현재를 조망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현재를 넘어 미래를 이야기한다.

미래가 마냥 낙관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지금까지 인류가 저절렀던 그리고 지금도 저지르는 여러 행태들을 보건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식량 문제가 그렇고 환경 오염 문제가 그러하며 자원 고갈 문제 또한 그렇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대안을 찾기 전에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를 파악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읽는 내내-지식이 짧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매끄럽지 않은 문체 때문에 힘들었다. 특히 이처럼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면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또한 지도가 많아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고 읽는 재미와 더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산만한 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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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큰 놀이터다 -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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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역사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역사에 재미를 붙여서 그쪽의 책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이 책도 지금까지 보았던 역사책이라는 생각으로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던 게 사실이다. 소설이라니 어느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지리라 기대를 하며... 그러나 조금 읽어가니 내가 예상했던 그런 형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작가 소개글부터 서두를 봤다. 어디선가 역사 실용소설이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글쎄, 이 책의 형식이 선뜻 잡히질 않는다.

그렇게 조금 더 읽다보니 그제서야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화랑세기에서 배운다는 글을 보고 화랑세기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며 누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화랑이 무엇을 했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대개의 역사소설들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 책은 전혀 의외의 방식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던 셈이다. 화랑이라는 것은 국사 시간에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 단체라고 배웠기에 그들의 삶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위화랑이라는 말을 들어본 듯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화랑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있는 작은 이름일 뿐이었다. 알고 보니 화랑을 만든 인물이며 초대 풍월주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그가 화랑을 만들어서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왜 화랑이 만들어지게 되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마지막 부분까지 화랑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저 위화에 대한 일화를 간단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깊은 의미와 더불어. 그런데 그 의미가 단순히 그 시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 저자도 거기에 의미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위화라는 인물은 처음에는 깊은 생각을 하거나 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욕심이 없이 맑으며 남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다 어떤 계기에 의해 공부를 함으로써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만약 욕심이 많은 사람이 공부를 했다면 권력을 탐했겠으나 위화는 천성이 낙천적이고 욕심이 없었기에 풍류를 즐길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바탕으로 화랑이 만들어진 것이고. 어찌보면 위화는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소설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사실만을 다룬 책도 아닌 것 같아 헷갈리며 읽었는데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어떤 진리가 숨어있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마치 공자나 맹자로부터 지혜를 얻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특히 현대인들에게 가장 어렵다고 하는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현대인 중에서 진정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럼 나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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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이양호 지음, 박현태 그림 / 글숲산책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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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경로를 통해 외국의 많은 옛이야기들이 실제로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들었다. 이는 때로는 집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때로는 피지배자를 교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한다. 아마 그것은 외국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구전되어 살아남는 것은 주로 백성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고 글로 남은 것은 지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아무래도 글을 쓸 줄 아는 계층이 지배층이었기 때문에 채록하면서 그들의 의지를 은연중에 삽입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그림 형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이야기를 채록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만 해도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든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때니까.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떠돌아 다니는 이야기를 모았을까. 그것은 국어학자라는 입장에서, 그리고 언어란 나라의 얼이 담겨있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혼자 지레짐작해 본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특히 옛이야기들이 풍부하게 전해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것만 봐도 그림 형제의 작업은 대단한 가치가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작업이 완성되지 않고 이제 막 걸음마를 한 단계라고 알고 있다. 늦었지만 의미있는 작업이다.

독일 동화의 대표적인 이야기인 백설 공주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특히 어린이들은 그림책으로, 동화책으로, 심지어는 영어 공부용 교재 등으로 다양하게 만나고 있다. 그런데 그 원문을 꼼꼼히 살펴본 이 책의 저자는 거기엔 어디에도 공주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딴지를 건다. 168개의 백설 공주 이야기들(그 사이 더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숫자는 저자가 이 책을 쓸 때 검색된 숫자라고 하니까.)이 모두 공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니 저자로선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단순히 공주라는 이야기가 안 들어갔는데 공주로 번역한 것에서 끝났다면 저자가 이렇게 열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 공주라는 단어 하나가 이 시대 많은 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동화, 심지어는 가요에서까지 흔적이 나타나니 저자가 딴지 걸 만하다.

공주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서 시작은 하지만 단순히 그 하나의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문장 하나에서 시대를 읽고 저자의 비판을 읽고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읽는다. 그래서 독자는 어느 순간 저자의 논거에 지배당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간혹 정말 그림 형제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이 문장을 썼을까,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분도 있었다. 가끔 저자를 만나면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독자가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저자의 손을 떠난 작품은 독자의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을 하든 그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처럼 문장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분석하고 이면을 읽는 것 또한 독자의 몫일 수도 있겠다. 다만 모든 독자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느낄 뿐이다. 아무래도 나는 중간 입장을 취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까지 세세히 이면을 읽을 능력은 없고 그렇다고 글자만 읽고 싶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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